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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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실험실에서 거의 12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머리보다 몸이 더 지쳐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기대하는 것은 오늘 누군가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편지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 속의 대령처럼 특별히 편지 기다리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기대를 하곤 했다. 하루 중 마지막 기대를 갖는 시간, 그것을 기대하며 하루를 버텼나 싶게 매일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림 만큼 사람을 서서히 지쳐가게 하는 것이 있을까. 동시에 그 기다림의 힘으로 어려운 시간대를 통과해나가기도 한다.


대령은 커피 통 뚜껑을 열고 커피가 한 숟가락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7쪽, 이 책의 첫 문장)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몇달 전 살해당하고, 아픈 아내와 둘이 외롭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퇴역 군인 대령이 오로지 기다리는 것은 군인 연금 자격 통지서이다. 참전했던 내전이 끝나고 56년째 그는 연금을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다 ('기다린다' 라는 말 대신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에게 남은 것은 죽기 전까지 아들이 키우던 수탉 한마리. 아내는 그것이라도 팔아서 식량을 사는데 쓰자고 하지만 대령은 끝까지 거부한채 때로 사람 먹을 것 없을 때 조차 수탉을 먹여가며 지키려고 한다. 

짧은 스토리이다. 

1927년생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그의 나이 31세때 이 책을 발표하였다. <백년의 고독>이 나오기 거의 십년 전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한 편의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 소설이 주목을 받은 것은 <백년의 고독>이 나와서 라틴 아메리카의 훌륭한 소설로 인정받은 후이다. 이를테면 재조명을 받은 셈. 하지만 <백년의 고독>을 먼저 읽고 난 후 읽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년의 고독>이 복잡한 구성, 여러 인물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는 반면 이 소설은 간단한 구성, 소수의 인물만 등장시키면서도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닭, 배고픔, 병듦, 외로움. 

희망이 없는 시간을 버텨나가게 하는 것은 부질없어보이는 기대와 점점 가치가 떨어져가는 수탉이다. 효용으로 보자면 수탉을 집에서 아무 쓸모없이 끼고 있는 것 보다는 아내가 주장하는대로 팔아서 당장 먹을 것 살 돈을 마련하거나 투계 시합에 내보내 우승을 기대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끝까지 거부하는 대령에게 수탉은 그런 용도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연금 통지서를 기다리는 일을 결코 그만 두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으로 남은 삶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정치적 상황 설명없이 당시 사회상이 잘 나타나고 있고,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고 살면서도 자존심과 주관을 지키고 사는 대령, 현실적인 잔소리를 해대면서도 대령을 생각해주고 보살펴주는 진심을 행동으로 보이는 아내는 민중이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죽은 아들 대신 부여잡고 있으려는 수탉은 그것을 팔아 얻을 수 있는 몇푼의 돈보다, 당장 떨어진 식량을 구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절실하며 그런 것 이외 달리 희망이 없는, 그렇게 삶을 이어나가는 목숨들이 있다.

삶에 무슨 특별한 목표가 있을까. 그저 이어가는 것. 버텨가는 것.

<백년의 고독> 못지않게 탁월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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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9-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이 멋지네요. 이 작가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은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제 수준이 못 따라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그다음부턴 마르케스의 작품을 보지 않았죠.
글에 쓰신 대로 간단한 구성, 소수의 인물만 나오면서 작가의 의도가 뭔지 짐작이 갈 때 최고죠. 요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야금야금 아껴 가며 읽고 있어요. 고양이가 본 인간들의 모습을 쓴 것인데 주인이 이런 일기를 썼다면서 그의 일기장을 그대로 옮겨 놓기도 해요. 재밌어요. 무엇보다 간단한 구성이 맘에 들고 주인의 캐릭터가 흥미를 느끼게 해요.

hnine 2024-09-14 04:56   좋아요 0 | URL
첫 문장 하나로도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확 드러나지요.
이 책은 쉽게 읽으실거예요. 제가 남편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했더니 금방 읽더라고요. <백년의 고독>은 저에게도 수월하지 않은 작품이었답니다 ^^

pek님, 드디어 추석 연휴 시작이네요. 너무 힘들지 않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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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나의 부모로서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자식은 축복이면서 천형과도 같다더니, 자식을 둔 부모는 늘 반성모드, 개선모드로 살게 된다. 뭐 잘못 하고 있는 것은 없나 하는 반성모드에서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은 개선모드.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학생 12명과 교사 한명이 죽었고 24명이 부상당했다. 총기난사 범인은 이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두 사람. 그 중 한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이 책의 저자이다.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엄마는 아들이 사건을 일으킬거라는 기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며 지금까지도 아들이 왜 그런 상상도 못할 사건을 일으켰는지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결손 가정도 아니었으며 충분한 교육을 받은 부모였고, 경제적으로 그리 어려운 환경도 아니었다. 말썽을 일으키는 아들은 더구나 아니었던 것이다. 과잉보호나 지나친 기대 속에서 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필요이상의 개입과 참견, 간섭을 하지 않고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믿어주는 쪽의 부모였다. 읽는 동안 나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게 한 접점이다. 내가 자랄 때 나의 결정권보다 부모의 결정권이 많이 작용했고 부모는 그것이 더 책임있는 부모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실수를 줄이는 방향이긴 했으나 자신의 의견은 부모 의견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던지라,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는 미성숙하다 여겨질지라도 최대한으로 아이의 의견대로 해주는 쪽을 쫓으려고 해온 나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딜런이 스스로에게나 남들에게 자기 혼자 힘으로 잘해나간다는 확신을 주려고 했던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다. 딜런이 어릴 때부터 보였던 타고난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우리도 그런 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딜런이 삶의 막바지에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으니 말이다. (123쪽)

누구나 자라면서 똑같은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딜런의 성향 중의 하나는 망신을 당할 위험을 지나치게 겁낸다는 것과, 자기 실수를 가볍게 웃어넘길 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저자는 그것을 심각하게 문제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 아이는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구나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쪽이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방임하는 부모는 아니었다.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는 확실히 바로 잡아주려고 했으며 가족과 어울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 노력했다. 딜런에게는 형이 하나 있는데 두 아들의 교육에 아버지의 관여도 협조적이었고 자연스런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저자는 자기 아들이 이처럼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진학할 대학도 결정을 했으며 며칠 전엔 졸업 기념 프롬에도 다녀온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어느 날 학교에 가서는 수십 번에 걸쳐 학생들과 선생님을 향하여 총기 난사를 하였고, 총격후 자살했다. 

사건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기에 부모는 물론 경찰도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다방면의 조사와 분석, 관련자 취조, 수색을 해나간다. 저자 역시 무엇이든 조치가 필요했는데 아들의 사고는 물론이고 저자 자신이 앞으로의 시간을 버텨나가기 위한 급박한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었으며 이웃과 지인, 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 시키다시피 하며 살아야하는 시간을 거쳐와야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낸 결과물이기도 하고, 사건 이전 이후를 되돌아보며 분석하며 보낸 시간과 노력에 대한 기록이 앞으로 다른 부모들과 미국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권유와 스스로의 확신으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내 이야기를 최대한 충실하게 들려주면 나는 발가벗겨진 기분일지라도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 얼굴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줄 수 있도록 도와줄 빛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 친구들과 동료들도 내 이야기를 알고 육아 방식을 바꾸었다. 부모가 제때 개입해서 엄청난 변화를 이룬 일도 있었다.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끈질기게 물었기 때문에 아이를 구할 수 있었다. (25쪽)

뒤늦게 이 세상을 떠난 아들의 방에 들어가 구석구석 다시 뒤져보고 기록도 찾아보며 엄마는 그동안 모르던 사실을 하나하나 찾아내며 후회한다. 그 중 하나는 아이의 우울증을 사춘기 때 흔히 있는 일이라고 넘어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딜런의 3학년 생활에 우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딜런이 쉽게 화내고 평소 같지 않게 의지가 빈약했던 것도 우울의 징후였다. 십대 남자아이가 으레 보일 만한 범위 안에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딜런은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철저히 감췄다. 우리가 딜런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을 할 때마다 딜런은 아무 문제없다고 적극적으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니 부모가 흔한 청소년기의 행동 (게으르다, 태도가 까칠하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과 우울증이나 다른 병의 지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이나 말이 걱정할 만한 상태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329쪽)

딜런은 우울증과 더불어 일기에 자살에 대해 언급해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대상이 있는 폭력은 대개 개인적 상실이나 모욕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사건이 불만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결심 지점이 된다. (334쪽)

딜런의 우울증 성향은 짜증으로 표현되었으며 (부모는 이것을 청소년기의 특징으로 보았음), 개인적 상실과 모욕이 폭력으로 해소되는 결심으로 향하게 된다. 부모에게는 걱정말라는 말로 안심시켰고 부모는 아들의 말을 믿었다.

'부모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믿으면 위험하다. 행동을 관찰하라'는 말이 나온다. 아이의 말이 앞뒤가 안맞고 설명으로서 부족하다 느껴지면 전문가등 제3자에게 보여서 알아볼 것을 권한다.

미국에서 대규모 총격 사건이 증가하는 까닭은, 고성능 총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과 함께 정신건강에 대한 지식과 지원 부족, 언론이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도 관련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의료 기술은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을 늘어나지만 정신건강은 약해져 간다. 언론은 빠른 정보를 주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데도 일조한다.

딜런은 수십명을 살상한 것과 동시에 자살을 했다. 자살은 죽이고 싶은 욕구,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 죽고 싶은 욕구, 이 세가지가 합해져야 일어난다고 한다 (칼 메닝거). 사건이 일어나던 날 현장에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살인범이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오늘 세상이 끝날 거야. 오늘이  우리가 죽는 날이야."

이 책 앞에 해설을 쓴 사람 이름이 앤드류 솔로몬이다. 낯익은 이름이다 했더니 <한낮의 우울>의 저자이다. 충격적인 내용으로 잊혀지지 않는 책이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친 16년'이라고 했다. 알 수 없는 것이란 여전히 아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울은 더이상 과장이나 핑계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고 자식을 키우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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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05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25년된 일이네요. 그 이후에도 이와같은 사건은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읽으시면서 마음이 무거우셨겠어요. 저도 읽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는데 그래도 끝까지 읽으셨네요.

hnine 2024-09-05 12:18   좋아요 0 | URL
네, 마음이 무거웠답니다. 남의 자식 이야기가 내 자식 이야기 같고 그렇거든요. 자기가 낳고 키우고 현재도 같이 살고 있는 자식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답니다. 부모는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자식을보는 것 같아요.
사람의 죄를 따질 때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요.

페크pek0501 2024-09-05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읽으니 영화 케빈에 대하여, 가 생각납니다.

hnine 2024-09-05 12:23   좋아요 1 | URL
저 그 영화도 사실 끝까지 볼 자신이 없어서 안 봤거든요. 이 책은 그래도 영화는 아니니까 덜 하겠지 하고 읽게 되었어요. 아들이 둘 인데 총기사건의 아들은 둘째 아들이고 그 형은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동생과 달라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으며 저자는 자기 아들도 그 총에 맞았으면 어떡하나 그 걱정을 했대요. 그 아들이 총기 난사범일줄은 상상도 못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이후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지...결국 남편과도 이혼하고, 자살방지를 위한 활동을 하며 극복하려 애쓰고 있네요.

나와같다면 2024-09-0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나서 콜럼바인 총격사건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콜럼바인] 까지 읽었습니다

아.. 너무 힘든 시간이였습니다

다시 읽을 시도는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hnine 2024-09-10 15:54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저도 이 책 읽는 것 조차 용기가 필요했어요. 최근에 계기가 있어 읽게 되었네요.
저자가 보낸 세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고통의 세월이 어떠할지, 짐작도 어렵고요.
 
슬픈 구름 -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하명희 지음 / 강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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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고요는 어디 있나요>를 읽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기에 신간이 나왔나보다 하고 주저없이 골랐는데 알고 보니 작가의 첫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의 개정판이었다. 아직 못 읽고 있던 차에 잘되었다. 2014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던 <나무에게서 온 편지>가 10년 뒤인 2023년에 <슬픈 구름>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1989년. 일용직으로 어렵게 겨우 살림을 꾸려가는 할머니와 사는 고등학교1학년 도은이가 주인공이다. 바람막이 하나 없던 집은 태풍때문에 그나마 있던 쪽문마저 날라가고, 집을 나간 엄마는 감감무소식이다. 의지하고 살던 할머니마저 일하러 나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고약을 포장하는 아르바이트와 이웃의 도움으로 버텨가는데 학교에선 담임선생님이 전교조 문제로 해직되는 일을 겪는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급조차 따질 수 없는 영세 아르바이트, 담임선생님의 해직 등의 일을 겪으면서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되는 도은이는 고등학생운동에 발을 들이고, 대학생들과 함께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1991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1990년대의 정치 사회 이슈들이 줄줄이 나온다. 전교조,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등등. 이런 일들을 주인공과 비슷한 시기에 겪어낸 사람으로서 그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네 편이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기다린 시간만큼 그 시간의 아픔만큼 살아내라고. 그 기다림의 힘으로 살아보라고. (105쪽)

기다림의 힘으로 사는 동안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어쩌라고. 버틸만큼의 힘이 되어 줄까? 

힘을 빼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기가 앉을 곳을 향해 가장 편한 자세로 착지하려는 새는 호수의 저녁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얼마나 날아야 저렇게 날 수 있을까. 용기도 습관일거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용기는 용기를 내지 않아도 생길 거야. 날갯짓처럼, 밥 먹는 것처럼. 고약을 쌀 때 처럼.

"자, 지금이야!"

도은은 가로등 불이 켜지는 것을 포기하고, 새가 나무 위에 내려앉는 순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10쪽)

가로등이 켜지면 걱정을 자르고 벌떡 일어설 거라고 다짐하며 망설이던 도은이가 새를 보며 용기를 내는 대목이다.


바뀐 제목 '슬픈 구름'은 도은이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무에게 보내는 편지' 사연을 보낸 것이 소개되면서 함께 나온 노래 제목에서 왔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뼈를 깎아 만든 피리로 연주하는 음악이라고 한다. 

함께 운동을 하던 친구들중 누구는 자퇴를 하고, 누구는 대학에 진학을 하고, 누구는 징계를 받았다. 도은이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재수 학원에 등록을 한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내가 싸운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도은이는 생각한다. 다시 어떻게 사회로 섞여들어가나, 어떻게 내 자리를 지키며 계속 살아가나.


지금도 세상의 뭔가를 바꿔보기 위해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건 사람들이 있겠지. 

30년 전의 일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기억으로부터 고스란히 재현되는 통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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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 단단한 생각의 말들이 이루는 공감과 울림
정은령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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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2017년부터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 팩트체크센터장을 맡아 일했다.

이런 저자 소개 이전에,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같은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때는 문과, 이과로 나뉘어 자주 볼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졸업하고 같은 해 대학생이 되었다.학력고사 세대. 키도 훤칠하고 리더쉽도 있어 중학교때부터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던 학생이었다. 나는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키도 작고 조용하니 눈에 띄지 않아, 동급생이지만 요즘 말하는 넘사벽이라고 할 그 친구와는 그냥 알고 지내는 이상의 친구가 되기에는 공통점이 많지 않아보였다.

서로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고 대학에 간 후에도 동창들로부터 소식은 종종 들어 알고 있었다. 졸업후에는 신문 지상에서 가끔 그 이름을 봐오며 역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기자로 일했으니 그동안 많은 글을 써왔을텐데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2021년에 처음 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기사와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책을 내기로 할때에는 개인사가 어느 정도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주저하는 동안 여러 차례 권유를 받았을 것이다. 

일하는 여성이면 일의 종류를 막론하고 거쳐왔을 치열한 시간대를 그녀도 어김없이 거쳐왔다는 것을 글을 읽으며 알수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을 먼저 보냈고, 미국에서 가족과 의절하며 사시던 외삼촌의 마지막을 지킨 이야기, 감기가 낫지 않아 대학병원에 갔다가 혈액암 판정을 받고 무균실에서 고립된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엔 나도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은 단단해진다.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을 겪어내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속에 단단해져간다. 

50대 후반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가장 치열하게 지내온 시기는 40대가 아니었나 싶다. 1인 1역도 버거운데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야했던 시기이고, 직장에서도 가장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대되는 시기이며,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기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남이 보기에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 두고 혼자 몸도 아니고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도전을 시도한다. 4년 여를 그렇게 보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산을 넘어야 했을까. 

얼마전에 펴든 백석의 시집도 이 책 때문이었다. 

사랑과 슬픔은 언제나 함께 부어져 삶의 잔을 가득 채운다. 그 모든 것이 앙금이 되어 가라앉은 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외로움의 시간으로 향할 때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나도 생각하게 될까. (171쪽)

'백석을 읽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 중 일부이다. 그렇다 사랑과 슬픔은 언제나 함께 부어져 삶의 잔을 채운다. 앙금이 되어 가라앉은 뒤, 아마 나이가 훌쩍 든 후겠지, 그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외로움의 시간. 그것마자도 우린 극복하며 살것이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때로 생명의 힘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설명할 수도 없을 때, 삶을 생명 쪽으로 끌어간다. (185쪽)


치열하게 살며 남은 것이 나와 내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이기심만은 아니고, 물욕과 명예욕만은 아니며, 여전히 사회의 소외되고 눈길 못받는 사람들을 향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좋다. 

중고등학교때 그 씩씩하고 당당하던 모습의 그녀가 쓴 글에 이렇게 공감하고 빠져들수 있던 것은 나이가 주는 선물이라 여긴다. 앞으로도 신문지상에서 아니면 이렇게 책으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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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8-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참 좋네요.^^

hnine 2024-08-29 17:12   좋아요 2 | URL
책 제목은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의 책 <라틴어 수업>에 나온 문장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때 첫 인사로 사용하던 말이라네요.

세실 2024-09-0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 듭니다.
삶에 정답은 없지만 누구에게나 행복이든 불행이든 총량의 법칙은 있다는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그동안 참 편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hnine 2024-09-05 07:24   좋아요 0 | URL
상처는 드러내야 치유가 되니까 그런가봅니다. 비록 흉터는 남을지라도 그 흉터를 두려워하면 치유는 없겠지요. 학창시절을 알고 있던 이름을 이렇게 수십년만에 책으로 만나니 읽으면서 감회가 새로왔어요.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는 목수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낮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내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 석,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외로운 감정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 수가 있나.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시.



가끔 가다 꺼내서 펼쳐 읽는 백석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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