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직접 찾고 싶었던 할미꽃을

지난 주 산책길에도 못 찾았던 할미꽃을

 

어제 산책길에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무덤가에 많이 핀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다섯 갈래로 갈라진 잎에도

고개 숙인 꽃잎에도

솜털 보송보송

아직은 봉오리가 활짝 벌어지지 않았으니

아마 다음 주말에 가보면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서 튜울립

지난 번에 흰색, 분홍, 보라색을 샀으니

이번엔 흰색, 노랑, 주황색으로.

 

 

 

 

 

 

 

 

 

할미꽃도 튜울립도

왜 꽃에 얽힌 전설은 모두

슬픈 이야기일까

억울하고 답답한 영혼이 꽃으로 피어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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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4-0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다른 꽃은 몰라도 할미꽃은 왠지
측은지심으로 보게되는 건 왜 그런지 모르겠슴다.ㅠ

hnine 2018-04-02 14:59   좋아요 1 | URL
할미라는 단어와 꽃이라는 단어가 안어울릴 것 같은데 할미꽃이라니? 하면서 무슨 사연이 있겠다 싶은 꽃이었어요. 눈에 이렇게 안띌수가 있는지. 이번에도 결국 제가 찾은게 아니라 옆에 있던 남편이 찾아냈어요 ㅠㅠ
저는 ˝이번엔 꼭 찾고말테야!˝ 하면서 그냥 지나치더래요.
 

 

우리 동네라지만 이렇게 둘러보고 시간을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제 광양 다녀오고서, 사실은 별로 아프지도 않은 다리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구실로 남편을 일으켜세워 30분 정도 산책이나 한다고 나섰던것이었는데, 일단 집을 나서면 꼭 안가본 길로 가보려고 하는 남편때문에 시간 초과. 다녀오니 진짜 다리가 아프더라 ㅠㅠ

 

 

 

 

 

 

개나리는 꽤 피어있는걸 봤는데 진달래 봉오리는 어제 처음 봤다.

 

 

 

 

 

 

 

저 길로 쭉 가면 어디가 나올까

생각만 하고 오른 쪽으로 돌아나왔다.

 

 

 

 

 

 

 

 

 

"시골이야 시골. 우리 집 근처에 이런데가 다 있었어."

동네 산책할때마다 남편과 하는 얘기.

 

 

 

 

 

 

 

 

 

"어, 이 나무는 사람 손이 좀 갔는걸!"

 

 

 

 

 

이렇게 시골길 같은 곳을 걷다가 위의 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혼자 숨어있는 듯한 집 앞에 목련이 일렬로 활짝 피어 있었다.

마치 꿈을 찍는 사진관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누가 살까?

 

 

 

 

 

 

 

 

 

 

 

 

 

 

 

 

 

 

 

빛을 향해 검은 장막을 뚫고 자라나오는 식물. 살겠다고!

 

 

 

 

 

 

 

 

 

 

 

 

 

 

 

우물 참 오랜만에 본다. 물론 쓰지 않는 우물이지만, 그래도.

 

 

 

 

 

 

 

 

 

 

 

 

 

 

 

 

어제 사람 많은 광양 매화나무 꽃 구경도 좋았지만,

오늘 사람 없는 한적한 우리 동네 나들이도 좋았다고,

돌아오며 내가 그랬더니 남편도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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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26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겨울이 추워서 그런지 올핸 봄도 좀 늦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h님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비비안 마이어가 생각이 납니다.
물론 같은 건 아니겠지만 비비안은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잖아요.

요즘 사진 경향중엔 로모 그래피란 게 있다더군요.
굳이 앵글 따지지 말고 규정된 사진에서 벗어나자란 거라는데
그러니까 저 같은 문외한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촛점이 흔들리면 어떠냐는 거죠.
그래도 뭘 찍을 거냐는 건 생각해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그것도 훈련이고 습관이 되야할 텐데
사물을 봐도 그냥 지나치게 되요.
그냥 다음 생에나 해 볼까봐요.ㅠ

hnine 2018-03-27 05:29   좋아요 0 | URL
제 사진이 특별해서라기 보다 stella님께서 보면 사진에 관심이 많으신듯 해요.
저는 비비안 마이어가 누군지도, 로모 그래피라는 말도 처음 들어봅니다 ㅠㅠ
말씀해주셔서 생각해보니, 앵글이나 촛점 맞추는것보다 사실 ˝뭘 찍고자 했느냐˝가 드러나게 찍는게 더 어렵고 경륜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확실히 사물을 볼때 더 유심히 보게 되긴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실물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눈으로 안보이는 것들을 카메라는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사진찍는게 더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비록 제가 그렇게 찍을 수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요 ^^
stella님도 사진 찍어 올려보세요. 다음 생에도 하시고 이번 생에도 하시고...^^

혜덕화 2018-03-26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집근처에 자연이 살아있으니...

hnine 2018-03-27 05:33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사진에서 통도사 홍매화 보고서 저도 꼭 가서 보고 싶었어요 통도사는 아니더라도요.
굳이 먼데 안가도 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인파 속에 섞여 보고 싶기도 하거든요.
꽃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광양에도, 제가 사는 동네에도, 좀 다른 모습이지만 봄은 공평하게 다 있었습니다.
다리에 딴딴하게 알이 배었지만 모처럼 즐거운 주말이었어요.
 

 

 

 

지난 토요일, 광양에 갔었다. 집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

 

 

 

 

 

 

섬진강은 늘 저럴까? 움직이는 듯 멈춘 듯.

조용조용히 흐른다.

 

 

 

 

 

  

 

 

 

섬진강의 섬진은 우리말로 '두꺼비나루'라는 뜻.

두꺼비 관련 설화가 있다고 해서 안내석을 읽어보니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듣던 단골 옛날 이야기중 하나이다.

 

 

 

 

 

 

 

 

 

 

 

 

 

 

 

 

 

 

 

 

 

 

 

 

 

 

 

 

 

 

 

 

 

 

 

두 갈래로 갈라진 길.

내가 택한건 왼쪽길.

 

 

 

 

 

 

 

 

 

 

 

 

 

 

 

 

 

 

 

 

 

 

 

 

 

 

 

 

 

 

 

 

 

 

 

 

멀리 섬진강이 보이고

 

 

 

 

 

 

바로 코 앞에는 매화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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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3-26 15:09   좋아요 0 | URL
몇개만 골라서 올리려고 했지만 보고 온게 있다보니 욕심이 나서 너무 많이 올렸지요.
그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오기 2018-03-2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어리도 있네요. 광양을 다녀왔군요~♥

hnine 2018-03-27 05:3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감사합니다!! 저 꽃이름 정말 궁금했어요.
히어리였군요. 저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네요.
 

 

 

 

전시 제목이 예르미타시 박물관전.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예르미타시 (Hermitage)는 원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작은 별궁 이름.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황제인 예카테리나 2세 (1729-1796). 그녀는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으로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미술품을 모아서 지금의 예르미타시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 박물관은 소장품의 가치로나 양으로나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데, 회화를 포함하여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박물관 소장품 규모는 약 300만점이라고 한다.

이번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2016년에 예르미타시 박물관에서 열렸던 한국도자명품전의 교환전시로 계획되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 중의 정수라고 할수 있는 17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프랑스 미술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번 전시는 그래서인지 예상했던 것 보다 둘러보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프랑스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프랑스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

 

 

 

 

 

 

 

 

 

 

 

1. 17세기: 고전 주의. 루이14세 통치 기간

2. 18세기 초: 로코코와 계몽의 시대

3. 19세기: 혁명과 낭만주의

4. 19세기 말: 인상주의와 그 이후

 

전시는 이렇게 네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시실 벽이 각각 빨강, 초록, 노랑, 검정 색으로 구분되어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사진의 그림이 걸려있는 벽의 배경색을 보면 그 그림이 어느 전시실에 걸려있던 것인지 알수 있다.

 

 

 

 

 

 

제목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화가: 피에르 미냐르 (1612-1695)

 

뱀이 물도록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

언제부터인가 전체 그림중 한부분을 찾아 확대해서 보고 사진도 찍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 그림에서는 팔뚝위 뱀.

 

 

 

 

 

 

 

 

 

 

 

 

오른쪽 아래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여인이 미네르바.

아래는 확대해서 본 것.

 

 

 

 

 

 

 

 

 

 

 

 

 

 

 

 

 

 

 

 

 

 

 

 

 

 

 

 

 

 

 

 

 

 

 

 

 

 

벼락이 치자 어쩔 줄 몰라하며 피할 곳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그림

 

 

 

 

 

 

아마도 내가 제일 오래 머물렀던 그림은 이 그림 앞에서였을 것이다.

아리 셰페 (Ary Scheffer, 1795-1858)라는 화가의 <젊은 어부의 장례>라는 그림인데, 영국 소설가 월터 스콧이 쓴, 난 제목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설 <골동품 수집가>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고 한다.

관 속에 젊은 어부가 누워있고, 머리 맡에서 어부의 어머니가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다. 아버지는 성직자의 위로를 받고 있으며 오른쪽에 할머니로 보이는 노인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채 다른 곳을 향해 앉아 있다.

 

 

 

 

 

 

 

 

 

 

 

이번 전시회 안내판, 팜플렛에 모델 그림이 된 카를뤼스 뒤랑의 <안나 오블렌스카야의 초상>

 

 

 

 

 

 

 

 

검정색 전시실로 들어서니 익숙한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19세기 말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위의 그림은 모네의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세잔의 <마른 (Marne) 강 기슭>

풍경이 물에 비친 모습을 그리는 건 인상파 화가들이 즐기는 방법이었다고.

 

 

 

 

 

 

외젠 카리에르 (Eugene Carriere, 1849-1906)의 <어머니와 아이>

이 그림 외에도 모성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이 화가 작품의 특징은 안개 낀 듯 뿌옇게 그리는 것.

 

 

 

 

 

 

 

 

베르나르 뷔페가 그린 <겨울 궁전> 즉, 이 전시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예르미타시 박물관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은 이 박물관을 직접 들어가서 보셨을까.

 

 

 

 

(전시를 보고 나오며)

원래 그림에 취미도 관심도 없었지만

주말이면 그것 밖에 달리 혼자서 할만한 일이 없어

미술관과 박물관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1996년 생각이 났다

그때 어떤 길이 하나 생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나보다

그림에 취미도 관심도 없던 나

1996년에도 2018년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그림을 찾아가서 보고 오는 이유는

마음의 빈 공간이 느껴질 때라는 걸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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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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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나 시험과 상관없이, 순수한 동기에서 꺼내 들어 읽는 우리 문학이 얼마나 좋았는지. 우리 나라 대표적인 작품들이니 내용은 대부분 알고 읽는데도, 시대가 좀 변해서 그런지 지금은 안쓰는 생소한 단어나 표현들이 군데 군데 섞여 나오는데도, 짜증이 아니라 오히려 구수하고 새로운 느낌이 드는 건 왜인가. 아마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겠지. 한국인 DNA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한국단편문학선1, 2 란 제목으로 두권이 포함되어 있다. 1권에는 김동인, 현진건, 이광수, 나도향, 최서해, 김유정, 채만식, 이상, 이효석, 이태준, 정비석, 염상섭의 단편이 1~2편씩 수록되어 있다.

순서 상관없이 제일 먼저 읽은 것은 이상의 <날개>였다. 1910년 서울생 이상은 건축과를 졸업하였고 건축으로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이 먼저였으나 건축 잡지에 시를 발표하고, 서양화를 선전에 출품하여 입선하기도 하였으니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나보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가 무절제하고 빈곤한 생활로 이어진 끝에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날개>의 첫문장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내가 읽으며 밑줄친 문장은 뒤에 나오는, 보다 평범한 문장이었다.

 

나는 목적을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아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목적을 잃어버려야만 버틸 수 있는 나날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아내라는 창을 통해 내다보는 세상. 자기와 완전히 격리되어 버린 세상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목적을 잃어버려야 하고, 날개가 없어 혼자 날수 없는 상태여야 했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득였다.

 

죽음과 다를 바 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보고 싶은 이유는,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특히,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행을 바꾸어 반복함으로써 간절함과 동시에 자기의 무능력에 대한 자책을 표현하기도 했다.

잃어버린 ego, 약한 자의 슬픔을 주제로 하는 작품은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다른 작가들에서도 거의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었는데 김동인의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의 경우, 새로운 문물과 사상에 밀려 전통의 가치가 무너짐을 겪었던 시기, 도덕과 양심보다 물질의 가치에 마음을 잃었던 시기에 개인의 삶의 참담한 결말과 허무함을 보여준다.

이광수의 <무명>은 한국문학에서 이광수의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또 하나의 예라고 본다. 환자들만 수감되어 있는 감옥 병동에서의 이야기인데, 한 공간에 수감되어 있는 각 인물들의 행동이나 성격 묘사도 매우 사실적이고, 그들의 행동과 말로 대변되는 그당시 사회상 표현도 뛰어나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그나마 희극적인 결말로 맺는데 특히 더 짧은 분량때문인가, 현진건의 <빈처><운수 좋은 날>, 최서해의 <홍염>에서처럼 비극적인 여성상이 아니어서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고, 덤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진 동백은 붉은 동백만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 속 동백은 노란 동백이라는 것.

수록된 단편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이효석의 <산>을 꼽을 것이다. 김영감 집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자 뛰쳐나와 산에서 홀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중실이라는 사내의 이야기이다. 중실의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엔 그래서 다른 등장 인물도 없다. 그런데도 자연의 묘사, 사람 마음 속내 묘사가 어찌나 섬세하고 사실적인지, 단어 선택의 풍부함, 문장의 감칠 맛 등, 읽다보면 중실의 마음 속으로 내가 들어가있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엔 아마도 사람들 모여사는 세상에 질리고 정 떨어진 주인공이 외롭지만 거짓없는 산 속으로 들어와 하나 되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 공감이 가서였는지도 모른다. 한번 읽고 지나가기 아쉬워 한줄 한줄 노트에 베껴써보기도 했다.

 

 

 

 

 

 

 

 

 

 

연달아 나오는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도 못지 않다. 중학교때 국어 시간. 국어 선생님께서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되 작품 속에 나오는 허생원과 동이가 어떤 관계인지를 독후감 속에 써오라고 하셨다. 책 안읽고 참고서 베껴서 독후감 쓰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내주신 문제같은데, 정작 이 순진한 중학교1학년생은 작품을 끝까지 다 읽고도 허생원과 동이가 과연 무슨 관계인지 확실히 모르겠는 것이다. 지금 다시 읽으니 그 당시 중학생 나로서는 읽고도 못찾을수 있었겠다 싶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내주신 국어 선생님의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이 작품 어디에도 허생원과 동이가 어떤 사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작품 속 허생원이 동이가 자기의 아들임을 발견하는 장면처럼 작가는 독자들도 읽다가 어느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쪽을 택했다. 이런 묘미를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직접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읽는 동안 주인공과 함께 가슴 아프고, 마음 졸이고, 허무해지고, 악 바치기도 하며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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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03-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2 여름방학때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비슷한(?) 독후감을 써 오라는 숙제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김동인의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등이 ‘숙제 범위‘였지요.
제 집에는 그런 책들이 없어서 제 짝궁이 사는 ‘주실마을‘(조지훈 시인의 고향)까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갈투성이 신작로를 하루 종일 걸어서 다녀 왔던 기억도 생생하고요. http://blog.aladin.co.kr/oren/8179370

나중에 고1에 진학해서 <한국 근대 단편문학 전집(전5권)>을 책장사한테 속아서 샀는데, 그 책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맨날 저녁밥 지어먹고 나면 그 책부터 펼쳐 읽던 기억이 아련하네요. 메밀꽃 흐드러지게 핀 무렵, 허생원과 동이가 달빛 아래에서 강을 건너갈 때의 풍경도 그림처럼 떠오르고요.

hnine 2018-03-24 07:38   좋아요 0 | URL
적어주신 예전 포스팅 찾아가서 잘 읽었습니다. 예전 일이지만 생생히 기억하시네요. 지금이야 읽을 거리가 여기 저기 넘쳐나서 잘 골라 읽어야 할 정도이지만 예전에만 해도 읽을 책을 찾아다녀야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당시 중학생들에게는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메밀꽃 필 무렵 (제가 이번에 읽은 민음사 책에는 제목이 모밀꽃 필 무렵으로 되어 있네요. 저도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이 더 익숙한데 말이죠) 같은 작품들에 담긴 뜻을 제대로 잘 파악하며 읽기란 좀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저한테는 그랬지요 ^^
실제로 메밀꽃은 화분에 핀 것만 봤지, 밭을 이룰 만큼 피어있는 풍경은 본 적이 없어서, 저는 실감있게 상상이 잘 안되어요 더구나 달빛 아래 메밀꽃밭을 걸어가는 풍경은 더 상상이 잘 안되어서 아쉽답니다. 달빛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메밀꽃 핀 봉평에 가보고 싶어요.

oren 2018-03-24 16:57   좋아요 0 | URL
hnine 님은 메밀밭을 여태 못 보셨군요. 저는 어릴 때부터 메밀밭, 메밀꽃, 메밀묵 등과는 아주 친숙했는데 말이지요.. 어른이 되어서 메밀과는 한참 동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메밀과 가까원진 건 봉평에 자주 드나들면서부터였습니나. 겨울철마다 스키 타러 보광피닉스파크를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봉평 읍내에 있는 단골 메밀국수집을 꼬박꼬박 찾았으니까요. 봉평뿐만 아니라 대화까지 가서도 메밀국수를 두어번 맛 본 듯한데, 그 동네를 다닐 때면 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함께 떠올리곤 했지요. 어릴 때 가끔씩 보았던 ‘눈이 내린 듯한 메밀밭 풍경‘과 함께 말이지요...

hnine 2018-03-25 10:10   좋아요 0 | URL
저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메밀꽃 축제가 가을에 있네요 (그것도 이제 알았습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책으로 읽으며 상상하던 것과 비교가 안되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요. oren님은 눈이 내린 듯하다고 하셨고, 이효석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다고 했고, 저는 뭐라고 할까요? ^^

세실 2018-03-24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생원과 동이의 관계.. 막연한 짐작으로...그쵸?ㅎㅎ
이효석의 <산> 궁금하네요.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니 절대 읽을 일 없겠다 생각했는데....국어 공부의 폐단이죠.

hnine 2018-03-25 10:13   좋아요 0 | URL
세실님도 막연한 짐작으로? ^^ 저는 중학생때는 막연한 짐작도 안가더라고요. 지금 읽으니 확연히 알겠던데 말이지요. 그래도 나이는 그냥 먹은게 아니었나봐요.
이효석의 <산>은 대단한 스토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문장이 너무 좋고, 산을 소재로 하면서 일인 주인공의 심경을 기가 막히게 이입하여 표현한데 감동받아서, 제가 친구에게 이 작품 읽어보라고 하면서 얘기하기를 ˝버릴 문장이 없어˝라고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