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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훌쩍 런던에서 살기
홍인혜 지음 / 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겨있던 이 책을 지난 주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결국 구입했다. 사가지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읽기 시작하여 그날로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금방 읽히는 책이었다. 그녀의 직업이 무엇인가. 카피라이터 아니었던가. 금방 읽히게 책을 썼을거라는건 예상했던대로였다.
오래 전부터 나는 저자가 루나파크라는 필명으로 운영하는 사이트의 단골 손님이었다. 깔깔 터질만큼 웃기거나 내가 얻어갈만한 알찬 정보가 담겨있는 사이트는 아니었지만 짤막한 글, 한 컷 그림 속에서도 어딘가 저자의 성실하고 진지하고 자기 성찰의 노력이 보여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 흘끔거리곤 했다.
대학 졸업후 바로 운좋게 그것도 유수한 광고 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취업이 되어 쉬지 않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온 그녀가, 그렇게 일해온지 7년째 되는 어느 날, 다 그만두고 런던으로 떠난다. 쳇바퀴 도는 한국에서의 직장인의 삶이 다 비슷하지 않은가. 7년이면 오래 버텼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 즈음에 결혼을 하고 누구는 그 즈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게 아니었어 하면서 방향 전환을 위한 도전의 길로 나선다. 그녀는 평소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곳,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혼자서. 그리고 여섯 달을 살다온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평소에 사이트를 운영하던 경험과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 경험은 이 책 한권 엮어낼 충분한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내용, 어떤 사진이 어떻게 들어가야 적절할지 아마 런던에 머무르며 일기를 쓰는 동안에도 모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 자체는 깔끔하다.
직장인으로 집과 일터를 왔다갔다 하기를 7년동안 하던 사람이, 아무데도 매인 데 없이 6개월을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면 그곳이 런던이든 서울이든 일단 색다른 경험이 되었을 것이고 평소에 하지 못하던 생각도 떠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흔한 어학 코스 하나 등록하지 않고 (책 내용에 근거하면) 여기 저기 구경 다니고 모르는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으로 그 시간을 탄탄히 메우고 서울로 돌아온다.
왜 런던이었을까? 나도 안다. 사람들이 영국, 런던 하면 떠올리는 것을. 영어권 국가이면서 미국보다 좀 덜 번잡스럽고 덜 물질적이고 덜 소비적이고, 고풍스러운 환경에, 사람들 품성이 좀 더 고상할 것 같다는. 그래서 더 쉽게 정 붙일 거라고 혹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친해지기 전에는 차갑다. 여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독립적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절약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영국 가서 사는 동안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인 이상 아껴쓰라는 잔소리와 압박을 각오해야한다. 책 속에서 저자도 고스란히 이런 적응 과정을 거친 듯하다.
이 책의 표지엔 LONDON 이라고 크게 써있지만 그보다는 이십대 끝 자락에서야 비로소 혼자서 독립적으로 살아보기를 실험해본 그녀의 경험담으로 읽고 싶다. 다 커서 까지도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않고 결혼해서까지도 부모의 그늘아래 기대기를 서슴치 않는 우리 나라의 애어른들. 또 그렇게 다 큰 자식을 손에서 놓지 않고 애정과 간섭을 분간 못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부모들.
그곳이 어디든, 처음 가보는 어딘가에서 6개월 이상, 그 정도 기간은 되어야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기' 경험이 될 수 있으니까, 혼자서 살아보기를 나도 개인적으로 추천해오던 바이다. 내가 살 집을 내가 직접 구해보고, 떠듬거리는 언어로 은행 구좌를 터보고, 수지 타산을 맞춰가며 적자나지 않게 혼자 살림을 해보고, 내 먹거리를 내 손으로 해결해보는 생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저자의 그런 경험을 놓치지 말고 읽어냈으면 좋겠다. 런던여행기로서가 아니라.
그녀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떠난 시기나 떠난 곳, 가서 느낀 점등, 오래 전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다시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준 책이다. 나는 그녀보다 좀 더 오래 머물렀지만.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라는 제목이 유난히 크게 들어온다. 살아보니, 지금 아니면 안되는 일도 있고, 지금 아니어도 또 기회가 오는 일도 있더라. 지금 아니면 안되는 일을 그냥 놓치고 마는 실수, 지금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착하여 안달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한 실수들을 나는 그동안 얼마나 저지르며 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