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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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작가에게 주는 상, 맨부커상은 작품에 주는 상이다. 2018년 맨부커상, 2019년엔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뛰어난 정치소설에 주는 오웰상을 받은 작품 밀크맨. 1962년생 북아일랜드 작가 애나 번스의 세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 이전엔 그리 인정을 못받다가 밀크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그야말로 일약 세계적 작가 대열에 오른 그녀의 첫 장편소설 <노 본스>가 그랬듯이 <밀크맨>도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North Ireland). 영국을 United KIngdom 이라고 할땐 포함되지만 Great Britain 이라고 할땐 포함되지 않는 땅이 북아일랜드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저항과 투쟁 운동이 있어온 곳이기도 하다. 이 소설도 그런 투쟁이 예외없던 1970년대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목의 '밀크맨'은 우유배달부라는 뜻도 있고 소설 제목으로 쓰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이 작품 속에서 밀크맨은 북아일랜드 무장 독립 투쟁 조직의 주요 인사의 이름이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쪽엔 '수호파 (친영국파)', 다른 한 쪽엔 '반대파 (북아일랜드 분리 독립파)' 두 세력이 대립하며 살고 있는, 수시로 유형 무형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마을이 배경이다. 1인칭 서술의 화자로 나오는 열 여덟살 소녀는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그날도 다름 없이 아이반호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가 옆에 서면서 태워주겠으니 타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다. 편하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의 차를 덥석 탈 정도로 분별력 없는 주인공이 아니다. 거부하고 집에 돌아와 그 얘기를 가족에게 한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차에 타라고 제안했던 그 남자가 종종 예기치 않은 장소와 시간에 주인공 앞에 불쑥 나타나는 일이 일어났고, 그리고 마흔 한 살 그 남자와 주인공 사이에 불륜의 가능성에 대한 스캔들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불륜은 커녕 제대로 한번 만난 적도 없다는 주인공의 말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족도, 그녀의 엄마 조차도, 그녀의 남자친구도. 소문은 이미 사람들의 추측과 각본대로 정해져 있었고 그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려는 사람들의 눈초리만 있을 뿐이다. 이것에 대해 예민하게 굴면 오히려 사람들의 각본대로 진행되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보고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무심한 척 하려는 열 여덟살 소녀는 그저 평범한 열 여덟 살 소녀가 아니었다. 예민하고, 분별력도 있고, 똑똑하고, 하지만 자기를 드러내면 안되는 사회에서 잘 버텨내야 하는 삶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정치적 갈등, 종교적 갈등에 더해서 젠더 갈등까지 헤쳐나가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열 여덟살 여자 아이가 겪어가는 모습은 이쪽 저쪽 길 하나를 두고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집단이 공존해 나가야 하는 지금의 모습이기도 하며, 미투 운동으로 그나마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젠더 갈등의 폭로이기도 하다.

스토리 라인에 더불어 이 작품의 독특함과 출중함은 작가의 문체에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나'로 소개될뿐 한번 거론된 적 없고, 남자 친구의 이름도 '어쩌면-남자친구', 주인공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의 이름은 '아무개 아들 아무개', 이런 식으로 익명으로 나타내는데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본명보다 더 인물들의 정체성과 주인공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게 살아가는데 더 유리할지 모르는 사회 속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작가의 유머 코드가 소설 여기 저기 살아있다는 것은 기대않던 즐거움이기도 했다. 형제많은 집안의 가운데 서열이었던 주인공에게 아직 어린 동생들은 책 읽어달라는 부탁을 자주 하는데, 읽어달라고 들고온 책의 제목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인 것을 보고 동화책이 아니라 당황하는 주인공. 하지만 곧 알아차린다. 책 내용이나 대화에 관심있어서가 아니라 전래동화 같은 제목에 흥미를 느껴서 골라온 책임을. 그래서 읽어주는 중간 중간에 책 제목을 적당히 섞어서 자주 되풀이해주며 동생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는 주인공의 재치에 웃음이 나온다. 끝까지 그냥 남자친구가 아니라 '어쩌면' 남자친구였던 남자친구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대목, 밀크맨과 주인공 사이에 소문이 일기 시작할때 엄마의 반응, 그리고 나중에 엄마가 보여주는 반전. 블랙코미디 같은 요소가 작품 전체에 깔려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엇보다 눈여겨 보게 된 것은, 드러내지 않고 감추며 살아야 하는 인간, 그들의 사회를 묘사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묘미이다. 이쪽 저쪽 세력 사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내재되어 있는 동안의 보이지 않는 긴장과 공포는 실제 터지는 폭력은 아니지만 제2의 폭력이었고, 그런 사회에서 나의 본심과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며 사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의 잠재 의식, 내 본심이 어떠하든 겉으로 표현되는 것은 그저 평범 이상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은 요즘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다. 필요 이상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TMI 일뿐.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기 본심과 진실을 어디에, 어떻게 발산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사회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과연 그 사람의 진심과 얼마나 일치할까.

북아일랜드 문제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애나 번스는 흔한 주제를 흔하지 않은 방식, 그녀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이렇게 대화가 적고 나레이션 위주로 거의 500쪽까지 끌고 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주의를 끄는 작품도 흔하지 않다. 한 신문사의 서평대로 '대단한 성취'다.

 

작가를 흉내내서 나도 '어쩌면'을 붙여서 불러본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앞에 붙여보다가 (어쩌면-친구, 어쩌면-애인), 추상명사 앞에도 붙여서 불러 본다. 어쩌면-행복, 어쩌면-슬픔, 어쩌면-진실, 어쩌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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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2 -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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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양정무 교수의 미술이야기 다섯 권 중 순서를 무시하고 르네상스 시기 미술을 담고 있는 5권을 읽고 났는데 거기서 그칠 수가 없었다. 르네상스 미술이 그리스 로마 미술을 계승했으니 바로 그 시기의 미술에 대한 내용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2권을 택했다.

 

<난처한 미술이야기 2>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셜리가 한 말이다. 여기서 그리스는 셜리가 살던 동시대 그리스가 아닌, 수천 년도 거슬러 올라간 기원전 그리스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 문화는 어떻게 수천년을 뛰어넘어서까지 법, 문학, 종교, 예술 등 유럽의 정신과 물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등 고대 문명이 시작된 곳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이었고 기원전 그리스 지역은 문명 세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변방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그리스 문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 곳이 문명의 시작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스가 유럽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여 동방의 문명을 받아들이기 쉬웠다는, 지정학적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되었다. 그 증거가 되는 여러 조각과 건축물을 제시하여 이것이 저자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방의 문명이 미노아, 미케네 문명을 거쳐 그리스 문명으로 탄생한 것이 기원전 800년 무렵이다.

그리스는 어떤 식으로 서양 문명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미술에 대해 말해보자면 서양미술사는 그리스 미술을 재해석해 온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문명의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서양의 미술가들은 그리스 미술을 새롭게 해석해 나갔다. 예를 들어 15-16세기 유럽에는 르네상스라는 미술 흐름이 있었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부활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부활시킨다는 것인가. 바로 고전의 부활을 뜻하는데 그 '고전'이 바로 그리스 미술이다. (104쪽 요약)

 

고전을 되살리자는 주의는 이후에도 신고전주의로 나타나기도 했고 19세기, 20세기에도 고전주의는 늘 존재해왔다. 보통 서양 하면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오히려 미술을 보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보수가 확실해야 진보도 나오는 거라는 말은 새롭게 기억될 것 같다. 깰게 있어야 그걸 기준으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 미술은 시대구분상 기원전 776년 올림픽의 시작,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나온 때를 기하학적 문양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기점으로 삼으며,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문양의 고졸기를 거쳐 그리스 문명의 정점을 이루는 고전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는 시대인 헬레니즘기로 구분한다. 기원후로 넘어와 31년에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가 그리스를 패배시키고 393년 로마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리스 문명 시대의 끝으로 본다.

박물관에 가서 미라가 나오면 이집트 미술이라는 것을 알수 있듯이 그리스 전시실에 이르렀음을 알수 있게 해주는 조각으로 쿠로스가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쿠로스'라는 명칭이 낯설었다. 그리스 예술품 중 가장 오래된 남성 누드 입상 중 하나로 남자 또는 청년이라는 뜻에서 쿠로스라고 부른다고 하니 기억해놓아야겠다. 

번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리스와 이집트의 미술을 비교하며 그리스가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대해 저자는 아쉬움을 나타내며, 아마도 그 유명한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라는 저서에서 그리스의 우월성을 주장해놓은 것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1950년대 나온 책임에도 아직 그것을 능가하는 책이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책이다보니 곰브리치가 '위대한 각성'이라고 지칭한 그리스 미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용하는데, 그리스 미술이 위대한 각성이라면 그 이전 시기는 모두 '잠'에 해당하는 시기인가 해서 씁쓸하다고 했다.

그리스를 정복한 후 그리스 문화를 없애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계승, 전파하려고 노력했던 로마 덕분에 그리스라는 나라는 번성하지 못했어도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 주의의 확산을 타고 더 멀리 보급되고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연결되어 지금까지 그리스·로마 문명이라 붙여 일컫고 있다.

18세기에도 유럽 고관 대작 자제들을 위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그랜드투어라는 이탈리아 여행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랜드 투어를 떠났던 유럽 귀족 자제들은 로마를 다녀온 후에도 그리스 로마 문화에 매료되어 자기 나라의 건축, 미술 등에 반영시킨 것은 자연스런 일이겠다. 예를 들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건축은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독일 레겐스부르크에도, 미국의 링컨기념관, 우리 나라 덕수궁 석조전에서 까지 발견된다.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로마인들은 예술 작품도 실용적인 용도로 제작하기 좋아했으며 그중에서도 조각은 대부분 왕족, 귀족 가문의 위엄을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져서 로마 황제들의 카리스마를 위한 로마 황제 조각이 많이 만들어졌다. 로마의 건축, 도로, 하수도는 지금까지도 남아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공학적으로 우수하였고 비트루비우스는 건축 원리를 집대성하고 체계적으로 완성하여 <건축 10서>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을 복원할 때 이 책을 참조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꼼꼼하게 쓰여져있는지 짐작이 간다.

로마인들의 실용적인 성격은 현세적 가치관에 치우쳐져 내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리하여 사후 세계와 관련된 문화를 따로 발달시키지 못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로 나중에 기독교가 제시한 종교적인 답에 쉽게 굴복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조그마한 고장에서 탄생한 기독교가 로마에 유입된 이후 탄압 속에서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번져나가 마침내 로마제국의 국교로 지정되기에 이르니 말이다.

 

이렇게 저자는 다음 권으로 자연스럽게 내용을 연결시키며 2권을 맺는다.

다음 권의 내용은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더 이상 인간은 외롭지 않았다 이다.

안 읽어볼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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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11-1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스스로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조금 짧게 답글을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

앞으로 계속 읽고 올리실 내용 기대하겠습니다.

hnine 2019-11-13 04:41   좋아요 0 | URL
평소에 꼼꼼히 읽으시고 자세한 답글 쓰시느라 시간 많이 잡아먹죠? ^^
읽어주시고 안부 나눠 주시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저도 올리시는 글 기다리고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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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2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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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1 04: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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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2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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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3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프라하에 갔다오신 건가요?

hnine 2019-11-14 04:58   좋아요 1 | URL
지난 달 초에 다녀왔어요. 체코 한 나라만 갔는데 프라하를 주로 보고 가보고 싶던 다른 두 곳 당일로 다녀왔습니다.
한국보다 추워서, 더 있다가 추워진 후 가면 저 같은 사람은 다니기 힘들었을것 같더라고요.
꼭 한번 가보고 싶던 나라인데 잘 다녀왔어요. 이번엔 혼자 아니고 남편과 함께 다녀왔답니다.

2019-11-23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3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9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9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 가을은 밖으로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녔고

돌아다닌만큼 담아온 사진도 많이 쌓였다.

이렇게 몇개라도 뽑아서 올려놓아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즐거울 것 같아서

나 즐거우라고 

맨날 그 사진이 그 사진 같다고 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누르고 

사진을 올려보는 아침이다.


이제

나 즐거울 일은 나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꽃을 보면 

그냥 좋다.

이것 저것 안따지고 

그냥 입이 벌어진다.

와이퍼로 차창의 빗물을 쓸어내듯

내마음 얼룩이 순삭 (순간삭제) 되는 듯 하다.

세상에 이런 기특한 애들이 있나.

그런데 얘들은 그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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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11-07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이 마치 꽃같아 보여 얘네들이 재롱을 피워주는 것 같아 기특하다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었는데....나인님도 역시!!!!^^
계란꽃도 몽글몽글~
아래는 소국인가요?
소국들도 몽글몽글~
아침부터 가슴이 몽글거리네요.
갑자기 달달한 커피가 땡깁니다^^

hnine 2019-11-07 11:59   좋아요 0 | URL
정말 꽃으로 착각할 나뭇잎들 있더라고요. 제가 아는 것 중에 화살나무가 특히 그렇던데, 멀리서 보면 꼭 빨갛게 꽃 핀 것 같아요.
계란꽃도 있고 메추리알꽃도 있고요 ^^
이런 소소한 사진으로 책읽는 나무님 가슴 몽글거리게 해드렸다니 저에게는 즐거움이 보태졌습니다.
달달한 커피 저도 지금 막 마시고 왔는데, 좋군요.
미세먼지만 없다면 참 좋은 가을날입니다.

2019-11-07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11-07 12:02   좋아요 0 | URL
인간의 기억력은 유한할 뿐이고, 그 지속 기간이 나이 먹어감에 따라 짧아져만 가니 기록을 더 열심히 해놓아야겠다고 매일 절감합니다.
사진이 요즘은 제일 간편한 저장수단이긴 한데 오늘 아침에도 저는 분명히 찍어놓은 사진을 여기 저기 화일 돌아다니며 찾다가 끝내 못찾고 말았답니다 ㅠㅠ 설악산 갔을때 혼자 산행 하고 있던 외국 청년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요.
 

 

 

 

 

( 알라딘에서는 검색이 안된다)

 

 

 

 

 

 

 

체코의 큐비즘 (Czech Cubism)

 

 

 

 

 20세기 출현한 혁신적 양식의 하나인 큐비즘은 프랑스에서 피카소에 의해 시작되어 다른 나라로 금방 퍼져나갔는데 큐비즘은 회화와 조각 뿐 아니라 건축에도 도입되었는데 큐비즘 건축이 일어나기 시작한 곳은 그당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즉 지금의 체코였다.

 

파벨 야나크 (Pavel Janak, 1882-1956)의 공이 큰데, 그는 건축의 큐비즘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여 미술에서 일어난 큐비즘을 건축과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게 하였다.

 

과학과 기술적 사고를 건축 양식에 반영하자는 생각으로 보수적 디자인의 수평, 수직적 표면을 깨뜨려야 한다고 믿고 건물뿐 아니라 일상적 사물의 디자인에 각, 지그재그, 결정체, 피라미드 형태를 도입하였고 각각의 면이 삼각형을 통한 연결로 이어지도록 꾀하였다.

 

1910년부터 1914년까지 일어났던 체코의 큐비즘은 네 명의 주요 건축가들 (요제프 코콜 Josef Chocol, 블라스티슬라프 호프만 Vlastislav Hofman, 파벨 야나크 Pavel Janak, 요제프 고카르 Josef Gocar)이 주축이 되었는데 House of Black Madonna 건물은 1912-1913년 요제프 고카르에 의해 체코에 만들어진 최초의 큐비즘 건축으로서 지금까지 체코 큐비즘 건축의 랜드마크로 남아있어서, 큐비즘 건축 관련 서적이나 자료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진이기도 하다.

 

 

 

프라하 구시가지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원래는 큐비즘 건축물로 지어지지 않았으나 요제프 고카르가 문과 기둥 등에 큐비즘 양식으로 문설주, 지붕창등을 도입하였다.

현재 이 건물엔 체코 큐비즘 전시장과 갤러리가 들어가있어 1층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 들어가볼 수 있다.

 

이 건물 이름이 House of Black Madonna 인것은 2층 코너에 앉아 있는 성모의 검은 석조 조각상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알파벳 글자도 입체적으로 표기.

안에 들어가보면 전시장의 모든 글자들이 이렇게 되어 있다.

알파벳 O자를 육각형으로, 숫자 0는 슬래시 표시된 육각형으로.

 

 

 

 

 

 

 

 

 

 

 

 

 

 

 

 

1층에서 올려다본 계단이다.

 

 

 

 

 

 

 

 

 

 

 

 

 

이 건물이 만들어지기 위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불쑥 불쑥, 삐죽 빼죽 ^^

 

 

 

 

 

 

 

 

이 그림 제목을 읽어보니

Prague was more beautiful than Rome (프라하는 로마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건축 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물건이 큐비즘 양식의 대상이 되었다.

 

 

 

 

 

 

 

 

 

 

 

 

테이블과 의자, 액자, 액자 속 글씨까지 일관된 큐비즘 스타일.

 

 

 

 

 

 

 

이 의자들은 전시물은 아니고 1층 입구에 쌓여져 있는 것들인데 역시 큐비즘 양식.

 

 

 

 

 

1층 티켓 오피스에서 각종 기념품과 서적, 엽서 등을 팔고 있었다.

 

 

 

 

 

 

 

 

 

 

 

 

 

 

 

 

 

 

 

 

 

 

  여기서 두 권의 책을 구입해 와서 지금 참고하며 쓰고 있다.

 

 

 

체코가 중심이 되어 이러한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건축 양식이 일어났다는 것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에서의 큐비즘은 체코 국내, 국외적으로 오래 지속되지도, 강한 영향력을 끼치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큐비즘 이론이 아무리 독창적이고 탄탄한 기초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오직 건물의 외양에만 성공적으로 적용되었을 뿐 건물 내부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따랐다는 것, 그리고 그당시 디자인과 건축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모더니즘 건축계로부터 오래 가지 못할 수명의 막다른 경향일 뿐이라고 심한 비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세계에서도, 유럽에서도 체코는 주 무대라기 보다 변방의 한 국가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혹시 작용하지 않았을까?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모더니스트의 비판처럼 짧은 수명으로 마감한 것이 안타깝다. 만약 거대한 스폰서를 배후로 하였다거나 미국에서 일어난 양식이었다면 또 달라졌을지도.

 

 

 

처음부터 친숙하게 눈에 들어오는 양식은 아닌데, 보면 볼수록 끌리는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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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2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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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1 04: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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