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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정여울 글.사진, 이승원 사진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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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이라는 이름은 귀에 익은 정도가 아니라 그녀의 글은 여기 저기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끔 방송에서 그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우연히 읽고 보았을 뿐, 일부러 그녀의 책을 찾아서 읽은 적 없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를 훅 잡아 끌만한 그 무엇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거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분의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읽고 그날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아쉽게도 그것이 어느분의 리뷰였는지 생각이 안난다. 생각나면 다시 가서 한번 그 리뷰를 읽어보고 싶은데.

제목의 그림자 여행 역시 이런 류의 에세이에 흔히 붙일만한, 에세이 느낌 폴폴 나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그림자는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내면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겉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자신의 모습에 해당하는 페르소나의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정여울이 탐구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림자에 해당한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그림자. 내 뒤에서 나를 보여주는 나의 그림자.그 그림자를 탐구해가는 과정을 그림자 여행이라고 부른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자란 말 그대로의 의미도 충분히 제목의 해석으로 삼을 만 하다.

 

살아온 발자취가 아름다운 사람들은 더욱 아름다운 삶의 그림자를 남긴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세상에 남긴 삶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살아온 그림자가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렇게 그림자조차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 (p.7)

 

여행이라는 제목 역시 꼭 추상적인 의미는 아닌 것이, 실제로 저자는 영국의 몇몇 도시 및 지방을 여행하며 그곳의 사진과 느낌도 곁들였다. 자기에게 익숙한 곳을 떠나 돌아다니는 동안은 그간 활성화되지 않고 잠자던 많은 유전자를 일깨우는 법이니까.

 

아프지 않게 고독할 수 있는 비결은 '순수한 몰두'다. (p.100)

 

나는 지금까지 내 어두운 삶을 밝혀줄 등대만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내가 직접 조용히 불을 밝히며 타인의 마음에 등대가 되어준 적이 없다. 세상 바깥에서만 등대를 찾아다니지 않고,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작지만 소중한 등대가 되고 싶다. 지금 캄캄한 밤바다를 홀로 표류하고 있는 당신의 마음에 불현듯 등불을 밝힐 수 있는 따스한 온기를 지닌 그런 글을 쓰고 싶다. (p.113)

평범한 것 같지만 평범하지 않은 생각이라 옮겨 왔다. 친구를 찾을 때, 배우자를 찾을때, 연인을 찾을때, 우리는 늘 어떤 상대를 만났으면 좋을지에 대해 얘기하지 내가 어떤 친구, 연인, 배우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똑같이 상대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두 사람이 기대하고 만나, 실망하고 부닺히고 원망하고 후회한다.

 

현대인은 아픔에서 도망치느라 아픔이 가르쳐주는 진실을 외면한다. (p.124)

 

저자가 골치 아플 때마다 펼쳐든다는 헤세의 책. 그 책에는 항상 자기보다 더 골치 아픈 사람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녀가 소개하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힘이 있다는 책, <헤세의 여행>을 따라 읽기 보다는, 나에게도 그런 책이 없었을리 없으니 한번 꼽아봐야겠다.

 

영국의 이곳 저곳 여행할 때 에피소드가 간간히 실려 있는데 218, 219쪽에는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역의 벽그림 사진이 소개되어 있다. 거기에 쓰여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be together. not the same.

함께 합시다. 다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이건 나의 해석.

함께 한다면 뭔가 달라질 거예요. 이건 저자의 해석.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책을 읽다가 발견했다는 다음 구절,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위업은 단 하나다. 도망치지 않는 것.

다그 함마르셸드의 문장이라는데 우리가 책을 읽고 거기서 힘을 얻는 것은 때로는 이렇게 단 한줄의 문장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나 역시 이 문장을 읽고 밑줄을 그었으니까.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도망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질 때가 얼마나 자주 찾아오던가 말이다.

성공한 인생이 못되더라도 최소한 도망치지는 말아야지 끝까지. 자존심은 남에게 내세울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스스로 지켜내는 게 자존심인거야.

 

이 책의 표지에 보면 제목 밑에 또다른 작은 제목이 달려있다. '내가 꿈꾸는 강인함'이라고. 그리고 286쪽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섬세한 감정은 강인함의 또 다른 징후. 그런가? 섬세한 감정은 곧 촘촘한 마음의 그물이 되어, 들어오는 것들을 잘 어루만지고 정리,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일까.

 

 "경주마가 할 일은 트랙을 빠져나와 저 푸른 초원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라는 박노해의 <경주마>란 시를 인용하며 저자는 말한다. 박노해는 아직도 더 많이 더 빠르게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이야말로 우리를 더 많이 우울하고 슬프게 만드는 근원임을 직시하였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에 비추어볼때 트랙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경주마의 안타까운 운명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남이 시키는 대로 그저 열심히 맹목적으로 뛰는 경주마가 아니라, 내 꿈의 넓이와 깊이를 내가 정하는 삶, 내 꿈의 의미와 파장까지 내가 결정하는 삶, 나의 삶이 과연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매번 심사숙고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삶에 대한 최고의 연구자가 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스템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갑과 을의 수레바퀴 속에서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 부분은 박노해의 <자기 삶의 연구자> 일부를 저자가 인용한 것이다. (p.310)

 

지금은 그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멀티태스킹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뇌가 진정으로 집중할 수 있는 것은 한 공간, 한 시간에서 오직 한 가지뿐이다. 자신의 고독과 친밀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저마다의 잠든 무의식과 만나는 첫걸음이 아닐까. (p.349)

마지막 페이지를 얼마 안 남기고 이 구절을 읽으며 어렴풋이 짐작했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그림자여행의 결론을 내리는구나. 동의하면서, 또 한 사람의 친구를 알게 된 것 같아 혼자 기뻣다.

 

 

p.46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봤다는 World's End Close 라는 팻말을 저자는 '세상 끝으로 난 길'로 해석을 했는데 Close 는 영국에서 도로명 주소에 흔히 쓰이는 단어이다. 무슨무슨 street 처럼, street 자리에 close가 들어간 것인데 대개 막다른 골목으로 끝나는 거리를 끼고 있는 지역의 도로명 주소일 때가 많다. 참고로 내가 예전에 살던 곳 주소가 Walnut Tree Clos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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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10-03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의 `함께 합시다. 다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해석이 더 낫네요. 함께 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함께 하는 자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close에 그런 뜻이 있었군요. 새롭게 배우고 가요. hnine님의 리뷰를 읽고나면 갈등이 증폭되는 것 같아요. 이 책, 사? 말어? 하고.

hnine 2015-10-03 07:54   좋아요 0 | URL
nama님 서재에 남긴 댓글, <여행은 영혼의 비상식량>이라는 구절의 출처 되겠습니다 ^^
저는 정여울 작가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글을 쓸때 집중과 몰입의 중요성에 대해 써놓은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화, TV, 음악 등등 모두 끄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 그 내면과 만날 수 있으려면 몰입하고 집중하여야 한다고 썼더군요.

페크pek0501 2015-10-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좋은 글 한 편 만나서 반갑습니다.
배우는 즐거움. 저의 재산 목록이 추가되는군요. ^^

hnine 2015-10-03 15:47   좋아요 0 | URL
글을 오래 오래 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글에 대한 분석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을 할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요. 저자가 추구하는 만큼 책의 구성도 좀 더 집중적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보았고요.
pek님이 만약 읽으시면 어떤 느낌이실지, 그것도 궁금하네요.
 
여기까지 문학나무 수필선 10
김제숙 지음 / 문학나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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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꽤 되었지만 섣불리 리뷰를 못올리고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고 있었다. 중간에 읽기를 멈추지 않은 이상, 완독한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에 오늘은 더 미루지 않고 간단하게라도 느낌을 적기로 하였다.

섣불리 리뷰를 못올리고 있던 이유는 하찮은 느낌글 몇줄이라 할지라도 혹시 저자분에게 누가 될까 해서이다.

수필이란 형식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그에 앞서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면서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있다. 글을 읽으며 글도 글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다. 그림을 보면서도, 건축물을 보면서도.

수필만큼 글쓴이의 성격이 글 속에 그대로 드러나는 형식의 글이 있을까 싶다.

평소 이분의 서재를 자주 들락거리며 이분의 글과 사진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서재에 올린 글 말고 책으로 나온 이분의 글은 이 책이 두번째인데 처음 읽은 책은 이분의 글인지 모르고 읽었고 이 책은 알고 읽었다.

 

그러다가 공깃돌을 밀쳐놓고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도망하듯 피하여 온 것은 바로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이었다. 가족을 위해 끼니를 준비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 무엇보다도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무겁게 지고 있어야 하는 이 아니라 인생의 강을 건너게 하는 작은 징검다리였다. (73쪽 -공깃돌- 중에서)

 

나보다 몇년 연배가 위이신 것 같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작 징검다리였다는 것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신없이 살아온 3,40대 동안엔 오히려 힘이 들어도 힘들다 말할 여유 조차 없다. 그 시기를 약간 넘겼다 싶을 때 정신이 들면서 이게 뭔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식에 대해서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도 그렇다.

 

몽골초원을 여행하다 보면 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초원을 흐르는 강은 많은 굴곡을 만들며 굽이굽이 흐른다고 한다. 그만큼 더디 흐르고 멀리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영향으로 강 주변에는 더 많은 초원이 형성된다고 한다. (145쪽-커피를 시작하다- 중에서)

 

천천히 가는 강물을 비웃지 말것. 천천히 움직이는 달팽이를 얕보지 말것.

빨리 앞서 가는 것이 곧 성공적이라고 여길 때가 있었다. 내가 좀 처지고 돌아가고 있는 중엔 그게 그리 불안하고 서럽고 절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렇게 더디 가는 동안 주변에 더 많은 초원이 형성되고 있다는 걸 그때 짐작이나 했었나.

 

직접 뵌적은 없는 분이지만 마주 앉아 이분이 조근조근 들려주시는 말씀을 귀 쫑긋하고 듣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는 느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제일 좋았던 글은 맨 앞의 글 <조각보>. 문장도 잘 다듬어져 있고 비유도 뛰어나다.

 

글만큼 이분의 사진도 좋아하는데, 아마 이번 책에서는 사진보다 글 위주로 하고 싶으셨던 듯 사진이 많이 들어가있지는 않다. 사진들은 아마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일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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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9-21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처럼 수필은 바로 그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hnine 2015-09-22 07:09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는데 쓰는 사람 입장이 된다면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글은 그 사람 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요.

2015-09-24 0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9-24 06:12   좋아요 1 | URL
어제 다 못하고 잔 일이있어서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참이랍니다. 저에게는 특별히 이른 시간도 아니고 매일 같은 일상이지요.
걱정거리가 있으시다면, 막돼먹은 영애씨에 나오는 라미란 과장 어투로 ˝넣어둬~ 넣어둬~˝ ㅋㅋ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일어나서 약 3초 동안 저도 그런 생각 했습니다.

프레이야 2015-09-2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책 소개 받았네요, 추석아침에.
나인님의 수필사랑이 느껴집니다

hnine 2015-09-28 12:47   좋아요 1 | URL
예,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수필을 좋아해요. 수필, 소설, 시의 순서로 재미를 들이지 않았나 싶네요.
어제 산소 다녀오는데 고속도로가 그야말로 장난 아니게 막히더군요 ㅠㅠ 오늘은 아주 홀가분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정원 일기 - 마음으로 그린 열두 달 꽃 살림
이귀란 지음 / 스윙밴드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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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책 한권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해본다.

지면을 채운 그림과 글 뿐이랴. 오히려 이 책의 내용이 된 식물들을 오랜 시간 동안 사랑하며 가꾼데 들인 땀과 시간과 수고가 책 한권으로 달랑 압축되는건 너무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왕 그렇다면, 되도록 그런 축적된 애정과 노력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책 한권이 만들어져 나오면 좋을 것이다.

20여년 동안 미술 선생님으로 있다가 퇴직하고도 저자는 전공을 살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도 하고 자수와 바느질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하며 꽃과 나무 가득한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이기도 하다. 어쩌면 퇴직하고서 일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가꾸는 꽃과 나무를 자세히 관찰해서 그리고 거기에 느낌글을 적었다.

열두달로 장을 나누고 그 시기에 볼 수 있는 꽃과 나무들의 모습을 담았다. 9월을 보면 루드베키아, 해국, 쑥부쟁이, 들국화, 층층이꽃이 들어가 있고, 10월도 한번 펼쳐 볼까? 여기도 역시 쑥부쟁이, 맥문동 열매, 분홍구절초, 소국, 산국, 블루베리 잎사귀, 공작초, 그리고 이 즈음 심기 시작했다는 식물의 구근 그림이 들어가 있다.

그림은 및그림이 보이는 투명 수채화. 명암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명도의 색을 쓰기보다 단촐하고 과하지 않은 종류의 색을, 아껴서 썼다. 간간이 손글씨도 들어가 있어서 정원일기라는 책의 성격과 구성이 더없이 잘 맞는다.

아쉬운 점은 딱 거기까지라는 것. 예쁜 그림과 예쁜 저자의 마음결을 함께 보고 읽고 느낄 수 있는 약 한 시간. 가볍게 스르륵 넘기며 읽고서 더 마음에 담아둘 생각거리가 남지는 않는다. 작은 구석이라도 나의 어떤 사고나 행동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별점은 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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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간 - 분석심리학자가 말하는 미래 인간의 모든 것
이나미 지음 / 시공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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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미래 인간형

 

결혼도, 취직도, 친구들과 교류도 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만 하는 남자가 점점 늘어난다. '게임을 하면 마음이 비워진다. 명상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마음을 비우려고 도 닦는 것 아니냐. 게임을 하면 마음이 비워지니 결국 그게 자기실현이고 깨달음이다' 이른바 게임교 교도들.

무감동 (Apathy) 세대, 이른바 A 세대 -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려는 경향

무감동, 타성, 무기력, 무관심에 젖어 살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사업 실패나 빚 혹은 정신 질환 때문에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집안도 좋고 학벌도 나쁘지 않은데 삶에 대한 의욕이 없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가 싫어 아무 감정 없이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가 많아질 것이다.

과격한 에코주의자들도 생겨난다. 지구를 위해서는 인류의 숫자가 훨씬 더 줄어야 하고 현재와 같은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 세계의 녹색당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환경 관련 세계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장 새로운 가족의 형태

 

자녀에게 강제로 공부시켜봐야 특별히 부모의 노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절감한 것이 2010년대 이후. 그래서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1980~1990년대에 태어난 낭만적인 세대보다는 훨씬 더 냉혹한 현실에서 성장하게 된다. 부모들이 더 이상 과거 세대들처럼 아이들에게 무한 애정을 퍼붓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가족은 자신의 의지나 취향과 상관없이 무조건 주어졌으나 21세기 중반 이후에는 자신의 기호에 따라 고를 수 있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 참선을 하고 싶은 사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 문화유적지를 사랑하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축구와 야구를 즐기는 사람, 진보적인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 등 자신의 취미에 따라 제2의 가족이 형성되어 있으니 고르기만 하면 된다.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는 양극화 현상.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유해진다. 최고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만 하면 자녀들이 성공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노후까지 걱정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이한 노인들과 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을 뿐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중년이 되어 능력 없는 부모까지 떠맡아야하는 자녀들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3장 넘쳐나는 정보와 표현, 진화하는 여론 공간

 

특정 집단에 쏠려 있던 지식의 생산과 확산이 점점 더 일반화 될 것이다. 대학 안에 갇혀 있던 지식이 일반인들에게 확산되자 대학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저자나 학자들의 무료 강의 혹은 해외 대학 강의 등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듣는 것이 대세가 된다. 대형 강의 포털이나 지식인 앱 등을 통해 많은 지식 노동자가 월급을 받고 자신의 지식을 파는 형태가 될 것이다.

어려서부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보낸 시간이 부모나 친구들과 보낸 시간보다 훨씬 많은 이른바 테크토이 세대.

편리한 기계에 길들어 지속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뇌, 즉 팝콘 브레인.

 

4장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간의 차이보다는 세대 간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 지구촌이 될 것.

 

5장 기술 및 의학의 발달과 인간 소외

 

프로톤슈퍼내니 - 일종의 진화된 로봇

아이들은 프로톤과의 애착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이제 선생님을 찾아가는 대신 프로톤에게 질문을 한다. 속상한 일이 생길 때는 쓸데없이 캐묻고 야단이나 치는 부모님 대신 판단이나 비난을 하지 않는 프로톤에게 털어넣는게 훨씬 편하고 효율적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절대로 지지 않으려는 친구들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읽어 적당히 져주기도 하면서 게임 실력을 향상시켜주는 프로톤과 노는 게 더 즐겁다. 이로 인해 젊은 사람들은 이제 사람보다는 로봇과의 접촉을 훨씬 더 선호하게 된다. 아이 키우는 것을 버거워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슈퍼내니는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불안해하며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도우미에게 맡기거나 시부모나 친정 부모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슈퍼내니에게 아이를 맡겨 키우면서 CCTV로 원격 감시를 하는 일하는 엄마가 점점 많아진다. 프로톤이나 슈퍼내니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난 아이들은 부모나 다른 사람들과 애착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로봇에 의해 양육되고 로봇과 사랑하고 로봇에게 아픈 몸을 맡기는 세대, 즉 R세대의 뇌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측두엽 부위의 위축이 보고되기 시작한다. 개인의 지성이 인터넷 공간에 모여 집단지성을 창조해내고 보조 자아인 기계의 도움으로 일종의 하이브리드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미래의 테크놀로지 시계는 어쩌면 헤르메스가 인간을 갖고 놀다 잠재우는 곳일 수 있다. 이성의 힘이 퇴보한 자리에 지능은 높으나 충동과 광기를 조절하지 못하는 기술 괴물이 들어앉는 것이다.

동물과 식물에만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해외 각지로 옮겨지면서 DNA 변환을 일으켜 인간의 몸에서 항원으로 작용해 신종 감기나 뇌수막염, 장염 등을 일으키는 것도 문제가 될 전망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저항력이 떨어진 숙주 동식물을 섭취한 인간에게서 에이즈처럼 폭발적인 번식력을 가진 새로운 질병이 속속 나타나 상당 기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신체 질병과 관련된 과제는 크게 세종류로 나뉠 것이다. ⑴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수퍼 박테리아 등 난치성 감염 질환 ⑵ 서구형 식습관과 기기 사용으로 인한 운동 부족이 가져올 젊은이들의 성인병 ⑶ 장수 시대가 되면서 노화된 몸에 오는 질환. 이중 제일 고비가 될 것은 1번.

 

6장 치유의 상업화, 융합 종교

 

(제목만으로도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가므로 부연 설명이 필요없다)

 

7장 새로운 죽음의 방식

 

죽음은 더이상 가족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

 

 

미래는 현재에서 연속. 동떨어진 시점이 아니다.

현재의 인간 사회를 돌아보면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들이다.

허무할 수도 있고 절망적일 수도 있을 내용의 이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는데, 저자의 스타일을 조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도 그녀가 이런 의도로 썼을거라는데 동감한다.

 

환자들이 정신과 의사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현재의 고통과 과거의 기억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나는 과거나 현재보다 더욱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전문가 앞에서 그동안 살아온 날들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상담 목표 중 하나다.

지금은 아프고 힘들고 외롭지만 더 나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현재를 참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를 격려해주고 건강하게 타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주저 앉지 않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이것이 이 책에서 미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펼친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염색하지 않아 반백인 머리로, 안경 너머 눈빛이 초롱하던 저자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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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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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이 불면인 내게 불면이란 단어는 오히려 새삼스럽다. 하지만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불면이라는 현상이 방해꾼이 아니라 오히려 등불이 되어 나를 인도한다니. 어디로 인도하는지는 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일일지도.

중국 시인 베이다오 (北島)의 시 한구절에서 빌려와 썼다는데 이 시는 책 첫 페이지에 나와있다.

장석주. 그가 자기를 소개했듯이 그는 문장노동가이며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어느 글, 어느 책을 읽어봐도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읽어대고 써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안 읽고 안 쓰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사람. 그가 지금까지 읽어온 그 많은 책들이 어떻게 각색되어 그의 글로 재탄생되었을지,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가진 기대감이었고, 시시할리 없다는 확신까지 미리 가지게 했다.

새벽에 일어나 검은콩 두유 한 잔을 마시고, 찐 감자 한 알을 먹는다. 이것들을 소화하면서 만들어진 열량으로 새벽마다 책을 읽고 원고를 쓴다. 소화란 무엇인가? 입으로 들어온 것을 저작과 소화효소 등으로 잘게 쪼개고 아미노산 단위로 분해한 다음 흡수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안에 내포된 다른 개체의 정보를 분해"하는 것이다. (후쿠오카 신이치, <동적평형>) '나'는 날마다 아미노산 배열이 헤쳐 모여를 하는 불가역적인 시간의 질서 속에서 무언가를 읽고 쓴다. 내 삶은 단조롭다. 나는 그 단조로움에 오래 길들어 있다. 답답해질 때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371쪽)

이 글의 제목은 다른 아닌 '두유 한 잔 감자 한 알'. 후쿠오카 신이치라면 나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서 읽는 저자 아니던가.

나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지만 그가 이 책에서 <혼자 책 읽는 시간>의 저자인 니나 상코비치가 위기에 빠진 삶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방법이라고 소개한 내용도 인상적이다. 2008년 10월 28일 그녀의 마흔 여섯 번 째 생일 날 시작하여 2009년 10월 28일까지, 날마다 책 한 권을 읽고 서평 쓰기로 채운 것. 이렇게 보낸 독서의 한 해 동안 그녀의 책 읽기는 네 아이 돌보기, 커피 타임, 학부모회 모임, 체력 단련 시간, 집안 청소, 요리 , 장보기 때위의 가사노동을 포함하는 일상의 잡다한 의무들과 함께하는 일이었다니, 이 대목에서 내 눈이 반짝.

내가 가만가만, 조용조용 좋아하는 에밀 시오랑에 대한 그의 의견에도 공감한다. 자살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말하는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 자살에 대해 그렇게 많은 글을 남겼으면서 끝내 본인은 자연사로 생을 마쳤고 자살이란 방법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이란 세상에 내던져져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삶의 방식을 찾도록 선고받은 불행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정리해놓았다.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한 낙관과 자살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만이 감히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저자 장석주의 맺음말은,

때때로 나도 동물이기를 그치고 싶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분주한 활동을 멈추고 식물의 무의식 속에 서 살고 싶다. 동물에 반해 식물은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운가. (97쪽)

식물생리학자들이 들으면 단박에 모르는 소리 말라고, 식물은 식물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법을 쓰고 있는지 아냐고 하겠지만 잠시 뒷전으로 하고.

410쪽의 "이토록 조잡한 유토피아"라는 글에서 그는 미국이 빚어낸 유토피아는 유럽인들에게는 착잡한 역설이라고 썼다.

유토피아는 물질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관념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고, 현실을 가늠하고 평가하는 당위적 표준이고, 현실에서 유통되는 제도와 규범들의 당위성을 재는 잣대다. 그 유토피아가 현실이 되면 그건 반 유토피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 미국은 과거도, 기원도, 창립의 진리도, 시간의 축적도 없이 낙원으로 급조된 나라이다. (413쪽)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사유의 방식을 '수목형'과 '리좀형'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도 새겨둘말 하다. 비록 들뢰즈·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에서 빌려 온 개념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수목형'은 나무라는 고정된 질서에 수렴되는 사유로서, 차이들을 하나의 기둥으로 환원하는 구조인 반면 '리좀형'은 뿌리줄기가 뻗어 나가는 대로 펼쳐지고 어느 지점에서나 새로운 리좀을 만들며 작은 중심들로 분산되는 구조를 말한다. 즉 펼쳐지는 사유라고 말할 수 있다.

 

두툼하지만 크기는 아담하여 가방에 들고 다니기도, 손에 쥐고 어디서나 펼쳐 읽기도 좋다.

다 읽고 덮을 때 마음은 마치 오랜만에 마음에 맞는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실컷 마음 속 얘기를 주고받고서 아쉬운 작별을 할 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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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09-1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0년대에 나온 이 분의 시집을 3권 가지고 있는데요. `문장노동가`의 글은 좀 부담스러워 요즘은 잘 읽지 않습니다만 호기심이 생기긴 합니다.
불면의 밤이 괴로울 듯한데, 엄지발가락 부딪치기나 발로 하는 가위바위보가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저는 잠을 못자면 술에 취한 듯 헛소리를 내뱉는 경향이 있어서요.^^

hnine 2015-09-13 04:34   좋아요 0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둘 보는게 아니지만 이분도 참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 같아요. 원주토지문학관에 들어가는 건 문인이라 그렇다 치고 학생들이 없는 여름 방학엔 대학 기숙사 (연대 원주 캠퍼스가 아니었을까 합니다만)에 들어가 도서관과 방을 왔다갔다 하며 책만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 책이 처음은 아닌데 시집도 읽은 적이 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불면을 이제 저는 그냥 저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요. 엄지발가락 부딪치기는 저도 들어본 적 있어서 어제 잠자리에서 한번 해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