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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 - 그래도 사랑해야 할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법
이나미 지음 / 예담 / 2015년 7월
평점 :
생각만 하는 것은 쉽다. 생각하는 것을 시행하는 것은 그보다 어렵다. 결단력, 책임감,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나머지 반은 또다른 문제이다. 일단 시작한 것을 그대로 유지시켜 나가기란 시작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가족의 문제에서도 본다.
어머니, 왜 냉장고 안에 계세요?
천천히 상하기 위해서란다
너는 , 오래오래 나를 먹을 거잖니?
(함성호의 '고요한 재난' 중 본문에 인용된 부분)
가족. 그 말 속엔 인간이 최후의 순간 까지 기대고 싶어하는 따뜻함과 절박함이 있는가 하면,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따뜻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피눈물로 얼룩져있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도 그런 의미라고 본다, "상처이며 자존심"
저자 이나미는 정신과의사라기 보다는 심리, 정신과 분야의 학자라고 보는게 더 맞을 정도로 인간의 정신 세계와 인간이 몸담고 사는 이 사회에 대해 촉을 세우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글을 써오고 있는 사람이다. 신간 출간 소식을 보면 거의 '묻지마'구입을 하는 대상 중 한 사람인데, 여자의 허물벗기라는 그녀의 초기 에세이를 읽을 때에 비해 이제는 머리카락이 희끗해진 프로필 사진을 보니 세월의 흐름을 느끼겠다.
이 책은 좀 특이한 구성으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쓴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구성으의 잇점이라면, 정신과 의사라든지 심리 상담가 등 제3자의 관여 없이도 두 사람의 편지글을 읽고나면 각각의 입장에서 볼때 하나의 관계가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독자에게 쉽게 전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촌철살인 같은 저자의 한마디는 마무리로서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요약 정리 역할도 잘 해내고 있다.
혼자만 희생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포장할 시간에 나와 상대방이 함께 존중받으며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 (54쪽)
우리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일반적인 것으로, 자신의 경우는 특수한 상황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만 특별히 불리한 상황을 뚫고 나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 인용한 저자의 현실적 조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자식과 부모, 남편과 아내, 어느 입장에 속하든 나만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불행을 한탄하고 있을 시간과 에너지를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대부분 그렇게 하기 보다는 혼자 신세한탄이나 뒷담화의 형식으로 임시 방편을 삼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편한 상대인 듯 잘못 오해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날것으로 교환하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차라리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어려운 직장 상사나 동료라고 간주한 다음, 마음속에서 핵심을 정리해 단숨에 얘기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방법이다. (88쪽)
사랑을 오래오래 지속시키는 것은 육체적 본능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 혹은 상대방의 결점에 대한 관용이다.
부부를 오래 유지시키는 것은 파충류에게도 있는 호르몬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결국 전두엽의 자기 반성과 조절 능력, 측두엽의 공감과 소통 능력이다. (172쪽)
애정없는 결혼 생활, 사랑보다 의무감으로 살고 있다고요? 그거 이상한거 아니다 어느 정도는.
본인이 카톨릭 신자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신학을 따로 공부하기도 했던 저자가 본문중에 인용한 불교 설화 하나를 옮겨오면서 맺기로 하자.
어느 마을에 부처님이 머물게 되었는데 어느 무뢰한이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 이런 광경을 보고도 부처님이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제자가 물어 보았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느냐고. 이에 부처님은 제자에게 물었다.
"어느 집을 방문했는데, 주인장이 음식을 내와서 보니까 도저히 먹을 음식이 아니라 사양을 했다. 주인장은 그 먹지 못할 음식을 다시 치워 자기 부엌으로 가지고 갔다. 이 음식은 손님 것이냐? 아니면 주인 것이냐?"
제자들은 그 주인장 것이라 대답을 했다.
"너희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너희가 먹지 않겠다고 사양을 한다면 그 욕은 그렇다면 누구 것이냐? 너희 것이냐? 아니면 상대방의 것이냐?"
제자들은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말한 사람은 그 말을 다 잊어 버렸고, 그 말이 어느 공간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여전히 네가 불쾌하다면 그것은 너희들이 그 말을 너희가 먹고 가슴속에 새긴 탓이 아니냐."
허공에서 다 사라진 말들을 내가 다시 꽁꽁 싸서 내 마음에 간직하고 안 하고는 내 몫이란 이야기다. (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