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ult in Our Stars (Hardcover)
Green, John / Penguin Group USA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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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소녀 헤이즐 그레이스.

열세살때 thyroid cancer와 폐로 전이된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thyroid with mets in my lungs, p.11)

바로 죽음을 준비해야할 단계였으나 병원에서 임상시험 중이던 신약을 시험 삼아 투약해본게 운좋게 잘 맞은 덕에 죽음의 고비를 기적적으로 넘기고 열여섯살 현재까지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소녀이다. 이후로 산소호흡보조기구를 늘 차고 다녀야하기 때문에 거의 집에만 머물며 책 혹은 컴퓨터 게임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depression은 암의 side effects 라며 (헤이즐 본인은 depression은 암이 아니라 죽음의 side effects라고 주장하지만) 딸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염려하는 부모님의 권유와 성화로 억지로 암환자 모임에 참석한 날, 거기서 오거스트라는 한 남자 아이를 만나게 된다. 오거스트는 골육종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한 상태. 잘 생긴 외모, 특이한 표정, 담배를 피지 않으면서도 담배를 물고 있는 상징적 행동을 즐기는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헤이즐은 곧 그와 절친이 된다.

열세살에 이미 말기암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삶은 그저 임시적이고 불안할 뿐,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므로 오늘 이 시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사는 헤이즐에게 오거스트는 새로운 활력이고 오랜만의 관계 맺음이다. 서로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 권해주기도 하면서 친해지던 중 헤이즐이 정말 정말 좋아해서 수십번 읽은 책이 있고 헤이즐에게는 그 책의 작가인 피터 반 휴튼으로부터 꼭 하고 싶은 질문과 듣고 싶은 답이 있음을 알게 된 오거스트는 헤이즐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고 싶어서 그 작가가 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헤이즐과 함께 방문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비행기 여행은 무리라는 병원 측의 만류가 있었기 때문에 헤이즐의 엄마도 이 여행에 동행하긴 하지만 이해심 많은 엄마 덕에 헤이즐과 오거스트는 암스테르담에서 둘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다. 정작 작가인 피터 반 휴튼에 대해서는 큰 실망과 절망을 안고 돌아오긴했지만.

결국 예정대로 '그날'이 온다. 그리고 그날은 헤이즐보다 오거스트에게 먼저 온다. 오거스트가 마지막까지 힘들어하다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세상을 떠나고, 헤이즐은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책의 21장 전체 (261-267쪽)가 오거스트가 죽은 후 헤이즐의 심정을 토로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 고통의 정도에 대해 헤이즐이 말한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응급실에 실려가서 맨먼저 받는 질문은 고통의 정도를 숫자 영부터 십의 강도로 표현해보라는 것이다. 그것에 따라 어떤 약을 얼마나 급히 써야할지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아마 이 질문을 수백번 받아왔을 것이다. 한번은 가슴 통증으로 아예 숨을 못 쉴 정도였고 가슴에 불이 붙어 화염이 갈비뼈 속으로 파고 들어가 내 몸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응급실에서 간호사가 고통의 정도에 대해 물었을때 나는 입을 벌려 말 할 수 조차 없어 손가락으로 아홉을 나타냈다.

약이 주어졌고, 나중에 간호사가 와서 혈압을 재며 말하기를, "네가 전투사 (a fighter) 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봤는지 아니? 네가 10 을 9 라고 부르더라 (10이라고 불러야 할 고통을 9라고 부르고 있더라 - 나의 덧붙임)."

사실 그게 아닌데. 나는 9라고 한게 맞다. 10은 아껴두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끔찍한 10 을 겪고 있다. (263쪽)

암으로 인한 고통보다 사람을 잃었을때의 고통이 더 엄청나고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다.

오거스트는 pre-funeral 이라는 이름으로 자기가 죽기 전 의식이 살아있을때 미리 자기의 장례식을 하고 싶어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미리 장례식 하는 내용은 이 책에서 유명한 대목이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때 그렇게 무례하고 성의 없이 대하던 알콜중독 작가 피터에게 여덟살때 암으로 죽은 딸이 있었고 그 이후로 거의 제대로 된 일상을 회복하지 못해온 것을 알게 된 헤이즐은 자기 부모도 자기가 죽은 다음에 그렇게 될까봐 걱정한다.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오거스트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찾아온 작가 피터에게 지금이라도 새로운 작품을 시작해볼 것을 권하는 헤이즐. 그와 대조적으로 헤이즐의 엄마는 그동안 헤이즐 모르게 헤이즐과 같은 환자를 둔 가정을 위해 일하고 싶어 뒤늦게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다. 헤이즐 엄마로부터 감명을 받으며 읽기를 마칠 수 있던 것은 나도 부모이기 때문일까.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와있고, <안녕 헤이즐>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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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1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인님께서 언급하신대로,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라는 번역본으로 읽었었는데 지금 여기서 나인님이 인용하신 구절을 보니 또 눈물이 핑도네요.
잘 읽었습니다, 나인님.

hnine 2020-03-13 08:41   좋아요 0 | URL
작가는 역시 작가구나 새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어요.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제가 번역은 제대로 해놓았는지 모르겠네요.
열세살에 죽음을 준비하란 선고를 받은 경험을 늘 마음 속에 담고 사는 사람의 심정을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이 과연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도 마지막 몇 챕터를 읽으면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죽음 앞에 의연한 사람은 없나봐요 나이와 상관없이.

제가 올린 리뷰에 다락방님께서도 읽으셨다는 댓글 달리면 참 기분이 좋아집니다.
 

 

 

 

 

 

 

 

 

 

 

 

로즈마리와 타임 (Rosemary and Thyme)

 

 

 

요즘 우연히 동영상 사이트에서 발견하여 보기 시작한 영국 드라마이다. 이른바 British cozy mystery thriller. 가벼운 미스터리 추리물인데 TV 시리즈로 제작되어 2003년 시작, 2007년에 종영하였다.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가볍고 덜 심각하고 덜 폭력적이고 덜 복잡하다 (지금까지 본 에피소드로는 그렇다).

 

제목의 로즈마리와 타임은 허브의 종류로 잘 알려있지만 여기서는 나이 지긋한 두 여자주인공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Rosemary Boxer 와 Laura Thyme.

Rosemary Boxer는 Plant pathologist (식물병리학자) 로서, 원래 한 대학의 응용원예학과에서 십수년간 강의를 해오는 강사였다가 해고당한다.  Laura Thyme은 결혼전엔 경찰관이었다가 결혼하면서 그만 두고 가정주부로서 살아왔는데 이십년 넘게 살아온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그만 살기로 하고 집을 나와버렸다. 이 둘이 첫회에서 우연히 한 숙소에 머물게 되면서 만나게 되고, 그 마을의 살인사건에 관여하게 되면서 친구가 되어 2회째부터는 둘이 함께 일을 하기로 한다.

 

긴장감과 극적인 재미는 덜할지 몰라도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다른 매력이 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식물과 정원, 꽃 얘기가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너무나 영국적이라고할까. 주로 이들이 하는 일이 정원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 자문, 리노베이션 관련 일이기 때문에 방문하는 곳들은 대개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관련된 사건에도 그들이 식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여지 없이 적용된다. 식물학자인 Rosemary의 풍부한 지식과 전직경찰관인 Thyme의 번뜩이는 영감과 호기심, 재치, 명철함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더없이 좋은 짝이 되어 정원의 문제는 물론이고 그곳에 발생한 살인사건 해결에도 큰 몫을 한다.

그 나이까지 식물에만 집중할 뿐 결혼을 해본 적 없는 Rosemary에 비해 방금 남편과 헤어지고 뛰쳐나온 Thyme의 유머 코드도 재미있다.

문 앞에 단 한평의 땅일지라도 꽃을 심고 가꾸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영국 사람들의 정원 사랑. 홈즈를 탄생시킨 추리물 사랑.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푸른 정원, 나무, 꽃. well made British TV drama가 아닌가 생각된다.

 

배경음악으로 쓰인 음악은 Scarborough  Fayre의 변주곡인데, Simon and Garfunkel의 노래로만 알고 있었는데 원래 오래된 영국의 노래라는 걸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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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20-03-07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전형적인 영국 추리물이네요.. 소프트버전으로, 그 유머와 여유.. 미스마플의 재림이로군요. .

hnine 2020-03-08 05:02   좋아요 0 | URL
예, 소프트버전 맞습니다. 영국에도 사실 잔인한 장면 나오는 추리물 많은데 미스마플이나 로즈마리 앤 타임 같은 것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한 에피소드의 분량도 40분 내외로 그리 길지 않아서 보기에 덜 부담가더라고요. 미스마플보다 연령대는 한참 아래인, 50대 초반쯤 되는 영국 아줌마 둘이서 버디 드라마 형식을 띠기도 합니다.

진주 2020-03-1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에도 있어요~
‘파아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앤 타임~~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파아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앤 타임~이 부분 발음이 마치 영어를 능숙하게 잘 하는 것 같이 들려서 학창시절에 잘난척하면서 불렀던 노래예요 ㅎㅎㅎ 지금 생각하니 웃기네요 ㅎㅎ


hnine 2020-03-12 04:29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이 드라마 인물의 이름과 제목도 그 노래 가사에서 착안했대요.
진주님은 그럼 고등학교 시절에 벌써 허브의 종류를 최소한 네 종류를 알고 있으셨던거네요. 저는 그때 허브라는게 있는지도 몰랐었는데요 ^^
 

 

어제 저녁 EBS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선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집짓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새집 쯤이야 우습게 볼지도 모르지만 사람인 나도 직접 안지어본 집이다.

조그만 새가, 자기가 살 목적이 아니라 알을 낳아 품을 집을 짓는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 나뭇가지 재료도 직접 구해오고 부리로 잇고 거미줄로 이어붙혀 일주일 만에 튼튼하고 촘촘한 집을 완성하였다.

"저 새가 바로 아키텍트 (architect) 네!" 라고,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으로 말하자면 자기 집을 아직 지어본 적 없는 건축전공자이다.

집을 완성하자 이 아키텍트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곧 집 안에 꼼짝하고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알을 낳는 것이다. 푸르스름한 색이 도는 알. 그리고 그 알을 품는다. 2주 동안 그렇게 품고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바로 뻐꾸기라는 새가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그 둥지에 들어가 자기 알을 낳아놓는 것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뻐꾸기 알도 함께 품는다. 결국 먼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가 아니라 뻐꾸기 새끼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어미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에 이 뻐꾸기 새끼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막 알을 깨고 나온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도 밀어낸다. 이제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는 뻐꾸기 새끼 독차지.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새가 물어온 먹이를 먹으며 뻐꾸기 새끼가 자라난다.

둥지밖으로 떨어진 붉은머리오목눈이 알. 그리고 알에서 나오자마자 눈도 뜨지 못하고 둥지밖으로 떨어진 새끼.

태어나자마자 태어난 세상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바로 세상을 떠나야하는 이들의 운명은 대체 뭐지?

태어나자마자 주인을 밀어내고 생존하는 방법을 뻐꾸기 새끼는 대체 언제, 어디서 배웠지?

그건 학습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해설자가 말한다.

 

운명, 본능, 생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생명은 아름다운가? 생명의 본질은 아름답다고 할지몰라도 그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과정은 처절하고 전투적이다. 그냥 사는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집에 있는 새도감을 찾아보았다.

아이가 어릴 때 함께 보느라 사놓은 도감이라서 먼지가 하얗게 쌓여있었다.

 

 

 

 

 

 

 

 

 

 

 

 

 

 

 

 

 

 

 

 

 

 

 

 

 

 

 

 

 

 

 

 

 

 

 

 

 

 

 

 

 

 

뻐꾸기는 어쩌다가 그런 방식으로 새끼를 낳고 번식시키게 되었을까.

뻐꾸기는 뻐꾸기대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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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05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뻐꾸기 알 얘기 듣고 놀란 적이 있어요. 이기적인 생존법인 듯. ㅋ
동물의 세계는 잔인함이란 무기를 갖고 사는 것 같아요. 티브이에서 먹잇감을 공격하는 동물을 보면 끔찍하더라고요.
동물의 눈으로 본 인간의 세계는 어떠할지 궁금하네요.

hnine 2020-03-05 13:05   좋아요 3 | URL
다른 생명체를 이용해서 생존에 사용하는 것이라면 인간을 따를 수 있을까요?
생명계의 어쩔 수 없는 섭리라지만 인간은 때로 너무 이기적이다 싶을 때가 많아요. 뻐꾸기보고 뭐라 할 일이 아니겠지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책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감정이 들어요.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팩트로 받아들여야 할텐데도 말이어요.
 
55 Successful Harvard Law School Application Essays, 2nd Edition: With Analysis by the Staff of the Harvard Crimson (Paperback, 2, Second Edition)
Harvard Crimson / Griffin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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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지원을 위해 쓴 자기 소개 에세이 (Personal statement) 55편과 그에 대한 심사평 모음집이다.

심사를 담당한 사람들은 하버드 대학 일간지인 The Harvard Crimpson의 Staff 들이다.

로스쿨 지원자들이기 때문에 대학은 이미 졸업을 하였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래서인지 대학 지원을 목적으로 쓰는 Personal Statement보다 더 다듬어지고 구체적인 내용의 에세이였다.

 

지원자 에세이가 지원자의 이름 아래 약 두 페이지 분량으로 실려있고 바로 이어 한 페이지 정도로 심사관의 분석 평가문이 Analysis 라는 제목으로 뒤따르는 구성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읽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자기 소개서는 없었다. 어떤 글은 한편의 소설 같았고, 어떤 글은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생생하게 시작하여 진행도 영화같이 흘러갔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하든 모든 에세이의 결말은 하나였다. 내가 여기 (하버드 로스쿨)에 지원하고자 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고 맺는 것. 또한 시작을 끝과 연결시키는 것.

 

그런데 정작 55편을 차례로 읽어나갈수록 감탄은 지원자의 에세이보다 심사관의 분석글로 더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충실하고 정성스런 조언의 글이 있을까. 네 글이 어디가 잘되고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위한 지적이 아닌, 그야말로 건설적인 조언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평가글이었다. 이런 에세이에 꼭 필요한 사항들이 무엇인지 상기시키면서 그런 면에서 이점은 아쉬웠고 이점은 너무 지나쳤다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해놓았다. 평가문, 심사평이라기보다 글 읽은 소감이라고 해야하나. 그러기엔 촌철살인의 대목이 많기는 하다.

몇가지 기억해둘만한 조언이 담긴 문장들을 옮겨본다.

1. Use your personal statement to say what the rest of your application cannot. (36쪽)

 (너의 자기소개글이 네 지원서의 다른 서류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할 수 있게 이용해라.)

2. For applicants struggling to communicate their reason for applying to Harvard Law School, an anecdote may be the answer. Instead of talking about yourself, let the story speak of you. (45쪽)

(하버드 로스쿨에 지원하는 이유를 전달시키려고 애쓰는 지원자들에게 있어 하나의 일화를 보여주는 것은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너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말고, 그 이야기가 너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라.)

3. It can be difficult to portray confidence without coming off as fake. (48쪽)

(가식으로 끝나지 않으면서 자신감을 표현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 지원자가 이런 위험을 피해서 잘 썼다고 칭찬하는 대목

4. Without simply presenting a laundry list of accolades. (96쪽)

(자화자찬 목록으로 도배하지 말것이며,)

 

제일 자주 언급되는 조언은 resume (이력서)에 있는 사항들을 굳이 Personal Statement 에 반복할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러는대신, resume에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데 사용하라고 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구성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대신 하나의 단어나 문구의 정확도에 대한 지적은 날카로왔다.

예를 들어 한 지원자가 자기가 법학에 끌리는 이유를 쓰면서 It celebrates difference making. 이라고 했기에 나는 멋진 표현이라고 밑줄까지 치고 넘어갔는데 바로 다음에 심사관은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difference making 같은 nebulous concepts (막연한 개념) 은 좀더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써놓았다. 어떤 형식, 어떤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글의 목적과 읽는 대상을 잊으면 안된다는 일침이다.

 

목적상 내용이 분명하고 잘 다듬어진 글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읽기 어렵지 않다.

내가 당장 자기소개서를 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버드 로스쿨은 더구나 아니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보너스로서, 요즘 자주 쓰는 어휘나 표현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글쓰기란 논리가 작용해야하는 과정임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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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0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기소개서를 쓴다면 재밌는 에피소드를 넣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겠어요. 에피소드에 제 성격이나 취향, 가치관이 다 나오면 좋겠죠. (2번의 글 - 이때 너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말고, 그 이야기가 너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라.)가
제가 말하는 글에 해당할 것 같네요.

자기 자랑을 하지 말고 오히려 단점을 말해서 솔직함을 어필하고 그 단점을 장점화시키는 것도 중요할 듯해요.
예를 들면, - 저는 성격이 급한 게 단점이라 고치려고 노력합니다만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해서 제게 맡겨진 일은 마감하기 전날에 미리 제출하는 터라 이럴 땐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뭐 이런 식으로요... ㅋ

분석적인 글은 읽기에 매력적인 글이고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가장 효과 좋은 건 자기의 글을 직접 분석 받는 것일 테지요. 자신의 글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고칠 점인가를
아는 게 관건이니까요.
자기소개서에 관한 글을 읽으니 그걸 쓰던 옛 시간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써야 좋은지 몰라 헤맸답니다. 아마 지금 쓴다고 해도 또 헤맬 것 같습니다만...



hnine 2020-03-05 10:19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 에피소드는 거의 다 들어가더라고요. 에피소드 외에 과거 자기의 경력의 한 부분을 말하고 그 경력과 연결지어 로스쿨 진학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시하기도 하고요. 그런 경우엔 에디터들이 꼭 집고 넘어가요. 전형적인 에피소드나 이력서만 봐도 충분한 경력에 대해 중언부언 하느라고 아까운 지면 소비하지 말라고요.
미국의 대학 지원서처럼 로스쿨의 경우에도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좀 좋은 학교들은 내가 그 학교를 들어가면 이런 식으로 그 학교를 빛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지요. 그러니 날 꼭 뽑아달라, 그런 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하니까요 ^^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놀란 것은 사람마다 인용한 에피소드가 어쩌면 그렇게 다양한지 55편을 읽으면서 지루한 글 거의 없고, 이 사람에게는 정말 로스쿨 진학이 절실하겠구나 하는 것을 읽는 사람 마음까지 전달시키게 쓰는 능력이 대단했어요.
읽으면서 저도 잠깐 생각 안해볼수 없었어요. 제가 만약 지금 자기 소개서를 쓴다면 어떤 식으로 쓸까. 그런데 판에 박힌 내용밖에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읽는 사람 지루할게 뻔한 ^^
 

 

 

 

 

 

 

 

 

 

 

 

 

 

 

 

집에서 라넌큘러스 꽃잎은 저렇게 한장 한장 떨어지고 있고,

 

 

 

 

 

 

 

 

 

 

 

 

 

 

 

 

 

 

 

 

 

 

 

 

 

 

 

 

 

 

 

 

 

집 밖에서는 이렇게 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흩트리고 싶어 나갔다 왔습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상황의 가운데를 통과하면서

방역작업으로, 의료진으로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봅니다.

일주일에서 열흘까지가 고비라니까 어서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아침 집에 작은 새끼용이 들어와있는 것을 보고 용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아이보고

엄마는 자꾸 아니랍니다.

"세상에 용 같은 건 없단다."

아이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데 엄마는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용은 자꾸자꾸 커지더니 저 그림책 표지에 있는 것 만큼 커져서 집을 떠메고 움직이기까지 합니다.

결국 용이 있다는 걸 엄마도 아빠도 인정하고 나자 용은 다시 원래의 크기로 작아졌습니다. 

 

얼마전에 구입해서 읽은 그림책입니다.

한대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여운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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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2-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볕이 굉장히 잘 드는 집에 사시는가 봐요. 저는 저렇게 집에 해가 잘 드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집에서도 한낮에 저렇게 거실로 해드는 걸 보면 마음이 되게 고요해지는 것 같아요.

외출 잘 하고 돌아오셨습니까.

hnine 2020-02-24 23:16   좋아요 0 | URL
저 시간 저 자리에서 볕이 잘 들때 찍었지요. 라넌큘러스 꽃잎이 저렇게 질 줄은 몰랐어요. 아주 깨끗하게, 한장 한장 떨어지는 모습이 예뻤어요. 꽃잎이 워낙 많은 꽃이라서 몇장 떨어져도 아직 티가 안나요.
제가 매일 가는 운동센터도 코로나때문에 잠정폐쇄해서 오늘은 산책도 더 오래 했어요. 저렇게 꽃이 벌써 피기 시작했을줄 모르고 걷다가 횡재한 기분이었답니다.

moonnight 2020-02-2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햇살과 꽃사진을 보니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거실인가요. 나무탁자도 멋스러워요. 덕분에 위로받습니다. 어서 이 상황이 진정되었으면 합니다.

hnine 2020-02-27 08:54   좋아요 0 | URL
moonnight님, 오늘 하루도 꿋꿋하게 잘 지내보기로 해요.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겪는 어려움이라는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힘이 되기도 하고 그렇네요.
보잘것 없는 사진때문이라기 보다 moonnight님이 원래 마음이 따뜻한 분이기때문일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