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유럽 도시 읽기 - 건축가 동생과 책벌레 누나 33일간 1800km 자전거 여행을 떠나다
이용수 지음, 이정은 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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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의 남동생과 기혼의 누나가 함께 자전거로 유럽 4개국, 1800km를 33일 동안 자전거로 다니면서 관심있는 건축물 답사를 한 기록이다.

글을 쓴 이용수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 설계일을 하고 있었고 사진을 찍은 누나 이정은은 건축과 무관한 직장인. 체력과 마인드를 고려할때 함께 여행하기에 좋을거라 생각하고 동생이 자전거 여행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 한달여 기간 맹연습을 거쳐 중고 자전거를 20만원 주고 구입해 떠났다니 체력과 마인드가 여행에 적합한 것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여행기를 읽어보니 자전거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무나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길이 좋고 날씨 좋아도 하루 평균 70km를 달리기가 쉽지 않을텐데 비 오고 오르막길의 연속이고 체력 소모도 많은 과정이다보니 나중에 보람은 있겠지만 역시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순전히 여행과 휴가를 목적으로 떠난 일정은 아니고 출판사와 약속이 있었다니까 여정 계획이 어느 정도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책제목만으로는 이러한 여행 목적이 드러나있지 않지만 읽어보면 들러볼만한 건축물 중심으로 일정이 짜여져 있고 그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 그 나라와 도시의 건축물 특징, 경향에 대한 내용이 많다. 많은 건축물과 건축가가 등장하고 이들이 우리 나라에 설계한 건물들도 소개를 해놓았다. 이 중엔 이름을 들어본 건축가들도 있지만 (도미니크 페로, 르 코르뷔지에, 이오밍 페이, 렌초 피아노,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마리오 보타, 렘 콜하스, 노먼 포스터, 리차드 마이어 등)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리트벨트, 장 누벨, 요 코에넨, 벤 반 베르켈, 헤르조그 & 드 뫼롱 등). 또한 저자가 들른 유럽 4개국의 도시들은 관광지로 익숙한 곳도 있지만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조그마한 마을도 있었는데 저자가 주로 건축물 위주로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들른 건축물들 중에는 건축가보다 더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아마 내가 유럽의 많은 곳을 다녀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전공자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꼭 세계적으로 큰 도시의 큰 건축물만 설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명한 건축가들 소개를 하면서 이들이 우리 나라에 설계한 건물들을 예로 들어놓은 것만 봐도 그랬다. 이 건물들 중에는 공공 건물 (동대문 플라자) 도 있지만 학교 건물도 있고 (이화여대 ECC, 서울대학교 미술관) 리암 미술관은 세 건축가들이 각기 맡아서 설계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갔던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의 여러 도시들은 각각의 역사와 상황, 환경에 맞게 도시와 건축의 방향을 설계해왔는데 우리 나라는 효율성과 유행은 몰라도 그 지역의 역사와 내력을 무시하고 개발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인이 만들었다고 할만큼 환경을 극복해가며 국토를 일군 역사를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라서 그런지 효율성을 고려하여 실로담, 슈뢰더 주택 등 조립식 스페이스 형태의 주거시설이 발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는 환경 보전에 특화된 도시 같았다.

현대적으로 설계된 건축물 사이에 수백년된 건물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모습은 런던을 여행할때 목격한 바이지만 그것은 런던만의 경우는 아니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을 일본 건축가들만 해도 여럿 받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안나오고 있는지, 그것도 아쉽다.

건축물은 사람이 들어가서 살고 일하는 건물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이제는 그 도시와 그 나라의 랜드마크가 되어 그곳을 방문해야할 이유가 되고 그곳에 오래 오래 살아남으며,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에게는 알게 모르게 아티스트의 자격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력적이다.

이 책은 여행기의 성격도 분명 있지만 건축 답사에 관심있는 사람이 보면 더욱 반가울 책이다.

500쪽에 이르는 두께이지만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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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8-16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의 딸이 남편과 함께 유럽에서 한 달 동안 지내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요즘 젊은이들은 참 멋있게 사는구나 했어요.
교사 부부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더군요. 알찬 방학을 보내는 것 같았어요.
아직 아이가 없는 신혼 부부니 실컷 즐기라는 말을 해 주고 싶더라고요.

hnine 2019-08-17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장소를 경험하려면 한달도 부족할지 모르죠.
젊은 나이 아니면서 저도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다니까요^^
위의 책에서 처럼 자전거 여행은 못하겠지만요. 저자는 꼭 여행 목적으로만 떠난건 아닌것 같아요 . 출판사와 약속도 있었고 저자의 직업상 필요성도 있었고요. 목적이 분명하면 실행력이 더해지겠지요.
(저도 지금 짧은 일주일이지만 집 떠나와있는 중이네요.)
 
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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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바로 이어 <쾌락독서>를, 다음으로 <판사유감>까지 내리 읽었다. 아마 어느 한 책이라도 재미가 없었으면 이렇게 연달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판결문 조차 너무 어렵게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인데다가 책 읽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글 쓰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편에 속한다고 하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이 쓴 글이 지루할 리가 없다. 어렵고 복잡하게 쓰는 것으로써 부족한 지식과 사고력을 보충해야할 수준은 이미 넘어 섰다. 그러니 읽는 사람으로서는 아주 경쾌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읽어본 문유석 판사 글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세권의 책이 같은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은 주로 판사로 재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것들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1년 수학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 법학 교육과의 차이점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도 이런 소리를 하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여자들은 다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는 내숭덩어리니까 남자가 좀 터프하게 밀어붙일 수 밖에 없다',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니 어쩔 수 없다'.

저 역시 분명하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입으로 싫다고 말하면 싫은 겁니다. 인간 사회에 살고 싶으면 본능을 억제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120쪽)

 

이런 면에서 이번 사태에서 다른 어떠한 거대담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채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 과학자의 할 일이라면서, 과학자체의 방법만으로 검토하고 논의했던 무명의 과학자들이야말로 우리를 질식하지 않게 해 주는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137쪽)

 황우석 사태가 어떻게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는가. 저자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과학 하는 자세에 대한 본질 역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 거대담론보다, 사람들의 비난 여부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법학 교육은 학생들의 머리 위에 거대하고 복잡한 개념의 탑을 쌓아놓고 그 완결적 구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도록 하고는 실제 지금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 일하면서 알아서 자기 머릿속에 들어 있는 개념들에 꿰어 맞추든지 뭐 알아서 하라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하버드 로스쿨의 법학은 그야말로 '실사구시'하는 방법입니다. (153쪽)

법학 뿐 아니라 미국 교육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례 중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저자는 실사구시라는 말로 잘 요약해주기까지 했는데, 실례로 쓰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 연구한 것을 실례로 적용시키는 것을 중시하고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우리 법학은 가상적인 '평균인'의 판단과 행동을 전제로 이론을 전개하는데, 여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행동을 인센티브와 레버리지로 설명하고 예측하려 합니다. (154쪽)

 

사람은 '논리'나 '당위'로 절대로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해야 비로소 변화하지요. (206쪽)

 

 

책장이 술술 넘어가게 읽힌다. 더운 여름 날 부담없이, 하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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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9-08-1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주의자 선언> 을 읽고 좋아서 <쾌락독서> 를 연이어 읽었습니다. 곧 <판사유감>을 읽으려 하는데 반가운 리뷰네요^^

hnine 2019-08-12 07:23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은 순서로 읽었어요. 다락방님 서재에서 <쾌락독서> 리뷰 보고 읽어야지 했는데 집에 마침 <개인주의자 선언>이 있기에 그것부터 읽었고, 다음에 <쾌락독서> 읽고 나니 다른 저서도 더욱 읽어보고 싶어졌지요. 그래서 <판사유감>까지 읽게 되었어요.
동영상 찾아보니 이분 말씀도 글처럼 재미있게 잘 하시더라고요. 재미있기만 한게 아니라 중간중간 번뜩이는 통찰과 콕 집어 비유하시는 특징까지. 어렵지 않게 말하고 글 쓰는 건 실력이 바탕이 되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답니다.
<판사유감>도 즐겁게 읽으실거예요.

고양이라디오 2019-08-13 10:43   좋아요 0 | URL
재밌기만 한 게 아니라 번뜩이는 통찰까지 있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Nussbaum 2019-08-11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서점에 잠깐 들르러 하는데, 시간 되면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

이제 더위가 곧 끝인데 조금만 힘내세요 ㅎ

hnine 2019-08-12 04:40   좋아요 1 | URL
나온지 꽤 된 책이라서 도서관에도 있을것이긴 한데요.
어제는 기온은 높은데 바람이 꽤 강하게 불어서 저녁땐 꽤 먼거리까지 산책도 다녀왔답니다.
더위가 언젠가 끝나긴 하겠지만 8월 말 까진 각오하고 있어야겠지요? 잘 참고 지내보겠습니다. 두 주먹 불끈! (^^)

단발머리 2019-08-11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쾌락독서 읽고 있는데, 나머지 책들도 읽으려고요. 문판사 좋아하게 된 1인입니다^^

hnine 2019-08-12 04:46   좋아요 1 | URL
<개인주의자 선언>, <쾌락독서>에 비해 이 책이 제일 가볍게 술술 읽혔던 것 같아요.
<개인주의자 선언>은 평소에 개인주의라고 생각하면서 괜히 죄스러워서 함부로 내세워 말하지 못하던 제게는 첫 페이지부터 너무나 시원하게 읽힌 책이었고 <쾌락독서>는 책 읽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노력에 의한 것도 있지만 타고나는 것도 있나보다 생각하게 한 책이었어요.
이 책은 위의 두 책에 비해 제목은 좀 덜 독창적이지만 재미는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즐겁게 읽으실거예요.

고양이라디오 2019-08-13 10:42   좋아요 0 | URL
전 판사유감이 가장 무거울 줄 알았는데 가볍다니 의외네요. 기대가 됩니다^^
 
좁은 방 - 내 빵 생활 이야기 보리 만화밥 7
김홍모 지음 / 보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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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이라는 제목 아래 '내 빵 생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 위의 표지 그림엔 창살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들은 모두 창문 밖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며칠 전에 본 택배 종사자의 이야기 <까대기>를 읽고 좋아서 보리만화밥 시리즈에서 두번째로 고른 책인데 김홍모라는 만화가의 역시 자전 만화이다.

홀아버지 슬하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 어렵게 삼수 끝에 미술대학에 들어갔으나 기대와는 너무 다른 수업에 흥미를 못붙이던 중 학생운동에 가담하게 되었고 시위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끌려간 후배의 석방을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이듬해 미술대 학생회장,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이 되었고 지명수배자가 되어 구치소에 수감된다. 이 책은 작가가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어 지낸 8개월 동안의 생활을 그린 만화이다.

그가 구치소에 들어가 만나게 된 사람들 모두가 범죄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초범방, 누범방, 조폭방, 여러 방을 경험하면서 과연 저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을까 싶은 사람, 자기와 같이 학생 신분으로 학생운동을 하다 들어온 사람, 심지어 아는 선배등, 여러 사람을 만난다. 아주 자세한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했겠지만 감시와 제재 속 그 제한된 환경에서도 같이 뜻을 모아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성공 여부도 그렇지만 뜻이 모아져서 함께 행동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곳이 어디든 사람 사는 모습은 기대하지 않게 비참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이 만화에서는 1990년대 학생운동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학생운동의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는 19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던 나로서, 그냥 추억으로만 떠올리기에 아픈 이야기들이 많았다. 망각의 힘은 어쩔 수가 없어서 그 시절을 많이 잊고 살고 있다가 이렇게 만화로 다시 보게 되니 바로 내가 다니는 학교, 내 학우의 이야기들, 뉴스나 신문이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학교 다니던 때의 기억이 다시금 솟아올라 뭉클했다.

맘껏 먹이지 못했고 가르치지 못하여 가슴 아팠을 작가의 아버지가 수감중인 아들의 면회를 오셔서, 탈퇴서 안썼다는 아들에게 쓸것을 강요하기 보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네가 뭘 잘못했다고 저놈들한테 그런 걸 쓰냐?' 라고 하신다. 옆에서 교도관이 면회 내용을 받아 적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따뜻한 감성은 저런 아버지의 성품이나 응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빵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따뜻했다.

이 만화를 작업하며서 지금의 나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어쩌 살고 있나......

선배, 동료들의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223쪽)

 

만화에선 자기의 성격을 발랄하게 그린 감이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진지한 성격이었다고 후기에 쓰고 있다. 내가 찾아본 인터뷰 동영상에서 본 김홍모 만화가의 모습은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사람 같았다. 이 만화 외에 다른 종이 만화들이 꽤 나와있다. 동양화 전공이기 때문일까. 그림이 복잡하지 않고 편안하다.

지금은 제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작가를 응원한다. 그가 그린 다른 만화도 몇권 더 구입해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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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세트 - 전2권 - 주교의 새 그루터기 실종 사건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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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시간 여행을 꿈꾸게 되는 것일까. 아직은 가능성의 세계로만 존재하는 시간 여행. 진지하게 꿈꾸어 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과연 나 뿐일까 궁금해진다.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바로 그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이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은 이 외에도 있지만 독특하다고 한 것은 분명 코니 윌리스만의 개성이라고 보여지는 서술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서 다른 시공간으로의 이동을 '강하'라는 용어로 부르는데, 이 이동은 '네트'라고 하는 특수한 지점에서 가능하다. 이렇게 다른 시공간대를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역사적 중요한 사건이 연루되면 시공간 편차가 발생하게 되고 인과모순이 일어나게 된다. 이걸 바로 잡아 해결해야만 하는데, 이런 오류와 교란을 바로 잡기 위해 자체적으로 자동 조절 장치가 작동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는 임의로 사람이 시공간대를 이동하면서 직접 오류를 바로 잡는 일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기제를 바탕으로 하여 작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종류는 아마 이 작품 한가지로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분량이 두툼한 것인지도.

또한 이런 시공간 강하를 반복 하고 나면 개인적 차원에서는 시차증후군을 겪게 되는데 극심한 피로는 물론이고 정서 체계에도 교란이 와서 평소와 다른 행동과 성격을 보이게 된다.

이 두툼한 이야기의 시작은 2057년을 살고 있던 네 사람과 한 마리 개가 시공간 이동을 통해 1940년 11월 15일 영국 코번트리 성당에 도착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들의 시공간 이동 목적은 2057년에는 이미 부서져서 존재하지 않는 코번트리 성당을 재건하고 싶어하는 한 부호의 명에 따라 코번트리 성당의 잔해중 '새(bird) 그루터기'라는 부속물을 찾아오기 위해서 과거로 이동해온 것이다. 이것부터가 참 독특한 설정이지 않은가? 다른 부속물이나 부속품 다 두고 하필 상상하기도 어려운 '새그루터기'라니. 한번의 시공간 강하로 이미 극심한 시차증후군을 겪는 주인공 네드 헨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혼잡하지 않고 큰 역사적 사건도 일어나기 전, 이를테면 일종의 태평성대라고 할 수 있는 1888년 빅토리아 시대 옥스포드로 다시 이동해간다. 하지만 잠시 휴식은 잠시에서 끝나지 않고 더 복잡한 사건에 연루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새록새록, 적응이 잘 안되었다. 모든 상황이나 이야기 흐름이 내게는 생소하지 않은 데가 없었고, 더구나 이 책을 읽는 도중 다른 책을 섞어 읽느라 간격이 있어서 그랬는지 점점 이해도가 떨어져만 갔다. 그럼에도 읽기를 포기할 수 없게 하는 매력이 분명 있어서 1권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결국 다시 처음부터 읽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1945년생. 칠십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 작가는 얼마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궁금해져서 youtube에서 '코니 윌리스'라는 이름으로 검색하여 인터뷰 동영상 몇개를 유심히 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심오하고 진지한 인상이라기 보다는 아주 유쾌하고 달변의 할머니였다. 아니, 할머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소재로 지금까지 나와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가 앞으로 쓸 작품은 그중 어떤 것 하고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라고.

작가가 미국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이 줄곧 영국인 것도 재미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전율했던 대목이 있다. 시공간 이동하면서 그 시대의 생물체를 가지고 혹은 데리고 이동했을 경우, 아무런 역사적 효과 없는 생물체는 과거에서 미래로 데려가도 아무 상관없지만 역사적 효과나 의미가 있는 생물체의 경우엔 큰 교란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선 아주먼드 공주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마리를 실수로 데려오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 전후로 해서 발생하는 편차의 정도가 크지 않은 것을 보고 이 고양이 한마리의 존재 가치가 크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무생물로 간주된다고. 이것이 주는 의미란 무엇일까.

2권의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그때까지 해결되지 않던 수수께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시공연속체의 자체 조정 기작에 의한 것으로 마무리지어 해결되는 듯한 느낌도 좀 아쉬웠다.

코니 윌리스의 작품중 비교적 덜 무겁고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 <개는 말할 것도 없고>라는 다른 사람들의 평을 읽고 절망한다.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생소한 주제와 소재에, 따라가기 어려워하며 읽는 독자도 분명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가 묻는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 그리고 나 또한 계속해서 이런 쪽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라도 상상력과 사고의 범위를 넓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편협한 독서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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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코스도 아니었고 

늘 다니던 산책 코스였는데

이렇게 다양한 버섯을 발견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비가 온 후.

 

 

 

 

 

 

 

 

 

 

 

 

 

 

 

↑ 꽃이 피어있는 줄 알았어요.

 

 

 

 

 

 

 

 

 

 

 

 

 

↑ 두 종류의 버섯이 보이시나요? 위에 깜장 버섯

 

 

 

 

 

 

 

 

↑ 벽돌 틈에서 저렇게 자라 나왔네요. 이것 역시 버섯인지 못 알아봤어요. 쓰다버린 휴지인줄.

 

 

 

 

 

 

 

 

↑ 이 날 본 제일 신기한 버섯으로 뽑혔습니다.

 

 

 

 

 

 

 

 

 

 

 

 

 

 

 

 

 

 

 

 

 

 

 

 

 

 

 

 

 

 

 

 

 

 

 

 

앞으로는

비 온다고 집에 있을게 아니라

비 오니까 나가봐야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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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8-06 12:32   좋아요 0 | URL
사진 찍을줄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일기 쓰기 배울때 글만 쓰지 않고 그림도 함께 그리는 그림일기라는 것으로 시작했잖아요. 말씀해주신대로 사진을 보면 사진이 보여주는 장면도 기억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사진을 찍을 당시의 제 자신과 상황까지 연상작용이 일어나 일파 만파 추억의 놀이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잘 못 찍은 사진이지만 열심히 찍어놓고 있어요. 주로 자연을 찍은 것들이니 관찰일기라고나 할까요. 생각은 덜고, 보이는 것만 찍고 쓰고 싶네요.

Nussbaum 2019-08-1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너무 집에만 있는 것 같아서 밖에 잠깐 나갔다 왔는데, 꽤나 더웠습니다.

그런데 또 사람은 바깥 바람을 좀 쐬어야 활력이 생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놓고서 다음주면 개학하고 또 매일 일터에 나가야 할텐데 그러면 또 지금 집에 이렇게 있는, 자유를 그리워하겠지요.

˝사진으로 쓰는 일기˝ 이 제목이 오늘따라 참 마음에 드네요

아 참 ! 내일 모레가 벌써 입추입니다. 11일이 말복이니, 이제 더위도 끝무렵이네요 ^^

hnine 2019-08-06 12:25   좋아요 1 | URL
더위에 허덕이면서도 저 역시 하루에 한번은 꼭 바깥에 나갔다와요. 어제는 저녁 먹고 해 진 후에 나갔는데도 밤9시까지 30도를 꿋꿋이 지키는 기온때문에, 돌아오는 길엔 제 몸 배터리에 빨간 불이 들어왔더랬습니다.
다음 주가 벌써 개학인가요? 와, 너무 이른거 아닌가요?
작년에 그 더울 때도 한번 더위가 푹 꺾이니까 급속하게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반갑기도 하지만 허무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언제 더웠냐는 듯이. 말복, 입추, 끝무렵 더위. 제게 기운을 북돋아주시는 말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9-08-0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스머프 마을이었나봐요?^^
숲이 우거져 산책로가 예쁘네요.
저희 동네는 하천따라 둑방길을 만들어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나무가 많질 않아 햇빛 피할길이 없거든요~또 나무가 많은 곳은 너무 짧고요....그래서 5월 한 달동안 썬크림 안바르고 오전에 산책했더니 양팔이 음야~~6월부텀 보는 사람들마다 어디 밭을 메고 왔느냐 그러더니 7월부터는 해변가 다녀왔느냐고....팔 다리,목,얼굴 까맣게 다 구워졌거든요.ㅜ
6월부터는 썬크림 꼬박 바르고,팔토시 끼고,챙 넓은 모자 쓰고 중무장 하고 산책했어요.
지금은 너무 더워서....야밤에나 잠깐하곤 합니다.
hnine님 산책하시는 사진일기를 읽을때면 늘 저의 산책하는 시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hnine 2019-08-07 04:26   좋아요 0 | URL
하하, 스머프.
예, 제가 잠시 스머프가 된 기분이었어요. 좀 거대한 스머프요 ^^
저도 산책할때 결코 모자, 선크림, 선글래스, 이런거 안데리고 안바르고 가요. 거추장스러워서요. 그런데 아무래도 필요하겠지요?
책읽는나무님도 산책 좋아하시나봐요. 예전에 20대 때에는 일부러 산책을 목적으로 걷는다는게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네요.
지금도 비가 오고 있으니 버섯이 쑥쑥 자라오르고 있을거예요. 상상하고 있답니다 이 새벽에.

stella.K 2019-08-06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섯 자연도감이군요! 잘 봤습니다.^^

hnine 2019-08-07 04:29   좋아요 0 | URL
자연도감 맞아요. 가끔 이런 사진 올릴때 내가 일기를 올리고 있는거야 도감용 사진을 올리고 있는거야 혼자 물을때가 있답니다.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요. 이제 더위 좀 주춤하려나 기대하지만 아직은 8월 초입이니까 큰 기대말아야죠.
건강하게 더위를 잘 나시기를 바랍니다.

수이 2019-08-0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비가 내릴 거 같은데 빗속으로 성큼 걸어가고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

hnine 2019-08-07 04:32   좋아요 0 | URL
예, 지금 비가 좍좍 내리고 있네요 ^^
비가 오면 일단 집안에만 머무르게 된다는게 제가 비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한가지였는데 그냥 모른척 나가보면 또 맑은 날 못보던 것들을 보게 되네요. 저 날은 버섯에 한번 눈이 가니까 산책 내내 버섯만 찾아보게 되었는데 버섯 말고도 또 어떤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말씀하신대로 빗속으로 또 걸어보고 싶어지는 새벽입니다.
수연님은 비를 보며 어떤 책에, 어떤 문장에 밑줄을 긋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