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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 카미노 데 산티아고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순례자의 길을 걷다
신석교.최미선 지음 / 넥서스BOOKS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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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선, 신석교. 저자 이름을 보고 골랐다. 도보여행가로 많이 알려져있는 황안나님의 아들과 며느리.

글은 주로 최미선님이 쓰고 사진기자 출신 신석교님이 사진을 담당했을 것이다.

산티아고로의 800km, 30일 여행에 이 두사람 외에 한사람이 더 동행했으니 바로 황안나님이다. 하지만 황안나님 얘기는 아주 가끔만 나온다.

2007년 9월 11일 프랑스 남부 생 장 피드포르 출발을 1일로 해서 29일째인 2007년 10월 9일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할때까지, 그리고 거기서 피니스테레까지 버스를 타고 마침표를 찍고 오기까지의 일정을 일기 형식으로 잘 정리하였다.

저자가 기자 출신이기때문일까. 필요한 정보가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감상도 적당히 들어가있다. 감상과 정보가 적당한 균형을 이룬 여행문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산티아고"가 성서속의 인물 야고보를 가리키는 명칭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라는 뜻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것을.

이들이 산티아고를 걸은 것이 2007년이고 이 책이 나온 것이 2009년. 내가 산티아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처음 산티아고에 관한 책을 읽을 땐 그저 한줄 한줄 읽어나가는 것으로도 재미있어 그렇게 한권을 읽어치웠는데 그렇게 몇권을 이미 섭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책의 저자가 워낙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서 썼기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엔 마치 내가 1일째, 2일째, 헤아려가며 마치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듯 실감할 수 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

이 길은 특히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함께 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 남자가, 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체력은 물론 대인 관계,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이나 배려, 인내심, 주어진 상황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는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어 종합적인 인간성을 엿볼 수 있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82쪽)

함께 살아보고 결혼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렇게 함께 오랜 여정을 걸어보면 결혼 상대자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고 동시에 상대방에게 나를 제대로 알릴 수 있으리라는 말에 백배 공감.

나는 이미 결혼을 했으니 오히려 혼자 걸어보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작은 결정은 우유부단 하면서 큰 결정은 오히려 옆에서 보면 충동적이랄 만큼 질러버리는 나란 사람. 어느 날 어떤 계기로 비행기 표를 예매하게 되는 건 아닐지.

예상하겠지만 이 책엔 멋진 사진들이 많이 들어가있다. 그중 가장 보고 싶게 하는 사진이 있는데, 243쪽, 불빛 반짝이는 리에고 데 암브로스라는 마을을 산자락에서 내려보고 찍은 사진이다.

 

 

한 장 더 넘겨서 있는 어마어마한 나무도 보고 싶다. 연초록으로 매달린 것은 꽃인지 열매인지.

 

 

 

한 곳을 향해 오랜 시간을 걷다 보면 잊고 있던 자신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게 되어 퍽이나 심각하고 심오한 여정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저자는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따뜻함을 더 절감할 수 있고 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여행의 끝은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고, 정이다. (321쪽)

 

그렇구나! 여행의 끝이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결론도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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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4-1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다 어릴땐 걷는 재미를 몰랐는데 , 머리가 복잡할때 오래 걷고 나면 저절로 머리가 비워지는 경험을 몇 번 한 후로는 부쩍 자주 걸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도 사라지고 , 기분이 좋아지고 좋더라구요.

사람은 원래 움직여야 하나 보다 생각했더랬습니다.

저도 떠나는 것은 대체로 그냥 질러버려요. ㅎㅎ 그리고 대부분 다녀와서 만족하구요. ㅎㅎ



hnine 2016-04-17 06:53   좋아요 0 | URL
저도 머리 복잡할때 걷거나 끄적거리는 것이 저의 유일하게 할줄 아는 방법이랍니다. 참 신기하게 처음보다 마음이 가라앉더라고요.
암스테르담 사진과 여행글,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
 
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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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 시작되나요 미카엘?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는데 지쳐버렸어요. (225쪽)

 

결혼 8년차 부부 미카엘과 한나.

이 소설은 부인인 한나가 화자가 되어 남편 미카엘과 처음 만나 결혼하고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위의 인용문은 한나가 미카엘에게 하는 말중 한줄에 지나지 않지만 이 문장에서 한나의 결혼 생활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기다림 그리고 지침.

사랑을 믿어 결혼했고 미카엘은 성실한 남편, 가장, 아빠였음에도 한나는 과연 무엇을 저렇게 기다리며 지쳐가는 것일까.

한나가 하는 말에 미카엘이 대답을 하면 한나가 잘 하는 말이 있다. "진부한 표현"이라는 것.

어쩌면 진부한 것은 미카엘의 대답이 아니라 한나의 삶일 것이다. 외부의 무엇인가, 또는 누구인가 그녀의 진부함을 잊게 해주길 기다리는 한나의 삶. 그녀의 그런 메시지가 미카엘에게 도달하고 미카엘을 움직일거라고 기대하는 것의 부질없음을 빨리 깨달을 수록 그녀는 그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미카엘은 결혼을 하고난 후에도 원래 자기가 하고자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가는데 반해 한나는 문학을 하고 싶어하던 꿈을 접는다. 왜일까. 왜 결혼과 함께 여자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꿈을 계속 진행시키기보다는 꿈을 포기하거나 전환시키게 될까.

한나 개인에게서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답답하고 고지식해보이는 미카엘이 파출부 여자아이를 보고 달라지는 것을 한나는 눈치챈다.

그 아이는 만족스러웠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고 똑똑하지 않고. (270쪽)

똑똑하지 않아 만족을 주는 여자.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는 우리 나라의 고은 시인처럼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매년 지목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이 소설을 쓴 1968년 그의 나이는 겨우 29세였다는 것. 결혼도 안한 29세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결혼한 여자의 심리를 잘 알수 있단 말인가.

 

오누이 사이, 어머니와 아들, 언덕과 숲, 돌과 물, 호수와 배, 움직임과 그림자, 소나무와 바람.

이상은 기다리다 지친 한나가 그녀의 결혼 생활에 어떤 결단을 내리며 미카엘에게 그들의 관계를 그려보라며 드는 예시이다.

어떤 결단이든 내렸다면 그러지 않고 계속 기다리기만 하며 사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녀 '스스로' 내린 결단이니까. 결단은 새로운 출발이고 다시 잘해보겠다는 의지이니까.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여행은 결코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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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and Alice (Paperback)
Logan, John / Oberon Books Ltd.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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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의 그 '피터'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 '앨리스'이다.

80대 노인이 된 앨리스, 그리고 30대의 피터가 런던의 Bumpus서점 골방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연극 대본으로 쓰여졌고 실제 2013년 런던 노엘 카워드 극장에서 Michael Grandage 극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수년전,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델이된 사람 Alice Liddell Hargreaves의 전기 <The Real Alice -앤 클락이 썼음>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게 되었다:

"1932년 6월 26일 Alice는 런던 Bumpus 서점에서 루이스 캐롤 전시회를 열었다. 거기엔 Alice 말고도 피터팬의 모델이 된  Peter Davies도 와있었다."

그들이 서로 어떤 얘기를 나누었을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책 첫페이지에서 저자 John Logan의 이 메모를 읽어보면 그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롤과 피터팬의 저자 제임스 배리에게 각각 작품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각각 어떻게 자기 작품속의 모델로 위 두 사람을 택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John Logan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이 책 속에서 어른이 된 앨리스와 피터가 나누는 이야기는 그리 동화스럽지 않다.

두 작가가 자신들의 의지대로, 자신들이 꿈꾸는 대로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갇혀 그들은 정작 그들의 꿈을 잊고 어른이 되었고 한동안 그들 인생의 중심에는 작가들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앨리스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지만 둘을 전쟁에서 잃었고 피터의 아버지는 가난때문에 피터를 비롯한 다섯 형제들을 작가에게 넘기고서 암으로 죽었고 그 뒤를 따라 세달뒤 피터의 엄마 역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피터의 형제중 마이클은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들의 부모 역할을 담당한 작가에 의해 꿈을 억압당하자 친구와 함께 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택했고 그것은 피터에게 큰 아픔과 좌절을 남겼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너는 언제 어른이 되었다는걸 처음 알았어?

삶이 무언지 알게 되었을때 아닐까?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을때.

어른이 되면 결코 집에 돌아와 자신들의 삶을 살지 않아.

예전만큼 웃지도 않아 즐거워하지도 않아.

늘 시계를 쳐다보지.

 

어른이 된 두 주인공이 나누는 슬픔과 탄식의 대화를 따라 가다 보면 읽는 사람 역시 그들의 대화에 마음 속으로 동참하게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마음이 먹먹해지려는 순간 깨닫는다.

'아, 이것 역시 John Logan이라는 어른이 지어낸 하나의 이야기이구나!'

앨리스와 피터는 여전히 어른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추억을 위해, 잃어버린 꿈을 위해.

 

책 표지에 나와있듯이 2013년 공연에서 주디 덴치가 앨리스 역을, 벤 위쇼가 피터역을 맡았다.

꿈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아이들의 꿈을 재단하고 조종하는 어른들에 대한 메시지일 수도 있고, 상상과 너무나 다른 현실 세계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John Logan 이 아닌 다른 작가가 쓴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겠지? 상상의 세계는 끝이 없다.

피터와 앨리스가 아닌, 동화속 다른 주인공들도 이렇게 저렇게 짝지워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어떨지. 내가 작가라면 한번쯤 시도해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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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3-3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이 들수록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우리는 끝까지 어른이 되지 못하고 다만 어른인 척 어른 노릇하며 살다가 죽는 게 아닐까 해요.
늙으면 아이 된다, 라는 말이 있듯이요.

hnine 2016-03-31 19:3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참 서글픈 내용이어요. 예전에 읽은 Tuck Everlasting (트리갭의 샘물)도 생각나더군요.
이미 돌아가지 못할 다리를 건너왔으니 서글퍼도 할 수 없구나 생각하니 더욱 서글퍼졌어요 ㅠㅠ
 
멜로디 - 사랑의 연대기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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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66세된 일본인.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였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공부하였다. 일본어와 함께 자신은 두 언어의 가운데 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프랑스어를 사랑하여 현재까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강의하면서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다. 프랑스어로 책을 발표하기도 하였고 프랑스 학술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책 <멜로디>는 12년을 그와 함께 한 개 '멜로디'를 2009년에 잃은 후 여전히 멜로디를 생각하며 살고 있는 그가 2013년에 발표한 책이다.

멜로디는 골든 리트리버종으로, 태어난지 두달 되었을때 평소 개를 키우고 싶어했던 저자의 딸을 위해 지인의 집에서 데려와 한 식구가 되었다. 골든 리트리버는 워낙 영리한 개로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저자가 느끼기에 멜로디는 주인의 감정과 상태를 봐가며 행동하는게 보일 정도로 영특했다. 또한 자신의 기분을 표시할 줄도 알았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바로 적응하지 않고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곧 자기가 있던 곳, 보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을 멜로디라고 지은 것은 저자가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영하는데, 개가 저자의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화음과 리듬으로 가득한 음악의 집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음악과 조화로운 이름으로서 멜로디라고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개 이름은 '첼로'일수도 있었고 '비올라'일수도 있었고 '소나타'일수도 있던 셈이다.

매일 산책을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옆에서 재우고, 이렇게 12년을 살았으니 식구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동안 얼마나 정이 깊어졌을지 짐작이 간다. 집을 비우고 있는 동안은 그 무엇보다도 혼자가 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개가 가장 걱정이 되는 법이고 개도 주인의 기분을 살피지만 살다보면 어느 새 나도 개의 기분과 상태를 살피고 있다는 것은 아마 개와 함께 지내본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였는지라 개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이 남다르긴 한데 그러다보니 어떤 문장은 한번 읽고 다시 한번 읽어야 뜻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개에게 산책은 생명과 직결되는 활동이다. 그것은 건강한 삶의 조건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육체적 에너지의 발산이자 연습이다. ...그러나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일은 사회생활을 통제하는 시민정신이 우선하는 인간의 세계 속에 개를 들여놓은 일이자 인간의 시선, 가끔 무자비한 인간의 심판에 노출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110쪽)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지 금방 와닿지 않아서 다시 읽었더니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산책하는 동안 개에게 일어나는 일을 저자가 개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주인이 "손!"하면 앞발을 내밀어야 먹을 것을 주는 행동. 내가 봐도 이건 개를 위해, 개에게 필요해서 시키는 훈련이라기 보다 보는 사람의 만족과 재미를 위해 시키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하는 쪽인데, 이 책의 저자도 이런 '훈련'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위에 썼다시피 '시민정신이 우선하는 인간의 세계 속에 개를 들여놓기 위해', '가끔 무자비한 인간의 심판에 노출시키는' 순간을 위해 최소한의 훈련은 필요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고. 가령 주인 옆에서 걷게 하다가 신호등이 나오면 초록색 불이 들어올때까지 멈춰서 기다릴 줄 안다고 한다. 목줄을 묶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우리 나라에선 많은 주거 단지에서 항상 목줄을 하고 산책시키도록 하고 있다) 멜로디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후각이라고 한다. 후각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면서 주인으로부터 멀어져도 되는 범위를 결정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물론 모든 개가 그렇지는 않다.

저자도 말했지만 개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이고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기다림"이 아닐까 한다. 주인이 이사하거나 세상을 떠난 후에도 몇 년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개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책 속의 멜로디도 저자가 그릇에 먹이를 담아준 후 깜빡 잊고 먹으라는 말을 안하고 외출했다 들어왔더니 그 앞에서 꼼짝 않은채 먹이를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이 그러하지만 이 책에서도 가장 마음 아픈 대목은 멜로디가 생을 마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멜로디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저자는 여전히 멜로디를 바로 옆에서 느끼며 살고 있다는 대목.

생을 다하는 순간 이 세상에서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그가 남긴 추억은 같이 했던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계속 되는 것 같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위안이 될, 위안 삼고 싶은 작은 선물이라고 해두자.

프랑스 말과 문학을 사랑하여 자신은 일본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닌 경계인이라고 자평했다는 저자. 그는 가족의 의미에 있어서도 사람과 개의 경계 긋기를 고사했던 것 같다.

 

개가 보여주는 비인간적 충실성.

여기서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없다는 뜻이다.

 

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개를 키우지 않던 사람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감정이 풍부한 글이라기 보다 담담하고 간결한 에세이의 특성을 보여주는 글이기 때문에, 평소에 개에 관심이 있거나 키우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내용에 쉽게 공감을 하겠으나 보통의 독자라면 말끔한 에세이를 읽는다는 느낌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객관적으로 이 저자의 글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학교에서 필리핀으로 봉사 활동을 떠나는 아들.

새벽에 집을 나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우리 집 볼더 (개 이름)를 품에 꼭 껴안은 것이었다.

비록 엄마인 나에게는 무뚝뚝하게 "갔다올께요"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괜찮다. 불만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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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헤치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8
아이리스 머독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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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을 읽어보니 그야말로 영국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왔다. 아일랜드 태생이지만 일찌기 부모와 함께 런던으로 이주, 기숙학교를 다녔다. 기숙 학교 즉 보딩 스쿨이라고 하면 학교 이름을 굳이 묻지 않아도 영국에선 대부분의 명문 사립 학교가 이 보딩스쿨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떤 환경,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옥스브리지를 오가며 철학을 공부하여 옥스퍼드 세인트 앤즈 칼리지에서 펠로우 직을 맡았고 영어로 된 최초의 사르트르 연구서를 출간하였으며 남편 역시 옥스퍼드 교수였다. 철학 저술외에도 많은 소설을 썼는데 이 책 <그물을 헤치고>는 그중 첫 번째 소설, 그리고 내가 읽은 저자의 첫 번째 소설이다.

영화 <스틸 앨리스>가 치매를 내용으로 하고 있고 줄리언 무어가 주연으로 나왔다는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아이리스 머독 이야기라는 것은 이 책을 다 읽고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을 앓았고 5년 투병후 세상을 떠났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남편이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고 주디 덴치가 머독 역으로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고 한다.

철학자가 쓴 소설이니 내용이 복잡하고 심오하고 이해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1954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게 믿기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진부하지 않고 이야기 흐름이나 인물들의 사고방식이 그리 답답하지 않다.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런던의 거리, 지역, 신문, 상점 등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역시 영국. 지금까지 그대로 그 이름인 것들이 많다.

원제는 Under the net, 번역된 제목은 <그물을 헤치고>. 고심해서 정한 제목일텐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원제와 우리말 제목 둘 다 내용을 잘 반영한 제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번역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성실한 이미지라기 보다는 약간 방랑기도 있고 분방한 기질도 있는 (한번도 자기 집을 가진 적이 없고 여자 집에 얹혀 살거나 친구 집 신세를 진다) 주인공 제이크.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세명의 여자가 그의 주위에 있다. 제이크가 그동안 얹혀 지내던, 그러나 여자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기자 쫓겨나게 되는 집의 소유자 맥덜린. 제이크가 마음 속으로 좋아하고 있는 여자 가수 애너. 애너의 동생이자 유명 영화배우인 새디. 새디는 제이크를 좋아하여 그의 환심을 사고 싶어하지만 새디가 제이크에게 환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제이크가 새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제이크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 인물로 휴고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저자가 이전에 비트겐슈타인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다른 몇가지 묘사로 미루어 휴고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모델로 했다는 말이 있다. 휴고의 독특한 사상과 말솜씨에 매혹된 제이크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그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맛보는 느낌을 지나치기 아쉬워 만나고 돌아오면 그 내용을 일기처럼 기록해두고 있었는데 그 기록을 바탕으로 책을 펴내게 되고, 사전에 휴고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에 가책을 느껴 한동안 그를 피하며 괴로와한다.

주인공 제이크는 언뜻 보면 소극적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는 사람 같지만 런던과 파리를 무대로 여러 가지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제이크 자신이 어떤 큰 사건을 터뜨리지는 않아도 번역가에서부터 병원 잡역부까지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당시 사회적 배경이나 사건을 다 거쳐가게 된다. 이런 양면성은 그런 면에서 영국사람들의 기질을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번잡떨지 않으면서 여기 저기 관심사도 많고 할 것 다 하는.

삼각 관계 비슷한 인간 관계가 들어가 있음에도 그게 과히 통속적이거나 뻔한 내용, 결말을 예상하게 하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소설의 다른 요소들과 잘 어울려 소설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솜씨가 능숙하다는 것이라 본다. 60년의 시간 차를 뛰어넘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들어있는 유머 코드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인물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기보다는 인물의 행동 곡선을 따라 가는데 집중하게 되는 소설.

재미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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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3-1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스 머독 언니 작품은 정말 모조리 강추합니다_라고 말은 하지만 옛날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네요.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hnine 2016-03-14 11:4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이분 소설은 한권으로 끝내면 손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야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자신있게 재미보장! 외칠 수 있겠어요.

icaru 2016-03-14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최근에 책으로 스틸엘리스를 읽어서,, 반갑기도 하고, 아이리스 머독 이야기이기도 하군요 아 그럼...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섭니당~!! 또하나 알고 가요!

hnine 2016-03-14 14:51   좋아요 0 | URL
그러시다면 icaru님께도 이 책 강추! 번역도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요. 전 이제 스틸엘리스를 찜하고 갑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