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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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소설 자체를 읽는 것인지 작가를 읽고 싶은 것인지 구분이 안될때가 있다. 그럴려면 일단 소설에 관심이 가는 일이 먼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다 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을 것이고, 다음엔 그 작가의 소설을 읽음과 동시에 그 소설 속에 담긴 작가의 마음, 작가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일도 작동을 시작하는 것이리라.

이전 작으로 <안녕 주정뱅이>를 읽었고, 그때 리뷰를 쓰면서 작가 관련 인터뷰를 좀 찾아봤고, 우연히 작가와 함께 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생겨 코 앞에서 그녀가 자기의 작품과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늘 뭐 먹지>라는, 소설은 아니지만 작가가 무척 사랑하는 책이라는 먹는 일과 관련된 에세이를 상품으로 들고 들어왔다.

최근 검은 바탕에 노란 색 선명한 표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당연히 읽어야지 생각하고 손에 잡은 순간, 두께는 얇고 200쪽 채우느라 그랬는지 글짜 간격은 널널했다.

원래 계간 <창작과 비평> 2016년 여름호에 <당신은 알지 못하나이다> 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단편이었던 것을 개작하면서 50쪽 정도 늘려 단행본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더 늘려보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무리였다는 작가의 소감을 들었다.

두께도 얇은데 한번 읽기 시작하니 가독성마저 있어 손에서 몇번 놓지 않고 다 읽어버렸다. 가독성이 높은데에는 권여선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 작품이 작가의 이전 작과 조금 다르게 추리소설 형식을 하고 있다는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미모의 여고생 김해언이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소설의 발단이 되니까 말이다. 각 챕터마다 화자를 달리하면서 피해자의 동생이 나오고, 친구, 범인으로 지목받은 사람들, 그 가족 등이 등장한다. 살인 사건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사건이 도입되는데 범인으로 지목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김해언이 죽은 날 함께 있었던 것이 목격된 남자 신정준이 나중에 결혼해서 낳은 아기가 유괴되는 사건이다. 소설이 끝나도록 이 두 사건의 범인이 누구라고 명확하게 밝히진 않는다. 독자가 추리하고 짐작할 뿐.

날때 부터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할때 여러 가지 잘못이 저질러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정준이 그랬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히 일해도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명을 쓰고 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받은 기회마저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뜨고 마는 사람이 있다. 한만우가 그랬다. 죽은 언니의 미모는 따르지 못하지만 그보다 훨씬 똑똑했던 동생 김다언은 언니가 죽고 범인도 밝혀지지 못하고 지난 17년 동안 자신은 물론 엄마의 고통과 이상 행동을 봐오며 언니를 대체한 삶과 복수를 시도한다. 신정준의 아내이자 죽은 해언과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윤태림을 속물중의 속물이라고 마음껏 비난하기엔 거기엔 우리들의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유괴당하고 종교와 시쓰기를 통해 괴로움을 벗어나보려는 윤태림이 심리상담사 앞에서 하는 독백 형식의 글은 그 어느 대목보다 숨죽이며 읽게 했다.

짧은 분량이라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진행되고 압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작품 속에 너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죽은 사람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남겨진 사람들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댓가를 치르는지에 대해 작가는 각자의 입장에서 세밀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세월호 문제, 종교, 신의 문제, 사회 부조리의 문제 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주제들이다. 너무나 무거운 주제들을 조금씩 조금씩 건드려서라도 짧은 분량 속에 다 집어넣고 싶어한 과도한 의욕이라고 말하면 너무한지도 모르겠다.

원래 제목이었다는 '당신은 알지 못하나이다'가 너무나 막연해보이듯이 바뀐 제목 '레몬'도 그 점에선 다르지 않다. 책 구매자의 눈길을 잡아끄는, 출판사 쪽 입장에선 분명 이전 제목보다 성공적인 제목이긴 하지만 작품 내용 자체와 연관시키기엔 무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관련 없진 않으나 주제를 꿰뚫는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장편소설이라고 내세우기엔 짧은 분량도 내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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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9-07-2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어야지 하고 계속 미루다가 나인님 글 읽으니 조금 더 미뤄도 괜찮겠다 싶어져요.

hnine 2019-07-21 10:1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쓴소리를 썼나요? ^^
그런데 미루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일단 손에 쥐면 금방 읽혀요. 어떤 작가나 그렇겠지만 권여선 작가도 작품에 들이는 애정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완벽주의랄까.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가서 느낀 점도 그러했지요. 되도록 결점 없는, 내놓아 부끄럼 없는 작품을 향한 의지가 대단하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9-07-2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출판사의 상술이 느껴질 때 반갑지 않지요.
요즘은 작가의 의도보다 출판사의 판매 전략에 좌우되는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개선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hnine 2019-07-21 13:37   좋아요 1 | URL
페크님, 한번 읽어보셔요. 저는 좀 아쉬운 점을 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평이 좋은 작품이거든요. 그리고 제목에 대해서는 나중에 작가도 동의했고 만족한다고 하더군요. 차기작도 이미 쓰고 있는 중이라니 곧 또 다른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답니다.
 
토지 20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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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0년 만에 끝냈다는 토지 20권의 마지막은 극적이지 않았다.

앞의 권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여러 등장 인물이 교대로 나오면서 서민들의 대화를 통해서는 가난하고 굶주려야하는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지식인들의 대화를 통해서는 시대 상황, 그리고 시대상황을 위해 또는 그것을 틈타 어떻게 개인의 의지와 욕망을 실현시키려 하는가를 보여주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연인들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은 시대, 신분, 국가의 개입을 보여준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 자리를 지킨 서희. 그녀의 삶은 예사롭지 않은 일생을 살다간 부모와 할머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서희를 중심 인물이라고 할때 그것은 소설 속 사건의 중심 역할을 했다는 뜻이라기 보다 그 많은 등장 인물들을 직접 간접으로 그녀를 중심으로 관계 지어서 자칫 산만하고 일관성 없을 인물 관계를 피할 수 있게 하는 의미에서이다.

동학도, 항일운동도, 신학문도, 계속 언급되기는 하지만 어느 권에서도 크게 한번 터지는 일이 없다. 우리 역사가 그렇기 때문 아닐까. 민초들의 삶을 자잘하게 묘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지루하지 않아 20권 까지 읽어가도록 그리 어렵지 않았고 초집중해서 읽어야할 필요까지 없었지만, 20권 결말이라고 해서 결말지어지는 것이 없다. 물론 일본에 드디어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조선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대미를 장식하긴 하지만 아주 짧은 지면을 할애할 뿐이다.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어느 인물들에 의해 (누구라도 상관없다) 21권, 22권으로 계속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이지 않는다.

여섯 살때 부모의 사랑에서 격리되어 그 결핍을 독으로 품고 살아야 했던 서희. 어린 나이에도 어린 나이로 살 수 없었던 서희가 길상을 배우자로 선택하여 빼앗긴 토지를 되찾는 과정이 아무래도 이 소설의 중심 플롯일 것이다. 간도로 이주하였다가 마침내 조준구로부터 빼앗긴 토지를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에서 끝났더라면 어땠을까 감히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가 그러한 것을 작가가 어찌하랴. 강한 나라의 틈새에서 약자 역할을 해온 쪽의 얘기가 극적으로 소설화 될 수 있을 것인가.

20권을 통털어 그 많은 등장 인물 중에 아무리 봐도 서희라는 여인을 뛰어 넘는 인물이 없다. 서희가 신분 차이 따위 뒤로 하고 먼저 결혼을 제안하여 남편이 된 길상은 마지막 권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서희의 두 아들중 큰 아들 환국은 결단력의 소유자라기 보다 이를테면 햄릿 형 인물. 그보다 추진력 있던 둘째 아들 윤국은 학병으로 참전 중이다. 봉순의 딸이며 양딸인 양현을 슬하로 다시 데리고 온 서희는 늙어가면서 어쩌면 양현에게 더 의지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남편도 아니고 장성한 두 아들도 아닌.

한세대의 삶은 그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본다. 내가 살아가는 길은 부모가 살아온 궤적을 크게 벗어날 수 없고 내 자식의 삶 역시 내가 살아가는 길과 완전히 상관없을 수 없다.

그러니 끝은 없다. 그래서일까. 20권까지 읽은 느낌은 19권 읽고 난 느낌이나 18권 읽고 난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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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1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어마한 여정을 끝내셨네요. 책 좋아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욕심만 품고 정복하지는 못하는 높은 산을...... 축하드립니다^-^

hnine 2019-07-19 14:58   좋아요 0 | URL
syo님 감사합니다. 여기 서재 지인님들로부터 격려의 덕이 커요.
한 작가의 일생이 담긴 작품이니 높은 산은 높은 산이지요. 재미와 의의를 떠나서 우선 마음이 숙연해지는 작품인 것 같아요. 마지막 부분을 쓸 무렵은 건강도 좋지 않으실 때인데 그야말로 작가의 피눈물이 들어가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저는 살면서 어디에 그렇게 몰입해본 적 있었나 갑자기 자체 반성 모드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ㅠㅠ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7-19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7-20 04:5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태백산맥은 예전에 읽었으니 양축을 건드리긴 했네요 ^^
읽는동안 제가 즐거웠던 것 같아요. 끈기가 없어 좀처럼 대하소설을 못 읽는데 토지는 제가 처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기도 하고 작가가 워낙 필치가 두말할 필요 없는 분이라서 술술 읽힌 편이어요. 알라딘 서재 친구분들께서 많이 격려해주신 덕도 커요.

감은빛 2019-07-19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단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소설의 짜임새나 완성도를 중심으로 생각하자면,
말씀하신 것처럼 토지를 되찾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오래전에 몇 권까지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읽다 말았을 뿐이지만,
hnine 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hnine 2019-07-20 04:56   좋아요 0 | URL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기 알라딘 서재에서, 토지 아니라 더 한 것도 많이 읽으신 분들 많으실텐데 이렇게 소소한 완독에 아낌없이 축하를 보내주실 줄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읽다 말았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어요. 토지라는 작품의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니까요. 저도 한권과 다음권 사이 시간 간격이 꽤 되었던 적도 있는데 좋지 않은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앞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되살려지더라고요. 그 덕에 끝까지 왔습니다 ^^
언젠가 다시 손에 드실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실거예요 ^^

책읽는나무 2019-07-1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글을 읽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요..한국사람으로 토지를 안읽고도 읽은 척 하기가 부끄럽다!고 쓴 사람이 있었는데 맞구나!!생각했습니다.
아무튼 hnine님 부럽습니다^^

hnine 2019-07-20 04:59   좋아요 0 | URL
아이쿠, 부러워하실 일인가요. 무슨 책을 읽으시든 그동안 20권 안 읽으셨겠어요? ^^ 저는 어떻게 하다보니 그게 토지라는 책이었던거죠. 어떻게 저랑 코드가 맞았던 것 같아요. 20권 아니라 2권 짜리도 읽다만 경우가 허다한데 말입니다. 그래도 다 읽고 나니 뿌듯하긴 하네요. 토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소중하고요.

목나무 2019-07-1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의 긴 여정을 마치셨군요!
축하드려요 에이치나인님^^
이런 대하 소설을 완독하셨으니 이제 제법 두꺼운 양의 책들에도 바로 덥석 잡으실 수 있을 것 같아 저는 그저 부럽습니다. ^^~

hnine 2019-07-20 05:06   좋아요 1 | URL
토지 20권 긴 여정 마치고 다음으로 고른 책이 권여선의 <레몬>이랍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어요 ^^ 생각보다 짧고 얇더라고요. 가독성 있기도 하고요.
말씀하신대로 길다면 긴 여정이었네요. 완독하리라 작정하고 읽은 것도 아니고 도서관 서고를 둘러보다가 토지 1권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보통은 1권은 이미 대출중일때가 많잖아요) 한번 읽어볼까 하고 빌려온게 어떻게 끝까지 오게 되었어요. 계속 그 도서관에서 한권씩 빌려다 읽었지요.
토지 소설도 그렇지만 읽으면서 집필하는 작가의 마음, 작가의 일생이 떠올려질때가 많았어요. 어제 남편에게도 그랬네요. 토지는 박경리 작가의 삶 그 자체라고.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 서재니까 이런 일로 이렇게 축하를 받네요. 그것도 토지가 제게 주는 선물 같아서 기뻐요.

페크pek0501 2019-07-2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으로의 긴 여행을 마친 것을 축하드립니다!!!

hnine 2019-07-21 13: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여행에 비유해주시니 더 멋진걸요. 길지만 후회없는 여행이었어요. 언젠가 그 길을 다시 밟게 되길 바라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진짜 여행지에 다녀왔을때와 다름없이 자신 못하지요.
한권 한권 나아갈때마다 작가의 노고가 정말 글자 사이 사이에서 읽혀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TV에서 봉순이 역할을 했던 배우가 얼마전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더 안타깝기도 했고요.
페크님께 댓글을 쓰다보니, 꼭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지네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격려와 공감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홍진화 2019-07-30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완독을 축하 드립니다...
한국 근대사의 역사을 들여다 볼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 됩니다...저도 젊었을때 읽다가 놓고 읽다고 놓고 했던 책을 토지 문학관에서 재편집하여 20권으로 만들었던 2012년에 완독을 하면서 젊었을때 읽었던 느낌과 50代에 와서 읽은 느낌이 전혀 틀렸던 느낌을 받았읍니다...조정래 작가의 근대사 100年을 시대순으로 `아리람`,`태백산맥`,`한강`을 연이어서 보는 재미도 있읍니다...`역사를 알아야 현재을 직시하며 미래를 연다`라는 말이 작금의 현실에 정신 똑바로 차려 반복되는 역사를 안 만들려면 지난 근대사을 잘 알고자하면 `土地`을 읽기를 권합니다....

hnine 2019-07-30 13:21   좋아요 0 | URL
말씀 감사합니다. 끈기가 없어서 대하소설 잘 못 읽는데, 토지는 용케 완독을 하였습니다만 완독이라는 말보다 일독(一讀)이라고 하고 싶네요. 태백산맥은 오래 전에 읽긴 했는데 아리랑과 한강도 읽을 수 있을지. 추천해주시니 시도해보겠습니다.
 
토지 19 - 5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9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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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십을 갓 넘긴 나이, 아직도 그는 아름다웠으나 몹시 수척했다. 십여 년 동안 놓았던 수틀을 다시 매어놓고 수를 시작한 것만 해도 허약해진 자기 자신을 추슬러보려는 그의 심중의 일단을 넘볼 수 있었다. 벌써 삼 년이 넘어가려 하는 길상의 감옥살이, 어쩌면 서희가 길상보다 먼저 지쳐버렸는지 모른다. (49쪽)

 

서희가 간도에서 진주로 귀향한 후 서희 집 일을 맡아해주던 장연학은 서희 집에서 독립하여 진주에 남강여관을 경영한다. 위의 구절은 장연학이 오랜만에 서희에게 들러 문안을 드리며 본 서희의 모습이다.

토지에는 워낙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어느 시점부터인가 딱히 서희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만, 잊을만할때쯤 등장인물들이 서희를 중심으로 한번씩 엮였다 풀어졌다 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항일 운동에 두드러진 역할로 행동을 보여주는 길상은 아니지만 아무튼 길상은 연달아 옥살이를 하는 것으로 나와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서희와 길상 사이의 두 아들 은 모두 장성하여 장남 환국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고 차남 윤국은 기화의 딸 양현과의 혼인이 성사되지 못하자 학병으로 지원하게 된다. 양어머니인 서희와 윤국의 간곡한 뜻에도 불구하고 양현이 정작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는 백정 출신 송관수의 아들 송영광이다. 영광도 양현을 좋아하지만 신분 차이, 다리 불구, 번번한 직업을 못갖고 있는 처지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영광은 양현의 뜻을 거부한채 양현이 있는 인천을 떠나 멀리 만주로 간다.

집나간 친엄마 양을례를 따라갔다가 거기서 알게 된 일본군 중위로부터 성병에 걸려 피폐해진 채, 자기가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할머니집을 찾아온 남희를 장연학은 병원에 데려가 비밀리에 치료를 받게하고 도솔암에서 요양을 시킨다.

토지 역시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이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관계도 여럿 나오는데, 그중 한 쌍이 정신이 깨인 일본인 오가타와 동경유학생이며 항일의식이 투철한 신여성 유인실이다. 오가타 모르게 혼자 아이까지 낳은 유인실은 아이를 조찬하에게 부탁하고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다. 유인실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조찬하는 아이가 커감에 따라 아버지인 오가타를 만나게 해주는 기회를 만든다.

아직 마지막 한권이 남아있긴 하지만 19권까지 읽은 소감으로는, 토지라는 이 길고 긴 작품은 기승전결 구분되며 파도치듯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끊이지 않는 잔물결을 계속 만들어내며 큰 바다를 보도록, 그렇게 쓰여진 작품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작품의 말미에 오니까 더 그렇다. 마지막 한권, 400여쪽을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게, 언제나 그렇듯이 조상부터 이어져오는 자손들의 북적거리는 삶의 이야기가 흘러가듯 펼쳐진다. 부모 세대, 또 그 부모세대의 과보로부터 좀처럼 자유롭지 못한 자손들의 삶이다. 그건 최참판가의 서희도 그렇고, 백정의 자식이라고 차별받는 송영광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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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07-1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장정의 끝이 이제 보이는군요!!
대단하십니다^^
라디오에서 모프로에서 4주년의 취지에 걸맞게 축하받고 싶은 사연을 보내달라고 했더니,어떤 청취자가 토지를 읽는데 4년이 걸렸다고 축하받고 싶다고 한 사연이 생각납니다.
hnine님은 4년이 아니어도,토지를 곧 완독한다는 것은 참...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미리 축하드립니다^^
아..저는 언제 읽으려나요??ㅋㅋ

hnine 2019-07-17 04:51   좋아요 1 | URL
1권부터 읽는 중간중간 다른 책도 읽어가면서 쉬엄쉬엄 읽어갔는데 어느 덧 마지막권을 읽고 있네요.
읽으면서 격하게 흥분한 때도 딱히 없고, 지루하게 읽은 적도 없고, 읽을만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만난 제 친구는 제가 토지 읽는 것을 보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 표지와 다르다면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토지 두 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완독했고요.
책읽는나무님께서도 언젠가 읽게 되실겁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햇빛이 아주 뜨겁지 않다면 이 용감한 아줌마는 모자, 양산 없이 산책을 한다.

얼굴 좀 타는 것에 대해 대범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차라리 얼굴 타는 것, 기미, 주근깨보다는 비타민 D 와 세로토닌이 더 절실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골다공증 예방, 우울증 예방. 햇빛 받아 부디 내게 부족함이 없는 비타민 D 와 세로토닌이 합성되기를 바라는 마음.

낮에 이렇게 돌아다니고 나서도 요즘은 저녁 때 또 한번 동네 산책 하는 버릇이 생겼다. 저녁 먹고 설겆이까지 하고 난 후. 해가 길어 아직 어두워지기 전, 저런 하늘을 보며 어제도 걸었다.

 

 

 

 

 

 

 

 

 

 

 

공작 단풍의 꽃.

저 볼록한 속에 씨앗을 담고 멀리 멀리 날아갈 것 같은 날개.

색깔이 예뻐서 찍어놓았다.

 

 

 

 

 

 

 

 

 

어릴 때 일이다. 나무를 좋아하시던 아버지. 엄마와 나무 얘기를 하시는 것 같았는데 자꾸 목빼기롱이 어떻고 저떻고 하시는거다.

'나무 이름이 일본 이름인가?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나무구나'

그날 일기장에 난 '우리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는 목빼기롱'이라고 썼다.

나중에 엄마께서 보시더니 '목백일홍'이라고 고쳐주셨다.

요즘은 '배롱나무'라고 더 많이 부르는 것 같다.

연분홍, 진분홍, 연보라 색의 꽃을 흔히 보는데 흰색꽃이 피는 것도 있다.

 

 

 

 

 

 

 

 

안그래도 산책길에 배롱나무꽃을 보며 아버지 생각을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과일 가게에 들러 체리를 보니 아버지 생각이 또 났다. 나무도 좋아하셨지만 과일도 좋아하셨던 아버지. 예전에는 지금보다  체리 가격이 더 비싸서 일부러 사다 먹은 기억이 없다.

언젠가 나 미국에 있을때 아버지께서 오셨다가 마트에 가서 체리를 보시더니 여긴 체리가 싸다고 하시며 거의 매일 즐겨 드셨었는데.

이번 달 24일이면 아버지 돌아가신지 벌써 4주기. 이번엔 아버지 산소에 가서 체리도 한 접시 올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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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0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7-13 21:03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더 친해지지 못했던게 아쉬워요. 이렇게 종종 추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도 좋긴 하지만요.
기분이 가라앉아있다가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기운이 나기도 해요. 저도 제 본성을 잘 모르겠어요 ^^
 
사랑에 빠진 여인들 을유세계문학전집 70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손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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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출판사들이 세계문학 시리즈를 출판하고 있지만 DH 로렌스의 이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오직 을유출판사의 을유세계문학전집에만 포함되어 있다. 출판될 당시 제목이 결정되기 까지 몇번의 변경 과정이 있었다지만 아무튼 원제도 Women in love이다.

DH 로렌스는 우리에게 이 작품보다는 <아들과 연인>,<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영국 작가이다. 1885년 영국 노팅엄 탄광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 형편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으나 교육열 있는 어머니 덕분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우수한 학생으로서 장학금도 받고 교사 자격증도 땃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교사직을 오래 할 수 없었다. 살면서 여러 병을 전전하며 고생했고 몇번의 건강의 고비를 넘기다가 결국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서구 세계를 변화의 급물결 속에 휘몰하치게 했던 산업화,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폐를 초래한 세계 대전, 문명의 몰락, 개인적인 건강 등의 상황 속에서 복잡한 갈등과 고뇌 속에 탄생했을 로렌스의 작품들도 순탄한 출판의 과정을 겪지 못했다. 이 작품 <사랑에 빠진 여인들>만 해도 본국인 영국에서 출판사를 찾지 못해 1920년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단순하게 보자면 어슐라와 구드룬이라는 두 자매의 연애 이야기인데, 굳이 연애담이하고 한다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연애담이라고 할까. 제목만 보거나 책의 줄거리만 읽고서 만만히 보기엔 780쪽 분량 만큼이나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시대와 관습과 인간 관계, 삶의 방식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비판, 풍자, 주장, 개성으로 꽉 차 있는 소설이다.

등장 인물중 특히 버킨이라는 인물에게 작가 자신의 생각을 많이 투영시키고 있다지만 버킨 뿐만이 아니다. 작품 속 모든 등장 인물의 심리를 꿰뚫어, 완전히 다른 타입의 인물과 다른 방식의 사고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등장인물들의 사고 방식이란 모르긴 해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입견 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하고 구체적인 인물들이다. 작가의 생각을 한 인물에게 대변하게 하기엔 부족할 만큼 그는 생각이 남들과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에 대한 버킨의 생각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옛날식 사랑은 끔찍한 속박이요, 일종의 강제 징병 같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사랑이니 결혼이니 아이들이니 하는 것들, 그리고 만족스러운 가정과 부부 생활이라는 끔찍한 사생활 속에서 다 함께 부대끼는 삶은 생각만 해도 혐오스러웠다. (중략) 그것은 언제나 짝을 지어 사적인 집이나 방 안에 고립되어 있는 불신 가득한 부부들의 공동체였으며, 이를 넘어서는 그 어떤 삶도, 그 어떤 다른 직접적이고 사심 없는 관계도 용인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쌍의 만화경이자, 결혼한 한 쌍이라는 단절되고 분리주의적인 무의미한 실체였다. (314, 315)

결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버킨 (남자)은 그러면 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대체로 성을 싫어했다. 성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남자를 부서진 반쪽으로, 여자를 나머지 부서진 반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그 성이었다. 그는 자신이 자신 안에서 독립된 하나이기를, 여자도 그 자신 안에서 독립된 하나이기를 바랐다. 성이 다른 욕구들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복귀하기를, 즉 성취가 아니라 하나의 기능적인 과정으로 여겨지길 원했다. 그는 성에 입각한 결혼을 믿었다. 그러나 이를 넘어,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여자는 자신의 존재를 갖는 그런 결합을, 두 개의 순수한 존재들이 한쪽이 다른 한쪽의 자유를 구성하면서, 마치 하나의 힘 속에 들어 있는 양극처럼, 두 천사처럼, 혹은 두 악마처럼 서로 균형을 이루는 그런 결합을 원했다. (315)

 

자매중 한명인 어슐라에게 마음을 두고 있으면서 자기의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어슐라에게 얘기하며 이런 결혼, 이런 관계여야 한다고 피력하는 버킨.

버킨의 생각을 종용받으며 어슐라는 그들의 관계를, '한쪽이 파괴되어 다른 쪽이 존재하거나, 한쪽이 무효가 되는 바람에 상대방이 승인을 얻는, 영원한 시소 상태'로 비유한다 (720). 어쩌면 그녀의 생각이 틀리지 않을 수도.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 역시 우리가 현실이나 소설 속에서 흔히 보는 결혼 적령기 여인들과는 다르다. 이들의 독특하고 주관적인 생각들은 780쪽 책의 끝까지 가도록 완전히 간파했다고 할 수 없어서 이해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었다. 이들은 나쁜 결혼의 예를 부모의 결혼에서 찾고 비판한다.

이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은 남녀 사이의 애정 관계 뿐 아니라 남자와 남자 사이의 애정 관계가 비교적 당당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어슐라와 커플이 되는 버킨과, 어슐라의 여동생인 구드룬과 연인 사이인 제럴드, 즉 두 남자의 관계이다. 읽다 보면 어쩌면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결혼, 사랑의 관계는 각자 다른 성의 연인보다 이 두 남자 사이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판이 쉽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획기적인 생각과 노골적인 묘사 등이, 저 단순해 보이는 제목 속에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 이 소설. 한번 도전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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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7-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그래도 제목은 들어본 것 같은데, 이 책은 제목도 처음 듣는 것 같아요.
그런데 표지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고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날씨가 매일 더워요.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hnine 2019-07-09 04:43   좋아요 1 | URL
책은 낯설어도 표지 그림은 어디서인가 본 것 같으실 수 있어요. waterhouse 라는 사람의 그림인데 이 사람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거든요.
이제 드디어 30도를 넘는 날씨가 시작되었어요. 근래 여름이란 과거의 여름과 비교가 안되는 더위인지라 저는 이제 여름 날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해요. 아직은 열대야까진 아니라서 다행인데 그것도 곧 시작되겠지요.
피할 수 없으니 잘 견디는수밖에요 ㅠㅠ

페크pek0501 2019-07-1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에 획기적인 소설이었겠네요. 저는 남자끼리의 동성애 연애를 그린 ‘브로크백 마운틴‘을 읽고 슬펐어요.
많은 이들이 그 소설을 읽었으면 해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명작이죠.

을유문화사 책을 예전에 즐겨 봤는데 이젠 글자가 작아서 사게 되지 않더라고요. 이 책은 글자가 작지 않나요?

hnine 2019-07-11 19:58   좋아요 1 | URL
전 솔직히 과거에, 또 현재에도 무슨 근거로 동성애가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어요.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닐까요? 이 소설에서는 동성애 자체를 옹호한다기 보다 버킨이라는 인물이 이상적으로 보는 관계가 이성의 연인에서보다 누구나 친구 사이로 알고 있던 동성 친구에게서 발견되었다는 것이지요.
브로크백 마운틴은 하도 들어서 마치 읽은 양 착각되는 소설, 그리고 영화 중 하나이지요. 그런데 아직 못 읽었어요. 꼭 읽어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해야겠어요.
을유문화사 세계 문학 시리즈 책, 글자 큼직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