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의 중단편집 '토란' 중

<파꽃>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다.

 

아무 뜻 없이 던져진 말이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할 수도 있구나하고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란
이현수 지음 / 문이당 / 2003년 2월
구판절판


- '마른 날들 사이에' 中 -
고요라니......권태가 덕지덕지 쌓인, 보지말았어야 할 인생의 비밀을 일찍 엿본 죄로 삶에 대한 정열이나 어떤 희망도 품지 않는 한 여자가 만들어 내는 푸석푸석한 마른 날들의 풍경이 타인의 눈에는 고요하게 비칠 수도 있다니.-104쪽

- '파꽃' 中 -
"파꽃이 피었네요."
신기한 듯 말하자 별안간 그가 불퉁거리며 성을 냈다.
"저게 무슨 꽃이에요. 어디 꽃이랄 수가 있나요?"
"왜요? 파꽃은 꽃이 아닌가요?"
"꽃밭에 핀 꽃만 꽃이지 텃밭에 핀 걸 누가 꽃으로 봐주기나 하나요. 말이야 파꽃이니 가지꽃이니 호박꽃이니 좋게들 하지만 그냥 파나 가지나 호박으로 보지 누가 저걸 꽃으로 봐요?"
"파꽃이 어때서요. 꽃만 화려하게 피우는 꽃나무보다는 쓰임새도 많잖아요. 보면 볼수록 대견하기만 한걸요. 파가 억세져서 못 먹겠다 싶어 눈을 거두면 저토록 안간힘을 다해 봐달라고 꽃을 피우니......"
-165쪽

기다려 줄래?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그 말만 귓속에서 웅웅거렸다. 기다려 줄래? 미노는 그 말을 좀 더 일찍 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나 역시......미노에게 할 말이 있었다.-245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3-2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끌리는 책이군요. 편안하게 읽히지는 않을듯 싶긴 합니다만.. 이 인용된 문구들 처럼 나머지 부분도 좋은가요?

hnine 2007-03-20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술술 읽혀요. 마치 TV문학관을 보는 듯한...
곧 리뷰 올리겠습니다 ^ ^

프레이야 2007-03-21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생뎐의 이현수님인가요? 감칠맛 나는 글귀들입니다.

hnine 2007-03-21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예, 그 작가 맞아요. 신기생뎐 보다 먼저 쓰여진 작품이지요.
 
나는 성인용이야
김점선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화가 김 점선의 글과 그림 모음책이다. 짤막짤막한 글에 화투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섞여 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같은 원색을 사용한 단순화된 그림들은 군더더기 없이 딱 짤라 하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 인 듯 했다. 읽다보면 글과 그림과 사람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둘러대지 않고 이리 저리 꾸며대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나,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그 쏟아내는 말들에 의외로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왕따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려준 친구에게 그것이 너무 기쁘다고, 남들과 동화되어 와해되지 않으려고 목숨걸고 노력해왔다는 자칭 왕따 체질 김 점선. 시들기 시작하는 백합꽃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냉장고를 백합꽃이 안치된 관에 비유하는 대목에선 어떤 엽기성까지 느껴졌으니. 정해진 학교의 교과과정을 따르길 거부하고, 자신의 손으로 짠 계획과 일정에 따라 시험시간과 체육시간을 제외하고선 책만 읽어댔다는 고등학교 시절. 맘에 안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다가 한 학기만에 제적당한 대학원.혼자서 심심하게 살아야 생각이 맑아지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무지 심심해야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는 대목은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그림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내 영혼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 대목을 옮겨볼까? 그러면서 한번 더 읽어보려고...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122쪽)'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독서광이라는 그녀가, 위에서처럼 어떤 기회에 그림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글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그러고보니 위의 인용문이 이 책의 뒷표지에 실려있구나. 박완서님의 추천글도 아주 걸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 알라딘 리뷰에 한참 오르내리던 책 중 하나였다. 올라오는 리뷰들만 읽어보면서 책은 정작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무척 재미있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버스 기다리면서도 읽고, 길을 걸으면서도 읽고, 밥 하면서도 읽고.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다. 왜,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재미있는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책 속에서 책을 왜 그렇게 열심히 읽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유가 없다, 그냥 좋아서 읽는다고 대답하듯이.

이 책의 두가지 키워드라면 <백수>와 <책>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매일 출퇴근 하는 직장이 없다뿐이지, 그리고 아버지 집에 같이 살면서 '식'과 '주'를 따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외에는 엄격한 의미의 백수는 아니지 않은가? 주인공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을 사기 위해, 또 그 외 필요한 다른 경비 정도는 그때 그때 임시직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충당하지 않는가. 책의 제목에서 100% 완전 백수의 이야기를 상상했다면 아마 실망했을지도. 즉,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활동만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무슨무슨 족(族)'이라고 이름붙여 새로운 트렌드가 될 법도 한, 지극히 현대적인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나의 기호나 나의 취향보다 중요하지 않고, 어느 만큼 그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 그 반대의 부류보다 내게는 훨씬 좋아보이는데 말이다.

주인공이 이렇게 백수라 부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책> 속에서 인생의 모든 생,노,병,사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귀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그 인생에 대해 알기까지 우리가 투자해야할 시간과 노력과 웃음과 눈물에 반해, 책을 읽음으로써 알아가는 인생은 그 모든 수고를 단축시킨다. 책 읽는 동안, 이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어느 정도 동떨어져 나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책과는 별개로 책 읽기 라는 활동의 의미를.

고만고만한 소소한 일상의 얘기 거리에 지나지 않다고 할지 모르나, 한 문장 한 문장 시시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 모두, 그 중 어느 누구를 주인공으로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다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전교 1등을 도맡아 하여 아무대학 아무과나 갈수 있었다는 설정이나, 책을 전해받다가 애인초기 단계로까지 발전해가는 관계의 어색함 등, 빠져 읽는 내 눈에도 뜨이는 몇가지가 흠으로 보이긴 했으나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마지막,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과연 그녀의 말대로 솔직한 타입의 사람일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본인은 이 생활이 만족스럽기만 하다고 계속 얘기하고 있지만, 느껴져오는 삭막함과 쓸쓸함. 역시 책은 책일 뿐인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꾸로 사는 엄마
서형숙 지음 / 리즈앤북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학교>를 읽고서 저자의 다른 책 <거꾸로 사는 엄마>도 꼭 읽고 싶어졌다. 거꾸로 산다는 의미는 요즘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는 다르게 산다는 의미.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도시와 농촌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한살림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지 20년. 자연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단지 한살림 활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사고 방식의 바탕이라고도 할수 있어, 자식을 키우는 일에도 일맥상통하게 적용됨을 알수 있었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 오던 환경 문제가 그저 예전에 떠들어 대던 자연보호의 차원이 아님을, 바로 우리의, 우리 아이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게되니 더 절실해짐 역시 내 피부에 와닿아야 생각이 바뀌는 나의 어쩔수 없는 속물스러움과 이기심일까. 부끄러워진다.

편리함 넘어의 한 가지를 더 생각할 수 있는 지혜. 이전의 <엄마학교>에서보다 이 책에서 더욱 강조되어 있었다. 또한 아이들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는 저자의 말에 정말 그렇게 아이들을 내버려두어도 잘 크느냐고 묻자, '내버려둔적은 없다, 하고 싶은대로 두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는 글을 보고,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뒤에는 그보다 더 큰 사랑과 믿음과, 꼭 지켜야할 약속, 규칙이 있어야 함을 전해듣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지금 사는 방식이 남들이 보기엔 거꾸로 사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자기의 생각과 소신대로 살고 그대로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는 것, 자신이 시간과 공을들여 한 생각보다는, 남의 말에 흔들리고 남의 눈이 더 큰 판단의 잣대가 되는 요즘의 풍조를 생각할 때 어쨋든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 읽고나서도 책장을 금방 덮을 수 없었던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3-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자신에 대해서 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중 하나는 "팔랑귀" 가 아니라는 점이죠 잘 읽었습니다 :)

hnine 2007-03-1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스럽게 생각하셔야 해요. 나이를 먹어도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 흔치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