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간적인 건축 -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한진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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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관련 일을 해본적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내가 가본 가장 인상적인 두 건축가의 전시회가 있는데 그 하나는 르 코르뷔지에이고 다른 하나가 작년에 서울에서 있었던 헤더윅의 전시였다. 어떤 이론과 배경을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어도 우선 헤더윅이 디자인한 건축물들은 한눈에 달랐다. 런던에 있는 그 유명한 'rolling bridge (접었다 폈다 할수 있는 다리)'  만 봐도 그의 상상력이 남 다름을 알 수 있듯이 그의 디자인은 대담하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가 2025년 서울 노들섬 프로젝트 설계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어서 2025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이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작년 말에 나온 이 책 <더 인간적인 건축>에는 그가 추구하는 건축디자인의 핵심이 들어가있다. 원제는 Humanise. 사람의 감정과 특성을 부여하여 디자인하자는 얘기이다. 


원래 대학에서 건축이 아닌 디자인을 전공하던 헤더윅은 디자인의 대상을 건축으로 보고 시도하기 시작한다. 우연히 가우디 건축물 사진을 책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후였다. 후에 그는 직접 가우디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방문하여 보고 넋을 잃었다고 했다. 크기만 하고 멋없는 건물 (높이와 층수만 자랑하는 요즘 건물들처럼)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사람의 삶에 무언가를 더해주는 건물이라고 했다. 


기술이 훨씬 발달한 현대에 와서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외면하고 효율성과 비용만 생각하는, 어딜가나 비슷비슷한 건축이 팽배하게 되었다. 바로 20세기 불어닥친 모더니즘때문이다.

마린빌딩과 까싸 밀라가 한창 지어지고 있던 20세기 초 어느 순간 건물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믿기지 않는 혁명이 일어났다. 건물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말하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발상이 학계와 전문가 집단을 휩쓸었고 곧 세계를 장악했다. (52)

모더니즘!

1차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세계는 재건이 중요한 이슈였고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음악은 무조로 바뀌었고 시인은 운율과 운문 구조를 포기했으며 화가는 불필요한 디테일을 없애고 보다 근본적인 형태를 드러내고자 했다. (186)

결과는, 재앙이었다고 헤더윅은 말한다. 모더니즘 열풍 탓에 감정은 배제되고 생각만이 남아 예술가의 촛점이 마음에서 머리로 올겨갔고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욕망이 현대 미술의 자리에 들어섰다고 했다. 건축사에 있어서 이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모더니즘의 세계로 끌어들인 사람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된 세계에서 최고로 중요한 것이 기능이라고 믿었고 건물의 용도가 건물의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람이다.

감히 헤더윅은 르 코르뷔지에를 '따분함의 신'이라고 한다. 그의 이론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따분하고 인간성은 배제된 건축물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이 따분함과 지루함때문에 건물은 40년을 못넘겨 재건축의 길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신념 중 하나는 '건물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대중은 시각적으로 복잡한 양식의 건물을 선호하지, 장소성이 드러나지 않고 기능에 집중하여 설계된 건축물에서 따분함을 느낀다고 헤더윅은 재차 강조한다. 즉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의 건축이 이렇게 되어버린데에는 모더니즘과 더불어 일률적인 교육 시스템에도 원인이 있다고지적한다.  대학에서의 건축 교육, 그리고 일정 조건의 자격을 갖추어야 건축가라는 신분을 달아주는 현재의 시스템은 상향바보화된 건축 전문가를 양상했으며 교육의 탈을 쓴 사상 주입 과정은 건축 교육이 창의성이 아닌 맹목적 순응을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따분함이라는 전 지구적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 일부 건축 전문가가 아닌 그저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물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달리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라고 했다. 

건물은 곁을 지나치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인간화 (Humanise) 원칙이라고 부르고, 그러기 위해선 다음 세가지 간격에서 두루 흥미로워야 한다고 했다.

1. 도시 간격 (40m 이상)

2. 거리 간격 (20m 이상)

3. 문가 간격 (2m 내외)

건물은 가까이 가기 전 멀리서 볼때 벌써 경험이 시작되고 (도시 간격), 이내 길 건너편이나 길 아래에서 건물을 바라보며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거리 간격), 건물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또 새로운 경험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문가 간격).

건물은 프랙탈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스스로를 펼쳐 더 많은 것을 드러내야 한다. (350)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옛날에 지어진 건물들은 그 장소의 특징 (장소성)을 드러내고 그곳의 문화를 반영하며 그 안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과 교류가 일어나도록 품어줄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고 했다. 이윤 위주, 기능 위주의 현대 건축물이 잃어버리고 있는 점이다.


이 책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이 책의 구성과 프린팅 방식도 헤더윅 답게 따분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거의 500쪽에 이르는 책을 읽으면서 전혀 지루한지 모르고 금방 읽을 수 있었으니까.


일반인, 즉 헤더윅이 말하는 '행인'의 입장에서 나도 가끔 거리를 가다가 거의 비슷한 구조와 외관, 비슷한 층수로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들을 보며, 예전의 아파트들보다 더 천편일률적으로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정해진 면적의 땅에,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따분하고 일률적인 건물들이 건축가라는 전문가들과 건축주에 의해 기획되고 마구잡이로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와 도시의 차이가 없어지고 인간들은 그저 그 안에 들어가 일정 시간 보내며 기능적으로만 교류할 뿐이다.


헤더윅이 올해 서울에서 보여줄 두 가지 큰 프로젝트가 기대된다. 



- 이 책에 대한 의문점: 번역자 소개가 없다. 겉표지도 아니고 안쪽 페이지에 조그많게 '옮긴이 한진이'라고 되어 있는게 전부. 혹시 'AI'한테 번역을 맡겼나?


- 이 책에 대한 유감: 도대체 500여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을 이렇게 제본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책 양쪽에 각각 문진을 올려놓아도 휘리릭 넘어가고, 책받참대에 올려놓아도 고정이 안된다. 리뷰쓰는 동안에도 옆에 펼쳐놓고 보면서 쓰는데 아주 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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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part 1과 2로 나누어 총 16부 작으로 제작되었다는데 현재 part 1의 8부가 공개되어 있다.


오래 전에 책으로 읽긴 했지만 워낙 방대한 내용에 혼동하기 쉬운 인명을 인물과 대응하며 읽느라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읽어볼 엄두는 못내던 참에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에 영화로 보고나서는 제목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의 solitude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책으로 읽을 때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 같다. 



Solitude는 "고독"이나 "혼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로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며, 스스로 선택한 홀로 있음의 평화와 자기 성찰을 강조합니다.

Loneliness는 "외로움"을 뜻하며, 대개 부정적인 감정을 내포합니다. 이는 타인과의 연결 부족, 사회적 고립, 또는 소속감의 결여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나타냅니다.

주요 차이점

  1. 감정적 색채

    • Solitude: 긍정적 또는 중립적 (자발적 고립, 내적 평화)
    • Loneliness: 부정적 (외로움, 고립감)
  2. 자발성 여부

    • Solitude: 스스로 선택한 홀로 있음
    • Loneliness: 원치 않는 고립
  3. 내적 상태

    • Solitude: 자기 발견, 창의성, 휴식과 연결됨
    • Loneliness: 불안, 소외감, 고독감과 연결됨

예를 들어, solitude는 조용한 산책이나 명상을 통해 얻는 평화를 의미할 수 있지만, loneliness는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나타냅니다.



이상은 chat GPT가 조사해서 알려준 것. 


호세 아르까디오가 결혼과 함께 마꼰도라는 자치적 부락을 만들어 떠나는 시작 부터가 원치 않는 고립의 loneliness가 아닌 자발적 고립인 solitude의 시작이라고 보여지기도 한다. 남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치라는 대외적 차원, 또 백년에 걸친 한 가문의 차원까지 이 작품에서 solitude는 다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8부까지 다 시청하고 난 소감은, 엄지 척!

책 보다 훨씬 몰입감있어 다른 것에 신경쓸 필요 없이 작품에 집중하여 의미를 헤아려가며 볼 수 있었다. 책으로 이미 한번 읽었기 때문이라고 하기 뭐 한 것이, 이미 8~9년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은 거의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사가 전부 스페인어로 되어 있으니 더 실감나기도 했고, 책으로 아직 안 읽은 분은 물론 읽으신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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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1-02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백년의 고독은 소설 자체를 재미없게 읽어서...넷플 애청자인 제게 저 영화가 떴지만 전 패쑤했습니다요..ㅎㅎ

엣지나인 님, 새해가 시작되었어요! 올해는 작년보다 건강하고 즐거운 한 해 되시길 빕니다~~

hnine 2025-01-02 21:05   좋아요 0 | URL
백년의 고독, 만만한 작품은 아니지요.
영화는 재미있게 잘 만들었어요. 어느날 필이 팍 꽂힐때 한번 보세요 ^^
저를 엣지나인이라는 멋진 닉네임으로 불러주시는 yamoo님, 저는 정말 올해는 작년보다 건강하고 싶은게 첫번째 소원이랍니다. yamoo님도 좋은 작품 많이 그리시고 알라딘에서도 자주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5-01-0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년의 고독을 예전 30대에 재미없게 읽었어요.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려서 도표를 그려 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포기하지 않고 완독해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왜 이 작품이 재밌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읽으면 다를까요? 영상을 보면 다를지 궁금합니다.

hnine 2025-01-05 13:20   좋아요 1 | URL
저는 읽은지 8,9년 된 것 같은데도 지금 내용이 가물가물한데, 더 오래전에 읽으셨다면 pek님도 혹시 그러시지 않으신가요? 다시 도전해보실 생각이시라면 영화로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잘 만들었어요.

페크pek0501 2025-01-2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년의 고독. 이 영화를 나인 님이 추천하셔서 넷플에서 1회를 봤답니다. 재밌었어요. 시간 날 때 계속 시청하겠습니다.^^

hnine 2025-01-20 17:39   좋아요 0 | URL
네,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한번에 볼수는 없고, 야금야금 보면 좋아요.
 
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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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의 영국 여행기를 읽고 나니 스페인 여행기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체코 사람 카렐 차페크는 1932년 영국에 이어 스페인 여행을 하였고 이것에 대한 기록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지루한 기차 여행으로 스페인 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의 독특한 기행문은 시작한다. 침대차를 타고 체코에서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수천 킬로를 가는 동안의 지루함과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침대차의 이층 침대로 기어오르는 사람을 그려놓은 것을 보고는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긴 하지만 스페인은 지금도 카스티야, 아라곤, 안달루시아, 카탈로니아 등의 이름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를 좋아한다. 카스티야 지방의 중심지이자 지금은 스페인의 수도가 된 마드리드를 거쳐 , 마드리드 이전에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를, 저 아래 남쪽의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 북쪽의 카탈로니아 지방의 바르셀로나, 몬트세라트까지 스페인이라는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잡아내는 예리한 관찰력의 바탕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중세때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던 무슬림은 더이상 이베리아 반도에 없지만 무슬림의 문화와 예술은 건축물 속에 아직 살아있다. 카톨릭과 무슬림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하고 있는 건축물들이 스페인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가 본 것이 어찌 눈에 보이는 건축물 뿐이랴.

집과 가족. 전 세계 모든 곳에 집과 거주지가 있지만, 유럽에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가정을 꾸민 두 지역이 있다. (85)


어디를 말 하고 있냐하면, 하나는 영국이고 다른 하나가 스페인인데, 영국의 가정이 벽난로와 안락의자, 책이 있는 곳으로 그려질 수 있다면 스페인 가정은 여성의 영역, 가족 생활, 가정의 꽃피는 중심을 격자창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여자로 사는 것은 정말 좋으리라 장담한다. 여성은 야자수, 월계수, 도금양 향기가 가득한 화려한 가정의 안뜰에서 큰 영광과 높은 명예를 누리기 때문이다. 가정의 아름다움은 여성에 대한 특별하고 강력한 찬미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여성의 지배력을 나타내고 그녀의 명성을 드높이며 그녀의 왕좌를 에워싸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눈이 큰 소녀가 아니라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수염 난 노부인, 즉 당신의 어머니를 뜻한다. 바로 그분의 존귀함을 기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86)


투우, 플라멩고 등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투우나 플라멩고 속에서 스페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읽어내고자 하는 차페크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관광객으로서 여행 안내기를 쓰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와 다른 문화 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느껴보고 싶었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스페인의 국가주의는 대륙을 넘어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에서 확인될 수 있는데, 카렐 차페크는 이것을 북아메리카 지도 아래 남아메리카 자리에 스페인을 이어 붙이는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대륙을 넘어 남아메리카 많은 국가들이 지금도 스페인어를 쓰고 있는 것을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여러분, 저 바다 건너에 수백만, 수천만 명이 있는데 그들은 마드리드 학술사전에 있는 언어로 말합니다.' 

만약 마드리드 학술원 사전을 따르는 사람이 모두 한데 모인다면 어떨까? 곧바로 국제연맹조차 이루지 못한 일을 만들어낼 것이다.(178)

스페인은 지금까지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불리고 있으면서 고유한 생활 방식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기사에서 당나귀까지 이 나라는 국제적 문명의 겉치레보다 옛 스페인 풍속을 선호한다고 했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카디스 사람은 카디스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마드리드 사람은 마드리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긍지로 여기게 한다고. 

스페인의 깊은 비밀 중 하나는 지역색이다. 이는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사라져가는 독특한 미덕이다. (181)

스페인을 여행하며 나중까지 잊지 못할 풍경이 여럿 있지만 그중 하나가 몬트세라트일 것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차페크는 간단하면서 특징을 제대로 살린 그림을 그려놓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그 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을 밧줄로 교회 첨탑 꼭대기까지 정어리 통조림을 끌어올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렇게 경이로운 곳을 나는 난생 처음 봤다. (210)

기도하듯 모아서 들어 올린 손가락처럼 보인다는 그의 표현이 꼭 맞다. 그 손가락이 열개가 아니라 천개의 손가락이라는 것. 후에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자연이다.

그의 에필로그.

친애하는 독자여, 익숙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보거나 다루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사물과 사람 간의 다양성은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준다. 당신은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익숙한 것과 다른 것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당신이 만난 다른 순례자들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발이 닳도록 기꺼이 걸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삶의 충만함과 풍요로움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17)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기꺼이 노출시켜가며 여행을 하는 이유는 결국 내 삶을 충만하고 풍요롭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다른 지역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다른 모습 자체를 좋아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더 즐겁지 않냐고 한다. 우리를 구분 짓는 모든 것으로 우리를 하나되게 만들어보자고. 이런 맺음말은 영국 기행문에서는 없던 것이다.

그가 마흔 여덟살의 나이로 생를 마감하지 않았더라면 꿈꾸었던 미국과 남미로의 여행기도 남길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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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 김경미 시집, 2023년 민음사 -





김경미 시인이 지금까지 낸 시집의 제목을 살펴보자.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고통을 달래는 순서>, <밤의 입국심사>, <카프카식 이별> 거기에 이 시집의 제목은 그 극강에 있다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사람의 감성을 툭 하고 건드리는 제목들이다. 도대체 이런 제목을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는지. 소설을 읽으며 이런 스토리는 어떻게 머리 속에서 짜여질 수 있는지 감탄하는 것과 또다른 감탄이다.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정서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감각적으로 함축한 문구.

시집의 제목과 같은 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취급이라면>이란 시에 시집의 제목과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소포는 오지 않고


-시 <취급이라면> 중 일부-



1959년생 김경미 시인은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고 1983년 스물 네살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 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아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밖에서는 날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 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시 <비망록> 중 일부-


서정성이 넘치는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시인의 시는 서정성이라고 부를 감정과 그것보다 좀더 본능적인 감상의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내면에 집착해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물론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소감이다. 

KBS 클래식 FM 라디오 방송 작가로 40년을 일해오다가 올해 초 그만 두었다. 그리고 라디오 작가로 있으면서 썼던 원고들을 묶어 낸 산문집도 호응이 좋다고 한다.


혼자 여행사를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는 시가 있다. 여행은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손님을 설득하는데, 자신이 손님이 되어 스스로에게 문의를 하기도 한다. '저기요, 내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쓸쓸하다면>이라는 시의 내용이다.


현재 국내 사회적 상황때문인지, 나의 감상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인지, 개인적이고 내면에 집중한 시들이 예전만큼 마음 속까지 깊이 와닿지를 않아 아쉽다.

시인은 이 시집으로 올해 "김종삼 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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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7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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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없고 , 화가 난다.






















듣고 있던 라디오 진행자는 안녕, 헤어짐을 주제로 한 노래를 몇 곡 연달아 내보내고 있었다.



(사진은 D museum 의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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