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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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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나이 예순에 알았던 것, 그것을 나는 이미 스무 살에 깨닫고 있었다. 확인을 위한 사십여 년에 걸친 길고, 무용한 작업......(16쪽)

 

신에게서 멀어질수록 사람은 종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43쪽)

 

사람이 늙어갈수록 '문제'를 제쳐 놓고 자신의 과거를 들쑤셔 보는 것은 아마도 사념에 집중하기보다는 추억을 뒤적이는 것이 더 쉬운 일이기 때문이리라. (71쪽)

 

냉소로써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도울 수 없는 법이다. 냉소로써는 오로지 자신의 상처-자신의 혐오감이 아니라면-만을 감출 수 있을 뿐이다. (213쪽)

 

나는 불안에 대한 처방을 회의에서 찾았다. 처방은 마침내 병과 한통속이 되어 버렸다. (220쪽)

 

자동장치와 변덕의 혼합물인 인간은 결함 있는 로봇, 고장난 로봇. (230쪽)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기초를 뒤흔드는 것, 자신의 기초를 뒤흔드는 것을 말한다. 행동은 우리 사이의 간극을 채워 주는 까닭에 보다 위험성이 적다. 반면에 사고는 그 간극을 위험스러울 정도로 넓혀 놓는다. (260쪽)

 

구원은 없다는 확신은 구원의 한 형태이며, 구원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거기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역사 철학의 체계를 세울 수도 있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유일한 출구롤 삼음으로써..... (265쪽)

 

나는 왜 이사람의 책을 읽는가.

그에 대한 답을 책 속의 한 문장에서 찾았다.

 

내면 깊은 바닥에까지 내려가 있는 사람, 일상의 환상들로 되돌아갈 욕구도 기력도 잃은 사람과 나는 마음이 통한다. (43쪽)

 

산다, 살아간다, 살아낸다

같지 않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어쨌든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를 읽은 후 두번째로 에밀 시오랑의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관점으로 한번 보았다. 그 역시 살아내려고 했고, 그래서 실망하고 아파했, 그래도 그건 진행형이었기에 끝까지 살아내었다. 무엇이 그를 끝까지 버텨내게 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마지막까지 가보기 전엔 결코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의 생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직접 끝까지 살아보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 것은 내가 어떻게 한 시각 한 시각을, 하루하루를, 한 해 한 해를 넘길 수 있을 것인가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이었다. (273쪽)

 

태어남이 불행이라는 말의 뜻은, 태어날때의 순수성과 본성을  살아가면서 점점 잃어버리게 되고 퇴색되고 변색되고 왜곡되어가는 것에 대한 통탄의 라고 본다. 태어날때, 혹은 태어나기 직전이 그래서 가장 덜 불행하다고 한 것이다.

 

삶을 한번 이렇게 보기 시작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기란 어렵다. 에밀 시오랑은 이것을 황홀경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겨우 찾아낸 출구를 보면서 다른 출구를 찾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선 것 자체가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회의주의는 막다른 길에 몰린 자의 황홀경이다. (156쪽)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 상황을 명징하게 볼 수 있는 힘이 과연 있을지. 명징하게 볼 수 있으려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이보다 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이 있을까 싶은 상태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묻게 된다. 즉, 객관적 회의주의란 가능할까, 회의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명징하게 볼 수 있는 힘만이 사막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유일한 악덕이다. (22쪽)

 

명징하게 볼 수 있었는지, 그것은 잘 몰라도 에밀 시오랑은 적어도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명징한 언어로 표현하는 힘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전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에 비해 짤막한 글들이 아포리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읽혀진다. 원제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책 안쪽에 물론 나와있는데 프랑스어엔 까막눈이다보니. '존재의 불편함', 뭐 이런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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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3-1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을 뽑아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그중 인상 깊은 것 세 개만 뽑으라면,
(신에게서 멀어질수록 사람은 종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회의주의는 막다른 길에 몰린 자의 황홀경이다)

이 세 가지 문장의 공통점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라는 것, 이네요.

아포리즘의 글을 좋아해서 예전에 이런 류의 책을 찾아 읽었어요.
이 책 팍팍 끌리는군요.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명징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더욱...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를 다시 들춰 봐야겠어요...

hnine 2015-03-14 12:37   좋아요 0 | URL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아포리즘 식이 아니었고 글도 더 촘촘했지요.
이 책이 훨씬 더 쉽게 읽힌건 토막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에밀 시오랑이 어떤 식으로 쓸지 예측하고 읽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이런 내용의 책을 누군가 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다양한 사고 방식의 하나로 보기 보다,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결정내리려고 하는 우리의 습관이 이런 책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하고요.
 
발치카 No.9
이은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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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보관함에 담겨 있던 책 두권을 주문했는데 그 중의 한권이다.

지금처럼 팟캐스트가 다양해지기전 부터 '문장의 소리'라는 팟캐스트를 듣는게 낙이었는데 이은선이라는 이 작가는 그 문장의 소리의 구성작가였다가 2010년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였고 작년이었던가 첫 소설집인 이 책을 낸 후엔 본인이 그 방송에 초대작가로 나온 적이 있다. 그때 이 책에 대해 소개를 듣고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어 보관함에 담아놓았더랬다. 그때 방송에서 듣기로, 작가는 대학 졸업후 경험을 넓힌다는 목적으로 우즈베키스탄에 갔고, 거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러시아와 가깝다는 것 정도 밖에 아는게 없는 그 나라에서의 경험, 즐겁지만은 않았던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이 책의 대부분의 단편들이 만들어졌다. <발치카 No.9> 이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까롭까>, <톨큰>, <분나> 등, 책 속의 단편 제목들도 낯설다. 우즈베키스탄의 소수 민족 언어라고 하니 그럴 수 밖에. <살사댄서의 냉풍욕>, <판타롱 아일랜드> 라는 제목들도 분위기가 만만치는 않기는 마찬가지.

모두 열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카펫: 목화를 재배하여 카펫을 짜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생계만 겨우 이어갈수 있을 뿐 병이 나도 치료도 받을 수 없는 형편. 아픈 자식을 머나먼 타국에 보내서라도 치료 받게 하고 싶은 어미와, 그렇게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에 오늘을 걸고 사는 아이가 나온다.

빛나던 해가 들판으로 가라앉았다. 훌렁, 들판이 들썩였다. 지평선이 하늘 높이 치솟았고 모글모글한 목화송이들이 허공에 떠다녔다. 몸이 훌쩍 떴다. 톨큰이 녹물을 흘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가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엄마, 나 이제 정말 괜찮아진 것 같아! 환한 빛이 들판을 감싸 쥐었다. 목화송이 하나를 잡아 그 위에 올라타고 하늘을 헤엄쳤다. 저 멀리서 다시 큰물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엄마, 율두스 조심해요! 나는 있는 힘껏 헤엄쳐 파도가 이는 곳으로 갔다. 여러 척의 목화 배들이 내 옆을 스치며 배들의 무덤 쪽으로 향했다. 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거대한 철갑상어 한 마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목화송이를 가득 쥔 손을 힘차게 흔들어주었다. 젖은 눈을 물 위에 떠 있는 목화송이에 스윽 문지른 철갑상어도 나와 목화들을 따라 배들의 무덤 쪽으로 헤엄쳐 왔다. 수평선이 다시 하늘로 치솟았고 나는 두손 가득 움켜쥔 목화송이를 하늘로 띄워 보냈다.

넓고 푸른 바다 위, 하얀 목화 배를 탄 나였다 (33-34쪽)

이 단편의 결말이다. 아이는 살아나나? 아니면 죽음을 의미하나? 어디까지가 실제 상황이고 어디부터가 아이의 상상인지 모르겠다. 의미를 곱씹을겸 문장이 아름다와서 읽고 또 읽고, 옮겨적어본다. 83년생. 아직 젊은 작가인데, 이런 수려한 감성, 비유, 상징의 문장력이 책의 여기 저기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까롭까: 까롭까는 '상자'라는 뜻이라고 첫 페이지의 조그만 설명을 못 봐서, 읽는 내내 글 속의 '나'가 누구일까 추리해야했다. 글 속의 나는 사람이 아니라 다름아닌 까롭까, 즉 상자였다.

보를라의 눈물이 모래사장에 하나, 하나 점을 찍었다. 나는 물 점들을 따라 모래 위로 가느다란 길을 내었다. 간간이 허리를 꺾은 채 걸음을 쉬던 보를라는 맑은 눈물이 핏물로 바뀔 때까지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내 몸이 그어온 길에 빛이 고였다. 빛 속에서 죽은 아이의 울음이 터졌다. (69쪽)

역시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이고, 한번 스윽 읽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톨큰: 톨큰은 '파도'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바다로 가는 강줄기 옆의 작은 마을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화자는 사람이 아니라 새. 수호새인 아내를 잃은 남편새이다. 권력의 이름으로 붕괴되는 마을의 현장에서 마을 사람들의 부질없는 기원과 함께 죽어가는 수호새의 이야기이다. 처절한 파국의 이야기를 수려한 문장력으로 더 처절하게 그려놓은 듯 하다.

 

분홍코끼리: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은, 예전에 작가 인터뷰 방송을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모르고 읽었더라면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듯. 사람은 무슨 권리로 다른 생물들을 오직 우리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가두고 훈련시키고 매질 하는가.

 

발치카 No. 9: 이쯤에서 불만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좀 더 친절할 수 없었나 하고. 이건 99% 독백이잖아?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거야, 불만 불만.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발치카가 뭔가요? No.1부터 No.9까지는요? 사건의 일련 번호인가요?

 

살사댄서의 냉풍욕: 제목이 희극적인가? 내용은 역시 아니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눈물에 늘 젖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 오랜만에 저 먼 나라가 아닌 우리 나라가 배경이지만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못겪을 일 겪으며 살고 있는, 삶다운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 스물 여섯 여자가 나온다.

 

분나: 이것이 무슨 뜻인지 글 중에 단한번도 소개가 되지 않는다. 커피를 뜻하는 것 같다고 추리할 뿐. 작품 속 소녀의 이야기는 이 세상엔 죽음보다 못한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 La: 갈수록 점입가경이랄까. 아들의 묘를 파고 내려가 그 위에서 생을 마치는 노인, 그에게 핏줄은 삶의 이유이고 종교였나. 평생을 믿고 지켜오던 것이, 그보다 더 속물적이고 눈앞에 보이는 욕망의 산물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 그 믿음이 뼈속까지 새겨져 있는 그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죽음으로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인가보다.

 

이화: 이 역시 주인공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온갖 구렁텅이에 빠지길 거듭하는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예외적으로 해피엔딩이다. 그래, 이 정도로도 해피엔딩이랄 수 있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앞으로는 지금보다 나아질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게 하니까, '파국'으로 끝내진 않고 있으니까.

 

판타롱 아일랜드: 수몰되는 마을, 수몰되는 집, 수몰되는 엄마의 무덤, 자의반 타의반 수몰되는 나와 아버지.

 

연상되는 작가나 작품은 김이설과 앨리스 먼로. 대체로 파국과 파멸의 과정을 질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치부와 환부를 드러내는게 거리낌이 없다는 점에서 김이설의 소설을, 길어질 수 있는 서사를 모두 단편에 압축적으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농축하여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앨리스 먼로를 떠올렸다.

 

어차피 소설은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를 두고 쓰여지는 것인데, 독자들에게 좀 더 친절할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미리 듣고 읽었으니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작품들이 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과연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을까? 이전에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사회자가 안그래도 그런 질문을 했더니 작가 답하기를, 본인도 걱정을 했으나 출판사의 편집자가 배경이 중요하기 보다 사람들이라면 통하는 면이 있으니까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그대로 출판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던가? 그렇게 기억한다. 하지만 작품엔 손대지 않더라도 뒤에 작가의 말이라든지, 그런 곳에라도 이 작품들의 배경에 대해 두어 줄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일관하는 주제의 서사, 감탄하게 하는 문장. 별 다섯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가 별 하나 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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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2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3-02 18:18   좋아요 0 | URL
그냥 소설이예요. 그런데 저는 이런 소설 읽으며 어떤 자기개발서나 철학 서적 읽는 것 만큼이나 많이 배우고 또 배워요.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 작가 본인이 실제로 우즈베키스탄 가서는 끔찍한 사고를 경험하기도 했고, 작가가 열 몇살때부터 어머니께서 투병 생활을 시작하셨다는 가족사도 가지고 있더군요. 이 책 뒤의 작가의 말에 보면 다시 태어나면 우리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고 썼어요. 작가의 어머니께서 세살때 그 어머니를 여의셨기 때문에 그런 엄마를 측은하게 생각하는거죠.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인생들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비참하고 끔찍한지. 아마 작가도 쓰면서 많이 울었을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작가가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 포함되어있다고 하니까요.
잠깐 창 밖을 보니 벌써 달이 얼굴을 내밀었네요.
언제나 궁금하고 반가운 님.
제게 빌어주신 것처럼 님께서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비로그인 2015-03-0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리뷰에 갑자기 한 문장이 떠올라서요..앨리스 먼로의 ..


But, she said also that she had felt alive. Maybe for the first time in her life, truly alive. she felt as if she had been given a chance; She had started her life all over again. she would walked out on her silver and her china and her decorating scheme and her flower garden and even on the books in her bookcase. She would live now, not read.She had felt her clothes hanging in the closet and her high -heeeled shoes hanging in the their trees. Her diamond ring and her wedding ring on the dresser. Her silk nightdresses in their drawer. She meant to go arount naked at least some of the time in the country, as long as the weather stayed warm. 

 p 94. Dear Life

여기서도 결국 파국으로 치닫죠.. ㅠㅠ
많은 느낌을 받았었어요..나인님..
저 단편에서..


쓰신대로 앨리스 먼로 작품 내내, ˝치부와 환부를 드러내는게 거리낌이 없다는 점˝
이라는 표현을 저도 쓰고 싶었어요.

작가의 실제 이력은 후에 확인했지만, 읽으면서, 이건 상상이기 힘들다 라는 세부 묘사가 ..자꾸만 ..


2015-03-02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강석기의 과학카페 3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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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과학저서들은 과연 어떻게 쓰여질까. 책 속의 내용보다 어느 날 문득 이것이 궁금해졌다. 저자는 과학을 전공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을 전공했다 할지라도 그가 모든 과학 분야에 걸쳐 지식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고 더구나 이 책과 같이 비교적 최신 내용들로 책을 구성할때 이런 자료들은 어떻게 모아지고 어떻게 자기만의 글로 재탄생시킬까. 

 

1. 평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 저널 몇가지 (예. Nature, Science, Current Biology, PLOS ONE, PNAS, 등)를 정기적으로 구독하여 구석구석 자세히 읽는다 - 구독 신청을 하면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원문을 읽을 수 있다.

 

2. 읽다가  당시 사회적 이슈나 대중들의 관심사와 부합할만한 논문이나 기사를 스크랩하고 내용을 정리한다.

 

3. 이것들의 분류작업을 한다. 즉, 하나의 테마로 묶일만한 것끼리 모아놓는다 - 전공별로 모으거나, 주제별로 모아놓기도 하고 본주제에서 벗어났으나 관련된 기사는 따로 (인물) 모아 놓는다.

 

4. 하나의 기사, 그리고 한 묶음글에 적절한 제목을 붙이고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다듬는다.

 

이 책을 읽으며 과정을 추측해본 것이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세계 유수 과학 저널에 발표된 내용을 십분 이용하여 이 책을 만들었는데 저널에 실린 논문 뿐 아니라 거기 실린 부고 기사까지도 하나 버릴 것 없이 구석구석 평소에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 마지막 장의 '인물이야기'는 그해 과학 저널에 실린 부고 기사를 기본으로 하고 그 밖에 유용한 자료들이 있으면 참고하여 썼다고 저자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첫 꼭지글, "청마(靑馬)는 없지만 파랑새는 있다"는  2012년 J.R. Soc. Interface 9권 2563에서 2580페이지에 실린 Saranathan 외 공동저자의 문헌을 바탕으로 썼다고 밝혀 놓았다. 청마는 없다는 뜻은, 말을 비롯하여 척추동물에는 파란색 색소가 없기 때문에 조류인 파랑새와 달리 파란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가지를 알면 두세가지의 모르는 것이 생기더라는 것이 평소 내가 입버릇 처럼 하는 말이다. 적어도 과학에 관해서는. 그럼 왜 척추동물에는 파란색 색소가 없을까? 사람의 파란 눈은 그럼 뭔가? 이런 질문이 생겼는데 다행히 나 같은 독자를 위하여 내용중에 그 설명이 포함되어있었다.

 

책의 제목은 물론이고 책 속의 각 꼭지글 제목 붙이는 것도 무척 중요한 것 같다. 내용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인만큼 읽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제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그 속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일지 모른다.

 

참고문헌들을 보면 대체로 최근 1-2년내의 논문들이다. 이 정도면 굳이 최근이랄 것도 없는 것이, 워낙 진행 속도가 빠른 과학 분야이기 때문인데 과학사에 관한 주제가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다.

 

대중 잡지가 아닌 학술 저널의 최근 논문이나 기사를 바탕으로 한 만큼 제목을 어떻게 바꿔 붙이든, 내용을 어떻게 각색하든, 이해가 그리 쉬운 내용들은 아니다. 그래도 저자가 매우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 본인도 이해가 힘들었던 부분은 어중간하게 아는 척 넘어가기 보다는 자기도 이해가 어려웠다고 실토한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제든지 원래 출처를 찾아볼 수 있게 모든 글에 참고 문헌을 명확하게 달아놓았다는 점이다. 어디까지가 인용 범위이고 어디부터가 자기가 덧붙인 내용이라는 것을 밝혀놓아 신뢰가 갔다. 또한 마음에 들었던 점은, 그가 읽었을 그 많은 논문들 중에, 최근 사회적 관심과 잘 접목이 될 만한 논문들을 비교적 잘 뽑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럴려면 이 사회가, 문화가, 정치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늘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성공 요소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과학은 길다고 했다. 과학은 저 멀리 어디에 있지 않다. 우리의 삶, 이 순간, 이 공간 자체가 과학이고 실존이다. 어느 특정 그룹만의 관심사이고 연구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런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 필요한 일이고 멋있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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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2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보고싶네요.
저는 의도적으로 과학책이나 철학책을 한달에 한권은 읽으려고 노력하거든요.
전문서적은 버겁고 이런책은 괜찮을것같아요

hnine 2015-02-23 23:32   좋아요 1 | URL
재미있게 썼어요. 과학책이지만 앨리스 먼로도 나오고요 ^^ drop과 bubble과 foam의 차이에 대해서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여러 분야 다양하게 독서를 하시려고 노력하시는군요. 저도 정말 치우쳐서 책을 읽고 있어요. 제일 손 안가는 분야는 역시 철학, 사회학 분야의 책 ㅠㅠ
 
잘 찍은 사진 한 장 - 내 생애 최고의 사진 찍기, 개정판
윤광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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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광준의 이름은 몇해전<윤광준의 생활명품>이라는 책으로 익숙해졌다. 그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익숙하게 할 정도로 리뷰가 많이 올라왔던 책이었다. 제목에 저자 이름을 직접 넣었다는 것도 특이해서 책을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어떤 내용의 책인지, 저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보기는 했었다. 이 사람의 직업은 전직 사진 기자.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월간 <마당>, <객석>의 사진기자를 거쳐 웅진출판에서 사진부장을 지냈다. 지금은 이곳 저곳 여행을 다니며 사진 작업, 그리고 글쓰기, 강의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 <잘 찍은 사진 한 장>은 사실 <윤광준의 생활명품>이라는 책보다 훨씬 이전인 2002년에 초판이 나온 책이다. 초판만 해도 21쇄까지 찍었고 2012년에 개정판을 냈는데 개정판도 벌써 3쇄까지 찍었다니 한번 어떤 책인지 들여다볼만 했다.

읽으동안 사진 그리고 카메라를 제목으로 토막토막 추억이 쭉 엮어지는 경험은 나만 했을 것 같지 않다. 카메라와 사진의 진화는 근래 빠르게 진화되어와서 사진을 찍는 것이 하나의 행사였던 때는 이제 전설이 되었고 이제는 간편하게 전화기로 언제 어디서나 찍을 수 있는게 사진이 되었으니 사진은 일상, 카메라는 일상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이 사람은 어떤 얘기를 독자에게 하고 싶은 것일까.

딱히 사진 찍기에 대한 어떤 요령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런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오히려 사진이라는 것,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한 수필집의 느낌이었다. 기자 출신에, 이미 여러 권의 에세이를 낸 경력 때문인지 에세이집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고, 사유가 담긴 문장이나 구절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원형을 잃은 에너지는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지 못하는 법이다. 내게 이를 복잡한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설명할 재간이 없다. 사진에 찍힌 화상 또한 절대 빛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난 사진이란 빛이 제 몸을 태우고 남긴 숭고한 흔적이란 그럴싸한 생각을 하고 있다. 사진이 좋아 끌어안고 뒹구는 이유를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다. 빛의 죽음으로 바꾼 사진을 아무렇게나 대하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이다. (225쪽)

 

사진이란 빛이 제 몸을 태우고 남긴 숭고한 흔적이라는 표현은 아무나 지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기술적인 내용을 굳이 찾아내자면, 아주 전문가가 아니라면 비싼 DSLR을 구입하는데 큰 지출 감수할 필요 없다는 것, 자기가 어떤 목적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며 그에 부합하는 것이 최고의 카메라라고 조언한다. 요즘 나오는 미러리스를 많이 권장하고 있고, 사진 찍을 때도 수동으로 촛점을 맞추느라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하는 여력을 놓치지 말라고, 최선의 촛점은 자동촛점이라는 조언을 한다. 카메라 렌즈도 독일제 렌즈가 최강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요즘은 일본 렌즈의 기술이 그에 필적하여 보통 사람들은 독일 렌즈 카메라로 찍은 작품과 구별도 못할 정도이니 구색을 갖추는데 신경 쓰지 말고 '실용적'인 마인드로 선택, 구입하여 더 많이 찍어보는 것이 몇배 더 낫다고 한다. 백배 공감.

이젠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 두가지를 얘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첫째는, 이 책에 실린 사진 작품들이 그렇게 마음을 빼앗을 정도가 아니었다는 아쉬움이다. 이건 물론 개인적인 취향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진에 대한 내용을 읽기도 전에 단 하나의 대상이 흑백으로 포착되었음에도 말문이 막히게 했던 최민식의 사진과는 엄청난 거리라고 할까. 윤광준의 사진엔 우선 대상이 단출하지 않다. 어디서 무얼 봐야하는지 찾아야 한다. 한 사람의 모습과 표정에 클로즈업 시키는 대신 여러 사람이 각기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하고 있는 사진들이 많다. 책에 실린 사진 들 중 읽으면서 눈 여겨 오래 들여다본 것은 겨우 서너장.

두번째 아쉬움은 이 책의 제본이다. 아, 정말 나 이런거 따지는 편 아닌데 이 책은 읽는 내내 얼마나 불편하던지. 책상위에 놓고 읽어도 불편, 손에 들고 읽어도 불편, 무릎 위에 놓고 읽어도 마찬가지. 독서대에 올려놓아도 책이 펴진 상태로 고정이 잘 되질 않는다. 사진때문에 종이질을 높이다보니 종이 두께가 두꺼워져서 그런가보다. 그렇지만 방법이 그렇게 없었을까? 이 책을 빨리 읽어치우게 한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 책에선 사진보다 글이 차라리 더 돋보인다는 것으로, 별 두개와 세개 중 그래도 세개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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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02-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서가에서 찾아보니 10년 전 쯤에 구입한 이 책이 있네요. 읽다가 만 책인데 그 당시 저는 글에도 사진에도 별 매력을 못 느꼈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더 재밌는 다른 짓을 하고 있었거나. 하여튼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그 책에서 예전 편지가 한 통 나와서 깜짝 놀랐답니다. 제 서재에 사진 올려보았어요.

hnine 2015-02-21 17:58   좋아요 0 | URL
와~ 저 지금 nama님 서재로 갑니다~~

Nussbaum 2015-02-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서재에 들르면 꼭 올리신 책을 확인해보고픈 마음이 생깁니다.

저는 그리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꼭 어떤 인상깊은 것들은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한 번 어디선가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갑수의 최근 책에 보면 사진작가 윤광준을 언급한 구절이 나오는데 그 두 사람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이 책을 한 번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유로운 오후 보내고 계시지요?

hnine 2015-02-23 13:58   좋아요 0 | URL
두사람이 절친이래요, 이 책 저자와 김갑수요. 이 책 서문에도 김갑수가 글을 썼고 본문 중에도 저자가 시인 친구라고 여러번 언급하는데 김갑수를 뜻하는것 같고요.
연휴 잘 보내셨나요? 너무나 길게 느껴진 연휴였어요 ^^
 
소송 펭귄클래식 15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카프카.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고 법학박사 학위까지 있던 카프카 그가 법에 얽힌 부조리를 외치는 이런 소설을 썼다. 아마 법에 얽힌 부조리라기 보다는 소송이라는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이 세상의 부조리를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 느닷없는 외부인의 방문을 받고 당신은 체포되었다고 통고를 받는다. 무슨 죄목인지도 모르고 소송에 휘말려 그것을 밝히려 이리 저리 헤매고 뛰어다닌지 일년이 되는 날로 이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그 결말은 섬뜩하다.

1883년에 태어나 1924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까지 40여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카프카는 유태인이었지만 독일어로 교육받고 독일 문화권에서 자라, 언어나 문화면에서 독일인에 가까웠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 살아야했던 그는 글쓰기를 도피처 삼아 몰두하였지만 자기가 쓴 글을 스스로 없애거나 죽은 후에도 찬구 브로트를 시켜 자기의 작품을 모두 없애줄 것을 부탁했을 정도로 내향적이고 스스로 고립된 세계에서 살았던 것 같다. 다행이 그 말을 듣지 않은 친구 덕분에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워낙 짧은 생애를 살다가기도 했지만 그는 제대로 자기만의 가정을 꾸려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개인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댓가였을까. 그렇게 사는 동안 남달리 깊어진 그의 사유 세계는 독특하고 독보적이어서 성, 소송, 변신 등, 이전의 누구도 발표한 적이 없던 내용의 소설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무고한 사람이 체포되고, 판결 받고, 판결 받기까지 소송이라는 과정에 싫든 좋든 들어가야한다. 이 순간부터 개인의 의지와 생각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이란 그것이 소송이든 칭송이든 처형이든 체벌이든, 그 얼마나 무의미한가. 또, 그런 과정을 거쳐 단정지어지고 결론지어지는 사람의 일생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카프카가 동양의 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은 무관하지 않다. 탐욕스런 부르조아에 대한 반대의 표명이었다고 보는 그의 채식주의까지도. 

후세의 많은 철학자들이 카프카의 이 소설을 분석하고 해석했으며 1962년엔 오손 웰즈에 의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으나 결말은 소설과 다르게 맺고 있다.

주인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소송에 휘말린 것은 아니어도,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운명에 내맡겨진 오늘을 살고 있다. 불확실한 생을 살고 있다는 그것만이 확실할 뿐. 부정할 사람은 부정하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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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2-18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확실하고 불안한 운명!
늘 걱정거리를 달고 사는....
행복과 불행은 순서대로 오네요.
늘 행복할수도, 늘 불행할수도 없는 인생.
마음먹기 나름이긴 하죠?

부모역할이 참 중요한데 가끔은 버거워요. 카프카는 자유롭게 냅뒀으면 더 잘, 오래 살았겠죠?

hnine 2015-02-18 08:25   좋아요 0 | URL
아, 세실님. 이 소설의 마지막이 정말 충격이었어요.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너무 허무해서 뒤의 해설까지 다 읽었답니다.
소설과 작가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도 하지만 특히 카프카에 대해서는 그의 소설만큼이나 작가의 일생에 대해 관심이 많이 가더군요.
부모 역할에 대해서는 전 요즘 시기 같아선 없는 듯 있어주는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일종의 수행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

숲노래 2015-02-18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할 때에
비로소 문학이 태어나고
이 문학이
우리한테 나 스스로와 이웃을 더욱 곰곰이 살피도록
이끄는구나 하고 느껴요.

설 아름답고 즐겁게 누리시기를 빌어요~

hnine 2015-02-18 17:37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도 아이들과 가족들과 설 잘 보내시고 또다시 힘찬 걸음 내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