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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깊다
이혜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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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전작 <길 위의 집>을 시작으로 <꽃그늘 아래>를 읽었고 <틈새>를 읽있고 <너 없는 그 자리>를 읽었다. 산문집도 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소설가로서의 이혜경을 좋아하는 나는 산문집은 미뤄두고 있었을 뿐 그녀가 낸 대표적인 소설은 찾아 읽어온 편이다. 이유는 물론 그녀의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문장력도 뛰어나지만 그것으로만 쓰는 것 같지 않아야 한다는 나의 소설을 택하는 기준에 그녀의 소설은 딱 맞았다. 깊은 우물에서 떠올린 한바가지 물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작년 9월에 나온 이 책은 표지마저 매혹적이지 않은가. 저녁이 깊다라는 제목 또한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

중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장편이다.

누구 한 사람이 주인공이라기 보다, 작은 시골 소읍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나오고 있다. 한 마을에서 자랐으니 어느 정도 배경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각기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고향을 떠나 겪는 인생의 행로도 그렇게 각기 다르다. 하지만 각기 다른 그 인생의 행로라는 것이 독자들이 예상하는 그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작가가 1960년 생. 그 시대 회고담이 소설의 배경에서 끝나야할 것 같은데 읽다보면 배경을 넘어서 그 이상의 서사로 발전하지 못함을 알게 된다.

가족의 문제, 인간의 문제, 그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슬픔을 용케 찾아내어 보여주고, 그 슬픔도 끌어안자고 가자는 깊은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던 작가. 이번엔 전작들에 비해 그 목소리의 울림과 깊이가 덜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가 단지 누군가의 어릴 적 일기장에서 시작하여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노련한 작가의 손으로 다시 탄생시키고자 했던 의도때문이었다고 보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그동안 읽어온 그녀의 소설들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더 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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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5-06-18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전과 파격, 혹은 상상을 허들 넘듯 뛰어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읽었는데 끝까지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결말에 이르러서 조금은 실망했던 기억이 나요. 한편으로는 천재 유박사의 사생활(제목이 맞는지 약간 조바심), 또는 전원일기 처럼 조용하고 고요한 정해진 길을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늘 추측은 독자의 몫인 것 같았어요.

hnine 2015-06-18 09:50   좋아요 0 | URL
반전과 파격을 기대했다기보다 저는 최소한 이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이 작가는 보통 사람들은 보지못하는 저 너머 어떤 것을 보는 힘이 있을거라 기대한거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가상이기도 하고요. 남들이 다 보고 느끼는 것을 그저 문장력으로 잘 다듬는 데서 그치는게 아니라요.
제게 있어 작가란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깨달은자`에 가깝다고 하겠어요. 그러니 실망을 자주 할 수 밖에요. 에구, 제 탓이네요 제 탓. 작가 탓이 아니라...ㅋㅋ
 
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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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미스터리나 탐정물, 추리물을 열심히 읽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은 읽고 싶어질 때가 있어서, 몰입도가 높을 것 같은 것으로서 신간중에 골라 구입한 것이 이 책이다.

저자 샤론 볼턴은 이 책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영국 현대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소개글에 나와있다. '고딕 미스터리의 계보를 잇는 현대 미스터리' 라는 구절로 보아 아마 현대 미스터리의 상대적인 고전 미스터리를 고딕 미스터리라고 부르나보다.

600쪽이 넘는 분량이라서 책이 두툼하다. 몰입도가 높지 않다면 오래 걸려 읽을 분량.

조금 쉬운 숨은 그림 찾기를 연상시키는 표지가 상큼하다. 저자가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 아주 틀리진 않은 모양이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시간이 근래 많기도 해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현대 미스터리 맞나 싶다. 뱀, 교회, 목사, 저택, 폐허, 소문, 사고, 화재, 상처, 죄책감, 원한, 등등의 소재는 예로부터 미스터리 단골 소재들 아닌지. 그래도 뭔가 독자를 깜짝 놀래는 반전이 있을거라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내가 너무 바랬는지 (?), 딱 평균 정도의 흥미만을 보여주고 맺는다.

주인공 여자는 어릴 때 화재로 얼굴에 화상을 입은 흉터때문에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며 살고 있는 스물 아홉살 수의사 (영국에서 수의사는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서 선망의 직업. 직업 호감도 1위이다- 최소한 십여년 전까진 그랬다). 원제 Awakening은 여러 가지를 상징, 중의적으로 쓰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뱀의 출몰, 그리고 주인공의 삶의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비밀스런 목사가 미국에서 이상한 종교에 연루되었다가 영국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 도피차 건너왔다는 것, 또 미국식 억양과 영국식 억양의 은근한 비교에서 영국 사람들의 은근한 비꼼을 엿보았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건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촘촘한 구성은 인정하나 소개글처럼 뛰어나게 재미있지는 않았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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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7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5-27 23:25   좋아요 0 | URL
시력은 이미 갈데까지 가서 ㅠㅠ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네요.
대놓고 싫어하는 티 내지 않는 대신 뒤에서, 혹은 돌려서 티내기. 이런 식으로 영국 사람들은 표안나는 표 내기를 하는 것 같아요. 좀 비겁하죠? ^^
기대 많이 하고 읽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어서 아쉬웠어요.
뱀을 등장시켰다는 것이 가장, 그리고 유일한 이 작품의 특징이 아닐까 싶네요.

moonnight 2015-05-2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흥미가 생겨서 보관함에 넣어두었는데 슬그머니 보류-_-;

hnine 2015-05-27 23:29   좋아요 0 | URL
예 moonnight님, 보관함에서 빼지는 마시고 보류 정도로...^^
재미는 있었어요. 그런데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제 경우에는요.
어릴 때 셜록 홈즈를 읽으면서 빠져들던 그 경험은 이제 재현불가능일까요. 아직도 저에게는 그때의 그 경험이 미스터리 읽기와 관련된 최고의 경험이네요.
 
태어나기 전의 너는 무엇이었나 - 서암(西庵) 큰스님 평전
이청 지음 / 북마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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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절에 가기는 하지만 그건 가끔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보다 더하지 않다. 불교에 관심이 있지만 그 역시 불교를 나의 종교로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불교에서는 생명을, 또 삶을 어떻게 보고 있나,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나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어떻게 이 책을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딱히 설명할 수 없다. 서암 큰스님이 어떤 분이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대상이 누구였든간에 존경받는 삶을 살다가신 분의 가르침이 또 아쉬운 시기였나보다. 내가 찾는 질문이 뭔지도 확실히 모르면서 답을 구하고 싶었고, 답을 먼저 발견하고 그 다음에 내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도 좋겠다는 얄팍한 의존심이었나보다.

 

읽어보니 서암 큰스님이라는 분은 성철 스님의 뒤를 이어 조계종 제8대 종정을 지내신 분이란다. 1924년에 태어났고 먹고살기 힘들고 배움에 굶주려 2년 기한으로 절집 머슴으로 들어간 것이 출가의 시작, 그때 나이 열여덟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비구계를 수계하고 '서암'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배움에 굶주렸던 것이 출가의 한 원인이었듯이 그는 종비장학생 자격으로 일본대학교로 유학을 가지만 폐결핵 말기 진단을 받고 학업을 중단한채 귀국했다. 하지만 귀국해서도 따로 치료를 받지도 않으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바위굴, 암자 등에서 수행하고 강의를 다니는 동안 폐결핵이 사라졌다. 이후 봉암사, 원적사 등을 오가며, 한국 불교 선풍을 세우는데 주력하였다. 1970년대 조계종 내 종단사태가 한창일때 총무원장을 맡아 사태를 수습하고 2개월만에 사퇴, 산사로 돌아간다. 1993년 성철스님 열반후 후임 종정으로 추대되었고, 몇번 거절을 거쳐 결국 조계종 종정 자리에 오른다. 종정직을 맡고는 있지만 한번도 서울행을 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했던 성철 스님과 달리 서암 스님은 종정으로서 자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년에 그는 아무 종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고, 2003년 3월 속세 나이 90세에 한 말씀 남기시라는 제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그 노인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마지말 말을 남기고 열반했다.

 

불교의 가르침을 읽다 보면 제일 자주 나오는 글자가 '無' 즉 '없음'이다. 서암 스님 말씀 중에도 '마음'이란 한갓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항상 마음을 강조하지만 이때 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은 세속에서 쓰는 마음과 매우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기쁜 생각, 슬픈 생각, 죽는 생각, 세상 살아가는 데 쓰는 가지가지 마음이 본바탕 마음인줄 알지만, 본바탕 마음이란 천지 우주 만유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고 이들이 가루가 되어서 날아간다 해도 상관없는, 불멸의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이 곧 부처라. 어려운 말이다. 서암 스님은 마음이란 말보다 마음자리란 말을 더 자주 하고 있다. 근본 마음이란 의미이다.

서암 스님이 한국 불교에서 바로잡고자 애쓰셨던 선(禪). 진리에 도달하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서암스님은 참선을 곧 쉬는 것이라고 하였다. 참선의 첫째 자세로 무엇을 따지고 하는 것은 금물이며 완전히 멍텅구리가 되라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곧 참선이라고 한다.

마침내 도를 깨우치셨냐는 물음에, 그런 것 깨우친 바 없다고 말씀하셨다는 서암 스님. 출가한 후 평생 그것을 구하고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님의 일생일진대, 아무것도 깨우친게 없다고 하셨다니. 성철 스님의 산은 그저 산일 뿐이요, 물은 그저 물이고 꽃은 꽃인데 뭘 거기에 자꾸 의미를 붙이려고 드는가 하는 말씀과 통한다고 나름대로 새겨본다.

 

이 책은 스님의 행적을 중심으로 이청이라는 작가가 엮었는데 말씀과 행보가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 지루함은 피할 수 있게 했는지 몰라도 깊이와 집중에는 실패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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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멈추지 않네 - 어머니와 함께한 10년간의 꽃마실 이야기
안재인 글.사진, 정영자 사진 / 쌤앤파커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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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전국의 절터를 찾아다니며 꽃 사진을 찍었다.

다 큰 아들이 굳이 어머니와 동행한 이유는 처음에 불목하니, 즉 절에서 밥 짓고 물 긷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서였다고 한다. 불교 방송 PD였으니 불교와 전혀 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넉살 좋은 편 아닌 아들에게 있어 절집을 방문하고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는 작업을 하는데 평소에 절에 꾸준히 다니시는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게 더 편했으리라.

이렇게 다니길 10년. 400여 곳의 절터를 다녔다고 한다. 처음엔 절과 그 주위의 자연을 찍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그 속에 어머니를 넣고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꽃을 매만지는 어머니, 기도하는 어머니, 걷고 있는 어머니, 절 앞마당을 비로 쓸고 있는 어머니, 낙엽을 줍고 있는 어머니, 등등 자연스런 어머니가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들어가자 사진의 화면이 덜 심심해보였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덜 심심해보이는 정도를 넘어서 사진에 감동이 몇배 더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은 때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아주 작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 속에 한 점으로 들어가 있을 뿐이다.

서산 개심사, 공주 마곡사, 부안 내소사, 부여 궁남지, 예산 수덕사, 양산 통도사 등, 내가 가본 절도 있지만 아직 못가본 절의 사진이 더 많다. 특히 절이라기 보다 암자라고 해야할 오대산 염불암의 모습은 몇번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했는데 저자의 어머니도 처음에 아들 혼자 가서 찍어온 사진을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나보다. "우리나라에 이런 절도 있나?" 하며 신기해하셨다가 어느 날 그러시더란다. "그 좋은 데는 맨날 혼자만 다니나? 나도 같이 가면 안 되겠나?"

이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이 절집의 모습, 가을 수목에 들러싸여 소꼽장난 집처럼 놓여있는 염불암과 댓돌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는 사진을 한번 보아주시라 아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나무에 둘러싸여 세월 가는 것을 겪어내며 낡아가는 절집, 그리고 사람. 결국 사는게 그런거 아니던가.

꽃, 나무가 있는 자연 풍경, 절집 사진을 한 두번 보았던게 아닌데 왜 이 책의 사진들은 특히 더 뭉클한가. 잘 모르겠다. 최근에 보았기 때문에? 가장 나이가 들어 보았기 때문에? 가까이서 찍지 않고 멀리서 조용한 모습을 찍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그곳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 본능일텐데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내가 아주 멀리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느낌이다. 제목처럼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음 없는 조용하고 솔직하고 무던한 자연 앞에 마치 내가 말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맺힐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바람이 멈추지 않네라는 제목. 그래, 바람이 멈추기를 기대하지 말자. 한두번이면 몰라도 바람을 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바람이 들고 남을 느낄 뿐이지.

거의 매일 고속버스를 타야할 일이 생긴 요즘, 책 읽을 시간도 많아졌다.

어딘가 길을 나서게 하고  더불어 나의 생각을 남기는데 사진이 얼마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는지, 기록이 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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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5-16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와 아들이 모습을, 대화를 상상해봅니다. 참 바람직한 모자사이네요.
나인님은 고속버스타고 공부하러 가실까?
응원합니다!

hnine 2015-05-16 20:44   좋아요 0 | URL
세실님, 공부하러가는거 아니어요 ㅠㅠ
친정아버지께서 입원해계셔서 매일도 아니고 하루 걸러 병원 다녀오느라고요.
아무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5-05-16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아침에 제대로 바람들었어요.
전에 언젠가 지하철에서 신발 한짝 떨구셨다던 날 생각났어요. 요즘도 열심이시네요~^^

hnine 2015-05-16 20:4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기억력 대단 대단! ^^
그날 왜 서울에 갔었는지 저 자신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사건을 기억해주시네요. 아마 돈벌러 갔거나 한참 그림 배우러 다닐때이거나 둘 중 하나일것 같아요.
오늘 이 책 친정엄마께 드리고 왔어요 사진 구경이라도 하시라고요. 마음 짠한 사진들이 가득이더군요.

해피북 2015-05-1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양철나무꾼님 따라쟁이 아~~~ 나인님의 글의 마음이 진하게 전해졌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한 기분... 이 책 살펴봐야겠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hnine 2015-05-16 20:48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 맞아요. 어딘가 모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한 기분이 드는 내용, 그리고 사진이 들어있는 책이었어요. 구입하지 않으시더라도 도서관 같은데서 혹시 이 책 보시면 한번 눈여겨 봐주세요. 특히 오대산 염불암 나오는 부분이요.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이영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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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학에 대해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분명한 생각과 목소리, 글소리때문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작가 마루야마 겐지.

그의 새로운 에세이가 출간된 것을 보고 바로 구입하여, 읽던 책 미뤄놓고 이것부터 읽었다. <달에 울다>, <여름의 흐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나는 길들지 않는다> 에 이어 다섯 번째 읽는 마루야마 겐지의 책.

해발 750미터 아즈미노현. 주위에 무논과 비닐하우스와 농가뿐인, 자극이라고는 극단적일 정도로 없는 분위기에 둘러 싸인 그런 곳으로 귀향하여 정원 가꾸기와 글 쓰기로 축약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의 열두달 정원 일기이다. 그래서 목차도 1월, 2월, ..., 12월의 식으로 되어 있다.

 

이 목차에 붙은 한 줄짜리 제목들에서 촌철살인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1월 버릴 수 없다면 정원사가 되지 마라

2월 사철 내내 꽃을 피울 수는 없다

3월 한 마리 새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별별 일을 다 겪는다

4월 성장하고 싶다면 가지를 쳐내라

5월 봄의 들놀이가 수만 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

6월 존재하는 것들의 유일한 명제는 오로지 살아남는 것이다

7월 꽃을 돌아보지 마라

8월 당신을 타락시키는 유혹은 언제나 당신으로부터 시작된다

9월 예술의 진정한 힘의 원천은 생명체 간의 투쟁 그 자체다

10월 단풍에 취한 찰나로도 충분하다

11월 현실과의 투쟁을 피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12월 가장 아름다운 장미는 바람에 단련된 것이다

 

사람이 아닌, 꽃과 나무들에 보살핌과 애정과 땀을 쏟으며 그는 책과 생각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그 너머를 체험하고 있는 듯 했다. 정원이 그에게 문학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데, 책 속의 지식이나 생각의 깊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서슬 퍼렇던 그의 주관과 삶의 태도를 다소 말랑하게 만드는 비밀은 정원의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마도 정원 자체가 아니라 정원 '가꾸기'에 그 비밀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손수 가꾼 정원이란, 특별히 사계절 내내 꽃이 가득 찬 공간이 아니다. 하늘에 들어찬 별처럼 찬란한 만개의 순간을 일 년에 며칠 정도만 엿볼 수 있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소우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즉, 불특정 다수의 눈을 의식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어디까지 감동시킬 수 있을까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극히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창조 공간이다. (9쪽)

 

사적인 우주, 개인적 사랑의 창조 공간이라는 정원. 책의 이 첫 단락부터 매혹되어 단숨에 읽어갔다.

 

겨울이란 계절을 '지성의 시간'이라는 근사한 표현을 한 사람이 또 있던가? 식물들이 새로운 생명을 위해 안보이게 준비하는 겨울에 그는 집중적으로 집필 활동을 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만약 정원 꾸미기에 정신을 쏟을 수 있었다면, 그들은 진정 기뻐하며 위대한 범인으로서 생애를 장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즉, 철학자들의 이런저런 고민은 육체를 너무 등한시한,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 데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땅을 일구고 돌을 나르고 좋아하는 초목을 심어 기르는 등의 생활을 체험했다면 살아가는 의미 등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그토록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현세의 생명체에 대해 어떠한 의혹도 끼어들 여지가 없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척추동물로서 당연히 흘려야 하는 땀과, 꾀죄죄한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은 겨우 그런 것들을 하지 않아 고민에 휩싸였던 것은 아닐까. (126쪽)

그래서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수백 권의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위대한 철학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놓은 말, 깨달음들을 이해하고 그대로 습득하는 것과 다른, 사적인 소우주이고 창조 공간이라고 했구나.

 

이 책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맺고 있다.

많은 정원이 겉모습의 화려함에 지배당해 내용은 죽은 정원이 되어 가고 있다. 정신의 죽음을 폭로하는 것이 목적인 듯한 정원과 문학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내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그 정반대에 위치하는 것이리라. 내게는 큰 야심이 있다. 정원과 소설을 통해,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 꿈을 실현하려면 음과 양을 상징하는 바람과 장미의 나날을 지날 수밖에 없다. 바람은 장미를 단련시켜 진정한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장미는 바람에 향기를 실어 보낸다. 그리고 언어는 안정되지 못한 인간계를 바람처럼, 장미 향기처럼 관통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매력으로 감성과 지성을 격렬하게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132쪽)

바람과 장미로 비유된 그의 삶의 축이면서 동시에 삶의 도구를 어떻게 조화시켜나가는가 하는 것은 그의 몫일 것이고 독자는 기대하며 지켜볼 것이다.

 

굳이 책의 평점으로 별 네개만 준 것은 책이 너무 얇은 것이 아쉬워 심통이 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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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5-11 14:20   좋아요 0 | URL
일년이 열두달 뿐이다보니 책 두께가 이 정도 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지요.
아쉬우면 한번 더 읽으면 될 일인데 제가 심통을 부렸어요.
님도 읽으셨군요? 소설은 소설대로,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괜찮은 작가임에는 의심이 없는 것 같아요.

2015-05-1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5-11 14:23   좋아요 0 | URL
외국에 계시니 책 좋아하시는 분에겐 우리 음식보다 우리글 책이 더 아쉬울 때가 많으시지요. 이 책의 내용을 제가 잘 전달하도록 리뷰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루야마 겐지가 정원에서 소우주를 보았듯이 저는 제 주위에서 무엇을 그리 볼 수 있을까, 그것이 꼭 정원일 필요는 없지않나,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15-05-1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5-11 23:58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감이요. 몸은 마음이 가르치고, 마음은 몸이 가르치며 균형을 이루어간다고 생각하는데 모든게 기계화되어가다보니 몸은 안쓰려고 하고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다음 책 제목으로 추천하신 것 멋진데요! 아마 마루야마 겐지 식으로 좀 더 세게(!) 표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

프레이야 2015-05-1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이 동시에 생각납니다. 12장 소제목, 바람과 장미의 나날‥^^

hnine 2015-05-11 14:31   좋아요 0 | URL
읽지 않고 제목만 들었음에도 저도 헤세의 그 책 제목을 떠올렸답니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말씀하신 제목은 위의 다른 분께서도 추천하신 제목이랍니다. 와우...마음이 통했어요.

세실 2015-05-1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굿모닝~~~~~
`한 마리 새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별별 일을 다 겪는다.`
강한 한마디네요.
하물며 사람일진대........

`당신을 타락시키는 유혹은 언제나 당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명심해야겠습니다.


hnine 2015-05-11 14:36   좋아요 0 | URL
세실님, 우리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평범해보이는 한 줄 글로도 일깨워지며 살고 있지요. 한 마리 새도 별별 일을 다 겪는데 힘든 순간과 힘든 일 앞에서 너무 호들갑 떨며 절망하지 않나 저도 다시 볼아보게 되어요.
나 외에 다른 생명체를 키우고 보살피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고개 수그리게 해주는 것 같아요.

stella.K 2015-05-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루야마 겐지 참 괜찮은 작가로 기억하고 있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허걱했습니다. 어쩌자고...ㅠ
다음엔 글 좀 길게 쓰라고 마루야마에게 말해 놓겠습니다.ㅋㅋ

hnine 2015-05-11 14:37   좋아요 0 | URL
ㅋㅋ 사실 두께가 얇아도 용서가 되는 책이랍니다. 내용이 괜찮아서요.
정원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니까 소설이든 에세이든 계속 그의 작품이 나오겠지요. 기다리는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