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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같은 꿈을 단념시킬 수는 없어서
구멍난 속옷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여행가방처럼
종자로 쓸 녹두자루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는 뒤주처럼
그믐 달빛만 잠깐 가슴에 걸렸다 빠져나가는 동그란 문고리처럼
나는 공허한 장식을 안팎으로 빛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봉지같이
비닐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
다시 외로운,
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없이 흔들리는
외로운 삶
은하수야 새털구름아 어디만큼 가느냐
배거번드 (vagabond) 처럼 함께 흐르고 싶다
만돌린처럼 외로운 삶
고드름처럼 외로운 삶
= 장석남 시 <자화상>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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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넷에 이런 시를 쓰다니
사람 마음이 꼭 생물학적인 나이대로 익어가는 것은 아닌가보다.
첫째연 굵은 글씨체 부분은 시인 자신을 비유했다고 생각되어 표시해본 것이다.
저 구절을 위해 시인은 언어의 바다 속을 짧지 않은 시간 헤엄쳐 다니지 않았을까?
여행가방. 그 안엔 속옷만 그것도 구멍난 속옷만 들어있는, 텅 비다시피 한 가방이고,
뒤주. 쌀이 가득 들어있는 뒤주가 아니라 밑천 종자로 쓸 녹두만 겨우 들어있는 뒤주이고,
문고리. 안이 비어있어 형체없는 달빛만 가끔 잠시 (겨우 그믐에만) 지나가고 마는 문고리이다.
단념시키지 못할 무쇠같은 꽃이
사람들 마음속 저마다 있을텐데
잊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