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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펭귄클래식 32
너새니얼 호손 지음, 김지원 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알고 있어서,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 없으면서 마치 읽은 것 처럼 착각하고 있는 책들이 더러 있다. 이 책도 나에게는 그런 책 중 한권이었다. 집에 민음사것과 펭귄클래식것, 두권이나 가지고 있었는데 여태 읽지도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해설이나 부록 같은 자료가 좀더 풍부한 경향이 있는 펭귄클래식으로 읽기로 했다.

재미있는 것은 출판사는 달라도 표지 그림은 똑같더라는 것. Hugeus Merle의 <주홍글자>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작품이 쓰여진 때는 1850년이지만 작품 속 시대배경은 그보다 200여년 전인1640년에서 1650년 사이이다. 공간적 배경은 영국에서 청교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뉴잉글랜드 지역 (영국의 입장에서 뉴잉글랜드'식민지'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는)의 어느 마을. 너새니얼 호손 자신이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이라는 곳, 유서 깊은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소설의 첫페이지는 감옥과 주변 묘사로 시작된다. 감옥 앞에는 곧 있을 구경거리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거리며 떠들고 있다. 곧 감옥 문이 활짝 열리며 형리 손에 이끌려 젊은 여인이 나온다. 여인은 생후 3개월 쯤 되는 갓난 아기를 안고 있다.

여인의 외모는 어떠했을까? 키가 크고 완벽할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그녀의 모습이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 설명되어 있다. 감옥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어떤 후광이 비칠 정도의 아름다움이었고 귀부인다워 보이기까지 했다고. 그녀의 어디에도 불행의 먹구름이나 의기소침, 침울함의 흔적은 없었다. 이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헤스터 프린의 인상이다. 그리고 곧 그녀 가슴에 수놓아져 있는 글자 얘기가 나온다. 그녀의 우아하고 귀티나는 모습에서 결국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그녀의 가슴 위에서 빛나던 주홍글자였다. "A" (for adultery).

처음에 묘사된 헤스터의 이 모습은 이후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성격과 어긋나지 않는다. 아기를 혼자 힘으로 키워야 하는 책임감이 그녀를 당당하게 했을까. 비록 그녀의 마음은 고통 받고 있었을지라도 그녀는 자기 앞에 닥친 벌을 피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초라한 오두막집에 딸과 함께 살며 오랜 시간을 꿋꿋하게 견뎌낸다.

누가 봐도 그녀가 죄인임을 알수 있는 주홍글자를 가슴에 달고 사는 헤스터와 대조적인 인물이 있다. 딤즈데일 목사, 그리고점차 쇠락해져가는 딤즈데일을 옆에서 보살펴준다는 명분으로 그의 주위를 맴도는 의문의 의사 로저 칠링워스이다. 로저 칠링워스가 돌봐준다고는 하지만 나아지는 기색은 없이 딤즈데일 목사는 갈수록 더욱 약해져가고 누구에게도 말못하는 괴로움과 고통, 강박에 시달리는 듯 하다. 의사의 돌봄 마저 마다하는 그의 고통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의사라고 하는 로저 칠링워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슴에 주홍글자를 달고 있는 헤스터에 대해 알고 싶은 것보다 독자는 어느 새 딤즈데일 목사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간다. 헤스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이 잘못이 맞다면), 그래서 결과가 어떤지에 대해선 그녀가 달고 있는 주홍글자로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홍글자를 달고 사는 사람의  치욕보다 더 버티기 힘들게 하고 더 괴롭게 하여 결국 인생을 마감하게 하는 것, 즉 보이지 않는 주홍글자를 달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눈에 모이는 주홍글자보다 더 치명적인 그것을 딱히 무어라고 이름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는 말중 <양심>이 그것 아닐까? 이 세상 어느 법보다 무섭고 가장 나중까지 효력을 발생한다는 양심. 자신만이 아는, 자신에게 향하는 잣대. 남이 억지로 가슴에 붙여놓은 주홍글자보다 더 무서운 그것은 남으로부터 선고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괴롭히는 것이다.

나는 헤스터의 초라하고 고독한 삶보다, 밖에서 보기엔 사람들의 존경받는 삶을 살았던 목사 딤즈데일의 삶에서 오히려 더 인간의 나약함과 비애를 느낀다. 사실 목사를 괴롭혔던 것 중의 하나가 그것이었다. 자기가  알고보면 어떤 사람인지 마을 사람들은 결코 모른다는 것, 자기가 나는 이런 사람이오 라고 설사 폭로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라는 것. 그것이 목사를 안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볼때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며 살아가는 헤스터를 구원해주어야 하는 역할을 했어야 목사를 오히려 헤스터가 그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려 하지만 작품속의 또 한사람, 바로 로저 칠링워스의 미움과 복수심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헤스터가 죄인이라는 표시로 가슴에 달고 있던 주홍글자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겁게 짓누르며 어떤 사람의 인생을 의도와 다르게 몰고 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딤즈데일에게는 양심이었고 로저 칠링워스에겐 미움과 복수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대로의 생각일지 모르겠고 그것이 작가의 의도와 빗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의 해석이어서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있다.

 

민음사판에는 없고 펭귄클래식판에는 있는 것이 책 앞의 <세관>이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이다. 너새니얼 호손이 <주홍글자>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200여년 전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마녀사냥이 있었고 작가의 조상이 그 마녀사냥에 참여했었다는 기록을 우연히 발견하고서 작품 <주홍글자>를 쓰게 되었단다. <세관>은 주홍글자 본문과 달리 짧기는 해도 과연 에세이인 것이, 이 작가의 성격이 이 문장 저 문장에서 거침없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사물과 사건을 보는 관점, 그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사람들과 친했으며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는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비록 우리말로 번역된 가운데서도 단순하지 않으며 통찰력있는 문장 표현들을 발견할 때마다 몇번 반복하여 읽고 싶게 만들었던 재미때문에, 본문 주홍글자만 읽지 말고 <세관>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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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12-0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착각이 아니길 바라게 되네요. 저는 세로 줄로 된 전집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오래전에요.

영화로도 봤던 기억이...

독서 목록은 예전부터 있었고 영화 목록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언제부터인가
중단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본 영화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앞으론 책이든 영화든 본 것은 무조건 기록하는 걸로... ㅋ

<세관>을 꼭 읽고 싶군요.

hnine 2016-12-08 17:11   좋아요 0 | URL
저도 착각하는 책들이 많고 이 책처럼 확실히 안읽었으면서도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는 책들은 전혀 모르는 책보다 오히려 더 안읽게 되더군요. 그런데 이제서 접선(!)이 되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제가 막연히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깊은 뜻이 있어서 저에게는 분명히 소득이 되었답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책으로 작가의 단편선이 집에 한권 더 있는데 그것도 읽어봐야겠어요.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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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 나셔서 올해 아흔 일곱이 되셨으니 백년을 살아오셨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내셨고, 여러 권의 수필집을 내셨는데 그중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책 때문에 나는 이분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까마득하기만 한 중학교 1학년때 일이다. 방학이 되어 아버지께서 읽으라고 사다주신 열몇권의 책 중 한권이었는데, 김형석이라는 이름도 낯설고, 약간 촌티나는 표지에, 제목은 꼭 삼류 소설 제목 같았다. 그런데 읽어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조곤조곤, 하지만 강단있게 소신있는 삶을 살기 위한 철학자의 생각이 빈틈없이 담겨있었다. 아마 수필집을 읽어본 건 그 책이 처음 아니었나 싶다.

이후로 다른 수필집도 몇권 읽었으나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분이 벌써 백년을 살아보니 라는 책을 내실 정도로 연로하셨구나, 신간 소식을 듣고 감회가 깊었다.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하면서 또 궁금하지 않기도 했다. 그동안 출간된 책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고, 백세가 거의 다되신 철학자라면 뭔가 다른 내용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때문에 궁금하기도 한것이다.

 

부모는 욕심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보다 귀한 것은 자녀들의 일생을 위한 사랑이다. (107)

 

이 문장 뿐 아니라 이 책 전체에서 키워드를 뽑으라면 <사랑>이라고 말하겠다. 수십년전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수필집에서처럼, 백세가 다 된 지금도 여전히 그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을 변함없이 관통하고 있는 중심어, 지금은 흔해 빠진 단어가 되어 버린 사랑.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노라고 여전히 말하고 있다. 그 자신이 여섯 자녀를 키워낸 부모였다. 하나 낳아 겨우 키워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 비하랴. 여섯을 키워내셨다면 일단은 귀기울여 들을 일이다.

 

카네기의 말이 있다. "내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는 부자였다'는 말이다." (195)

 

많이 가진게 자랑거리가 되고, 못가진걸 스스로 비하하는, 이 사회가 싫다. 많이 가진 거 자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사실 못가졌다고 스스로 움츠려들고 떳떳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니라 그 사고 방식이 싫다. 카네기는 누가 뭐래도 부자 맞지만, 부자가 삶의 목표 자체는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벌어들인 많은 재산을 어디에 어떻게 베풀고 살았는가, 그것이 삶의 목표였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노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보통 65세 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와 내 가까운 친구들은 그런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233)

 

동의합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배움에 대한 욕구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내 생각을 한군데 가둬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르려 하지 않고 품을 줄 안다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존경받는 노년기 인생이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274)

 

나이 들수록 마음에 안드는 것이 더 많아지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예를 많이 본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책을 많이 읽어 생각과 마음이 더 넓어 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기존의 생각 굳히기용으로 책을 읽는 것을 많이 본다.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벽은 점점 두터워지고 내 생각은 점점 더 외곩수로 흐른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려면 어떤 길을 통해야하는지.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고, 어긋나지 않는 길을 쉼없이 걸으며,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매일 징징거리며 살고 있는 내게는 일침이 된다. 그냥 숙연해진다.

 

또 다음 책도 내실 수 있기를,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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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6-11-2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며칠 지났지만 생일 축하해~~~
스마트 폰이면 카톡 메시지를 보낼수 있을건데,
문자를 보낼수 없어서
네 글 올라오면 남겨야지 그러고 있었어 ㅎ
잘 지내고~~
내 거처가 결정되면 또 연락할게.

hnine 2016-11-21 22:07   좋아요 0 | URL
네 거처가 어떻게 결정될지 나도 궁금해.
빨리 12월이 되었으면!
 
[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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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어느날, 작가는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작은 책 한권을 만난다. 그때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책 내용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그는 다음해 여름 강제징용과 피폭과 관련된 이 책 내용을 직접 취재하기 시작한다. 이 책 <원폭과 조선인>의 저자는 물론이고 그 당시 원폭피해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장소를 답사하고, 묻혀있던 서류의 발견하는 등 자세한 조사를 토대로 이 소설 <군함도>가 탄생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2016년 올해에서야 우리 앞에 나오기까지 2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음을 보고 짐작할 수 있듯이 우여곡절을 거쳐야했다. 다른 제목으로 몇번 출판이 되었다가, 개정, 축약, 번역 등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올해 <군함도>라는 제목으로 두권짜리 한국어판 장편소설이 출판된 것이다.

우리에게 이 군함도 (단도 端島, 하시마)의 강제징용 역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어이없게도 일본이 이 군함도를 일본 산업혁명 유산으로서 일본의 다른 유적 스물 두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지정을 신청, 2015년에 결국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고부터이다.

일본에 가본 적이 없어 지도에서 하시마섬의 위치를 찾아보니 한반도 남쪽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거의 마주 보고 있다 싶을 정도로 가까운 곳, 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타고 30여분 되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지 1년. 지금은 가이드가 동행하는 관광 코스도 여럿 개발되어 있고 기념품까지 판매되고 있다지만 이 섬 어디에도 강제징용 관련 표지판 하나 없고, 가이드 설명 중에도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그저 자기네 나라 산업혁명의 유적지로서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기억되면 되는 곳이다.

작가 한수산의 눈에 뜨여 이렇게 소설로 작품화 되어 나온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은 자료 조사부터 문학 작품화까지, 많은 노력과 정성이 보이는 작품이다. 어느 한 사람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은 대신 각기 다른 배경과 신분을 가진 여러 사람을 등장시켰고,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운명으로 묶여 피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 피눈물 세월은 끝을 보는가? 끝이 있긴 했지만 그건 또다른 비극의 시작,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의한 것이니 그것을 끝이라고 해야하나 또다른 시작이라고 해야하나.

 

작가 한수산. 중학생일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책장에서 <부초>라는 제목의 그의 소설을 살금살금 훔쳐 읽던 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활발히 작품을 내던 그가 어느 날 절필 선언을 하고 잠적해버렸다. 1988년 소위 한수산 필화 사건. 당시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소설에 전두환과 정부와 군을 모욕하는 내용을 썼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온 사건이었고 그후 그는 절필 선언을 하고 이 나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주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는 감회가 새로왔다. 올해 칠순이 된 노련하고 원숙한 작가의 필력이 펄펄 살아있다. 생동감 넘치는 구성, 지루할 틈 없는 전개, 소설을 위한 자료 조사가 자칫 논픽션처럼 보일 수 있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서정과 서사의 이러한 균형은 아무나 작품 속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게 아닐 것이다.

들으니 이 소설이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모양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놓치지 않고 볼 것이다.

그리고 짐작해본다. 군함도처럼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역사가 어디에선가 우리의 관심이 그들을 발견해주길 애타게 기다리며 묻혀 있을지 모른다고. 울컥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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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11-0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야겠군요.

hnine 2016-11-07 12:32   좋아요 0 | URL
작가에게도 이 소설은 각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우리는 이름도 못 들어보던 작은 섬을 일본에서는 뻔뻔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알리는 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을까요.
곧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송중기가 나온다는 것 같아요 ^^

stella.K 2016-11-0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한수산 작가에게 그런 사건이 있었나요?
전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 활발한 작가가 왜 글을 안 쓰고 있나 궁금했었는데
님의 페이퍼에서 그 의문이 풀렸네요.

저는 군함도가 자꾸 김진명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ㅠㅠ
제목이 뭔가 김진명스럽지 않습니까?ㅋ
부초 함 읽어보고 싶네요.

옛날에 한수산 작가 무슨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는데
지금은 그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더군요.
그래도 뭐 여전히 멋있는 것 같긴합니다.ㅋ

hnine 2016-11-07 14:50   좋아요 0 | URL
필화 사건의 계기가 된 신문 연재 소설이 <욕망의 거리>인가? 그랬어요. 저희 집에서 그 신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뜨문뜨문 읽고 있었지요. 글쓰는 작가가 절필을 선언할땐 얼마나 충격과 고통이 심했으면 그랬을까요.
김진명 작가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쓴 사람 맞나요? 대통령 저격 사건이던가요? 이 책도 당시 베스트 셀러였는데 저도 원래 이런 류의 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읽었는지 내용만 알고 있는지, 헛갈리네요.
부초는 제가 중학생때 읽었으니까 아주 오래된 소설이고 군함도는 올해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랍니다 ^^
군함도 제목이 김진명 스럽...ㅋㅋ 맞네요. 한수산이라는 이름과는 아무튼 안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현기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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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현기영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순이 삼촌>이란 소설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거의 동시에 그가 제주 출신의 소설가라는 것도 따라올 정도로 그에게 제주는 특별하다.

정작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그의 아내 양정자 시인때문이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양정자의 시집을 나올때마다 한권 한권 다 사서 읽을 정도로 그녀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시를 쓰기 보다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 가족 등, 시인이 옆에서 가장 많이 관찰할 수 있는 대상들, 하지만 누구의 눈에더 보일 것 같지는 않을 것들을 발견하여 시로 쓰고 있었다. 현기영이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안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책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에서도 저자는 본문에 아내 양정자의 시를 한편 인용하고 있는데 그 시인이 자기 아내라는 말은  밝히고 있지 않다. 그냥 일행 중 한 시인이라고 했을 뿐.

한 문장 건너마다 제주와 바다가 나오는가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그의 칠십 오년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제주와 바다가 아닌가 싶다. 이젠 비록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끈이 조금도 느슨해진 것 같지 않게 마음 속에 항상 그 둘을 품고 사는 그가 무엇에 대해 얘기하든지 결국은 이 두가지와 연결되는 듯, 아니 스스로 연결시키는 듯.

 

첫 페이지, 첫 두 줄.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아등바등 바삐 사느라고 늙는 줄 몰랐다.

누구에게나 오늘은 어제보다 하루 늙어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특별한 연령층을 노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혼자 쿨한척 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벌써 툭 내려앉는다.

화초 키우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집 안팎에 그렇게 꽃, 나무가 넘쳐남에도 한번도 관심을 갖고 본 적 없을 정도로 무심했던 나인데, 언제부터인가 시간 나면 안 가본 곳으로 멀리 떠나는 여행보다는 가까운 동네를 발로 흙을 밟으며, 이름은 잘 몰라도 풀과 꽃과 나무에 눈길을 주며, 그들의 변화에 혼자 감동받고 사진도 찍고, 누가 시키면 하지 않을 일을 즐기고 있는 나를 보고 아이가 그랬다. 이상하게 젊은 사람들 보다는 나이든 사람들이 식물을 좋아한다고. 그 말을 들을 땐 무심히 들었는데,

자연은 노년과 잘 어울린다. 조만간 돌아가야 할 곳이 거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14쪽)

아이의 말은 전혀 근거 없지 않았나보다.

 

저자가 중학생때 일.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동네 청년이, 아무리 그가 부리는 말(馬)이라지만 혹사시키고 심하게 대하는 장면을 친구들과 목격하고는 격분한 나머지 한밤중에 그 청년 집앞으로 가 친구들과 힘을 모아 그의 마차를 풀어 끌고 풀더미 속에 처박아 버려서 못된 동네 청년이 일을 할 수 없도록, 말이 일 안하고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일화를 보면 그가 정의감과 감성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에 옮기는 성격임을 눈치챌 수 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을 한 경력이 있으나 문학의 사회적 의무를 중요시했던 그에게 쉽지 않은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있는 그의 첫소설집 <순이삼촌>이 제주 4.3 사건이후 30년후에 쓰여졌다고 한다. 그만큼 현기영에게 제주 4.3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슬픔과 분노 자체, 자기라도 어떻게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실함의 원천이었다.

 

칠십을 훌쩍 넘은 작가는 이제 돌아갈 곳을 생각한다. 그래서 또 수시로 제주를 찾고 바다를 찾는다. 풀위에서 여치가 죽어가는 모습도 그냥 예사로 보아넘기지 못한다.

드디어 여치가 개자리풀 위에서 옆으로, 가볍게, 기울어진다. 가는 다리들에 최후의 경련이 일어난다. 정적, 온 세계가 숨을 죽여 그 죽음을 지켜본다. 최후의 경련을 끝으로 여치는 깊은 적막 속으로 들어간다. 슬프지 않은 죽음, 완벽한 죽음이다. (242쪽)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울분이 수그러들고,  돌아갈 곳을 생각하느라 한풀 꺾였다고 생각하면 오산. 오히려 연륜이 더해지며 생긴 삶에 대한 통찰, 문학에 대한 통찰은 더욱 번뜩이며 날카롭다.

승자 독식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작동 원리인데, 그 이데올로기에 일상적으로 혹독하게 시달리는 우리는 예능 엔터테인먼트를 보거나 인터넷에 정신 팔린 채, 얼마 안 되는 여가 시간을 허비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세상에서 작가는 독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문학이 읽히지 않는 것이다. SNS에 범람하는 언어의 홍수를 보면, 이제 남을 위한 말은 사라졌다는 것이 실감된다. 이성적 설득의 말 대신에 막무가내식 공격의 말이 중구난방으로 난무하고 있다. 모두들 남의 말에는 귀 닫고 자기 말만 한다. 저마다 지껄인다. (243쪽)

지금 문학이 서있는 자리를 이렇게 얘기하면서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 보편성을 지향한다는 명분아래 미국식 사고방식, 향락적 상품소비문화를 쫓아가려 하지 말고, 오래된 우리의 것에서 뿌리를 찾고 그것을 새로이 하는것이 진정한 세계보편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가 최상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 즐거운 것만 좋아하는 저능아처럼, 우리는 대책 없는 구경꾼이다. 우리가 구경하는 엔터테인먼트 속에 명령이 있고 명령자가 숨어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249쪽)

얼굴이 후끈거린다.

 

다소 힘이 들어갔던 목소리를 낮추어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그는 말한다.

포기하는 대신 얻는 것은 자유이다. 그 자유가 내 몸과 정신을 정갈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256쪽)

정갈하고 투명하게 매일 새로 태어나는 사람에게, 늙음이란 없다. 늙음의 정의마저 새로이 한다.

 

 

 

 

 

※ 애이불비 (哀而不悲)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은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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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6-10-1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제가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글, 좋습니다.

hnine 2016-10-19 18:17   좋아요 0 | URL
우앙~ 고맙습니다 ^^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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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이 출판되고 8년 후 그 속편이라면서 나온 책이다. 제목이 다름에도 '속편'이라고 한 이유는 등장 인물이 같고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허클베리 핀 역시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라는 생각은 톰 소여와 같다. 나이는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이라고 봐야하지만 책 속에서 톰이나 허크가 하는 행동과 말 속에는 아이라기 보다 마크 트웨인의 아바타로서 사회와 시대를 맘껏 비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임기 응변의 천재, 머리가 팽팽 돈다. 조마조마한 여러번의 위기 상황을 이런 임기 응변으로 모면하는데, 특히 통나무 통에 숨어 있던 허크가 결국 사나이들에게 들켜 신분을 밝히기를 요구받자 허크는 방금 전 통나무 통 속에 숨어서 그들이 하던 얘기를 듣다가 알게 된 찰스 윌리엄 올브라이트가 자기라고 하는 대목은 어떤 어른도 발휘하기 어려운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서 바로 이어서 자기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술술 꾸며 말하는 대목은, 세상에 스토리텔러도 이런 스토리텔러가 없겠다 싶었다.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허크를 돌봐주던 집의 흑인 노예 짐과 행동 노선을 함께 하면서 자유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짐이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허크의 활약으로 집중된다. 톰소여에 비해 촌티나고 어눌해보일지 모르겠지만 허크는 확실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두드러진 것 같다.

마크 트웨인 자신은 이 두 인물에 대해 각각 어떤 생각을 가지고 책을 썼는지, 어떻게 구별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진다. 영국의 세익스피어 만큼이나 미국 문학사에 없어서는 안되었을 사람이라고까지 마크 트웨인을 평가한다는데,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 두권을 읽은 후 나 같은 일반인의 식견으로서는 그 말이 피부로 와닿을 정도는 아니다. 어떤 점에서 세익스피어와 비교가 된다는 것인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은유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 동시대 다른 작가들이 하지 못한 문체나 스토리를 과감하게 내놓았다는 것? 사실 마크 트웨인은 그리 많은 작품을 남긴 편이 아니다. 톰소여, 허클베리 핀외에 잘 알려져있는 작품으로는 어릴때 많이 읽은 <왕자와 거지> 정도랄까. 이 세작품 모두 마크 트웨인의 나이 40대에 쓴 것들이다. 열두살에 아버지를 여읜 후 정식 학교 교육을 따르기 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은 인생 경로, 그의 성격의 바탕이 되는 익살, 신분이나 관습 따위를 작품 속에서나마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점, 자기 앞에 닥친 장벽에 굴하지 않는 모습, 새로운 것으로 진출에 거부감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 아마 이런 점들 때문에 <마크 트웨인은 철두철미한 미국인이다. 만약 외국인이 미국 정신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마크 트웨인을 읽게 하라> (607쪽, 작품 해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어쩌면, 책의 맨 앞장에 실린 경고문 처럼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는 자, 교훈을 찾으려는 자, 플롯을 찾으려는 자는 기소, 추방, 심지어 총살하겠다>는 엄포가 보여주듯이 동기, 교훈, 플롯 같은 구태의연한 형식에 얽매이지 말라는 이런 마인드때문인지도.

의미를 찾고 동기를 찾고 플롯에 의미를 두는 습관이 배어있는 평범한 독자인 내가 읽기에는 600쪽을 넘는 분량이 술술 넘어가도록 재미있게 읽은 편은 못되었다고, 솔직한 소감으로서 나도 할말은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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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6-11-02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크트웨인 자서전도 재미있었어요! ㅎㅎ;;

hnine 2016-11-03 16:44   좋아요 0 | URL
재미 없다면 이상할 것 같아요 ^^
검색해보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