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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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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누가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뭐라고 대답할지 준비해놓지 못했다. 준비해놓지 못했다기보다 아직 내 머리속에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말은 곧 그것에 대해 충분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

사랑은 "진실도(眞實度)"라고 생각한다며, 억지로 만든 것 같은 말을 편지에 써서 보내주었던 대학교때 친구 생각이 난다. 상대방에게 얼마나 진실하고자 하느냐, 그게 곧 사랑에 대한 척도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을 읽으며 무슨 소리야, 건성으로 읽었던 나.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한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있는 나에 비해 그 애는 그때 벌써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거지.

저자에게 사랑은 정확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정확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랑이라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보이고자 함'. 이 책의 제목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내 나름대로 풀어서 써본 것이다.

웬 사랑 타령이냐고?

사랑에 대한 글은 이제는 읽기도 쓰기도 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실은 본능, 충동, 욕망 들의 변장일 뿐이라고 단정하며 짐짓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이 성숙하다고 믿는 미성숙한 소년들을 뿌듯하게 만들기는 하겠으나, 그것은 사랑에 대한 온갖 미신과 기만을 재생산하는 담론들속에서 달콤하게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없다. (26쪽)

 

미성숙한 소년들이었구나 나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다. (26쪽)

 

이 구절은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라는 제목으로 쓴, 영화 <러스트 앤 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비평글에 나온다. 이 영화를 나는 아직 못봤지만 중간에 영화의 내용을 살짝살짝 소개해주고 있기 때문에, 아니, 영화 내용을 몰라도 글 속에 빠져들게 하기 때문에, 읽는데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떤 영화에 대해 말하든지 저자는 어느 한쪽 편에 서서 말하지 않는다. <케빈에 대하여>를 그렇게 자세히 파헤쳐 분석하고 있음에도 영화 속의 엄마 에바나 아들 케빈, 그 어느 한쪽을 더 공감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에바가 케빈에게 "엄마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라고,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말을 했다는 인용글 (51쪽)을 읽으면서, 또 자신이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견뎌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받지 못하는게 당연한 존재로 만드는 것,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비참한 아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엄마에게 지독하게 구는 나쁜 아들이 되는 것이 더 견딜 만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해석 (53쪽)을 읽으며, 저자는 어쩌면 케빈의 소시어패스적인 행동 뒤에는 엄마가 있다고 해석하는구나, 라고 느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무르>라는 영화를 보지 않길 잘했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죽어가는 자에게 정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육체적 통증이 아니라 정서적 고립이다 (59쪽)

 

죽어가는 자란 꼭 죽음을 눈 앞에 둔 주인공 안느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가는거니까. 늙어가는 과정은 곧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이 영화를 보았다면 나는 얼마나 한참동안 이 영화의 기운에서 헤어나지 못했을것인가.

이 영화에 대한 비평 속에 '왜 서사(이야기)라는 것이 필요한가' 라고 시작하는 구절은 문학의 역할에 대한 멋진 비유이다.

 

어떤 조건하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할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하 것이다. 그 20명에게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려고? 아니다. 20명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이야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는 없을 그런 상황을 창조하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 이것이 문학이다. (65쪽)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대한 글에서 저자는 시야말로 마음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는 장르라고 했으며, 시는 마음의 투명한 재현을 추구하는 1인칭의 독백이기 때문에 시에 어떤 화자가 등장하건 그는 곧 시인 자신이라고 했다. 그가 문학 중에서도 시 (poem이 아니라 poetry)에 얼마나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의 전작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는 있을 것이다.<시>란 영화에서 주인공 양미자 씨가 시가 아니라 소설을 썼더라면? 이 영화에 대한 글의 소제목이기도 하다.

 

<그래비티> 웅장하고 광활한, 그래서 존재의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던 그 영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허무함 속에는 사실 '왜 지구로 돌아가려 하는가'라는, 단순히 허무감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질문이 있었고, 그것은 '우리는 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이것이 철학의 유일한 근본문제라고 했다는 물음까지 이어지게 한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라이언 (샌드라 블럭)은 남편도 없고 자식도 사고로 잃어 그 충격으로 그저 매일 운전하듯이 삶을 이어나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꼭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라는 물음. 영화를 보며 그냥 허무함을 느꼈을 뿐 이런 문제까지 생각 못했다가 책 속에서 만나는 이 물음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저자는 물음을 던져만 놓고 답없는 질문이라며 글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신형철이란 사람은, 글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글, 사유의 결과로 글을 쓴다는 믿음을 주는 이유가 있다. 생명을 그 자체로 긍정하기. 이것도 하나의 가능한 대답으로 생각한다는 겸손함과 함께 내놓은 결론이다. 삶이 아니라 생명. 그것은 그 자체로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얕은 감정만 발달한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글을 읽으며 그저 울컥하는게 전부이다.

 

<노예12년> 201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 감독의 이름이 스티브 매퀸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가 이 스티브 매퀸은 내가 아는 그 스티브 매퀸이 아님을 알아내고 내 연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영어도 Steve McQueen으로 똑같다니.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이 사람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1000억개의 뇌세포 중에,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10억개 정도라는데, 이 사람이 한편의 글을 쓰는 동안 사용하는 뇌세포는 일시적으로나마 폭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해본다. 문학에 대한 애정, 애정에서 비롯한 책임감, 책임감있는 사유, 한줄의 글도 건성으로 대충 쓰지 않겠다는 책임감. 그것은 곧 그가 말한 다음 구절과 일치하는 작업일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뽑은 부분이다.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27쪽)

 

정확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랑이라고 말한 그는, 자기의 그 생각을 '문학'에서도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그래비티>에 대한 글 중 212쪽 아홉번째줄, '라이언을 태운 소유즈가 우주선의 파편들과 함께 지구를 향해 착륙하는 장면은 무심코 봐도 지구라는 난소를 향해 정자가 돌진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림이 그려지는데 '난소'가 아니라 '난자'가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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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0-23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좀 더 공들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댓글부터 성급하게 답니다. 왜냐면...(지금 너무 늦었으니까)

난소를 난자로 정정하신 데에는 나인님 오타 잡아내는 눈썰미라기 보다는 `생물` 전공하신 분의 식견으로 사료되옵니다.^^

hnine 2014-10-23 02:00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읽어보며 제 글 속의 오타를 잡아내야 하는데, 내일 해야겠습니다. 지금 너무 늦었으니까~ ^^
늦은 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비로그인 2014-10-23 11:36   좋아요 0 | URL
신.형.철. 문학평론으로 이미 대단한 일가를 이룬 분이 영화를 건드리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요. 요즘 어쩌면 가장 핫한 인물, 중의 하나일텐데(특히 우리여성들 사이에서) 아무튼 신형철의 문장은 대단히 옳다(좋다를 넘어서는)는 생각을 해요. 논리에도 감각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신형철의 문장이 아닐까, 해서요. 근데 한가지 좀 아쉬운 건 왜 신형철은 굳이 중립을?.. 정말로 입장을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면 그때만큼은 어느 한 편의 손을 `정확하게` 들어주는 것도 평론가의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hnine 2014-10-23 12:36   좋아요 0 | URL
예! 바로 그 생각을 저도 읽으면서 했었답니다. 어떤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살리는데 이렇게 분석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분명히 부정적인 의견을 갖는 작품도 있었을텐데 읽어보면 그런건 없어보여요.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며 조금 알아차렸달까요. 신형철이란 사람 나름대로의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요. 아주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방법으로 ^^ 이것도 능력이더라고요. 아마 긍정적인 얘기를 쓸때보다 더 머리를 쥐어짜서 썼을 거예요.

하늘바람 2014-10-23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반성하게되네요. 역시 님이시구나 합니다.

hnine 2014-10-23 09:08   좋아요 0 | URL
아이쿠, 무슨 말씀을요. 책 속에 소개된 영화를 실제로 본게 몇 편 없음에도 생각보다 별로 오래 끌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늘바람님도 언제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세실 2014-10-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놓고는 읽지 않았는데 님 글 보니 막 읽고 싶어집니다.
영화 <시>의 주인공이 소설을 썼다면? 음......
소설을 쓰기에는 좀 딸리실듯. ㅎㅎ 시를 쓴다기보다는 무언가 비루한 삶을 잊고 싶었던 하나의 돌파구였죠?

hnine 2014-10-23 14:57   좋아요 0 | URL
세실님! 언제가 되더라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시>를 저는 못봤음에도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에 쏙쏙 들어오던지요. 저 고등학교때 독일어 선생님이 영화 본 얘기, 책 읽고난 얘기를 수업 시간에 종종 들려주셨는데 제가 직접 보고 읽은 것 보다 더 재미있게 말씀해주시는 재주를 가지셨더랬어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더니, 우리가 직접 보거나 읽으면서 혹시 놓칠수 있는 것 까지 살려서 정확하게 그 영화나 책에서 말해주고 있는 점을 말씀해주셨던거죠.
영화 <시>에서 주인공이 소설이 아니라 시를 썼다는 것의 의미 속에는, 시와 소설이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은가, 시란 무엇인가 등등, 저라면 영화를 직접 봤어도 놓치고 지나갔을 것들을 저자는 참 잘 분석해놓았더군요. 감탄했어요.

서니데이 2014-10-26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 이 시기 즈음에 그래비티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벌써 1년 전이네요.

hnine 2014-10-26 06:24   좋아요 0 | URL
근래는 영화를 많이 보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이 영화는 그래도 운좋게 보았답니다. 저자처럼 저렇게 분석해가며 보진 못했고 그저 우주에서의 고독감이란 지구에서,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이란 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꼈을 뿐이랍니다.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을텐데 거의 놓치고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안타깝고 그랬지요.
 
F.book 신경옥이 사는 법 - <작은 집이 좋아>에서 못다 한 이야기 F.book 시리즈
신경옥 지음 / 포북(for boo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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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손으로 구입해놓고도 시간이 좀 지나고나서 보면 무슨 맘으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을까 싶을 때가 있다. F.book이라는 식의 제목도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싶었으면서도.

별로 오래전 일도 아니기에 다시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나이쯤 되면 비슷한 관심사, 비슷한 헤어 스타일, 비슷한 옷차림화 되어 가는 것을 보며 스스로 어긋나보고 싶었던 것 같다. 2, 30대 때야 어떻게 하고 다니던 개성으로 봐주지만 4,50대로 가면 화장 안하고 외출하다가도 이래도 되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되고, 퍼머를 잘 안하고 자르기만 해오다가도 혹시 이게 남보기에 꼴불견은 아닐까 문득 생각해보기도 한다. 외출할 때 가방은 편하고 큼지막한 것을 들고 나가기를 수십년 해오고 있는데 이제는 가끔 이게 내 나이에 안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때서야 남들은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어떻게들 사는지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데 아마도 그러다가 이 책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자기 스타일대로 살면서도 그게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스타일로 제대로 읽혀지고 있는 듯 했고, 그런 사람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일까 엿보고 싶은 심리랄까. 이 책이 눈에 띈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 웬만하면 그냥 이대로, 내 편한대로 쭉 살고 싶은 마음에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모습을 보니 숏커트 중에서도 숏커트. 화장기 없는 얼굴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했다기 보다 포인트만 살린 깨끗한 화장. 육십이 낼모레인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바로 그려지는 이미지, 소위 사모님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 우선 반가웠다. 옷 입은 스타일이 어딘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낡지는 않았으나 오래 입은 티가 나는 옷. 확실히 누구를 흉내낸 모습은 아니었다. 신경옥 그녀의 스타일이니 꼭 내 맘에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겐 좋아보이기도 하고 또 누구에겐 아니다 싶기도 하겠지. 하지만 누구를 따라한 차림새는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한가지. 자기 손이 많이 갔다는 데에 있다. 천을 끊어다가 직접 만들어 입는 것 까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내 맘에 드는대로, 있는 옷을 이렇게 바꿔 입어보고 때로는 작아진 남편의 웃옷을 자기 옷으로 응용해서 입을 줄 아는 융통성. 옷이 없으면 만들어진 옷을 구입하러 나서는 대신 입고 있는 옷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는 노력. 이렇게 나온 스타일이 어찌 걸려있는 옷 구입해서 입는 것과 같을 수 있으랴.

 

유명잡지사 편집인으로 경력을 쌓은 여섯명이,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그들만의 작은 편집기획 회사를 차렸다. 바로 이 책을 만든 '에프북 (forbook)'이라는 회사이다. 회사가 먼저 기획을 하여 저자 신경옥을 설득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편집인의 전문적인 글솜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래서 책을 티없이 매끄럽게 만들기는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옥의 티로 느껴지기도 했으니 어쩔까. 저자 신경옥은 인테리어 전문가이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닌데 책 속의 글은 마치 여성월간지의 기사를 읽는 듯 재치있고 가독성이 있다. 구슬이 서말까지 되지 않아도 기막힌 목걸이로 꿸 수 있을 솜씨들이다. 저자가 아니라 편집인들 말이다.

 

신경옥 그녀의 옷입는 스타일도 그렇지만 집과 작업실도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빈티지 스타일에 가까웠으며 그녀의 취미는 백화점 쇼핑이 아니라 구제시장 나들이라고 한다. 자식 공부에 신경쓰는 일보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는 일보다, 자신의 일이 좋아 그것에 몰두하며 살았다는 저자. 살아온 길에 대해 후회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내 좋은 방식대로 살아온 사람에게 '깊은' 후회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십년쯤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보일 것인가. 아마 그것에 신경쓰지 말고 오늘을 열심히, 내가 좋은대로 내 일에 열중하며 살다보면 그때쯤 어떤 스타일이 생겨나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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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0-1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제 옷은 누가 입나 했는데 이런 분도 찾는군요. 이것도 하나의 편견이겠지요^^
주변 사람들도 가치관이나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나름 나름 열심히 살고 있네요.
그저 책 대화가 통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박웅현이 말한 `순간에 집중하면 살자`를 요즘 떠올리고 있습니다.
단순해지면서 꽤 괜찮은 방법이더라구요. 규환이에게 세뇌처럼 하고 있답니다.

hnine 2014-10-13 17:04   좋아요 0 | URL
과거에 매여살기 보다, 미래를 계획하느라 현재를 저당잡히기 보다, 지금 이순간 `순간`에 집중하며 살자는 말씀에 동의해요. 규환이에게 강조하고 계시는군요 ^^
저는 구제옷 종종 이용하는 편이었어요. 저자처럼 나에게 맞게 수선하고 150% 효과를 내며 이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제옷, 다린이옷, 또 장난감 등, 덕을 톡톡히 봤었지요. 이분 따님이 요즘 엄마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대요. 작업실도 멀리 있지 않아요. 집에서 방 하나를 아주 근사한 작업실로 꾸몄지요. 주로 집에서 일하는 저도 종종 제 방을 내 사무실이라며 큰소리 땅땅 칠때 있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

순오기 2014-10-1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스타일대로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듯해요.
어디선가 나를 보는 시선을 생각한다면...
내 이웃에도 요렇게 사는 분 있어 부러워하면서 살아요.
늦깍이로 공부하고 초빙교수로 일하며 손수 옷도 만들어 입고 인테리어도 전문가처럼 잘하고...

hnine 2014-10-13 17:10   좋아요 0 | URL
와, 순오기님 이웃에 그렇게 사시는 분이 계시는군요. 더구나 늦깍이라는 것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하고 싶던 일을 소신있게 하는 분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저도 나름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사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냥 귀찮아서 그러는 것일 뿐 이 책의 저자처럼 자기만의 멋을 창조하며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때로는 내 방식대로 산다는 것이 독선적이고 폐쇄적이고 답답하게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이 가끔 의식될 때도 있어요.
저도 제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주기적으로 재봉틀을 살까 말까 하고 있답니다. 인테리어에 대해서는 거의 빵점이고요 ^^

2014-10-13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4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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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인문학에 묻다>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 실린 열일곱 명이 모두 인문학자는 아니다. 그럼 왜 제목을 그대로 고수했을까. 인문학자와의 인터뷰만 실으려던 계획이 중간에 틀려진 것일까.

힐링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시대. 더 잘 살고 잘 먹고 더 편한 세상에 살지만 힐링이 이토록 주제어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질 문명과 기계 문명의 한계, 진정한 소통의 부재, 내면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 빠름이 강조되는 시대, 이런 사회에 살아나가느라 예전보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그보다 나는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본다. 우리는 정작 상처를 받기도 전에 우선 상처받을까, 상처가 생길까 두려워하는 심리가 '힐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고. 우리는 과연 힐링이 필요할만큼 치열하고 용기있는 도전을 시도나 해보았을까? 잠깐 뜨거운 물에 손끝, 발끝만 담그어보고 화들짝 놀라 어떡하냐고 발 동동거리며 치료해줄 무엇을 찾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뜨거운 물에 덴 사람은 없는데도 말이다.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슬픔이 따로 없는 것 처럼. 어딜 가면 항상 무지개가 있던가? 지금 보이는 무지개가 얼마나 지속되던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제목처럼 그게 알고 싶어서 읽은 건 전혀 아니었다. 제목이 무엇이든, 예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힘든 고비를 어떻게 딛고 일어났는지 그런 얘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도 그런 차원에서 읽게 되었다. 일종의 소극적인 대화인 셈이다. 그러니 제목따윈 아무래도 좋다. 책 속 열일곱 사람이 모두 인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상처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인간적 성숙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그 이유는 상처를 재료로 우리는 뭔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한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우리가 자기의 고민을 혼자 가지고 있지 않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 실마리를 찾게 되는 이유는 '객관화'에 있다고 했다. 남에게 말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객관화 시키게 되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상처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모독 훈련'이라는 것을 소개한 진중권. 먼저 흥분하면 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리 상대로부터 모독을 받아도 흥분하기 보다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라고 한다. 그에게 행복에 대해 묻자, 동태전에 술국 곁들여 막걸리 한잔 하는데 너무 맛있더란다. 그리고 삶이 막 아름다워지더라면서, 행복이 뭐 대단한거냐고, 그냥 내게 이미 있는 걸 찾으면 된다고 한다.

지나온 삶을 얘기하면서 한번도 상처를 언급하지 않은 황병기는, 아무리 부인하려해도 천재성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반면 범인에서 시작한 비범인이라고 부르고 싶은 최재천의 "땀흘리며 살되 욕심내지 않기"란 말. 땀 흘린 만큼 기대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범인일 텐데 말이다.

다른 학문에서 대답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던져 버린 것, 그걸 담아야 하는게 철학이기때문에 철학은 휴지통이어야 한다고 말한 장하석.

자식은 부모의 교과서라고 말한 유미숙. 아이는 언젠가 부모의 곁을 떠날 것이고, 나는 아이에게 책임이 있지만 아이는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 줘야 할 책임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거 잊고 나이 들어가면 노년이 구차해진다.

뇌과학자들은 화가 났다는 느낌이 들면 초콜릿을 먹어 보라고 한다고 한다. 뇌과학자 김대식의 말이다. 진짜 화났을 때와 배고팠을 때의 신체 반응이 똑같아서 초콜릿 하나를 먹음으로써 화가 풀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굳이 화가 날 필요가 없는데도 마음이 아픈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이란 단순한 만족이 아니라 창의성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비록 지금은 만족스럽지만 더 나은 만족을 위해서 '나와 세상 사이'를 일부러 불일치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때의 불일치는 자아를 새로운 레벨로 업그레이드해야만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설명은 신선하고 설득력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때는 삶의 문제도 즐기며 한다. 얼굴은 고통으로 찡그리고 있을지라도 그 문제를 파고드는 동안 살아있음을, 자기가 무가치한 인간이 아님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 실린 열일곱사람은 모두 다른 분야의 관심사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공통점은 거기 있었다.

 

400쪽이 좀 못되는 분량에, 열일곱명의 생각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겠느냐고, 어차피 피상적인 기술 밖에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저자는 최종적으로 이 책에 실린 만큼만 인터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분량을 쓰고 모아야 했고 그중에서 고르고 다듬어 이 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음을, 그만한 효과가 드러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즉, 한번 읽어볼만 하다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우울, 슬픔/그리고 어떤 순간적인 깨달음이/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혹여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휘젓고/ 가구들을 몽땅 쓸어 가 버리더라도/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며 대접하라/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그대를 청소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원한/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히 여기라/모든 손님은 저 너머에서 보낸/안내자들이니까"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

 

- 책 마지막 페이지에 인용되어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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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리뷰 덕분에 이 책이 읽고 싶어졌어요~ ^^

hnine 2014-11-16 20:42   좋아요 0 | URL
전 순오기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려보고 싶어요. 행복은 어디에?
대답이 궁금한 분 중의 한분이시랍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한번 물어봐요.
행복은 어디에?
--> 행복은 ˝행복은 어디에?˝라고 묻지 않는 그 마음에.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인데 시간이 흐르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날이 많이 쌀쌀해졌는데 건강 주의하세요.
 
지하로부터의 수기 펭귄클래식 1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난 영혼 속에 지하실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든 만나고 알아보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난 어두운 곳으로만 다녔다. (74)

 

도스토옙스키. 1821 7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직업작가의 뜻을 두고 제일 처음 발표한 작품이 <가난한 사람들>(1846). 고등학생 때 읽고 가슴 아릿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는 책이다. 반정부 역할을 했다는 죄목으로 한때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처형직전 황제의 특사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 되었다. 시베리아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공상적 혁명가에서 신비주의자로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투옥 생활을 하는 동안 밖에서는 크림전쟁이 일어났고, 석방된 후 일병으로 강제 복무하는 동안 만난 여자와 나중에 결혼하게 되지만 (1857) 석방 후 시간들도 평탄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는 정치적 변동의 시대였고 개인적으로는 첫 유럽 여행을 하였고 아내와 형이 연달아 죽었으며 (1862) 이러한 사건들을 겪는 가운데 그의 정신 세계가 어떠했을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라고 하겠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하여 도스토옙스키는 문학의 전환점을 이루게 되고, 이 소설 이후로 <죄와 벌>(1865~66)을 포함하며, 관념적 소설들로 이어지는 작품 제2기를 맞게 된다. <백치>(1869), <악령>(1871),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소위 그의 위대한 소설들이다. 정치검열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다시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하였고 두 번째 결혼한 여자와의 사이에 딸, 아들을 두지만 셋 중 둘이 어릴 때 죽는다. 1881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평탄하지 않은 삶이다. 그 자신이 20대부터 신경성 병과 간질병을 앓기 시작했고, 사형선고, 그 추운 시베리아에서 투옥 생활, 석방되고도 한동안 시베리아를 떠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자유롭지 못한 생활 등. 이런 삶의 경로를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만의 지하세계가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해설에 의하면, 의식의 지하세계에 살면서 어둡고 자폐적이며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감정 속에서 쾌락을 찾는 작품 속의 지하인은 어떤 한 사람을 나타낸다기보다 획일적, 도덕적, 이성적인 그 당시 새로운 인간에 대응하여 도스토옙스키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인물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상인 것이, 냉소적이고 고립적이긴 하나 주인공은 고립된 세계에 살면서도 학문적인 논리를 펼칠 줄 알고 고독을 즐길 줄 알며 나름대로 소통의 대상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의식적인 무기력함이 오히려 더 낫다! 그러므로 지하실 만세! 비록 내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정상적인 사람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보는 상황에서도 결코 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를 부러워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지하실이 더 이롭다!). 적어도 지하실에선 가능하다. ! 난 이 시점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하실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 내가 열망하지만 결코 찾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것이 더 낫다라는 사실을 마치 2x2=4처럼 내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지하실이라니, 악마에게나 가라지! (59)

 

주인공의 이중성과 모순이 잘 나타나고 있는 구절을 뽑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구차스럽고 불만스러워하지만 않는다. 오히려 정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지상보다 오히려 지하라는 고립된 세계에서 더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집에서 난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했다. 계속해서 내 안으로 파고드는 외부의 자극들에 빠져보고 싶었다. 외적인 자극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독서 하나였다. 물론 독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독서는 날 흥분하게 만들거나 위로해주기도 하고 또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때론 미치도록 외로웠다. 어쨌든 움직이고 싶었고, 그래서 갑자기 지하의 어둡고 혐오스러운 일에 빠졌다. 그것은 거창한 타락이 아니라 조그만 어긋남이었다. 내 안의 열정들은 강렬했고 늘 그래 온 병적인 초초함 때문에 들끓고 있었다. 눈물과 경련을 동반한 히스테리컬한 발작이 있었다. 독서하는 것 말고는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그 당시 내 주위에는 호의를 가질 만한 일도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수가 찾아왔다. 모순과 역설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난 어긋나기 시작했다. 난 결코 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거짓말을 했다! 난 내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다. 여러분, 이건 나를 위한 거짓말을 지적하고 싶다, 난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약속한다. (74)

 

독서에 대한 집착과 지하세계를 은근히 연결 짓는 이 구절에서도 주인공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이것이 소설인가 수필인가 할 정도로 주인공의 생각을 설명한 부분이 많고, 주인공과 도스토옙스키를 동일시하여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중성과 모순. 지하인은 어쩌면 시대를 불문한 인간의 내재적인 모순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해설자는 덧붙이고 있는데 그것이 이 작품이 갖는 의의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예술이란, 시인들과 낭만주의자들에게서 훔쳐와서 모든 가능한 서비스와 요구에 응하기 위해 준비된 존재의 아름다운 형식 (87)

이것은 예술을 정의한, 나름 매력 있는 문장이란 생각이 들어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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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4-10-0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졸업 후, 말 그대로 책만 읽던 시절에 이 책을 읽었었지요. 구구절절 가슴에 콕콕 박혔던 책이었어요. 그 아픈 시절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어서...늙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hnine 2014-10-03 15:13   좋아요 0 | URL
전 지금도 가끔 지하와 지상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작가가 말하는 지하세계와는 정도와 수준이 다른거겠지요. 이 책 다음으로 읽고 있는 책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상처를 재료로 우리는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는거라고요. 도스트옙스키의 굴곡많은 일생이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게 했나봐요.
독서와 관련된 구절을 읽으면서는 책 속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다 지하생활인의 은둔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발 저리기도 했답니다.
 
날짜변경선 문학동네 청소년 9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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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느 웹사이트에 올린 나의 글을 그주의 당선작으로 뽑아준 사람이 전삼혜 작가였고, 몇주 후 상품으로 배달된 몇가지 물건 중에 이 책이 들어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행운과 용기를 빌어요 2014 여름 전삼혜" 라는 작가의 손글씨와 함께.

1987년생. 내가 대학 3학년때 태어난 젊은 작가이다.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작가도 고등학교 재학시 백일장 키드로 살았고, 그 특혜로 대학에 입학했으며, 졸업후 이젠 더 이상 백일장에 나가지 않아도 될때 처음 써본 장편소설이 이 책이라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고등학생인 것도 그렇고, 작가의 고등학교때 경험이 이야기 전반에 스며있다고 짐작된다.

글로 대화하고, 글로 만난 세 사람. 이들의 공통점은 백일장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지만 그 이유까지 모두 같지는 않다.

우진, 그는 기형도 시를 계기로 시에 빠져 한동안 시 쓰기에 열을 올려보지만 한계를 느껴 소설 쓰기로 방향을 바꾼다.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 수업까지 빠져가며 전국 이도시 저도시 다녀야 하는 일이 짜증스럽다고 하나 글 쓰는게 너무 좋은 우진의 마음을 꺾어놓진 못한다.

학교에서 이유 없이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몸과 마음 모두 상처를 받은 후, 그 아이들로부터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받긴 했지만 학교로부터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백일장에 참가하게 된 윤희. 이유야 어쨌든 나가는 백일장마다 거의 수상을 한다.

그리고 또 한사람 현수. 이 소설의 화자인 셈인데 우진과 윤희보다 한살 어리기 때문인지 글 쓰기를 좋아하면서도 나는 왜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등의, 답 없는 물음을 던지며 혼란스러워한다.

화자는 현수이지만 아마 독자의 호기심을 끝까지 끌고 가는 건 이 중 윤희가 아닐까.

"미안, 나는 네가 계속 왕따였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가방이 없어져 찾고 있는 윤희에게, 조용히 가방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같은 반 아이가 한 말이다.

그녀 역시 윤희 이전에 반 아이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자기가 당했던 것을 윤희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얘기한 것이다. 윤희가 아니었다면 계속 왕따가 되었을 애.

결말이 섬뜻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끝페이지까지 갔던 건 아마 대개 이런 소설들이 그렇게 결말을 맺고 있더라는 것이 학습되었기 때문인지.

제목 '날짜변경선'은 세 사람이 처음 만났던 인터넷 카페 이름이고, '변경'이란 단어는 마지막으로 참가한 백일장에서 제시된 제목이기도 하다.

변경. 우리 삶의 어느 대목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이것때문에 우리는 절망하기도 하고, 또 마지막 희망을 품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 후 그때가 인생의 한 변곡점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섬찟한 결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읽고 난 후 기분이 좋다. 고등학생 시절을 다 거친 후에 썼음에도 마치 지금 고등학생이 쓴 것처럼 자연스러운 문체와 표현때문에 아마 지금 고등학생들이 읽으면 한글자, 한줄 글마다 피부로 쏙쏙 스며드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전삼혜 작가님, 계속 좋은 작품 써주세요. 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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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9-2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날것같네요 학창시절 이야기는 언제나 와닿습니다. 작가가 참 섬세하네요

hnine 2014-09-29 13:58   좋아요 0 | URL
작가 자신의 경험이 모자이크 식으로 이야기 여기 저기 들어가있답니다. 따돌림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있는데 그들이 나름 다 다른 걸 보면 신기하지요. 전 우연한 거짓말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어요. 어른의 목소리가 아니더라고요 이 작품은.

노이에자이트 2014-09-2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와 독자가 이런 인연을 맺을 수도 있군요.부럽습니다.

hnine 2014-09-29 20:02   좋아요 0 | URL
일찍 등단해서 큰 상도 받았는데 요즘은 작품 활동이 뜸한 것 같아서 궁금해요.
이 책엔 특별히 충격적인 대목이 있거나 표현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마치 고등학생 저자가 쓴 양 자연스러워,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답니다.

세실 2014-09-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전삼혜....삼삼하다는 단어가 맴도네요~~~
이른 나이에 촉망받는 작가군요. 부럽다^^
우아한 거짓말처럼 섬뜩한 결말은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hnine 2014-10-01 00:45   좋아요 0 | URL
청소년소설중에 섬뜩한 결말인 것들이 꽤 있지요. 이 책에서도 따돌림 이야기와 함께 은둔형 인물이 나오길래 혹시 또 충격적인 끝을 보게되나 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작가 이름이 독특하지요? 본명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른 웹사이트에서 보니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일찍 능력을 인정받았으니 앞으로 그 능력을 맘껏 발휘했으면 좋겠어요.

icaru 2014-10-0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솔직히 말하면, 나이가 어린 작가가 쓴 소설은 다소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고는 읽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
시라면, 또 모를까요..
제가 나이가 들어가니까, 생긴 증상이어요,, ㅎㅎ ㅅ
그런데, 이 작가의 작품 읽어보고 싶네요~ 진짜... 그리고 계속 작품을 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요..
문재가 있어서 잠깐 반짝하는 게 아니구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무슨 문학상에서인가 수상작이었던, 남상순의 ˝흰뱀을 찾아서˝를 읽고, 너무 좋아가지고, 기존에 읽었던 것들,,, 자아는 팽배에 있고, 시대의식은 비장하고 그런 일련의 작품들이랑 너무 다르게 정답고 신선해서,, 그런데 그 작가 작품을 이후에 찾아 읽어보기가 어렵더라고요 ;; 작품은 계속 내셨을 텐데,, 제가 못 찾아 읽은거지만, 왜 갑자기 남상순 작가가 생각났을까요? ㅎㅎ

hnine 2014-10-02 21: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라서 다른 작품들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일찍 등단한데서 그치지 않고 계속 그 여세를 잃지 않는 김애란 같은 작가도 있지요. 저도 솔직히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 이 나이에 벌써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마치 겪어본 것 처럼...하면서 감탄할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작가이겠지요.
전 남상순 작가의 ˝사투리귀신˝이라는 책을, 독서 모임에서 읽기로 해서 읽었는데 남상순이라는 이름에서 기대하던 것에 비해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그러고 보니 정작 ˝흰뱀을 찾아서˝는 읽지 않았네요. 하도 많이 들어서 읽은 줄 착각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