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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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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살은 타살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결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핏줄을 나눈 가족의 죽음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또 하나의 죽음을 부르는 결과에서부터, 죽음을 감행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살아있는 평생을 알게 모르게 최소한 그 지배 속에 살아가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 데이비드 밴의 살아있는 날들을 지배해왔고, 그 혼란과 상처는 결코 순간적이거나 일시적이 아니었기에 "전설"이라는 단어를 썼다. 어떤 일이 전설이 되기까지는 그만큼 축적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후세의 누군가에겐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돌려서 쓰고 숨기고 할 것 없이 저자는 이 책의 배경과 내력을 다 내어보인다. 이래서 썼노라고.

책 속에 여섯 편의 작품이 들어있긴 하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두운 색조의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보다, 마치 산뜻한 어류 도감 표지 같은 원본의 표지가 책을 다 읽고서 보니 더 섬뜻하다.

 

책을 읽고 나서 한가지 의문. 실제와 다르게 저자는 왜 작품 속에서 아버지 대신 아들이 자살하는 것으로 했을까? 아버지의 자살은 그나마 그럴만하다고 주워섬길 이유들이 몇가지 예시되어 있지만 아직 열몇살의 아들에 대해서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들을 내세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들, 읽으면서 놓친 것들이 있는 것일까.

 

집필에 10년, 퇴고하는데 2년이 걸렸다는 이 책을 며칠 만에 다 읽어치우고 이래저래 느낌을 풀어놓는구나. 저자에게는 12년 조차 전부라 할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국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하고 20개 언어로 번역되고, 11개국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받았다는 것이 그 전설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전설"을 다 덮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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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4 1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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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4-24 19:38   좋아요 0 | URL
이 책 무지 우울해요. 기분이 저조할 때 말고 괜찮을 때 읽으세요.
집필하는데 10년씩 걸린 것은 작가가 완벽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자기의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고 파헤쳐서 다시 작품화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의미 아닐까해요.
읽은지 좀 시간이 지나서 쓰면 리뷰가 짧아지더라고요 ^^
 
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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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천양희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그녀의 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한 편도 없는 것을 보면. 하지만 시인이 시집이 아닌 수필을 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늘 솔깃하다. 더구나 얼마전에 읽은 이재무 시인이 시에서 이용하는 언어의 유희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잘 살리는 시인으로 천양희 시인을 예로 드는 것을 보고 망설임없이 이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1965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등단하여 이후로 줄곧 더 좋은 시를 쓰고싶어하며, 시 쓰는 일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인의 조용하면서도 절실하고, 그렇게 오래 시를 써왔음에도 여전히 시 쓰기에 대한 열망을 사그러뜨리지 않고 더 불태우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어느 대목에서 나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살리에리를 떠올렸다. 살리에리 자신도 훌륭한 작곡가였지만 천재 아마데우스와 자신을 비교하며 더 완벽한 작곡가가 되고 싶어했던 그의 일생은 음악으로 행복하기보다 불행해보이기까지 했었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더 완벽한 작품을 갈망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어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숙명일까? 평생을 다른 학문 분야에 매진했던 사람들과 예술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오랜 세월 시를 사랑하며 시를 껴안고 살아온 노시인의 글은 그저 편안하고 만족스러움만 느껴질 줄 알았다. 잔잔한 웃음이 그려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시인의 고통, 눈물, 땀, 외로움이었다.

 

바람이 먼저 능선을 넘었습니다...

누구나 머물다 떠나갑니다

사람들은 자꾸 올라가고 물소리는 자꾸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것이 저렇게 태연합니다...

하늘은 넓으나 공터가 아닙니다

무심코 하늘 한번 올려다봅니다

마음이 또 구름을 잡았다 놓습니다

...

시 <추월산>의 일부이다. 이 시를 쓸때 시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삶의 어떤 한 자락을 짚었던 것일까.

시 때문에 절망하고, 시로 인해 다시 일어서는 시인의 삶. 그렇게 쓰여진 시를 어떻게 가볍게 읽고 지나칠 수 있을까.

 

책 속에 다른 사람들의 말이 지나치게 많이 인용되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내가 느낀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고 누구는 또 이렇게 말했고, 하는 식의 문장이 페이지마다 거르지 않고 나온다. 그 중엔 밑줄치고 싶을 정도로 좋은 말도 많았던게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 거슬릴 정도로 자주 나오지 않고 가끔만 적절하게 인용되었더라면 더 좋을뻔 했다.

'절망은 오랜 습관이고 슬픔엔 규격이 없다' 이것은 신용목 시인의 말이고,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생활과 깊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 이것은 워즈워스의 말,

'운명이란 허무의 끝까지 가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신비의 얼굴. 운명을 만나본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고 부재 속에서 풍요를 본다' 이것은 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말,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뮈세의 시 한 구절이라고 한다.

'오늘 해가 저물었다고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이 문장이 내가 밑줄 그은 문장중 유일하게 저자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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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2015-04-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는 시집에서 언어의 유희를 흠뻑 느꼈었죠
수필집은 그닥ᆢ
말씀하신 인용도 지나치게 많아서 시인의 목소리 생각을 듣기가 어려웠어요

hnine 2015-04-21 05:44   좋아요 0 | URL
물끄러미님은 시집도 읽으셨군요. 저도 아마 오래 전에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확실히 기억에 없어서 안읽은 셈 치기로 했어요. 저 정도 연륜이 되면 그동안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해, 그리고 성과나 결과에 대해 담담하게 바라보게 될 줄 알았어요. expect 보다는 accept의 경지가 느껴지는 글이 아닐까 기대를 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저 개인적인 상상에서 오는 기대였네요. 살아있는 최후의 순간까지, 최고의 작품을 꿈꾸는 것이 시인을 비롯해서 예술가의 특성인가, 예술가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숲노래 2015-04-2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다른 사람 글을 따오더라도, 그저 수수하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면
그러한 책이 참으로 포근하면서 사랑스럽더라구요.
다른 사람 목소리는... 그저 다른 사람 책에서 보면 되니까요..

hnine 2015-04-21 18:22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이 쓰거나 한 좋은 말은 인용해서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내 목소리를 넘어서는 정도로 전달되면 문제겠지요.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이 열정을 넘어서 살짝 집착으로 느껴진 건 저만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조금 불편했답니다.

2015-04-22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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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여자정신과 의사 저서 읽기 경력은 꽤 오래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혜남'도 그중 한 사람.

이제는 꽤 오래전 일이 되었는데 그 당시 나와 같은 일터에 계시던 분께서 내가 이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아는 체를 하셨다. 자기와 대학 동문인데 지금 어디가 좀 아파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는 안하셨지만 그 말씀을 하시는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단기간 치료 받아서 회복되는 병은 아닌가보다 하고. 저자도 이전의 저서에서 밝힌 적 있다. 갑자기 얻게 된 병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새로운 기회로 생각하겠다고. 그때는 자신이 어떤 병인지 밝히지 않았었다.

며칠 전 저자의 신간 소식을 보고 반가와서 훑어 보다가 알게 되었다. 자그마치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아...' 가벼운 탄식과 함께 마음에 검은 구름이 끼는 것 같았다. 요즘 특히 누가 아프다는 말만 들어도 남 얘기 같지 않고 덜컥할 정도로 마음이 약해져있는데 이건 또 무슨 소식이란 말인가. 그동안은 투병을 하면서도 다른 환자들 진료를 계속 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도저히 진료 행위를 계속 할 수 없게 될 정도가 되자 의사로서의 생활을 끝내며 자신의 병명도 밝힌 것 같다.

아픈 사람들을 30년간 매일 대하던 사람이, 자신 역시 그 환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첫 반응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하는 것. 누구나 그렇다. 설마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마치 늙음이, 죽음이, 병듦이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몰라서가 아니라 피하고 싶어서일것이다.

이 책의 첫 장 제목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었다가 다음 장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 이다. 절망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불구하고 다시 한 발짝 내딛기로' 결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생의 소중함을 몸으로 깨닫고 그날 부터 오히려 맡겨진 일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눈을 돌리며 더 재미있게 살 궁리를 하며 산다. 그래서 3장의 제목이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이고 이것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제일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대상, 즉 자기의 분신인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4장의 내용이며 마지막 5장엔 삶과 연애하라는 제목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삶과 투쟁하라가 아니라 연애하라고? 그러고보면 연애와 투쟁은 전혀 다른 것 같기도 하면서 또 비슷한 점도 있는 것 같다. 치열하다는 점에서.

실제로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적어놓기도 했다. 예전에 시험을 앞두고는 시험 끝나면 할일 리스트, 외국에 가 있는 동안엔 한국 돌아 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 방학을 앞두고는 방학하면 할 일 리스트 등은 만들어 보았어도 정작 나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본 적은 없다.

약을 먹고 나면 효력이 6시간 가던 것이 점차 3시간으로 줄어들고 날이 갈 수록 그 시간이 더 줄어드는 고통, 방에서 화장실 한번 가는데 누구 도움 없이는 온 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는 노력을 해야 하는 날들. 그런 시간을 살고 있으면서 이제 비로소 삶의 재미와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껴가고 있다는 저자의 한줄 한줄이, 아무리 가볍게 쓰려 했다해도 읽는 사람은 마음이 저리다.

부모님의 착한 딸로, 누구보다 성실한 의사로,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한집에 모시고 산 며느리로, 남이 보기엔 무결점 인생으로만 살아온 것 같은 그녀가 살면서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았다는 것이란다.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려고 했던 또 한 사람으로서 그 한 마디로도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금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부디 건강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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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3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13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a 2015-04-13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고 싶군요.

hnine 2015-04-14 07:58   좋아요 0 | URL
오래 전 부터 이분의 책을 읽어왔는데 투병 소식을 듣고 저도 마음이 아팠어요. 더구나 파킨슨병은 아직 그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 병이고, 그래서인지 마음에서 원인을 찾는 설도 많은데, 마음을 분석하고 치료해주는 일을 30년 동안 해오던 저자가 어떻게 이 병에 걸리게 되었을까, 이리 저리 생각도 해보고요. 제가 이랬으니 당사자는 이런 혼돈의 시간을 한참 겪었겠지요. 어쩌면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요.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일들이 갑자기 내게도 툭 던져졌을때 어떻게 딛고 일어서는지 저자의 개인적인 기록이자 또 의사로서 마지막까지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 책을 통해서요.

nama 2015-04-14 07:47   좋아요 0 | URL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았다`...이것도 병의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가 아는 사람중에 파킨슨병에 걸린 분이 있는데 남편 병수발에 지극정성이었어요, 지나칠 정도로요.
평생을 일꾼처럼 사셨던 우리 엄마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셨어요.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꼭 그렇게 살아야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icaru 2015-04-2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았다`에 저 역시 눈이 많이 머물러요... 가슴이 묵지근한 것이 이 책 읽고 말 것 같아요 ㅜㅡ))

hnine 2015-04-29 18:37   좋아요 0 | URL
그 구절을 자신있게 지나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을거예요. 저 역시 안달복달 하는 성격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으나, 저와 정반대 성격인 남편과 맞춰 사느라 그런지 (^^), 언제부터인가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니 조금씩 바뀌긴 하더라고요. 대신, 남들 눈에는 욕심도 별로 없고 악착 같지도 않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어요 ㅠㅠ 뭐, 상관없지만요.
이 책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훌쩍 런던에서 살기
홍인혜 지음 / 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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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겨있던 이 책을 지난 주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결국 구입했다. 사가지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읽기 시작하여 그날로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금방 읽히는 책이었다. 그녀의 직업이 무엇인가. 카피라이터 아니었던가. 금방 읽히게 책을 썼을거라는건 예상했던대로였다.

오래 전부터 나는 저자가 루나파크라는 필명으로 운영하는 사이트의 단골 손님이었다. 깔깔 터질만큼 웃기거나 내가 얻어갈만한 알찬 정보가 담겨있는 사이트는 아니었지만 짤막한 글, 한 컷 그림 속에서도 어딘가 저자의 성실하고 진지하고 자기 성찰의 노력이 보여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 흘끔거리곤 했다.

 

대학 졸업후 바로 운좋게 그것도 유수한 광고 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취업이 되어 쉬지 않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온 그녀가, 그렇게 일해온지 7년째 되는 어느 날, 다 그만두고 런던으로 떠난다. 쳇바퀴 도는 한국에서의 직장인의 삶이 다 비슷하지 않은가. 7년이면 오래 버텼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 즈음에 결혼을 하고 누구는 그 즈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게 아니었어 하면서 방향 전환을 위한 도전의 길로 나선다. 그녀는 평소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곳,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혼자서. 그리고 여섯 달을 살다온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평소에 사이트를 운영하던 경험과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 경험은 이 책 한권 엮어낼 충분한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내용, 어떤 사진이 어떻게 들어가야 적절할지 아마 런던에 머무르며 일기를 쓰는 동안에도 모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 자체는 깔끔하다.

직장인으로 집과 일터를 왔다갔다 하기를 7년동안 하던 사람이, 아무데도 매인 데 없이 6개월을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면 그곳이 런던이든 서울이든 일단 색다른 경험이 되었을 것이고 평소에 하지 못하던 생각도 떠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흔한 어학 코스 하나 등록하지 않고 (책 내용에 근거하면) 여기 저기 구경 다니고 모르는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으로 그 시간을 탄탄히 메우고 서울로 돌아온다.

왜 런던이었을까? 나도 안다. 사람들이 영국, 런던 하면 떠올리는 것을. 영어권 국가이면서 미국보다 좀 덜 번잡스럽고 덜 물질적이고 덜 소비적이고, 고풍스러운 환경에, 사람들 품성이 좀 더 고상할 것 같다는. 그래서 더 쉽게 정 붙일 거라고 혹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친해지기 전에는 차갑다. 여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독립적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절약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영국 가서 사는 동안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인 이상 아껴쓰라는 잔소리와 압박을 각오해야한다. 책 속에서 저자도 고스란히 이런 적응 과정을 거친 듯하다.

이 책의 표지엔 LONDON 이라고 크게 써있지만 그보다는 이십대 끝 자락에서야 비로소 혼자서 독립적으로 살아보기를 실험해본 그녀의 경험담으로 읽고 싶다. 다 커서 까지도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않고 결혼해서까지도 부모의 그늘아래 기대기를 서슴치 않는 우리 나라의 애어른들. 또 그렇게 다 큰 자식을 손에서 놓지 않고 애정과 간섭을 분간 못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부모들.

그곳이 어디든, 처음 가보는 어딘가에서 6개월 이상, 그 정도 기간은 되어야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기' 경험이 될 수 있으니까, 혼자서 살아보기를 나도 개인적으로 추천해오던 바이다. 내가 살 집을 내가 직접 구해보고, 떠듬거리는 언어로 은행 구좌를 터보고, 수지 타산을 맞춰가며 적자나지 않게 혼자 살림을 해보고, 내 먹거리를 내 손으로 해결해보는 생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저자의 그런 경험을 놓치지 말고 읽어냈으면 좋겠다. 런던여행기로서가 아니라.

 

그녀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떠난 시기나 떠난 곳, 가서 느낀 점등, 오래 전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다시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준 책이다. 나는 그녀보다 좀 더 오래 머물렀지만.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라는 제목이 유난히 크게 들어온다. 살아보니, 지금 아니면 안되는 일도 있고, 지금 아니어도 또 기회가 오는 일도 있더라. 지금 아니면 안되는 일을 그냥 놓치고 마는 실수, 지금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착하여 안달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한 실수들을 나는 그동안 얼마나 저지르며 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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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평소에 신간을 찾아 재빠르게 읽는 편도 아니고 김영하 작가의 팬도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요즘 즐겨 듣는 문학 관련 팟캐스트에 얼마전에 뭔가 뻘쭘한 짓을 하고는 상품으로 이 책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 팟캐스트를 즐겨 듣긴 하지만 그냥 듣고 참고만 할뿐 소개되는 책을 따라서 구입하는 일도 내겐 별로 없다. 소개는 소개일뿐 내가 읽으면 다른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고, 나는 내가 직접 고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창래 작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의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자기도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때가 온다고. 그러니까,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다른 사람의 책을 더 많이 읽게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되려는 결심 이전에 일종의 독서 편력기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며 한가지 더 알아낸 것은, 그냥 다른 사람의 전작으로서 읽고 그친 것이 아니라 그의 경우, 읽은 소설에 대한 자기식의 반응으로써 소설을 쓰게 되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책을 읽다보면 거기서 김영하 식의 다른 스토리가 연상되어 새로운 소설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이모저모로 다른 사람의 책을 많이 읽어본다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책의 뒤에 보면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되어 있다. 대부분 원고가 있기는 했지만 강연이나 인터뷰 자료들을 가지고 이 책이 엮여졌는데, 그럴 경우 그 강연이나 인터뷰 자료들은 소유권이 작가에게 있는 게 맞는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주최측에 있는 경우도 있지 않나 이런 곁다리 생각까지 해가면서.

어느 강연과 인터뷰였는지 책 뒤에 한꺼번에 목록으로 나오는데, 어느 글이 어느 인터뷰 혹은 강연 자료라는 것은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원래 출처를 찾아보기에 편할 것 같지 않다. 각 꼭지글에 바로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나 강연이라는 것이 어떤 물음, 주제에 대해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답하는 행위인데 김영하는 그때마다 적절한 비유와 인용을 참 잘 하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머리 속에 그것를 가능하게 하는 풍부한 지식 창고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을 나는 아직도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나름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 중에서도 웬지 어얼리 어댑터 느낌이 나는 작가들의 글에 선뜻 손이 안가는 내 성향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가 그렇고 박민규가 그렇다. 그래서 이 책속에서 그가 자기 작품들의 배경이나 쓰기까지의 경로에 대해 말할 때 나는 그 작품에 촛점을 두고 들었다기 보다 그것을 말하는 김영하라는 사람에 촛점을 둘 수 밖에 없었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특별한 사람인가? 그가 특별하다면 그가 가진 능력도 능력이지만 나로서는 그의 소신과 주관을 들고 싶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결정이 잣대가 아니라 최소한 자기의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그것에 의의를 두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주위에 그런 사람 찾기 쉽지 않다. 특히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판단되느냐에 가치를 두는 요즘 아니던가?

10년 후에 하고 싶은 일, 20년 후에 하고 싶은 일, 그걸 '지금' 하면서 살기 위해선 그만한 소신과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일단 돈부터 벌어 놓고, 남보기 그럴듯한 직장 부터 잡아 놓고, 집부터 마련하고, 자식부터 낳아 키워 놓고, 등등 하면서, 자기의 실체를 덮어놓고 껍데기로 살지 않으려면, 그만큼 포기하고 놓아야 한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려고 한다. 남이 하는 것은 다 구색맞춰 하면서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도 하려고 하니 겉도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그 점에서 김영하라는 작가는 특별한 사람 맞는 것 같다.

 

그는 말하고 나는 들었다. 나도 내 목소리로 '나'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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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4-06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의 멋진 글 잘 읽고 반성도 했어요 ㅋㅡㅋ, 저는 팟캐스트나 이웃님들 글보고 평소에 관심 없던 책 덥썩 사는 경우가 많고 계중엔 제 관심사가 되서 좋기도 한데 또 계중엔 괜히 샀네 라는 후회를 하기도해서 저두 확고한 의지를 갖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즐거운 월요일, 한 주 되시길 바랄께요^~^

hnine 2015-04-06 08:40   좋아요 0 | URL
덥썩 사는 편이 아니라서 쟁여놓고 안읽는 책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이것도 일장일단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결코 어얼리 어댑터는 못된다는 것이지요. 뒷북만 치는 경향이 있어요 ㅠㅠ 그래도 그게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요. 해피북님은 10년 후 무엇을 하고 있기를 바라실까요. 김영하 작가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던데 저는 그렇게 딱 떠오르는게 없더라고요.
닉네임에 `해피`가 들어가니 좋은데요. 자꾸 불러보고 싶어져요. 해피북님도 해피한 한 주 되세요.

붉은돼지 2015-04-0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뭐 특별한 이유없이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뭐랄까 조금 날리는 느낌이랄까 뭐 물론 제 개인적인 취향이죠..) 읽은 거라고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말고는 없는데요.. 요즘 알라딘에 계속 올라오고 있고 평도 좋은 거 같아서 한번 읽어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편견이나 선입견 이런 걸 가지면 안되는데 .....인간이란 게 다 제나름의 취향이랄까 성향이랄까 그런게 또 있으니 쉽게 잘 안될 때도 있는것 같아요 ~~

hnine 2015-04-06 15:28   좋아요 0 | URL
저도 붉은돼지님 말씀 듣고 보니 김영하 이름으로 따로 나온 소설은 아니지만 무슨문학상 수상집으로 들어가있는 단편인지 한편을 읽은 것 같기도 해요. 요즘 알라딘에 리뷰 올라오는 것만 봐도 이 책 인기가 대단하지요. 저는 낭만서점이라는 팟캐스트 듣다가 선물로 받았기에 읽어보게 되었어요. 인터뷰나 강연 모음집이라서 그런지 책은 쉽게 읽히고 내용도 지루하지도 않아요. 그가 지루하게 말을 할리가 없지요 ^^ 한번 읽어볼만 합니다.

2015-04-06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6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4-0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영하는 지금까지 서너 권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왠지 만만해 보이는 게 있어요.
그 만만함이 그의 작품을 읽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도 만들죠.ㅎㅎ

그런데 이 책은 좀 읽고 싶긴해요.
전 작가들의 글 쓰기에 관한 얘기가 흥미롭더라구요.
김연수도 제가 별로 안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그의 글 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 줬죠.
이 책도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잘 읽었습니다.^^

hnine 2015-04-06 15:39   좋아요 0 | URL
으악, 전 김영하가 만만하게 보인다는 뜻은 아니고요. 저는 선진적인 사람, 작품보다 어딘가 좀 고리타분하고 가라앉아 보이는 그런 작품이나 작가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김영하도 생각보다는 고리타분한 면도 있더군요. 한달에 한두번 밖에 외출을 안하고 방에 틀어박혀 책 읽고 글쓰는게 전부래요. 그게 좋다는군요. 여행도 별로 즐기지 않고요.
김연수의 소설은 예전에 서평단 하면서 한번 읽어보고 제대로 실망을 한터라 그 이후엔 다시 시도를 안해보고 있지요.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볼만 해요. stella님도 물론! ^^

숲노래 2015-04-0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아름답게 hnine 님 목소리로 말을 한다고 느껴요.

hnine 2015-04-06 18:01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럴려고 노력은 하는데 늘 그렇지는 않을거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