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 좋아서 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
곽미성 지음 / 어떤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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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다른 것을 배우는 것과 뭐가 다를까. 요리, 운동, 악기, 그림, 등등 배움의 한 종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중학교 들어가서야 영어라는 정식 교과목이 있었던 때에 비하면 일찍 부터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배우는 요즘 시대를 나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외국어를 배운다고 해서 우리말 교육에 지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어를 하나라도 더 안다는 것은 언어를 한가지 더 할 줄 안다는 것에서 나아가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갖춘다는 것이고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니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한 언어에 만족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를 봐도 그렇다.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을 했으나 자기와 코드가 안맞는다고 생각, 학교를 그만 두고 프랑스어를 배우러 파리로 떠났다. 그렇게 20년째 프랑스에서 살고 있어 프랑스어는 익숙해졌고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는데 평소에 자주 이탈리아를 방문하다보니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럴 여유가 있을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덜컥 프랑스에 있는 이탈리아어 학원에 등록을 한다. 마치 프랑스어를 처음 배울때처럼 부끄러워 하고 자신없어 하며 다니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 현지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일주일 코스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직장에 휴가를 내고 일주일 언어 연수를 다녀오기로 한다. 그렇게 떠난 곳이 이탈리아 볼로냐. 호주, 일본, 한국, 영국 등 각지에서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이탈리아어 초급반 수업 겨우 일주일이지만 학원외에 홈스테이로 있는 이탈리아 가정에서의 경험은 산 교육이 되기도 한다.

볼로냐로 언어 연수를 떠나기 전 학원에서 한 학기 수업, 그리고 볼로냐에서의 일주일 연수, 이 기간 동안의 이야기이니 저자 말대로 이제 첫 걸음 단계에 지나지 않는 동안일지 모른다. 그래도 작가 기질이 있어서인가, 나름대로 의미를 붙여가며 한 권 분량의 책을 만들었다.


이전에 읽은 두 권의 책이 생각 나서 다시 들춰 보았다.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의 저자는 60의 나이에 스페인어를 배우러 멕시코로 떠난 일본 여성이며,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의 저자 심혜경 님은 사서로 있으면서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공부를 하여 번역가의 길로 나섰다. 

비슷한 세 권의 책을 읽어본 느낌은, 나이가 더 많은 이 두 저자들이 더 자신감 있어보였다는 것이다.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것에 대해 덜 조급해하면서도 더 장기적으로 보고 공부하는 진심이 느껴졌었다. 








시험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꼭 고역은 아니다. 그 나라 말을 배우면서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 사고 방식, 문화, 역사, 예술에 대해 접할 기회가 생기는 것은 덤이다. 시험 과목으로 공부한다면 아무래도 그런 여유를 누리기 어려울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도 조금씩이나마 스페인어에 이어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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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2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말을 배운다고 느껴요.
아기가 어버이 곁에서 말을 배우고 익히는 까닭도,
어버이하고 마음을 소리로도 나누고 싶기에
문득 알아듣고서 말마디를 내놓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아직 낯선 이웃이기에, 이웃이 쓰는 말을 귀담아들으면서
천천히 이웃말에 우리 마음을 맞추면서
하나하나 눈과 귀와 입을 틀 테지요.

hnine 2025-01-29 11:29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그들이 하는 말을 알고 싶은 것이 맞아요.
저는 스스로 폐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봐요.

페크pek0501 2025-02-0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어에 이어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있으시다니 훌륭하십니다. 저도 영시를 배우는 강좌가 있길래 신청을 했었어요.
시도 배우고 영어도 배울 목적으로요. 그런데 수강 신청자가 적어 폐강되었다고 통보를 받았죠. 그때 참 아쉬웠지요.ㅋㅋ

hnine 2025-02-02 09:19   좋아요 0 | URL
영시를 저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고 한 문학 강좌에서 영어권 문학 작품 소개하는 시간에 가끔 영시를 곁들여 보여주는 때가 있었는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영어로 쓴 작품이긴 하지만 시는 시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지 영어를 익힌다고 생각하니 너무 어려웠어요.
스페인어는 스페인 여행 갈 목적으로 혼자 배워보았고, 이탈리아도 언젠가 가보고 싶은 로망이기 때문에 그 희망으로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스페인어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무기력 디톡스 - 지친 마음에 시동을 거는 마인드 부스팅 수업
윤대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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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할때보다 전력을 다 기울이고 났을때 무기력에 빠진다. 조연으로 잠깐 출연했을때보다 주연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을 하고 난 후 번아웃에 이른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쓰며 바쁘게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하루 28시간 (24시간이 아니라)이 주어지고 이제 네 맘대로 살아보라고 하면 기뻐 만세부를까?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런 날이 계속된다면.

무료함과 무기력은 다르다. 무기력하다는 말 속에는 무의미함이라는 뜻이 슬쩍 들어가있다.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의지가 없고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이다.

이런 무기력 상태가 코로나를 거치며 집단 무기력 상태로 이어져, 이제 무기력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정신과 의사로서 이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마음이 번아웃처럼 다 타버리기 전에, 무기력 상태에 이르기 전에, 마음에 쌓인 독소를 쓸어내듯 적절하게 처리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쓴 책이다.


무기력한 마음을 활성화 시키려면

-극복하는 힘보다 버티는 힘: 무기력한 상황에서는 극복해야한다는 생각보다 견뎌낸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그 상황을 그저 묵묵히 버티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내 감정을 팩트 체크하라: 지금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인가?

-자기 비판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다정하게 이해해주는 관점을 가져본다

*'메타인지': 내 마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 자신을 알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 작용


무기력의 늪, 반추 사고의 고리를 끊어라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이처럼 과거에 일어난 부정적인 일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현재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을 '반추'라고 한다.

반추사고를 물리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환자들에게 "안 내켜도 억지로 산책을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라고 한다. 산책을 통해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고 자연 풍경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이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단 행동을 하면 반추 사고의 회로를 끊을 수 있고 외부 세계와 연결되면서 조금씩 동기가 차오른다. 


마음은 결정 기관이 아니라 정보 기관이다.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 내가 하는 생각과 감정까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감정--> 생각 --> 행동'의 순서가 아니라 '행동--> 감정/생각'의 순서도 가능한 것이다.

몸을 움직여 의욕을 만든다. '행동 활성화법'

행동적 항우울제 목록을 만들어본다.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세 번 깊게 호흡하며 호흡의 흐름 느끼기

-조용한 곳에서 음미하며 식사하기

-일주일에 한 번 슬픈 영화 감상하기

-일주일에 시 세편 읽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나만의 미니브레이크를 찾아보자. 좋아하는 커피 한잔을 하거나 마음 맞는 친구와 스몰 토크를 하고 산책을 하는 등 잠깐의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완벽이 아닌 '완성'에 목표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완벽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모든 이에게 인정받을거야' 또는 '실패는 있을 수 없어' 같은 비합리적 신념으로서의 완벽주의다. 


마침 엊그제 윤대현 교수가 TV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보았다. 거기서도 2차 스트레스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만, 1차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이고 문제는 2차 스트레스까지 끌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실수 투성이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이렇게 자기를 자책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휘어잡는 것은 어렵다.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가만히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 보고 그에 따르는 대응을 하는 것이 옳다. 극복하려 하지 말고 그냥 버티는게 낫다고 했다. 


내가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내가 멘탈이 약해서도, 내가 게을러서도 아니다. 그 이전에 열심히 어느 한 곳에 집중한 것이 죄라면 죄. 그런 나를 잘 보살펴 주고 일으켜 세워보자. 조심조심. 다그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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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이파리 하나 물에 담그며 과연 뿌리를 내려줄까 반신반의했는데

며칠 지나 하얗게 뿌리가 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보이는데서. 


유리잔 표면에 맺힌 저 공기 방울은 

산소 방울이겠지

이파리가 살아있다는, 살기 위해 활동한다는 증거








세번째 연 때문에 이 시가 특별해졌다.


올해 입춘은 2월 3일




















며칠 전, 지난 해 새로 생긴 KAIST Art museum 에 다녀올 때 본 오리 연못이다.

올 겨울이 별로 춥지 않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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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던 말이, 쓰고 싶던 글이, 금방 쏟아져 나올 것 같다가도 어느 한 순간 쑥 들어갈 때가 있다.

별 내용도 없는 감정 쏟아붓기 행위가 아닐까. 대수롭지 않은 것을 혼자 대단히 여기고 세상 밖에 내어놓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어머니가 차리시는 아침 밥 냄새에서 더 행복을 느끼고, 저녁밥상 덮어놓던 조각보에서 더 넓은 마음을 느끼는 것을. 그것의 반의 반도 옮기지 못하면서 또 무엇을 새로 쓰겠다는 것인가.

시의 "너"는 시인 자신.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말이다.


말없이 꾸어오는 꿈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있다.

내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땐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모든 시간들을 무르익혀 언젠가는 어떤 하나의 결정체로 빚어 볼 것이고 지금은 그 하나를 향한 build up 과정으로 여기기로 한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중에 충분한 양으로 쌓이고 다듬으면 정체를 드러내리라, 어떤 모습, 어떤 색깔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으니 기대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찮고 별 것 없는 것 같은 하루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말없이 끙끙거려야 할 과업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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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1-2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없이 끙끙거려야 할 과업이 있어 좋은 건지 괴로운 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즐기자, 하면서도 글이 안 써질 때는 즐길 수가 없으니 말이죠.
글쓰기보다는 독서가 더 즐겁고 편한 것 같아요.^^


hnine 2025-01-20 17:39   좋아요 0 | URL
당장 하려고 하면 괴로움이 더 부각되고, 멀리 보고 ‘과업‘이라 생각하면 느긋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그렇네요.
 
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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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때 한글을 떼자마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림일기라는 형식으로 위에는 그림을 그리고 아래는 글을 쓰는 형식이었는데, 문구점에서 파는 노트를 사서 쓰지 않고 줄 없는 A4크기의 작은 스케치북을 사서 줄을 그어 그림일기장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매일 엄마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직장에 다니시던 엄마는 그렇게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엿보시기도 하고 글자가 틀리면 고쳐주시기도 했다. 아주 옛날 일이다. 

이탈리아 작가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의 주인공은 마흔 세살 여자 발레리아이다. 은행에 다니는 남편과 대학에 다니는 아들, 딸을 두었고 그녀 역시 직장에 다니면서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 중년 여성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일기장을 구입하게 되고, 식구들 몰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직장과 집안 일, 자식들 뒤치닥거리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자기만의 세상이 열린다. 

처음엔 가족들 모르게 비밀스런 일기를 쓴다는 것이 쓸데 없는 짓 같아 망설이기도 하고, 안그래도 쪼개쓰고 있는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몰래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온갖 걱정을 해가며 시작하지만 그래도 일기를 쓰면서 그동안 한켠에 치워두고 있던 자의식을 발견하게 되고 가족과의 갈등, 집과 직장 외에 여유라곤 없는 일상을 버텨나가는데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일기를 써나가는 과정은 발레리아가 처음 자기 삶을 자기 중심으로 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어떤 면에서 노예의 삶은 나의 무기이자 나의 희생을 빛내는 후광이었다. (35)

자기의 삶이 노예의 삶과 다름없다고 각성하면서 그게 자기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용기를 덮는 후광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아간다.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노예의 삶을 기꺼이 살아오도록 명분을 제공한 아들과 딸이 이제 각자의 삶을 살고자 한발짝 내딜때마나 발레리아는 심하게 반대의 반응을 한다.

나 (발레리아)는 무시하는 말투로 이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으니 그동안 엄마 아빠가 너를 위해서 한 일을 고마워하라고 했다. (184)

그러자 딸은 대답한다.

"솔직히 말할까요, 엄마? 돈 버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돈 벌기 힘들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처음 취업했을 때는 두려웠어요.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봐 겁이 났죠." (184)

딸의 성취에 대해 반발하는 엄마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제 엄마인 자기의 역할은 끝났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일까.

발레리아는 정신을 잃었냐, 배은망덕하기 까지 하다며 딸을 비난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때가 전후 시대인 1950년대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실제로 남자들은 자립심이 강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력이 뛰어난 여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더라도 적어도 결혼하려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너도 막상 첫아이를 품에 안으면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거나 아이가 배고파하고 생존을 위해서 엄마를 필요로 하면 법정에서 뿌듯함을 맛보겠다고 (딸은 법을 전공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를 나 몰라라 하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189)

법을 전공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자기도 뛰어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 딸에 대한 엄마 발레리아의 대답이다.

아들마저 발레리아 맘에 전혀 들지 않는 여자 아이와 사귀며 결혼하여 집을 떠나겠다고 하자 발레리아는 질색하며 좌절한다. 믿었던 아들마저 이제 자기 품을 떠난다고 한다.

남편과의 사이도 이젠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런 공감대가 없다.

그는 나를 보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는 아이들과 마리나 (아들의 여자친구)와 칸토니 (딸의 남자친구)와 평생토록 설거지한 산더미 같은 접시들과 남편이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과 내가 내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과 어젯밤처럼 냄비에서 나오는 김 때문에 보이지 않는 눈을 비벼가며 끓인 수프가 있었다. (323)


마음 속의 생각을 가끔 털어놓는 대상인 엄마에게도 공감과 위안을 얻지 못하고 세대차이를 느낄뿐, 발레리아는 자신의 실체는 없는 것 같다는 정신적 공허함을 느낀다.

나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그중 하나는 전쟁과 함께 사라졌고 다른 하나는 전쟁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은 그 두 세계가 내 안에서 충돌하며 신음하고 있다. 종종 내 자신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이 충돌의 통로일 뿐일지도 모른다. (410)


얼마전 부터 시작된 직장 상사와의 은밀한 관계는 발레리아를 더욱 갈등에 빠뜨리고 그와의 비밀의 여행을 앞두고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일지 고민한다. 발레리아 자신에게도 남자에게도 자기 삶에서의 돌파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더 늦기 전에 행복해지고 싶다. (420)

과연 발레리아가 선택한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행복을 위한 선택 맞을까?


저자 알바 데 세스페데스는 1911년에 태어나 1997년에 세상을 떠난 쿠바계 이탈리아 작가이다. 아버지가 쿠바사람, 어머니가 이탈리아사람. 할아버지는 쿠바 초대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이른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하였고 다양한 문학 활동, 정치 활동을 하였다.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이 잊혀져있다가 엘레나 페란테라는 작가가 자기 소설에서 세스페데스를 언급함으로써 뒤늦게 재조명되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그당시 발레리아의 딜레마의 일부는 달라졌지만 일부는 여전히 여성의 삶속에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딜레마의 핵심은 자기 삶에서 자기가 빠진 노예의 삶을 살면서, 거기에 희생이라는 후광을 씌운다는 것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기 중심의 삶으로 돌아오는 시작이다. 발레리아가 마지막에 한 결단과 행동, 그렇게 맺은 작가의 의도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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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1-19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나왔을 때 궁금했는데 어느 나라나 여자들 사는 건 비슷하구나 싶기도하네요.
일기를 쓰면서 자기 삶을 자기 중심으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저도 사춘기 시절 그때만큼 일기를 열심히 썼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잘 안 쓰게되고 블로그 활동하면서 더 멀어지게 되더군요.
작년 말에 서재의 달인이 된 건 좋은데 다이어리 생기니까 부담되더군요. 근데 저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겠습니다.
근데 6살부터 일기를 쓰셨다니 대단한데요? 어머니께서 직장에 다니신 것도요.
암튼 저도 나중에 함 읽고 보겠습니다.^^

hnine 2025-01-19 22:43   좋아요 0 | URL
일기를 쓰면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했지만 1950년대 배경이라서 그런지 주인공 여자를 보면서 답답하고 이해 안되는 구석도 많아요. 오히려 주인공 여자의 대학생 딸에게 공감이 갈때가 많더군요.
일기 형식이어서 그런지 문장이 평이하고 어려운 내용이 없어서 페이지는 금방 넘어가요. 한번 읽어보세요.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긴한데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땐 일기보다 블로그에 쓰게 되던데 그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살았다는 흔적은 어떤 형식으로든 남겨야 할 것 같아서 꾸준히 쓰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