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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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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이라고 부제가 붙어 있다. 맞다. EBS 에서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해오고 있는 피디의 취재 일기이다. 심각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지한 성찰의 산물이라기 보다 직업으로서 여러 나라를 취재 다녀야했고, 그때 그때의 느낌을 적은 글을 모아놓은 것, 딱 거기까지. 문학을 전공하였고 이미 여러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력에 문학 서적의 번역까지 여러권 낸 연륜이 있는 저자이기 때문에 남다른 감성도 엿보이고 글솜씨도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각 모음글의 소제목에서도 뭔가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다 읽고보니 제목은  저자가 직접 정했을수도 있었겠지만고 어쩌면 출판사 편집자가 정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편집자가 누구인가. 문학동네 김민정 아닌가. 제목 잘 뽑기로 유명한. 저자의 이력을 볼때 좀 더 공을 들였더라면 훨씬 더 울림있는, 책을 다 읽고 덮으며 뿌듯할 수 있는 책을 낼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순간적인 느낌을 매끈한 문장으로 잘 표현한 글과, 더 나아가 그 느낌을 어떤 주제와 연결시켜 자기만의 생각이 담긴 글로 탄생시키는 것과의 차이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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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7-03-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외출장 다니면서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아..
제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건데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출세 중에 출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hnine 2017-03-03 13:43   좋아요 0 | URL
해외출장을 자주, 여러 곳을 다녔기 때문에 아마도 쓸거리는 이 책 한권 분량보다 더 많을것으로 짐작되어요. 그런데 아마도 출판사의 의뢰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의 거의 대부분이었는지, 글과 사진 모두 저에겐 좀 아쉬웠답니다.
 
당신이라는 안정제
김동영.김병수 지음 / 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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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둘이다. 김동영, 김병수.

김동영은 처음 들어보지만 김병수라는 정신과 의사는 알고 있었다.

원래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오고간 진료 기록은 비밀에 부쳐져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가 되나보다. 환자로서 7년째 진료를 받고 있는 김동영이 그동안 환자와 의사로서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 내용들을 책으로 내보자고 김동영이 먼제 의사인 김병수에게 제안하였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은 환자로서 김동영과 의사로서 김병수가 서로 번갈아 쓰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럼 환자로서 진료를 받고 있는 김동영의 문제는 무엇인가.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무려 서른 몇가지의 병력을 열거해놓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모두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님에도 본인은 아직도 자기는 정상적인 생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오히려 <이미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라는 장에서 자기의 고통을 녹여버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까지 하지 않는가.

-규칙적인 생활

-가벼운 운동

-담배 끊기

-매일 해를 삼십 분 이상 보기

-건강한 식단

이라고. 그런데 김동영에게는 이것들을 모두 지키는게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만 어려운게 아닐 터인데. 이럴때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치료법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가 <이기적으로 살 것>이었다고 한다. 대개 소심하고 표현못하고 안으로 삭이는 사람들의 문제점이라는 걸 알고서 한 조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음장에 김병수가 쓴 장의 제목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은 A와 B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데 둘 사이에서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을 계속하는 것, 즉 결심과 드러나는 행동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서 A라고 결정하든 B라고 결정 내리는 그 이익과 손실이 50대 50이야 라고 여기고 있다는 뜻이란다. 그럼에도 상대가 하는 걱정과 갈등을 계속 들어주는 이유는, 말을 통해 전달되는 관심과 애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불꽃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라고. 우리가 누군가의 고민과 푸념과 걱정을, 반복해서 들어준다고 할때 우리의 역할은 그에게 꼭 어떤 해결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행위를 통해서 그에게 마음의 평화와 의욕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다.

에밀리 디킨슨, T.S. 엘리엇, 스콧 피츠 제럴드, 빅토르 위고, 막심 고리키, 존 키츠, 헤르만 헤세, 실비아 플라스, 유진 오닐, 어니스트 헤밍웨이, 톨스토이, 버지니아 울프, 존 러스킨, 에밀 졸라. 이들은 모두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를 앓았던 작가이며 이 외에도 무수히 많다고 한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약을 처방받아 먹는게 이상한 일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울증과 조울증은 공감 능력, 현실 감각, 창조성, 회복탄력성을 키워준다는 말에 의아하기도 했으나, 이런 경험을 겪고 나면 (잘 겪어내고 나면), 타인의 아픔에 더 공명할 수 있게 되고,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서도 시대정신을 냉철하게 읽어내는 현실감각을 유지하게 도와준다고. 마음의 고통을 이겨낸 경험은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예술 혹은 창조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자세히 관찰하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호기심때문이다. 내가 내린 결론 중에 하나는 창조적인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움을 더 많이 겪고, 그것을 더 많이 참아낸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정신적 광기가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힘든 인생을 살았어도, 극복하고 이겨내고 그 경험을 재창조하고 승화해낸 사람이 예쑬가라는 것.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사람만이 창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묵묵히 견뎌내며 시간이 바꾸어놓은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하고 나는 믿고 있다. (80쪽)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기분 장해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서 옮겨보았다. 묵묵히 견뎌내며 관찰하고 기다리는 것.

141쪽 <불안의 대가>라는 장에서는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 그 자체가 치유일 거라는 말도 했다.

인도게르만어로 자유 (freiheit),  평화 (friede), 친구 (freund)의 어원이 모두 사랑하다 (fri)라는 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친구와 사랑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셈이라면서, 진정한 자유는 혼자가 아니라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할 줄 아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진정한 평화는 혼자가 아니라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 묶여있지 않음으로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게 아니며 혼자보다 둘이 되어야 평화로워질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둘 이상이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 우리의 삶이라고 했다. 꼭 부부나 애인 같은 관계를 말하는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귀찮아 하거나 내게 불편함을 주는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그들과 잘 관계 맺는 방법을 생각하며 살라는 의미로 본다.

우리가 불안하고 고통스러울때 찾게 되는 안정제는 내 손에, 내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정신과 의사는, 그리고 책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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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마주한 고전 - 전문번역가 이종인이 추천하는 시대의 고전 360
이종인 지음 / 책찌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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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기 알라딘 서재에 내가 올린 리뷰가 869편. 책을 읽고 나면 좋았든 그렇지 않았든, 짧게든 길게든, 읽었다는 흔적을 그렇게 남겨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즉, 나에게 있어 책읽기 행위란 읽고 나서 감상을 기록해놓은 것 까지 라고 할 수 있다. 감상문이라고 할지 독후감이라고 할지, 이책을 읽고 나니 내가 그동안 여기에 써온 그것들은 구슬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겠다. 구슬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관련된 책을 연결시켜 나름대로 하나의 키워드로 묶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수준이 바로 그 목걸이를 만드는 작업에 해당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이종인은 번역가로 그 이름이 눈에 익은 분. 알고 보니 대단한 독서광이다. 360편의 책, 특히 근래에 출판된 책 보다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 우선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평소 그의 독서 이력을 잘 알고 있는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이 책을 엮게 되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장으로 나누어 인생의 사계와 어울리는 책들을 모아 놓았다. 첫장 첫 책은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 제목을 "딸에게 아버지란"이라고 붙였다. 책을 읽고난 느낌을 한 마디로 응축한 것이 서평의 제목이라고 본다면 이분의 제목 정하는 능력은 평범하지 않다. 몇 가지 예로 들어보자면, "조건의 아버지, 무조건의 어머니 <소유냐 존재냐>", "모든 문학은 가족 로망스에서 출발 <프로이트 전집 9권>", "여름이 되기 전에 읽을 것 <잎 속의 검은 잎>", "무의미한 스트레스, 유의미한 스트레스 <파블로프>", "신데렐라 스토리와 페미니즘 연구 <제인 에어>", "완벽하게 생을 마무리하려는 착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없는 줄 알기에 꿈꾸는 그것 <유토피아>", "괴테의 정신적 자서전 <파우스트>", "카르페 디엠은 놀지 말고 뭔가를 하라는 뜻 <서정시 11, 카르페 디엠>".

특히 제인 에어를 신데렐라 스토리로 본 점,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있다면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허레이쇼 앨저 스토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용상 관련이 있는 책들을 같이 소개하기도 하고, 제인 에어의 경우처럼 <레베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등을 제인에어에서 변형되거나 응용된 후속작으로, <오트란토 성>, <우돌포성의 신비> 같은, 나로선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이 소설들은 제인에어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고딕 로망스로 소개하기도 했다. 세익스피어 희곡 속의 장면이나 대사가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의 고전 작품에서 인용된 예도 찾아서 보여주고,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나 대사때문에 지금까지 하나의 관용적 표현으로 쓰이는 예를 소개한 것은 아마 그의 오랜 번역가로서의 연륜일지. 당연히 여기 실린 360편의 고전 중에는 그가 번역한 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로마제국 흥망사, 흐르는 강물처럼, 중세의 가을 등).

서양 고전 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 소설 뿐 아니라 시집, 기독교 관련 서적 뿐 아니라 불교, 유교 관련 서적, 600여 페이지, 360편이라는 분량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는 실로 다양한 범위의 독서를 했다.

읽은 책은 읽은 책이라서 반갑게 읽히고,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듣느라 귀를 쫑긋 세운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중 가을에 해당하는 장에는 인생의 시기중 중년에 다가오는 고뇌, 반추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책들을 많이 소개하였는데 내 나이 때문인지 특히 더 공감하며 읽었다. 많이 알려진 시 <릴케의 가을날>의 마지막 연,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가 이제서야, 이 나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다니. 지금 의미없는 삶이라도 내일은 다르겠지, 다를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던 나이가 있었는데, 이제는 지금 의미없는 삶은 앞으로도 의미없으리라는 두려움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나의 우울의 한 축이 아니던가.

올더스 헉슬리가 <과학과 문학>이라는 책에서 했다는 말, "시인은 과학자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존재다"라는 문장은 꼭 기억했다가 인용해보고 싶다.

시작하는 문장이 유명한 책도 있지만 마지막 문장이 유명한 책도 있다. 이를테면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지도 혹은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라는 문장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의 끝맺는 문장인데 워낙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나도 알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같은 말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고전이란 그런 것.

독일의 문필가 빌헬름 셰퍼의 말, "작가의 임무는 단순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다."는 여러 군데서 인용하고 있는데, 작가는 아니더라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때 참고로 하면 좋을 말이다.

 

필자도 말했듯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읽는다기 보다 즐거워서 읽는다. 당시에는 일단 즐거워서 읽었던 책들이 인생의 어느 시기, 행복한 순간보다는 포기와 절망의 순간에 우리를 일으켜 세워준다. 일희일비의 경박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신간 소개에 혹해서 읽기보다 일단 사들이고 보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듯이 그는 상당수의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오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런 책이 있던가. 없지야 않지만 그저 몇권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책을 읽은 후 이렇게 인터넷 공간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동안 읽은 책들을 이렇게 정리해서 나만의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작은 결심을 하며 이 책 읽기를 마쳤다. 목걸이가 아니라 구슬의 나열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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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구슬의 1인 ㅡ 줄서고 갑니다. 고전의 향기가 물씬 나서 넘 좋게 읽었네요!^^ 독후감이든 독서 기록이든 있어야 제 스스로도 좀 편하더라는 말을 위로도 뭣도 아니게 남기고 가요!^^

hnine 2017-02-16 22:44   좋아요 1 | URL
이제 건망증까지 생겨서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어떤 책은 읽으려고 맘만 먹고 안읽은 책인지, 그러다가 결국 읽은 책인지, 읽다가 중단한 책인지, 도저히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ㅠㅠ
그리고 기록하면서 비로소 생각이나 느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드니까요. 생각이 허공으로 날라가버리지 않게 뿌리는 픽사티브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책은 두꺼운 것에 비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장소] 2017-02-16 22:58   좋아요 0 | URL
아ㅡ픽사티브 오랜만에 들어요!^^ 정말 딱 알맞은 단어 아닌가 싶고요!^^
음음, 그렇죠. 생각을 좀 ( 그저 잠시이든 오래든) 잡아줄 것이 우리에겐 기록 뿐이니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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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고 얕보지 마라. 너희들은 안늙을줄 아느냐."

어릴 때 할머니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이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의 그 말씀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었다.

할머니도 나처럼 어릴 때가 있었고, 나도 언젠가 할머니처럼 될 때가 올거라는 걸 새삼 떠올리면서 잠시 하던 일을 멈칫했었다.

이 책의 원제는 Being mortal. 영국의 극작가 뮤리엘 스파크의 장편 소설 Memento mori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저자 아툴 가완디는 의학과 더불어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현재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외과 전문의로 있으며 The New Yorker지 전속 필자로 있다. 이미 여러 권의 의학 관련 저서를 내서 이름이 알려져 있고 미국 최고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여받았으며 영향력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외과 전공의 1년차 때.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가족의 요청에 의해 빼는 임무를 그가 맡아 해야 했던 경험을 하고 나서라고 한다. 혹시 그 환자가 자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흡기를 빼내겠다고 환자에게 속삭이고 호흡기를 빼낸 후 확인을 위해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심장박동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2년전 아버지의 심장 박동수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간호사는 기계에 나타나는 숫자가 20이하로 떨어지거든 자기를 부르라고 일렀다. 그것을 기다리고 둘러 앉아있던 가족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생각하니 곧 떠나실 아버지도, 나도, 이 세상도,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책의 서문에, 그리고 본문 중에도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얘기가 자주 인용된다. 나 역시 읽고 나서 한 동안 머리속에서 이 소설 생각이 떠나질 않았고 지금도 종종 떠올리는 책이 아니던가.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고 비슷한 얘기들기 되풀이되는 내용이 아닐까 이책을 구입하기 전에 잠시 망설였는데,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번역도 억지스럽지 않게 잘 되어 있어서 읽기에 힘들지 않았고 많은 부분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밑줄 그은 몇 부분이라도 정리해보고자 한다.

 

-노화 과정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은 단일하고 일반적인 세포 메커니즘이 아니다. 

노화는 단일한 과정에 이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활성산소로 인한 세포의 손상, 무작위로 일어나는 DNA 변형, 그 외에도 수많은 세포 이하 수준의 문제들이 축적되어가면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점차적이면서도 가차없이 진행된다.

 

-노인병전문의 수요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적은 이유

의학계에서 그 수입이 가장 낮다는 것, 그리고 상당수 의사들이 노인을 돌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주된 증상 하나만 갖고 오는 게 아니다. 인터뷰한 한 의사 말에 의하면 노인이 하소연하는 증상은 열다섯 가지쯤은 된다고 한다. 그 많은 증상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또한 환자로서 노인을 상대하는것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훨씬 어렵고 소통의 문제가 있다. 병원에서도 노인병 전문팀을 두길 꺼려하는데, 병원내에 노인병 전문팀을 따로 두지 않고 그냥 환자를 받을 때보다 손해를 초래하여 적자를 보기 때문이다.

 

-노인병 전문의가 하는 일

노인병 전문의는 환자들의 신체와 신체의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영양 상태, 복용 약, 생활상 등도 계속 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환자의 생활방식을 재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려면 환자로 하여금 우리 삶에서 바꿀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노령과 생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지만 어쩌면 노인병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요양원 (Nursing home)이 우리나라보다 보편화되어 있는 미국. 하지만 요양원 시설이 아무리 훌륭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도 이곳에 들어온 노인들의 많은 수가 우울증을 겪는다. 현재 노령인구의 증가, 요양원에서서 죽음을 맞는 것에 대한 존엄성 문제 때문에 그 대안책으로 노인을 위한 생활 지원 주택 (assisted living house) 호스피스 케어가 증가하고 있다.

직원들이나 가족들이 무슨 짓을 해도 할머니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할머니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딱 집어내지는 못했다. 그저 이런 말을 자주 했을 뿐이다.

"여긴 집이 아니야." (109쪽)

 

저자가 자기 아내의 할머니의 경우를 예로 든 부분이다.

노인에게 적합한 의사가 항시 대기하고 있고 최적의 식단과 보호를 보장받고 있지만 노인들은 행복해하지 않는다. 당뇨병 환자가 먹어서는 안되는 쿠키를 먹었다고 할때 그게 자기 집에서라면 일탈로 끝날 수 도 있지만 요양원 내에서 그것이 발각될 경우에는 큰 죄책감과 조치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 해주는 대로만 받아야지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러한 기존 요양원과 다른 혁신적 대안으로 1983년에 문을 연 노인을 위한 생활 지원 주택 (assisted living house)은 아무도 보호시설에 감금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안전과 생존을 우선시하는게 의학계의 언어라면, 삶의 질, 존엄성, 자유의지를 고려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2003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은 11%에 불과했다.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1. 사람들이 잘 살아가도록 진심을 다해 돕는 일은 말로 하는 것보다 실제로 하기가 훨씬 힘들다. 예를 들어 이 시설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임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옷을 입혀 주는 게 스스로 입게끔 놔 두는 것보다 쉽고,시간도 덜 걸리고, 서로 마음 상할 일도 적어진다는 것이다.

2. 어시스티드 리빙이라는 개념, 즉 일상적인 삶을 돕는 일의 성공 여부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없다는 점이다. 반면 위생과 안전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밀한 평가 기준이 있다. 이쯤 되면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지 짐작할 수 있다. 시설에 들어가 있는 우리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하는 것보다 체중이 감소했는지, 약을 빼먹지 않았는지, 넘어지지 않았는지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3. 가장 실망스럽고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이 노인들을 위해서라기 보다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67쪽)

 

저자의 경우는 할아버지가 젊어서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고 할아버지 자신도,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두 의사를 지낸, 미국에서 소위 성공적인 정착을 이룬 가족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관습의 영향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대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172쪽)

 

-존엄사 (death with dignity)를 허용할때 생각해봐야할 문제점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그리고 미국의 오리건주, 워싱턴주, 버몬트주 등은 의사들이 안락사 처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2012년 현재 네덜란드인 사망자 35명 중 1명이 안락사를 선택했다. 이것이 안락사 허용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 실패의 척도다.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확보해 줄 가능성이 있는 완화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뒤처져 있다. 어쩌면 안락사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탓에 장애가 생기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고통을 줄이거나 삶을 개선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강화되어 있을 수도 있다.

안락사를 선택할 여지를 마련했다고 해서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 눈을 돌려 버리게 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크나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어시스티드 리빙'은 '어시스티드 데스 (assisted death)'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373, 374쪽)

 

-죽는 자의 역할

호스피스 케어의 목표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옆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처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최상의 나날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죽는 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어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지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죽는 자에게나 남는 자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380쪽)

 

그러면서 저자는 실제 자기 아버지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고 가족은 어떻게 그와 함께 했는지 자세히 적고 있다.

많은 사람의 생과 사를 경험했던 의사 (저자의 아버지와 저자 모두)이어도, 평소에 죽음에 대해 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죽음 앞에 침착한 사람은 없다.

통증을 경험한 사람에게 통증의 강도를 표시하라고 하면 통증을 경험한 전체 기간 동안 통증의 정도를 평균해서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통증을 경험한 정점과 마지막 순간의 통증을 평균하여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법칙에 따라 작동하지만 사람의 느낌과 정신은 수학과 화학의 법칙을 넘어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아버지를 떠올렸고, 아마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아버지가 생을 마치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90일의 기억에서 2년도 더 지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폐렴 치료차 병원에 가셨고 입원하라는 말에 입원하시고 치료를 시작하신지 사흘만에 의식을 잃으셔서 인공호흡기, 계속해서 진정제 주사, 식도 협착으로 인해 튜브로 영양 공급, 나중엔 투석에 기흉, 심정지로 인한 전기 쇼크까지, 옆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힘든 과정을 거치시는 동안 정작 아버지 본인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줄곧 의식이 없는 상태로 계시다가, 가족들과 한마디 인사도 없이 그대로 가셨다. 생전에 자동차에 기름도 반 이하로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미리 준비하시며 사셨던 아버지,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벌써 몇년 전 부터 장례 서비스, 수의, 장례 절차까지 다 준비해놓으셨던 아버지, 여행을 하시면 기차 티켓 한장도 버리지 않고 여행기와 함께 정리해두시던 완벽주의 성격의 아버지셨는데, 마지막이 저렇게 허망할 수가 있나 생각하면 지금도 모든 의욕을 잃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도 누구나 겪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던 그 사실을 다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관하지 않음을.

다양한 사례를 포함시키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주제를 벗어나지 않게 쓰여진 글이다.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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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8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2-08 19:26   좋아요 0 | URL
선택할 수 있는 정신이 있을 때 해놓아야 하는데, 그런 온전한 정신이 있는 동안엔 되도록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라서 이런 책을 읽고 자각을 해야할 필요가 있나봅니다. 그런데 경험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요. 한번의 경험이 미치는 영향력은 책이나 미리 학습한 것들을 가차없이 무너뜨리는 걸 느끼겠어요.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 중입니다 되도록 튼튼하게요 ^^

세실 2017-02-0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죽을 것인가...어떻게 살 것인가....
갑자기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웰 다잉.....중요하지요.

hnine 2017-02-09 20:25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종교가 있으시니까 종교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다보면 종교가 없는 저도 종교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되더라고요.
추상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미리 해놓은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더 나이 들어서 생각하려면 마음이 더 안좋을 것 같아서요.
 
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마침 이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전문 평론가가 아닌, 그저 책읽기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팟캐스트인데 황정은이라는 작가를 김애란 작가와 더불어 요즘 우리 문단에서 인정받는 젊은 작가라고 소개했다. 진행자가 무심코 한 말인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김애란과 황정은은 다른 작가들과 어떤 점이 다를까. 그들을 더 인정받게 하는 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김애란과 황정은 두 사람의 소설은 또 어떻게 다를까. 김애란의 소설은 좀 읽었지만 황정은의 소설은 책으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내가 알아낼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읽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조금 더 재미있으니까.

 

황정은의 문장은 지상에서 어느 만큼 공중으로 띄워져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아주 사실적인 문장을 지상의 문장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었을 때 물과 수증기는 본질은 같지만 이미 다른 형태, 다른 성질이듯, 지상에서 만들어져 공중으로 띄어진 문장들은 투명하고, 길지 않으며, 겉치레가 없다. 그런 문장으로 그녀가 하고 있는 얘기들의 내용 역시 문장의 형태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 지상에서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 공중에서 풀어내는 독백 같은 얘기들.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감정이 싹 가신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 그들은 무표정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듣는 우리들은 감정이 서서히 차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양의 미래>에서 서점 점원은 실종된 여학생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상류엔 맹금류>에서 여자는 남자친구 가족들과 수목원 나들이에 동행을 하는데 장소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가족들의 어색하고 궁색한 모습, 즐거워야 할 일도 즐거울 수 없는 가족의 모습이 싫어서 진심으로 합류하지 못하며 결국 남자 친구와도 헤어진다.

<명실>에서 독백을 하는 사람은 오래전 죽은 친구 실리를 회상하며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그 친구를 위해 그녀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하는 노인 명실이다.

<누가>에서 여자는 층간 소음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묘하게 묘사되어 있고,

<누구도 가본 적 없는>에서 부부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시도하는데, 오래 전 어린 아들을 잃고 황망해하듯이, 기차에 아내를 두고 내린 남편의 황망함으로 맺는다.

<웃는 남자>는 사고로 죽은 여자 친구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는 남자의 얘기이며

<복경>은 웃음을 팔아야 하는, 웃지 않을 상황에서도 억지 웃음을 지어야 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웃지 않을 상황에서 억지로 웃는 행위는 진짜 웃음과 구별하여 다른 단어로 따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말을 한다.

맨 앞에 나오는 단편 <상행>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내가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두번째 단편 <양의 미래> 역시 제목이 왜 양의 미래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명실에서 화자는 분명 죽은 친구의 얘기를 하고 있음에도, 글을 쓰고 싶어했던 친구의 얘기를 빗대어 화자가 또 다른 자기에게 하고 있는 얘기가 아닐까 상상하며 읽기도 했다. 즉, 명실이 곧 실리라고.

웃는 남자에서는 특히 황정은의 문장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읽다 보면 같은 뜻인데 다 다른 문장으로 거의 반 페이지를 단숨에 써내려간 것 같은 꽉찬 문단.

여덟 편 모두에서 누군가 아프고, 누군가 죽고, 거의 모든 화자는 희망없이 살고 있고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소설들이 희망보다는 절망, 허무를, 인생의 밝은 면보다는 어둡고 비극적인 면을 그리고 있지 않던가. 김애란 소설은 그래도 삶은 따뜻할 수도 있다는 여지라도 남기고 있다면 황정은의 소설은 (이 책에 한해서) 가차없이 그대로, 삶은 이렇게 쓸쓸하고 또 쓸쓸하다고 맺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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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7-02-04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이 김애란 만큼이나 사랑받고 독자군도 많이 갖고 있는 작가라는 것을 덕분에 알았으용 ㅎ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을 진짜 재밌게 읽었는데 말씀처럼 따뜻한 ~ .. 최근에 또 생각한 것인데 소설은 쓸쓸하고 쓸쓸한 것을 읽었을 때 더 진하게 남는 것이 있었던 것도 같고, 요즘엔 그마저도 그 무엇도 잘 읽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쫒기듯 살고 있는데, 이렇게 종종 들어와 나인님 글 읽고 있으면 참 고즈넉하고 아, 그렇구나! 이런 깨달음도 있고 넘 좋으네용 ㅎㅎㅎ

hnine 2017-02-04 09:37   좋아요 0 | URL
일단 이 두작가 모두 무슨 무슨 문학상 하는 상을 많이 받았고요.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고요. 두 사람 모두 팟캐스트 진행을 한적이 있는데 둘 모두 제가 빼놓지 않고 들어왔던지라 두 작가에 대해 자연히 관심이 있었어요. 황정은은 뭔가,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작가 같아요. 이 책에 보면 작가 소개글이 단 한 줄도 없어요. 작가의 말도 없고 평론가가 써주는 글도 수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데 황정은이 막상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웃기도 잘 하고 웃기기도 잘 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수록된 단편은 읽고 나면 마치 비를 쫄딱 맞고 불 없는 방에 혼자 들어오는 기분이랄까, 그런 집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느낌이랄까! 차라리 작가의 문장에 집중해서 보는게 어떨까 생각도 했답니다. 조용하면서 살아있는 문장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거든요.
이 책은 얇고 단편들이라서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요. 시간있으실때 한번 읽어보세요.

하늘바람 2017-02-04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야

황정은 안 읽어본 저를 안달복달하게 만드시는 리뷰신데요.
사실 전 나인님 리뷰가 어떤 팟캐스트보다 재미납니다.

hnine 2017-02-04 09:41   좋아요 0 | URL
글 쓰시는 하늘바람님 ^^,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왕 김애란과 황정은을 비교해놓았으니, 제 생각에 하늘바람님이 소설을 쓰신다면 황정은 보다는 김애란 쪽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만...
이 책에 실린 단편중 저는 <상류엔 맹금류>,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이 제일 좋았고, <웃는 남자>와 <복경>에서는 황정은 문장의 진수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답니다.

블루데이지 2017-02-0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hnine님처럼 동네 서점에 들러 데려오려던 책인데 상황이 여의치않아 알라딘에서 구입해 박스만 개봉해놓은 책인데 오늘 꼭 읽고싶은 조급증이 생길만큼 멋진 리뷰입니다^^ 잘 지내시죠?저도 잘 지내는듯합니다.

hnine 2017-02-04 20:26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정말 반갑고 반갑고 또 반갑고...
잘 지내셨지요? 지금도 대전에 사시는거죠?
황정은의 소설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한번쯤 읽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 그런 소설 같아요. 여기 실린 여덟편 중 어떤 것을 제일 좋아하실까, 나중에 리뷰 올려주세요.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