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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 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8년 12월
평점 :
'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제목 아래 작게 써 있는 저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이미 도서관 서고에서 이 책을 꺼내고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양정무 교수가 1권부터 쓰고 있는 이 시리즈는 현재 5권까지 나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옆에 나란히 꽂혀있는1,2,3,4권 다 제치고 5권 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들어본 내용이 그나마 제일 많을 것 같아서였다.
5권의 내용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이다. 생소한 내용은 아니지만 워낙 방대하고, 역사, 문화, 문학, 미술, 건축 등의 분야에 걸쳐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웬만큼 알아서는 안다고 할 수 없는, 항상 자신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1347년 흑사병이라는 치명적인 대재앙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계기로 꼽고 있다. 인구의 반이 줄어들 정도의 재앙을 겪어내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전의 마인드로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흑사병에 걸린 어떤 사람은 모든 재산을 파리한테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주변에 남아 있는 존재가 파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런 식의 냉소주의도 흑사병과 함께 빠르게 번져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역사가 발전해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밝아오는 게 아니라 엄청난 대재앙이 벌어지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바로 르네상스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157쪽)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새로 태어나는 것들이 역사의 한 장을 이루었다. 극복이라는 말 속엔 얼마나 큰 잠재력이 숨어 있는 것인지.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는 부활, 재탄생을 뜻한다고 알고 있는데 무엇으로부터의 부활을 말하는 것인가.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미쉘리가 처음 사용했는데, 고대의 화려한 문명이 중세 때에 멈췄다가 근대가 시작되면서 부활한다고 생각해 이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르네상스는 고대 문명의 부활이다.
이탈리아가 지금처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은 19세기 들어서이고 (이탈리아 통일은 1871년) 그전엔 수십개의 도시국가의 모임이었다. 즉, 시에나, 베로나, 피사,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만토바 등이 모두 개개의 도시 국가들이었는데 이중에서 특히 르네상스의 본고장이 된 피렌체는 11세기부터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하여왔고 다른 도시국가들과 다르게 길드를 중심으로 공화정을 오래 유지하여왔다는 배경을 안고 있었다. 작은 도시국가들이 여럿 붙어있다보니 서로 경쟁적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피렌체가 새로 성당을 짓는다면 피렌체 출신 혹은 다른 나라에서 유명한 화가나 건축가를 스카웃해서라도 라이벌 국가인 시에나, 피사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짓게 하는 식이다. 이때 맹활약을 했던 화가로서 조토가 있다. 화가로서의 명성 뿐 아니라 건축, 토목 기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인재였다. 그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축물이 있는데 바로 피렌체의 대표적 건축인 피렌체 대성당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 두오모 성당)을 상징하는 거대한 돔 지붕 옆의 높은 종탑, '조토의 종탑'이다. 이렇게 따로 이름을 갖고 있는데에는 처음 설계자인 아르놀프 디 캄비오가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나중에 합류한 조토가 상당 부분 다시 설계하여 본 건축물인 대성당보다 일찍 완공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능있으면서 성실하기 까지 한 사람을 어찌 따르랴.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을 1300년 (조토, 단테의 시대) 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고, 1400년으로 잡는 연구자도 있는데 저자를 비롯해서1400년대, 즉 15세기를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보는 데는 역사를 바꾼 큰 두 사건때문이라고 하였다. 첫번째 사건은 피렌체 대성당 위에 거대한 돔을 올린 것과 두번째 원근법의 등장이다. 이 두 사건 모두 1400년대, 피렌체에서,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로 브루넬레스키이다. 이 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건축 시공 쪽에 기초지식 없이도 이해가 될 수 있게 이 책에는 피렌체 대성당 돔을 건축하였다는 것이 왜 그렇게 큰 사건인지 친절하고 쉽게 잘 설명해놓았다. 직경만 45m된다는 돔을 내부 버팀목 없이 지을 수 있던 시크릿이다. 원근법은 그것으로 인하여 이전과 이후의 그림의 차원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놓았는데 원근법을 이용하여 그리면 실물과 가장 가까울 것 같지만 그건 입체감을 살리는데 최선의 방법이지 실물과 가장 근접한 기법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선 원근법에 이어 대기 원근법을 고안해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피렌체에 가면 어디서나 보이는 피렌체 대성당을 보는 방법으로서 저자가 적극 추천하는 두 코스, '비아 데이 세르비'와 '비아 데이 칼차이우올리'는 메모해놓았다가 꼭 걸어보고 싶다.
르네상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데 이 책도 르네상스 이전 12, 13세기 역사와 지리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되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것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책 속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개하는 방식을 보고 이 책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을 바로 언급하는 대신 조수와 스승이 함께 협업했다는 그림을 한 장 보여주면서 그림에 있는 한 천사는 조수가, 다른 한 천사는 스승이 그렸으니 독자에게 한번 잘 들여다보고 비교해보라고 한다. 두 천사를 그린 실력차가 여실하다. 여기서 물론 조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고 스승은 베로키오이다. 베로키오는 이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신이 조수를 결코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전무 후무한, 특별한 사람이게 했는가를 설명하면서 모나리자 그림의 생동감의 원천이 단순히 기술적인 뛰어남이 아니라 해부학에서 나옴을 보여주었다. 글로만 설명하는 대신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얼굴 해부도와 모나리자 그림을 직접 대조해가며 독자가 실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두툼한 이 책을 지루한지 모르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바로 이런 노력때문이 아닌가 한다.
피렌체에서 주로 활동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밀라노로 옮겨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후 말년은 왜 생뚱맞게 프랑스에서 보내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이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16세기가 되면 르네상스는 이제 이탈리아만의 이야기가 아닌 유럽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는 말로 5권의 끝이자 다음 권의 시작이 알리며 맺는다.
꼭 그러고 싶은 소망대로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를 방문하게 된다면 이 책을 반드시 다시 읽고 공부하고 가리라.
모르고 가서 보는 유명한 그림과 건축은 보면서 멋있다고 감탄이야 하겠지만 진짜 재미는 못 느낄 것 같아서이다. 이왕이면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도 소장하고 싶고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미술을 만나면 세상은 이야기가 된다. (4쪽)
▼ 가지고 있는 책 중 아래 두 권을 참조하면서 보았다.
오래 전에 봐서 다 잊어 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책을 보다가 어디서 본 것 같아 들춰 보면 신기하게 예전에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1. 천년의 그림 여행 (스테파노 추피, 2005 예경)
2. 시대의 우울 (최영미, 창작과 비평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