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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해 저물고 난 뒤, 저녁 먹은 설겆이를 할 무렵,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꼭 들려오는 소리가 있는데 바로 '소쩍~ 소쩍~' 하는 소쩍새 소리이다.
작가 후기 (너무나 잘 썼다고 생각이 드는) 중 한 단락;
---적막한 속에 소쩍새만 울어 댄다. 소쩍새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문득 세상에는 소쩍새 울음소리 들으면 눈물 나는 사람과 소쩍새 울음소리 들어도 눈물 안 나는 사람 그 두 종류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소쩍새 울음소리 들으면 눈물 나는 사람이 아무래도 내 동족인 것만 같아지는 것이다. 소쩍새 울음소리 들어도 눈물 안 나는 사람들이 어쩐지 두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마흔에 길을 나서서 만났던 사람들은 어쩐지 모두 소쩍새 울음소리 아니고라도 온몸에 맑은 눈물, 따스한 눈물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는 것을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 책은 2002년 한 해동안 월간 [말]지에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란 제목의 글을 연재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니며 쓴 여정의 기록이다. 강원도 국변에서 만난 약장수 할머니, 경북 봉화 화전민 마을, 미선이 효선이 의정부, 낙원동과 인사동, 안동 하회마을, 서울 가리봉, 무주 무풍, 전라도 순창, 여수 화양반도 등등. 손으로 쓴 글이라기 보다, 가슴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문체. 읽으며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했지만, 이것은 결코 어둡게 볼 일이 아니라, 우리네 삶이 이렇다고 '받아들이고' 겸허해져야 할 문제라고 결론을 내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후기 중의 또다른 일부:
---봄이 왔다고 또 어김없이 들에 나와 씨를 뿌리고 수해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논에서 '우짜든동' 그래도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갈퀴손으로 쓰러진 벼이삭을 일으켜 세우던 내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애려오는' 이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흔에 길을 나선 내가 본 사람들을, 이 땅에 발 딛고 어떻게든 한 번 살아보고자 애쓰는 이들에 대해서. 그리하여 세상에는 사는 모습 자체로 울컥 목이 메어 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나는 마흔에 길을 나서 보고야 알았다---
참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