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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는 참 외롭다
김서령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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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산문, 혹은 수필을 읽거나 쓰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을 고르지는 않았지만.

수년전 김서령의 <家>라는 인터뷰집을 읽은 후 나는 그녀를, 일단 읽고보는 작가들 목록에 합류 시켰다. 사회 각층에 걸쳐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의 집을 찾아가, 그 집과 집주인의 얘기를 담아 한편 한편 글을 지어 담은 책 <家>는, 인터뷰집이라기 보다는 공들여 잘 쓴 수필집이었음을 일찌기 알아차렸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책들을 주로 펴내던 저자가 자기의 얘기로 채운 산문집을 냈다니 안 읽어볼 수 없었다.

그녀의 우리말 사랑과 재치는 책 제목에서도 돋보인다 <참외는 참 외롭다>.

자신의 얘기를 담은 글이라고는 하지만 구구절절 자기의 경험을 위주로 늘어놓은, 퍼진 글이 아니다. 자연, 사물, 현상, 시간, 사회, 우리것, 우리말, 사람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해 저자의 관심과 생각을 담았다는 것이지 자기가 겪은 경험담이 주가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의 얘기라면 어린 시절의 얘기가 자주 등장하긴 하는데 자기 경험담 차원이라기 보다 저자는 우리가 지나온, 이제는 볼 수 없는 우리 것을 소개하고 싶어했다고 생각된다. 임하댐 건설로 이제는 물속으로 사라진 마을 안동을 고향으로 가진 그녀이니 그곳의 정겨운 사투리를 비롯해서 사라져가는 우리 것 얘기가 들을만하다.

50쪽의 '좌판에 앉아'라는 제목의 글은 이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에 어디에 통째로 옮겨 적어 놓으려고 한다. 말도 문장도 내용도 한번 읽고 말게 아닌 것 같아서.

114쪽의 한구절은 짧게 한번 여기 옮겨볼까? 저자의 글 분위기가 이렇다고 소개하기 위해서.

 

별이 뜬 가을밤 나는 혼자 분꽃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금 울다가 조금 웃었다. 울음이 원인불명이어서 우스웠고 웃음이 허술하고 엉성해서 눈물이 났다. 이전에도 그것들이 명백하게 분리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으련만 드디어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감정이 명료해지지 않는 것, 희로애락이 범벅되어 등장하는 것, 시비와 선악의 분별기준이 느슨해지는 것, 이런 혼동과 당황을 '노화'라는 말 말고 무슨 수로 해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으랴. (114쪽)

 

'분꽃'이라는 제목의 글 일부이다. '조금 울고 조금 웃었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외워두고 싶었다.

 

 

나이 들면서 차츰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까다로운 단련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평이하고 사소한 일의 진지한 반복이 바로 삶의 완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93쪽)

 

위의 인용문처럼, 평범한 문장 속에서 글쓴이가 오랜 세월을 살아내며 알아낸 깨달음이 숨어있는걸 찾아가며 읽기. 산문을 읽는 재미 중 하나 아닌가.

 

어딘가 작고하신 박완서님의 수필을 읽을 때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분명한 김서령 스타일이 읽는 나의 눈에, 그리고 마음에 발견된다.

근래 읽은 가장 좋은 수필.

살아있는 동안 이런 참하고 (화려하지 않다) 예쁘고 (저자가 직접 그린 우리 풀 그림이 삽화로 들어가있다) 실한 (무색 투명하지만 마시면 톡쏘는 탄산수 같은 도드라짐이 있다)  한권 엮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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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에 앉아

연신내 시장 빛 안 드는 한구석, 좌판에 앉아 국수를 먹는다. 곁에는 열살짜리 새순 같은 딸을 앉혀두고 비닐봉지에 덕지덕지 싼 시장 본 물건들은 한켠에 세워두었다. 숱한 사람들이 김칫국물을 흘린 조붓한 나무판자 아래 뺑뺑 돌아가는 동그란 비닐의자를 곁들여둔 좌판, 거기 기대앉아 느긋하게 시장 안을 둘러보며, 이렇게나 세상과 분리된 나는 이제 막 내 곁을 스치고 달아나는 30대에 대한 조사를 쓰려고 한다. 30, 그렇다. 스물몇이었을 땐 턱없이 청춘이 괴로웠고, 어디로 한발 제겨디딜틈조차 없다는 불안에 시달렸고, 그 혼란을 타넘고 나와 비로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서른을 넘긴 두 아이의 어미가 되어 있었다. 아이 둘을 업고 안고 쩔쩔매다 그 아이가 엄마 죄송해요. 친구 집에 놀다 가도 되지요?” 물어올 때쯤 되니 나도 어느덧 서른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전에는 혼자서는 이런 좌판에 퍼질러 앉을 수가 없었다. 곁에 앉은 노동자풍의 남자들이 풍기는 살냄새, 땀냄새를 역겨워했다. 더구나 뺨이 수밀도 같은 어린 딸애를 이런 지저분한 곳에 망설임 없이 앉히는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요새 나는 이런 좌판에 앉기를 즐기는 아줌마가 되었다. 이 집은 이영이와 함께 자주 온다. 별 약속도 일도 없는 오후, 스웨터 하나를 덧입고 슬리퍼를 꿰신고 어슬렁어슬렁, 쪄먹을 꽈리 고추 천 원어치, 고등어자반 한 손 25백 원, 파 한 단 5백원, 오이 한 무더기 천 원어치를 검정 비닐 봉다리에 담아들고 나는 좌판에 앉는다. 순전히 내 입맛의 호사를 위하여 들르는 집이다.

국수 한 그릇에 천이백 원, 김밥 한 줄에 팔백 원, 순대와 족발도 솥 안에서 김이 오르고 있다. 맞은 편 슈퍼마켓 이층 분식점은 이 집보다 값이 두 배로 비싸다.

좌판의 주인아줌마는 은은히 째보기가 있다. 위입술이 살짝 찢어졌어도 살성이 희고 육덕이 좋고 손길이 푼푼하다. 웃는 모습에 어딘지 수줍어하는 태도 있다. 그는 연신 김밥을 말고, 순대를 뒤적거리고, 설거지를 하고, 파를 다듬고 돈을 받느라 여념이 없다. 이 집에서 말아주는 국수가 나는 참 맛있다. 한 주일 한 군데씩 서울의 맛있는 집을 발굴, 소개하는 일을 두어 해 해왔기에 내로라하는 숙수가 내놓는 음식 맛을 모른달 수는 없다. 그러나 천이백 원짜리 이 집 국수, 미리 삶아 물을 빼뒀다가 뜨거운 멸치국물에 한 번 슬쩍 헹궈주는 이 집 국수 맛도 결코 거기 뒤질 게 없다는 게 나의 소박한 입맛이다. 얹어주는 양념이라야 별 것 없다. 파 몇 점과 김 부스러기 한 움큼,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주는 열무김치 몇 가닥. 이영이는 참기름을 바르고 볶은 깨를 솔솔 뿌린 김밥 한 줄을 먹는다.

먹으면서 나는 아까 비닐봉지에 넣어뒀던 책을 꺼낸다. 이영이도 헌 책방에서 사온 만화를 펼쳐든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오가는 사람 수백 명인 이런 북새통 속에서 손바닥에 알맞춤 갇히는 <창비시선>을 한 구절씩 읽어 내려가는 맛이 나는 예전부터 즐거웠다. 눈 밝은 사람이 보면 국수를 후루룩 빨아들이는 내 등 뒤로 엉거주춤한 나의 반생이 뜨뜻미지근하게 드리워져 있을까.

내 손에 들린 것은 최영미의 시집이다. 책날개에 박힌 그의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시집도 미인이 써야 더욱 독자를 혹하게 하는 모양이다. 최영미가 미인인 것이야 탓할 게 없지만 그의 시보다 그의 미모를 강조하여 책을 광고하는 듯한 인상을 나는 여러 번 받았다. 예쁜 여자가 자신의 욕망과 좌절에 대해 솔직하게 써놓은 시, 확실히 상품가치가 있겠지. 그러나 맥주 광고도 아닌 책 광고에 굳이 여자의 얼굴을 이렇게 두드러지게 키울 필요가 있었던가 라는 게 나의 불쾌함이다. 게다가 소위 민중과 진보를 표방하는, 다들 뒤도 안 돌아보고 돈을 향해 달려가는 시절에 한두 군데쯤 표방하는, 다들 되도 안 돌아보고 돈을 향해 달려가는 시절에 한두 군데쯤 순정하게 남아 있어 줬으면 싶었던 출판사가 이래도 되나? 싶은 배신감 비슷한 심사를 지우기 어렵다.

온 세상이, 모든 영역이, 젊음과 미를 붙잡으려 열병을 앓고 있다. 젊다는 것도, 아름답다는 것도 분명 좋은 것이에 틀림없겠지만 젊어서 죽지 않으면 사람이란 늙는 법이고 아름다움이야 어차피 제 눈에 안경일 터인데, 어쩌자고 모두들 이렇게 예쁜 것, 젊은 것만을 찾느라고 혈안들이 돼 있는 것이냐. 나는 실없이 좌판을 꽝꽝 친다.

내가 이미 젊은 여자가 아니고 예쁜 여자 축에도 끼기가 어려워서 질투와 시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그래 그렇다고 치자.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은 없다 어쨌든 최영미의 시는 솔직하긴 하구나 솔직하다는 것이 정직으로 바로 이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고상한 척 굴지 않는 건 일단 맘에 들다. 그러나 이건 또 다른 기만일 수 있다. 그런 의심이 뭉게뭉게 인다.. 발문을 쓴 김용택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자기와의 싸움이 짙게 배어 있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별로 피비린내가 느껴지지는 않는구나. 피비린내라면 어젯밤 아이아빠와 크게 한바탕 육박전을 벌인 내게서 더 많이 풍기겠지. 컴퓨터와 X하고 싶다, 같은 과격한 언사가 얼굴선이 이렇게 고운 여자의 입에서 나았다고 다들 까무러친다는 건가.

물론 나 역시 시를 쓰고 싶었다. 최영미보다 거친 언어가 내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덨다 그렇게 거친 것은 시가 되지 않는 줄 알았다. 소용돌이가 가랑ㄵ기를 기다려 고요한 날 고요하게 피워 올려야 하는 꽃송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대개 남의 글에 민망해하고 두드러기 돋아하면서 정작 시 쓰는 책상 앞엔 앉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젊음을 탕진하고 소모하고 말았다.

진달래가 이쁘다고 개나리는 안 이쁜가./ 내가 아는 어떤 부르주아는 연애시를 쓰려고 연애를 꿈꾸는데. 행을 가른다고/고통이 분담되나/ 연을 바꾼다고/ 사랑이 속아주나…’ , , 이렇게 나오는 대로 지껄여도 시가 되는구나. 국수발을 빨아올리는 척 나는 이빨로 입술을 아프게 깨문다

오늘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딸은 귀족적으로 키워야한다는 미망에서도 헤어나서 허름한 좌판에 앉아 있다 곁에 앉은 사람이 먹다 남긴 김치조각을 유유히 씹으면서 끝내 시인이 될 수는  없었던 젊은 날의 끝자락을 바라본다 마음이 미어지게 아픈 것은 욕심일 것이다. 아무와도 껴안을 듯 너그러워지는 것은 허세일 것이다. 과로의 끝 같은 몸살기가 갑자기 나를 덮친다 나는 시 대신 아이를 낳았지 않느냐!! 최영미가 곁에 있다면 김밥을 씹고 있는 뺨이 복숭앗빛으로 물든 이영이를 들이밀며 으르릉 거렸을까/누가 뭐래? 홀로 머쓱해진 옷자락을 아이가 잡아당긴다. 엄마 떡볶이도 먹으면 안 돼요? 왜 안 돼 안 될리가?

나는 얼른 살성 흰 아줌마를 불러 여기 떡볶이 1인분 더 주세요, 젓가락 장단을 치듯 호기롭게 주문한다.

빨강게 달콤하게 매웁게/ 이 따위 시구절보다 백 배는 강렬하게/ 쓸데 없는 허세일랑 한방에 쓸어버리게/ 명색이 엄마라고 내 손을 잡아 쥐는 어여쁜 우리 딸의 혓바닥이 살살 녹게/ 아프게 괴롭게 이유도 없이 눈물나게/ 지독하게 맛있는 떡뽂이 일인분 더 주세요// 여기서 내가 퍼질러 앉아 울어버리기 전에/ 서른에 하마 잔치가 끝나면 어쩌냐고 대들기 전에/ 아무렇게나 행과 연만 바꿔놓고 각운만 대충 맞추면 시가 되냐고 악 쓰기 전에/ 시를 저 높이 아득하게 밀어 올려놓은 놈 내려오라고 뻗대기 전에/ 후딱후딱 떡뽂이 일인분 더 주세요!! 아줌마!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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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외로운 참외는 없습니다.ㅎㅎㅎ 다만 참외는 땀입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참외 따보면 알게 되죠..으학.....숨이 턱턱 막히는 곳에서 참외가 열리거든요. 이책 찜.!!!

hnine 2015-05-06 19:04   좋아요 1 | URL
아, 유레카님 참외가 어떻게 열리는지 과정을 아시는군요! 저는 먹을줄만 알아요 ^^ 참외의 ˝외˝자가 아시겠지만 혼자라는 뜻이라네요. 대개 쌍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 다른 대부분의 식물에 비해 참외를 비롯한 박과 식물은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 그래서 열매도 하나뿐이래요. 그렇게 저렇게 이어붙여 참외는 외롭다고 했더군요. 재미있는 발상이지요. 이런 연상력이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것 같고요.
먹울 줄만 아는 사람으로서 참외는 땀이라는 말씀도 새삼 뭉클합니다.

yureka01 2015-05-05 12:2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외로운 건 가짜가 없지만 참 외롭다는 게 나의 외로움이 거짓이 아니란 진정성이란 말이겟지요.참외가 참 외롭다는 은유도 나오는 걸 보면 정말 외로운 시대이긴 하다는 증명은 아닐까 싶어요.^^.
시골 처가집에서 이맘때쯤 참외농사할때 참외따기 하면 ㅎㅎㅎ외로울 틈이 없던 생각 나요.진짜 힘들어서.ㅋㅋㅋ

hnine 2015-05-05 12:32   좋아요 1 | URL
댓글 마지막 문장에 YUREKA!를 외칩니다. 몸이 진짜 힘들땐 외로울 틈이 없다...

서니데이 2015-05-05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분 책을 읽어본 것 같지는 않은데, 이름은 낯설지 않거든요. 여러 지면에서 가끔씩 이름이 나오는 분인가봐요. 괜찮다 하시니, 나중에 읽어보고 싶습니다. hnine님 즐거운 휴일 되세요.

hnine 2015-05-05 12:19   좋아요 2 | URL
저야 워낙 이분 팬이니 그렇지만 인터뷰글을 주로 쓰시는 분이기 때문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니데이님은 아시는군요. 저는 못봤지만 신문에 연재글을 쓰신다고 하더라고요.
저희집엔 더 이상 어린이가 없는 관계로 어린이날이지만 아주 평범한 날이 되고 있답니다.

stella.K 2015-05-05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드니 소설 보다 산문이 좋아지더라구요.
h님 그리 권하시니 급땡기는군요. 책도 도톰하니 마음에 들고.ㅎ

stella.K 2015-05-05 12:21   좋아요 0 | URL
헉, 근데 10% 디씨가 안 되요.ㅠ

hnine 2015-05-05 12:22   좋아요 2 | URL
저는 지금보다 어릴때부터 (10대부터) 워낙 산문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좋아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의 책은 더 믿음을 가지고 읽는데 이 책 저자는 가늠해보니 우리 (저와 stella님 ^^) 보다 딱 10살 연배이시더라고요.
400여쪽 되니 도톰한 두께 맞습니다.

hnine 2015-05-05 12:23   좋아요 0 | URL
웃! 동시 댓글!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yureka01 2015-05-05 12:29   좋아요 0 | URL
저도 산문을 무척 좋아합니다.ㅎㅎㅎ

해피북 2015-05-05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먹고 설거지 해야 하는데 글이 너무 좋아 설거지할수가 없었어요 김서령님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hnine 2015-05-06 14:41   좋아요 0 | URL
그러시다면 이 책을 자신있게 추천해드립니다.
산문 읽기 뿐 아니라 쓰기에도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더더욱 눈여겨 보실 구절이나 단어들, 표현들이 많으리라 생각되어요.

이야기부엌 2015-05-0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저는 `참외는 참 외롭다`를 쓴 김서령이예요.
나인님... 어줍잖은 제 글에 공감해 주셔서 `참` 기쁩니다. ㅋ
사실 이딴 산문을 쓰는 일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머쓱한 노릇인데
잘 읽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뭔지 안심이 되고 가슴이 쾅쾅 뛰는군요.ㅎㅎ

hnine 2015-05-06 21:48   좋아요 0 | URL
작가님, 영광입니다. 저 작가님의 오랜 팬이랍니다. 필사도 불사할정도로요 ^^

2015-05-07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 - 부모편 오은영의 사춘기 터널 통과법
오은영 지음 / 녹색지팡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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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내 아이를 가끔은 남의 아이 보듯 하면 된다. 남의 아이 보듯 할때 부모는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뿐 아니다. 옆집 아저씨랑은 한시간도 하하호호 얘기 나누면서 내 남편과는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큰소리 낸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남과 다르게 대하고 져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붙이는 말, "다 너를 위해서야", "다 당신을 위해서야."

누구도 위하지 못하는 것을.

그러면, 이론을 알면서도 이렇게 실제는 다른데 어떻게 해야하나?

내 생각은 이렇다. 한번에 바뀌진 못한다. 하지만 '조금씩' 바뀌는 건 노력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조금씩이나마 중단없이 계속 변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노력을 중단없이 연장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책들을 틈틈이 읽어주면서 마음을 재정비한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오은영 저자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도 알려져 있고 그녀의 방식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 있다.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의 TV 프로그램에서 보는 그녀는 엄격할땐 무척 엄격하다. 아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는건 안된다고 확실히 알게 한다. 그녀가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에 대해서는 뭐라고 도움말을 주고 있을지 궁금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녀가 조언자로 나온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술술 읽힌다. 문장도 말하듯이 쓰여져 있으니 더 그럴거다.

사춘기 부모가 힘들다면 사춘기 아이들은 죽을만큼 힘들다는 것, 다그치지 말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부터 하라는 것. 역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 조금만 져주면 관계가 훨씬 편해진다는 것, 내 아이와 친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기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충돌이 적다는 것, 아이의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아이의 몸은 자라도 평생 어린아이로 남게된다는 것, 단 한대도 때리는 건 하지 말라는 것, 부모의 권위를 따지기 전에 부모의 역할을 다하라는 것.

읽어가면서 어느 한 꼭지의 말도 자신있게 '통과!'를 외칠 수 없었다. 나는 완전한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 한바탕 할 것 같은 순간에, 그 김을 삭힐겸 차라리 아이에게서 물러나와 방에 틀어박혀 이런 책에 정신을 쏟아보면 어떨까. 어려운 책이라면 몰라도 이 책은 김 오른 순간에도 머리에 들어올 정도로 쉽고 현실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읽고나서 괜히 읽었다, 손해봤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한마디,

"잔소리만 좀 줄여도 단번에 200배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어요."

 

(무심코 부모와 아이 관계 대신 부부 사이 관계를 대입시켜 보았는데 여기에도 큰 무리없이 적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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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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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끝의 시작>을 읽은 것은 내가 반대로 '시작의 끝'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1975년 서울생.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으로 등단.

서유미란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이 나에게는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이자 가장 근래에 나온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30대 남자 영무를 포함해서 등장 인물은 몇 안된다. 영무의 아내 여진, 영무와 한 직장에 근무하는 소정, 소정의 남자 친구 진수, 영무의 홀어머니, 그리고 여진에 미용실에 들리는 남자대학생 석현, 이 정도.

이야기는 암 선고를 받고 살 날이 앞으로 두어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영무의 어머니 병실에서 시작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우울하고 소심하게 자란 영무에 비해 그의 아내 여진은 생기 있고 발랄하던 잡지사 기자 출신. 인터뷰때문에 일로 처음 영무를 만나, 어딘가 자기와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그에 끌려 여진이 먼저 그에게 다가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유산되고 서로 다른 성격과 소통의 불가로 둘 사이 벽은 점점 두텁고 단단해질 뿐이고 이것을 견디다 못해 결국 여진은 영무에게 이혼을 제안한다.

우편취급국에서 일하는 영무의 직장 동료는 딱 한명.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고 어두운 가정 형편에 알바를 전전하던 소정이다. 소정의 남자 친구 진수는 소정에 비해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난 구김없는 남자. 둘 사이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주 가끔씩만 일어나는 일일까? 이 둘의 사이 역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소정과 진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남녀 사이의 시작과 끝, 영무와 여진 부부 관계의 시작과 끝, 영무 어머니의 삶의 시작과 끝. 어디 이 소설 속 인물들에서만 있는 일이랴. 모든 사람 사는 일이 작게는 하루에도 여러 번, 크게는 태어나서 죽는 일까지, 시작과 끝은 되풀이된다. 시작할때 끝을 예상하지 않고, 끝이다 싶을 때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지리란 예상을 하기 힘들다. 그래서 한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의 제목에서 어떤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이야기에 제목으로 억지심각성을 부여할 수는 없는거니까.

200여쪽이 채 못되는 가벼운 책. 산뜻한 책 표지가 책 내용보다 오히려 더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나서 내가 더 검색해본 것은 작가가 아니라 표지그림을 그린 화가 남경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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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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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산물이라기 보다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없거나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단순히 이 소설이 현대가 아닌 한 세대 지난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떠올려보면 알수 있다. 그야말로 한물 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개인사, 가족의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문학성으로 보나 참신한 스토리면에서나 어디 한군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되지 않았던가. 그에 반해 이 작품은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늦은 나이에 이룬 문학에의 꿈 등의 선전 문구가 한몫하여 읽어보긴 했으나 아쉬움이 크다.

노련한 작가의 작품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독자에게 쉽게 그 속내를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독자보다는 한 수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박혜영의 <비밀정원>은 어디에선가 한번씩 다뤄졌음직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 점은 노련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어 하나도 아무렇게나 쓰지 않고 공들여 뽑아내고 다듬은 흔적은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일관되어 있다. 그래서 아마도 아름답고 고즈넉한 문장과 표현, 어휘에 매혹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점은 나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그리 재미있거나 매력적이지 않고 감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면 소설은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창작의 결과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더 써낼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비난이 아니라 감히 걱정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창의성이 못따라가는 예가 얼마나 많은가. 기존 작가들 조차도 그 한계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고여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제목은 과연 작가가 처음 투고했을때부터 있던 제목일까, 아니면 책으로 내면서 출판사에서 제시한 제목일까, 문득 그것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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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9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련한작가,에 대한 님의 생각에 밑줄요. 이 작품제목은 작년 혼불문학관에 갔을 때 처음 알았어요. 혼불문학수상작으로 깃발을 날리고 있더라구요.

hnine 2015-04-29 08:3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나왔을때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가 마침내 읽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고, 문학에 대해, 소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어요. 이분 인터뷰 동영상 올라와있는 것 까지 찾아서 보았네요 ^^

비로그인 2015-04-2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기다리며 있는 시간, 나인님의 이 리뷰를 읽습니다.

`단어하나 함부러 쓰지 않고` 부터 마지막 까지는 반복해서 읽고 따로 즐겨찾기를 해두었습니다. 이런 독자들이 있다는 것. 작가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 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


..

저는 저 분의 책을 직접 읽지 않아 무어라 말씀을 더하기가 그렇지만
쓰신 리뷰의 글은 모든 글쓰는 이들에게

죽비소리같아서..

나인님같은 독자가 있기에 만만치 않은 세상이고
세상의, 삶의 이치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한다는 건
바로 이런 힘들 때문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돌아보며 갑니다.
고맙습니다..나인님..~~

hnine 2015-04-29 12:09   좋아요 0 | URL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신가요.
이 책은 비록 저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아마도 작가는 최선을 다해서 썼을거라는 생각이어요. 읽어보면 알지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거라는거요. 결과물이 그에 못미친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작가의 노력까지 가볍게 보고 싶지 않아요. 작가는 아마도 이 책을 내고 아주 후련했을거예요 독자가 뭐라고 하든. 그건 책과 별도의 결과물이겠지요?

페크pek0501 2015-04-3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소설은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창작의 결과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노련한 작가의 작품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독자에게 쉽게 그 속내를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독자보다는 한 수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님의 짧은 글에 제가 얻어갈 것이 이렇게 많네요. 고맙습니다. ^^

hnine 2015-04-30 22:24   좋아요 0 | URL
pek님도 이미 다 아시는 사실일텐데 겸손의 말씀을 해주시네요.
소설을 쓰는 것도 그렇고, 인생을 사는 것도 그렇고, 남과 다른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자살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살은 타살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결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핏줄을 나눈 가족의 죽음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또 하나의 죽음을 부르는 결과에서부터, 죽음을 감행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살아있는 평생을 알게 모르게 최소한 그 지배 속에 살아가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 데이비드 밴의 살아있는 날들을 지배해왔고, 그 혼란과 상처는 결코 순간적이거나 일시적이 아니었기에 "전설"이라는 단어를 썼다. 어떤 일이 전설이 되기까지는 그만큼 축적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후세의 누군가에겐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돌려서 쓰고 숨기고 할 것 없이 저자는 이 책의 배경과 내력을 다 내어보인다. 이래서 썼노라고.

책 속에 여섯 편의 작품이 들어있긴 하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두운 색조의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보다, 마치 산뜻한 어류 도감 표지 같은 원본의 표지가 책을 다 읽고서 보니 더 섬뜻하다.

 

책을 읽고 나서 한가지 의문. 실제와 다르게 저자는 왜 작품 속에서 아버지 대신 아들이 자살하는 것으로 했을까? 아버지의 자살은 그나마 그럴만하다고 주워섬길 이유들이 몇가지 예시되어 있지만 아직 열몇살의 아들에 대해서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들을 내세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들, 읽으면서 놓친 것들이 있는 것일까.

 

집필에 10년, 퇴고하는데 2년이 걸렸다는 이 책을 며칠 만에 다 읽어치우고 이래저래 느낌을 풀어놓는구나. 저자에게는 12년 조차 전부라 할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국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하고 20개 언어로 번역되고, 11개국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받았다는 것이 그 전설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전설"을 다 덮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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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4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4-24 19:38   좋아요 0 | URL
이 책 무지 우울해요. 기분이 저조할 때 말고 괜찮을 때 읽으세요.
집필하는데 10년씩 걸린 것은 작가가 완벽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자기의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고 파헤쳐서 다시 작품화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의미 아닐까해요.
읽은지 좀 시간이 지나서 쓰면 리뷰가 짧아지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