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 민속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규격화되지 않은 돌로 아무렇게나 쌓은 듯한 담.

왜 쌓았을까 싶을 정도로 낮기까지 해서 집 안이 다 건너다 보이고, 마을 어디나 있는 감나무는 마을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옛날엔 정말 저렇게 살았을까. 그렇다면 지금보다 불편은 했겠지만 마음은 지금보다 덜 어지러운 생활이 아니었을까.

아닌가? 사람 사는 곳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나 마찬가지일까?

걸으며 혼자 생각이었습니다.

연꽃밭의 연 줄기가 말라비틀어져 꽃 피울때 없던 선과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맨 위의 사진은 외암 민속 마을 가기 전에 차 안에서 내다보고 찍은 아산의 어느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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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1-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즈넉한 풍경이 맘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네요^^

hnine 2019-11-04 20:04   좋아요 0 | URL
제 남편 말에 의하면 어릴 때 외갓집 갔을때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논도 있고 밭도 있고, 허수아비도 있고, 양반집도 있고 서민의 초가도 있어서 한 마을을 구경다니는 것 같았고 체험 스테이도 하더라고요.

찔레꽃 2019-11-2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 찍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hnine 2019-11-22 13:15   좋아요 0 | URL
아이쿠, 아닙니다. 사진 찍는 걸 즐기기는 한데 보통 수준만 되어도 좋겠습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감사드려요 ^^
 

 

댄싱 하우스 (Tancici dum)

 

 

 

프라하 가면 꼭 가보리라 생각했던 건축물중 하나, 『Dancing House

Karlovo Namesti  ('Namesti'는 '역'이라는 뜻) 에서 내려 구글맵 따라가다보니 춤추는 건물이 저만치 보인다.

 

"저기다!"

 

 

 

 

 

 

 

 

 

 

 

 

 

 

 

 

 

 

 

왜 이름이 댄싱 하우스인지 보면 대번 알 수 있다.

대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는 이 8층 건물은 프랑크 게리 (Frank Gehry)와 블라도 밀루니츠 (Vlado Milunic) 의 합작품이다.

해체주의 (Deconstructivism)의 거장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랑크 게리는 1929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여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Harvard University  등에서 수학한 사람. 건축계의 반항아로 불리기도 하지만 유명한 건축가 중에는 모범생보다는 반항아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듯 하니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Dancing House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곡선의 건축물로 유명하여 그가 설계한 건축은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 스페인의 별볼일 없던 도시 빌바오를 유명하게 만든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의 작품 중 하나이다.

 

 

 

Frank O. Gehry - Parc des Ateliers (cropped).jpg

 

(사진 출처 : Wikipedia)

 

 

 

(사진 출처: Wikipedia)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지어진 Dancing House는 춤을 추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데, 이 두 남녀의 이름을 딴 Ginger and Fred는 현재 이 건물 7층에 있는 식당 이름이기도 하다.

 

 

 

 

외관을 보고나니 안으로도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다른 층은 사무실과 호텔로 이용되고 있고 방문객에게 공개되어 있는 곳은 7층과 8층의 식당과 바.

과감히 7층 식당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유리로 지어진 곳 답게 어디가 실제 공간이고 어디가 거울에 비친 공간인지 혼동이 온다.

 

 

 

 

 

 

 

 

 

 

 

 

 

 

 

이 현대적인 건물에서, 창 너머로는 프라하의 오래된 성이 보이고.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 극심한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외형의 독특함을 위해 생겨나는 기능 없는 공간과 구조가 너무 많다는 것, 주위 건축물이나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튄다는 것, 비싼 재료 들여서 효능 떨어지는 건축물을 만듦음로써 대중의 요구나 이익과 동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 등이다. 이것은 이 건물 뿐 아니라 그의 건축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프라하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랬듯이) 한번 가보고 싶은 건축물 중 하나일뿐 아니라 체코 동전에도 등장한 적이 있을 정도로 체코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명소가 되어 있다.

 

고정 관념을 벗어난다는 것은 모든 창작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확인하면서, 고정 관념과 편견을 떨치고 나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더 자유로움을 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차라리 고정관념과 편견 속에서 사는 것이 더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다. 대부분의 범상한 사람들은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하고. 물론 나도 여기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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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11-0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과연 잘 될까?˝ 하고 의문을 품는 순간, 새로움은 사라지고 만다는 말이 생각나는구요.
프라하에서도 아주 특이한 건물을 찾아가신 hnine 님 덕분에 ‘새로움‘이 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hnine 2019-11-05 21:14   좋아요 1 | URL
창의적인 생각을 잘 하지도 못하지만 어쩌다가 남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때 그나마 처음 하는 생각이 ˝이게 과연 잘 될까˝ 인것 같아요 ㅠㅠ
오래된 건축물 사이에 있는 현대 건축물들은 더 눈에 띄고 의외로 잘 어우러져 있어서 감탄하게 되더군요. 런던에서도 그랬고요. 그런 곳들이 런던이나 프라하 말고도 많겠죠? 더 많이 다녀보고 싶어요.

뒷북소녀 2019-11-0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깥에서만 보고 안에는 안 들어갔었는데, 내부는 바깥만큼 특징적이지는 않은 것 같네요.^^

hnine 2019-11-05 21:18   좋아요 0 | URL
뒷북소녀님도 가보셨군요!!
내부도 7층에만 가보고 8층에는 올라가서 구경만 하고 내려와 잘 모르겠지만 7층 내부도 꽤 특이했어요. 앉은 자리에서 둘러보니 어디가 그 층의 경계인지 헷갈리더라고요. 내부가 온통 하얀색이고 천장의 조명도 기울어져 있는 것 같고요.
호텔로도 이용되고 있는데 언젠가 한번 호텔에도 투숙해보면 알겠지요 방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나가기 시작하니까 자주 나가게 된다.

10월 22일 계획없이 나선 설악산 (사진 1, 2) 을 시작으로, 지난 주말 10월 26일엔 하루에 계룡산 동학사 (사진 3, 4) 거쳐 공주 태화산 마곡사 (사진 5, 6, 7, 8, 9) 까지.

시간도 많았고, 마음에 빈 공간 커질새라 눈으로라도 뭔가를 꽉 꽉 채우고 싶었나보다.

 

설악산은 워낙 거리가 있는지라 왕복 8시간 걸려 가서 구경은 3시간 하고 왔다.

그래도 좋았는걸 어쩌랴. 단풍은 반 정도 밖에 안들었지만 단풍은 보너스일뿐 설악이란 산 자체가 주는 위엄있는 아름다움이란. 자주 가는 계룡산과는 규모와 느낌이 달랐다. 바위산이고 가파른 절벽이 많아 더 험하고 위엄있어보이는 설악산.

설악산까지 가는 동안 거친 터널 수가 자그마치 42개. 그중 길이가 11km나 되는 터널이 있었으니, '인제 양양 터널'이다. 워낙 긴 터널이다보니 혹시 졸음 운전할까봐 중간중간 효과음까지 나온다. 번쩍 번쩍 빛도 나오고.

 

 

집에서 가장 가까워서 아무때나 갈 수 있는 절 계룡산 동학사는 설악산보다도 단풍이 덜 들어 있었다.

동학사는 규모면으로 아주 큰 절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절이라기 보다 마당있는 집 뜰을 거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마당있는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이 누구라도 들 것 같다 (사진 4).

 

태화산 마곡사는 이에 비하면 오래 되고 큰 절이다.

대웅보전과 대적광전이 뒤쪽에 있고 그 앞에 있는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영산전이라는 판액 (사진 7) 은 조선 세조가 이곳에 왔을 때 썼다고 전해진다. 영산전의 영산이란 영취산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베풀던 곳을 말한다. 그래서 영산전 안에 보면 일곱분의 여래불상과 천분의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다 (사진 8). 영산전 천장을 올려다보니, 구부러진 보와 천장 그림이 우리 나라 오래된 건축물 답다.

특이한 형태의 굴뚝 (사진 6), 굴뚝을 타고 올라간 단풍, 사진 9에서 나란히 세워놓은 나무 기둥 같은 것의 정체는 저 건물 2층에 올라갈때 필요해서 만들어놓은 이동식 계단인 것을 알고 얼마나 웃었는지.

 

 

 

10월 한달 잘 돌아다녔다.

(10월 20일에 갔던 정읍 구절초 축제는 쓰지도 않았다.)

 

 

 

 

 

 

사진 1 ↓

 

 

 

 

 

 

 

사진 2 ↓

 

 

 

 

 

 

사진 3 ↓

 

 

 

 

 

 

사진 4 ↓

 

 

 

 

 

 

사진 5 ↓

 

 

 

 

 

 

사진 6 ↓

 

 

 

 

사진 7 ↓

 

 

 

 

사진 8 ↓

 

 

 

 

 

 

 

사진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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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9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9 0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처한 미술 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 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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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제목 아래 작게 써 있는 저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이미 도서관 서고에서 이 책을 꺼내고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양정무 교수가 1권부터 쓰고 있는 이 시리즈는 현재 5권까지 나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옆에 나란히 꽂혀있는1,2,3,4권 다 제치고 5권 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들어본 내용이 그나마 제일 많을 것 같아서였다.

5권의 내용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이다. 생소한 내용은 아니지만 워낙 방대하고, 역사, 문화, 문학, 미술, 건축 등의 분야에 걸쳐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웬만큼 알아서는 안다고 할 수 없는, 항상 자신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1347년 흑사병이라는 치명적인 대재앙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계기로 꼽고 있다. 인구의 반이 줄어들 정도의 재앙을 겪어내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전의 마인드로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흑사병에 걸린 어떤 사람은 모든 재산을 파리한테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주변에 남아 있는 존재가 파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런 식의 냉소주의도 흑사병과 함께 빠르게 번져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역사가 발전해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밝아오는 게 아니라 엄청난 대재앙이 벌어지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바로 르네상스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157쪽)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새로 태어나는 것들이 역사의 한 장을 이루었다. 극복이라는 말 속엔 얼마나 큰 잠재력이 숨어 있는 것인지.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는 부활, 재탄생을 뜻한다고 알고 있는데 무엇으로부터의 부활을 말하는 것인가.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미쉘리가 처음 사용했는데, 고대의 화려한 문명이 중세 때에 멈췄다가 근대가 시작되면서 부활한다고 생각해 이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르네상스는 고대 문명의 부활이다.

이탈리아가 지금처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은 19세기 들어서이고 (이탈리아 통일은 1871년) 그전엔 수십개의 도시국가의 모임이었다. 즉, 시에나, 베로나, 피사,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만토바 등이 모두 개개의 도시 국가들이었는데 이중에서 특히 르네상스의 본고장이 된 피렌체는 11세기부터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하여왔고 다른 도시국가들과 다르게 길드를 중심으로 공화정을 오래 유지하여왔다는 배경을 안고 있었다.  작은 도시국가들이 여럿 붙어있다보니 서로 경쟁적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피렌체가 새로 성당을 짓는다면 피렌체 출신 혹은 다른 나라에서 유명한 화가나 건축가를 스카웃해서라도 라이벌 국가인 시에나, 피사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짓게 하는 식이다. 이때 맹활약을 했던 화가로서 조토가 있다. 화가로서의 명성 뿐 아니라 건축, 토목 기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인재였다. 그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축물이 있는데 바로 피렌체의 대표적 건축인 피렌체 대성당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 두오모 성당)을 상징하는 거대한 돔 지붕 옆의 높은 종탑, '조토의 종탑'이다. 이렇게 따로 이름을 갖고 있는데에는 처음 설계자인 아르놀프 디 캄비오가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나중에 합류한 조토가 상당 부분 다시 설계하여 본 건축물인 대성당보다 일찍 완공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능있으면서 성실하기 까지 한 사람을 어찌 따르랴.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을 1300년 (조토, 단테의 시대) 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고, 1400년으로 잡는 연구자도 있는데 저자를 비롯해서1400년대, 즉 15세기를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보는 데는 역사를 바꾼 큰 두 사건때문이라고 하였다. 첫번째 사건은 피렌체 대성당 위에 거대한 돔을 올린 것과 두번째 원근법의 등장이다. 이 두 사건 모두 1400년대, 피렌체에서,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로 브루넬레스키이다. 이 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건축 시공 쪽에 기초지식 없이도 이해가 될 수 있게 이 책에는 피렌체 대성당 돔을 건축하였다는 것이 왜 그렇게 큰 사건인지 친절하고 쉽게 잘 설명해놓았다. 직경만 45m된다는 돔을 내부 버팀목 없이 지을 수 있던 시크릿이다. 원근법은 그것으로 인하여 이전과 이후의 그림의 차원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놓았는데 원근법을 이용하여 그리면 실물과 가장 가까울 것 같지만 그건 입체감을 살리는데 최선의 방법이지 실물과 가장 근접한 기법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선 원근법에 이어 대기 원근법을 고안해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피렌체에 가면 어디서나 보이는 피렌체 대성당을 보는 방법으로서 저자가 적극 추천하는 두 코스, '비아 데이 세르비'와 '비아 데이 칼차이우올리'는 메모해놓았다가 꼭 걸어보고 싶다.

르네상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데 이 책도 르네상스 이전 12, 13세기 역사와 지리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되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것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책 속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개하는 방식을 보고 이 책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을 바로 언급하는 대신 조수와 스승이 함께 협업했다는 그림을 한 장 보여주면서 그림에 있는 한 천사는 조수가, 다른 한 천사는 스승이 그렸으니 독자에게 한번 잘 들여다보고 비교해보라고 한다. 두 천사를 그린 실력차가 여실하다. 여기서 물론 조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고 스승은 베로키오이다. 베로키오는 이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신이 조수를 결코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전무 후무한, 특별한 사람이게 했는가를 설명하면서 모나리자 그림의 생동감의 원천이 단순히 기술적인 뛰어남이 아니라 해부학에서 나옴을 보여주었다. 글로만 설명하는 대신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얼굴 해부도와 모나리자 그림을 직접 대조해가며 독자가 실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두툼한 이 책을 지루한지 모르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바로 이런 노력때문이 아닌가 한다.

피렌체에서 주로 활동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밀라노로 옮겨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후 말년은 왜 생뚱맞게 프랑스에서 보내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이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16세기가 되면 르네상스는 이제 이탈리아만의 이야기가 아닌 유럽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는 말로 5권의 끝이자 다음 권의 시작이 알리며 맺는다.

 

꼭 그러고 싶은 소망대로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를 방문하게 된다면 이 책을 반드시 다시 읽고 공부하고 가리라.

모르고 가서 보는 유명한 그림과 건축은 보면서 멋있다고 감탄이야 하겠지만 진짜 재미는 못 느낄 것 같아서이다. 이왕이면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도 소장하고 싶고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미술을 만나면 세상은 이야기가 된다. (4쪽)

 

 

 

 

 


 

 

▼ 가지고 있는 책 중 아래 두 권을 참조하면서 보았다. 

오래 전에 봐서 다 잊어 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책을 보다가 어디서 본 것 같아 들춰 보면 신기하게 예전에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1. 천년의 그림 여행 (스테파노 추피, 2005 예경)

2. 시대의 우울 (최영미, 창작과 비평사 1997)

 

 

 

         시대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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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11-0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1권 읽다가 포기한 책인데... 왠지 다시 꺼내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hnine 2019-11-05 21:3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럴까봐 일부러 5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무리없었어요. 일단 아는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요.
뒷북소녀님도 1권 좀 미루시고 다른 권부터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지금 저는 2권 읽고 있답니다 ^^
 
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솔 벨로에 대해 어떤 말로 시작해야 아, 그 작가구나 하고 금방 떠올릴까. 197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라는 것이 아마도 그의 생애 중 가장 큰 경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1915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열살이 되기 전 미국으로 이주해온 유대계 출신이다. 20대 대학생 시절 부터 작가로서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26세때 첫 단편을 발표하였고 그 이후로 단편, 장편 소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38세때 잘 알려진 그의 장편 소설 <오기 마치의 모험>을 출간하여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였고 (1953년) 41세때 이 소설 <오늘을 잡아라>를 출간하였다 (1956년). 197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오늘을 잡아라>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우리 시대 고전 중 하나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영어로 'Seize the day' 가 이 책의 원제이다. 

주인공 토미 윌헬름은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남자.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지만 직업을 잃고 아내로부터도 버림받아 호텔에 거주하고 있다. 젊었을 한때 배우가 되기 위해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할리우드 행을 하기도 했던 윌헬름은 그때 자기의 이름도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토미 윌헬름이라고 바꿔버린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는 배우로서 데뷰하지 못한다.


"자네에게는 조지 래프트나 윌리엄 파월 같은 타입한테 여자를 빼앗기는 역할이 딱 맞아. 너무 착실하고 성실해서 여자들한테 차이는 거지. 나이 든 여자들은 잘 알 걸세. 아줌마들이 다 자네 편이라고. 그들은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자기들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당장에 자네를 선택할 거야. 자네가 정이 많다는 건 젊은 여자들도 느낌으로 알 걸세. 자네는 좋은 가장이 될 타입이야. 하지만 여자들은 다른 타입을 더 좋아한단 말이지." (39쪽)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담당자가 그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고, 윌헬름의 인상과 외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평가에 무척 실망한 윌헬름은 결국 배우의 꿈을 접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지만 대학으로 복학도 못했고, 다니던 직장에서마저 버림받아 경제력을 잃게 되었으며 아내로부터 쫓겨나 집도 없어지자 해결책을 찾기 까지 호텔에 머물게 된 것이다.

이 호텔에는 역시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주인공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가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버지하고도 갈등만 많을 뿐 사이가 좋지 못하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의 노후 영위를 제일 중요한 일로 여기는 사람이라서 경제적인 도움을 구하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윌헬름은 마지막 가진 돈을 털어 주식에 투자하게 되고 초조하게 주식이 오르기를 기대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주식 투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윌헬름을 그렇게 이끈 사람은 같은 호텔에 거주하며 의사라고 하지만 진짜 의사 맞는지 의심받을만한 탬킨 박사. 주식 뿐 아니라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윌헬름을 가르치려드는 현실교사 (reality instructor)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사실 이 작품 속에서 끝까지 제일 파악이 안되는 인물은 주인공 윌헬름보다도 이 탬킨 박사라는 사람이다. 그와 윌헬름과의 대화는 이 책에서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데 특히 책의100쪽을 넘어가서 4장 내내 이어지는 탬킨 박사의 헛소리 같기도 하고 진심을 담은 소리 같기도 한 말은 작품 속 윌헬름이 그랬듯이 책을 읽는 사람 역시 내가 왜 이런 헛소리를 계속 이해하려고 애쓰며 읽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결국은 윌헬름에게 빌린 투자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탬킨의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확고하지 못하고 현실을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윌헬름은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탬킨 박사가 그 대상이었고 아버지 역시 그런 대상이었다. 그는 실패와 위축의 감정과 평행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허영심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허영심을 채워줄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현실의 자기는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운 짐일 뿐이다. 생존 경쟁에서 존재를 찾기 어려운 자아 그 자체가 그에게 인생의 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자아가 인생의 짐이 될때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아버지가 탬킨 박사를 조심하라고 계속 충고했고 주식 투자가 실패의 길로 치닫고 있음이 본인 눈으로도 확인이 되는 단계까지 이르러 그의 조바심은 극도에 달하여 탬킨 박사를 다그치는 내용이 나온다. 그 결과 과연 뭐가 달라지긴 할까 반신반의하며 읽어가는데, 어이없게도 윌헬름은 조바심으로 다그치는 것이 그가 한 일의 전부일뿐 끝까지 변명과 헛된 희망을 늘어놓는 탬킨 박사의 말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그는 바라는대로 믿고 싶어하는 안일함의 소유자인 것이다.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거대 도시, 그 도시가 돌아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이 곧 자기를 억압하는 상황. 이런 것들에 적응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가는데서 오는 실패감과 소외감. 작가 솔 벨로가 작품 속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주로 이런 인간형이라고 한다. 사회로부터의 소외감보다 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이었다. 작품 속에서 윌헬름은 아버지로부터, 아내로부터 소외당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그의 불행을 자초한 것은 자신의 허약함과 실패, 고통을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의지함으로써 잊어버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 해결되었다고 믿고 싶은 착각이고, 언젠가 다시 불거질 씨앗임에도 정면돌파하려는 용기와 주관을 포기하고 안일함을 택한 댓가이다. 이럴 때 탬킨 박사와 같은 존재가 주위에 얼마나 흔하게 존재하는가. 사깃군인지 조력자인지 끝까지 정체를 모르겠는 그런 존재 말이다.

이 작품 속에서만 해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보다, 주위에 맴돌고 있는 탬킨 박사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들의 말을 듣고 따라하는 것이 훨씬 쉽다.


"나는 사회적 영향들을 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멀리 떼어놓지. 특히 돈으로부터 말이야. 정신적 보상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114쪽)


위의 인용문은 현실 교사를 자처하고 탬킨이 윌헬름에게 하는 말이다. 현실 교사로서가 아니라 윌헬름에게 빌린 돈을 떼어먹으려고 하는 변명임을 윌헬름은 간파하지 못한다. 아니 간파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이유는, 그러면 그 다음 과정이 머리아파지기 때문이고 혼자 미래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변명임이 뻔함에도 저렇게 그럴듯한 문장으로 구사하는 탬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탬킨의 말대로 오늘을 잡는 방식일까. 오늘을 잃어버리고 헛되이 하는 방식 아니고?

모든 것이 끝난 뒤 윌헬름이 현실, 현재를 목도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장례식, 그것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관 속의 시신을 보고 난 후이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몰랐다. 그가 왜 그렇게 오열하는지.


작가 솔 벨로의 일대기를 보면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 즉 소외되고 고통받는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작가의 생애에서는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는다. 유태인이라는 것 정도? 물론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그의 전기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일단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 중 한명이고 발표한 작품의 수가 많고 장르가 다양한 이상 그에 대해 더 뭔가를 말할 수 있으려면 더 넓고 깊게 그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2005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까지 다섯번의 결혼을 했다는 경력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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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10-2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대인이 쓴 어떤 책을 읽어보니까 미국 문학계에서 솔 벨로우, 필립 로스, 노먼 메일러 등 유대인 작가들은 유대인 자본가, 출판사에 의하여 과대포장 되어 있으며 그건 유대인에 의한 문학권력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더라고요.
전 <오기 마치의 모험>이 왜 그다지 각광을 받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게 내용이 동양인에게 낯선 것인지 번역과정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오늘을 잡아라>와 다른 작품들은 상당히 좋게 읽었습니다만.
절판된 작품의 멋있는 리뷰를 읽게되어 길 가다 만원 주운 느낌입니다.

hnine 2019-10-25 06:56   좋아요 1 | URL
유태인의 연대의식이란 어느 분야에서나 한 역할 하나봅니다. 유태인들 자신도 부정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요.
한 가지를 알고 나면 열가지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긴다더니,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 작품을 읽고 나면 더 읽고 싶은 책이 몇 권씩 불어나요. 이번 경우엔<오기 마치의 모험>과 <허조그> 가 그렇습니다. 즐거운 비명이지요.
다른분도 아니고 Falstaff님의 댓글 받고 나니 저는 복권 담청된 기분인걸요.

뒷북소녀 2019-11-0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저는 이 책을 이미 소장하고 있는데도...
이 책 절판 소식 듣고 안타깝더라구요. 곧 다른 출판사에서 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요...

hnine 2019-11-05 21:31   좋아요 0 | URL
충분히 계속 출간될만한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절판되었다는게 좀 이해가 안되었어요.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이고 워낙 빨리 변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만은 안그래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어요.
말씀하신대로 아마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긴 나오리라 믿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