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늘쫑 한단 사면 250g

한손 안에 들어올 정도니 많지 않은 양인데

그마저 반으로 나누어 다른 방법으로 만듭니다.

어떤 걸 더 맛있어할지 몰라서요.

(소심해요.)

 

 

 

 

 

 

 

 

 

 

 

 

위의 것은 고추장으로 무친 것,

아래 것은 멸치와 함께 간장 넣고 볶아준 것.

주재료는 같아도 누구랑 어울리느냐에 따라 다른 맛, 다른 반찬이 되는구나

의미 붙이는 버릇이 또 나옵니다.

 

나물이 한창인 철이니

많이 찾아서 먹고 싶습니다.

 

 

 

2.

 

동네 산책로 막사 같은 건물 옆에 동백나무 한그루가 덩그라니 서있어요.

처음엔 무슨 나무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꽃 핀걸 보니 동백나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해마다 그 꽃 피길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조금 있다가 만나러 가보려고요.

마치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요.

.

 

 

 

 

 

 

 

 

 

 

 

 

 

 

 

 

 

 

 

 

 

3.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묻길래

"심심한 천국에 살고 있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가 천국이려니 하고,

걱정거리 안만들고 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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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9-04-28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늘쫑 무침보다 볶음을 좋아하니 저희 가족들도 볶음을 좋아하고, 동생은 무침을 좋아하니 가족들도 무침을 좋아하더라구요.^^ ㅎㅎ

hnine 2019-04-28 20:3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해주는 사람 취향을 가족들도 따르게 되겠지요.
전 무침도 좋고 볶음도 좋아해요. 제 친정어머니께서는 처음부터 기름 넣고 양념 차례로 넣어 볶으셨는데 저는 일단 물에 데친다음에 하니까 시간도 절약되고 기름도 덜 쓰게 되어 좋더라고요.
어떤게 더 맛있는지 남편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멸치 넣고 볶은게 더 나은 것 같다고 하면서 무침 접시가 더 먼저 비워지는건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어요. ^^

목나무 2019-04-2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늘쫑 요리는 무침 볶음 짱아지 다 좋아요. 엄마 생각나게 하는 반찬이라서 그런가봐요. ^^

심심한 천국이라는 재치있고 좋은 표현 저도 누군가가 물으면 그리 대답해봐야겠어요. ^^

hnine 2019-04-28 20:48   좋아요 1 | URL
마늘쫑 이용하는 반찬이 종류가 꽤 많더라고요. 주연으로 출연하는 볶음 무침 장아찌 피클 외에도 볶음밥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하고요.
저도 사실은 이번에 마늘쫑 장아찌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고추장에 팍 박아서 두었다가 먹는 장아찌, 간장 양념에 절여놓는 장아찌. 그런데 요즘 남편이 싱겁게 먹기로 결심하고 있는지라 혹시 안좋을까 싶어서 말았어요.
저는 주말인 오늘도 혼자 집 지키며 심심한 천국을 누렸습니다 ㅠㅠ

보물선 2019-04-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둘다 좋아요!!

hnine 2019-04-28 20:51   좋아요 1 | URL
요즘 나물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얼마전에 두릅도 사다가 무쳐봤다가 대략 실패 ㅠㅠ 저 혼자 다 먹었답니다.
쑥은 무작정 샀다가 어찌 먹어야 할지 몰라서 국 끓여 다 처치했고요.
달래는 맛있긴 한데 다듬을 생각하니 꾀가 나서 못본 척 하고 있는 중이어요.
나물이 은근 손이 많이 가지요.
마늘쫑 그냥 데쳐서 고추장이나 된장에 팍 찍어 먹는게 제일 간단한데...^^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제목으로 '이것은 동화'라고 한 것은 동화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등장 인물이 어른이 아니라서, 동물이 의인화되어 나오기 때문에 동화로 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이 전달하려고 하는 주제, 스토리, 플롯이 소설보다는 동화에 더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던 고등학생 나쓰키 린타로는 고등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책에 빠져 살뿐 학교엔 잘 가지도 않는 외곬수이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서점을 운영할 사람이 없이 혼자 남게 된 상황에 닥치자 고모는 서점을 정리하고 고모와 함께 갈 것을 권유한다. 그건 린타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서점을 정리하려고 하는 차에 정체불명의 고양이가 나타나서 린타로를 책과 관련된 미궁의 세계로 데려간다. 이곳은 환상의 세계. 매번 그곳에는 풀어야할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책과 관련되 문제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왜곡되는 책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들이라는 점.

문제점들은 책의 결말에 모두 해결되고 혼자 남은 린타로, 주인 잃은 서점의 문제도 모두 해결된다. 물론 해피엔딩.

작가는 나름 의인화와 비유를 거쳐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는 하나 너무 뚜렷하고 드러난 메시지라는게 흥미를 떨어뜨린다. 독자들이 생각하고 추리할 여지 따위는 없다. 그냥 페이지 넘기며 읽어나가는 것 밖에. 새로울게 없다는 얘기도 된다.

이야기를 좀 압축하고 분량을 줄여서 동화로 나왔더라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읽을 수 있고 금방 다 읽어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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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0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긍정적이라는 것과 낙관적이라는 것을 그동안 구별없이 사용해왔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볼테르는<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낙관주의를 아주 천재적으로 비꼬고 있다.

순진한 소년 캉디드는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팡글로스를 스승으로 모시며 아름다운 툰더 텐 크론크 성에서 살고 있다. 성의 주인인 남작의 딸 퀴네공드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이 남작의 눈에 발각되자 캉디드는 지상 낙원 같은 남작의 성에서 쫓겨나고 갈곳 없이 거리를 떠돌다가 불가리아 병사들에게 붙잡힌다. 이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파라과이, 엘도라도, 베네치아, 영국, 콘스탄티노플 등을 거치며 추위와 배고픔, 폭력, 자연재해의 위기 속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겨가는 가운데 오로지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퀴네공드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스승 팡글로스에게 배운 진리, 즉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현재 어떤 어려움과 부당함이 있어보이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어떤 원인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결과는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는 가르침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던 캉디드. 그는 생사의 고비를 여러번 넘기고 다른 생각을 주장하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을 만나면서 그 믿음에 대해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최선으로 존재하는가?'

 

 "재미 삼아 배에 탄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번 하라고 해보세요. 가끔 자기 인생을 저주하지 않는 사람,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를 바다에 거꾸로 처넣어도 좋아요." (98쪽, 노파의 이야기)

 

나중에 팡글로스를 만나 캉디드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묻는다.

"오, 팡글로스! 이런 끔찍한 일을 당신은 예측하지 못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결국 나는 당신이 말씀하셨던 낙관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군요." (135쪽)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하인 카캄보가 낙관주의가 뭐냐고 묻자 캉디드는 대답한다.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 (135쪽)

 

프랑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볼테르. 그의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이다.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고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허용되던 시대였으나 그는 독설과 비판을 서슴치 않아 불경죄로 감옥살이를 겪었고 영국으로 추방되기까지 한다. 이후로 이 책 속의 캉디드가 그랬듯이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등 여러 곳을 떠돌며 살았던 그는 84세때 파리에서 사망하기 까지 다양한 종류의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나는 행동하기 위해 쓴다."는 볼테르의 계몽주의 사상,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후대의 평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긴 여정 끝에 그들이 찾아낸 정원 (jardin)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캉디드, 팡글로스, 마르틴. 팡글로스는 털어놓는다. 끔찍할 정도로 고통을 겪었지만 일단 모든 것이 최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강변해왔기 때문에 계속 그것을 주장하긴 했어도 사실은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고. 철학자 마르틴은 인간은 불안의 격동 속에 살거나 권태의 혼수상태 속에서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결론 지었으며, 캉디드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했고 팡글로스나 마르틴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못했다.

결말에서 캉디드는 고견을 듣기 위해이슬람교 수도승을 만나러 가지만 그는 그저 침묵을 지키라는 말만 해준다.

돌아오는 길에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노인을 만나고 그 노인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가꾸는 정원의 과일을 내다파는 것으로 만족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노동을 하면 우리는 세가지 악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 그 세 가지 악이란 바로 권태, 방탕, 궁핍이라오." (204쪽)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메모하거나 밑줄 긋지 않았을까? 우리가 오늘도 하기 싫어하면서도 일터로 향하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막상 노동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주어져도 그 자유로움을 그리 오래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 이유이다.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일하자, 그것이 인생을 견딜만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라는 마르틴의 말에 캉디드와 팡글로스 모두 동의한다.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 라는 마지막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신의 정원이 아닌 우리의 정원이고 그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내 앞의 정원을 내 손으로 가꾸는, 사소해보이는 일상의 의무를 잘 수행해내는 것 외에 무엇을 더 바랄까.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와 함께 실린 <미크로메가스>도 분량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보다 짧다고 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의미를 담고 있는 글이다. 볼테르가 살던 1700년대에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다는게 우선 놀랍다. 인간이 결코 눈으로 볼 수 없고 인식할 수도 없을, 비교도 안될 크기의 생명체가 있고, 그 생명체가 미물로 보일만한 더 큰 거인이 있다는 상상. 여기서 그 거인들은 지구를 지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눈곱만한 개미집'. 그들이 지구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대, 오로지 하나의 종교만 허락되던 시대에 볼테르는 이런 상상을 하며 나와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 오류를 비웃어 주고 있다.

<미크로메가스>마지막에서 사물의 궁극을 보게 될 거라고 하며 건네준 책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문장에 나와있다.

 

풍자와 비유로 가득한 책이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 그 의미를 다 파악하며 읽는 경우도 있겠지만  책 뒤의 해설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른 출판사 책은 살펴보질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문학동네 역자 해설은 이 책의 읽기를 완성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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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이수연 지음 / 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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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저자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해맑고 명랑해보이는 아가씨로 보이는데 오래 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 시도까지 한적 있어 정신 병원에 입원 치료 받아왔다는 고백을 하고 있었다. 고백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하는 모습이 결코 어두운 표정이 아니라 모든 걸 다 지나온듯 밝아보였다. 그래서 이제 다 나았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고 회복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책을 내게 되고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서서 얘기까지 하게 된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을 비롯해서 병원 주치의 선생님의 도움에 대한 보답이 되고 싶었고, 결정적으로, 너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우울증에 대한 글을 찾아봤는데 어떤 것도 너를 말해주는 책은 없더라는 엄마의 말이 원인이 되어 용기를 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쓴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그래도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그 큰 우울의 원인은 무엇일까.

책은 하루 하루 일기 형식으로 쓰여져 있었다. 매일 매일 저자의 기분에 대한 설명, 주치의 선생님과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에 대한 것이 주 내용인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읽는 동안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저자보다는 저자를 치료하는 주치의의 입장에 더 동화가 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의사로선 이런 환자를 많이 대할텐데 성의있고 환자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부분이 읽는 사람에게도 잘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저자의 기분은 그날의 기분이 어떠했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에 대해 주로 썼지 저자의 우울증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과거에 대한 설명은 많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저자 입장에 공감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저자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보이고 충분히 이성적이며 조금만 노력하면 자신을 일으켜세울 능력도 있어보였다. 사소한 일상은 버텨나갈 힘이 없지 않아보이는데 문제는 전반적으로 삶 그 자체에 대한 이유를 못찾고 있다는 것, 아니, 사는 이유를 자꾸 찾으려 한다는 데 있지 않나 싶었다. 사는 이유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이 아픈 삶을 마무리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늘 자살의 위험성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고 그것을 염려한 주치의는 적절한 약물을 사용해보기를 권유하지만 그녀는 약물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싶진 않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이 아니라고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고를 할 만큼 이성적이었다. 생각과 마음이 달라서 마음은 '죽고 싶어'라고 말하고 생각은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다고. 중독에 관한 글을 읽다가 발견한 한 구절에서 행복하려고 노력해도 행복해지 않는 이유는 노력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하다고 자살하기에 삶은 우울보다 더 가치있는 일 아닌가. 포기보다는 버텨볼만하다고.

포기는 쉽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용기를 내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삶이 나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나아가지 못해도 살아갈 이유는 있습니다' 이다. 지금 행복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는데는 이유가 없다. 없는 것을 찾는다고 찾아질까. 찾아진다면 그것은 사는 방법을 한가지 더 알아내는 것이겠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용기를 내는 방법을.

책을 읽고난 소감은 그렇다 하더라도 저자인 이수연씨를 비롯하여 우울증을 기조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외로움, 누군가의 위로와 이해를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너무 오래동안 채워지지 못한채로 살아왔다는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덧붙여본다.

마지막으로 주치의가 이수연씨에게 쓴 편지글이 마음에 남는다. 처음 이수연씨를 만났을때 가르치려 들고 맞서면서 논리의 비약을 찾아내 심리 구조에 생긴 빈틈을 채우려했었노라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수연씨의 자기 파괴적인 부분들이 모두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노라고. 이런 주치의를 둔 이수연씨. 꼭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 이수연씨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엔 많노라고. 그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을 이유 하나를 보태면 안되겠냐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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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20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울증은 타고난 기질의 문제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생기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일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우울증에 걸리지는 않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암 환자들 중 3분의 1가량만
우울증을 앓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3분의 2는 우울증이 없다는 거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울증 환자가 되는 경우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hnine 2019-04-20 22:06   좋아요 0 | URL
아까 다 못쓰고 낙가느라 임시저장을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올라갔던 모양이어요. 이런 당황스러울데가 (ㅠㅠ).
지금 발견하고 얼른 마저 다 쓰고 났더니 페크님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우울증도 그렇지만 현대인의 많은 문제점이 소통의 부재, 외로움이 한 원인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책에서 주치의가 말한대로 우울증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기제의 한 가지라는 데도 동의하고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우울증을 안고 살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친숙해진 느낌마저 드니 어떡해요.

페크pek0501 2019-04-21 11:43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어쩐지 미완성 글인 것 같은 생각이 스쳤는데 일부러 간략하게 쓰실려고 그랬나 생각했어요.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너무 진지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 것. 그리고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무엇을 갖기, 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도 좋고 취미도 좋겠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를 무엇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설령 우울 성향을 갖고 태어났어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이 저자처럼 책을 쓸 정도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해요.
잘 읽었습니다.

서니데이 2019-04-2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있는데, 아직 안 읽은 것 같아요. 표지는 익숙한데, 내용은 그보다는 조금 더 낯설게 느낍니다.
이 리뷰 읽고 나니, 나중에 꼭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요즘은 다들 스트레스를 많이 안고 사니까, 정신적인 고통과 어려움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같은 일이 있어도 개인차도 있을 것 같고요.
잘 읽었습니다.
hnine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하루 되세요.^^

hnine 2019-04-22 04:35   좋아요 1 | URL
저는 전자책으로 대여해서 읽었어요. 전자책 구입은 해본적있어도 대여까지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1.

 

눈으로 꽃을 구경하고

귀로는 새소리를 듣는다

겨울엔 다 어디서 지냈을까

물까치와 참새

바쁘게 날아다니고

바쁘게 지저귄다

한 나무에

물까치가 앉아있을땐 물까치끼리

참새가 앉아있을땐 참새들끼리

함께 앉아있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2.

 

윤정희가 주연한 오래전 영화 <시>가 보고 싶어 검색했는데

그 영화는 안올라와있고 시로 시작하는 다른 영화가 나온다.

<시인의 사랑>

제목이 맘에 안드네 하면서 어쩌다가 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다 보았다.

제주도 배경의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제주도는 사람이 사는 곳 제주이지 관광지 제주가 아니다.

처음 듣는 이름의 감독이 각본도 썼다.

현택기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시인 (양익준 역)은 비슷한 이름의 실제 시인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어느 누구도 배우같은 사람이 없었다.

원래 영화 속 그 사람인듯, 원래 거기 사는 사람인듯.

 

 

시인이 뭐하는 사람이냐는 어린 학생의 질문에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3.

 

 

 

 

 

 

 

 

 

 

 

 

 

 

 

 

 

 

 

 

볼테르의 캉디드를 읽어야한다.

혹시 동네 도서관에 가면 있을까?

올해 새로 문을 연 도서관이라 아직 책이 많지는 않던데.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책이 있었다.

두 정거장쯤 되는 거리. 슬슬 걸어서 도서관에 갔다.

책이 있는 것을 알고 왔으니 서가에서 뽑아오면 되었고

대출도 기계로 간편하게 할 수 있었다.

대출증 한번 올려놓고, 대출할 책 올려놓으면 끝.

 

갔던 길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다.

원하는 책을 찾고 가서 빌려오기까지

나는 한마디도 말을 할 필요가 없고

한 사람도 얼굴 볼 필요가 없었다.

 

편하긴 한데

꼭 좋지만은 않다.

 

 

 

 

 

 

새의 하루는 바쁘고

나의 하루는 조용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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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지 기계가 알아서 척척 해 주는... 시대. 편한 것만이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시대를 살다 보면 인간의 마음도 딱딱하게 굳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1번을 시로 읽었어요. 느낌이 좋습니다.

hnine 2019-04-13 14:35   좋아요 1 | URL
저도 말이 별로 없는 편이면서도 막상 하루 종일 말할 필요 없는 날들을 살다보니 적적하기도 하고 저녁때까지 식구들이 들어오지 않은 날엔 어딘가 전화라도 걸어서 말이 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사람보다 오히려 새나 꽃과 눈을 맞추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좀 쓸쓸한 날이었어요.
영화 <시인의 사랑>에 김소연 시인의 ˝그래서˝라는 시가 인용되어 나오는데요. 거기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을
나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혼자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