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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ere Liars : Soon to be a major TV series on Amazon Prime! (Paperback)
Lockhart, E / Hot Key Books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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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싱클레어 가족에게 와주신걸 환영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다분히 비틀어진 의미가 숨어있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나"에 대한 소개글에 의하면 이름은 카덴스 싱클레어 이스트맨. 통상적으로 부르는 이름은 카덴스이고 성(姓)이 이스트맨인데 가운데 이름 싱클레어는 흔치 않게 외할아버지의 성에서 온 것이다. 버몬트 주의 벌링톤이라는 곳에서 세 마리 개를 데리고 엄마와 살고 있으며 아빠는 카덴스가 열 다섯 살 되던 해에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다. 좀 있으면 만 열 여덟살이 된다고 했으니 우리 나이로는 거의 스무살. 고3 혹은 대학 1학년 정도 되는 나이겠다.

카덴스의 외할아버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이 많아도 너무 많은 카덴스의 외할아버지는 명문 하버드를 졸업한 후 사업과 주식으로 돈을 엄청 벌었는데 그에게 유일한 실패라면 아들이 없다는 정도? 하지만 슬하의 딸 셋이 모두 키도 크고 아름답고 공주같은 외모를 하고 있어 주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외할아버지는 결혼 후 아내를 자기 곁에 두고 살림에 집중하며 남편을 보필하도록 했으며 나중엔 개인 소유의 섬에 세 딸을 위한 집을 지어주고 들어와 살게 한다. 세 딸이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중 카덴스와 나이가 고만고만한 사촌들인 쟈니, 마이렌, 그리고 일종의 이방인 갯. 이들 넷은 여름 방학마다 섬에 들어와 지내는 동안 스스로를 Liars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는데,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겉으로 보기에 단란해 보이는 거대한 싱클레어 가족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과 벽이 생겨나고 있음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간다. 그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고민하던 중 마침내 이들은 생각만 해도 될, 실제로 저지르진 말았어야 할 두려운 그 어떤 일을 벌이고 만다.

이야기의 화자인 카덴스가 충격으로 말미암아 부분 기억 상실에 걸렸다가 다시 찾아가는 흐름때문에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또하나 이 소설의 특징이라면 부모의 재산을 두고 커져가는 갈등과 탐욕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이는, 이 소설 내용과 비슷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액자 소설 형식으로 글 중에 여러 차례 삽입시켜 이 소설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카덴스가 예전 기억을 모두 되찾은 후 알게 된, 이들이 벌인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로선 처음 접하는 저자이고 처음 읽는 그녀의 작품인데 미국에서 꽤 인기있는 작가답게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가 진행될 뿐 아니라 진행 방식이 노련하다. 즉, 약간의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여 독자가 끝까지 궁금증을 놓지 않도록 끌고 갔고, 자칫 뻔할 수 있는 스토리가 되지 않게 하고 이 소설의 특징이라 할만한 점을 만들기 위해 동화 형식의 짧은 글을 중간중간 삽입하였다.

큰 감동이나 메시지까지 남겨준 건 아니었지만 일단 재미있게 훌떡 읽을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별 네개는 기꺼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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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박연준 지음 / 북노마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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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시끄럽고  어수선하다는 뜻이지만 꼭 시끄러운 소리를 동반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라는 말이 있듯이.

저자의 이 산문집이 읽고 싶어서 그녀의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도 함께 구입했고, 시집을 먼저 읽었더랬다. 그리고 은유와 상징이 지나친 느낌이라고 읽은 소감을 올렸었고 그녀의 산문집은 시집보다 더 좋을거라 기대한다고 썼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중 두개 방송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들은 바 있다. 그중 하나는 <문장의 소리>. 저자가 초대손님으로 나와서 작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고, 또하나는 <T의 서재> 라고, 주로 잘 때 틀어놓고 자는, 책 읽어주는 방송인데 여기서 이 책의 일부를 읽어주어 들은 적 있다.

시인이 쓴 산문집을 이전에도 읽어보았으나 이 책 만큼 시의 느낌이 폴폴 나는 산문집도 없었지 않았나 싶다.

책 속에서 저자는 그녀가 쓴 시를 인용하기도 하고, 다른 시인의 시를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녀가 인용한 송찬호 시인의 <산토끼 똥>을 읽은 날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자꾸 이 시 생각이 났다.

 

 

토끼가 똥을

누고 간 후에

 

 

혼자 남은 산토끼 똥은

그 까만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토끼는

어느 산을 넘고 있을까?

 

 

- 송찬호 <산토끼 똥> 전문 -

 

 

시인들이란 참.

산토끼도 아니고 산토끼 똥에도 감정 이입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홀로 남겨진 똥에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이런 감성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이 소란스러울 밖에. 그 소란스러움이 난 너무 좋은거지.

원래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공모전에 소설은 떨어지고 시가 당선되어 시로 등단하게 되었노라고 얘기하더라만 시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소설보다 결코 차선책으로 보이지 않을만하다.

따끈따끈한 두부 두 모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순간! 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전속력으로 시를 쓰다, 식은 두부를 먹으며 천천히 시를 고치고 싶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사건은 두부를 만들기로 마음먹기 전에 일어난다. 그 '전'에 뭔가 중요한 일들이 벌어졌다.

 

끝내 시 속에서, 인생을 탕진하고야 말겠다. (68쪽)

 

인생을 탕진하는게 아니라 인생을 완성해가는게 아닐지.

 

이제 서른을 넘어간 나이의 시인은 지금까지의 그녀의 생은 폭죽처럼 터지는 슬픔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어머니 얘기가 잠깐, 아버지는 그녀의 글 속에 자주 등장한다. 시집에서도 아버지가 여러번 언급되고 있는데 오랜 투병 끝에 얼마전에 세상을 뜬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그녀의 슬픔의 한 뿌리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한 시절 사랑한 것들과 그로 인해 품었던 슬픔들이 남은 내 삶의 토대를 이룰 것임을 알고 있다. 슬픔을 지나온 힘으로 앞으로 올 새로운 슬픔까지 긍정할 수 있음을, 세상은 슬픔의 힘으로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이제 나는, 겨우, 믿는다. (185쪽)

슬픔이든 아픔이든,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지나온 자, 온몸으로 겪어낸 자는 이렇게 할 말이 있는 법. 새로 올 슬픔에 움츠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법.

 

아버지 다음으로 그녀가 자주 쓰는 단어로 '봄'이 아닐까 한다. 봄밤, 봄비, 봄의 장송곡 등.

봄비라는 그녀의 시에는 여릿여릿한 봄의 느낌이 살아있었다.

 

 

폭설에게서 겨우 풀려난 봄이

기다란 모가지를 가누며

티스푼으로 조금씩

물 떠먹는 소리

 

 

투병에서 막 벗어난 막내가

파리한 얼굴로 하품을 할 때

창가 고드름 똑, 똑

맑게 녹는 소리

 

 

어쩌면

두 눈을 잃은 삼손이

울고불고 애쓰다, 지친 밤

바닥에 마음 눕히는 소리

 

 

봄비여

날 저무는 때

네 투명한 선을 그러모아

마음에 비질하고 싶다

 

 

- 박연준 <봄비> 전문 -

 

 

사는 동안 힘든 시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느껴질때는 이 시기를 넘기고 나면 나의 인생 컨텐츠는 더욱 풍부해져 있을거라고, 스스로 다독거리던 때가 있었다. 슬픔을 지나왔으니 내게 다신 슬픔의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은 삶의 토대를 이루고, 그 힘으로 새로운 슬픔을 긍정할 수 있다고 한 그녀의 몇줄 문장이 힘을 준다. 슬픔의 힘으로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그 말이.

 

제목, 저자, 출판사 외에,다른 글자도 장식도 없이 깨끗한 하얀 표지는 전혀 소란스럽지 않았다.

이제 나는 다시 그녀의 시집으로 돌아가 찬찬히 다시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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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1-15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 산문집을 봐야겠어요.

hnine 2015-11-15 20:2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시인이어서 그럴까요? 아리고 여린 글들이 전 참 맘에 들었답니다.

하늘바람 2015-11-15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맘도 소란스러웠는데 오히려 차분해지네요.

hnine 2015-11-16 05:15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고보니 마음 소란함이 어쩌면 작가들에게는 필요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해도 될것 같아요.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더 발달해서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고, 마음 소란함을 창작이라는 과정으로 연결시키려 하는 사람들이고요.
 
자기 결정 -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일상인문학 5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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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살 지나면 너는 네 맘대로 결정하고 살아. 하지만 그 전엔 엄마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아마 열여덟이 되어도 엄마가 혹시 계속 이래러 저래라 할지도 몰라. 엄마이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가 혹시 그러더라도 그때는 네가 꼭 듣지 않아도 돼. 네가 좋은대로 해."

바로 이 hnine이 아들에게, 아이가 열 다섯살인 지금보다 훨씬 전 부터 해오고 있는 말이다.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하지 못하는 건 무엇때문일까.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한다는 것은 곧 독립성을 의미한다.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의존하지 않는 온전한 나의 삶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내면을 집중하여 알아보고자  분석하는 데는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반면, 외부의 기준이나 압력은 너무나 쉽게 우리 피부로 와닿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과 노력 없이도 쉽게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 진학과 관련해서 어제 아이 학교에서 설명회가 있어 참석했었는데 거기서 나온 말 중 하나는 "Dare to be different!" 였다. 남과 무조건 똑같이 가려하지 말고, 똑같은 결정을 내리려 하지 말고, 남과 같지 않을지 모르는 자기 성격이나 성향을 잘 생각하여 어떤 선택이 가장 적합할까 생각하여 결정하라는 말이다. 남과 다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 책에서 저자는 특히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구체화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함은, 말해진 내용을 형성한다. (21)

우리의 감정과 바람은, 그 정체를 밝히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전보다 확실히 더 명확하고 뚜렷한 윤곽선을 띄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내적 구조까지 변경하는 자기 표현 과정을 통해 개인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22)

무의식과 의식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언어로 표현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있다. 언어적 표현을 통해 자기 결정의 적용 범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기억이나 무의식은 이야기될 때 이해 가능한 것이 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그것들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했는데, 26쪽 이쯤에서 나는 책에 일일이 포스트잇 붙이기를 그만 두고 아예 연필로 밑줄을 좍좍 그으며 읽기로 했다.

 

독서의 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 역시 독서보다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내적 검열의 경계를 느슨히 하고 평소라면 무언의 어둠 속에서부터 경험을 물들이던 것을 언어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소설 한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29)

 

자기 결정에 방해 요인으로 타인의 시선, 타인으로 받는 인정의 여부가 있다. 타인이 휘두르는 이러한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치지 않으려고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인공적으로 쌓은 내면의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둘 수 없습니다. 대신,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 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6)

 

나의 밑줄은 3장으로 구성된 이 책 내용중 주로 1장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에 집중되었는데, 2장은 <자기 인식은 왜 중요한가?>란 제목을 달고 있긴 하나 역시 자기 인식의 과정으로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뜻입니다. (55)

표현의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 있으며 반드시 말이나 행위가 아니어도 됩니다. (56)

 

3장 <문화적 정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신체가 가진 조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문화라고 하는 이 다의미적이면서 의미를 촉발하는 활동들의 복합적인 구조로 인해 우리의 삶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한 사람의 문화적 정체성이란 어떤 특정 시대에 이러한 구조, 짜임 내에 위치한 장소를 일컫는데, 이러한 문화의 영향에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으로 자신의 삶과 결정을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식을 통해 비판적이고 의식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교양"이라고 불렀다.

또한 우리를 문화 존재로 만드는 기본적인 능력은 언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말한다.

모든 것의 열쇠는 언어다. (74)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철학자인 그가 왜 <리스본 행 야간 열차> 같은 소설을 썼는지 짐작하게 한다. 허구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그것이 자기 결정, 자기 인식 과정에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 책에서도 얘기한바 있다. 소설을 쓰기 전과 후의 나는 같지 않다면서.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 역시 같지 않다고 한다면 좀 과장이겠지만 좋은 책의 기준으로 삼는 것 중 하나가 그것 아니던가. 나의 내면을 변화시키는가 하는것.

자기 결정이 행복하고 존엄한 삶에 중요한 이유, 또 그것에 필수적인 언어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비교적 어렵지 않은 언어로 설득력있게 쓴 책이었다. 별 다섯개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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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11-08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진학(특히 특목고)할 때 쓰는 자소서 같은 데나 학생생활기록부 독서란에 내용을 쓸 때는, 자신이 어떤 책을 읽은 후 어떻게 변화되었지를 중점적으로 쓰라는 원칙 비슷한 게 있는데요. 분명 책을 읽으면 뭔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걸 꼭 집어서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아요. 요즘 아이들은 여러가지로 정신의 성장도까지 검증을 받아야 해요. hnine님의 리뷰를 읽다보니 괜히 불끈해져서 글을 남기네요.^^

hnine 2015-11-08 20:40   좋아요 1 | URL
뭔가 달라지더라도 그 당시엔 그걸 모르니까요. nama님 말씀 듣고 한탄하다 생각하니, 세상에, 저도 바로 며칠 전에 제 아이보고 그랬네요. 그렇게 이것 저것 조금씩 하다말고 하다가는 나중에 자기 소개서에 한줄도 쓸거리가 없을거라고요 ㅠㅠ
제게는 난해했던 소설 <리스본행 야간 열차>보다 저는 이 책이 더 명확하게 머리 속에 들어와서 좋았어요. 저 같이 두리뭉실, 말로 잘 표현 못하는지, 못하니까 하기 꺼려하는지, 아무튼 그런 사람에게는 콕콕 와닿는 내용이었거든요.
 
A Tree Grows in Brooklyn (Paperback) -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원서
베티 스미쓰 지음 / 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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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서 1972년까지 살았던 미국 작가 Betty Smith 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다.

독일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가난하게 자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한 이 소설의 주인공 12살 소녀 Francie. 가수겸 식당에서 웨이터 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주정꾼 그러나 자식들에게 다정한 아버지, 건물 바닥 청소부 일을 하는 엄마, 두살 아래 남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브루클린의 다세대 주택 같은 곳에서 풍족하지 않게 살아가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Francie는 학교에 안가고 일하러 안가도 되는 일요일이면 동네 도서관에 가는 낙이 있는데, 알파벳 순으로 도서관 책을 깡그리 다 읽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야무진 소녀이다.

일자 무식 부모와 가난이라는 상황이 꼭 그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끝까지 가족끼리 끈끈한 연대가 깨지지 않는다.

딸만 넷인 엄마쪽 자매들이기에 이모들의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다. 세명의 이모가 성격도 각기 달라서 왈가닥 이모가 있는가 하면 수녀의 길로 들어선 이모, 섬세하고 여성적인 이모들이 모두 풍족하지 않게 살고 있지만 형제들이 어려울때마다 서로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연히 동네에서 연극을 보고난후 Francie는 극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기도 하는데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지적을 심하게 받은 후 글쓰기를 잠시 포기하기도 하지만 이 작가가 실제로 나중에 많은 드라마 대본을 썼다는 것을 보면 어릴 때붙터 글쓰기에 대한 꿈을 키워왔음을 알 수 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죽고, 그때 엄마 뱃속엔 세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 없이 힘들게 아기를 낳고 청소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엄마는 무척 힘들어 하고 Francie와 남동생 Neeley도 학교가 끝나면 동네 가게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푼돈이나마 보태야 하는 생활이라 Grade School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Francie는 바로 High School로 진학을 하지 못하고 취직을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현실에 굴복하지도,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지도 않으며 자기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며 더 큰 불행이 오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평범한 인물들,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 거의 500쪽 분량을 읽으면서 한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의 경우 자칫 내용이 늘어지고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은데,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나중에 책 뒤의 해설을 보고 알았을 정도로 티가 나지 않는다.

책의 후반부 390쪽쯤에 나무 얘기가 나온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일 나무를 파는 시장을 지나던 Francie와 Neeley는,  나무가 사고 싶었지만 큰 나무는 돈이 없어 못사고 작은 가지를 하나 사온다. 그것을 잘 가꾸기만 하면 크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목의 나무는 희망이고 꿈이다. 브루클린은 뉴욕의 다섯개 자치구 중 하나로서 뉴욕 중심가에 비해 서민들이 모여사는 주거지역. 즉, Francie 와 가족의 배경, 환경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막장 내용 없이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엮어 재미있고 일관성있게, 주제를 분명히 전달해주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이런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싫지 않은.

 

 

 

 

 

"To have a child, to plant a tree, to write a book - That's a full life."

 

(저자인 Betty Smith가 자서전에 인용한 Emile Zola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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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혼 2015-11-0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친구가 사주어 읽었던 책입니다. 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 읽고싶어지네요.

hnine 2015-11-08 09:58   좋아요 0 | URL
시혼님께서 안읽으셨을리가 없지요 ^^
처음엔 Francie 친가 외가 쪽 인물들이 여럿 나오는 바람에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워 메모를 해가며 읽기 시작했어요.
무리 없는 내용이고 적당히 희망적, 고무적인 내용이라 청소년들에게 읽히기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혼님 말씀 들으니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네요.

숲노래 2015-11-0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같은 마음으로 집안에 따스한 기운을 베푸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하루하루 기쁘게 누린 삶이기에
이러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문학으로 태어날 수 있구나 싶어요

hnine 2015-11-08 09:57   좋아요 0 | URL
예, 숲노래님. 극단적인 내용 없이도 따스한 기운을 슬며시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라고는 다녀본 적 없는 엄마이지만 아이들에게 사랑과 웃음을 잃지 않았고요.

nama 2015-11-08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재밌겠군요. 읽을 책도 많은데...보관함에 넣습니다. 마지막 에밀 졸라의 말이 가슴에 쏙 박히네요.

hnine 2015-11-08 20:41   좋아요 0 | URL
무리없이 읽을만한, 괜찮은 책이었어요. 저도 사실 이 책 구입한것 오래전인데 앞에 조금 읽고 밀춰 놓았다가 이번에 다시 집어들었는데 일단 다시 읽기 시작하니 술술 읽히더라고요. 책 제목도 참 고전적이지요? 브루클린에는 나무가 자란다~ ^^

몬스터 2015-11-0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sed on Emile , my life is empty lol ( 농담입니다. ) 잘 지내고 계시죠? 읽고 공부하는 삶을 사시는 듯 해서 참 좋아요. 요즘은 그냥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어 , 이도 저도 손에 잘 잡히네요. ㅎㅎ

hnine 2015-11-08 20:46   좋아요 0 | URL
워우 워우~ My life is empty라니, 득도의 경지에 오르셨습니까? 텅빈 충만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 에밀 졸라의 인생에 있어서 그랬다는 얘기이고 monster님에게는 또 다른 것들이 있겠지요. 제게도 그럴거고요.
공부하는 삶 그만 하고 전 매일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그 재미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 다른데서 찾더군요. 저는 몬스터님과 반대로 푸욱~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으로 매일 사는데...^^
 
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 - 황경택의 자연관찰 드로잉
황경택 글.그림 / 가지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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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

제목을 보니 <오늘> 이 아니라 <오늘은> 이라고 했다. 저자에게 이 일은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자주 해오는 일상이라는 뜻이다.

 

 

 

 

 

 

 

 

 

그리기는 곧 관찰. 잘 그리려면, 아니 제대로 그리려면 우선 제대로 관찰을 해야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사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이 책이 단순히 꽃과 잎, 열매, 씨앗 등을 잘 그려낸 그림책이 아니라 과학책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딸나무 열매를 나도 본 적 있지만, 산딸나무 열매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클로즈업 하여 사진 찍는데 까지가 내가 한 전부. 그에 비해 저자의 관찰 정도를 보라. 5-7각형들의 조합이고 자세히 보면 6각형 조각이 제일 많다고까지 써있다.

저자의 호기심은 이렇게 산딸나무 열매의 외형을 관찰하고 그려놓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산딸나무 열매를 까서 그 속의 씨앗을 꺼내어 관찰. 갯수를 세고 그림을 그리고 씨앗의 형태로 보아 씨앗이 여물어 가는 과정중 어느 단계쯤 있는지 추측도 해보았다.

식물학자 Linne의 노트도 그렇고 예전의 많은 과학자들의 노트가 이렇게 드로잉으로 꽉 차 있지 않던가.

 

이것은 호두나무의 열매와 씨앗.

우리가 먹는 호두는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아래 그림 옆에 조그맣게 씨앗의 방향을 그려놓은 것을 보면서 웃음도 나오고 감탄도 했다. 누가 시켜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저 궁금했던 것이다.

 

예전에 미국에서 우리 나라 밤과 똑같이 생긴 열매가 떨어져있는 것을 보았다.

"밤이다!"

한국에서만 보던 밤을 발견하고 반가운 나머지 남편과 나는 이건 분명히 밤이라고 믿고 여기 사람들은 이거 어떻게 먹는지 모를거라며 주워다가 집에 와서 밤 삶듯이 보글보글 삶았다. 삶은 그 열매를 입에 넣자 마자 그 떫디 떫은 맛에 퇴퇴 다 뱉어버린 경험이 있다. 생긴건 밤이랑 똑같은 그 열매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칠엽수를 '말밤나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이 열매에 있다.

말이 좋아한다고도 하며, 말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이 열매에 들어있는 타닌 성분이 치료제로 쓰인다고도 한다.

익으면 정말 밤처럼 탐스럽게 생겨서 사람들이 밤인 줄 알고 먹었다가 탈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84쪽)

 

이 책에 나온 설명이다. 칠엽수였나? 그때 그 열매가 말이다. 그림을 보니 정말 밤이랑 똑같이 생겼다.

 

저자가 자신의 인터넷 아이디로 쓸만큼 좋아하는 나무라는 개암나무. 개암이라는 단어를 어릴 때 동화책에서 처음 접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래서 반가왔다. 깨무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도깨비까지 놀라서 도망을 갔다는 그 동화. 그 개암이 바로 저자가 알고 있는 '깨금나무' 열매라는 것을 서른 넘어서야 알고 충격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더 놀란 일은 이 개암나무 열매가 바로 향으로 유명한 헤이즐넛 커피의 그 '헤이즐넛'이라는 사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덧 명상에 잠기며 그 대상과 만나게 된다. 그러면 자연물들이 왜그런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고,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연이다. 자연의 일부이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자연을 그리면서 가까워지고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그리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서 자연을 보고 그려라.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339쪽)

 

그의 노트들.

 

자연과찰 드로잉에 관한 몇가지 요령을 책 뒷부분에 부록처럼 실었다.

 

 

채색없이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선 명암을 넣는데, 그 명암 그리기에 대한 요령이다.

 

정물화는 그림자가 있어야 완성되기에 자연물을 그리면서 그림자를 그려넣는 것도 잊지 말라고 한다. 그림을 그린 후에는 꼭 메모를 하라는 당부도 덧붙였는데 그래야 비로소 관찰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었듯이.

 

이 책에서 제일 핵심적인 구절로 다음을 꼽겠다. 평소 내 생각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림은 곧 관찰이다.

눈으로만 보고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사실들을 그림을 그리면서 낱낱이 알게 된다.

그림은 내 머리와 가슴을 통하지 않고는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298쪽)

 

처음엔 신기해서 책장이 막 넘어가다가 책 중간 쯤 이르러 비슷비슷한 열매, 씨앗 그림이 계속 되니까 자칫 지루해지려던 참이었다. 그러다 자세한 관찰의 수준에 감탄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흥미가 붙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에는 처음 보다 더 자연관찰과 드로잉에 관심 정도가 커져있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매력적인 인간형에 끌리기보다 겉으로 평범해보이는 자연쪽으로 마음이 기울어가는 걸 느낀다.

그러니 이런 책들이 더욱 마음에 들어올 수 밖에.

 

 

* 315쪽 그림 설명중

"잘라보니 자방이 만들어져 있고 씨앗이 생기려고 한다"라는 문장

☞ (내 의견) 자방은 원래부터 식물의 생식기관으로 존재하고 있던 것이므로,

"자방이 만들어져있고" 라고 하기 보다는 "자방이 더욱 발달하여 두터워져있고" 라고 해야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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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11-0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저도 요즘 식물 세밀화에 대한 책을 짬짬이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려보고는 싶은데 핑계가 앞서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어요.

hnine 2015-11-01 19:29   좋아요 0 | URL
길 가다 떨어져있는 나뭇잎이라도 주워서 일단 집으로 들고 오래요. 책상 위에 놓고 그리라는군요.
봄 가을로 녹색연합에서 드로잉 수업을 하신다는데 기회가 되면 가봐도 좋을 것 같아요.

상미 2015-11-0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 흥미롭다~~

hnine 2015-11-03 12:27   좋아요 0 | URL
식물이나 드로잉에 평소에 관심이 있는 사람한테는 눈이 번쩍 뜨일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