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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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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대소설을 잘 못 읽는다. 일단 이름이 잘 안외워지고, 짤막짤막한 문장들이 익숙하지 않고, 주제가 따로 없나 하는 느낌이 들게 빙 에둘러 묘사하는 방식에 적응이 잘 안되어서이다 (개인 취향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싫어하진 않으면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도 없고,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읽는 경우는 순전히 순간적인 기분에 의해서라고 봐야한다. 글자 큼지막하고 두께는 얇은 그런 책일까? 했는데 배송되어 온 것을 보니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무결 무늬의 표지와 속지가 무척 예쁘다. 브라운색 모노톤의 그림도 분위기 있고.

일본어 모르니 츠바키가 동백나무라는 것은 물론 몰랐다해도, '문구점'! 그냥 이유없이 정감있는 이름.

저자인 오가와 이토는 첫소설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달팽이 식당>으로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라고 한다. 나는 물론 읽어보지 못했고 이 책을 구입하고 난 후 작가 소개를 보고 알았다.

현대 소설에도 기승전결 구조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엔 딱히 기승전결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물 흐르듯, 어느 한 시기의 일기장을 뜯어내어 책으로 만든 것처럼 그렇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큰 사건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사건도 없진 않다. 간판은 문구점이라고 달고 있지만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업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은 편지 의뢰와 함께 사연도 하나씩 들고 오는 셈이다. 그런 사연들과, 그 사연에 대처하는 주인공 포포와, 포포의 이웃들이 모여 책 한권의 내용을 이루었다. 편지를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은 물론 글자를 몰라서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뭐라고 써야 할지, 하고 싶은 말을 오해없이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쓰는데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대하는 주인공과 그일에 대해 훈련시킨 그녀의 할머니이다. 편지 내용에 따라 사용하는 펜의 종류가 달라지고 종이의 종류가 달라진다. 글자체는 물론이고 가로쓰기를 하느냐 세로쓰기를 하느냐를 결정하여야 하고, 편지 봉투에 붙이는 우표까지 아무것이나 붙이지 않는다. 이렇게 소설 속에 작성된 편지는 실제로 책 뒤에 글씨체 그대로 첨부되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마쿠라 지역의 지도까지.

이책의 옮긴이는 번역하다 말고 궁금함을 참지 못하여 결국 일본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소설 속의 지역을 다 둘러보고 왔다고 한다. 가마쿠라 지역엔 츠바키 문구점을 제외한 모든 장소와 상점과 거리가 그대로 있더란다.

아주 작고 평범해보이는 일상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잘 다듬어 곱게 포장까지 하여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일본 사람들의 습성을 반영하기도 하고, 이 작가의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좀 무거운 책들 읽는 중간 중간, 이런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든 삶이 다 이렇게 고즈넉하고 해피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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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모메 식당도 그렇고 이 책도 따뜻한 이야기를 안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츠바키가, 동백나무라는 뜻 외에, 사람이름으로 쓰는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뒤마의 춘희도 아마 츠바키히메라고 쓰는 것 같은데요.(그치만 갑자기 자신이 없어져요.^^;)

오늘이 3일째인 추석연휴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hnine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hnine 2017-10-02 21:27   좋아요 1 | URL
아, 츠바키를 이름으로도 쓰는군요.
말씀하신대로 따뜻하고 섬세하고 보들보들한 소설이었어요 ^^
책 뒤에 실제 편지글이 별도의 종이에 인쇄되어 첨부되어 있는데 일본 글자를 따라 써보고 싶어지더군요.
서니데이님 댁은 추석 지나면 완전 새단장 변신하겠어요. 긴 연휴이지만 지나고 보면 언제 지났나 싶겠지요?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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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그렇다. 사랑하던 누군가를 먼저 보낸다는 일은 뭔가 내게서 한뭉텅이가 증발되어 날아간 후 느끼는 상실감 같은 것이다. 사라진 뭉텅이도, 그것이 있던 자리도, 어느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분명 느껴진다.

봄밤. 슬픈 일은 봄에 일어나면 더 슬프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삼인행>

짧은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느낌. 두명의 남자와 한 여자라는 구도도 낯설지 않다.

1박2일 짧은 여행을 지루하지 않고 꽉찬 느낌의 단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보니 권여선이란 작가 자신이 지루하지 않고 꽉찬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길떠난 세사람 각각의 관계와 여행의 목적 등이 분명하지 않게 묘사되었음에도 그것이 큰 흠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의 더 중요한 걸 포기하고 체념한 마당에, 가고자 하는 맛집엔 꼭 들러서 원하는 걸 먹어야 한다는 이들의 의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는건 이런거라고? 아니면 이래선 안되는거라고.

세사람중 '주란'과 '규'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고 '훈'은 처음엔 방관자인것처럼 보이다가 뒤로 갈수록 주란이 빠지고 훈과 규의 관계로 이야기의 촛점이 옮겨진다. 아마 셋중 어느 한사람을 방관자로 두지 않고 공평하게 비중을 두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이모>

친이모가 아니고 시이모이다. 그만한 거리감이 이 소설속 인물에게서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사람 깉기도 하고 아주 다른 사람 같기도 한 인물. 아무것도 소유하기 싫어하는 삶이란 어쩌면 그만큼 상실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그것을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

무슨 설정이 이런가. 폐지된지 2년이 넘은 라디오 프로그램 팀원들의 만남. 매우 구체적이고, 경험담 없이 시작하기 어려웠을 설정이다. 이 팀원들중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헤어진 여인의 누나. 116쪽의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이란 어떤 얼굴일까 궁금해진다.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놓아야 살 수 있어요." (135쪽)

이래서 사는게 어려워지는거다. 꽉 쥐고 놓지 말아야 살 수 있는 때가 있고, 꽉 쥐지 말고 놓아야 살 수 있는 때가 있다는것 말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게 각각 언제인지를 아는 것,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인데, 그건 살면서 시간과 함께, 경험과 함께, 시행착오는 필수로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카메라 용도 중에는 감시 기능이 있다. 감시 카메라. 남을 감시하는 일.

우연한 실수가 필연처럼 삶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 단편소설의 단골주제중 하나라면, 왜 헤어졌는지, 관희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관주와 문정은 어떤 연인이었는지, 다 쳐내고 주제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본다.

 

<역광>, <실내화 한켤레>

역광은 내용과 제목 사이가 보통 독자의 수준으로 메꾸기엔 너무 멀고, 실내화 한켤레는 한사람의 질투, 파괴성을 얘기한다는 것 부터가 약간 TV 드라마식 구성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층>

층을 무시해버리고 살수 있든 없든 이 사회에 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의식 속에 존재하는 층.

 

오래 전, 한국 소설을 몹시 사랑하던 시절, 권여선 작가의 소설을 지나쳤을리가 없다. 그런데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게 분홍리본의 시절이었나 아니면 다른 책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읽다가 자꾸 정신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버리는데 그만 뭐가 문제냐, 나랑 안 맞는거냐, 나중에 읽지, 하고 제껴 놓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시도한 이 소설. 그런데 단편 중에 어디에도 주정뱅이는 없네! 그러니까 결국 책 제목의 주정뱅이는 작가가 자신을 일컬은 말이라고 봐야하나? 그녀의 알콜 사랑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므로.

책 뒤에 해설을 신형철 평론가가 썼다. 그런데 어쩌나. 본책 읽을 때보다 더 감탄하며 해설을 읽었으니.

작품 속 인물들을 <견뎌내는 자>의 뜻으로서 Homo patience라고 묶어말하는데야 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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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 산책 - 단어 따라 어원 따라
이재명.정문훈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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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든 외국어든, 말의 고향이나 기원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책 제목, 가게 이름, 회사 이름, 상품명 등, 제목이나 이름을 보면 왜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잠깐이라도 궁금해한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책 선전을 보고 혹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거나 사용하는 단어들의 어원과 그 배경이 되는 문화를 소개한다는 취지의 책이었다.

수록된 단어가 서른 일곱개이니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알고 있던 단어와 기원도 있고,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다. 차례에 수록되어 있는 단어들 목록을 쭉 훑어 보면 흥미가 돋지 않을 수 없다. Aussie가 호주사람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와 관련된 단어로 outback, 스테이크 하우스 이름이기도 한 이 단어가 사람이 가볼만한 가치가 없는 극한지대라는 뜻의 황무지를 뜻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왜 이 단어가 스테이크 하우스 이름이 되었느냐. 이런 황무지에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요리가 직접 구워먹는 바베큐이기 때문이란다.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나 갓 태어난 신생아를 축하하는 행사를 뜻하는 베이비 샤워에서 '샤워'란 단어가 들어가게 된데에는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 이름이 프란츠 샤우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유행인 '먹방'을 영어로  'food porno'라고 한다는데, 여기서 porno는 우리가 알고 있는 pornography의 porno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매점율 1위, 서비스 평가 1위의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항해사 이름이라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다. 여기 들어가는 bucks가 미국에서 달러 대신 쓰인다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고,어찌보면 달러보다 더 자주 쓰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영국에서 파운드 대신 quid이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이뿐 아니라 dough, dosh, bread 모두 돈과 상관없는 money대신 쓰이는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돈을 돼지저금통에 모으는 것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습관은 아닌 듯. 이런 전통은 돼지와 아무 상관 없이 시작되었는데 pygg라고 불리는 지점토 병에다가 소금, 돈 등을 모으던 중세에서 비롯된 습관으로 발음이 비슷한 pig이 저금통의 모델로 사용되면서 돼지 저금통이 된 것이다.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였다는 것도 몰랐던 형편에 필리핀이라는 나라 이름이 스페인 왕 펠리페에서 왔다는 것은 알았을리 만무. '펠리페의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pomodoro (포모도로)는 이탈리아어로 토마토를 뜻하는데 어원으로 보자면 황금의 사과라는 뜻이란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의 얼한번째 과업이었던 금단의 과일 황금사과도 사실은 사과가 아니라 토마토였을 거라고 추측한다는데 사과가 어떻게 토마토라는 뜻이 되었는지는 이해가 잘 안되고 넘어간 대목.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두명의 공저자가 풍부한 외국 여행, 외국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것은 알겠는데 여행기가 이 책의 원래 목적이 아니라면 얕은 곁다리 문화 설명에 지면 할애하는 것은 좀 줄이고 차라리 단어를 좀 더 많이 실었으면 책의 내용이 더 풍부해지고 원래 책의 목적에 더 충실할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 많았고 특히 중심 단어에 끌어다 붙인 상식 내용은 더 그랬다. 세계문화산책이라는 책 제목도 제대로 붙인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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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9-2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목이 참 중요하지요.
베이비 샤워가 이름을 딴거군요. 단순하여라...ㅎ

hnine 2017-09-22 22:32   좋아요 1 | URL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서 알아보면 의외로 사람 이름에서 온것들이 많더라고요.
영국 서점 체인 중에 waterstone 이라는데가 있거든요. 무슨 심오한 뜻이 있나 무척 궁금했는데 그것도 서점을 설립한 사람 이름이었어요 ^^
세실님의 닉네임은 세례명이신거죠?

세실 2017-09-24 10:31   좋아요 0 | URL
네. 세실리아를 제 맘대로 세실로 줄였어요^^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박정애 지음 / 사계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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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내가 그리는 포물선과 너무 다른 포물선을 이해해보겠다는 명분으로 이런 가상의 소설을 얼마나 자주 마음 속으로 써보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는 내가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을 정도인데 이게 혹시 망상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소설가, 그것도 내가 이름을 알고 있던 소설가의 작업은 이런 과정들의 결과물로서 잘 다듬어진 말끔한 한편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왜 하필 포물선이라고 했을까. 포물선이란 형태는 일단 올라갔다가 정점을 찍은 후 내려와야 완성된다. 계속 올라만 가서도, 정점에 머물러 있어도 포물선이 아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이 포물선을 몇번이나 그리며 살까. 또 얼마나 많은 다른 포물선과 만나게 될까. 내려오는 시기에 만날 수도 있고 정점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목만 보고 벌써 내 생각은 망상인지 상상인지 한참을 혼자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그리는 하나의 포물선. 그렇다고 여러 개의 포물선이 얽히고 섥히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아니다. 단출한 한 가정. 40대 부부와 중학생 딸, 아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흔하디 흔한 한 가정. 작가는 여러 개의 포물선이 얽히고 섥혀 만드는 극적인 스토리 텔링이 목적이었다기 보다, 평범해 보이는 가정조차 그 본질은 서로 다른 포물선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이지만 똑부러지는 딸에 비해 어리숙하고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이며 학교에서 적응도 잘 못하여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게 하는 아들. 부모 덕 못받고 컸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열의가 더 컸던 대기업 회사원 아버지. 학생이라치면 모범생이었을 교사가 직업인 엄마. 아들때문에 좌절한 부모는 결국 해외 이민을 고려하게 되고, 실제로 현지 답사를 하며 알아보기도 하는데 결과는 더욱 큰 좌절로 인한 포기이다. 하지만 포기를 포기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은 그래도 가족, 결국은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작가 자신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지만 두 자녀 모두 학교라는 제도권에서 교육을 마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용의 흐름에 억지나 과장의 느낌이 없고 자기 얘기 술술 풀어내듯이 자연스럽다.

학교에서 적응을 하든 못하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아들 내면의 착한 본성, 그리고 서로 불평 불만이 많으면서도 그 착한 본성을 믿고 알아주고 싶은 가족의 본질때문에, 가족들의 문제 없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때문에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평범한 이름 때문에라도 듣고 잊어버릴 수 있었던 작가의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가 이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된 것은 예전에 읽은 <환절기>라는 소설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마지막 열 줄, 누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그 열 줄 문장에서 작가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푹 젖고 말았다.

소설 한 편에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마는 울고 나서 마시는 차 한 잔, 비벼 먹는 밥 한 그릇 정도의 힘이라도 있기를 소망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볼까.

엄마와 아빠와 자식이 돌려 읽고 그 '차이 있는 불안'의 속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를.

제 불안에 눈멀어 자식을, 배우자를 짓누르지 말기를.

오래된 불안을 다독거리며 움싹 같은 희망에 손 내밀어 보기를. (169쪽 작가의 말)

그래, 작가는 결국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움싹 같은 희망. 불안 속에서 다독거려 살려내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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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
리즈 무어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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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무게 (Heft)> 라는 제목의 소설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었었다.

후속작이 나오면 꼭 읽어보리라 했는데 얼마전에 바로 그 후속작이 우리 나라에 번역되어 나왔다기에, 그리고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진행자가 하도 극찬을 하기에 더 망설일 필요가 없이 바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제목만 봐도 어쩐지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SF 소설 같기도 한 것이, 전작 <무게>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고 넘겨 짚고 싶었는데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과학자인 아버지와 딸이 등장한다. 어머니는? 없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과학자라는 것은 자기 얘기이기도 하지만 주인공과 달리 자기는 그리 과학에 뛰어나지 못했다고 저자가 말하는 것을 보면 과학 영재 여부를 떠나 어쨌든 이 소설에 어느 정도는 저자의 어린 시절과 경험이 반영되어 있지 않나 싶다.

전작 <무게>와 다르다. 많이 다르다. 만약 저자가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는다면 아마 <무게>보다는 이 책 <보이지 않는 세계>로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첫장부터 독자에게 궁금증으로 시작하게 하니 가독성에서도 성공적이고, 무엇보다도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주제들, 예를 들면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대리모 출산, 동성연애, 가상현실 등을 하나도 아니라 복합적으로 모두 하나의 스토리 속에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192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시공간을 드나들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대단한 플롯이라고 할 수 밖에.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자칫 식상하고 기계적으로 흐르지 않는 것은 아버지와 딸 사이의 애절한 연대감이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장점과 단점은 백짓장 한장 차이로 왔다 갔다 하기 쉬운 법. 저자가 너무 여러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나. 독자의 가슴을 깊이있게 건드리지는 못한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보이지 않는 세계가 무엇을 일컫는지는 혹시 스포일러가 될 듯 하여 여기에 적지 않기로 한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누구의 시선으로 적어나갔는지도 역시 여기에 적지 않기로.

저자가 머리를 많이 쓴 작품이긴 한데, 어디가 아쉽다고 콕 집어낼만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맘 놓고 칭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전작 <무게>가 훨씬 개인적으로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자의 공이 들어간 것 만큼 감동적으로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시계라는 제목처럼 저자가 전달하려고 하는 주제 의식을 너무 드러내놓고 있음에 김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가지 더. 우리 나라 대표적인 번역가의 번역이라서 믿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것 또한 기대만큼 매끄러운 번역은 아닌 것 같았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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