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힘든 조건에서 버텨낼 수 있게 하고 싶으면 그 조건에서 있어보기를 여러번 반복하는 훈련보다는 그보다 좀 더 힘든 조건을 몇번 경험하게 하는게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불과 일주일 전에 낮 최고 39.4도까지 경험하고 나니 어제처럼 32도 정도 날씨는 더운게 아니라 선선하다는 생각까지 드니 말이다. 운동 선수들이 평소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받는 것도 비슷한 원리 아닐까.

올 여름 온 국민이 든든한 모래주머니 훈련을 받았다.

아직 여름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곧 맞게될 가을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울까.

 

 

 

 

 

 

 

 

 

추위는 오기로, 깡으로 라도 버티겠는데 더위는 정말 맥을 못추겠다. 집 밖에 나가면 일단 호흡이 턱 막히고, 뛰는 것도 아니고 최저속으로 걷고 있는데도 숨이 찼다. 동네 산책은 나갈 엄두도 못내고 그저 책 몇권 들고 아파트 단지내 독서실에 가서 에어컨 혜택을 받고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위의 나무 사진도 아파트 단지내 어린이집 앞에서 찍은 것들.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나무보다 새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새에 관심이 간다. 아마도 새벽에 듣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완전 우점종인 저 새.

이름이 뭔지 한참을 도감을 뒤적인 끝에 <물까치>라고 자체 동정 (틀릴지도 모른다).

날아다니고 있을 때는 사진 찍기가 어려워 매번 기회를 놓쳤는데, 어느 날 내 방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저렇게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되어 얼른 찍었다. 저 푸른 색 때문에 물까치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얘는 국립중앙박물관 뒷길에서 찍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까치.

 

 

 

 

<토지>를 읽다가 가끔 다른 책도 기웃거린다. 현재는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시간여행에 관한 책인데 책 제목만큼이나 특이하고 재미있다.

예전엔 동시에 3권까지도 돌려가며 읽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두권도 겨우 읽는다. switching이 예전만큼 제깍제깍 안되어서 ㅠㅠ.

 

 

 

 

 

 

책만 읽는 것이 지루했던 어느 날.

사온 가지를 보고 뭘해먹을까 생각하다가 그렸나보다.

가지가 통통하고 예뻣다.

 

가지를 미국에선 egg plant 라고 하는데 영국에선 aubergine이라고 한다.

가지무침을 해먹었는데 물 끓여 찌는게 덥고 귀찮아서 그냥 전자렌지에 돌렸더니 확실히 더 퍽퍽하고 맛이 없었다.

다음엔 귀찮아도 쪄서 무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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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2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 온 국민이 든든한 모래주머니 훈련을 받았다.˝는 훌륭한 글에 박수를...
가지를 그리신 훌륭한 그림에 박수를... 짝짝짝 칩니다.
덕분에 좋은 감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hnine 2018-08-26 13:57   좋아요 0 | URL
오늘도 방금 산책을 다녀왔는데 선들선들해진 날씨에 긴팔 셔츠를 하나 더 입고 나갔다왔어요. 돌아올땐 비까지 마구 쏟아지더군요.
자연의 힘보다 더 무서운게 있을까 싶어요.
잘 보아주시니 감사드려요. 울적했던 기분이 반짝 개입니다.
 
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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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희망이 일렁이는 금녀 가슴에는 뜻하지 않았던 조바심이 아프게 저 바다의 파도가 방천을 치듯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빼앗길 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겐 불안이 없다. 지금 금녀가 가져보는 앞으로의 자기 운명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과연 희망적인 것인지 그 어떤 실마리도 잡아보지 못한 채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악몽 속에 허덕여온 여자는 희망 그 자체를 겁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54쪽)

 

5권부터 이야기 배경이 하동 평사리에서 간도 용정으로 바뀌면서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도 들고 남이 있다. 평사리에 남아있는 사람 (조준구 가족), 서희 일행으로 함께 용정으로 이주한 사람 (길상, 용이, 임이네, 월선, 김훈장), 이전부터 용정에 살고 있던 사람 (공노인, 옥이네, 심금녀 등) 이 등장한다.

평사리에서 소작을 부쳐 부와 권세를 유지하던 최참판가였다면 용정으로 와서 서희는 공노인의 조언과 길상의 도움으로 새로이 장사에 뛰어든다. 서희 자신이 살 거처를 새 터전에 새로 짓고 논을 부치는 대신 가게들을 지어 적당한 자들에게 장사를 하게 한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상가임대업이랄까. 어찌 양반가의 혈통으로서 장사로 치부할수 있냐며 김훈장은 노하지만 서희의 목표는 무슨 일을 해서든 다시 일어서서 고향에 돌아가 최참판가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 것이라는게 5권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혼기에 이른 서희는 아버지 최치수와 친구 사이였던 이동진의 아들 상현이 서희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의 구애는 의남매 사이를 맺자는 요청으로 돌려버리고 대신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자신의 목표를 향한 삶에 동반자로서 적격자라고 생각, 길상에게 먼저 결혼하자고 제안한다. 오히려 길상은 과수댁 옥이네에 마음을 품고 있던 차, 윤씨부인의 은혜를 떠올리고 오로지 자기 의지대로 자기 앞날을 결정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혼자 답답해하며 울분을 터뜨린다.

5권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중 한 사람 심금녀. 무책임한 아버지때문에 야비한 김두수에 팔렸다가 도망쳤지만 사랑했던 윤이병에게서도 배신을 당하고 인질로 잡히기도 하는 고난의 여정을 걷는 처자이다. 맨 위 인용문장은 그 금녀를 묘사한 부분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반복되는 삶을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이다. 작가는 과연 앞으로 금녀의 앞날을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다. 희망 자체에 겁을 먹는 지경까지 그녀가 걸어왔을 삶이 상상만으로도 애처롭다. 

토지의 중심 인물은 꼭 서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가 뚜렷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확고한 그녀의 캐릭터는 단순히 착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라는 단순하고 일률적인 잣대로 분류할 수 없을 것 같다. 본보기가 될만하고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가진 인물을 소설의 중심 인물로 내세우기 보다는 기존의 다른 소설에서 보여지지 않는 독특하고 뚜렷한 성격의 인물을 내세우고 싶은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래서 서희라는 인물은 토지의 대표 인물이지 꼭 중심 인물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작가의 애정이 토지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서도 골고루 느껴지지 서희에게서 특별히 더 느껴지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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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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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곳을 꿋꿋하게 지키며 평생을 사는 일은 현실에서도 드물다. 하물며 소설에서야.

이 당시 상황은 조준구가 김훈장에게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 조선과 만주에서 일본세력이 확장된다.

조준구가 일진회회원들과의 대화 중에 민영환, 이용익, 최익현, 김옥균, 손병희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친일, 수구, 동학을 아우르는 시대상황을 작가는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마음속으로 서희를 좋아하는 조준구의 아들 병수. 자신의 신체적 조건, 자기 가족에 대한 떳떳지 못한 감정으로 병수는 자기 주제에 서희를 좋아하는 것 조차 수치스런 짓이라고 애써 억누른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병수는 생각이 많은 인간. 부모를 닮지 않는 자식도 있을수 있구나 싶다.

"생각할수록 모르겠어. (...) 날마나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그게 세월이란 말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늙어가고 죽고 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걸까? 세월, 시간, 그게 뭐길래?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또 지고 사람이 죽고 아이가 태어나고, 알수 없군. (...) 세월은 바람일까? 바람이 사람들을,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어디로 자꾸 몰고 가는걸까?" (171쪽)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이런 생각에 빠지기 좋아하는 병수. 다분히 시인이나 철학자의 소양이 있어보이지 않는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중 유일하게 순수한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여기엔 어려서부터 어머니 홍씨로부터의 정신적 학대가 큰 몫을 했다고 보면 슬픈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특별히 조준구와 홍씨 사이에 이런 성향을 가진 자식을 설정하여 넣은 작가의 심중을 헤아려보고 앞으로 병수가 어떤 길을 가게 될것인지 궁금해졌다.

부모, 할미 모두 곁을 떠난 서희를 지켜주던 수동이도 죽자 서희는 슬퍼하는 대신 집안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모조리, 다아 잡아가라지. 하지만 나는 안될걸. 우리집은 망하지 않아. 여긴 최씨, 최참판 댁이야! 홍가 것도 조가 것도 아냐! 아니란 말이야! 만의 일이라도 그리 된다면 봉순아? 땅이든 집이든 다 물속에 처넣어버릴테야. 알겠니?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내 원한으로 불살라서 죽여버릴테야.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찢어 죽이고 말리어 죽일테야. 내가 받은 수모를 하난들 잊을줄 아느냐?"(152쪽)

할머니 윤씨부인의 카리스마와는 다른 급의 카리스마이다. TV드라마에서도 찢어 죽이고 말리어 죽일거라는 저 대사 그대로였다.

나라 정세가 을사보호조약까지 맺어지는 지경에 이르자 마을에서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분개한 김훈장은 가만 있을 수 없다며 마을을 떠나 일을 도모해보려 하지만 별 성과없이 돌아오고, 마을 분위기가 흉흉해진 가운데 용이는 월선에게 전에 한동안 살다왔다던 간도는 어떤 곳이더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작가는 이렇게 복선을 깔고 있다.

조준구가 최참판네를 차지하고 앉아 마을 소작인들에게 과도한 수곡을 요구하고  나라 정세마저 날이 갈수록 불안하니 평사리 사람들의 마음은 동요한다. 윤보와 용이를 포함한 마을 장정들은 마침내 날잡아 모여서 최참판 집을 습격하지만 삼수의 배신으로 이 정보를 듣고 미리 몸을 숨긴 조준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 의병활동에 가담하러 갔다가 이제 앞으로 평사리에 붙어 살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몰래 평사리로 돌아와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중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간도로 떠난다. 여기에 서희와 길상은 동행했고 봉순이는 동행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평생 사는 동안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은 피해가기 어렵다. 아니, 피해갈 것이 아니라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할 과정인 듯 보인다. 이렇게 집단으로 떠나는 일은 좀 더 특수한 경우라고 하겠다.

1권이 1897년 한가위날에서 시작했고 4권까지 내용은 1897년에서 1908년까지, 평사리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이제 5권부터는 간도가 배경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바뀌니 그동안의 경상도 지역말보다 더 난해한 지역말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기 뉘기요? 하동집으 길상이 앙입매 간방으 혼짝 났지비?" (31쪽) 이런 말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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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1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독서 시간을 가지고 여름을 보내시는군요. 저도 예전엔 이어지는 책을 쭉~ 읽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긴 건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게 됩니다.
소설 5부작 중 <일말의 희망>을 살까, 말까 하고 있답니다. 문장이 좋아요.
한 작가의 다섯 권 책이라는 게 유혹적입니다. 3권까지 나왔어요.

˝찢어 죽이고 말리어 죽일테야˝ - 이거 꽤 유명한 대사지요. ㅋ

hnine 2018-08-14 04:38   좋아요 1 | URL
저도 끈기가 없어서 3권짜리도 잘 못 읽는데 이번에는 무슨 맘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아직은 끈기까지 동원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모르지요 20권까지 있다닌까요.
일말의 희망은 요즘 여기 저기 눈에 많이 띄더군요. 저도 관심 두고 있는 책인데 너무 아프고 절절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몸 사리고 있는, 아니 맘 사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나이 먹을수록 더 멘탈이 약해지나봐요.
원제가 Some hope이던데 원제를 우리말로 절묘하게 잘 번역했구나 생각이 우선 들어요.

[그장소] 2018-08-1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꽤 여행길이 길고 고단할텐데... 화이팅입니다~^^

hnine 2018-08-14 04:39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했어요.
여행이 긴건 괜찮은데 고단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장소님은 이미 다녀오신 여행이지요? ^^

[그장소] 2018-08-19 01:43   좋아요 0 | URL
여름이 혹독해 지금 서울 친정집에 피서(?) 왔어요. ㅎㅎㅎ 날마다 일하느라 책 잡을 시간이 없네요. hnine님은 여름 잘 보내셨나요?
 
토지 3 - 1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3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독수리였을까 작은 늑대였을까, 어여쁜 꽃, 구슬 같은 차갑고 맑은 빛, 서희는 그런 온갖 것을 벌써부터 지니고 있는 듯 싶었다 (106쪽)

 

저런 이미지의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이제 열한 살이 된 서희를 묘사한 부분이다.

아들 최치수를 교살한 범인을 밝혀낸 것은 윤씨부인이었다. 윤씨부인의 심문에 말려들어가 덜미를 잡힌 김평산은 관청으로 끌려가 처형되고, 살인을 도운 혐의로 칠성 역시 처형된다. 다만 배속의 아기를 생각해서 귀녀는 해산까지 투옥되었다가 아들을 낳은 후 죽는다.

남편 칠성이 처형된후 아이 둘을 데리고 홀연히 평산리를 떠났던 임이네가 3권에서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월선과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으로 애달아하는 용이는 엉뚱하게 임이네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호열자 (콜레라)가 온마을을 쓸어 김서방을 시작으로 윤씨부인, 봉순네, 강청댁을 포함해 마을을 초토화 시키고, 열한살 서희는 최참판가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겨진다. 부인과 아들까지 데리고 최참판가에 와있던 조준구는 이 기회에 최참판 집안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려서 부모의 정을 제대로 못받고 자란 것도 모자라 집안의 기둥이던 할머니까지 잃은 서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 수동, 길상, 봉순이 그나마 서희를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세사람의 공동전선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들은 매일매일 적진속에서 서희를 지키듯 긴장해 있었으며 표정은 삭막하였고 도사리는 맹수의 자세 같은 투지에 차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세사람사이에 다른 어떤 누구도 끼워주려 하지 않았다. (...) 최참판 댁 안의 별당은 한개의 성이며 봉순이는 전령병이요 수동이와 길상은 결사대 같은 것이었다. (367쪽)

 

업친데 겹친격 쌀농사에 보리농사까지 흉년이 들어 평사리에는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겨나자 인심은 흉흉해진다.

'세상에 별놈의 죽음이 다 있지마는 굶어 죽는 것 같이 애참할까.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사꾼이 더 많이 굶어죽는다. 와 그러꼬? 풀 한 페기 뽑아본일이 없는 놈들이사 어디 굶어 죽던가? 와 그러꼬?' (387쪽)

굶주림에 시달리다 부인은 먼저 숨이 끊어졌고, 그것을 모르는 서서방은 자신도 역시 곧 마지막 순간을 맞을 것을 알면서도 말은 안나오고 다만 부인을 보살펴달라는 듯 손으로 부인을 가리켜보이는 것을 옆에서 목수 윤보가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야 할때 작가는 지문 처리보다는 마을 사람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를 주로 이용하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그 대화도 어찌나 자연스럽고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지. 주변인물이 빨래하면서, 밥 지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배를 기다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대사 한줄도 작가는 많이 고심하며 썼겠구나 생각하며 읽는다.

책을 읽으며 내용뿐 아니라 이런 생각까지 하며 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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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명의 집 - 북유럽 스타일 리빙 전문가들의 작은 집 인테리어 123명의 집
악투스 지음 / 나무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일본에 '악투스(Actus)'라는 이름의 가구 회사가 있나보다. 주로 북유럽 가구를 수입, 판매하는 회사라는데, 이 회사에서 사원들 123명의 집을 촬영하여 만든 책이다.

123명의 집과 함께 그 집에서 눈의 띄거나 특색있는 소품, 가구 등이 한 집당 20컷 이하의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한 집당 많은 지면이 할당되어 있지 않지만 100명이 넘다 보니 책은 꽤 두툼하다. 즉, 들고 다니며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처음엔 사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12개 질문에 대한 답을 읽는 것이 더 흥미로왔다. 12항목의 질문이란 다음과 같다.

1. 집의 타이틀을 정한다면?

2. 인테리어 테마는?

3. 이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4. 방을 잘 정돈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언 한마디

5. 집에 절대 두고 싶지 않은 것은?

6. 수집하는 것이 있는가?

7.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하는 결정적인 아이템이 있다면?

8. 인테리어 센스를 연마하려면?

9. 나에게 이상적인 집이란?

10. 좌우명은?

11. 좋은 가구란 어떤 가구인가?

12. 마지막으로 인테리어란?

의식주 중 그 사람의 철학이 제일 잘 드러나는 것이 그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가 평소 생각해왔다.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의 집도 똑같은 집은 없다. 규격화된 아파트라 할지라도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아마 위의 열두가지 질문 중에 좌우명을 묻는 질문이 들어가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평범한 질문에 비해 인상적인 답변이 많았다.

 

집에 절대 두고 싶지 않은 것은 이란 질문에 대해서는,

-긴장감

-만화책 (읽느라고 잠을 못자니까)

-좋아하지 않는 물건

-TV, 침대

-화려한 꽃

-어중간한 것

-팬시상품

-신발이 집안에 널려 있는 것

등등. 집 주인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가?

 

좌우명은 더하다.

-지속은 힘이다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 (Don't think, feel.)

-각본은 내가 쓴다

-어떻게든 되겠지!

-도전하지 않고서 후회하지 말라

-너무 애쓰지 않는 만큼만 애쓰자

-장난기를 발휘하자

-뭐든 좋지만 어찌 되든 좋은 건 아니다

 

집에는 그 사람의 사고 방식, 좋고 싫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니, 그래야하고 그것이 진정한 내 집, 내 공간일텐데 주위에 둘러보면 너무나 획일화된 공간에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집을 꾸미는 소품보다는 그 시대 필수적인 가전제품, 거실 소파 뒤의 커다란 가족 사진, TV 위치까지 집집마다 똑같다. 거실의 서재화, 무분별한 한옥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사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집,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지 않는 집이 대부분인 현실. 새것이 좋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한 것이 좋은게 아닌지.

 

옆에 두고 심심할때마다 들취보기 좋은 책, 잠 잘때 누워서 들취보다 잠들기 좋은 책이 한권 더 늘었다.

내 집을 한번 둘러본다. 인테리어에 앞서 청소부터 좀 해야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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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8-08-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청소 끝냈어요~ 인테리어는 자신 없어요 -.-

hnine 2018-08-05 22:50   좋아요 0 | URL
내 맘대로 하면 그게 인테리어인것 같아요. 남의 맘대로 하지 않고, 남이 한대로 따라하지 않고요. 그런데 그게 그리 만만치 않더군요. 내 맘대로 한다는 것에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없어하기때문에 그런가봐요.
청소만 끝내도 그게 어디예요. 저는 매일 미뤄요 ㅠㅠ

유부만두 2018-08-0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청소....;;;;;

hnine 2018-08-05 22:51   좋아요 0 | URL
청소가 모든 인테리어의 기본이자 출발이라잖아요. 저는 알면서, 보면서, 모르는척 못본척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