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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곤도 마코토 지음, 이근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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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기 이전에도 나는 워낙 약을 안먹을 수 있으면 안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몇년 전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상당히 높아 당장 약을 먹기 시작해야한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지금까지 한번도 콜레스테롤 낮추기 위한 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항상 그렇게 약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즉각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어서 빨리 완치될 수 있는 경우, 2차 감염을 막아야 하는 경우 등, 이럴 땐 병원에 가고 약도 처방받아 먹는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 혈압을 낮추는 약, 혈당을 내려주는 약 등등, 흔히 평생을 먹어야 한다며 처방해주는 약은 약을 먹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  증명해보일 능력은 되지 않지만 그냥 직감이라고 할까. 매일 한개의 약을 먹는 것으로 시작하면 몇 년 뒤에는 그것이 두개가 되고, 세개가 되는 것, 장기 복용의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지도 않던 증상이 나타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마 가까이서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이다.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기'라니. 하지만 저자 본인도 의사인 다음에야 할 말이 없다. 중요한 건 제목이 자극적이냐 아니냐 보다는 책에 담긴 내용일 것이고, 저자가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근거와 배경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몇가지 주목한 부분을 요약하여 남기기로 한다.

 

- 고혈압은 90% 이상이 원인 불명이다. 혈압을 낮추었더니 사망률이 하락했거나, 심장병이나 뇌졸중 같은 질환이 감소되었음을 검증해주는 실제 데이터는 아직까지 없다. 성인이 되면 동맥도 노화로 딱딱해져서 혈액을 흘려보내는 힘이 약해진다. 따라서 우리 몸은 나이를 먹을수록 혈압을 높이려고 한다. 뇌나 손발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46쪽)

- 의학계가 기준치 (reference range) 를 낮추면 제약 업계가 돈을 긁어 모은다. (46쪽)

 

- 약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경우, 항상 몸이 나른하거나 초조하고 분노 조절이 안된다. 약을 사용하는 경우 특히 다리가 휘청거리거나, 치매 증상 등이 나타난다면 약의 부작용을 의심해 봐야 한다. 혈당치가 높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일단 부지런히 걷기부터 시작해보자. (51쪽)

 

- 의료 피폭: 일반인은 X선 검사나  CT검사 등에 의한 의료 피폭에 무관심한 실정이다. 의사들도 값비싼 기계의 본전을 뽑아야 하고 환자에게 직접 문진이나 청진을 하는 것보다 손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으므로 "일단", "만일을 위해"라는 말로 안이하게 CT검사를 권한다. CT검사의 피폭선량은 일반 X선 촬영의 200~300배나 된다. (69, 70쪽)

 

- 증상이 없는데도 고혈압이나 고콜레스테롤 등을 약으로 낮추면 수치는 개선되어도 심장에는 좋지 않다. (75쪽)

 

- 약은 '독'이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소량을 단기간 복용하는 정도라면 간이나 신장이 약의 독성을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약의 복용이 습관화되면 틀림없이 부작용이 나타난다. (79쪽)

 

- 미국에서 의사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의사의 규칙 (1992)>이라는 책에서 발취한 내용:

  •    가능한 한 모든 약의 사용을 중단하라. 그것이 어렵다면 최대한 약을 줄여라.
  •    먹는 약의 수가 늘어나면 부작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    4종류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는 의학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위험한 상태에 있다.
  •    고령자 대부분은 약을 중지하면 몸 상태가 좋아진다. (80쪽)

- 흔히 항암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암덩어리를 일시적으로 줄인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암덩어리는 반드시 다시 커진다. 즉 항암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암을 치료한다거나, 좀 더 살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92쪽)

 

- 현재 일본이나 한국은 아주 심각한 병원 내 감염 국가이다. 감염증 환자로부터 검출한 황색포도상구균 중에 병원 내 감염을 일으키는 내성균인  MRSA가 차지하는 비율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이탈리아 42%, 미국 40%, 영국 37%, 스페인 36%, 독일 9%, 네덜란드 0%이다. 일본은 70~80%로 이들 선진국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2010년 기준으로 72%). (96쪽)

 

- 암환자의 통증을 다스리는 법: 첫번째 방법은 진정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선 비마취 계열의 진정제를 복용하고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으면 약한 마취 계열의 진정제를 사용한다. 그것으로도 안 된다면 세번째 방법으로 모르핀을 복용하거나 이를 좌약의 형태로 투여한다. 중독이나 의존증이 될 위험이 있는 것은 매번 모르핀을 '주사'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주사로 모르핀을 투여하면 혈중농도가 급상승했을 때 뇌가 반응해 기분이 좋아진다. 이 때문에 모르핀 투여를 그만둘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99쪽)

 

- 암은 치료하지 않으면 통증을 조절, 통제할 수 있고 그 결과 죽기 직전까지 치매에 걸리거나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일 없이 비교적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103쪽)

 

- 무리한 연명 치료로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지 마라: 가족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영양을 공급해 주고 싶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수액 주입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환자를 '익사'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수액 주입을 하지 말고 환자가 고목이 말라가듯 자연스럽게 숨을 거두게 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환자에게는 고통 없이 가장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이다. (108쪽)

 

- 암의 정의 및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암 검진은 하면 할수록 암이 발견되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 중에는 오진도 많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전이하지 않는) 유사 암이나 (커지지 않는) 잠재 암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PET검사는 CT 등의 검사로 발견하지 못하는 암 병소를 찾아내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그 병소는 이미 전이가 일어나고 있는 진짜 암이거나 유사 암이므로 일찌감치 발견해도 수명은 늘어나지 않는다. (113-115쪽)

 

- 식사요법은 대개 섭취 칼로리를 줄이고 육식을 하지 않거나 현미와 채소만 먹는 식이므로 단숨에 살이 빠진다. 더욱이 자신의 의지로 식사요법을 하는 사람은 의욕이 충만해서 식사요법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살이 급격하게 빠진다. 그러나 암 환자가 그런 식으로 살이 빠지면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서 암세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식해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 스모 선수처럼 지나치게 살이 찌면 당연히 수명은 짧아진다. 하지만 건강 조사 데이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사증후군에 막 접어든 정도, 즉 약간 뚱뚱한 사람이 가장 오래 살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수록 장수한다. 정상 세포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암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지름길인 것이다. (151-153쪽)

 

- 폐경기 여성은 다시마나 미역의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일본 국립암연구 센터는 2012년에 "해조류에 함유된 요오드는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미네랄이지만, 지나치게 섭취하면 갑상선암의 발생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발표했다. 해조류를 거의 매일 먹는 그룹이 유두암 (갑상선암의 일종)에 걸릴 위험은, 일주일에 2일 이하로 먹는 그룹의 3.81배나 되었다 해조류를 일주일에 3~4일 먹는 그룹도, 일주일에 2일 이하로 먹는 그룹의 약 2배였다. (165쪽)

 

- 소금의 성분인 나트륨은 뇌가 보내는 명령을 신경세포에 전달하는 등 생명 유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혈중 나트륨 농도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의식 혼탁, 구토, 혈압 강하, 실신 등 심각한 증상을 불러오며 최악의 경우 생명을 잃는다. (173쪽)

 

- 입원 기간이 길면 치매가 온다: 고령의 환자는 입원을 하면 대부분 침대에 누워만 있기 때문에 근력이 떨어져서 머리가 금방 둔해진다. 이것은 치매로 이어지는 큰 원인이 된다. (211쪽)

 

- '건강수명'이란 '보살핌을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연령'을 말한다.(216쪽)

 

- 치매는 흔히 '고독병'이라고 불린다. 하루 종일 혼자서 텔레비전만 보는 일상이 계속되면 순식간에 치매가 온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의 뇌는 완전히 수동적이 되어, 멍하니 앉아 있는 것과 똑같은 상태이므로 점점 퇴화된다. 또한 손발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므로 몸도 쇠약해진다. 반면에 똑같이 혼자서 생활해도 손자에게 줄 스웨터를 짜거나, 경품 응모하는 것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응모 엽서를 쓰거나 과자를 구워서 친구에게 선물하는 등 취미 생활이나 소일거리로 손발과 머리를 자주 쓰는 사람은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 (220쪽)

 

- 나이가 들어도 마음껏 울고 웃어라: 희로애락이 강할수록 뇌는 아주 활발하게 활성화되고, 기억을 저장하는 서랍도 늘어난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요즘 한창 유행인 두뇌 트레이닝보다, 의식적으로 희로애락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다. 즉, 여러 가지 일에 호기심을 가지며 즐거울 때나 기쁠 때 크게 웃고 슬플 때나 화가 날 때는 마음껏 우는 것이다. (221쪽)

 

이 책의 맨 뒤에는 '사전의료의향서'의 견본이 나와있다. 어떻게 죽고 싶은지 나의 의향을 미리 글로 써두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연명치료에 대한 의향서 작성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는 말을 얼마전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나의 죽음의 방법에 대한 나의 의향을 밝혀놓고 그에 따르도록 하는 일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무리 이런 책을 읽어도 위에 인용했다시피 의학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 병원에 가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의사가 지시하는 검사를 받을지 받지 않을지 따져보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환자는 영원히 '을'일 수 밖에 없는가 생각도 들지만 이 세상엔 0과 1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르면서 맹신하는 것보다 어쨌든 나는 아는만큼 믿고, 아는 것을 믿는 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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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6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7 0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7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4-03-28 06:18   좋아요 0 | URL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오타 천국이네요. 에궁~ 읽으실때 불편하셨겠어요. 고쳐 넣었습니다.

Ralph 2014-03-2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의사라기 보다는 진료 체계의문제이지요. 지난 50년간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의사를 교육, 훈련, 격려, 혹은 압박, 강제해왔습니다. 즉 더많은 약을 주고, 더많은 검사를 하고, 더 많은 수술을 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해왔습니다. 쓸데없이 환자와 긴이야기를 나누거나, 진찰만하고 약을 주지 않거나, 충분히 고가의장비를 사용하여 가능한 많은 검사를 하지 않은 의사는 과감히 도태시키고, 절대로 이땅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박멸해버렸습니다. 특히 많은 수술을 한 의사는 소위 "명의"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죠. 더많이 치료하고 더많이 약 처방하고, 더많이 검사한 의료진은 능력있는 의사, 간혹은 명의로 각종 매체에서 다루고, 정부는 훈장으로 포상해왔습니다. 이제 그 덕에 우리 국민은 특별한 증사이 없어도 싼 값에 많은 약과 많은 검사, 많은 수술을 받을 수있는 의료 천국에서 살게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포들이 한국으로 치료하러 온다니 말해 무었하겟어요..

hnine 2014-03-30 08:14   좋아요 0 | URL
Ralph님 서재를 즐겨찾는 서재로 등록 해놓고 올리시는 글을 그동안 읽어오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계신 분의 댓글을 읽으니, 저의 보잘 것 없는 리뷰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네요.
'의료천국' 대한민국이라니, 이제 '천국'이라는 말은 이렇게 아이러니한 경우에만 쓰나봅니다. 여든이 낼모레이신 제 아버지께서도 부정맥과 혈압때문에 약을 드시기 시작하신지 십년이 넘었는데 지금 댁에 가보면 그 약들을 포함하여 드셔야하는 약 봉지들이 식탁위에 한가득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먹어야 하는 약이 늘어나고 있는거죠. 엊그제는 손이 차갑고 파랗게 되어 병원에 가셨더니 류마치스가 아닌가 보기 위해 CT촬영을 하셨다고, 결과 보고 또 약 처방을 해준다고 그랬다기에 그냥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가 사랑한 클래식 - 음악이 삶에 가르쳐주는 소중한 것들
요아힘 카이저 지음, 홍은정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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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힘 카이저 (Joachim Kaiser). 음악 비평쪽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인지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이다. 하지만 독일 태생인 그는 클래식 음악사에서 우리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비평가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한다. 2009년 5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남독일신문에서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궁금했던 질문들을 독자로부터 받았고 그것에 대한 카이저의 대답을 하나씩 영상으로 찍어 (위의 동영상-독일어로 되어 있어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카이저의 클래식 수업 (Kaiser Klassik Kunde)' 라는 비디오칼럼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2012년에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이책. 원제를 이 리뷰의 제목으로 인용하였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Sprechen wir uber Nusik)'.

독자들로부터 어떤 질문들이 그에게 전달되었을까? 쟝르도 깊이도 매우 다양하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는가

 

슈베르트는 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았을까

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에서부터,

 

음악이 꼭 감동적이어야 할까?

 

바그너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독일국가민주당을 지지할 위험에 빠지게 될까?

와 같이 단순하지 않은 질문들도 있다.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그는 장황하지도, 지루하지도않게, 필요한 정도의 대답을 필요한 만큼 들려준다.

연주중에 하는 실수는 비난받아야 하는 일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 중에, 아마추어와 프로는 재능동기에 의해 구분된다는 말이 있었다 (93쪽). 재능뿐 아니라 '동기'도 포함시켰다는 것을 주목하여 보았다.

러시아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는 과연 정말 노래를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외모가 아름다운 것뿐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글에서 마지막 문장,

모든 실패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모든 성공에는 그럴 만한 비결이 존재하는 법이다. (156쪽)

다른 사람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대작과 중간치'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였다.

극단이 세상을 값지게 만들긴 하지만, 정작 세상을 지탱하는 것을 중간치이다. (175쪽)

제일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예술 문외한'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나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처럼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을 좋아하면 아직 음악의 문외한인 걸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글이다. 잘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은 우연히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안에 위대한 음악이라 할 만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고, 이런 음악들을 좋아하고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므로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양상이다. 하지만, 반복해서 듣는데서 더 나아가지 않고, 더 이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거나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싶은 마음을 일깨우지 못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고 했다. 예를 들면 '모짜르트가 힘든 시기에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작곡했다면 그는 대체 그 작품을 둘러싸고 무엇을 더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라든지, 에어처럼 아름다운 곡을 탄생시킨 바흐가 어떻게 마태수난곡의 소프라노 파트 같은 성부를 작곡할 수 있었을까?'  이런 등등의 질문들을 떠올리지도 못한 채 그저 만족하고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듣기만 한다면 그런 사람은 음악의 문외한이 되는 지름길에 서 있는 것이라고. 호기심은 곧 더 알고자 하는 동기이고 욕구이다. 관심없이 불가능한 일.

가수들의 노래보다 무대 연출을 더 부각하는 요즘 오페라 무대에 대한 우려, 진정한 비평가의 역할에 대한 글도 공감이 갔다.

음악, 또는 연주가 '독일적'이라고 할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정리도 무리가 없다. 아름다운 선율을 중시하여 높은 성부의 두드러지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이탈리아 음악이라면 독일적이라는 것은 화음을 중시하여 낮은 소리도 가볍게 보지 않고 화성의 깊이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글이 어렵지 않고 짤막짤막하여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독자들의 질문에서 출발한 구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좀 산만하고 두서없어 보여 일관된 흐름으로 집중하여 읽혀지지는 않았다.

 

그가 영웅적인 테너라고 칭한 볼프강 빈트가센이 부르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중 <머나먼 나라에, In fernem Land>를 들어본다. 화성, 깊이, 진지함, 장중함,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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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2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생활전반을 바라보는 특성 같았어요. 단지 음악에서만이 아니라 짧은 대화에서도 꼭 이렇게 되물었어요..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생각 그 자체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해보였어요.
그림을 그려도 기술적인 것보다 그것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그 사람의 생각과 과정이 훨씬 중요하게 물어지고 그것의 철학과 참신성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 태도.


"모든 실패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모든 성공에는 그럴 만한 비결이 존재하는 법이다"
라는 말은 크게 와닿네요..나인님..
산만한 책이라 하셨지만 꼭 읽어보고 싶어질만큼 잘 정리된 정성어린 리뷰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글이 참 많네요.. ~~

p.s 마지막 글은 '떠올랐다' 가 아니라 '사라졌다'에 방점이 있는 것 같아서 3 =3= 3= ^^

hnine 2014-03-25 12:06   좋아요 0 | URL
어제 새벽숲길님 서재글에서 '프랑스적' 이란 단어를 보고 바로 그날 밤에 '독일적'이라는 단어를 보니 신기하더군요.
생각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참 멋진 사람이겠지요. 눈에 보이는 것만 자꾸 더 중요시하는 시대에 살면 살수록 자꾸 잊고 살아요.
오페라 로엔그린은 지금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기엔 꽤나 무거운 작품이라고 하네요. 몇몇 사람의 영웅적인 노력에 의해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사랑 받게 되었다고요.
별로 두껍지고 않고 글자도 빽빽하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랍니다.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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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 일이다. 나와 같은 과 친구하나가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연합써클 첫 모임 (불교학생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에 다녀오더니 말했다.

"머리가 좋은 애들은 있지, 보통 사람들은 느낌에서 끝나는 것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해낸단 말야."

난 이 책을 읽으며 왜 이십 오년 전, 친구의 그 말이 떠올랐을까.

감탄, 깨우침의 기쁨, 한숨, 공감하는 어떤 문장은 밑줄로도 성이 안차 통채 외워버리고 싶었다. 가령 이런 문장이 그랬다.

문학은 절망의 형식이다. 우리의 나약하고 어설픈 절망을 위해 문학은 있다. 그리고 희망은 그 한없는 절망의 끝에나 겨우 있을 것이다. (98쪽)

 

삶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102쪽)

 

오십을 눈 앞에 두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알게 된 것이란 고작 삶은 절망이고 허무하다는 사실이라는 것에 며칠 더 허무하고 절망스럽던 차에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이 뮤즈에게 바치는 세금은 시간이라고 (25쪽) 그가 쓴 것 처럼 그의 이 대체불가능한 언어의 구사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같은 세금을 바친다고 누구나 같은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우선 문학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희망없이도, 쉽게 절망하지도 않은 사랑이 있었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하지 않는가.

제목을 '느낌의 공동체'라 붙였다. 어느 책에 따르면 인간의 세가지 권능은 사유, 의지, 느낌이다. (...) 어쩌면 사유와 의지는 느낌의 합리화이거나 체계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좋은 작품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갔다. 그 희미한 사태를 문장으로 옮겨보려 했고 이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다.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 잠을 자려고 하는 시인과 소설가들 앞에서 내가 춤을 추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춤을 출 때 독자들이 잠을 자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한 배를 타게 되지만 그 배가 하늘로 날아오를지 벼랑으로 떨어질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줄을 알면서도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다. (12쪽)

느낌과 정확한 문장 사이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사유'였다.

 

문학이 희망을 줄 수도 있을까. 문학은 절망적인 세계 앞에서 사력을 다해 절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 (97쪽)

허수경의 시에 대해 말한 부분이다. 사력을 다해 절망하는 것이, 어설픈 희망으로, 주입된 선입관을 바탕으로 모든 생각과 느낌의 결론을 지으려고 하는 것보다 낫다. 최소한 나는 나 자신의 생각에 충실했으므로.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김수영 <비>)

움직이는 비애라는 말을 이제 비가 올때마다 떠올릴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다음 글은 "왜 시를 쓰냐"는 질문에 대한 김중식 시인의 답이하고 한다.

한때 내게 시는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것만 '진짜'였고 나머지는 다 '가짜'였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겠다. 시는 적당적당(的當適當)히 가는 것이다. 끝까지 갔다가, 또는 끝까지 가려다 무서워서 되돌아 나오는 비겁의 자리가 시의 마음자리다. 시는 어쩔 줄 모르는 삶의 흔들리는 언어다. 시는 흔들리는 삶의 어쩔 줄 모르는 언어다. (167쪽)

'시'의 자리에 '인생'을 바꿔넣어보려다 멈칫했다. 과연, 나는 끝까지 가본 적이 있던가. 그러니까 이런 말은 끝까지 사력을 다해 가보려 한 자만 할 수 있는 말이겠구나 싶어서.

 

그가 소개한 쉼보르스카의 시 <사진첩>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 나올때까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은 흐르고,

그렇게 위안을 얻은 그들은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번역된 랭보의 시를 읽고 절망해서 외국 시와는 절교한 분들께 이 시집을 권한다(170쪽)'는 문장으로 쉼보르스카의 시를 소개하는 저자의 재치. 식상함이란 없다.

안현미 시인의 시를 소개하는 글의 제목으로 쓴 '감전의 능력'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정확하고 독특한가.

감정을 투정부리듯 늘어놓는 것이 시가 아닌 건 맞겠지만 그렇다고 시는 곧 체험이라고 단정해도 될까? 그러나 아니지, 중요한 건 체험의 부피가 아니라 전압이지, 무엇이건 더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는 능력 즉 감전의 능력, 그래서 생겨나는 언어, 그 언어에 흐르는 전류, 이건 나이와 아무 상관없어. (206쪽)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주제넘지만 충고할때 "설명하려 하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라는 말과 함께 덧붙인다고 한다. "카버를 읽어라." <대성당>을 쓴 레이먼드 카버를 말하는 것이다.

소설 읽는 일을 '고독과 소통하는 일'이라고 한 것은 정홍수의 문학 평론집 <소설의 고독>을 소개하는 글에서였다.

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 가끔 소설을 읽지 말고 다른 책, 즉 지식에 보탬이 되는 책을 읽는 것이 낫지 않냐던 남편에게 나는 소설은 인생의 폭을 넓혀준다고 대꾸한게 다 였는데.

나희덕의 시는 내가 특별히 즐겨 읽는 시가 아니었음에도 392쪽에 인용된 <섶섬이 보이는 방>은 한번만 읽고 넘어가게 하지 않는다. 시 전문이 길어 여기에 옮겨놓기는 생략하겠지만.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는 그곳의 여관방이라는 저자. 여행하며 구경하는 것보다 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느분의 서재에서 이미 신형철 팬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글을 본 적 있는데, 팬이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대로 그의 책은 내게 와서 끝내 돌려줄 수 없는 것을 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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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2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는 너무 좋아 <몰락의 에티카>까지 준비해놓고 있는데요, 두 권 다 읽어본 사람들이 <몰락의 에티카>가 더 좋다고들 하더라고요. 아니, 이것보다 더 좋은건 대체 어떤걸까 싶어 준비해둔지 오래인데 아직도 <몰락의 에티카>를 읽지 않고 있어요. 나인님도 이제 몰락의 에티카를 준비해두실 건가요?
:)

hnine 2014-03-24 14:03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솔직히 위에 쓴 것 보다 몇배 더 푸욱~ 빠졌어요. 제 딴에는 절제하며 쓴다고 쓴거랍니다 ^^ 리뷰 올리고 다른 분들 리뷰를 막 둘러보고 오는 참인데, 리뷰마저도 감동적인 것들이 많네요.
<몰락의 에티카> 지금 읽고 있는 중인데, 아직 100여 쪽 밖에 못 읽었지만 <느낌의 공동체>보다 좀 더 평론의 느낌이 나요. <느낌의 공동체>는 저자가 극구 '산문집'이라고 한 반면 <몰락의 에티카>는 책 표지에 당당히 신형철 평론집이라고 되어 있는 걸로 봐도요. 한 작가의 작품에 대해 좀 더 집요하게 파고 들어 마치 해부도를 그리듯이 써놓았어요.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다'라는 문장은 '음악은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제2의 언어'라는 문장 다음으로 제 맘에 드는 문장이네요.
다락방님도 <몰락의 에티카> 읽으실거지요? 그쵸? ^^

다락방 2014-03-24 15:37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 읽을겁니다. 시기가 언제이냐, 그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ㅎㅎ

2014-03-2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5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6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법의 꽃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3
정연철 지음 / 비룡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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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거의 안읽고 있다시피 했는데 이 책 소개글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언젠가 창작블로그에 올렸던 호두나무 어쩌구 하는 나의 글과 어딘가 공통 부분이 있어보여서였다. 내가 쓴 이야기야 뭐 특별한 서사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같은 아마츄어 말고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정연철이라는 이름은 푸른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주병국 주방장>이었던가? 그 작품에서도 아버지와의 갈등이 이해와 화해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은데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와 주인공 기범이 사이의 갈등이 큰 축을 이루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음주 습관과 가정 내 폭력이 아버지로 대물림 되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점점 커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결국 집을 탈출하는 주인공. 대학 입시 날, 주인공은 시험장 대신 고향집으로 향한다.

작가의 유년 기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 것이 작가의 말을 통해 분명해진다. 아마도 이렇게 작품으로 세상에 내어놓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엉킨 앙금 같은 경험을 이렇게 정리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십여년 동안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작가들이 어떤 작품을 쓸때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을텐데 자기의 경험이 소설로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할까. 경험은 작품의 모티브 제공의 수준에서 그쳐야지 작품 전체를 끌고 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즉, 경험에서 출발하였지만 경험 이상의 어떤 창작물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더구나 작가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작가 자신에게는 특별한 경험이겠지만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독자들은 많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면 작가는 좀 더 특별한 사건이나 서사를 입혀야 했을 것이다.

작가의 문장력이나 글을 이끌어가는 솜씨는 기성작가라고 할만큼 되어 보이나 작가만의 개성이나 매력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참고 견디지 않으면 단맛도 볼 수 없는 건가? 아버지와 가난이라는 떫은 맛도 꾹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내게 단맛을 선물할까? (131쪽)

이처럼 6학년 아이의 일기장 내용 많은 부분이 6학년 답지 않아보였던 것이 그 아이의 개성때문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어른의 입장에서 의미를 담으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여서 아쉬웠고, 그러다가도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선 여섯 살도 아니고 6학년 아이의 생각이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상황이 우스웠다.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에 오히려 쾌재를 부를 정도로 상처가 깊었던 주인공의 마음이 특별한 계기 없이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돌아서게 된 것도 '마법의 꽃'이라는 말 하나로 처리하기엔 부족해보인다. 작가도 많이 고심하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보지만 아무튼 뭔가 개연성이 빠져있다는 느낌이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작품. 많이 지루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억에 남을 감동이 전해지지도 않은 그런 작품.

아쉬움으로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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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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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40대가 되었으면 수필을 읽어야 할 때라고 누가 그랬다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10대 고등학생일때에도, 20대에도, 수필 읽기를 좋아했다. 지금 40대, 그것도 50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여전히수필을 찾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수필을 찾는 동기는 이전과 같지 않은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헤쳐나갈까, 어떻게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갈 수 있었을까, 어떤 유혹을 뿌리쳤고 어떻게 한곳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무엇일까...이런 것들에 대한 힌트를 듣기 위한 것이 이전의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마음 다 내려놓고 그냥 읽는다. 인생 별거 있나, 이렇게 하루를 별 일 없이 잘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사는 것이지, 이런 마음이랄까.

제목의 '처네'라는 말이 일단 반가왔다. 저자의 이름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표지의 저 그림과 제목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은 아이를 저렇게 업어주는 것을 예전만큼 잘 볼 수 없지만 아이를 건사하면서 다른 일을 동시에 하기에 처네만큼 유용한 물품이 또 있을까. 유모차와 달리 다른 일을 보는 동안에도 아이와 몸이 직접 닿아있으므로 아이의 체온과 기척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다. 대신 여름엔 무척 덥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동생이 어렸을 때 할머니를 졸라 저렇게 동생을 등에 업혀달라고 해서는 자랑스럽게 동네 아이들 노는데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했고, 내 아이가 어릴 때에는 해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정엄마에게 부탁해서 처네를 보내달라고 해서는 아이를 업고 다녔다.

목성균. 이제는 고인이 된 그는 마흔이 넘어 뒤늦게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이 책에 대한 해설을 뒤에 붙인 평론가가 이렇게 훌륭한 수필집이 인구에 회자되지 못한 것에 비애를 느꼈다고 쓴 것을, 이 책을 다 읽고서 발견하였다. 그는 목성균의 글을 읽으면 슬퍼진다고.

이 리뷰의 제목으로 쓴 '사는게 섭섭할때'는 본문 135쪽의 문장 중에서 인용하였다.

'사는게 섭섭할 때 추수가 끝난 빈 들 복판에 이파리를 다 지우고 서 있는 둥구나무의 의연함을 바라보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600쪽에 달하는 분량을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읽는 즐거움을 누린다. 특별한 감동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수필이란 어떤 글인지, 어떤 흐름을 가지는지 감이 잡히게 한다. 수필은 발견.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무턱대고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그건 소재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일뿐. 글 한꼭지엔 한가지 주제, 그리고 주제어, 주제 문장이 하나씩 발견됨을 발견한다. 그게 너무 확연히 드러나면 글의 격이 떨어질 것이고, 그것이 갖추어있지 않으면 그저 낙서같은 글의 수준에 머물고 말것이다. 경험한 것을 풀어놓기만 하면 그것은 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나의 주장만 늘어놓으면 연설문 같아 정이 가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가끔 약간의 거짓말을 할때가 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약간의 거짓말이란 어느 정도를 이르냐 하면, 양심에 비춰서 가책을 안느끼는 정도라고 스스로 정한 기준을 제시한다. 예전의 어떤 풍경을 떠올리다가 확실히 그곳에 나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은 되지 않지만 글 속에서 나무가 한 그루 강변에 드리워져 있었다고 쓸때가 있다는 것이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짐을 들고 있었는지 들고 있지 않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고 계셨다고 쓰는 것이 또 다른 예라고 한다.

글 쓰는게 좋아서 마흔 넘어 문학 공부를 시작한 사람.

요즘 같은 세상에 일흔 전에 세상을 떴으니 좋아하는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수필 쓰기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 책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도 고개를 돌려 아이쪽을 살피는 그림 속 어미의 마음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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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0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그,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랍시고
이제껏 포대기와 처네가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모르고 살았네요.

우리 집 두 아이는
이 그림처럼
늘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업혀서 살았어요.
제가 아이를 처네로 업고 다니는 모습을 본 이웃들은
가끔 기겁(?)을 했지만,
뭐, 어머니만 아이를 업고 다니란 법은 없으니까요~

hnine 2014-03-06 19:39   좋아요 0 | URL
'처네'라는 말을 전 어릴 때 실제로 많이 쓰던 말이라서요.
처네, 참 편리하고 쓸모있는 물건이었어요.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아이를 업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따뜻한걸요.

아무개 2014-03-0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네...처음 본 단어입니다.
포대기와는 또 다른건가 보네요.

일상에서의 반짝이는 발견들의 모음.
좋은 수필집 추천 좀 해주세요.
요새 너무 날선 책만 읽는같아요 ㅡ..ㅡ

hnine 2014-03-06 19:49   좋아요 0 | URL
아, 처음 보시는구나. 전 많이 쓰던 단어이거든요. 할머니께서 충청도가 고향이시라서 충청도 사투리인가 했지요.
수필을 쉽고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는걸 이 책 읽으면서도 깨달았어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는걸 끄집어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남들이 다 쓸 수 있는 글이 안되려면요.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으려고 사놓았는데 제가 보기엔 평론집인데 본인은 서문에서 산문이라고 우기고 있네요 ^^ 톨스토이나 베이컨 수상록도 괜찮았어요. 아, 장석주의 책도 좋아요.

서니데이 2014-03-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네'가 아이를 업는 그림이어서 포대기를 말하는 건가 했는데, 댓글까지 읽다보니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봤는데 처음 보는 거라서 낯설더라구요.

요즘은 유명인이나 작가들의 에세집도 많이 나와서 읽을 때가 있는데요, 수필이라는 글이 그냥 일상의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는 글이라고 하셔서, 다음에 읽을 때는 그런 점을 글에서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hnine 2014-03-07 06:15   좋아요 0 | URL
댓글까지 세세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흔하게 쓰던 말이라서 '처네'라는 말이 어떤 분에게는 낯설거라는걸 짐작도 못했네요 ^^
평론, 수필, 때로는 자기개발서, 이 세가지의 구분이 모호한 책들도 많이 나오더군요. 무엇으로 구분되느냐 상관없이 저는 그냥 저에게 도움이 될 것이 있으면 읽는답니다.
소설과 달리 수필은 지어내는 글이라기 보다 경험과 통찰과 사색이 담겨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울수 있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