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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 - 엄마라는 여자들의 내 새끼를 향한 서툰 연애질
김수경 지음 / 포북(for book)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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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수다가 많아지는 이유'?

아니, '이런 책을 쓰지 않으려면'?

리뷰를 쓰기 앞서 제목을 뭐라고 할까 이리 저리 궁리해보았다.

세상에 아이 키우는 엄마 치고 수다의 컨텐츠로 아이 키우는 얘기 이상이 있으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그야말로 시종일관 자식 얘기만으로 몇 시간을 채우는데 내심 놀라서 돌아온 적이 있다. 다음에 만나서도 마찬가지, 그 다음 만나서도 마찬가지. 본인들 얘기보다는 자식 얘기가 대부분. 나중엔 거의 듣기만 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이상한건가 혼돈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fbook이라는 출판기획사 대표이자 오랫 동안 편집자로 일해 온 사람으로 소위 책 만드는 베테랑이라고 할 정도의 경륜이 있는 사람이다. <작은 집이 좋아>, <살림이 좋아> 등의 책등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깔끔한 판형과 제본으로 서가에서 유독 눈에 띄었었다. 자칭 책 만드는 일에 미쳐살았다고 하는 이 분에게는 이제 스물 남짓된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이 아들을 보며 이젠 다 키웠구나, 내 품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야겠구나 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느낌은 마치 재밌게 말 잘 하는 친구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기 얘기를 옆에서 들어주고 있는 듯 했다. 맞장구 쳐가며, 어느 대목에서는 깔깔 거려가며, 어느 대목에서는 어깨를 토닥거려가며. 수다떠는 여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하는 엄마,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하는 버릇, 사는데 규칙이 많다는 것 등은 나랑 비슷하다 싶어 더 친근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는 나보다 몇 십배 더 마음이 넓고 포용력 있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 다섯 남매의 맏이로 자라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느라 분투해야했던 자기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안타까우면서도 역시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자식에게도 충분한 애정을 쏟아주지 못했다는 자괴감, 아이 낳고 바로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버린 남편때문에 당장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 그래도 금쪽 같은 내 새끼라며 애지 중지 키운 아들이 이제 남편의 판박이가 되어가며 엄마 품을 벗어나려하는 것을 보는 아쉬움, 글 잘 쓰는 사람이니 오죽 절절하게 잘 써놓았으랴.

'연애'라고 까지 표현한 아들과의 사이를 과연 어떤 시점부터 딱 끊을 수 있을까? 피 섞이지 않는 남자와 연애하다가 그걸 끝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엄마가 아들을 품에서 내보내며 이젠 네가 알아서 네 인생을 살아라 한다는 것은 보통 의지와 노력 아니고는 이렇게 계속 각오로만 끝나는 립서비스가 되기 십상이다. 엄마가 이렇게 비장한 각오를 하건 말건 아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이런 각오도 통보도 없이 부모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하고, 그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아들이 그렇게 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고 그것을 보는 엄마 마음이 몹시 서운한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서운함을 못이기고 언제까지 아들에 대한 안테나를 계속 달고 앉아 100전 100패의 연애를 계속해나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있다. 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나무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까지 달라는 대로 자기가 가진 걸 다 내어주지만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서운함은 느낄지라도. 나는 왜 이 책이 떠올랐을까.

부모가 자식을 키워내는 과정은 내 품에서 떠나보내기를 성공적으로 잘 해내는 것 까지이다. 명심해라 hnine.

 

 

길은 떠나는 자를 위해 열리는 법이라는 것, 행복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만 찾아온다는 것 (73쪽)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하나, 둘, 사과, 배, 하면서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눈치채지 못하는 게 남자다. 속이 터지다 못해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 와도 속내를 읽어줄 어른이 되지는 못한다. 그게 남자고, 그게 남편이다. 거기에다 아들까지 덤으로 얹히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쭉 견디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사분거리는 딸 없이 오로지 아들만 끼고 사는 엄마들이 가여운 것은 그래서다. (98쪽)

 

남편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우리 얘기 좀 해" (100쪽)

 

아이가 집을 따뜻한 곳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며, 부모로서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워싱턴 어빙- (126쪽)

 

"오늘은 이러고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세익스피어- (138쪽)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 덕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152쪽)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8쪽)

 

숱한 실패와 불행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신뢰를 잃지 않는 낙천가는 대부분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앙드레 모루아- (219쪽)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아들에 너무 올인해서 살면서도 나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고 안 할 자신 있다면야 뭐.

난 그럴 자신 없으므로 적당히 주고 적당히 방관하면서 사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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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6-05-1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들 때문이 아니라 남편때문에 확 공감이 가는데요.. 98쪽의 글,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 와도 속내를 읽어줄 어른이 되지 못하는게 남자고, 남편이다`라니... 다들 그런거라니, 좀 위로가 되네요.

hnine 2016-05-17 15:33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의 미덕이 그런 점 같아요. 읽으면서 속시원하게 글로 표현해주는 것,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위로 ^^
저도 읽으면서 확 공감이 가서 옮겨적었답니다.

icaru 2016-05-1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 ˝우리 얘기 좀 해˝ 어쩜 똑같죠? ㅎ;;

아드님 많이 컸죠? 제가 님 서재의 글들을 한창 구독(?)하기 시작했을 때가 아드님 5학년이었고, 시간이 적잖이 흘렀으니까...!
그때 1학년이었던가 유치원생이었던가 하던 우리 큰아이가 4학년이 되었으니 말이죠 ㅎㅎㅎ

아이를 그것도 남아를 키우는 일. 아후...ㅎ

저는 요즘에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해요~ 하루키가 자녀를 두지 않아서, 에너지를 십분 활용할 수 있었고, 지금의 하루키가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ㅍㅎㅎㅎㅎㅎ;;

hnine 2016-05-19 12:4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집에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얘기가 하고 싶을 때 친구를 찾고 선배를 찾고, 그렇게 되나봐요.
벌써 4학년이 되었군요. 4학년만 해도 괜찮지요 ㅠㅠ 제 아이는 열여섯살, 중학교 3학년인데 제가 제 집에서도 출가한 수도승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읽으니 공감이 될 수 밖에요. 그런데 제 친구들을 보면 모든 아들들이 그런건 아닌 것 같으니 안심하세요. 딸보다 더 순둥순둥한 아들도 많고, 아들보다 더 활동적이고 아웃고잉한 딸들도 많더라고요.
하루키에 대한 icaru님의 생각엔 저도 무릎을 탁 쳤습니다!

yamoo 2016-05-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더라구요. 아이 키우는 분들과 얘기를 해 보면 온통 아이 얘기.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시는 건 어떠냐구요. 자기 삶이 없고 하루 24시간이 자식 위주로 돌아가는 여자 사람들. 대학 입학 때까지 노심초사...

개인적으로 전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삶입니다요~ㅎ 자녀를 두면 다 그리 되나 봅니다..^^;;

hnine 2016-05-19 14:43   좋아요 0 | URL
자신의 인생의 중심에 아이가 들어와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고 자동적으로 작동됩니다 ㅠㅠ 자기 삶, 자식의 삶이 따로 없는거죠. 일부러 각성하고 이러지 말자! 하기 전에는요.
저도 경험하고 있는, 어찌보면 딱한 여자 사람의 생존 방식입니다 ^^

2016-05-26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5-27 09:08   좋아요 1 | URL
저는 이미 받았으니 안받으신 다른 분께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서니데이님의 마음씀에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요즘 올려주시는 꽃 사진도 잘 보고 있답니다.
꽃처럼 활짝 피는 주말 계획 세워보시길 바랄께요.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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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던가? 전생(前生)이던가? 어제 일이던가? 바로 이 항구로 내려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 것은? (9쪽)

사랑하는 친구와 헤어지고, 주인공 (책 속에서 조르바가 내내 '두목'이라고 부르는)은 무겁고 울적한 기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쉽게 헤어나올 수 있는 친구도 아니었고 이별도 아니었다. 

나는 검은 배와 그림자와 비와 형상을 갖춘 내 슬픔의 실체를 보았다. (9쪽)

친구와 헤어진 바로 그 항구에서 고향 크레타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면서 그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단테의 문고판 책을 여행의 동반자로 삼아 지옥편을 읽을까, 연옥편을 읽을까, 시편을 읽을까,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띄었을까? 문득 누군가 그를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을 느낀다.

"여행하시오?"

"크레타로 가는 길입니다. 왜 묻습니까?"

"날 데려가시겠소?"

"왜요?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서요?"

"왜요! 왜요! ......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자, 날 데려가쇼. 요리사라고나 할까요. 당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수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수프를 만들 줄 압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17쪽)

조르바와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조르바가 먼저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런 조르바를 주인공은 외모에서부터 말투에 이르기까지 관찰하고 탐구하기 시작한다. 짧은 대화이지만 조르바가 어떤 인물인지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의 나이 35세, 조르바의 나이 65세였다. 이 둘 사이를 한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가 훨씬 연배인 조르바가 주인공을 '두목'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라고만 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친구라고 보기엔 서로 주고받는 감정과 영향력이 친구 사이의 그것과는 다르다.

단테를 여행의 친구로 삼는다는 것에서도 보이듯이, 쉼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거기서 삶의 문제, 생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는 주인공에 비해 조르바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왜 해야하나 왜 하지 말아야 하는 생각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거기서 행복을 느끼고 사는 맛을 느낀다. 그런 조르바가 볼때 두목은 알 수 없는 인간이며 그런 조르바를 보는 두목에게 있어 조르바는 신기함 자체, 새로운 연구 대상이고 그동안 자기가 생각해오던 방식, 걸어오던 길에 대한 딴지걸기이다.

그런 조르바이지만 마음의 갈등을 겪을 때 그는 '두 조르바'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대 악마의 싸움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곧 하느님과 악마는 따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스러지는, 마음의 두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조르바란 인물이 주인공에게는 어떤 책이나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고 강력하게 다가오는 경험 자체임을 주인공은 이렇게 표현한다.

전에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시편들이 그날 아침에는 느닷없이 지적인 광대놀음, 세련된 사기극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196쪽)

지금 우리가 읽는 책, 우리의 사유, 고뇌도 어쩌면 어느 날 어느 시 맞닥뜨릴 경험으로 인해 지적인 광대놀음, 세련된 사기극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닌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사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오랜 주제이기도 했고 이 책의 주인공에게 역시 그러했던 궁극적인 인간형, 이상적인 인간형, 최후의 인간형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대목을 찾았다.

최후의 인간 (모든 믿음에서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그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어진)은 자신의 원료가 되어 정신을 산출한 진흙이며, 이 정신이 뿌리내리고 수액을 빨아올릴 토양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 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196쪽)

이 대목에서 그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오르는 독자는 나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가 생전에 준비해 두었다는 묘비명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고 책 속 주인공이 추구하는 인간형은 믿음과 환상과 기대로 가득찬 인간이 아니라,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벗어난 인간인 것이다. 그것이 자유로운 인간이고 궁극적인 인간이라니, 살아서는 도달하지 못할 인간형이란 말인가.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조르바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 아니, 그의 말을 빌자면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나이드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조르바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를 맞이하는 오르탕스 부인은 끝까지 절규했다.

"죽고 싶지 않아! 정말 죽고 싶지 않아..."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규하게 하는 그것이 곧 가장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본성, 신과 구별되는 한계,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조르바는 끝까지 자신이 당장 원하는 것을 하며, 생각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채, '안전하게'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 책의 말미에, 조르바와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조르바는 무아지경에 빠져든 듯, 입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두목,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만물은 각기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나는 가장 단순한 질문,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받은 셈이었지만 그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모르신다!" 조르바의 둥근 눈이 놀라움으로 열리면서 소리쳤다. 내가 춤출 줄 모른다고 고백했을 때와 표정이 똑같았다. 그는 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소리쳤다.

"......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중략)

".....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385쪽)

조르바의 물음에 주인공은 그동안 50톤 종이를 씹어 삼키며 읽었을 거라는 책, 사유하며, 고뇌하며 알아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이리 저리 비유하며 설명하려 하지만 조르바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아니, 그 자신 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조차 희미해짐을 느끼며 새벽을 맞는다.

본연의 질문 앞에 맞닥뜨리는 순간은 책을 읽는 동안 오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하는 질문은 어떤 특별한 '죽음'을 목격하고서 비로서 제대로 시작된다. 조르바가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을 경험하며 그랬듯이,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나 자신 아버지의 죽음을, 죽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비로소 열리는 질문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듯이.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417쪽)

이거?

조금 더 읽어내려 가다가 다음 구절을 만났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 (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417쪽)

인간의 추구해야할 최고의 지점은 하느님이나 악마의 말씀을 따라서, 또는 타협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비록 하느님이나 악마에 의해 자신의 영혼이 시험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끝까지 부서지지 않고 인내와 용기로 버텨내는 것!

이런 실마리를 던져 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내 생각에서 나오는 것으로 못미더운 못난 인간 나는 그 누가 이렇게 확인시켜주기를 바라고 있었나보다.

책 전편에 흐르는 조르바의 마초적 행동과 말에서 느꼈던 거부감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찾아내야할 것이 분명 이 작품에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찾아낸, 이 책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조르바가 어릴때 한 성인(聖人)이 들려주었다는 다음 구절이다.

 

알렉시스 (조르바의 이름), 내 너에게 비밀을 일러주마, 지금은 너무 어려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자라면 알게 될 것이야. 잘 들어 둬라, 얘야. 천당의 일곱 품계도 이 땅의 일곱 품계도 하느님을 품기엔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기에 넉넉하지. 그러니 알렉시스, 조심해라.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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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0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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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이 얼마나 많은가. 읽어보면 다 옳은 내용이고 공감하겠지만 그 책에만 있는 내용은 아니어서 실망하는 책.

전작 <그림자 여행>을  꽤 괜찮은 책이었다고 기억하면서도 저자의 이 책 소식을 처음 보았을 때만해도 굳이 구입해서 읽을 생각까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분의 리뷰를 통해 책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맛보게 된 후 바로 구입, 바로 읽어버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이 아니라 다른 걸 좋아하는 경우에도 대개 그렇겠지만 이러이러해서 좋아한다고 이유를 앞세우지 않는다. 일단 좋아하는게 먼저. 내가 왜 책 읽기를 좋아할까 같은 문제는 누가 혹시 물어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게 책을 읽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머리를 한방 맞은 것 같은 이유는 내가 읽어온 그 많은 책들이 그 후에 나에게서 어떻게 빠져나가 버렸나 하는 걸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고나 있었나?여기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린 책만 해도 이 책이 833권째인데, 적지 않은 권수의 책들을  그 책을 읽는 일주일이면 일주일 동안의 재미, 감동 말고 나는 그 책들을 어떻게 소화시켜 이후 내 삶을 다지고 일으켜세우는데 이용하였는가 이제서야 진지하게 자신에게 묻게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책을 어떻게 읽어온 것일까?'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넣어 읽어'치웠다'는 만족감? 어디가서 그 책 나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의 권수가 늘어가는 뿌듯함? 가끔 어느 한 구절을 인용할 수 있는 자산? 그거였나? 가슴에 보이지 않는 손을 얹었다.

물론, 그동안 읽어온 책들은 일부러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무의식의 어느 한 켠에라도 내 삶에 반영되어 있을 거라는, 그 정도의 얼버무림 말고, 이 책의 저자처럼 그렇게 적극적이고 확실하게 책을 내편으로 만들고 내 양식으로 만들고 내 몸의 일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지, 공부의 재료로 삼을 수 있었는지, 제대로 공부하였는지.

읽으면서 참으로 여러 군데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붙였지만 그보다 더 나를 일깨운 것은 그 물음이었다.

 

 

 

 

 

 

 

 

 

 

 

그녀가 물론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읽어야겠다는 각오로 읽은 것은 아니다. 그녀에겐 그저 습관이 되어 있을 뿐이고 그녀의 책 읽는 스타일일 뿐이다.

313쪽에 나와있기를 그녀는 책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의 온기를 담은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이 가진 미덕 중 또 하나는 결코 어려운 말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페이지 어느 구절을 읽어도 혹시 그녀의 의견에 공감 못할 대목은 있을 수 있을 망정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없다.

그동안 공부라고 믿었던 것들이 단지 문제풀이의 기술이었음을 자각했다는 대학 1년때가 출발이었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 속에 묻혀버린 진짜 자기 모습을 찾고자 함이 시작이었을까. 최근에 이르러서 누구나 다 고개 끄덕일 직업이나 타이틀에 대한 아쉬움이 또한 공부의 동기를 더했을까. 살아서 해탈에 이르지 않은 이상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삶의 고민을 만들고 해결하고 때론 오랫동안 지니고 산다. 그건 좋고 나쁜 것을 떠나 그냥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것 자체가 살아가는 과정이고 해결하려는 몸부림을 거치며 성장하는 것이니까.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니까. 공부는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특권이자 권리인 것이다.

책 한권 읽기 바쁘게 다음 책으로 손을 뻗는 대신 어줍잖더라도 이렇게 리뷰를 올리는 행위, 이것 역시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말을 이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찾는다.

무엇이든 언어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되었다.

그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 <존재의 순간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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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9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4-29 20:15   좋아요 1 | URL
이 책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책이었어요. 말씀하신대로 금방 읽어지는 책이기도 하고요.
낮엔 기온이 꽤 높은데 밤이 되면 쌀쌀하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 되세요~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 개성 넘치는 18인의 집 아름다움에 - 홀리는 - 자연에 - 끌리는
김서령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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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경은 단순히 집 구경이 아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탐구이고, 한 사람이 만든 그만의 세계에 대한 엿봄이다.

좋은 집, 넓은 집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다른 삶, 다른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다.

10년도 더 전, 같은 저자의 <김서령의 家>라는 책을 보고서 집도 집이지만 저자의 글 쓰는 방식에 홈빡 빠졌더랬다. 그 후속편이라 할수 있는 이 책이 2013년에 나온 것을 모르고 있다가 이제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열 여덟집, 즉 열 여덟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가 나온다. 각각 그들의 그런 집을 지은 이유, 그런 집을 짓기 까지, 그 집에서 하고 있는 일 등. 굳이 내 집과 비교할 건 없다. 나는 왜 저 사람과 다르게 생겼나 비교할 것 없는 것 처럼.

열 여덟 집 주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자기 주관이 있고 소신이 강하다는 것 아닐까. 때로는 고집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그것.

저자의 인터뷰에 신문사의 사진 전문 기자가 동행했으니 사진도 볼만 하다. 학고재 대표 우찬규의 팔판동 집은 매화에 빠진 사람의 집 답게 매화음 가득한 곳이라는데, 기와 지붕과 하늘과 매화가 어우러진 사진에서는 입체감이 느껴졌다. 만발한 매화를 찍지 않았다. 하늘을 향한 몇 점 매화만 잡아서 여백을 두고, 빈 가지가 만드는 선의 구도를 염두에 두고 찍었더라.

이 책에 실린 집들을 봐도 그렇고 최첨단 초고층 아파트보다는 좁고 낮더라도 오래되고 소박한 집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현상에 대해서 이건 자생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유럽의 옛도시에 머물던 사람들이 그쪽 나라의 오래된 골목과 집들의 미학을 거꾸로 배워왔기 때문일 거라는 저자의 생각은 의외였지만 이해가 되었다.

진짜 인테리어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는, 조각가 박상희의 말에는 백배 공감. 물건, 가구, 장식, 그림 등으로 꽉 찬 공간을 보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오히려 앉은뱅이 책상 하나, 옷걸이에 걸려진 겉옷 하나가 전부인 스님의 방에 더 마음이 간다. 물론 스님이 인테리어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꾸민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마음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국어교사이면서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의 저자이기도 한 송승훈의 서재는 개인 서재라기 보다 작은 도서관이었다. 누구든 와서 책을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목적이 반영된 집이었다. 그가 말하는 건축에 관한 팁 중에는 재료보다 공간을 먼저 고민하라, 큰 통창 대신 맞창을 내라, 테크보다 툇마루를 만들어라, 눈으로 보기 좋은 집과 몸으로 살기 좋은 집을 구분하라 등이 있었다.

이 책의 집들을 다 둘러보고 마음이 도착한 곳이 다음 시조에 나타나 있다면 아이러니일까?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 칸 지어내니

한 칸은 청풍이요 한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느니 둘러두고 보리라

이 책에 실린 집 주인 중 한 사람인 건축가 김원이 한국인의 자연관, 세계관, 건축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좋아한다는 면앙정 송순의 시조이다. 미니멀리즘의 극치가 아닐런지.

바닥에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은 방. 창문이 나 있고 백자 항아리 하나 놓여있는 방. 빈 방에 가까와서 가득차 보이는 방. 그런 방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나 혼자 산다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 책에서 배운 말=

 

  • 소호족: 사무실이 필요하지 않거나 출근할 필요가 없는 경우 집에서 재택근무나 온라인 근무를 하는 사람. Small Office Home Office (나 같은 사람이닷!)
  • 채나눔: 방과 방이 널찍이 떨어져 있는 구조. 방이 서로 겹치지 않는 홑집 형태라 맞창을 낼 수 있고 문만 열면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 차경 (借景): 앞산을 끌어들여 내 정원으로 삼는다.

 

 

= 그 외 =

 

  •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이 저자에게 들려주었다는 황병준의 송광사 새벽예불 녹음. 황병준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알아보니 내가 아는 그 황병준 맞다.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 상 최고기술상을 수상한 사람. 서울대 전기공학과 출신이지만 나중에 버클리음대로 유학하였다.
  • 52쪽, "LA에 있는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호텔에 갔다가 로비에서 우연히..."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또 낯익은 이름, 필립 스탁. 엊그제 대림미술관 가서 이 사람이 디자인했다는 세계 최초 투명 의자 보고 왔잖아. 일명 고스트 체어. 호텔디자인까지 했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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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04-2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책 좋아요. 모두가 똑같아지고 싶어 안달이 난 듯, 집이나 사람 얼굴과 모습까지 뜯어고치고 닮아가는 세상에서 주관 뚜렷한 사람들의 집이라니... 어떤 일을 하거나 삶에서도 철학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껴요!!

hnine 2016-04-20 08:58   좋아요 0 | URL
그래서 그 사람이 사는 집은 그 사람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하나봐요. 나의 철학을 갖는다는 것은 남을 흉내내는 차원을 벗어나야 하는, 오로지 자기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야하는 긴 과정인 것 같네요.
여기 나온 집들을 보며 감탄하고 집 주인들의 소신을 존경하면서도 나에게 그들의 집을 적용시켜보니 글쎄, 제가 그런 집들을 감당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역시 저에게는 저의 집! 지저분하고 정리안되있는 저의 집이지만 그건 집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요 ^^

2016-04-20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4-20 14:51   좋아요 0 | URL
예, 수정하였습니다.
이번이 두번째랍니다 오타 알려주신거요. 그만큼 관심있게 꼼꼼히 읽어주셨다는 말씀이지요. 감사드려요 ^^
 
산티아고 가는 길 : 카미노 데 산티아고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순례자의 길을 걷다
신석교.최미선 지음 / 넥서스BOOKS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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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선, 신석교. 저자 이름을 보고 골랐다. 도보여행가로 많이 알려져있는 황안나님의 아들과 며느리.

글은 주로 최미선님이 쓰고 사진기자 출신 신석교님이 사진을 담당했을 것이다.

산티아고로의 800km, 30일 여행에 이 두사람 외에 한사람이 더 동행했으니 바로 황안나님이다. 하지만 황안나님 얘기는 아주 가끔만 나온다.

2007년 9월 11일 프랑스 남부 생 장 피드포르 출발을 1일로 해서 29일째인 2007년 10월 9일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할때까지, 그리고 거기서 피니스테레까지 버스를 타고 마침표를 찍고 오기까지의 일정을 일기 형식으로 잘 정리하였다.

저자가 기자 출신이기때문일까. 필요한 정보가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감상도 적당히 들어가있다. 감상과 정보가 적당한 균형을 이룬 여행문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산티아고"가 성서속의 인물 야고보를 가리키는 명칭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라는 뜻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것을.

이들이 산티아고를 걸은 것이 2007년이고 이 책이 나온 것이 2009년. 내가 산티아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처음 산티아고에 관한 책을 읽을 땐 그저 한줄 한줄 읽어나가는 것으로도 재미있어 그렇게 한권을 읽어치웠는데 그렇게 몇권을 이미 섭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책의 저자가 워낙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서 썼기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엔 마치 내가 1일째, 2일째, 헤아려가며 마치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듯 실감할 수 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

이 길은 특히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함께 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 남자가, 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체력은 물론 대인 관계,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이나 배려, 인내심, 주어진 상황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는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어 종합적인 인간성을 엿볼 수 있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82쪽)

함께 살아보고 결혼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렇게 함께 오랜 여정을 걸어보면 결혼 상대자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고 동시에 상대방에게 나를 제대로 알릴 수 있으리라는 말에 백배 공감.

나는 이미 결혼을 했으니 오히려 혼자 걸어보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작은 결정은 우유부단 하면서 큰 결정은 오히려 옆에서 보면 충동적이랄 만큼 질러버리는 나란 사람. 어느 날 어떤 계기로 비행기 표를 예매하게 되는 건 아닐지.

예상하겠지만 이 책엔 멋진 사진들이 많이 들어가있다. 그중 가장 보고 싶게 하는 사진이 있는데, 243쪽, 불빛 반짝이는 리에고 데 암브로스라는 마을을 산자락에서 내려보고 찍은 사진이다.

 

 

한 장 더 넘겨서 있는 어마어마한 나무도 보고 싶다. 연초록으로 매달린 것은 꽃인지 열매인지.

 

 

 

한 곳을 향해 오랜 시간을 걷다 보면 잊고 있던 자신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게 되어 퍽이나 심각하고 심오한 여정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저자는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따뜻함을 더 절감할 수 있고 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여행의 끝은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고, 정이다. (321쪽)

 

그렇구나! 여행의 끝이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결론도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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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4-1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다 어릴땐 걷는 재미를 몰랐는데 , 머리가 복잡할때 오래 걷고 나면 저절로 머리가 비워지는 경험을 몇 번 한 후로는 부쩍 자주 걸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도 사라지고 , 기분이 좋아지고 좋더라구요.

사람은 원래 움직여야 하나 보다 생각했더랬습니다.

저도 떠나는 것은 대체로 그냥 질러버려요. ㅎㅎ 그리고 대부분 다녀와서 만족하구요. ㅎㅎ



hnine 2016-04-17 06:53   좋아요 0 | URL
저도 머리 복잡할때 걷거나 끄적거리는 것이 저의 유일하게 할줄 아는 방법이랍니다. 참 신기하게 처음보다 마음이 가라앉더라고요.
암스테르담 사진과 여행글,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