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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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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떤 방향의 내용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철학인가, 의학인가, 윤리? 도덕? 정치?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으므로 의학책은 아닐 것이고, 본격적인 철학책도 아닐 것이다. 프롤로그에 보니 이 책은 위에 말한 어떤 한 분야의 책이라기보다 출판사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책을 내자는 제안에 따라 쓰게되었다고 하는, 무겁지 않은 인생론이라고 하겠다. 내 인생을 관통한 목표와 원칙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내 삶을 지배한 감정과 욕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과연 나는 내게 맞는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았다는 저자의 말로부터 인생론에 담아야 할 내용이 대개 이런 것들이구나 힌트를 얻는다. 말 만큼 글도 잘 쓰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고 실제로 글쓰기 특강 책을 냈기도 한지라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읽게 된 책이다 (소설로 등단한 경력도 있다는 것은 책을 읽고서 알았다.)

1장, 어떻게 살 것인가, 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 3장,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4장,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이렇게 네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읽는 동안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술술 읽혔던 터라 장이 어떻게 나뉘었는지 확인하지 않았는데 지금 리뷰를 쓰면서 각 장의 제목을 옮겨 적다보니 내용들과 연결이 되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보아도 그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산만하지 않고 짜임새 있도록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부모여서 그런가. 밑줄 그은 부분이 대개 부모됨에 대한 부분들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서 초등학생때부터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던 막내의 예를 들면서 재능없는 열정의 비극에 대해 얘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해야하는 일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고, 특히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젊은 세대들은 한번쯤 누구에겐가 자문을 구하고 싶어하는 물음일 것이다. 저자가 실제로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꼭 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4쪽)

즉,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수준에 도달할만한 재능은 못갖췄다 하더라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일, 자기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를 권하고 있다. 동감이다. 그래서 저자는 재능이 열정을 못따라가는 막내 아들에게 뭐라고 조언을 했을까. '축구는 그만 하고 공부나 해라.' 는 설마 아니었을 것이고. 축구 선수가 아니어도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축구 전문 평론가를 직업으로 권했다고 한다. 너는 얼굴도 잘 생기고, 축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또 좋아하고, 영어도 잘하고 우리말도 잘하니 유학도 다녀오고 스포츠 마케팅도 공부하면 축구선수 못지 않은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평론가라 될거라고 했단다. '축구는 그만 하고 공부나 해라'와는 완전히 다른 조언이 아닌지.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에게도 때에 따라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유연성 있고 긍정적인 방향 제시를 할 수 있어야 살면서 주저앉게 되는 수많은 좌절과 절망의 자리에 희망을 심을 수 있지 않을까. 포기 대신 융통성을, 중단 대신 방향 전환을.

부모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잘못은 자녀의 삶을 대신 설계하고 자녀의 행복을 대신 판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만약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꿈이나 희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소망을 자녀에게 투사하지 말하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제해서도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거부할 수있어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213쪽)

 

2장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는 존엄한 죽음, 자유 의지, 죽음에 대한 나의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놀기와 일하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자기는 놀기를 택하겠다면서 학생때부터 정치, 운동, 야학, 유학, 출판사, 책 쓰기, 방송 토론 진행자 등등 자기가 거쳐온 일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다. 지나고 보니 한 가지 직업을 오래 해본 적이 없다고 하고,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해 남들이 말하듯이 성공이라고도, 실패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신념의 도구가 되고 싶지는 않고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아마 종교가 싫어서가 아니라 신념처럼 종교도  도구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나이든 보수 세력을 원망하지 마라, 그들도 젊을 땐 누구보다도 진보의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이라면서 진보였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보수성향으로 바뀌는 것은 흔한 일인 반면 젊어서 보수였던 사람이 나이들어 반대로 진보로 바뀌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며 세상과 타협하며 살다보면 계속 정신이 깨어있도록 노력하지 않는한 지금 진보를 외치는 우리들도 어쩔 수 없이 보수로 바뀌어 갈지 모른다는 경고.

책의 마지막에서 자기가 꿈꾸는 자기의 장례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그의 생각은 젊었고 유연했다.

하도 들은 바가 많아서 기대도 높았던 만큼, 대단한 감탄을 자아내지는 않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제목때문에 다소 무겁고 진지한 내용을 기대하며 여기 저기 밑줄을 그으며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에게서만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명문장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신뢰가 갔다고 하면 이상한가? 이 책은 내가 처음 읽은 유시민의 책이다. 그것도 거의 충동 구매로 구입한.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주시할 것 같고, 그의 다른 저서들도 들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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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1-3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씨도 제가 믿고 보는 저자 중에 한 분이예요ㅎ 아직 이 책은 보지 못했습니다만ㅎㅎ

hnine 2017-01-31 18:29   좋아요 0 | URL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자면 화제가 무궁무진 할 것 같은 사람이어요. 신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는 점이 특히 좋더군요. 저는 이분이 등단하셨다는 소설이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소리치는 바다
이덕자 / 여성신문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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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오래된 소설이라 알라딘에서 상품검색해도 제목만 나올 뿐 사진도 뜨지 않는다.)

 

 

 

 

 

 

 

 

 

 

 

 

 

 

이 덕자라는 이름. 현재 투병중인 이 소설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도 거의 잊고 지낼 만큼 그녀의 작품 발표가 한동안 없었고 더구나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거주중인 작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오래만에 그녀의 새로운 출판 소식을 접했는데 그것도 소설이 아닌 시집이라는 기사에 깜짝 놀라 시집은 물론, 그녀가 오래 전에 발표했던 소설들을 다시 구입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청소년이 주인공이었던 작가의 다른 소설 <햇귀>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녀 소설의 주인공들은 미국 거주중이고, 결혼 생활 끝에 자기 정체성에 고민을 하며 다른 돌파구를 모색, 가부장적인 남편보다 더 자기 삶을 옭매인 것은 자신이었다는 자각을 하는 여자들이다. 작가 자신이 결혼하여 수십년 미국 이민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작품 속 많은 부분 그녀의 경험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하며 읽게 되고, 엔딩에 더 신경이 쓰이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는 두 작품이 실려 있다. <소리치는 바다>와 <겁 (怯)>.

다음은 작가의 말이다. 그녀의 작품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

사는 것이 겁나는 분들과 나는 이 책을 나누어 읽고 싶다.

그리고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마침내 자살도 생각해보는 분들과 또한 나는 이 책을 나누어 읽고 싶다.

겁은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그것에 잡아먹히면 그때는 끝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소리쳐 우는 분들과 진실로 이 책을 같이 나누어 읽고 싶다. 내 친구 순이의 말대로 소리쳐 우는 바다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94년 4월 달라스에서, 이덕자

여기서 '겁은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그것에 잡아먹히면 그때는 끝이다'라는 문장도 어쩐지 눈에 익다. <햇귀>에서 그녀는 겁 대신 우울이라는 단어를 넣어, 그것에 잡아먹히면 끝이라는 말을 한 적 있다.

그녀의 소설들을 몇편 읽어보면 처음 읽으면서도 이거 예전에 읽었던가 하는 착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만큼 서로 비슷하다. 어쩌면 작가가 소설 속에 풀어내고 있는 것은 한가지 주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녀 마음 속의 응어리 (결국 이런 것들이 소설로 세상에 나오는 동기가 된다면)는 여러개가 아니라 하나의 아주 단단한 덩어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책중 <겁>을 읽으면서도 나는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소설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흔한 이름도 아닌데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소리치는 바다>에서 여자 정해는, 남편없이 억척스럽게 살아온 속물근성 엄마와, 엄마가 다른 남자 사이에서 낳은 배다른 오빠 정초와 함께 살고 있다. 이모 집 가정교사로 있던 가난하지만 일류대학 출신 남자와 결혼해서 전형적인 아내 역할로 살아온 그녀는 이제 대학생이 된 딸, 아들을 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문제거리가 없어 보이는 가정 주부이지만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나 남편과 둘만 남게 되자 비로소 남편과의 관계와 자신의 존재를 되돌아보고 나는 이제 어디에서 가치를 찾아야하는가 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여자를 우습게 보고 그녀의 얘기를 한번도 진지하게 듣지 않는 남편을 떠나기로 하지만 결말에서 결국 떠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다. 드물게 배경이 미국이 아니고 주인공이 이민자가 아닌 작품이다. 미국으로 이민했다 돌아오는 사람이 보조인물로 등장하긴 하지만.

 

<겁>은 서로 친구인 세명의 여자, 봉이, 두해, 달구의 이야기가 서로 번갈아 나오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고 산만하다. 셋중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계속해나가는 사람은 한명도 없어서, 봉이는 결혼 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던 노교수의 격려 속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고, 두해는 가부장적이고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떠나며, 달구 역시 남편을 떠나 아버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단편적인 내용만 몇줄로 적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이들 셋의 지나온 세월에 대한 반추, 후회, 자기 모색, 그리고 앞으로는 달라지고자 결심하기까지의 갈등, 고민, 방황으로 채워져있다. 그러면서 버지니아 울프를 자주 언급한다. 그녀의 생을, 그녀 작품 속의 자유롭지 못한 여성을 작가는 자기 작품 속에서 재현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 작품을 써가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버니지아 울프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출판된 1994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이니 지금 상황이 많이 달랐다. 세월이 흘러 읽어도 여전히 와닿는 작품들도 있고, 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많이 읽히고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아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그 가치가 더해가서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들도 있다. 그건 아주 혜택받은 몇 안 되는 작품의 경우이겠다. 이덕자의 소설들은 1994년 당시 읽었을때 처럼 새롭지도 않았고 일부 대화는 신파로 보이는 점도 없지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이 하고 있는 고민에서 지금의 여성들은 자유로운가? 이제 더이상 그런 결혼 생활, 그런 속박으로 자기 생을 소모해가는 여성은 없는가? 어쩌면 페미니즘 이론서를 읽는 것과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문제를 피부에 와닿게 느낄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20대, 한참 그런 생각들로 머리를 채우고 있을 때 이덕자의 소설들을 찾아 읽었고 그래서 고민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고민과 문제를 더 넓히고 깊어지게 해버렸다. 이덕자의 소설들은 그런 관점에서 읽는 것이 더 잘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신한 스토리로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내 친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얘기를 마치 수기를 읽듯이,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용하지만 피흘리는 싸움의 과정을,그리고 결과를 눈으로 읽어가듯이.

 

벌써 몇년 째 투병중이라는 작가. 부디 회복되어서 그동안 그녀 안에서 다듬어지고 새로 태어난 성찰의 결과를 새로운 작품 속에서 또 만나고 싶다.

 

* 이 리뷰의 제목 <왜 그녀들은 절망하는가>는 책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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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9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1-29 19:47   좋아요 0 | URL
리뷰에도 썼지만 지금 읽으면 약간 신파조 같은 대화, 표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전 이 작가의 첫 소설을 읽었던때의 느낌 때문에, 그리고 이 작가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분들에겐 아마 거슬릴지도 모르겠어요. 처음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때 저는 결혼, 연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였고,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또한 매우 강렬했던 때였기 때문에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 작가의 소설들을 그냥 마구 흡수했던 것 같아요. 주제를 막론하고 책이란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쪽으로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지 않나요? ^^ 전 그런 것 같아요.
 
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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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보니 제목도 다시 보게 된다. 플루언트 (Fluent).

책의 내용으로 보아 유창하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일것이다. 흐른다는 뜻의 flow와 모양새가 비슷하다. 말이나 글을 물 흐르듯이 한다는 것은 곧 유창하다는 뜻이 될테니까. 동종 계열의 단어로 fluid를 떠올린다. 확인겸 그가 책 속에서 권해주기도 한 Oxford dictionary 사이트에 들어가서 fluent라고 쳐본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마지막 줄에 그 단어의 어원이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과연. 16세기 후반,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라틴 동사는 fluere.

어릴 때 누구나 읽는 동화 신데렐라 이야기가 나 어릴 때 집에 가지고 있던 동화책에는 제목이 재투성이 아가씨라고 되어 있었다. 신데렐라가 왜 재투성이일까, 어릴 때 무심코 가졌던 궁금증은 나중에 대학에 가서 Vocabulary 공부를 하다가 신데렐라 (cinderella)의 cinder가 재(ash)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서 풀리게 되었다. 단어는 그냥 외워서 알아가는데 아니라 이렇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구나,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보는 영어 명칭이나 길을 지나다 가게 이름을 보고도 저 이름은 무슨 의미일까,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왜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나는 그냥 궁금해 했을 뿐이지 이 책의 저자처럼 체계있게 찾아보고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면 몇 개국어를 할 수 있느니, 언어의 천재니 하는 꼬리표는 방송에서 붙였다 하더라도 이 책의 저자는 원래 언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면서 확실히 언어에 남다른 흥미와 능력을 가진 것은 맞는 것 같다. 저자에게는 몇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고 언어의 기원과 관계, 역사를 파헤쳐 나가다보니 자연히 관련있는 언어들에 능통하게 된 것 같고, 타 지역 언어는 어떻게 다를까 관심이 가다보니 중국어까지 배우게 되었으리라고 본다.

 

구글 번역기의 등장은 언어 학습의 필요성을 감소시킬 것인가?

장기적인 언어 학습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구글번역기 등의 기계적 통역 기술이 발달하면 오히려 기계가 따라 올 수 없는 감정 소통까지 가능한 수준의 영어 능력자를 필요로 하는 곳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32쪽)

그러면서 영어로 감정 소통까지 하려면 적어도 매일 1-2시간씩 5-7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어 공부는 감성투자라는 점에서 연애와 비슷하다나.

 

 

언어 능숙도로는 부족하다

촘스키에 의하면 언어 능숙도란 한 언어의 문법으로 표현 가능한 모든 문장을 만들어낼 줄 아는 문장 생산 능력이라고 했다. 그런데 힘스라는 언어학자는 촘스키의 이론으로만은 부족한데, 언어 능숙도와 함께 소통 능숙도가 합쳐져야만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1쪽)

 

만약 하루에 1시간 정도 영어 공부를 한다고 치면 미국인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블로그에 게재한 글, 신문기사, 영미 영화 감상에 30분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므로 저 사람이 왜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말을 하지? 라는 의문을 많이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문법 이해가 어려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56쪽)

 

영어는 휘어쓰는 언어 (굴곡형태론, infectional morphology)

한문이 단어를 다루는 방법을 블록 쌓기에 비유하면, 영어는 철사 구부리기에 비유할 수 있다. 영어는 단어를 철사처럼 휘어쓰는데 고수다.

broad (넓다)- breath (넓이)- broaden (넓게 하다) (111쪽)

 

그 언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문장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짧아진다. (151쪽)

 

Stick (삐죽하고 가는 막대기)와 Style (글씨체, 그사람안의 독특한 무엇)이 무슨 관계?

영어 단어 가계도를 그려보면 그 단어의 비밀을 알 수 있다 (199쪽)

 

형태소 (morphem):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의 단위.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203쪽)

 

저자가 권장하는 외국어 공부 방법

마치 다이어트의 진정한 만고불변의 진리는 덜 먹고 더 움직여라인 것처럼, 언어 공부의 만고불변의 진리는 명작, 특히 시를 많이 낭독하는 것이다. (254쪽)

1. 시어는 그 언어의 원초적 소리를 귀에 잘 담을 수 있게 해주어 특유의 음감을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2. 영어 특유의 표현법을 저절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독해력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는 소네트라는 형태의 영시로, 길이가 13줄 밖에 안 된다. 만약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00편 정도를 골라서 낭독하고 제대로 해석하는 훈련을 해보면 그 안에서 영문법의 거의 모든 형태와 구어체적 변형을 접할 수 있고, 영어에서 가장 흔한 비유법, 그리고 영어의 근본이 된 중세 영국의 우주관과 인생관, 세계관까지 이해할 수 있으므로 영어 공부가 좀더 쉬워질 것이다. 이것은 영어 중급자가 고급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물론 지름길인 만큼 조금은 험난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한 구절을 치면 현대 영어로 풀어서 한단어 한단어 주석을 달아놓은 영어 웹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어 옛날 처럼 꼭 문학에 능통한 스승이 없어도 혼자 집에서도 쉽게 공부할 수 있다.  (266쪽)

 

영어 작문 실력을 늘리는데 저자가 사용한 방법

1.영미권 문학자가 쓴 시나 간단한 소설 문단을 읽고 마음에 드는 몇 문장을 골라 힙합 버전, 텍사스 농민 버전, 신문 기사 버전, 학교 리포트 버전 등으로 바꾸어 써보는 연습을 했다.

  •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Shakespeare
  • Should I keep on livin' or should I blast myself. - 2PAC (미국 힙합가수)

 

2. Copychange 방법

좋은 글을 골라 골격은 그대로 두고 단어만 바꿔보는 방식

  • The winter kept us warm. - T.S. Eliot의 <황무지> 중에 나오는 표현
  • The blanket kept us warm.
  • The fire kept us warm.
  • The ramen kept us warm.
  • The stove kept us warm.
  • The socks kept us warm.

이런 훈련은 매일 영어로 A4 반 페이지 정도의 글을 쓰고, MS워드의 문법 체크 기능을 이용하면 더욱 쉽고 빠르게 영어 글쓰기 실력을 높일 수 있다. (268쪽)

 

고전의 의미와 의의

흔히 문화인이란 고전에 능통한 사람을 말한다. 노래 가사, 드라마, 영화 등 문화의 산물은 여러 매체를 통해 현재진행형으로 쉬지 않고 생성되고, 유행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중 어떤 것은 소멸되지 않고 축적되는데, 이렇게 축적된 문화의 산물은 언어를 떠받치는 공통 문화 지식이 된다. 그것을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문화권 안에 축적된 공통 문화 지식이 많을수록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이론적인 이야기를 더 함축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서 고전에 대한 지식은 문화인의 척도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270쪽)

한 언어 개념의 공통적인 레퍼런스가 되어 주는 것이 고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271쪽)

 

 

유치원에서 이미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서까지 우리가 영어에 투자하는 돈, 시간, 노력을 생각하면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남의 나라 언어에 과소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글을 몰라도 사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듯이 영어에 자신이 없으니 불편하다는 것은 일상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마주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영어를 잘해야할 필요가 있는 사람 보다는, 영어라는 언어를 알고자 하는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더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후자의 경우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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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1-2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승연 정말 똑똑한 사람 같아요.
오늘도 <어쩌다 어른> 지난 재방송 받는데
제가 원래 영어는 영 잼병이거든요.
이런 사람이 가르쳐 주는 영어라면 꽤 흥미를 갖고 공부했을 텐데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정말 한심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뭐 남 탓 해 봤자지만 말입니다.ㅠ

hnine 2017-01-24 16:11   좋아요 0 | URL
어딘가 특출한데가 있다 싶어 저도 좀 일찍부터 관심있게 보아왔는데 어머니가 보통 한국의 어머니들의 교육 방식과 좀 다르게, 개방적이면서 개성적으로 형제를 키운 것 같더라고요.
<어쩌다 어른> 조승연편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보니, 이런 얘기들을 그동안 하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자기가 자신있는 분야의 얘기를 그야말로 유창하게, 유감없이 풀어놓았더라고요. 감탄했습니다.

해피북 2017-01-2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승연씨를 비밀독서단에서 처음 봤는데 그때는 그 멤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납니다. 외국생활을 오래해서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약간 다른 사고방식이라고 멤버들이 이야기할때 좀 안타까웠는데, 저두 어쩌다어른을 보고 언어의 기원을 찾아 공부한다는 이야기에 놀라기도했고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도 했어요. 이분 책 읽고싶었는데 좋은정보 얻고 갑니다^~^

hnine 2017-01-24 21:57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떄 미국에 건너갔으니 외국 생활을 오래하긴 했죠. 조승연 출연 여부와 상관없이 저도 비밀독서단 참 재미있게 봤었어요. 안 읽은 책 소개하는걸 듣고 있어도 어찌나 머리에 쏙쏙 들어오던지.
필요에 의해서,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과는 말할 때 눈빛이 다르다고 느껴지지요.
이 책,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릴만 합니다.

세실 2017-01-2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기억할게요^^
유창하게, 유감없이...저도 장바구니에 담아 봅니다.

hnine 2017-01-26 11:10   좋아요 0 | URL
공부를 하다보면 자기 만의 방법을 찾게 되기도 하는데 그때가 바로 어떤 경지? 수준?에 오르는 시점이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실험실에 있을 때 보면, 처음엔 다른 사람이 해서 인정받은 방법을 사용해서 익숙대로 실험을 하다가 논문 쓸 때 쯤 되면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겨나게 되고, 그러다가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않은 방법을 찾아내면 그때 논문을 쓰게 되는 경우 처럼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해서 인정받은 방법대로 잘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셰익스피어 소네트 저도 검색해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서니데이 2017-01-2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7-01-27 05:53   좋아요 0 | URL
복 많이 받으세요~
 
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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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을 좋아해서 편식하듯 읽어온 날들에 비하면, 한동안 읽지 않고 지냈다고 해도 그 기간은 잠깐일지 모른다. 그래도 이 책을 앞에 두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한국 소설과 떨어져 지내온 나를 다시 흔들어 깨워줄 것인가.

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글을 읽어본다. '안동에서 태어나 열두해를 살고 대구로 터전을 옮겨...'

안동이라. 글을 읽어보기도 전에 안동 출신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이름이 주루룩 떠오른다. 유안진, 권여선, 김서령... 나의 넘겨짚음일까. 이들의 글은 다르면서도 어딘지 공통점이 느껴졌었다. 뭐라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와 느낌. 김살로메의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느낌이 혹시 더 선명해질까 아니면 그저 우연에 불과한 느낌이었다는 쪽으로 기울게 될까.

열개의 제목에서 처음 골라 읽은 것은 역시 책 제목과 같은 <라요하네의 우산>이었다. 나중에 다른 작품들을 읽고보니 이 작품 속 인물은 그래도 평범했다. 지미와 샌드리라는 이름도, 라요하네라는 특이한 여행지 이름도, 샌드리의 강박증도,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출소하는대로 다른 여자와 살기로 선포한 지미 남편도, 모모의 아르튀르라는 우산과 연결시켜 맺는 결말도. 극히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단편을 읽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다음에 읽은 작품은 <알비노의 항아리>.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소설 중에는 다 읽고 나면 그래서 더 좋은 작품이 있고, 제목에 비해 식상한 수준의 내용에 실망스러운 작품이 있는데,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참신한 내용이기가 쉬운가. 수백년이 흘러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가부장적 사고방식, 여자의 희생과 양보가 강요되는 사회의 한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그 사회의 일원임을. <암흑식당>의 배경과 인물들은 또 얼마나 기발한지. 암흑식당이라는 아이디어의 출처가 어디든 상관없이, 배경과 주제와 인물 묘사가 딱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의 내력은 곧 가족의 내력. 떨치려 몸부림치지 않는한 가족의 내력은 그대로 나의 몸과 정신에 자리잡고 내 인생 속에 되풀이된다. 좋아할 대상으로서 남자를 늘 옆에 두어야만 하는 주인공도, 도벽을 버리지 못하는 여동생도. 그래서 <귀휴>는 인정해야하는 쓸쓸함이었다. 적당히 추리 기법이 도입되어 궁금증에 끝까지 단번에 읽어야했던 <피의 일요일>. 작가는 뻔한 반전의 결말 대신 마지막 한줄에 해당하는 말은 비워둠으로써 이야기의 격이 살아있도록 했다. 이것은 <누가 빈지를 잠갔나>에서도 마찬가지. 누가 빈지를 잠갔을까? 빈지문이란 어떤 문을 말하는지 작품속에서 작가는 이렇게 저렇게 묘사하느라 애썼는데, 정확한 명칭은 몰랐어도 그게 어떤 문을 말하는지 나는 금방 떠오르더라. 지난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할때 과연 나의 기억은 얼마나 객관적일까.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보다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술술 드러나게 될 것이다. 빈지문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듯이 <강 건너 데이지>에 나오는 듀란듀란의 리플렉스라는 노래를 일부러 검색해보지 않아도 알만한 세대인 나는 그 오래전의 그룹과 그들의 노래를 작품 속에 끌어다가 쓸 수 있는 작가의 솜씨가 부러웠다. <왼손엔 달강꽃>까지 읽으니 작가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작품 속 인물을 다양하게 설정하는지 탄복하게 되었다. 한지를 뜯어 인형을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 그녀가 만들고 있는 인형은 단순히 장식품이 아니라 그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녀의 소망이 있고 상처가 있었다. 왼손에 달강꽃을 들려준다는, 인형 만들기의 마지막 단계를 남기고 이야기는 끝난다. 인형의 완성까지가 아니라 완성 이전 마지막 단계를 남기고 끝내는 것은 작가의 의도였을까? <아폴로를 씹었어>의 아폴로는 물론 우주선 아폴로가 아니라 나 어릴 적 구멍가게에서 팔던, 불량식품이라며 먹지 말라고 해서 쉽게 손이 안가던 추억의 주전부리 명칭이다. 글 쓰고 싶어하는 새터민 오희와 다른 새터민 사이의 갈등을 이렇게 의뭉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다니 작가가 다루지 못할 인물이란 없나보다 싶었다. <아빠는 시인이다>, 비교적 내용 예측 가능한 제목답게 장래 시인을 꿈꾸는 아들이 본 시인 아빠의 이야기이다. 요즘 같은 때 서사시를 주로 쓰는 아빠를 비록 삼류 시인이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그래서 시인이라는 자기의 꿈을 포기하는 대신 오히려 아빠를 위로하고 싶어하는, 자기의 꿈에 힘을 주고 싶어하는 따뜻한 아들이다.

 

작가는 열 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인물 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들이 딱히 우리 사회의 낮은 지대 인물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의 삶이고 나의 삶이기도 한, 겉으로 드러나는 직업이 무엇인가를 떠나서 우리가 과거에 걸어갔던 길일수도 있고 지금 걷는 길일수도 있는, 그런 인생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일희일비 하지 말자고.

첫 소설집이라는데 이렇게 문장이 자연스럽고 원숙하고 넘침도 모자람도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오래 공들이고 가꾸어온 시간들이 작가에게 주는 보상일까. <아폴로를 씹었어>에서 화자가 새터민 오희에게 그러지 않던가. 쓸 사람은 누가 뭐래도 쓰고 만다고. 쓰지 않고는 못배기기 때문에 쓰는거라고.

 

근래 주로 번역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말임에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신경을 곤두세워 어색한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야했다면, 우리말로 우리말답게, 우리 정서에 맞게 잘 쓰여진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만족이었다.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문장 여기 저기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정서, 민중의 삶, 우리 전통의 음과 양. 피부를 찌르고 지나가는 짧고 통렬한 재미가 아니라, 낮고 깊게, 서서히 퍼져나가는 재미. 오랜만에 한국 소설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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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2-05 00:36   좋아요 0 | URL
아이쿠, 아닙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만 ^^
객관적으로 쓴다고 썼는데 모르겠네요.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세실 2017-01-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삶이고, 나의 삶이기도 한.......우리 주변의 이야기일듯한.
벌써 읽으셨군요.
공들여 쓴 소설, 맛있게 익었죠. 참 멋진 팜므님^^

hnine 2017-01-22 19:33   좋아요 0 | URL
읽던 책이 있었는데 안그래도 진도가 안나가고 있던터라 결국 집어던지고 이 책 부터 읽었답니다. 가독성있더라고요. 다음 소설도 계속 내실게 틀림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2017-01-23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3 0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이지 않는 인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1
랠프 엘리슨 지음, 조영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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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웰즈의 과학소설 <투명인간>을 떠올린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과 별개의 작품으로서 1952년 미국 태생 작가 랠프 엘리슨의 소설이다.

랠프 엘리슨이 흑인 작가라는 점, 설명이 필요없을 책 표지의 저 그림,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책 제목. 이것들로 미루어 벌써 이 책이 대강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간다면 그것이 곧 이 작가가 7년이라는 집필 기간을 거쳐 자기 경험이 녹아들어간 이 작품을 쓴 동기가 될 것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 검고

우울해야 하는가

이 책의 프롤로그에 인용된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일부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런 생각 할때처럼 억울함이 북받혀오를때가 또 있을까.

책속의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건 그가 흑인 혈통이라는 것을 평범이라는 범주 속에 넣었을 때의 얘기다.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노예였으나 이미 오래전에 자유의 몸이 되어 평생을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란 나는 어느 날 할아버지의 임종때 평생 그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을 유언을 듣는다.

"얘야, 내가 죽은 뒤에도 너는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우리네 삶이란 전쟁이야.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배신자였어. (...) 예, 예 하면서 상대방을 사로잡고, 웃으면서 그놈들의 발밑을 파는 거지. 놈들에게 죽고 파멸당할 때까지도 복종하는 척 하라는 말이야." (29쪽)

여기서 상대방, 그놈들이 가리키는 것은 물론 백인들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할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던 모든 가족들은 충격을 받는다. 주인공은 부디 이 유언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어떤 위기 상황에 닥칠때마다 이 유언들 떠올리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식 연설을 잘했다는 포상으로 마을의 유지들 모임에 초대된 주인공. 주인공을 포함하여 거기 모인 흑인 소년들은 백인들의 눈요기와 즐길 거리 제공 목적으로 계획된 배틀에 참여하도록 강요받아 하게 되고 웃음과 조롱을 받는다. 그래도 이 순간을 견디면 인정받을 거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과연 그 희망은 쓸데 없는 것이 아니어서 대학에 진학하는 기회를 하사받는다. 

희망과 기대로 시작한 대학 생활. 흑인인 총장의 추천으로 이 대학의 후원자인 백인 노턴씨의 운전기사로 일을 하게 되는 주인공. 언제나처럼 열심히 자기 본분을 다해 일하지만 우연히 어떤 불행한 상황에 휘말려 학교에서 쫓겨 나게 되고 일거리를 찾아 뉴욕으로 가지만 총장이 써준 추천서가 무색하게 일자리 찾기는 어렵기만 하고, 그나마 어렵게 구한 마지막 일터에서 조차 오래 발붙이지 못한다. 학교에서 쫓아 내면서 총장이 선심 써서 뉴욕으로 일자리를 추천해준 것으로 알고 갔지만 나중에 밝혀지는 추천서 내용은 이 사람을 고용하지 말것이며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 주인공은 점점 자기의 현실을 깨달아가고 할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린다.

할렘의 어느 현장에서 우연히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본 동지회라는 단체의 눈에 띄어 여기 일에 가담하게 된다. 동지회란 피부색을 떠나 사회 정의를 실현하자는 단체인데 백인 흑인 따지지 말자는 주의라서 정작 흑인들에게는 배반자로 불리기도 하는 단체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인공은 그의 가치를 인정받는 대신 단체의 목적에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쫓기고 도망가는 가운데 지하 맨홀 같은데로 떨어진 그는 자기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으로서 살았다기 보다 누군가의 꼭둑각시로 살아왔고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한 모습으로 살아왔다는 것, 그것이 더 우선이었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은 프롤로그 장면가 일치한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갈거라는 독백.

그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내용중에 흑인이 뭔가 윤리적,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때 비난받기보다 오히려 백인 사회로부터 동정과 위로를 받는 경우가 나온다. 비난 받고 방해 받는 것은 오히려 잘못을 저질렀을 때가 아니라 흑인이면서 뭔가 제대로 일을 해내었을 때. 이런 사회 시스템에서 흑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주인공의 잘못일까.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도서, <타임> 선정 현대 100대 영문 소설,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이 책에 붙은 저 문구들. 그래 뭐, 읽는 동기야 어쨌든 상관없겠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굳이 흑인이 아니더라도, 소설의 삶을 실제로 살아왔고 현재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겠다.

 

 

 

* 별 세개인 이유: 글의 주제와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너무나 두드러져 주장과 웅변처럼 읽히는 부분이 꽤 있다. 문학성으로 더 승화되고 스며들게 표현되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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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12-3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연말을 맞아 새해인사 드리러 왔어요.
올해도 좋은 시간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행복 가득한 새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6-12-31 17:32   좋아요 1 | URL
서재를 따뜻하게 해주시는데 서니데이님의 공이 커요.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더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서니데이님, 느긋하고 평안한 새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