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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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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탈출하는 것은 곧 존재의 근본 원칙을 이탈하는 것이었다. 불가능했다. (17)

 

콜슨 화이트헤드. 나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고등학생 아들아이는 책을 보더니 대뜸 이름을 알아본다 들어본 적 있는 작가라면서. 관심서적으로 눈여겨 보고 있던 중 마침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선물로 보내주어 읽어보게 되었다.

중학생때였나, 아버지께서 읽으시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몰래몰래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때 TV외화로 방영되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책으로 읽으면서도 어찌나 잔인하고 끔찍한 묘사가 많던지.

책 제목을 보고는 짐작되지 않지만 이 책 역시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그린 작품이다. 1800년대, 미국에 아직 버젓이 합법적인 제도로서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남부의 노예들은 조금이라도 자유가 있는 곳을 찾아 목숨을 걸고 북쪽으로 도망가는 시도를 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바로 이런 노예 해방 조직 이름이었다. 여기에 작가의 작가적 창의력 발동하여 조직의 이름뿐 아니라 노예들을 비밀리에 이동시키는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

중심 인물은 어린 흑인 소녀 코라.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농장에서 할머니 대부터 엄마, 그리고 코라에 이르기까지 노예로 일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자유를 찾아 도망가는데 드물게 다시 붙잡혀 오지 않게 되자 혼자 남은 어린 코라는 더욱 심한 감시와 핍박을 받으며 엄마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그 엄마를 언젠가 찾고 말겠다는 꿈을 키우며 고생을 견뎌낸다.

백인 농장주들의 노예를 다루는 정도는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다.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를 다루는 수준도 못될뿐 더러, 공식적으로 물건으로 취급한다. 어느 악덕한 한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런 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지,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치를 떨다가, 그래도 그 극단에 있는 부류가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낸다. 같은 백인이면서 노예들의 탈출을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분명히 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흑인이어서 백인이어서 잔혹하다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종이 워낙 극에서 극으로 다양한 특성을 나타낸다는 말이 되나보다.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그 멀고 고단한 코라의 여정에서, 어느 한 순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멈추지 읺았다는 것은, 결말이 어떻게 되었든지 그 자체로 뭉클하게 한다.

 

유명한 상의 후보로 여러번 올랐고 수상도 여러번 한 작가 콜슨 화이트 헤드. 이 책이 아마도 우리 나라에 번역된 첫작품인 듯 하다.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여 훑어보다가 데뷔소설인 <The Intuitionist> 의 내용을 보니 이것도 읽어볼만 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 검사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흑인 여성이 알수 없는 부패한 정치 세력에 휘말리고 엘리베이터에 대해 상반되는 두 이론인 실험주의자파와 직관주의자파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내용이라는데 엘리베이터라는 물체와 직관주의라는 생각으로 저자는 현대 우리 사회의 무엇을 상징하여 표현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누군가 열심히 번역을 하고 있을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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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11-0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코라가 행복했던 때 있잖아요. 처음 정착했을 때, 너무 마음을 놓아버린 거 있죠.
다시 잡혀갈 때, 제 머리털을 뽑을 뻔 했어요. 막 울고 싶기도 했구요.

저도 찾아봤더니 콜슨의 다른 소설은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더라구요.
번역하시는 분들, 부지런히 힘내주시길^^

hnine 2017-11-02 06:02   좋아요 0 | URL
아, 그 부분이요! 그런데 어쩐지 책의 남은 분량으로 보아 그렇게 행복한 정착으로 끝나지 않을것 같더라고요.
코라가 대단해요. 저 같으면 몇번의 시련 끝에 꿈을 포기한채 살은 듯 죽은 듯 숨만 쉬며 살지도 모를텐데요.
번역본이 또 나온다면 직관주의자와 존헨리의 나날들 (맞는 제목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 더 먼저 번역되서 나올까요... 상상하며 즐거어합니다.
 
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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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치는 기분이었지만 이 책 역시 놓치지 않고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다.

한 철학자와 청년이 주고 받는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아들러의 심리학을 이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있을까 싶다. 후기에도 나오지만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정작 한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가르침은 플라톤이 쓴 <대화편>이라는 기록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것 처럼 묻고 대답하는 형식은 깨우침을 주는데 탁월한 방식인 것 같다.

알프레드 아들러.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프로이트와 융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심리학 제3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원래 프로이트가 운영하는 빈 (Wien) 정신분석협회 일원으로 일하다가 떨어져나와 독자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개인심리학'이라는 분야를 제창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이론이 그 당시에는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지 모르겠으나 10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의 호응과 공감을 얻고 있고 나 역시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아니, 공감 그 이상이었다고 해야겠다.

프로이트 이론의 바탕을 모든 것이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트라우마에 기인한다는 '원인론'이라고 한다면 아들러는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며, 과거 경험이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고 이것을 '목적론'이라고 부른다. 즉, 인생이란 과거의 경험에 의해 결정지어진다기 보다 나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란 말이 된다.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의하면 운명론에 가까워지기 쉽지만, 즉 현재와 미래는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지만 아들러에 의하면 현재와 미래는 얼마든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목적에 의해 바꿀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하겠다. 과거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이랄까.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았다면 그 찰나는 늘 완결된 것. 지금, 여기에서 생을 마친다고 해도 불행하다고 할 것 까진 없다.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고,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서 뭔가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것. (313쪽)

인생의 의미? 인생에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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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알베르 카뮈 지음, 오영민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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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 삶이 고생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시작이라면 "모든 생의 끝이 죽음으로 정해져 있다면 애써 살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나의 우울함의 바닥에 깔려있는 문제도 저 시작 문장 속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까? 카뮈는 그 문제를 판단하고 답하는데 시간을 썼고, 나는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갈 생각조차, 의지조차 가지지 않는 쉬운길을 택하여 그냥 기분과 감정에 맡기고 살아왔다.

이 책을 읽으며 유일하게 얻은 위안이란, 20대때, 그저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꾸역꾸역, 이해도 안되면서 읽었던 때에 비해, 수십년 지난 지금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는 것이랄까. 심지어 마음에 꾸욱 들어와 박히는 대목도 있고, 쾅 하고 부딪혀 오는 대목도 있었으니, 난 그냥 나이만 먹진 않았나보다 하는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최소한 어떤 책들은 한번 읽기에서 끝나면 안될 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을 때 책 속에서 놓친 내용은 물론이고 자기자신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책만 읽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점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음악도 틀어놓지 않았고, 쪼가리 시간에 틈틈히 읽지도 않았다. 연필로 밑줄 긋는 곳이 많다 보니 자까지 대동하여 진지하게.

어차피 이르게 되는 곳이 죽음이라면 애써 살아야 할 가치는 무엇이냐는 나의 우울함의 시작이라고 쓴 이 문제는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한 말들 역시 어디 한두군데서 들어보았는가. 하지만 어떤 답도 어떤 결론도 답 같지 않고 결론 같지 않았었다.

계속 굴러내리는 바윗돌, 계속 올려다놓아야 하는 벌. 이 벌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이 카뮈의 대답이 아니었다. 올려놓은 바윗돌이 다시 굴러내리고, 그것을 산꼭대기로 다시 밀어올리기 시작하기 전 그 막간에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그의 행위에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 생각없이 바위를 산으로 밀어올리기를 반복하는 대신, 그 잠깐의 순간에 이 끔찍한 형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형벌을 내린 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일까 통찰은 하는 한 그는 약하지 않으며 그의 삶은 의미없지 않다.

시시포스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까닭은 바로 이 되돌아 내려가는 순간, 이 잠깐의 휴지(休止)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을 향해 다시 걸어 내려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본다. 가쁜 숨을 고르는 이 시간, 그의 불행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이 시간은 의식의 시간이다.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접어 들어가는 매순간,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자신의 바위보다도 더 강하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이 의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만일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하리라는 희망이 그를 떠 받치고 있다면, 실상 그에게 고통이랄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운명이란 오직 의식하게 되는 그 흔치 않은 순간들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 시시포스 그에게 고뇌를 가져다주었을 통찰이, 같은 순간, 그의 승리를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멸시를 통해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4, 205)

 

외부에서 보면 굴러떨어진 바위를 산꼭대기로 다시 밀어올리기를 반복하는 행위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시시포스에게 그 일은 때로는 고통 속에서, 때로는 통찰과 깨달음 속에서 이뤼진다. 바위를 밀어올리는 행위는 그가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의 비극은 시작되고, 이전의 일상적인 인간에서 부조리의 인간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이 부조리한 인간은 불만과 고통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신성화시키며 인간의 운명에 대해 왈가왈부한 어떤 신을 내몰고, 운명 그 자체를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할, 인간사의 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카뮈는 "되돌려놓는다"라는 말을 썼다 206쪽).

 

살아야할 가치를, 이 고통스런 형벌이 언제까지 계속 될것인가를 생각하며 구하는 대신, 이 고통은 운명이라고 인식하고 이 운명에 대해 통찰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러는 한 인간은 바위보다 강하고 운명에 굴복이 아니라 맞대면 하는 것이라고 한 카뮈는 천재 아닌가?

 

죽음이 끝이라면 계속 고생하며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나의 물음에 대한 답에 대한 실마리를 어쩌면 이 책에서 찾았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 한 귀퉁 막혔던 것이 뚫리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기쁨도 잠시 잠깐, 또다시 밀고 들어오는 의문. 그렇다면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지 못하고 희망의 삶을 사는 인간과, 운명을 의식하고 비극적인 삶을 사는 인간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어느 쪽이 더 낫다한들 선택할 수는 있는가?

 

이 책은 이렇게 두번 읽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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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4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4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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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 책 제목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때가 있었다. 그때를 살짝 비껴가긴 했지만 이제라도 읽기를 잘했고 놓치지 않아 다행인 책.

일곱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쇼코의 미소>

쇼코의 그 알수 없는 이질감의 정체가 뭔지, 끝까지 다 읽도록 계속 궁금하게 만든다. 동시에, 쇼코와 소유(화자)가 겹쳐졌다 떨어졌다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어느 대목에선 최은영 작가와 쇼코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예의 바르지만 진심은 따로 있는 듯한 쇼코의 미소, 말, 행동. 저 깊숙히,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낫지 않은 상처가 있지만 드러내기가 두려운 사람들이 어쩔 수 없어 택하는, 가장 수동적이고 효과 없는 표현 방법이 바로 '미소' 아닐까. 

<씬짜오, 씬짜오>

개인의 삶에 국가의 과거가 개입할때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인 차원에서의 용서와 배려로도 감당 안되는 과거라면. 우리의 슬픈 역사가 만들어낸 슬픈 가족사. 씬짜오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베트남어이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이 짧은 작품 속에 여러 이슈가 담겨 있다. 대한민국 근대사, 반공, 독재, 억압, 무고, 가족, 여성문제. 엄마 (해옥)와 먼 친척 이모 (순애)의, 다른 것 같지만 결국 비슷한 삶의 행로를 엄마의 딸이 화자가 되어 나레이션하는 구성이다.

<한지와 영주>

이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 저마다에는 모두 작가 자신이 조금씩 분산되어 들어가있는 것 같다. 이 단편도 역시 그런데, 언뜻 보면 화자인 영주가 작가 자신의 분신인가보다 싶었는데 다 읽고난 후 드는 생각은 영주가 줄곧 설명해온 한지라는 인물에 작가는  더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입힌 것 같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사랑이라고 보기엔 답답해보이기도 하는데, 이제 더 이상의 짐과 뻔한 고난의 무게는 감당할 자신이 없는 한지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결심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영주의 소극적이지만 정확해 보이는 이해력. 이것도 사랑이 맺는 방식의 하나가 아닐까. 엄연히. 당당히.

<먼곳에서 온 노래>

이쯤 오니까 저자가 누구를 주인공으로 쓰든 그건 저자 자신의 얘기처럼 들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소설 속 주인공이 소설을 쓴다. 읽다가 알게 된, 이것은 모두 상상이 빚어낸 일. 이런 식의 플롯을 좋아할까 말까 망설이게 한 이 작품, 그리고 이 작가.

<미카엘라>

세월호 사건 이야기. 작가는 이런 스타일 좋아하나 보다. 앞 작품 <먼곳에서 온 나라>에서도 그렇더니, 누가 실제 사람이고 누가 망자인지, 묘연하게 써놓았다.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세월호 처럼 그렇게 충격적이고 오래 슬픔으로 남을 사건이 있고 나면, 살아서 남아있는 사람의 의식 상태가 그러하지 않겠냐는 상상속의 작가의 대답을 내가 혼자 만들어 보고 있다.

<비밀>

쇼코의 미소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 속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또는 그 세대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숨진 손녀를, 숨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못해 굽은 손으로 편지를 쓰는 할머니. 슬프다. 슬프지 않은 이야기가 있던가 이 책 속에.

 

나에게 원래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걸 알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랬다. 작가가 점점 궁금해지는 정도가 다른 책 읽을 때보다 몇배 더 한 것이다. 한 작품 한 작품 읽어갈때마다 퍼즐을 맞춰가는 기분으로 작가를 상상하게 되었다.

최은영. 공모에 여러번 떨어졌던 경험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이 그녀의 안정되고 능숙한 문장력에서 느껴진다. 아주 오래 소설을 써온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안심이 된다. 작품 속 인물을 작가와 자꾸 겹쳐 생각하게 하는 것도 그만큼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문장을, 그리고 구성을 끌고 나가는 능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물이 갖고 있는 우울의 분위기 때문에 읽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처음에 썼듯이 읽기를 잘했다.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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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7-10-15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찜하기 기능으로, 제 서재 데려 갑니다! ㅎㅎㅎ

hnine 2017-10-15 21:20   좋아요 0 | URL
혹시 안읽으셨으면 한번 읽어보세요. 이 작가의 묘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저에게 무슨 프로파일러 기질이 있는건지, 작가 탐구용으로 소설을 읽는건가 싶더라니까요.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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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겐 일본 소설이 익숙하지 않니 뭐니 해도 도저히 이 책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두툼한 책 속에, 국제 피아노 콩쿨 얘기가 어떻게 그려져 있을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 소개글을 훑어 보니 콩쿨이 그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것이 아니라 콩쿨 과정이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구입해서 읽어보기로 결정!

 

3년에 한번씩, 2주 동안 열리는 일본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쿨이 이야기의 무대이다. 1차 예선에 참여하는 연주자가 90명. 2차, 3차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사람은 6명이다. 1차 예선부터 3차 예선까지는 지정곡 위주이지만 본선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연주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본선은 거의 각 참가자의 리사이틀 형식으로 한명당 1시간의 연주로 진행된다.

참여한 연주자들은 피아노를 수년간 연습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콩쿨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 같을 뿐 성장배경, 음악의 색깔, 음악을 대하는 자세, 음악에서 추구하는 것 등은 모두 다르다. 이 소설은 주로 네명의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네명중 예선부터 모든 심사위원들을 충격과 혼돈에 빠뜨린 참가자는 '가자마 진'. 이미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열여섯살 가자마 진의 이력서는 깨끗하고 심지어 자기 피아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또다른 참가자는 한동안 피아노 치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계기삼아 콩쿨에 참가한 '에이덴 아야'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해 피아노를 중단했어야 했던 경험, 잇달아 주위 사람들과 소통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늘 안고 있다. 라틴계 일본인을 어머니로, 프랑스인을 아버지로 둔 '마사루'는 완벽에 가까운 피아노 실력은 물론이고 훤칠한 외모에 발고 긍정적인 성격까지 흠잡을데가 없는 우승 후보이다. 그리고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워왔으나 과연 피아노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지 고민끝에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택했으나 그 꿈을 접을 수 없어 밤을 지새워 연습에 매진하여 콩쿨에 참여하는 '다카시마 아카시'. 이 넷중 누가 최고의 영예를 잡든지 이미 그들은 모두 천재성을 인정받을 경지의 사람들이다.

이쯤 되는 연주자들이라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술적인' 완벽함은 이미 넘었어야 할 고개. 본문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랑랑은 한 명으로 족하다. 똑같은 타입이 한 명 더 있어봤자 무슨 소용일까. (151)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라 할지라도 그것이 이미 누군가의 연주를 연상시킨다면 그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다.

최근 조성진을 비롯해서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한국 연주자들의 참여도와 성과도 만만치 않다.

이 책에서 가나데라는 여성이 일본, 한국, 중국 참가자들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한국 참가자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 나오는데 틀리지 않다고 본다. 격렬함과 동시에 처연함.

흔히 말하는 한류 스타를 볼 때도 드는 생각인데 가나데는 그들에게서 올곧은 정열과,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일종의 '처연함'을 느낀다.

그들이 민족적으로 갖는 '격렬함'과 '처연함'은 드라마틱한 클래식 음악과 궁합이 좋다. (184)

 

어째서 이 세상에는 저런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절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째서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어째서 저런 사람과 같은 악기로, 같은 시대에, 같은 콩쿠르에서 승부를 겨루게 되었을까.

어째서, 어째서. (197)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대목인데, 위에 말한 네명의 참가자중 이런 고민을 했을 사람은 짐작하다시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뒤늦게 꿈을 펼쳐보고자 콩쿨에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이다. 뒤에 번역자의 글을 읽어보니 번역자는 개인적으로 작품 속 인물중 이 사람에게 가장 매력과 공감을 느낀다고 썼다. 이심전심. 나도 그렇다.

 

이 책 속에는 콩쿨에 참가하는 연주자들뿐 아니라 2주 동안 이들을 심사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고민과 갈등도 충분히 표현되어 있었다.

시험당하는 것 바로 우리야 (319)

심사 내용으로 그 사람의 음악성이나 음악에 대한 자세가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들 역시 시험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심사위원들.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겠다고 이해를 하게 된다.

그를 진정한 '기프트'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삼을 것인지 (579)

기존의 룰과 형식을 전혀 개의치 않고, 어떻게 보면 '자기 멋대로' 연주하고 내려가는 한 참가자를 놓고 심사위원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내용을 소설 속에 끌어들인 작가의 아이디어를 높이 사고 싶다.

329쪽에, 국보급 불상을 조각하는 사람이 자기는 나무 안에 담겨있는 불상을 꺼내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천사를 풀어준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인용한 것인가? 그런데 이 일화가 이 소설의 주제와 꽤 상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왜 그대로 미켈란젤로의 일화로서 인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본선을 하루 앞두고 자기는 음악을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피아노를 친다고 말하는 가자마 진에게서 에이덴 아야는 어떤 영감을 얻는다. 그동안 계속 자기 자신에게 물어오던 질문에 대한 답인 셈이다. 이 세상에 음악은 원래부터 존재했고 갇혀 있는 음악들을 이 세상으로 꺼내어 보여주는게 피아니스트로서의 사명이라는 뜻인데 읽는 나도 순간 멈칫하게 만든 대목이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의 의미, 자기 음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에이덴 아야가 가자마 진의 말에 정신의 눈을 뜨고 한발 더 높은 곳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무대로 나가는 장면을 묘사한 두 페이지 (682, 683)는 읽으면서 벅차고 감동적이어서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손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국제 콩쿨의 최고의 자리를 향한 참가자들끼리의 뻔한 경쟁, 질시, 반목, 이런 내용이 아니어서 참신했고, 그래서 좋았다. 작품 전반 어느 참가자를 막론하고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울점을 찾는 태도는 이 소설이 가진, 억지스럽지 않은 미덕이하고 생각한다.

 

콩쿨이 막바지로 가면서 각 참여자들은 각기 다른 해답을 찾아간다. 콩쿨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면서.

문득 가슴속에 답이 훅 떠올랐다.

음악, 아마도 음악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는 다른, 영적인 존재로 진화시키기 위해 인간과 함께 태어나 함께 진화해온 게 아닐까? (653)

어째서 나는 연주할까, 어째서 음악은 이렇게 진화했을까 하는, 마사루의 의문에 대해 그가 스스로 찾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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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피아노를 오래도록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강제로 시킨 것이 저에겐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고, 그나마 클래식을 꾸준히 들어왔더라면
거부감을 조금 일찍 벗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벗어난지가 얼마 안 되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피아노는 정말 테크닉이더군요.
그걸 몰랐을 땐 별 감흥이 없었죠.
백건우나 조성진 연주를 들으면 어떻게 저 긴 곡을 다 외워서 할까?
놀랍더군요.
언젠가 백건우 연주 실황을 본적이 있는데 손가락이
무슨 시가나 비엔나 소세지 같아 굵더라구요.
그러니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ㅋ

일본 소설 별로인 h님께서 별 4개를 주실 정도라면 이 소설은 성공한 거네요.
저도 옛날 일본 소설은 관심이 많지만 요즘 소설은 관심이 없는 편인데
이 작품은 하도 여기 저기서 좋다고 해서
저도 기회있는 대로 한 번 읽어 볼까 합니다.^^

hnine 2017-10-08 18: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 그것이 그림일수도 있고, 글쓰기일수도 있고, 인생에 목표로 하는 무엇이든 대입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거예요. 저에게는 그것이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나 했을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이 책에 보면 실제로 조성진에 대한 언급도 있답니다 ^^
그리고 작가가 4년 동안 취재하여 공들여 쓴 소설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도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피아노 콩쿨이 아니라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많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잘 찾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요. 일단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