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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펭귄클래식 38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원제가 Wide Sargasso sea

wide 를 '넓은'이 아니라 '광막한'이라고 하니 그 느낌이 훨씬 더 피부로 와닿는다. 더 무겁고 넓고 헤어날 수 없는 세계, 절망스럽고 두렵고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무력감까지.

 

이 책을 얘기하려면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얘기를 안할 수 없다. 진 리스가 이 책을 쓴 것은 제인 에어를 읽고 나서라니까.

시대적 배경은 1839년에서 1845년 사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 막 노예해방이 이루어져 그동안 이곳에서 대농장을 경영하며 부를 누리던 백인들이 점차 몰락해가던 시기이다. 그런 집안의 딸 앙투아네트는 말로만 듣던 영국으로 가고 싶은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던 중 그녀의 지참금에 더 마음이 있는 영국인 로체스터와 결혼을 한다. 불행의 시작.

그녀는 로체스터를 사랑했는지 몰라도 로체스터의 시종일관 싸늘한 표정은 그녀와 달랐다.

 

이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책을 읽는 도중 영화도 보았다.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이지만 역시 영화는 책 읽는 동안 만큼 뇌를 활발히 움직이게 하진 않는다. 보여주는 대로 보면 될뿐, 상상력은 제한을 받는다. 그래도 영화와 책을 동시에 보니 이해하는데는 많이 도움이 되었다.

 

 

 

 

 

 

 

 

 

 

 

 

 

 

 

 

 

 

 

 

 

 

 

 

 

책에선 순차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반해 영화에선 결말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불타는 집,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앙투아네트의 황망한 표정, 그리고 뒤이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섬찟한 모습.

 

제인 에어를 단순히 말랑말랑한 러브 스토리로 읽었다면 당신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질타를 각오해야 하듯이, 이 책 역시 그럴지 모르겠다. 책 앞부분 30여 쪽에 이르는 서문을 읽어봐도 그렇고, 꼭 읽어야할 영미 문학 100선에 드는 작품이라든가, 식민지 사회상, 여성의 자각, 노예 제도, 사르가소 바다는 로체스터와 앙투아네트가 대표하는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간극을 의미, 등등 많은 의의가 붙어 있던데, 내 개인적인 소감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관능적 매력을 사랑으로 착각한 여자, 여자의 지참금이 더 중요했던 남자의 잘못된 결혼, 그 흔한 이야기. 이야기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특수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미와 연결시킬 수 있긴 했지만 이 작품 자체가 그런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문화와 이데올로기까지 언급하며 리뷰를 쓰진 못하겠다.

 

다만, 제인 에어를 읽으며 주인공보다 미치광이 여자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이 책의 작가에게 관심은 아주 끄진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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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5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4-09-06 05:31   좋아요 0 | URL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에서 이름을 그대로 인용했더라고요. 재미있게 읽히기는 했는데 제 경우엔 그 이상을 읽어낼 능력이 없었나봐요 ^^
연휴의 시작. 주로 집에서 일하는 저에게 연휴란 식구들이 집에서 복닥복닥, 그래봤자 세명이지만, 아웅다웅 하는 날들이지요. 달 구경은 꼭 하고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4-09-0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 나라 작가들은 별 생각없이 유색인종 나라 사람들을 해괴한 작중인물로 배열하지요.그래서 진 리스는 그 광녀를 주인공으로 새 작품을 집필한 거죠.일본인이 제인에어 비슷한 작품을 썼는데 조선여자를 광녀로 설정했다고 가정하니 이해가 빠르더라고요.

hnine 2014-09-07 05:16   좋아요 0 | URL
진 리스가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달랐을지 모르겠어요. 그녀 자신이 자메이카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보고 느끼는게 좀 달랐을지도.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 의미 등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기대를 좀 더 했었는데, 읽고난 소감은 그 정도에 미치지 않아 좀 아쉬웠답니다.
 
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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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uck everlasting (우리말로 '트리갭의 샘물'이라고 번역되었던가?) 이라는 작품을 떠올린다. 어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동화로 분류되지만 어른이 읽을때 그 깊은 뜻에 더 감동을 줄 수 있는 동화를 대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마당에 내용도 전혀 다른 이 동화를 엉뚱하게 떠올리는 것은 아쉬움때문이다. Tuck everlasting의작가가 오스카 와일드보다 훨씬 덜 알려진 사람이면서도 이 작품이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 반대였다.

 

알고 보면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내 나이연배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던 어릴 때 이미 접한 바 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지금 이 책에도 포함되어 있는 <자기만 아는 거인>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거인의 집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예쁜 꽃들과 나무들로 꽉 차 있는 거인의 정원에 아이들이 들어와 놀기 시작하고, 매일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정원의 꽃, 나무가 망가져 가는 것이 싫은 거인은 아이들을 못들어오게 막아버린다. 시작은 이렇게 되지만 국어 교과서에서 결말은 dl 책에 실려있는 원본과 좀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교과서에는 실제 결말 부분이 많이 생략하여 실렸던 것인데 원본을 읽고 나니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결말 부분이 단축된 이야기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초등학교를 지나 어른이 되어서까지 마음에 남아있는 동화가 되었다. 잘 알려진 또하나의 동화 <행복한 왕자>도 그렇다.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내용이, 누구나 한번 읽으면 기억에서 쉽게 사라질 내용이 아니었다. 훨씬 나중에 읽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감동을 넘어서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고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마침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게 되었고 과연 여러 가지 면에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가 본 그 세 작품이 그의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일까?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동화는 <행복한 왕자>와 <자기만 아는 거인> 외에는 그 정도 수준에 오르는 것들이 없었다. 작가의 의도가 너무 드러나다 못해 작위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하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도록 아쉽게도 내 생각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이야기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미화시켰다는 느낌, 평범한 인간과 신의 대비, 선과 악의 대비 등이 작품을 막론하고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었는데 너무 지어낸 티가 난다. 그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스토리텔링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그냥 거기서 끝. 그 이상의 무엇이 없다. 더 나아가지 못한다. 깊은 감동, 아쉽지만 없었다.

혹시 리뷰쓰는데 영향을 받을까봐 책 앞에 실린 해설을 읽지 않았는데, 이제 리뷰쓰기를 마치는대로 읽어봐야겠다. 다른 이는 어떻게 느꼈는지, 정말 궁금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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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하루 종일 집안에서 한발짝도 안나가는 날이 더러 있다. 의도한건 아니라도 어찌어찌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가 움직이기 싫다고 떼를 쓰는 날, 즉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이었을 것이다. 하루쯤 그러는 건 괜찮은데, 그게 이틀 혹은 사흘까지 계속될라치면 거의 대부분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목적지가 있어 바쁜 걸음을 해야할때도 있지만 때로 누구와 약속 없이 그저 나혼자 걷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건 행운이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 그런 시간을 만들어내야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더 확실해졌다. 이 책에서 저자가 줄곧 하고 있는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5쪽)

먼저 나온 책 <걷기예찬>과 주제는 같으나 다른 점이라면 이 책엔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 사례등이 훨씬 많이 인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통찰력있고 수려한 문장 표현, 경험과 생각이 잘 집약되어 있는 구절 등은 전작에 뒤지지 않으나 인용 부분이 많으니 어딘지 깊이가 덜 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걷기는 근심 걱정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 (32쪽)

걷는다는 일은 때로는 침묵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 (43쪽)

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유일한 주인이다. (59쪽)

짧고 전달력있는 문장들은 마치 광고 카피같기도 하다.

 

가방을 가볍게 꾸리는 일은 정신을 가볍게 하는 형태이다. (189쪽)

알면서도 잘 안되는 일중 하나.

 

책이 중반을 넘어서면 사색적인 느낌보다는 여행기 느낌이 나서 이 책의 원래 색깔을 잃어버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것도 저자 자신의 여행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여행 경험 인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인데,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전달하는데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을까, 아니면 사례 인용 먼저 해놓고,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한 것일까.

 

풍경의 아름다움은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노잣돈처럼 늙어가는 일을 돕는다. (147쪽)

이런 표현들.

산책은 그날의 근심을 털어내면서 세상으로 배를 채우고 영양을 섭취하는 또다른 방식 (168쪽)

 

산보객은 도시의 예술가인 동시에 행인들이나 건물의 세부묘사 또는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하는 일종의 사랑스런 형사이다. (177쪽)

걷는 사람을 고도의 관찰을 직업으로 삼는 형사에 비유한 이런 예리한 표현도 이 사람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쇠이유협회는 비행청소년들을 맡아 주변사람들과 잠시 거리를 두는 경험을 통해 사회 복귀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으로서 석달동안 휴대전화나 게임기 또는 음악없이 배낭만 짊어지고 매일 25km 가량을 걷는다. (211쪽)

Seuil (쇠이유).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설립한 청소년 교화단체이고 마침 이에 관한 다음과 같은 책이 최근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자신 앞에 있는 것은 삶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빌리는 의미, 즉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가치들이다. 자신의 존재와 단절된 각각의 개인은 더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세상 앞에서 영원히 제자리 걸음을 치는 형벌을 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그 벽에 창문을 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의미의 길을 세우고, 존재 이유를 만들어내고, 즉흥적이든 혹은 지속적이든 흥분을 만들어내고, 존재감을 되살리는 일이다. 집에서 멀어질 방법을 갖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짧고도 반복적인 걷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장악력을 되찾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이다. (221쪽)

우리가 지금 눈앞에 보고 느끼는 것은 대상의 실체, 본질이 아니라 우리가 부여한 대상의 가치라니, 이런 부분에선 동양 사상이나 불교 사상에 관한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난다.

 

걷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건 내 몸이나 마음이 그래도 정상 수준에 있을 때 얘기이고, 가끔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심할때는 걷기는 커녕 자리에서 꼼짝 하기 싫어지기도 하다. 이럴 때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선다는 것은 정상 수준에 있을 때보다 몇배 더 강한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 그렇다면, 그런 수준에 이르기 전에 미리 미리 대처를 해서 스트레스나 불안 수위가 그렇게까지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수 밖에.

문없이 벽으로만 둘러쌓인 방에 갇혀 있는 느낌은 살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인데, 그 상황을 애써 부정하고 모르는 척하며 넘아가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차라리 똑바로 인정하고 벽에 문이든 창문이든 낼 수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런 내면의 힘을 키워가는데 느리게 걷기는 분명히 한 몫 한다.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찰스 디킨스-

 

 

걷기는,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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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8-1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기 예찬이라는 책, 제목부터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나요. ^^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높을 때, 정말 꼼짝하기 싫을 때, 잠만 자고 싶은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안 일을 합니다. 걷기나 비슷한 것 같아요. 벽에 문이든 창문이든 낼 수 있다는 문구ㅡ 참 좋아요.

그런데 갑자기 집 검사를 하다가 지붕에만 창문을 냈던 어느 그림이 생각이 나네요.
이런 그림의 해석이 참 잼나요... 이런 창문은 남들은 집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자신은 내려다볼 수 있다죠.
제 창문은 그렇지 않길 바라는데, 잘 모르겠네요. 나인 언니, 즐거운 한주되셔요.

hnine 2014-08-11 19:58   좋아요 0 | URL
문이나 창 없는 방,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한데,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 자신을 그런 곳에 가둔 채 속수무책으로 지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하니 참...
몸과 마음이 이렇게 같이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저자의 전작인 <걷기 예찬>이 이 책보다 좀 더 좋았어요 저는 ^^

icaru 2014-08-1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쩐지 책 표지가 오래 눈에 와 박히네요.
처음엔 그냥 어디에나 흔한 다리 사진인가 했다가는,, 다리가 아니고, 물가를 끼고 있는 도로네요.
걷고 싶은 길들을 아직 가리는 저는 ㅎㅎ
꽤 쓸만한 운동화를 장만하면 걷는 일이 즐거워질지도 하는 생각이나 하구요 ^__^

hnine 2014-08-12 23:22   좋아요 0 | URL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싶은 사람과 걸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있을까요? ^^ 저도 바라는 일이랍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걷기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걷기를 말하고 있어요. 몸을 움직여나감으로써 마음의 정해진 회로에서 벗어나보는 것, 정체된 상황에서 자신을 일으켜보고자 하는 노력, 뭐 그런거라 할까요?
해가 갈수록 걷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긴 해요. 저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요. 언제부터 이렇게 일부러 걸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지...
책 표지 그림이 예뻐서 꼭 미술책 같기도 했어요.
(아참, 그리고 제 건강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이제 완전 괜찮아요~ ^^)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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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거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는가하면 이 책 처럼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다시 읽게되는 책이 있다. 숙제처럼 남아 있는 책. 그래서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느낌을 정리할 수가 없다. 언젠가 또다시 읽게 될까.

1869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지드는 우리에겐 <좁은 문>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이 책 말고 내가 더 읽은 책으로는 <전원교향악> 정도이다. 고등학교때 나에게 글로, 말로, 이전의 누구와도 다른 공감, 교감을 나누던 분이, 이 책을 꼭 읽어보라는 권유도 아니었고 그저 편지에 단 한줄 이 책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읽어본게 첫번째였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싱크로 시키고 싶어했던 그분이 그렇게 찬탄한 이 책을 처음부터 끝페이지까지 다 읽도록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 것이었다. 좀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봐야겠다 했던게 거의 30년 후인 지금이 될 줄이야. 처음 읽을 때 만큼 오리무중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며 읽지 못했다. 마치 한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몇 사람이 돌아가며 쓴 것 같은 느낌. 작가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아는 지식으로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욕망과 본능을 허용하며 살자는 쪽인지, 아니면 신의 존재를 항상 잊지 말고 자기 완성을 추구하며 살자는 쪽인지.

한가지 분명한 건 이 책은 눈으로 들어오는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는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냄새를 맡아가며, 귀로 들어가며, 살갖으로 느껴가며 읽어가야 한다.

평소 그리스신화와 성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데 이 책 제목 <지상의 양식>은 코란의 제2장 23절 "여기 우리가 지상에서 양분을 받은 과일들이 있다"에서 왔다고 한다. 제자인지 후배인지, 아니면 젊은이를 일컬은 익명인지 모르겠지만, 나타니엘이라고 하는 자기보다 어린 젊은이에게 남기는 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대부분의 글이'나타니엘이여' 라는 부름으로 시작한다. 때로는 나타니엘이 아닌 '메날크'로 시작하기도 하는데 그는 지드 전반기의 사상을 대표하는 그림자 같은 인물이라고 해설에 나와있는데 이것 역시 뚜렷하지 않은 설명이다. 지드 자신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분신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쓴 글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상관있는 것일지.

처음 발표하고 20여년 동안 겨우 5백부 밖에 팔리지 않았고 그 이유를 자가는 이 책이 그 시대의 취미와 얼마나 충돌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고 썼다. 어느 비평가도 이 책을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니. 

나의 지인을 그렇게 감동시켰다는 책. 우리 나라에도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책. 내게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 책. 책 만큼이나 읽고난 심정도 복잡하다.

 

우리들이 삶에 흥미를 갖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해야 하였는지 그대는 도저히 모르리라 (16쪽)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기다림은 욕망이기보다는 다만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한갖 마음의 준비여야 할 것 (28쪽)

-욕망이 마음의 준비로 바뀔 무렵이 되어야, 그때서야 기다리는 것이 오던가, 아니면 기다림 자체가 끝이 나는 것 같다.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29쪽)

-이 구절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당시 제일 인상깊은 문장으로 노트에 따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Let every moment renew your vision." 이렇게 기억했는데 번역문과 조금 다르네. 내 기억이 틀릴지도 모른다.

 

그대의 진리가 어느 다른 사람에 의하여 발견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무엇보다도 그러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겨라. 만약에 내가 그대의 양식을 찾아준다면 그대는 그것을 먹기 위한 시장기를 잃고 말 것이다. 만약에 내가 그대의 잠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그대는 졸음이 달아나서 거기서 잘 수 없게될 것이다.
나의 책을 던져 버려라. 그것은 인생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수천의 태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대 자신의 태도를 찾아라. 무엇과도 대치될 수 없는 존재를 너 스스로 창조하라. (183쪽)

- 이번에 뽑은 베스트 문장은 바로 이것. 키워드는 "너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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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3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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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6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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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한문 시간에 배운 한자로 '신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신독은 '혼자 있을 때에도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가한다'는 뜻의 '愼獨'이 아니라, '경전을 단순히 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행한다'는 뜻의 불교 용어 '身讀'이었다.

수업 시간에 같은 음으로 읽지만 두 가지 다른 뜻에 대해 배우며, 몸과 마음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아니면 연결되어야 옳은가보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기억이 난다.

몸이든 마음이든 무겁고 명쾌하지 않을 때 제1처방은 걷는 것. 저자도 말했듯이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니까 (255쪽).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걷는 동안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어떻게 오는지 다 알테지만, 아마 이 책의 저자만큼 수려한 문장으로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번역을 그만큼 훌륭하게 해내었다는 말도 될까.

때로는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문제 거리를 곰곰히 생각해보느라 걷지만 때로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기 위해 걷는다.

때로는 걷고 있는 내 발을 보며 걷지만 때로는 왼쪽 오른쪽 살피며 꽃이나 나무를 보며 걷는다.

어떻게 걷든, 마음만 혼자 힘들어할때 몸에게 알려주는 걷기.

몸이 무거울때 그걸 이미 알고 같이 무거워지려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걷기.

 

저자는 사회학을 전공한 교수이지만 '몸'의 문제와 중요성에 오래전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81)노래는 보행의 도반이요 마음의 균형추다.

(250)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본질적인 것에만 이 세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252)길을 걷다보면 세계가 거침없이 그 속살을 열어보이고 황홀한 빛 속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는 어떤 개인적인 변신의 문턱 같은 것이다.

(258)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261)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264, 역자 후기)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지시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육체다. 이것은 뒤르켐의 오래된 직관이다. 즉 몸은 개인화의 요인인 것이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세상에 내놓는 것, 우리를 인정받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몸이다.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인식의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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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0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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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2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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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1 0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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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05: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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