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은 소금을 뿌린 듯 하다고 했고, 언젠가 내가 올린 리뷰 답글에 oren님은 눈이 내린 것 같다고 하셨다.

논도 밭도 아직 초록 일색으로 펼쳐져 있는 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흰색 물결. 저게 뭐지?

메밀꽃은 그런 방식으로 눈길을 끌고 있었다. 혼자 피어있으면 그냥 지나쳤을 별 특징 없이 생긴 작고 평범한 꽃.

 

밤에 보면 낮과는 다른 분위기이겠으나 달빛 밝기의 몇배 환한 전깃불 조명을 받고 있을테니 어쨌거나 허생원과 동이가 말을 아끼며 걷던 밤 달빛에 본 그 메밀꽃밭은 아닐 것이다.

 

 

 

=  2018년 9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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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7 - 2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7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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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학당 출신인 윤도집의 처 환갑잔치를 명분 삼아 윤도집의 집에서 동학당 지도적 인물들이 모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학당도 이미 시천교, 천도교로 나뉘어 규합이 필요한 상태. 이 자리에 뒤늦게 나타난 김환 (구천) 를 대하는 사람들, 특히 윤도집의 태도에서 김환의 신비스럽고도 그림자 같은,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못하는 카리스마를 알 수 있다. 무장투쟁과 교세확장 둘 다 욕심을 내어서는 안될 것임을, 김환은 윤도집에게 경고하는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이미 알고는 있으나 실천은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 김환은 독립군 자금 유통을 위해 혜관 스님을 만날 목적으로 평사리로 돌아온다. 돌아온다기 보다 잠적해들어온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하지만 혜관과 길이 엇갈려 김환은 강쇠를 데리고 묘향산으로 떠나고, 그것을 안 혜관은 길을 떠나는데 가는 참에 서울에 들러 간도에 가보고 싶어하는 봉순을 데리고 동행한다. 서희가 있고, 길상이 있고, 월선이 있는 간도는 봉순에게 마치 고향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기에 봉순은 마음이 들뜬다.

간도에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러 전주로 떠나기로 마음 먹은 봉순은 서희의 출산 소식을 들으며 눈물 짓는다. 봉순이 서의돈의 구애를 뿌리치고 가는 서운함으로 눈물짓는 줄 알고 행랑어멈은 위로하지만 봉순은 그때까지도 길상을 마음에서 밀어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소리를 배우러 가는 길이라니 앞으로 그 소리에 한을 담을 것이고, 그러면 소리는 좋겠다지만.

한편 광산 투자로 크게 손실을 본 조준구는 평사리 땅의 거지반을 황춘배 노인에게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서희는 공노인을 통해 황춘배로부터 그 땅을 다 사들일 생각을 한다.

 

"학문을 잘못하면 병이 들 수도 있을 거요. 자기 자신을 찾다 찾다 보면 좁쌀이 되니까요." (100쪽)

 

"정권을 위해, 혁명을 위해 외세를 업는 자들과 우리는 친구가 아냐. 태평천국도 동학도 외세에 무너졌어. 태평천국이나 동학이 어떤 성질의 것이든 그것은 순전히 순수한 백성들의 힘이었다는 점을 자네, 강일석은 앞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게야. 만일 해답을 얻지 못할 시, 자네는 향리로 돌아가야 해." (338쪽)

 

7권을 읽으며 밑줄 그은 두 문장이다. 학문을 잘못하면 병이 들수도 있고, 자신을 찾는데 몰입하다가 좁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책을 읽는 행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행동과 실천없이 책 속에 묻히다 보면 사람이 책을 읽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그만 사람을 먹어버리는 상태가 바로 좁쌀이 되는 상태가 아닐까. 사람은 자기 자신이 좁쌀이 되어 있는지 미처 모르는게 문제이다.

 

외세를 업고 혁명을 도모하기는 순수한 우리 힘으로 도모하기보다 진전은 빠를지 모르나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

 

7권을 읽으면서는 대화체가 유난히 많아 마치 방송 대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서희가 드디어 평사리 자기 땅을 되찾는 일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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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9-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책을 읽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그만 사람을 먹어버리는 상태가 바로 좁쌀이 되는 상태가 아닐까. 사람은 자기 자신이 좁쌀이 되어 있는지 미처 모르는게 문제이다.˝
- 명심하겠습니다.

hnine 2018-09-01 20:05   좋아요 1 | URL
아이쿠, 페크님이 명심하실 문장은 아닐것같은데요.
책 읽는 시간 많은 사람에게 책 읽은 만큼 행동이 따르기란 어려운 것 같아서요. 책 읽고 학문하는 것도 좋지만 행동하고 몸소 실천하는 사람을 넘어서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야 그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 축에도 못끼지만 말입니다.
 

 

 

 

 

 

 

 

 

 

 

 

 

 

 

 

 

 

 

 

 

 

 

 

 

 

 

 

 

 

 

 

 

 

 

 

 

 

 

 

 

 

 

 

 

 

 

 

 

 

가을이 오고 있기 때문인지, 태풍의 영향인지.

바람이 선들선들한데다 비도 뿌리니 긴 소매 옷을 하나 더 걸치고 나갔다와야했다.

남편은 일본 여행가서 없고, 아들은 서울로 미술 학원 가느라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오는 날이라서

거의 하루 종일 나 혼자 집에 있는 날이었다. 이게 어쩌다 한번이면 좋을텐데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날이 자주 있다보니

이제 홀가분한 정도를 넘어서 자꾸 머리에 잡념이 들려고 한다. 잡념과 생각을 구별하는 나의 기준은 생산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데 있다. 아무 결론 없이 되풀이된다면, 그건 생각이 아니라 잡념. 그럴땐 웬만하면 몸을 움직이려고 한다. 제자리에서 마음을 돌이키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일단 몸의 위치를 바꿔주는 것이다.

(그마저 귀찮아서 에라 모르겠다, 우울모드에 잡아 먹히는 때도 많지만.)

 

집에서 나갈땐 바람만 불더니 우산 안가져갔더라면 어쩔 뻔 했나. 돌아올땐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수련을 보면 언제나 초등학교때 한 친구 생각이 난다. 여름 방학 숙제로 커다란 도화지에 수련을 그려왔는데 이건 도저히 초등학생이 그렸다고 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분명히 지금 내가 봐도 흰색으로만 보이는 저 수련을, 보라색 명암까지 넣고 연필 스케치 다 보이게, 그러니까 투명수채화를, '수련'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게 그려온 것이다. 나중에 커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미술관에 가서 직접 눈앞에서 볼때도 그처럼 충격받진 않았던 것 같다.

 

바람은 연못에 동심원을 만들고 빗방울은 수련 잎 위에 물방울로 머물러 있다.

밤송이 토실토실. 작년 밤송이가 아직 바닥에 떨어진채 남아있는 것도 있는데 새내기 밤송이들은 초록이 선명하다.

 

지금도 비가 계속 온다.

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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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8-31 12:23   좋아요 0 | URL
시야가 온통 초록 가득이었어요.
제가 아주 자주 가는 산책로 끝에 저 연못이 있는데 봄엔 수선화가 만발이지요.
분위기 공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방긋^^)

순오기 2018-08-3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멋져요~♥
생각과 잡념의 구별에 공감해요!^^

hnine 2018-08-31 12:25   좋아요 0 | URL
시간이 많으니 잡념이 많아져요. 대부분 쓸데 없는 걱정이고, 마음을 더 가라앉히기 일쑤이니, 안하는게 낫겠죠? 몸을 움직이니 건강도 건강이지만 잡념이 없어져서 좋더라고요.
 
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바로 전권에서 서희가 길상에게 결혼을 제안했지만 이권이 끝나도록 길상은 뚜렷하게 답을 못하고 마음만 어지럽다. 적극적이고 목표의식이 뚜렷한 여자, 그리고 신중하고 의리있지만 우유부단한 남자이다. 그당시 길상은 옥이네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서희의 청혼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하고, 서희와 길상의 관계는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고 한들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적어도 길상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희가 길상에게 결혼을 제안한데는 그동안 서희를 제일 가까이서 지지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거라는 기대, 그래달라는 부탁으로서가 아닌가, 나 같아도 고민했겠다.

6권의 주 내용은 간도 지역에서 독립운동의 전개, 그리고 조선땅을 벗어난 그곳에서 조선 사람들이 생존해가는 모습이다. 등장 인물들이 많은 만큼 그들이 제각기 사는 모습, 살아가려고 분투하는 모습만으로도 나 같은 사람은 충분히 재미있더라만 그게 또 지루하게 느껴지는 독자도 없진 않을 것 같다. 앞권에서 어린 아이들로 나오던 홍이, 두만, 봉순, 두메, 거복, 석이 등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각기 자기들의 앞날을 결정해가는 행보를 보여준다. 부모의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식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며 새삼 오싹하기도 했다. 부모의 행적을 그대로 닮아가는 삶도 있고 부모의 삶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삶도 있다. 이래 저래 누구도 부모가 만들어놓은 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듯 하다.

길상과 연이 이어지지 못함에 절망한 봉순은 결국 명기의 길로 들어섰고, 시국을 걱정하여 일을 도모하는 남자들은 많이 등장하나 종교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신분이 다른 그들의 뜻이 하나의 일치된 행동으로 모아지진 않는다.

길상에게서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네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안 서희는 길상을 대동하고 그 여인네가 사는 곳을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인다. 최치수를 교살한 죄로 처형된 김평산의 큰아들 거복은 일제 밀정노릇에다가 여성편력까지, 조준구 이래 또하나의 평사리 출신 악인으로 등장한다.

갈수록 임이네의 파렴치함이 더해가고 월선에 대한 면목은 더욱 없어지는 가운데 자책감에 괴로와하던 용이는 친구 영팔이 있는 퉁포슬로 벌목일을 하러 떠나 월선은 또 혼자가 된다.

 

'나 명년 봄까지 살 수 있을지....산에 진달래가 필텐데 말예요.'

음성은 진달래 꽃잎이 되고 꽃송이가 되고. 밤길 가는 노새의 요령같이 멀어져 간다.

진달래의 구름이 되고 진달래의 안개가 되고 숲이 되고 무덤이 되고 붉은 빗줄기 붉은 눈송이 붉은 구름바다, 핏빛 같은 붉은 비가 내린다. 칠흙 같은 검은 비가 내린다. 주럭주럭 내린다.

 

-별당아씨의 마지막 순간을 구천이 회상하는 대목 (377쪽)-

 

태어나고 죽는 일만큼 당연한 일이 있을까마는 이 세상에 숙연하지 않고 구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는 것 같다.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생각으로 옮겨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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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8-08-3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렇게 정리해주어서 기억을 되살려보내요. 토지 10년 주기로 다시 읽어야지 했는데 실천을 못하네요.ㅠ

hnine 2018-08-31 20:19   좋아요 0 | URL
돌아서면 잊어버리는지라 저도 매권 읽을때마다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기록을 남겨두기로 했어요.
대화체가 많고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는지라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읽고 있답니다. 순오기님은 벌써 읽으셨을줄 알았어요 ^^
 

 

어떤 힘든 조건에서 버텨낼 수 있게 하고 싶으면 그 조건에서 있어보기를 여러번 반복하는 훈련보다는 그보다 좀 더 힘든 조건을 몇번 경험하게 하는게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불과 일주일 전에 낮 최고 39.4도까지 경험하고 나니 어제처럼 32도 정도 날씨는 더운게 아니라 선선하다는 생각까지 드니 말이다. 운동 선수들이 평소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받는 것도 비슷한 원리 아닐까.

올 여름 온 국민이 든든한 모래주머니 훈련을 받았다.

아직 여름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곧 맞게될 가을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울까.

 

 

 

 

 

 

 

 

 

추위는 오기로, 깡으로 라도 버티겠는데 더위는 정말 맥을 못추겠다. 집 밖에 나가면 일단 호흡이 턱 막히고, 뛰는 것도 아니고 최저속으로 걷고 있는데도 숨이 찼다. 동네 산책은 나갈 엄두도 못내고 그저 책 몇권 들고 아파트 단지내 독서실에 가서 에어컨 혜택을 받고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위의 나무 사진도 아파트 단지내 어린이집 앞에서 찍은 것들.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나무보다 새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새에 관심이 간다. 아마도 새벽에 듣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완전 우점종인 저 새.

이름이 뭔지 한참을 도감을 뒤적인 끝에 <물까치>라고 자체 동정 (틀릴지도 모른다).

날아다니고 있을 때는 사진 찍기가 어려워 매번 기회를 놓쳤는데, 어느 날 내 방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저렇게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되어 얼른 찍었다. 저 푸른 색 때문에 물까치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얘는 국립중앙박물관 뒷길에서 찍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까치.

 

 

 

 

<토지>를 읽다가 가끔 다른 책도 기웃거린다. 현재는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시간여행에 관한 책인데 책 제목만큼이나 특이하고 재미있다.

예전엔 동시에 3권까지도 돌려가며 읽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두권도 겨우 읽는다. switching이 예전만큼 제깍제깍 안되어서 ㅠㅠ.

 

 

 

 

 

 

책만 읽는 것이 지루했던 어느 날.

사온 가지를 보고 뭘해먹을까 생각하다가 그렸나보다.

가지가 통통하고 예뻣다.

 

가지를 미국에선 egg plant 라고 하는데 영국에선 aubergine이라고 한다.

가지무침을 해먹었는데 물 끓여 찌는게 덥고 귀찮아서 그냥 전자렌지에 돌렸더니 확실히 더 퍽퍽하고 맛이 없었다.

다음엔 귀찮아도 쪄서 무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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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2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 온 국민이 든든한 모래주머니 훈련을 받았다.˝는 훌륭한 글에 박수를...
가지를 그리신 훌륭한 그림에 박수를... 짝짝짝 칩니다.
덕분에 좋은 감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hnine 2018-08-26 13:57   좋아요 0 | URL
오늘도 방금 산책을 다녀왔는데 선들선들해진 날씨에 긴팔 셔츠를 하나 더 입고 나갔다왔어요. 돌아올땐 비까지 마구 쏟아지더군요.
자연의 힘보다 더 무서운게 있을까 싶어요.
잘 보아주시니 감사드려요. 울적했던 기분이 반짝 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