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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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번역된 소설보다 한국 소설로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읽기 부담없는 이유도 있고, 모르던 우리 말의 쓰임새나 표현 등을 눈여겨 보고 싶은 이유도 있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또 최근의 <소풍>에 이르기까지, 제목이 하도 귀에 익어 읽지 않았음에도 마치 읽은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의 작가 성석제. 정작 그의 소설 읽기의 시작으로 이 작품을 택한 것은 잘 한 일이었을까.

산골의 부유한 대가족 집안의 손자 장 원두는 학교가는 일 외의 시간은 염소 사십마리를 몰고 풀을 뜯게 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모범적인 소년. 그닥 사교적이 아니라서 여러명의 무리보다는 일대일로, 공개적이라기 보다는 비공개적으로 마을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가운데 일어나는 이런 저런 에피소드가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성장 소설이라고도 할수 있겠는데, 성장의 통과 의례격이라고 볼수 있는 뚜렷한 사건이랄 것이 없다. 또,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 좀 더 뚜렷하고 개성있게 묘사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고 다 비슷한 인물들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하나의 이야기 거리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등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아이에서 소년으로 변환기에 있는 주인공, 약간 덜 떨어지고 소외되어 있는 또래 친구, 엄격한 할아버지, 동경의 대상이 되는 마을 청년, 호감을 가지게 하는 친구의 누나 등. 어느 소설에나 (또는 드라마에나) 등장할수 있는 인물의 구도라는 생각이.

딱 떨어지는 유머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특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도 아닌, 내게는 그냥 한번 읽어볼만한 소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이전에 읽은 심 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꼭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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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1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7-02-2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그런 목적으로 읽기에 좋은 소설, 제게 추천 좀 해주세요~ ^ ^
 

15일에 장보고, 16일에 식혜와 나박김치 만들어 놓고, 17일에 나머지 설 차례 음식 모두 장만하여 18일 설을 맞았다. 한시라도 일찍 길을 나서는게  길이 덜 막힐터이므로 아침 7시 30분에 차례지내고 9시에 평택의 아버님 산소로 출발하기로 했다. 설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7시 30분엔 떡국까지 다 끓여 차례상까지 다 차려놓고 시동생 식구들을 기다렸다. 떡국 다 불어 어떻하나 하면서. 시동생, 동서, 아이들 도착한 시각은 9시.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도 없다. 아무튼 차례 지내고 (아버님, 어머님, 불은 떡국 드려 죄송합니다...) , 배가 고파서였는지, 생각보다 떡국 상태가 양호해서였는지, 떡국들을 잘 먹는다. 부랴부랴 대충 치우고, 산소로 출발.  당연히 차 막히는 길을 달려 산소에 도착. 날씨가 어쩌면 그렇게 포근하던지. 봄 기운이 완연한 흙을 밟고 걸으니 아침에 약간 상했던 기분은 잊고 일찍 봄을 느끼게 해준 설이 고마운 생각마저 들었다. 산소 앞에 앉아 싸온 과일을 깎아 먹고 있는 중 일곱살 아들, 할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냐고 묻는다. '아프셔서 돌아가셨지...' 했더니, 병이 나서 돌아가셨냐고. 그렇다고 했다. "그럼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이 바로 '암'으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산소에서 내려와 이번엔 수지의 친정으로 향했다. 설이라도 시댁에 안내려가는 여동생 가족이 와있었다. 엄마와 두 딸이 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여 저녁을 차려 먹었다. 동생네 아이와 우리 아이는 거의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신나게 뛰어 놀고, 어른들은 이야기꽃. 역시 화제는 주로 한창 크는 아이들 이야기 이다.  (며칠 전 집을 나갔던 다린이얘기가 물론 화제에 한 몫 했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는걸 못 보시는 아빠께서는 아이들 뒤를 거의 졸졸 쫓아다니시다시피 하시며 치우기 바쁘시고, 그러는 와중에도 엄마와 딸, 사위들에게 커피를 타다 날라주시는 우리 아빠. 너희들 온다고 엄마가 어제 하루 종일 음식 장만하느라 힘드셨다는 말씀을 몇번이나 하시는, 우리 아빠같으신 애처가도 없을 것이다 (모든 남편이 우리 아빠같은 줄 알았다가 달라도 너무 다른 나의 남편에게 아주 힘들게, 억지로, 마구마구 자신을 적응시켜가고 있는 사람, 여기 있다.)

9시쯤 되어 여동생네는 집으로 가고, 우리는 하룻밤 자고 오늘 아침에 대전 집으로 내려 왔다. 오자 마자 남편은 할일이 있다며 일터로 가고 나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는 심심해를 연발하고 있고...

결혼한 여자들에게 참으로 끊이지 않는 화제를 제공하는 명절을 보내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그냥 좋은 휴가였다고. 시댁에 미리 가서 지시 받아가며 일하느니,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음식 장만하여 우리집에서 차례 모시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고. 더구나 이번 설은 날씨까지 좋아 봄 나들이도 이런 봄 나들이 없지 않았나 하고...

그러면서도 이제 추석까지는 상 차릴 일 없음에 홀가분해하는 나, 보통의 며느리 맞다 ^ ^



 

 

 

 

 

 

 

 

 

 

 

 

---방치했던 화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미안함과 함께, 때가 되길 기다려 본분을 다함을 배운다. 어찌 되었던 살고 볼일이라고, 저 히아신스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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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2-1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봄에는 히아신스를 키워볼까 싶네요. 아빠 계실 땐 봄마다 색색의 히아신스를 볼 수 있었는데..저 사진을 보니 딱 그 생각밖에 안나요.

hnine 2007-02-19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흰색은 흰색대로, 분홍색은 분홍색대로 보라색은 또 보라색대로 예뻐서 어느걸 사야할지 망설이면서 왜 꼭 한색만 사야한다고 생각했는지...해적님 덕분에 올봄엔 색색으로 사다놓고 눈도 마음도 즐거워봐야겠습니다. 아버님을 생각나시게 하는 꽃이었군요...

LovePhoto 2007-02-20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상 차리고 맞며느리 소임 다 하느라 고생했습니다.
나이가 들고나서 모두 함께 모이는 그런 명절을 맞아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들은 부엌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남자들은 방구석(또는 마루 바닥)에 둘러앉아 동양화 공부에 몰두하는, 그런 모습은 납득이 잘 가질 않습니다.
하기사 전통적으로는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 그 뼈빠지게 일했던 여자들은 아예 근처에도 접근 못하는 걸로 되어 있지요, 아마?
고것도 납득이 잘 가질 않기는 마찬가지.
아무튼 모두 모여 왁자지껄 쿵쾅거릴 장면을 머리 속에 계속 떠올리며, 열심히, 아주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벽 1시까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일곱살 난 아들 녀석에게 요즘 친한 친구가 우리 아파트 앞동에 생겼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데 알고보니 우리 앞동에 살고 있었던 것. 그 아이가 우리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우리 아이도 그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아이보고 우리집에 오라고 하는 것은 싫고 자기가 그 아이네 집으로 놀러가겠다고 고집이다. 왜 그런가 알아보았더니 그 아이 집에 있는 게임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우리 집에서는 TV도 구석방에 갖다 놓고 토요일, 그것도 한시간씩만 보게 허락하는데, 그 아이 집에 갈때마다 한시간 이상씩 게임기에 붙어 있었다는 얘기.

아이를 앉혀놓고 그러면 왜 안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다가, 아니나 다를까 언성이 좀 높아졌고, 아이가 엄마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못하게만 하고 화만 내니 다른 엄마를 찾아가야겠다는 얘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벌써 한번 충격 먹고). 그러냐, 그래. 그러도록 해라. 가방 싸줄께...하며 옷서랍에서 아이 옷 몇가지와 장난감, 책 등을 챙겨주는 척하는데 아이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너, 갈데는 정했니?" 물어보니 위의 그 친구네 엄마한테 물어보겠단다. 자기를 받아달라고. 가방이 대충 챙겨지자 내가 물었다. "너 이제 나가면 그 친구 엄마보고 엄마라고 부르는거야. 알았지? 그리고 계속 그 집에서 유치원도 가고, 잠도 자고 하는 거다." 그랬더니 알았단다. 당당하게, 꾸려진 가방, 여행용 돌돌이 가방을 포함해서 자그마치 네개의 가방을 끌고 들고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물론 인사도 없이.

아이가 나가자 마자, 그 집 엄마에게 전화. 다린이가 지금 이런 저런 일로 집을 나가 그 집으로 향했으니 곧 도착할꺼다, 도착하면 우리 집에서 받아줄수 없다고 하고 아이를 야단쳐서 돌려보내달라 고 부탁했다.

조금후 그집 엄마의 전화. "말씀하신대로 했는데 다린이가 집에 안 가겠다네요. 하루밤만 재워줄수 없냐면서..."

난 그때부터 거의 자리잡고 누웠다. 충격, 충격...2.5 kg. 주머니속에 넣어도 들어갈 것 같이 작게 태어난 아이가 어느새 저렇게 자라 집을 다 나가는고...

중간 과정 생략. 아무튼 아이가 집으로 다시 들어오긴 했는데 나중에 엄마께 말씀드리니, 예전에 내 남동생도 어릴때 나가라고 했더니 진짜 나가서 나중에 흙강아지가 되어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걸 할머니께서 데리고 들어오셔가지고는, 할머니께 엄마 된통 혼나셨다고 비화를 들려주신다.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 달라서 나가라면 진짜 나간다고.

이틀전의 이야기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여러 가지 반성중이다. 확실한건, 설사 아이 입에서 나간다는 투의 말이 나오더라도 절대 그래 나가라 는 식의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

여러가지, 아주 많은 것들을 지금 되돌려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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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2-1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나저나 님..지금 일곱살이니 다행이지요,,,사춘기때 집 나가라 그러면 진짜 집나가서 엄마가 빌때까지 안들어온대요..
왜냐?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나간거니깐,,,그게 잘 못..실수로 말한거다,하기 전에는 절대 안들어오는거죠..그래서 그 말,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전 익히 들었지요.히..
그나저나,,녀석 이제 정체성이 막,,생기고 있나봐요,,,ㅎㅎㅎ

미설 2007-02-16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드시겠어요. 하루밤만 재워 달라고 했다니... 요즘 저희 큰 애도 제법 반항하는데 제가 자꾸 더 강압적으로 나가게 되어 고민입니다. 맘은 안그래야지 하는데 말이예요..

hnine 2007-02-1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일곱살때 이러는 애들이 사춘기때도 집나가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흑 흑...
미설님, 아이가 잘못되어간다 생각하기보다 내 잘못이 크다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네요. 부모 노릇 어려워요...

진주 2007-02-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봐염 미설님과 hnine님, 15살 먹은 오리지날 제대루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저는 어떻겠어용? 엉엉~~

진주 2007-02-1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똘똘한 다린이에게 주는 거랍니다. 원래 똘똘한 놈들이 그래요. 엄마가 휘둘리지 않으려면 공부 빡세게 해야겠는걸요 하하핫~~ㅎㅎ

hnine 2007-02-1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에궁, 주름잡아 죄송합니다~~ ^ ^

프레이야 2007-02-16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랍니다.^^
울큰딸 다섯살 때 저더러, 제가 예쁘다면 사랑해 주세요, 라고 메모지에
써서 주더군요. 얼마나 뜨끔했던지요.. ㅎㅎ

해적오리 2007-02-1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중학교때나 되어서 가출생각을 했는데.. 얼마나 덜떨어졌었는지.. 학교 옆에 텐트치고 거기서 학교 다닐 생각을 했었답니다. ㅋㅋ...
전 아직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지만.. 제 애는 착한 아이보다는 자기 생각이 분명한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다린이가 귀엽고 대단해 보이는 걸요..;;;;

hnine 2007-02-16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제 아이도 엄마의 사랑이 더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저도 뜨끔뜨끔~

해적님, 푸하하하~~ 학교옆에 텐트를요? 에궁~ 귀여우셔라. 다린이 지금 제 옆에서 점수 딸려고 제게 자기 동화책 읽어주고 있습니다 ㅋㅋ

LovePhoto 2007-02-1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나가라고 했더니 진짜 나가서 나중에 흙강아지가 되어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걸 할머니께서 데리고 들어오셔가지고는, 할머니께 엄마 된통 혼나셨다고....."
---> 흠흠, 이 가슴 아픈 비화의 등장 인물(주인공... 긁적긁적.....)로서, 이 글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아니, 걔가 벌써?" 하면서 말입니다.
흠흠.....

LovePhoto 2007-02-1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가 나서서 조목조목 타일러 주시는 건 어떨까요?
막 성대를 울려가며 "야단"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잘 맞으실 것 같아서..... ^^;
역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군요.....

LovePhoto 2007-02-1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달아놓고도 여전히 충격이 가시질 않는군요.....
으~~

호랑녀 2007-02-2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가 일곱살 때는 아빠가 잡으셨지요. 전 계획 다 서 있었어요. 어디서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야지... 이렇게... 안 잡으셨으면 나갔을 거에요.
그리고 열 일곱살 때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수익이 안 남더군요. 그래서 바로 꼬리 내리고 엎드렸습니다 ^^

hnine 2007-02-2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어디로 가려고 하셨을까요 일곱살때... 저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집을 나가볼까 생각했던 적은 있는 것 같으네요 고맘때. 식구들 중 아무도 저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서, 확인해볼 마음에 ㅋㅋ...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싸~한데, 제 아이는 나중에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 65세 안나 할머니의 국토 종단기, 2009년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황안나 지음 / 샨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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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께 사드릴만한 책을 고르다가 눈에 띄어 먼저 읽게 되었다. 저자가 마침 어머니와 연세도 비슷하신데다가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계시기에.

내가 네 나이때에는 하시며 늘상 어머니로부터 듣던 말씀보다 몇 배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저자의 23일의 여행길은 2,30대의 여행과 떠난 목적부터 달랐다. 모르던 곳을 새로 발견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잠시동안의 호젓한 자유를 누리기 위함도 아니었다. 한발작, 한발작 땅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며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에 찾아들어왔는지.지난 세월 자신에게 가해진 시련과 가난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혼자 걷다 울고 걷다 울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길 떠나는 것이라고 프롤로그에서 말하고 있다. 해남부터 통일전망대까지로 여정을 잡고, 해남에서 큰 아들 내외와 헤어지고 든 생각이 '이제 정말 혼자다'. 살면서 이제 정말 혼자다라는 생각을 우리는 몇번이나 해보게 될까. 길을 떠날 때 남편이 만류할까봐 혼자가 아닌 다른 일행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나중에 혼자 떠난 것임을 안 남편이 내가 당신에게 뭘 잘못했어 라고 하며 우시더란다.

마치 내 어머니가 해주시는 얘기를 듣는 느낌이어서 그런지, 책을 들기 시작하고 금방 다 읽었다. 국토 종단이니, 23일 동안의 도보 여행이니 하는데에 촛점을 둘것이 아니라, 이 나이 먹기까지 당당히 살아왔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님의 구수하고 애절한 살아오신 얘기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읽다 보면 아마도 웃다가도 뭉클하고, 그 힘든 시절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얘기할 수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생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할머니가 존경스러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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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 우리 나라에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니, 더 이상 '오늘'의 얘기는 아니기를, 이미 지난 '어제'의 얘기이기를 기대했으나, 아니다. 아직도 아니다.

영국에서 학위 과정중 내가 논문을 낼 때의 일이다. 영국에서는  복수 지도 교수제도를 택하고 있는 곳이 많아, 나의 지도 교수도 두 사람이 지정되었으나, 한 사람은 거의 형식상으로 이름이 올라 있을 뿐, 나의 학위 과정에는 거의 개입을 안하고 있었다. 나는 나와 지도 교수, 두 사람의 이름으로 논문을 썼는데 논문의 초고를 검토한 지도 교수가 다른 한명의 지도 교수 이름도 저자에 포함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 지도 교수는 적어도 이 논문에는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데 라고 당시만해도 철 없는 (?) 내가 이의를 제기하자, 두말 않고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고는 내가 초고에 쓴대로, 아무리 지도 교수라도 논문에 관여하지 않은 지도 교수 이름은 포함시키지 않고, 나와 다른 한 명의 지도 교수, 두 사람의 이름으로만 논문이 나갔다.

또 다른 논문은 첫번째 논문과는 달리 여덟명의 공저자 형태로 나갔는데, 그때 나의 일을 조금씩 도와주었던 학부생 및 다른 대학원생들의 결과가 논문에 함께 실렸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남편의 예전 지도 교수가, 예전에 남편이 해놓았던 일을 가지고 논문을 한편 내자고 연락이 왔다. 남편이 논문을 다시 다듬어 그 지도 교수에게 e-mai로 보내고, 다시 검토를 하고, 첨삭하고, 서로 왔다 갔다  online상으로 discussion끝에 투고를 위한 완결본을 지도 교수가 보내왔는데, 1저자(first author)와 교신 저자 (corresponding author;논문을 지도한 사람. 논문에 대해 답변의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 이름을 모두 남편 이름으로 해서 보내왔더란다. 자기는 이 논문에 한 일이 없다며.

몇년 전 국내 모 대학에서 투고를 위해 논문을 작성하고 있던 중, 그 논문과 아무 상관없는 교수들의 이름까지 모두 저자로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영문 없어 하며, 위의 영국에서의 경험담을 얘기했더니 그럴려면 영국에 가서 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최소한 연구활동과 더불어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라는 사회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자의 양심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피땀 흘려 이룬 일을 관심있는 이들과 공유할수 있도록 발표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하고 존중할 일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세상이 그렇게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되는 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일 더하기 일은 이 라는 진리를 지키며 사는,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나라에 많지 않은 것이 유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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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7-02-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의 문제인데.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겠군요.
'관행'의 이름으로 대대손손 내려오는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hnine 2007-02-1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예, 말씀하신 그런 이유이지요. 현실이랍니다.
하이드님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요. '관행'이라는 것, 무섭더라구요.

전호인 2007-02-13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자들도 정치인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는 듯하여 요즘은 씁쓸합니다.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냥 관행이라고 덮어두는 것이 옳지는 않다고 봅니다. 관행이라는 말이 좋게들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 ^*^

여울 2007-02-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상식'이 필요한 사회라는 생각보단, '상처'가 필요한 사회란 느낌이 듭니다. 아파도 아파할 줄 모르는 우리라는 생각이 들어, 곪고 터져, 이것이 상처라는 것이구나 최소한 느낄 줄 아는 사회면 좋겠습니다. '상처'임에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들이 안타깝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이 그나마 무게중심을 지키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말입니다.

씩씩하니 2007-02-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세상에 자긴 한 일 하나도 없음서,,그런게 말이되나여?
전 대학 다닐때..저희 교수가 서지쪽 책을 번역하라구 학생들한테 조금씩 분량을 나눠준 후에 그걸 자기가 다시 보구 검토해서 번역한걸루 책 낸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황당함이라니...
전 님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사랑해요,,진짜루요,,,

hnine 2007-02-14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그날이 너무 천천히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때에는 많이 바뀌어 있기를. 그런데 그것을 위해 저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네요.
여울마당님,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존경해야 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일을 이루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이렇게 말없이 묵묵히 자기의 생각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씩씩하니님, 어제 남편의 지도 교수 얘기를 전화로 듣고 여러 가지 옛날 일이 생각나서 써본 것이었어요. 저 별로 자신있지도 당당하지도 않은데 어쩌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