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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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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1799 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기숙사가 딸린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기숙사에 틀어 박혀 몸이 쇠약해질 정도로 독서에 빠졌고, 졸업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문학에 입신하기 위해 법률 공부를 내던지고 작가 수업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발표하는 작품이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여 무엇을 해도 좋으니 문학만은 포기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에 전념하리라는 의지와 노력으로 계속 작품 활동에 매진, 생전에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고리오 영감>은 1835년 그의 나이 36세때 발표한 작품이며, 38세때 발표한 <메르카데>는 크게 성공하여 나중에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43세인 1842년부터는 <인간 희극>을 간행하기 시작하는데, 다양한 인간의 삶을 그린 소설 91편을 엮어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한 이 <인간 희극>은 이후 프랑스 문학사에 기념작으로 남게 된다. <인간 희극> 이라는 큰 틀 속에 발자크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하여 얻은 그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구현하고자 했다.

 

발자크의 특징적인 소설 기법

발자크의 소설 기법을 얘기할때 '인물 재등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그의 소설 여러 군데에서 인물들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말하며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이 대개 2,000여명. 그 가운데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다 세어보고 조사하여 발표한 사람은 누구일지). 그러니 발자크의 다른 작품들을 읽다가 어디에서 다시 고리오 영감을 만나더라도 당황할 것 없겠다.

 

작품

발자크가 그러했듯이 고리오 영감에 등장하는 20대 초반 라스티냐크도 법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집안의 기대를 걸머지고 파리로 유학왔지만 그는 법학보다는 파리 사교계에 진출함으로써 성공을 누리려 한다. 사교계에 머리를 들이미느라 안간힘을 쓰는 중 만나게 된 백작 부인과 남작 부인 두 부인네가 자기와 한집에 하숙하는 고리오 영감의 두 딸임을 알게 된 그는 존재감없는 고리오 영감에게 잘 보임으로써 출세길을 열어보려 한다. 이렇게 말하면 라스티냐크가 무척 속물적인 근성만 가지고 있는 청년같지만 출세 지향적이긴 하나 정작 어떤 일이 닥칠때마다 그가 선택하는 쪽은 오히려 순수한 인간형에 가깝다. 제목의 고리오 영감보다 오히려 이 청년 라스티냐크를 통해 고리오 영감에 대한 것까지 작품 속에 묘사 되고 있으니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요 인물인 셈이다.

고리오 영감은 한때 국수만드는 공장을 하여 큰돈을 벌기도 하였으나 두 딸을 키워 번듯한 곳에 시집 보내고 그들의 허영과 욕심을 채워주는데 아낌없이 퍼주며 사느라 본인의 존재감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산지 오래이고, 라스티냐크는 이제 막 성공과 출세에 눈 뜨기 시작한 젊은이. 과연 이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으로 연대감이 형성될까 싶지만, 의외로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가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딸을 좋아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라스티냐크는 자기가 흠모해마지 않는 남작 부인의 아버지가 고리오 영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둘 사이에 서로를 각별히 생각해주는 마음이 생겨난다.

 

발자크의 소설은 처음인데다가 이 당시 프랑스 사회상이라든지 문예 사조에 대해서 체계적인 지식이 없으니 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딱 그만큼의 기본 지식을 가지고 소감을 말한다면, 이 작품만 읽어서는 발자크 작품에 대한 의의와 가치를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상이 작품의 구성 속에 얼마나 잘 녹아들어가 있는지, 발자크의 자리매김에 어떤 공헌을 하였는지 쉽게 짚어내지 못하겠더라. 오히려 고리오 영감의 눈먼 자식 사랑과 두 딸의 허영심과 어리석음, 그것과 관련하여 작품의 결말까지, 개인사의 범주를 벗어나 사회적인 문제가 어디에 어떻게 잘 드러나 있는가 싶다. 고리오 영감의 묘지에서 돌아오며 라스티냐크의 마지막 대사이자 작품의 마지막 문장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도 영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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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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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850년 스코트랜드 에든버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다. 종교 관습에 저항, 부모와 갈등, 20대 초반부터 호흡기 질환에 걸려 건강이 좋지 않게 되자 작가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20세때 미국 캘리포니아 여행, 이후 사모아 여행 하며 건강에 좋은 환경 찾아다니다 만난 여자와 결혼도 하고 사모아에 정착하여 살다가 마흔 다섯의 나이에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처음엔 에세이와 여행기 작가로 시작,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물섬>이 그의 작품. 칼뱅주의 성장 환경은 그에게 운명 예정설, 악의 존재에 대한 매혹을 심어주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포함하여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1886년, 그의 나이 36세때 발표된 이 이야기의 원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기이한 사례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공포 소설의 고전

이중 생활의 대명사

영국에서 출판되자 마자 6개월 만에 4만 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에 함께 수록된 단편 <시체도둑>과 <오랄라> 역시 인간의 악마적 근성을 반영한 공포 소설이다.

악인이라는 인간 유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의 근성은 보통의 인간들 내면에 천사적이고 도덕적인 성향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제는 간단히 정리할 수 있겠으나 추상과 상징이라는 수단이 아니라 기이한 실험과 끔찍한 변형을 통해 동일 인물의 변신이라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방법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려 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치와 위상을 부여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변신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의해, 본인의 손으로 가능하세 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공포감이 잘 나타나 있어 읽는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소설을 능가하는 복잡하고 이해못할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요즘을 살다보니 인간의 내면엔 지킬과 하이드 말고도 두서넛 인물이 더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는 아이러니를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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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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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요약한 줄거리: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아버지이자 자기 형인 선왕을 죽이고 덴마크의 왕이 된다. 이후 두달도 못되어 햄릿의 어머니이자 자기의 형수였던 거트루드와 결혼하여 왕비로 삼는다. 삼촌에 대한 복수심과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안고 햄릿의 고뇌가 시작되는데, 햄릿의 행동이 수상쩍다고 생각된 클로디어스 왕은 재상 폴로니어스를 시켜 염탐하게 하고 이에 따라 햄릿과 왕비인 어머니의 대화를 휘장 되에 숨어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햄릿은 왕인 클로디어스라고 생각하고 찔러 죽인다. 이를 알게 된 클로디어스 왕은 햄릿을 처치하기로 하고 영국왕에게 부디 이 자를 죽여달라는 비밀 편지를 들려 햄릿을 영국으로 급파하지만, 중간에 햄릿을 되돌아오고 보내진 다른 사람이 대신 죽음을 당한다.

햄릿이 죽인 폴로니어스는 햄릿의 연인인 오펠리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오펠리아는 결국 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펠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즈는 자기 아버지가 햄릿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왕으로부터 전해듣고 분개한다. 이것을 이용하여 클로디어스 왕은 레어티즈를 부축여 햄릿과 결투하라는 제의를 하고 레어티즈는 이를 수락한다. 독을 묻힌 칼로 햄릿과 결투 끝에 레어티즈와 햄릿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독을 탄 술을 마신 왕비도, 독 묻은 칼 끝에 왕도 모두 죽는다.

 

놀라운 것은 이상 햄릿의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펜 끝에서 처음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2세기 말경에 씌어지고 1514년에 처음 출판된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덴마크 역사>에 이미 실려 있는 이야기인데, 셰익스피어가 삭소의 이 이야기를 직접 읽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재서술한 것을 간접적으로 읽었는지는 모르나, 셰익스피어는 줄거리는 거의 그대로 빌어다 쓰되 자기 식으로 인물에 생동감을 더하였고 약간의 변형, 의미 부여를 통해 불세출의 역작 <햄릿>을 새로이 탄생시킨 것이다. 소위 '창조적 변형력'을 성공적으로 입증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해설에 나와있듯이 셰익스피어는 이야기를 새롭게 지어내는 천재라기 보다 이미 있는 이야기를 재구성 혹은 재해석하는 천재라고 말해진다는 것이다.

 

고전 중의 고전. 아마도 지금은 쓰이지 않는 생소한 단어가 수두룩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 그건 아마도 원어로 된 원본을 읽을 때나 해당될지 몰라도 번역자의 수고를 거쳐 나온 이 번역본은 그런 어려움 전혀 없이 죽죽 읽어나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려두고 싶다. 더구나 원문에 있었을 운율을 살려 번역해놓아서, 마치 우리 나라 시조를 읽을 때 처럼 문장에 리듬이 살아있어 읽는 재미가 더했다.

셰익스피어 시대 문학 작품 답게 직유와 은유, 대조법 등이 풍부하게 사용된 문장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다.

  • 장례식 때 구운 고기, 혼례상에 차갑게 내놓았지 (1막 2장 181)
  • 너의 거짓이란 미끼가 진실이란 잉어를 건진단 말씀이야 (2막 1장 63)
  • 인간은 참으로 걸작품이 아닌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하며, 생김새와 움직임은 얼마나 깔끔하고 놀라우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이 지상의 아름다움이요 동물들의 귀감이지 --- 헌데,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난 인간이 즐겁지 않아 --- 여자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웃으면서 반대하는 것 같지만 (2막 2장 309)
  • 노인은 두 배로 어린이 (2막 2장 386)
  •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 ---- 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3막 1장 56) 
  • 슬픔이란 첨병은 한 사람씩 오지 않고 대부대로 몰려오오 (4막 5장 78)
  • 저 해골에도 한때는 혀가 있었고 노래할 수 있었겠지. 저 녀석이 그걸 땅에다 팽개치네, 마치 최초의 살인을 한 카인의 턱뼈나 되는 것처럼. 지금 이 바보가 호령하는 저건, 어느 모사꾼의 머리통이었을지도 모르지. 하느님까지 따돌리려 했던 녀석 말이야. 안 그런가? (5막 1장 77)

 

<햄릿>은 연극으로 보든, 책을 한번 다시 읽어보든, 살아있는 동안 어쨌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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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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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썼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인지 서머싯 몸의 책 <달과 6펜스>의 표지 그림은 폴 고갱의 자화상이다. 실제 고갱의 직업과 같이 소설 속 인물 스트릭랜드의 직업도 증권 중개인. 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화자는 처음 만난 스트릭랜드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모두 필요 이상으로 조금씩 커서 못생겨보였다. 붉은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깎았고 조그만 눈은 푸른색 같기도 하고 회색 같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인상이었다. (34쪽)

표지 그림의 고갱 자화상을 보니 책 속의 묘사와 얼추 비슷하다.

런던에서 증권 중개 일을 하며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부유하게 잘 살던 남자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다. 이제 자기가 하고 싶던 일, 즉 그림 그리는 일만 하고 싶다는 이유가 전부. 그리고는 런던을 떠나 파리로 가서 이전과 비교가 안되는 궁핍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그렇게 뛰어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오로지 소수에게만 인정받을 뿐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 저런 그림이 다 있냐고 당황할 정도의 그림을 그리느라 그는 부인도, 아이들도 몰라라 하고 파리에서 이곳 저곳을 전전한다. 스트릭랜드의 아내는 화자인 '나'에게 부탁해서 남편을 다 용서하고 받아줄테니 돌아오라고 전해달라는 심부름을 보내기도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그러고 싶은 의사가 전혀 없었고 이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가족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다. 사후에 인정을 받긴 했으나 살아있는 동안엔 그가 혼신을 투여한 결실을 보지 못한 스트릭랜드는 행복했을까. 말년에 병들어 사람들로 부터 격리되고 가난하게 마감하는 타히티에서의 그의 최후만 놓고 본다면 전혀 행복해보이진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3자의 눈에 비친 모습일테니 말이다.

 

서머싯 몸은 오랫동안 고갱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는데 어떻게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어 소설 쓸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해설에도 나와있지 않다. 실제로 고갱이 머물던 타히티를 방문하여 그와 함께 살던 여자와 이야기도 나누고 거기 남아있는 고갱의 그림을 구입하기도 했다는데, 그러면서 많은 자료 수집을 했을 것이고 마침내 마침내 소설을 써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점

1. 심리 묘사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로 가진 것 전부를 버리고 떠날 때, 그렇게 인생의 급반전을 하며 떠날 때, 그리고 그 이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심리 묘사가 더 심도있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화자의 눈을 통해서 묘사해야 하는 것을 한계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꼭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제3자의 눈을 통해서라 할지라도 스트릭랜드의 진심, 심중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공감과 이해의 끈이 형성될 만한 계기가 특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처음엔 이해 못할 것 같은 인물의 행동이, 읽다 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할 때, 그렇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순간 독자들은 그 작품에 비로소 빠져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2. 소설이면 소설, 전기면 전기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소설은 많다. 실제 인물이 소설의 탄생을 이끄는 계기만 마련했을 뿐 스토리는 작가의 창작이 많이 기여하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예를 들면 '진주귀거리 소녀'), 거의 전기에 가깝게 인물의 실제 삶의 행적에 충실하고 작가의 덧붙임은 그에 비해 소소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들도 있다 ('덕혜옹주', '소설 동의보감' 등). 그런데 이 작품은 고갱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작가가 조사한 자료들만 가지고 소설화 하는데 무리가 있었는지, 화자인 내가 스트릭랜드 사후에 그 주위 인물들로부터 들었다고 하며 메꾸는 내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럼 그것이 실제 고갱의 삶에서 있었던 일인가 하면, 작가는 그것도 책임질 순 없다는 듯 마지막에 꼭 달아날 구멍처럼 방금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워낙 허풍과 허세가 있는 사람이기때문에 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자기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는고 덧붙여 놓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가 해준 이야기 가운데 진실은 한 마디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가 스트릭랜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마르세유에 관한 지식도 어느 잡지 나부랭이에서 얻은 것이라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245쪽)

 

제목의 '달'과 '6펜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작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안 간다. 포장지에 관심 안 가듯이.

기대를 했던 작품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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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6-08-0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문학작품인데 정작 읽지 않는, 또는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제가 hnine님 서재에 올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요. 누군가, 이를테면 멋진 국어샘이 여름방삭 독후감 숙제로 내준다면, 그 시절의 소녀로 돌아갈수 있다면, 열 일 제치고 열심히 읽을 것 같기도 해요^^
참, 이사하셨다는 얘기는..최근의 일인가요?

hnine 2016-08-07 15:41   좋아요 1 | URL
저도 문학전집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유명 문학 전집을 연속으로 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 제 아이에게 문학전집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 하는 대신, 보란듯이 읽고자 하는 꿍꿍이도 작용하고요.
이사는 최근 일 아니고요 2012년 일인데, 지금 아파트가 산을 깎아서 만든 곳이라서 그런지 꿩, 고라니 등이 집에서도 창 너머로 종종 보이곤 했거든요. 그런데 몇년 지나면서 자취를 감추었답니다. 서운해요.

감군 2016-08-0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트릭렌드가 아주 이기적이면서도 그 표현에 납득이 되어 놀랍던데요.
hnine님에게는 이렇게 보이셨다니- ㅎ

hnine 2016-08-07 15:45   좋아요 1 | URL
아, 감군님. 위의 리뷰는 순전히 제 개인적인, 날것 그대로의 생각이랍니다 ^^
저도 스트릭랜드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도 그사람만의 내면을 독자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나와주기를 기대하며 읽기도 했거든요.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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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의 마사 퀘스트를 읽으며, 불우하고 결핍된 유년 시절은 어쩌면 작가 탄생의 필요 조건인가 생각했었다.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사무엘 베케트는 도리스 레싱과 다르게 더블린의 유복한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정 교육과 명문 학교에서 교육 받으며 자랐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파리고등사범 영어 교사로 부임하여 가르쳤으며 스물 다섯 나이에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했던 베케트.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도 건강이 안좋아진데다가 대학 강의에 대해 회의를 느낀 베케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여행과 집필에만 전념하는 삶을 택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지극히 폐쇄적인 삶을 살아갔다.

연극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 대학교때 적어도 시내 어느 극장 한군데서는 공연이 되고 있을 정도로 유행했었고 학교 연극부 학생들에 의해서도 자주 무대에 올려지던 작품. 그러면서 사람들이 늘 화제에 올리는 것은 과연 고도란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도는 연극 중에 한번도 나오지 않으며, 작품이 끝나도록 그 정체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 쯤, 실제 연극을 보지 않고 책은 더구나 읽지 않은 상태에서도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제까지는.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앞에 앉아있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으나 알고는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 "고도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난 이제 정체를 알았어."

남편: "그거 뭐, '이상향' 같은 거겠지."

나: "아니, 나도 그런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아니더라구."

남편: "그럼 뭔데?"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되풀이하며 고도를 기다린다.

에스트라공: 가자.

블라디미르: 가선 안되지.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오늘은 올 것 같아서 기다리지만 오지 않고 내일은 올지 모른다 생각하며 내일이 되고, 이런 날이 계속되니 가끔 자기들이 무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깜빡 잊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상기한다.

에스트라공: 우린 약속을 받았으니까.

블라디미르: 참을 수가 있지.

에스트라공: 지키기만 하면 된다.

블라디미르: 걱정할 거 없지.

에스트라공: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블라디미르: 기다리는 거야 버릇이 돼 있으니까.

마침내 고도가 온것 아닐까 기척을 느낄 때 정작 이들은 반가와하기보다는 나무 뒤로 숨는 장면을 읽고서야 생각했다.

'고도'는 이들이 반드시 기쁨과 즐거움으로 기다리는 대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오히려 고도의 나타남에 대해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낌새까지 느껴진다. 그들은 진정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가? 사실은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것은 약속되어져 있는 무엇이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였다. 그렇다면 고도는 인간들에게 구원을 약속한자, 인간이 기다리는 대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럴까?

기다리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보니 이들은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고 무료하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장난을 하니까 시간이 빨리 가는구나.

에스트라공: 이젠 뭘 한다?

블라디미르: 기다리면서 말이야?

에스트라공: 그래 기다리면서.

 

이쯤해서 나는 고도에 대해 나름대로 실마리를 잡고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는 삶의 종착지인 죽음을 기다리는 행위.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기야하는 종착지. 막상 가까이 왔다 생각하면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대상. 하지만 반드시 오기로 되어있는 것. 죽음!

블라디미르: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그건 그렇지.

블라디미르: 우린 약속을 지키러 나온거야. 그거면 된 거다.

우리가 태어남과 동시에 맺어진 약속이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자동적으로 체결된 약속. 살다보면 가끔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가도 상기하게 되는 대상. 고도!

 

왜 베케트의 연극을 부조리 연극이라고 하는지, 왜 그를 일컬어 유쾌한 허무주의자라고 일컫는지는 난 잘 모른다.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 마틴 에슬린이라는 영국의 연극학자 라고 한다. 왜 이 작품을 전위극, 실험극이라고 하는지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라고 했다는 그의 말은 더 생각 안해도 알 것 같다.

고도를 삶의 종착지, 즉 죽음으로 해석한 것은 100% 개인적인 생각이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대답을 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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