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허리쯤에서 꽃 무더기라도 필 생각인지


새삼 잊었던 기억이 몸이라도 푸는지


녹색의 살들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팽팽해지는 오후


녹색의 말굽들이 총알처럼 날아다니며


횡설수설 나를 잡아당긴다


슬플 겨를도 없이 구석을 살아온 내게


어떤 변명이라도 더 해보라는 듯


여름은 내게 


베고 누을 저승을 찾으라 한다


구름 사이로 모르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다


누구의 유족인가 싶은데 


문상 차림 치고는 너무 설레는 표정이다


큰 나무 뒤에서 혼자 늙어가는 개복숭아는


제 식구들을 욱욱 게워내고 있다


다 늙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엇을 먹는 건지 게워내는 건지


나는 못 본 채 지나간다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지나면서 생각한다


어디쯤에서 그늘을 오려내고 그 자리에 숨어 이 계절을 지나가야 하는지


오려낸 자리마다 더 깊은 변명이 부글부글 끓어도


함께 썩어가자고 


엎드려 울기나 하자고


이 세상 모든 꽃이 유족처럼 나를 향해 필 때까지


나는 캄캄한 사연을 말하지 않으려는 중이다




- 이 승희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중에서 시 "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전문 -



(※ 줄바꿈은 제가 옮겨 적으며 한 것이고, 원문에는 줄바꿈이 없습니다.)





























작년에 사서 읽다가 다 못 읽은 시집

올 여름에 마저 읽으려고 한다.


'시를 읽는다'라고 쓸때마다 망설여진다.

시를 읽는다는 말 말고 더 적절한 말이 없을까.

시를 품어본다? 마음에 담아본다? 마음을 담궈본다? 물들어 본다? 


이 시집 말고 다른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는 전권 필사를 해본 적도 있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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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계란 프라이 바닥에 버렸어?"







"누가 계란 프라이 나무에 매달아놓았어?"






"누가 계란 프라이 훔쳐 먹고 있어?"








마치 계란 프라이처럼 생긴 노각나무 꽃.


피자마자, 시들기도 전에,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특이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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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2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계란 프라이같아요!!

hnine 2021-06-21 16:33   좋아요 0 | URL
정말요? 너무 수준 낮다고 웃으시지 않을까 하며 올렸는데, 진짜 계란 프라이 같아 보이거든요.
배 고플땐 더 그렇게 보여요.

페크pek0501 2021-06-2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속았어요. 재밌는 표현!!!

hnine 2021-06-21 16:35   좋아요 0 | URL
즐겁게 속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꽃 참 특이해요. 나무에 꽃 피자마자, 꽃 모양 흐트러지기도 전 온전한채로 그냥 뚝 떨어져서 땅바닥에 저렇게 깔려져버려요.
동백도 바닥에 떨어질때 꽃 전체가 뚝 떨어져버리는것과 비슷하죠.

잠자냥 2021-06-21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정말 계란프라이 잔치네요!

hnine 2021-06-21 16:36   좋아요 1 | URL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니까 잠자냥님도 한번 실제로 보시면 더 재미있을거예요.
저희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무 찍었거든요.

scott 2021-06-2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백꽃과 비슷한 꽃나무 인건가요?
동백꽃도 지기도 전에 싱싱할떄 뚝 떨어지는데 ㅎㅎ
이런 꽃나무들이 아름드리 피어 있는 풍경 정말 좋아 합니다.

hnine 2021-06-22 04:57   좋아요 0 | URL
동백꽃과 노각나무 둘 다 차나무과예요.
동백꽃 떨어지는 모습과 비슷한것 맞아요.
노각나무꽃은 흰색이라 동백꽃처럼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청초한 멋이 있어요.
노각나무는 저희 아파트 단지에 있으니 밖에 나가기만 하면 볼수 있지만 동백꽃은 보러 일부러 찾아가야해요. 부산에 가니까 동백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있더라고요.
 
위대한 몬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5
알랭 푸르니에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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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푸르니에는 1886년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작가로써의 역량을 막 펼치던 즈음 1차 세계 대전에 동원되어 27세라는 젋은 나이에 전사함으로써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위대한 몬느>는 1913년 그가 죽기 1년 전에 출간된 책으로써 이전에 여기 저기 발표한 짧은 소설 몇편을 제외하면 그가 생전에 집필을 완료하여 책으로 출간된 유일한 소설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전에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자, 다른 제목으로 출판된 바 있으나 현재 절판된 상태로 알고 있고, 알랭 푸르니에에 관한 저서를 낸바 있는 번역자가 이 책을 새롭게 번역하여 2014년 민음사에서 위대한 몬느라는 제목으로 새로이 출판되었다. 

세 명의 남자아이와 한 여자아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열 대여섯 살 정도 되는 몬느, 쇠렐, 프란츠 라는 세 아이는 각각 다른 인물이지만 읽다 보면 셋 사이의 관계가 오묘하게 교차되었다가 분리되었다가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알게 된다. 

쇠렐이 다니는 학교에 몬느라는 남자 아이가 전학을 온다. 잘 나서지 않고 몸도 허약한 쇠렐에 비해 큰 키와 다부진 외모의 몬느는 남들이 하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전학 첫날 부터 학교 아이들의 눈길을 끈다. 어느 날 선생님의 심부름을 핑계로 허락없이 학교를 빠져나간 몬느는 숲에서 정체모를 성을 발견하여 들어가보는데 축제 분위기의 그곳에서 몬느는 자기 또래의 프란츠라는 남자아이와 그의 여동생 이본 드 갈레를 만나게 된다. 성에서는 막 프란츠의 결혼식이 거행될 참이었고 몬느는 그 모든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지만 프란츠의 신부 될 아가씨가 도망가는 바람에 결혼식은 취소되고 몬느도 성을 뒤로한채 마을로 돌아온다. 

쇠렐은 어딘가 불안해보이고 비밀스러워 보이는 몬느를 따라다니며 그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몬느는 쇠렐에게 그날 성에서 있었던 일, 만났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곳에 다시 한번 가보자고 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후 프란츠는 독일로, 몬느는 파리로 떠나고, 쇠렐은 고향에 남아 졸업 후 선생님이 된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쇠렐이 몬느를 다시 만나는데 몬느는 아직도 어릴때 성에서 계속하지 못했던 신비로운 모험과 만남을 이어가려는데 집착하여, 보헤미안처럼 떠돌아다니며 존재와 거처도 분명하지 않은 프란츠를 찾아나서고 싶어함을 알게 된다. 

쇠렐! 생트아가트에서의 내 이상한 모험이 나한테 뭘 의미했는지 너는 잘 알지. 그건 내가 희망을 품고, 내가 사는 존재 이유였어. 그 희망을 잃어버린 지금 내가 뭣이 될 수 있지......? 모든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모든 게 끝났고, 잃어버린 영지를 찾는 것 또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파리에서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 그런데 한번 낙원에 들어갔었던 사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다른 사람한테는 행복인 것이 나한테는 하찮은 우스갯거리로 보인단 말이야. (247쪽)

위의 인용문은 성인이 된 몬느가 쇠렐에게 털어놓는 넋두리같은 말이다.

이어서 말한다.

지금도 확신하지만, 내가 이름 없는 영지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제는 결코 다시는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차원과 완벽함, 순수함의 경지에 도달했지. 언젠가 너한테 보냈던 편지에도 썼을 거야. 오로지 죽음 속에서만 그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발견할 거야...... (248쪽)

독자는 이쯤에서 감을 잡아야하리라. 몬느와 쇠렐, 프란츠를 통해서 작가가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는지.

몬느가 잃어버린 과거, 어릴 때 꿈, 모험에 집착하는 자아를 나타낸다면, 프란츠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미래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쇠렐은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서 둘을 중개하고 관찰하는 입장, 즉 현재의 나이다. 어떻게 보면 몬느와 프란츠와 쇠렐은 각기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 속의 세 가지 다른 자아를 나타낸다고 볼수도 있는 것이다. 

'위대한' 몬느라고 한 것은 쇠렐, 즉 작가의 분신이 아직 과거와 동심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향을 받고 있음을 고백한 것일까. 몬느가 여전히 찾아헤매는 프란츠, 그리고 몬느가 자기 가정도 뒤로 하고 프란츠를 찾아나서는 것을 이해해주려고 하는 쇠렐은 어쩌면 동심의 낙원에서 벗어나 불안한 미래 속을 향해 나아가는 한때 우리의 자화상이다.


27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간 작가. 그래서 남긴 작품이 많이 않은 작가이지만 더 오래 살았다면 아마도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을 더 남기고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 속에서 <위대한 몬느>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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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대장 몬느>로 읽었습니다. 만일 헤르만 헤세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hnine 2021-06-15 04:41   좋아요 0 | URL
Fasltaff님 이 책도 읽으셨군요. 리뷰 올라와있는게 별로 없더라고요.
아주 독특하고 신비하고 상징적인 작품이었어요. 남긴 작품이 많지 않은데 유일하게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이 이런 작품이라는게 다행이고 또 아쉬움이 남았답니다.
저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지와 사랑이 떠올랐는데 프르니에는 헤르만 헤세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자기의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생각해보니 누구나 성장기에 몬느 같은 존재를 주위에서 발견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시기, 마냥 그것을 쫓아가고만 싶은 시기요.
아무튼 저는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1-06-2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책을 알아갑니다.

hnine 2021-06-21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전혀 기초지식 없는 상태에서, 그래서 더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던 책이랍니다. 요즘은 그렇게 책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그나름대로 흥미가 있더라고요.
 
에덴의 동쪽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1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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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 살리나스라는 마을에서,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새뮤얼 해밀턴 집안과, 미국 동부 코네티컷에서 이주해온 트래스크 집안이 3대에 걸쳐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트래스크 집안의 일세대인 사이러스 트래스크에게는 첫 부인과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형제 애덤과 찰스가 있다. 형 애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인 사이러스의 특별한 애정과 관심 속에서 강압적으로 키워져 본인은 원하지 않음에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억지로 군대에 지원한다. 유순하고 나약한 애덤에 비해 동생 찰스는 아버지가 형을 특별히 더 아끼고 기대를 쏟는다는 것을 알고 형과 사이가 나쁘지 않으면서도 형처럼 아버지의 인정과 애정을 얻기 위해 늘 그 기회를 노리며 분투한다.

군대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애덤은 출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캐시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임신한 캐시와 함께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계곡으로 이주해간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그곳의 땅을 사고 새뮤얼 해밀턴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마치 에덴 동산처럼 근사하게 꾸미기 시작하지만 정작 캐시는 그곳에 묶여 정착하는 것을 못견뎌하여 결국 아들 쌍둥이를 출산하자 마자 남편 애덤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아기들도 내버려둔채 집을 나가버린다. 

한편 트래스크보다 일찍 캘리포니아에 자리를 잡은 새뮤얼 해밀턴 집안의 가장 새뮤얼은 강인하면서도 책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다정한 성격이며 그의 아내이자 아홉 남매의 엄마인 라이자 해밀턴은 성경말씀대로 원리원칙에서 벗어나는 법 없이 대가족 살림을 꾸려가는 다부진 성격의 여인이다. 

존 스타인벡 자신의 가족사를 썼다고 하는 이 소설에서 새뮤얼 해밀턴은 작가의 외할아버지이며 아홉 남매중 여덟째 딸 올리브가 작가의 어머니 되시겠다. 

작가의 가족사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그가 속해있는 새뮤얼 해밀턴 집안 사람들 보다는 트래스크 집안 사람들 쪽 이야기에 더 할애하고 있다. 

1, 2권 합쳐 1,0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많은 등장 인물이 나오지만 그 중 주요 인물이라고 보여지는 사람을 넷으로 압축해보려고 하는데 가장 중심 인물은 역시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에덴동산에 버금가는 농장을 꾸밀 계획을 가지고 있던 애덤 트래스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전폭적인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아버지 말을 거역 못하고 그 지시에 따라 살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고 캐시라는 악의 상징 같은 여자를 만나 일생 비참한 길을 걸어가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성경의 창세기 내용이 연상되는데 작가 존 스타인벡은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서를 즐겨 읽었다고 하며 성서 창세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애덤이 창세기의 '아담'을 연상시킨다면 그의 아내 캐시는 악의 상징이다. 살던 집을 태워 친부모를 죽게 하고, 자기 자유를 구속한다고 생각하여 남편에게 총을 쏘았으며, 시동생인 찰리를 유혹하고, 자식을 두고 집을 뛰쳐나가 유곽의 창녀가 되었고, 유곽의 여주인을 독살하고 그쪽 계의 부와 명성을 쌓아간다. 

이 두 주요인물 사이에서 나온 아들 쌍둥이 형제, 아론과 칼을 세번째 주요 인물이라고 본다. 성서의 아벨과 카인을 연상시키는 이들은 서로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선하지만 유약한 아론에 비해 칼은 형을 더 예뻐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내고 싶어하고 형을 질투하며 그런 자신을 늘 괴로와한다.

친모인 캐시를 대신해 아론과 칼을 키워준 중국인 집사 ''의 역할도 앞의 세 인물들 못지 않은데, 중국인이면서 미국에 건너와 이국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중국과 연락하면서 자신을 수양해가고, 나중에 애덤 앞에서 칼이 용서를 구하게 하는데 중간자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람 역시 기독교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리뷰의 제목으로 한 '팀셸 (timshel)'은 히브리어로 '다스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 중국인 리가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한번 나오고, 이 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막 대사로 한번 더 나온다.

중국인 리의 설명에 의하면 성경 내용중 카인이 바친 제물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 하느님게에 카인이 화가 나서 항의를 하자 하느님이 답하기를 '너는 너의 죄를 다스릴 지어다' 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죄를 인간 스스로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간 스스로 자기 죄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다스릴 자유의지가 중요함을 암시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야말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사랑스럽고 독특한 것이지요. 그것은 항상 공격을 받지만 결코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에서처럼 인간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죠." 

(2권, 67쪽 '리'가 '애덤'에게 한 말)


성서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것이 맞느냐, 하는 것보다 작가 존 스타인벡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고, 인간과 세상을, 그리고 선과 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몫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생각이 바로 이 '팀셸' 이라는 단어 속에 축약되어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역시 전작 <분노의 포도>의 결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구원, 용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 

성서적 사고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인간의 생애에 적용시켜보려는 의지.


인간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악행들은 사랑에 이르는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시도된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생전의 재능과 영향력과 자질이 제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만약 사랑받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 삶은 실패작이요 그의 죽음은 싸늘한 두려움일 뿐이다. (2권, 276쪽)

 

아쉬운 점이라면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 너무 뚜렷이 대비된다는 점이랄까. 실제로 인간은 카인과 같은 인간, 아벨과 같은 인간, 이렇게 이분법 적으로 구분되기 보다는 한 인간 속에 선과 악이 다 들어 있고, 카인과 아벨의 모습을 동시에 다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워낙 긴 소설이기 때문인가. 내용이 길어도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했나 하는 인물과 사건들의 삽입이 많아보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별 세개.

작가 자신은 자신의 최고 대표작으로서 <분노의 포도>보다 <에덴의 동쪽>에 더 비중을 두어 말한바 있다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노의 포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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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06 1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하고 많이 달라서 놀랐더랬습니다만. ^^

hnine 2021-06-06 13:47   좋아요 2 | URL
저는 영화는 못봤는데 표지의 제임스 딘이 쌍둥이 형제중 ‘칼‘ 역으로 나오지 않았을까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특히 더 사랑받는 작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영화는 소설과 어떻게 다를까, 갑자기 영화가 확 당기는데요.

Falstaff 2021-06-06 19:4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시인 김수영의 표기법으로 하자면, 제임스 띵의 배역은 찰스입니다. 검색해보신 것처럼 영화는 선대 부자간의 갈등에 촛점을 맞추었답니다. 애덤이 그냥 참전한 것이 아니라, 열등감과 아버지의 정에 대한 갈증....의 반항으로 애덤의 여자친구 캐시를 빼앗아버리니까 덜 떨어진 형 애덤이 걍 군대에 지원합니다. 물론 영화에서는요.
근데 그 장면이 압권입지요. 열차를 타고 출발을 하는데 만취한 애덤이 멍한 눈을 한 채 창 밖의 찰스를 보더니 이마로 열차 창문을 들이박더군요. 유리는 산산조각이 나고 열차는 떠나버립니다. ㅋㅋㅋㅋ
실제라면 열차 유리창이 그리 쉽게 깨지지도 않았을 거고, 만일 깨졌다하면 유리의 날카로운 파편이 애덤의 경동멱을 잘라 그자리에서 죽었겠지요. 윽.. 이거 까지 얘기한 거 보니까 제가 벌써 취한 거 같습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1-06-06 14: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은 아직 읽지 못했고 영화를 봤는데 제임스 딘이 좋았어요^^
이유없는 반항보다 에덴의 동쪽에서 더 이 배우에 호감이 갔어요^^
책으로도 읽고 싶어요**

hnine 2021-06-06 15:01   좋아요 3 | URL
지금 검색해보았더니 영화에서는 원작 소설 전체는 아니고 일부 내용으로 만들어졌던 것 같네요.
영화음악도 워낙 유명해서 영화는 안봤어도 음악은 아주 옛날부터 (중학생 시절 ^^) 친숙했는데 영화는 볼 기회가 없었어요. 지금 검색하다가 오랜만에 에덴의 동쪽 영화음악 들으면서 추억에 빠지고 있던 참입니다.
책은요, 정말 길어요 ㅠㅠ

바람돌이 2021-06-07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에덴의 동쪽이 영화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군요.

hnine 2021-06-07 04:44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를 안봐서 모르겠는데 책은 아주 두툼~해요. 저의 미천한 생각으로는, 꼭 들어가야했을까 싶은 내용들의 삽입이 많지 않았나...그래도 읽고 나니까 뿌듯하긴해요. 연달아 1,2 권으로 되어 있는 책들을 읽고 나니까 지금 읽는 300 페이지 책이 만만하게 보이는거있죠. ^^
 





















































































1


2


3




--  사진 1,2,3 은 Museum SAN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




Museum SAN (뮤지엄 산)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 2길 260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있는 뮤지엄 산에 다녀왔습니다.

2013년 5월 "한솔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2014년에 <뮤지엄 산>이라고 명칭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생존해있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지어졌는데 뮤지엄 이름처럼 정말 산 속에 위치하고 있어 혼자 찾아가기 쉬운 곳이 아니었고 오래 전 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그래서 이제야 가보게 되었답니다.


자작나무길을 따라 입구로 들어가면

  • 웰컴센터,
  • 플라워가든,
  • 워터가든,
  • 뮤지엄 본관,
  • 스톤가든,
  • 명상관 (2019년 개관)
  • James Turrell관 

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가 계속 오는 중이라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건물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물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어서 더 특별한 느낌을 주었고 몽환적 분위기를 더해주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James Turrell 이라는 사람의 설치작품을 전시해놓은 James Turrell 관으로, 안내자를 따라 들어가서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총 세 작품을 보았는데 그 중 두 작품을 보면서 느낀 감상이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그 두 작품이 뭐냐면요,


1. Ganzfeld (위 사진중 1번)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 (complete field)'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어떤 공간에 이르게 되면 왼쪽, 오른쪽, 앞, 뒤의 개념이 사라지고 어디가 이 공간의 끝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저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으리라는 짐작뿐 내 감각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인 것이지요.

나중에 설명과 안내에 따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엄연히 제한된 공간, 보통의 공간 속에 우리가 서 있음을.

이 작품의 주제가 "착각"이라는 설명에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깨달음이랄까요.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도 어쩌면 '착각'이 아닐까 하는. 실제 진실은 가려지고 우리의 감각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겠다는 것이요.


2. Wedgework (위 사진중 2번)

조각케잌을 옆에서 본 것 처럼 사각형이 쐐기 모양 (wedge)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 한쪽 끝은 다른 색의 좁은 면으로 이어져 있는 작품이 보입니다. 밤에 방문이 빠끔이 열려 있고 그 사이로 방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빛을 이용한 작품이라서 이 작품이 설치된 방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빛이 차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안내자로부터 벽을 따라 있는 바 (bar)를 손으로 잡고 따라 걸어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그렇게 따라 들어가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그 어둠에 적응이 되어 내가 있는 위치가 가늠이 되고 어둠이라는 상황이 처음 그 방에 들어올때처럼 두렵거나 당황스럽지 않게 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적응".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속임수, 착각이라는 내용의 앞의 작품보다 이 작품이 더 무서웠습니다. 착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적응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낯설고 거부감을 가지고 경계하던 상황에 나도 모르게 적응되어 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 능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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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31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좋아하는 미술관요.
여기도 또 가고싶은데 오랫만에 사진으로 보니 좋네요

hnine 2021-05-31 15:40   좋아요 1 | URL
사진만 주루룩 올렸는데 느낀 점이 많았어요. 비가 주룩주룩, 우산 쓰고 다녀야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감상을 지어내더군요.
바람돌이님 가셨을땐 명상관 있었나요? 이곳은 다른 건축물보다 늦게 2019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James Turrell 관에서의 느낌은 좀 더 첨가해서 써넣을까해요.

몰리 2021-05-31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여기 어딘가 멋지다, 하고 찾아보니 원주에 있네요.
멋져요! 가보고 싶어집니다! 타다오 건축이라고 소개하고 있네요.

hnine 2021-05-31 15:43   좋아요 2 | URL
예,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에 있답니다.
2013년에 지어졌고 2013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인데 2021년에 가보게 되었답니다.
맞아요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어요. 건축에 물, 나무, 돌 등 자연을 끌어들이는게 특징인 건축가요.
몰리님, 여기 꼭 가보시고, James Turrell의 빛으로의 여정도 체험해보시고, 명상관에도 가보시고요.

행복한책읽기 2021-05-31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넘 예뻐요. 운전 가능하면 슈웅 날아갔다 오고 싶은 곳이네요. ^^

hnine 2021-05-31 16:18   좋아요 2 | URL
행복한책읽기님, 저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가보기까지 8년 걸렸네요 ㅠㅠ
비가 와서 더 좋았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 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을 더해주었어요.
꼭 다녀오세요~

scott 2021-05-31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안도 타타오가 설계한 물의 집(명상이 저절로 되는 힐링터)!
에이치 나인님 오월 마지막 휴일 멋지게 보내 셨네요
James Turrell의 빛으로의 여정
시간과 위치에따리 빛의 세기가 조절되는 신비로움

원주에 있다는게 아쉽
매주 가고 싶은뎅 ㅜ.ㅜ

hnine 2021-05-31 16:27   좋아요 1 | URL
사실은 울적한 기분으로 나선 길이었는데 나서기가 주저되어서 그렇지 일단 출발하면 후회하는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위에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만 James Turrell 작품중 Space Division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천장에 보이는 타원이 어느 지점에 가면 타원이 아니라 원으로 보이는 작품인데 이 아이디어를 이용한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던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 가면 천장 가운데 아직도 남아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