무기력 디톡스 - 지친 마음에 시동을 거는 마인드 부스팅 수업
윤대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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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할때보다 전력을 다 기울이고 났을때 무기력에 빠진다. 조연으로 잠깐 출연했을때보다 주연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을 하고 난 후 번아웃에 이른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쓰며 바쁘게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하루 28시간 (24시간이 아니라)이 주어지고 이제 네 맘대로 살아보라고 하면 기뻐 만세부를까?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런 날이 계속된다면.

무료함과 무기력은 다르다. 무기력하다는 말 속에는 무의미함이라는 뜻이 슬쩍 들어가있다.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의지가 없고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이다.

이런 무기력 상태가 코로나를 거치며 집단 무기력 상태로 이어져, 이제 무기력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정신과 의사로서 이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마음이 번아웃처럼 다 타버리기 전에, 무기력 상태에 이르기 전에, 마음에 쌓인 독소를 쓸어내듯 적절하게 처리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쓴 책이다.


무기력한 마음을 활성화 시키려면

-극복하는 힘보다 버티는 힘: 무기력한 상황에서는 극복해야한다는 생각보다 견뎌낸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그 상황을 그저 묵묵히 버티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내 감정을 팩트 체크하라: 지금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인가?

-자기 비판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다정하게 이해해주는 관점을 가져본다

*'메타인지': 내 마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 자신을 알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 작용


무기력의 늪, 반추 사고의 고리를 끊어라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이처럼 과거에 일어난 부정적인 일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현재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을 '반추'라고 한다.

반추사고를 물리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환자들에게 "안 내켜도 억지로 산책을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라고 한다. 산책을 통해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고 자연 풍경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이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단 행동을 하면 반추 사고의 회로를 끊을 수 있고 외부 세계와 연결되면서 조금씩 동기가 차오른다. 


마음은 결정 기관이 아니라 정보 기관이다.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 내가 하는 생각과 감정까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감정--> 생각 --> 행동'의 순서가 아니라 '행동--> 감정/생각'의 순서도 가능한 것이다.

몸을 움직여 의욕을 만든다. '행동 활성화법'

행동적 항우울제 목록을 만들어본다.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세 번 깊게 호흡하며 호흡의 흐름 느끼기

-조용한 곳에서 음미하며 식사하기

-일주일에 한 번 슬픈 영화 감상하기

-일주일에 시 세편 읽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나만의 미니브레이크를 찾아보자. 좋아하는 커피 한잔을 하거나 마음 맞는 친구와 스몰 토크를 하고 산책을 하는 등 잠깐의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완벽이 아닌 '완성'에 목표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완벽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모든 이에게 인정받을거야' 또는 '실패는 있을 수 없어' 같은 비합리적 신념으로서의 완벽주의다. 


마침 엊그제 윤대현 교수가 TV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보았다. 거기서도 2차 스트레스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만, 1차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이고 문제는 2차 스트레스까지 끌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실수 투성이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이렇게 자기를 자책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휘어잡는 것은 어렵다.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가만히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 보고 그에 따르는 대응을 하는 것이 옳다. 극복하려 하지 말고 그냥 버티는게 낫다고 했다. 


내가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내가 멘탈이 약해서도, 내가 게을러서도 아니다. 그 이전에 열심히 어느 한 곳에 집중한 것이 죄라면 죄. 그런 나를 잘 보살펴 주고 일으켜 세워보자. 조심조심. 다그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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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이파리 하나 물에 담그며 과연 뿌리를 내려줄까 반신반의했는데

며칠 지나 하얗게 뿌리가 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보이는데서. 


유리잔 표면에 맺힌 저 공기 방울은 

산소 방울이겠지

이파리가 살아있다는, 살기 위해 활동한다는 증거








세번째 연 때문에 이 시가 특별해졌다.


올해 입춘은 2월 3일




















며칠 전, 지난 해 새로 생긴 KAIST Art museum 에 다녀올 때 본 오리 연못이다.

올 겨울이 별로 춥지 않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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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던 말이, 쓰고 싶던 글이, 금방 쏟아져 나올 것 같다가도 어느 한 순간 쑥 들어갈 때가 있다.

별 내용도 없는 감정 쏟아붓기 행위가 아닐까. 대수롭지 않은 것을 혼자 대단히 여기고 세상 밖에 내어놓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어머니가 차리시는 아침 밥 냄새에서 더 행복을 느끼고, 저녁밥상 덮어놓던 조각보에서 더 넓은 마음을 느끼는 것을. 그것의 반의 반도 옮기지 못하면서 또 무엇을 새로 쓰겠다는 것인가.

시의 "너"는 시인 자신.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말이다.


말없이 꾸어오는 꿈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있다.

내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땐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모든 시간들을 무르익혀 언젠가는 어떤 하나의 결정체로 빚어 볼 것이고 지금은 그 하나를 향한 build up 과정으로 여기기로 한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중에 충분한 양으로 쌓이고 다듬으면 정체를 드러내리라, 어떤 모습, 어떤 색깔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으니 기대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찮고 별 것 없는 것 같은 하루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말없이 끙끙거려야 할 과업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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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1-2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없이 끙끙거려야 할 과업이 있어 좋은 건지 괴로운 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즐기자, 하면서도 글이 안 써질 때는 즐길 수가 없으니 말이죠.
글쓰기보다는 독서가 더 즐겁고 편한 것 같아요.^^


hnine 2025-01-20 17:39   좋아요 0 | URL
당장 하려고 하면 괴로움이 더 부각되고, 멀리 보고 ‘과업‘이라 생각하면 느긋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그렇네요.
 
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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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때 한글을 떼자마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림일기라는 형식으로 위에는 그림을 그리고 아래는 글을 쓰는 형식이었는데, 문구점에서 파는 노트를 사서 쓰지 않고 줄 없는 A4크기의 작은 스케치북을 사서 줄을 그어 그림일기장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매일 엄마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직장에 다니시던 엄마는 그렇게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엿보시기도 하고 글자가 틀리면 고쳐주시기도 했다. 아주 옛날 일이다. 

이탈리아 작가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의 주인공은 마흔 세살 여자 발레리아이다. 은행에 다니는 남편과 대학에 다니는 아들, 딸을 두었고 그녀 역시 직장에 다니면서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 중년 여성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일기장을 구입하게 되고, 식구들 몰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직장과 집안 일, 자식들 뒤치닥거리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자기만의 세상이 열린다. 

처음엔 가족들 모르게 비밀스런 일기를 쓴다는 것이 쓸데 없는 짓 같아 망설이기도 하고, 안그래도 쪼개쓰고 있는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몰래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온갖 걱정을 해가며 시작하지만 그래도 일기를 쓰면서 그동안 한켠에 치워두고 있던 자의식을 발견하게 되고 가족과의 갈등, 집과 직장 외에 여유라곤 없는 일상을 버텨나가는데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일기를 써나가는 과정은 발레리아가 처음 자기 삶을 자기 중심으로 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어떤 면에서 노예의 삶은 나의 무기이자 나의 희생을 빛내는 후광이었다. (35)

자기의 삶이 노예의 삶과 다름없다고 각성하면서 그게 자기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용기를 덮는 후광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아간다.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노예의 삶을 기꺼이 살아오도록 명분을 제공한 아들과 딸이 이제 각자의 삶을 살고자 한발짝 내딜때마나 발레리아는 심하게 반대의 반응을 한다.

나 (발레리아)는 무시하는 말투로 이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으니 그동안 엄마 아빠가 너를 위해서 한 일을 고마워하라고 했다. (184)

그러자 딸은 대답한다.

"솔직히 말할까요, 엄마? 돈 버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돈 벌기 힘들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처음 취업했을 때는 두려웠어요.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봐 겁이 났죠." (184)

딸의 성취에 대해 반발하는 엄마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제 엄마인 자기의 역할은 끝났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일까.

발레리아는 정신을 잃었냐, 배은망덕하기 까지 하다며 딸을 비난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때가 전후 시대인 1950년대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실제로 남자들은 자립심이 강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력이 뛰어난 여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더라도 적어도 결혼하려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너도 막상 첫아이를 품에 안으면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거나 아이가 배고파하고 생존을 위해서 엄마를 필요로 하면 법정에서 뿌듯함을 맛보겠다고 (딸은 법을 전공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를 나 몰라라 하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189)

법을 전공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자기도 뛰어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 딸에 대한 엄마 발레리아의 대답이다.

아들마저 발레리아 맘에 전혀 들지 않는 여자 아이와 사귀며 결혼하여 집을 떠나겠다고 하자 발레리아는 질색하며 좌절한다. 믿었던 아들마저 이제 자기 품을 떠난다고 한다.

남편과의 사이도 이젠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런 공감대가 없다.

그는 나를 보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는 아이들과 마리나 (아들의 여자친구)와 칸토니 (딸의 남자친구)와 평생토록 설거지한 산더미 같은 접시들과 남편이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과 내가 내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과 어젯밤처럼 냄비에서 나오는 김 때문에 보이지 않는 눈을 비벼가며 끓인 수프가 있었다. (323)


마음 속의 생각을 가끔 털어놓는 대상인 엄마에게도 공감과 위안을 얻지 못하고 세대차이를 느낄뿐, 발레리아는 자신의 실체는 없는 것 같다는 정신적 공허함을 느낀다.

나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그중 하나는 전쟁과 함께 사라졌고 다른 하나는 전쟁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은 그 두 세계가 내 안에서 충돌하며 신음하고 있다. 종종 내 자신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이 충돌의 통로일 뿐일지도 모른다. (410)


얼마전 부터 시작된 직장 상사와의 은밀한 관계는 발레리아를 더욱 갈등에 빠뜨리고 그와의 비밀의 여행을 앞두고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일지 고민한다. 발레리아 자신에게도 남자에게도 자기 삶에서의 돌파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더 늦기 전에 행복해지고 싶다. (420)

과연 발레리아가 선택한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행복을 위한 선택 맞을까?


저자 알바 데 세스페데스는 1911년에 태어나 1997년에 세상을 떠난 쿠바계 이탈리아 작가이다. 아버지가 쿠바사람, 어머니가 이탈리아사람. 할아버지는 쿠바 초대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이른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하였고 다양한 문학 활동, 정치 활동을 하였다.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이 잊혀져있다가 엘레나 페란테라는 작가가 자기 소설에서 세스페데스를 언급함으로써 뒤늦게 재조명되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그당시 발레리아의 딜레마의 일부는 달라졌지만 일부는 여전히 여성의 삶속에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딜레마의 핵심은 자기 삶에서 자기가 빠진 노예의 삶을 살면서, 거기에 희생이라는 후광을 씌운다는 것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기 중심의 삶으로 돌아오는 시작이다. 발레리아가 마지막에 한 결단과 행동, 그렇게 맺은 작가의 의도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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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1-19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나왔을 때 궁금했는데 어느 나라나 여자들 사는 건 비슷하구나 싶기도하네요.
일기를 쓰면서 자기 삶을 자기 중심으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저도 사춘기 시절 그때만큼 일기를 열심히 썼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잘 안 쓰게되고 블로그 활동하면서 더 멀어지게 되더군요.
작년 말에 서재의 달인이 된 건 좋은데 다이어리 생기니까 부담되더군요. 근데 저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겠습니다.
근데 6살부터 일기를 쓰셨다니 대단한데요? 어머니께서 직장에 다니신 것도요.
암튼 저도 나중에 함 읽고 보겠습니다.^^

hnine 2025-01-19 22:43   좋아요 0 | URL
일기를 쓰면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했지만 1950년대 배경이라서 그런지 주인공 여자를 보면서 답답하고 이해 안되는 구석도 많아요. 오히려 주인공 여자의 대학생 딸에게 공감이 갈때가 많더군요.
일기 형식이어서 그런지 문장이 평이하고 어려운 내용이 없어서 페이지는 금방 넘어가요. 한번 읽어보세요.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긴한데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땐 일기보다 블로그에 쓰게 되던데 그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살았다는 흔적은 어떤 형식으로든 남겨야 할 것 같아서 꾸준히 쓰기는 합니다.
 
더 인간적인 건축 -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한진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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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관련 일을 해본적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내가 가본 가장 인상적인 두 건축가의 전시회가 있는데 그 하나는 르 코르뷔지에이고 다른 하나가 작년에 서울에서 있었던 헤더윅의 전시였다. 어떤 이론과 배경을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어도 우선 헤더윅이 디자인한 건축물들은 한눈에 달랐다. 런던에 있는 그 유명한 'rolling bridge (접었다 폈다 할수 있는 다리)'  만 봐도 그의 상상력이 남 다름을 알 수 있듯이 그의 디자인은 대담하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가 2025년 서울 노들섬 프로젝트 설계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어서 2025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이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작년 말에 나온 이 책 <더 인간적인 건축>에는 그가 추구하는 건축디자인의 핵심이 들어가있다. 원제는 Humanise. 사람의 감정과 특성을 부여하여 디자인하자는 얘기이다. 


원래 대학에서 건축이 아닌 디자인을 전공하던 헤더윅은 디자인의 대상을 건축으로 보고 시도하기 시작한다. 우연히 가우디 건축물 사진을 책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후였다. 후에 그는 직접 가우디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방문하여 보고 넋을 잃었다고 했다. 크기만 하고 멋없는 건물 (높이와 층수만 자랑하는 요즘 건물들처럼)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사람의 삶에 무언가를 더해주는 건물이라고 했다. 


기술이 훨씬 발달한 현대에 와서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외면하고 효율성과 비용만 생각하는, 어딜가나 비슷비슷한 건축이 팽배하게 되었다. 바로 20세기 불어닥친 모더니즘때문이다.

마린빌딩과 까싸 밀라가 한창 지어지고 있던 20세기 초 어느 순간 건물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믿기지 않는 혁명이 일어났다. 건물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말하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발상이 학계와 전문가 집단을 휩쓸었고 곧 세계를 장악했다. (52)

모더니즘!

1차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세계는 재건이 중요한 이슈였고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음악은 무조로 바뀌었고 시인은 운율과 운문 구조를 포기했으며 화가는 불필요한 디테일을 없애고 보다 근본적인 형태를 드러내고자 했다. (186)

결과는, 재앙이었다고 헤더윅은 말한다. 모더니즘 열풍 탓에 감정은 배제되고 생각만이 남아 예술가의 촛점이 마음에서 머리로 올겨갔고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욕망이 현대 미술의 자리에 들어섰다고 했다. 건축사에 있어서 이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모더니즘의 세계로 끌어들인 사람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된 세계에서 최고로 중요한 것이 기능이라고 믿었고 건물의 용도가 건물의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람이다.

감히 헤더윅은 르 코르뷔지에를 '따분함의 신'이라고 한다. 그의 이론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따분하고 인간성은 배제된 건축물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이 따분함과 지루함때문에 건물은 40년을 못넘겨 재건축의 길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신념 중 하나는 '건물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대중은 시각적으로 복잡한 양식의 건물을 선호하지, 장소성이 드러나지 않고 기능에 집중하여 설계된 건축물에서 따분함을 느낀다고 헤더윅은 재차 강조한다. 즉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의 건축이 이렇게 되어버린데에는 모더니즘과 더불어 일률적인 교육 시스템에도 원인이 있다고지적한다.  대학에서의 건축 교육, 그리고 일정 조건의 자격을 갖추어야 건축가라는 신분을 달아주는 현재의 시스템은 상향바보화된 건축 전문가를 양상했으며 교육의 탈을 쓴 사상 주입 과정은 건축 교육이 창의성이 아닌 맹목적 순응을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따분함이라는 전 지구적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 일부 건축 전문가가 아닌 그저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물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달리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라고 했다. 

건물은 곁을 지나치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인간화 (Humanise) 원칙이라고 부르고, 그러기 위해선 다음 세가지 간격에서 두루 흥미로워야 한다고 했다.

1. 도시 간격 (40m 이상)

2. 거리 간격 (20m 이상)

3. 문가 간격 (2m 내외)

건물은 가까이 가기 전 멀리서 볼때 벌써 경험이 시작되고 (도시 간격), 이내 길 건너편이나 길 아래에서 건물을 바라보며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거리 간격), 건물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또 새로운 경험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문가 간격).

건물은 프랙탈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스스로를 펼쳐 더 많은 것을 드러내야 한다. (350)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옛날에 지어진 건물들은 그 장소의 특징 (장소성)을 드러내고 그곳의 문화를 반영하며 그 안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과 교류가 일어나도록 품어줄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고 했다. 이윤 위주, 기능 위주의 현대 건축물이 잃어버리고 있는 점이다.


이 책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이 책의 구성과 프린팅 방식도 헤더윅 답게 따분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거의 500쪽에 이르는 책을 읽으면서 전혀 지루한지 모르고 금방 읽을 수 있었으니까.


일반인, 즉 헤더윅이 말하는 '행인'의 입장에서 나도 가끔 거리를 가다가 거의 비슷한 구조와 외관, 비슷한 층수로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들을 보며, 예전의 아파트들보다 더 천편일률적으로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정해진 면적의 땅에,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따분하고 일률적인 건물들이 건축가라는 전문가들과 건축주에 의해 기획되고 마구잡이로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와 도시의 차이가 없어지고 인간들은 그저 그 안에 들어가 일정 시간 보내며 기능적으로만 교류할 뿐이다.


헤더윅이 올해 서울에서 보여줄 두 가지 큰 프로젝트가 기대된다. 



- 이 책에 대한 의문점: 번역자 소개가 없다. 겉표지도 아니고 안쪽 페이지에 조그많게 '옮긴이 한진이'라고 되어 있는게 전부. 혹시 'AI'한테 번역을 맡겼나?


- 이 책에 대한 유감: 도대체 500여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을 이렇게 제본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책 양쪽에 각각 문진을 올려놓아도 휘리릭 넘어가고, 책받참대에 올려놓아도 고정이 안된다. 리뷰쓰는 동안에도 옆에 펼쳐놓고 보면서 쓰는데 아주 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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