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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펭귄클래식 48
조지 오웰 지음, 이기한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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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성에서도 그랬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도 딱히 특별한 인물은 아니다. 그 시대를 대표한다고 볼수 있는 평범한 시민. 그러니까 작가는 인물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다기 보다 그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이 사회에서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생각했다. 스토리 텔링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중요한 능력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조지 오웰의 이 사회성 높은 소설을 읽으며 다시 확인한다. 현 사회와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관찰, 비판, 분석, 거기서 나아가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예견까지. 작가의 역량은 내가 아는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조지 오웰 자신이 평탄하고 부유한 생활을 해나갔다면 이렇게 사회의 드러나지 않는 면, 보이지 않는 힘, 권력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고 그런 경험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영국인 부모를 둔 그는 인도 주재 영국 공관에서 일하는 아버지로 인해 인도에서 태어났다. 네살때 영국으로 이주, 명문 이튼 칼리지를 다녔고 그때부터 이미 정기적으로 글을 투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해나갔다. (그는 왜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하게 되었을까?) 이후 파리에도 잠시 머물렀고 영국으로 돌아와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한다. 그의 나이 서른에 첫 소설이 출간되었으니 비교적 이른 성공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실업 사태가 발생한 지역을 돌아보며 가난의 참상을 보게 되었고 스페인으로 가서 내전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때 얻은 부상으로 건강을 잃은 그는 요양소에 들어갔고 이후 영영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채 채 오십도 안된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 <1984>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일곱 달 전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과연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해 길들여지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기라도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필사적으로 거기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 진짜 본성일까 혼동된다. 너무 쉽고 안일하게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에 길들여 사는 모습을 이렇게 소설에서 접하고 난후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느새 오버랩되고 있는 오싹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당에 의해 자행된 것들 주 가장 끔찍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충동들과 감정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믿도록 설득한 것이다. (228)

 

전쟁이 인간들의 이권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 이용되는가 하는 대목은 또 얼마나 두려운가.

그것은 잉여 소비재를 소진시킬 뿐만 아니라 계층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정서를 유지하는데 유용하다. 뒤에서 보겠지만 이제 전쟁은 철저한 내국적인 상황의 일환이 되어버렸다. 실질적인 전쟁은 각 지배층과 그들이 이끄는 국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며 이러한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거나 상대국이 자국의 영토를 점령한는 것을 저지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구조를 어떻게든 유지하는데 있다. (269)

 

나중에 오브라이언의 정체가 밝혀지고, 오브라이언이 언제 주인공을 처단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은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사회의 반대쪽 끝에는 무정부 사회가 있을까?

조지 오웰은 소설가이면서 예언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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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4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12-16 12:55   좋아요 1 | URL
제가 그렇게 쓰긴 했지만 저도 잊고 살때가 많은데 이렇게 기억해주시고 저에게도 다시 되새길 수 있게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도 아직 자신있게 말할 경륜과 지혜가 부족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든 기쁜 일만 계속 있거나 슬픈 일만 계속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요.
오늘도 춥지요? 아침에 실내에서 운동하던 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가시는 우체부 아저씨을 창문 너머로 보게 되었어요. 얼마나 추우실까 생각하다가, 생업에 종사하시느라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사람 사는게 저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추우나 더우나, 기쁘나 슬프나, 계속 되어야 하는 것...
 
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
임영태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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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작가의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을 읽은 것이 7년 전이었는데 그 후로 작가의 후속작이 없었나보다. 이번에 나온 <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이 7년만의 신작 소설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겨우 한 작품 읽었으면서도 이번에 새로운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보자마자 망설임없이 구입을 한 것은 그만큼 깊은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쓸쓸함이 묻어나오던, 아내 잃은 남자의 혼자 버티며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번 소설 <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도 역시 그러할까? 두 소설의 공통점은 손에 잡자 마자 단숨에 읽힌다는 점이다.

2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간결한 문장과 과하지 않은 미사여구, 등장 인물의 단촐함, 사건 사고 역시 거의 전무, 이런 점들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와 생계의 터전을 찾아 연고지 없는 작은 읍으로 이사온 주인공은 야간 시간대에 GS25에서, 아내는 낮 시간에 CU에서 각각 편의점 근무를 하며 산다 (덕분에 이 책을 읽고 나면 편의점의 일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인생을 그냥 돈이나 벌며 시간 낭비 하기 보다는 뭔가 뜻있고 멋진 자기만의 흔적을 남겨야겠다며 발명에 전념하며 보낸 시간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없이 혼자 생계를 담당하다시피 하며 살았다. 그렇게 50대가 되기까지 내집없이 살다가 경제적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시점이 왔고 어쩔 수 없이 발명의 꿈을 접고 싸게 내놓은 집을 대출받아 겨우 구입하여 내려오게 된 것. 다행히 두 사람 사이는 나쁘지 않고 서로 갈등보다는 연민을 품으며 다독다독 살아가는 일상의 얘기이다.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주인공은 손님들을 혼자 관찰하고 추측하는 재미를 만끽한다. 누구와 공유할 수 없는 느낌이고 경험이니 쓸쓸해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흥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두드러지는 장점이나 결점을 지닌 인간이 아닌, 평범한 한 중년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 아주 넉넉하지는 않으나 당장 생계가 걱정될 정도는 아니고, 흥분할 만한 계획이나 기대를 걸고 사는 치열한 삶이라기 보다 매일 성실하게 자기 임무를 완수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부부의 일상이, 독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이 어떤 서사를 지닌 소설이라고 할때 다소 밋밋해보이기도 한게 사실이다. 평이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도 작가가 강한 메시지를 남기는 경우도 있으나 이 소설의 경우 책 뒷표지의 도움말 처럼 '살아가는 일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담은 소설'이라고 까지 보긴 어렵다는 것이 내 소감이다. 그런 것이 다 살아가는 일 아니겠나 하고 맺기엔 말 놀음 같다.

 

그러고 보니 제목 속에 있구나 '지극히 사소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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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0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여긴 어제 눈이 내려서 바깥에는 눈이 남아있어요.
이 책에 대한 hnine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cu편의점과 gs편의점의 차이를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을지, 조금 궁금해졌어요.
집 가까이에 두 회사의 편의점이 있거든요. 대부분의 우리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잠깐 머물지만, 편의점이 직장인 분들은 많은 시간을 우리와는 다른 방향에서 보고 계시니까 또 다를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요즘 감기 유행이라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수요일 보내세요.^^

hnine 2017-12-06 16:47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 주인공이 일하는 곳은 GS25라서 주로 GS25 얘기라고 봐야할 것 같은데 CU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편의점에서 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많더라고요. 이 작가 분명히 편의점에서 일해봤나보다 생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게 써놓았어요 ^^
여기도 새벽부터 눈이 왔어요. 지금 저녁 장 보러 마트 다녀왔는데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다녀왔네요. 나이 들어 삐끗하면 잘 안 낫는다고 해서... ^^
 
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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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대한 다른 분들 리뷰를 훑어보다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이 작품도 좋지만 아무래도 토니 모리슨의 작품을 능가하진 못한다는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토니 모리슨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동기가 충분히 차올랐다. 더구나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 수업 시간에 이 책을 함께 읽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잘되었다 싶어 읽어보게 되었다.

인상으로 사람을 짐작할 것은 못되지만 토니 모리슨의 사진만 봐도 나는 어떤 카리스마를 느끼곤 했다. 진지하고 깊이있고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것 같은 거장의 모습이랄까.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도 약간은 긴장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기운이 괜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것이다.

한 개인의 경험이라고 해도 끔찍한데 흑인 노예의 삶은 대물림 된다. 나 하나로써도 저주 받은 것 같은 삶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에게도 되풀이 될 것이라는 것보다 절망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여 세서는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그것이 그녀의 일생동안 어떤 결과를 가져오리란 걸 그녀도 몰랐을 것이고, 읽는 독자도 모르며 한동안 읽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머리속은 작품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어야 했을까. 아니, 작가 스스로 얼마나 여러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더구나 의식보다 더 끝을 알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 인간의 양심, 보통의 인간으로서 짐작할 수 없었던 인간의 다른 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가의 능력 등이 여지없이 증명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873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블루스톤 로드 124번지. 할머니 베이비 석스, 엄마 세스, 딸 덴버가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얼마 안되어 남편의 친구이자 예전에 켄터키에서 함께 노예로 일했던 남자 폴디가 세스를 찾아 이 집을 찾아온다. 그리고 또 한사람, 정체 모를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녀의 이름 빌러비드.

이 책의 첫문장은 다음과 같다.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다음 문장은,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

갓난아이의 '독기'라니.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아픈 기억이 그 한도를 지나칠때, 그것이 한 개인도 아니고 인간의 역사를 이룰때 어떻게 되어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흔적을 남기는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고 행한 일들을 보며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죽었으나 죽지 못한 영혼, 살았으나 죽은 이의 그늘 아래 살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 그래도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보여주는 젊은 세대. 토니 모리슨은 삼대에 걸친 얘기를 통해 결국 그래도 나아가라고, 피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를 단죄하는 것은 신도 아니고 바로 그 인간인지도 모른다.

다 읽고 고등학생 아들과 얘기를 했다. 이 소설의 세서의 입장이 이해가 되더냐고. 아들의 말, 이해가 된다면서 자기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요즘도 가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도저히 구제될 수 없다고,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엄마가 자식들을 데리고 세상을 떠나는 뉴스 기사를 보곤 하는데 그것도 그럼 이해가 되냐고 했더니 그것과 비교가 안된다고 그런다. 나무마다 죽은이의 시신 (시신의 일부)이 무슨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아름답다고 까지 하는 상황에서 자기 자식을 키우고 결국 같은 죽음을 당하게 하느니 그 아기가 아직 무엇을 느끼고 깨닫기 전에 그 경험을 안하게 해주자는 부모의 마음이라면서.

그래, 네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제목과 내용의 관계가 흔히 그렇듯이 빌러비드라는 제목이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마지막 결말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후에도 한동안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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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0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드님이 벌써 고등학생이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겠네요. 청년이에요.ㅎㅎ
세월 참 빨라요.^^

hnine 2017-12-04 22:23   좋아요 0 | URL
자라는 모습을 줄곧 봐온 엄마 눈에도 얘가 언제 이렇게 자랐지 싶답니다.
어릴 땐 그렇게 조잘조잘 얘기도 잘 하더니 지금은 제가 열마디 하면 겨우 한마디 할까 말까 해요.
그래도 이젠 책도 같이 읽을 수 있고 대화가 될 때가 있으니 감사하지요.
맞습니다, 세월 참 빨라요 ^^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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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가야할 길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남아 있는 날을 이제 어떻게 보내나 생각하게 되는때. 삶의 진실은 왜 이쯤 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는 것일까.

 

1956년 영국 옥스포드셔. 아버지대부터 내려온 집사 일을 평생 무슨 종교처럼 여기며 그것만 생각하며 살아온 집사 스티븐슨. 먼저 모시던 영국인 주인에 이어 달링턴 홀의 새주인으로 모시게 된 미국인 패러데이 어르신으로부터 자기가 미국에 가서 두달 지내고 오게 되었으니 그동안 자기 차를 타고 일주일 정도 영국 산천을 여행하며 기분 전환이라도 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주인의 멋진 포드 자동차를 타고, 엿새에 걸쳐 영국 주로 남부를 여행하며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서 자기 삶이 어떤 궤적을 그렸고 어디에 와있는지 돌아보는 여정의 기록이다.

집사로서 저택의 업무가 흐트러짐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부터 주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불편함없도록 챙기는 것, 즉 주인의 삶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티븐슨이 추호도 의심해본 적 없는 그의 임무이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것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아버지의 임종도 그래서 지킬 수 없었고 아버지도 그걸 더 원하리라 믿었다. 주인의 일이 잘 해결되고 순탄하게 흘러갈때 사는 보람을 느꼈다. 주인이 하는 일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음을 의심치 않았고 감히 판단하고 이의를 가져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자기 임무, 자기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이의가 되는 것이니까.

그런 그의 삶이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일까?

 

이름을 보면 일본 이름이고 태어난 곳은 분명히 일본이지만, 여섯살때 영국으로 이주하여 영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그의 이 소설은 영어로 쓰여졌고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영국 문화, 영국 국민성 등을 보여주는 영국 소설이라고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은  57, 58쪽에 스티븐슨이 품위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을 보면서부터였다.

품위를 인간이 끝까지 지켜나가고 잃지 않아야할 최고 덕목으로 보는 것,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일보다 집사일을 우선 완수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 대답을 피하지 않으며서 구차한 설명을 피하는 응답 방식, 상대방의 반응이 예측된 농담 하기. 작가는 다양한 묘사를 통해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을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달링턴 홀의 총무로 있던 켄턴양과의 관계에서이다. 사실 스티븐슨의 여행의 시작과 마지막이 이 켄턴양과의 만남과 관련있고, 마침내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가 만나서 그동안 쌓인 얘기를 나누면서 스티븐슨은 자신의 그동안 삶이 어떠했는지 깨달아가게 된다.

마지막 여정이 된 웨이머스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사람으로부터 하루중 가장 좋은 시간, 기다려지는 시간은 저녁이라는 말을 듣고 자기 인생의 저녁을 그렇게 볼수 있을까 생각하는 스티븐슨. 그리고 독자들.

바로 이어지는 작품 해설에서 김남주 번역가는 저녁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는 말로 스티븐슨의 달라질 삶을 기대한다고 했지만 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럴 것 같지 않은 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두줄때문이었다.

그는 그 대단한 품위를 지켜내느라 무엇인가를 놓치고 살았다. 품위보다 더 중요할지 모를 무엇을.

 

품위란 어쩌면 소설 속 스티븐슨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문장들에서 어떤 격이 느껴진다. 그것이 작가가 한문장 한문장 공들여 쓴 결과인지, 그의 성품인지 모르겠는데 크게 사건을 벌이지 않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할말을 분명히 전달하려면 중요한 얘기만 가려내야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럴려면 깊게 생각하고 많이 걸러내고 고쳐야하지 않을까?

매력있는 작가, 매력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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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11-24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아 있는 나날>, 이걸 읽으셨군요. 저는 눈독만...
팟캐스트에서 <나를 보내지마>라는 작품의 내용을 들었고 작가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요.
<녹턴>도 좋은 평가를 하더군요. 이 세 가지 중에서 저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깊게 생각하고 많이 걸러내면서 고치는 일. 글을 쓸 때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대충 써서 올리게 되더라고요. ㅋ

hnine 2017-11-25 02:39   좋아요 1 | URL
이것이 저에게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첫 작품이었는데, 이 작가 매력있어요.
원본을 보진 않았지만 읽는데 막힘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번역도 충실하게 잘 된것 같고요. 아마 번역자도 작업하면서 알았을것 같아요. 작가가 얼마나 공들여 치밀하게 썼는지를.
이런 저런 사건을 잔뜩 집어넣지 않았는데도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개인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작가는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있고 읽는데 지루하지 않고요. 문장의 깊이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작가 이 창래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pek님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프레이야 2017-12-1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들을 그의 수상소식이 나온 후 사두고선 가을이 후딱 가고 겨울이네요. 이제 쌓아둔 것들 하나씩 만나야겠어요. 집사의 품위를 생각하며.

hnine 2017-12-29 15:41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 이 댓글을 지금에서야 봤네요.
저 지금도 가즈우 이시구로의 <녹턴> 읽고 있어요. 이 사람의 작품으로 세번째인데, 그만의 문체를 이제 조금 알것 같기도 해요. 집사의 품위가 그의 다른 소설 속에도 조금씩 녹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에 대한 치유 보고서
장현갑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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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의 인생실험실> 이라는 제목을 본다. 심리학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생은 일종의 실험 과정 아닐까. 계획과 예상 후 실험. 실험에 따른 결과. 결과에 대한 고찰.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실험을 계획. 이런 과정의 되풀이가 곧 산다는 과정일테니까.

책 표지 맨 위 작은 글씨.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에 대한 치유 보고서'라고.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게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은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평상시 의식하지 않고 살기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동안 인생은 희극이고, 나에게 막상 일어나버리면 인생은 비극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한국 심리학계의 거장이라는 저자의 나이 올해 76세. 30대에 대학교수직을 시작했으니 이른 성공의 길을 달렸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같은 30대에 정신의학과를 찾을 정도로 심리적 불안 장애와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이다. 

1997년 그의 나이 56세, 미국으로 안식년 휴가를 떠났고 방학을 이용해 미국을 방문한 가족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가던 중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눈 앞에서 부인과 딸을 보냈고, 아들과 저자 자신은 큰 부상을 당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경험. 그야말로 나에게 일어나리라 생각도 안했던 경험을 저자는 어떻게 극복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견뎌 오늘날 까지 왔을까. 그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저자가 말하는 극복의 구체적 방법이라고 제시한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명상'이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묵언 수행하는 모습은 이제 거둬내기로 하고.

명상에는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집중명상 (止)과 통찰명상 (觀)이다. 독자에 따라 사마타 (samatha) 와 위빠사나 (vipassana)라는 말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집중명상은 어떤 특정한 대상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방식의 명상으로서, 주문을 외우거나 참선을 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통찰명상이라는 설명 옆에 관(觀)이라는 한자를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처음 접한 위빠사나에 관한 얇은 책이 생각난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관(觀) 이었다.

 

 

 

 

통찰명상, 즉 위파사나 수행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감각 느낌 또는 생각 등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고요히 관찰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 '마음챙김 (awareness)'라는 말로 번역되어 나와있기도 하다.

저자는 명상이라는 정신 활동과 그 치유효과를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과학적 효과와 근거를 제시한 국내외 여러 문헌들을 조사했고 이 책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 대부분이 대중적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고, 그럼에도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책 뒷편에 실제로 명상하는 구체적 방법을 따로 설명해놓기도 했는데 그리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 문제는 실천.

제행무상.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안정되기 어렵고 괴로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데,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러한 괴로움에 대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고해.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괴롭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리고 진화적인 측면에서도 인간의 뇌는 즐거운 경험보다는 고통의 경험을 더 잘, 오래 기억한다는 것을 안다면,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으리라.

이 외에도 기억하고 되새기고 싶은 구절이 많았다.

  • 수처작주 입처개진 (어디에 있든 존재의 주인공이 되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진리) (15)
  • 일일시호일 (오늘이 좋아야 내일도 좋게 마련이다) (27)
  • 고통이 곧 의미 (29)
  • 신경가소성 (머리를 쓰면 쓸수록 머리가 좋아진다) (45)
  • 명상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기술 (46)
  • 지도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라 해봐야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 오직 이것은 좋다느니 저것은 나쁘다느니 취사선택만 하지않으면 된다) (180)
  • 마음속 기억창고에 무엇을 저장할 것인가 - 긍정적 경험의 수집 (213)
  • 신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 (223)

 

명백히 덜 괴로운 삶을 살게 하는 명상. 그렇다면 명상은 어떻게 하는가. 한줄 요약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보라' 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좋은 내용임에도 책의 별점을 세개만 표시한 것은, 위에 말했다시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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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11-19 19:35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목에 인생 실험실이라고 했나봅니다. 실험 같기도 하고 모험 같기도 하고요.
낼 모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저자는 이미 열살이 되기 전의 우울하고 불안했던 경험을 지금까지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겐 있다면서 ˝내가 그 증거다˝라고 하셨더군요.

nama 2017-11-20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기도는 내가 신을 향한 것이고 명상은 신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이라 합니다. 응답없는 기도보다 명상이 더 인간적인 것 같네요.

hnine 2017-11-20 08:34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신에 의해서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 보다 내가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저 말이 마음에 들어오더라고요. 신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내 인생에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도 결국 내가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이니까요.
위의 <관>이라는 책은 대학교 2학년때인가, 제 친구가 우연히 권해줘서 보게 된 책인데 그림 위주이고 글자는 몇줄 안되는 간단한 책임에도 생전 처음 보는 내용에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있어요. 지금은 절판된 것 같아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