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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아주 작은 아이 톰
바르바라 콩스탕틴 지음, 김동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남의 떡은 커보인다. 남들 형편은 나보다는 나아보인다. 내 상처는 남의 어떤 상처보다 깊고 아프다.

평소엔 잘 알고 있으면서 막상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땐 다 잊어버리고 툴툴거린다.

오랜만에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흐뭇하다. 사실 요즘 읽는 책 마다 삶의 밝은 면 보다는 무겁고 회의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들이 많아서, 탄탄하지 않은 멘탈의 소유자로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 기분이 가라앉는 이 결과를 어째야 하나 하던 중이었다.

 

 

 

책꽂이에서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이 작은 책으로 추운 밤 몇 시간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표지에 고양이가 나와있지만 고양이가 주인공은 아니고 열세살 톰이 주인공이다.

임시 가옥에서 엄마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스물 다섯살 엄마 조스와 단둘이 살고 있는 톰은, 엄마가 지금 톰의 나이인 열세살에 예기치 않게 임신을 하게 되어 낳은 아이이다. 일찍 철이 들어서인가, 투정부리고 응석부리는 열세살이라기 보다는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아이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도 간직하고 있는, 한번 만나보고 싶은 아이라고 할까. 반면 엄마는 일찍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버린 탓인지 투덜거리기도 잘 하고 불평도 많고 철없는 행동도 자주 하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에 맞춤법도 틀리기 일쑤에, 변변한 직장도 없어 늘 생계 걱정을 해야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톰을 사랑하는 마음은 역시 엄마이다.

톰이 자주 몰래 자기 정원의 채소들을 가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눈 감아 주는 이웃집 노부부. 보헤미아 이민자 출신이면서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건강 상태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마들렌 할머니.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오랜 짝 사랑이던 조스를 찾아 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미. 감옥에서 나온 후 제일 힘든 것은 생활고보다 외로움이라고 톰에게 털어놓는다. 장의사 차를 운전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역시 앞날이 보장 안되는 젊은이이고 가진 것 없는 딱한 처지이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알고 줄 것이 없나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열세살 톰부터 여든이 넘는 노인 마들렌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불안하고 고독하고 절망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이 소설은 이들이 서로 어떻게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살면서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싱글맘의 문제, 이민자의 문제, 노인 문제, 등등 요즘의 사회 문제를 몽땅 끌어앉고 있는 인물들에서 위로를 받는 우리는 이들보다 행복한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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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7-12-22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책같아 끌리네요
근데 요즘은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자제하려구요. 자꾸 미안해지고 맘이 복잡하더라구요.
계속 따뜻한글 기대합니당~~^^

hnine 2017-12-22 18:20   좋아요 1 | URL
행복은 가진 것 순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이걸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따뜻한 이야기였어요. 저자가 1959년생이니까 젊은 분도 아니더라고요. 인터넷의 발달로 아이들이 어떤 면에서는 일찍 어른이 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아이다운 순수함이 있어서 위안이 되었고요.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놓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 약발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네요 ^^
일년이라고 해봐야 친구 만나러 나가는 일도 거의 없는 제게 알라딘 서재는 정말 애정 깊은 공간이랍니다. 푸른희망님의 솔직하고 따뜻한 리뷰와 페이퍼, 앞으로도 계속 읽을 수 있게 해주세요. 행복했습니다~

2017-12-22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0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12-2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hnine 2017-12-23 06:26   좋아요 2 | URL
글쎄요, 달인이라고 불러주시니 좋긴 한데 안주셔도 그만, 주셔도 그만, 저는 그렇게 무덤덤하네요.
아직 책보다 더 좋은 친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려요~
 
빛나 - 서울 하늘 아래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송기정 옮김 / 서울셀렉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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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앞서 이 책의 표지를 잠깐 들여다 본다. 제목이 빛나?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서울 하늘 아래>라는 글씨도 보인다.

표지 그림에 그려진 것을 잘 보면 63빌딩, 남대문, 서울의 전철, 국회의사당, 한강. 모두 서울을 나타내는 것들. 작가는 이 책에서 과연 서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작가는 르 클레지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그 르 클레지오이다.

2017년 12월에 출간된 따끈한 신간. 프랑스어로 쓰여졌지만 소설의 배경과 인물이 모두 한국, 한국인이다.

제목 '빛나'의 정체는 책의 첫 페이지를 들춰보면 바로 알수 있다.

내 이름은 '빛나'다. 이제 곧 열아홉 살이 된다.

 

빛나는 르 클레지오가 만든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 전라도 어촌 태생이지만 더 나은 교육을 받기 바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서울 고모댁으로 혼자 올라온다. 고모네 집은 홍대 근처. 고모집에는 백화라는 이름의, 빛나보다 몇살 어린 고모 딸이 있다. 모범생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자꾸 엇나가려고만 하는 백화와 한방을 쓰면서 빛나로 하여금 백화를 좀 바로 잡아주었으면 하는 고모의 바람이 있다. 조용하고 지루하지만 평화로웠던 전라도 고향집에 비해, 하루 매순간이 전쟁과 같은 분위기의 고모집에서의 생활을 못견디게 된 빛나는 결국 방을 얻어 집을 나오게 되고, 살로메라는 여자 환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수입을 얻게 된다.

빛나는 열아홉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가 겪은 일이나 인물에 환상과 허구를 보태어 만든 이야기들을 살로메라는 여인에게 들려주고, 거동을 못하는 살로메는 빛나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클레지오는 빛나가 살로메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 자신이 서울에 와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들을 액자 소설 형식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동네 이름, 거리 이름, 장소, 건물 이름등을 그대로 실명으로 등장시키고 (홍대입구, 세브란스 병원, 신촌, 뚜레쥬르, 오류동, 서래마을, 성공회대학, 신도림 등)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서울에서의 경험이 다양했음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리라.

외국인이 본 서울,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가 과연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평범한 한 외국인이라고만 소개하기엔 부족한, 노벨상 수상작가 아닌가.

그는 과연 한국에 대해 구석구석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관심의 범위가 넓다고 해서 반드시 그 문제의 본질까지 파고 들어갔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그런 깊이까지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의 종교나 사회, 정치, 문화, 어느 한 주제에 대해 특히 더 깊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오히려 더 심도 있는 이야기가 탄생하였을까? 그러기에 클레지오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다방면에 너무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평소에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던 어떤 심부를 건드려주고 일깨워주는 소설의 기능보다는, 스치고 지나가는, 단지 서사가 보태진 여행기록의 느낌을 아주 벗어나진 못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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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기대를 했었는데 별로였나 보군요.
아무래도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은 어떨까
작가가 다음 한국에 대한 애정도 있는 것 같던데.
그런데 리뷰 읽으니까 저도 구매력이 떨어지는데요?ㅋ

hnine 2017-12-22 15:42   좋아요 0 | URL
거의 출간되자 마자 구입해서 읽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 리뷰 올라온 것도 없고, 100% 개인적인 느낌을 적었어요. 다른 분들은 달리 생각하실지도 모르지요.
이 소설 외에도 한국을 소재로 한 다른 소설도 냈던데 (제주도 해녀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네요) 아무튼 한국에 관심이 많은 작가임에는 틀림없어요. 한국의 어떤 점이 이 작가를 그렇게 끌어당겼는지 궁금해요.
이 작품은 웬지 중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표면만 스치고 지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답니다.
 
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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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대를 하게 되는 작가가 있다. 김숨 작가가 그렇다. 그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는 팬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녀의 신간 소식은 늘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늘 기대만큼 못 미치더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은 어느 정도는 기대할 만 했다. 내가 읽은 그녀의 다음과 같은 전작들은 최소한.

 

 

 

 

세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딱 세편.

책 제목 <당신의 신>이라는 단편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첫번째 단편 <이혼>중에 나오는 구절에서 책 제목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여기서 '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좀 과장일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때 비슷한 생각을 한번 씩 하는 것은 사실이다. 결혼함으로써 내 삶이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상대방의 삶이 업그레이드 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보다는 내 삶이 업그레이드 되는데 상대방과의 결혼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기대하는 것. 결혼의 결과로 지금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대와 현실과의 엄청난 갭을 결혼 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세 작품의 공통점을 찾아 내자면 그런 발버둥, 안간힘, 포기, 혹은 체념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이혼>이라는 이 단도직입적인 제목의 단편은 어리버리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처음의 어리버리 상태.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길지 않은 단편이라서 (이 책 전체 분량이라봤자 200쪽이 안된다.) 다시 읽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두번 읽어도 느낌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결혼의 이유가 커플마다 각양각색이듯이 이혼의 이유 역시 그러할텐데, 문장과 서사는 자연스럽게 진행되나 참신하진 않다. 위에 인용한 저 문장도 사실 전혀 새로운 문장이 아닌 것 처럼.

<읍산요금소>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스에서 일하는 정산원이라는 직업이 좀 특이할까, 이리 저리 번죽만 울리다가 끝나는 느낌.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바로 요양원과 납골당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의미를 붙이기에는 서사 자체가 약하고 뒷받침으로 역부족이다. 뫼비우스의 띠도 다른 작품들에서 너무나 자주 인용되어 식상하다.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마지막 작품 <새의 장례식>. 그러고보니 책 표지의 저 히끄무레한 것이 흰 천을 뒤집어쓴 새였구나. 이혼 전 부인의 현재 남편으로부터 새의 장례식에 초대된 전 남편. 여자는 빼고 전 남편과 현재 남편이 독대하고 있는 기이한 상황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폭력의 대물림. 폭력의 순환은 아무리 이성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작가만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 설정, 풀어나가는 형식, 서사에 새로운 시도가 보였다. 앞의 두 작품이 각각 문학동네와 한국문학에 발표했던 것인데 반해 <새의 장례식>은 이 책으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위해 쓰여진 작품이라고 해야되는데, 그렇다면 마감없이 시간 제약 없이 쓰는것이 더 작가를 작가답게 한 것일까?

이번 소설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반나절만에 후루룩 읽힌 것도 좀 아쉬운데, 요즘 기억력으로 머리 속에서도 그만큼 빠르게 잊혀질 것 같아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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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12-2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제 느낌도 그렇습니다. <국수>라는 단편집 너무 좋았었어요.

hnine 2017-12-20 12:03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아쉬워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저는 그럼 망설임없이 <국수>를 읽어봐야겠습니다.
 
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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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때'

나의 이 제목에 대한 집착을 해결하지 못하고 리뷰를 쓰고 있다.

왜 '내'가 아니고 '우리'지?

따져보면 작품 중에 주인공 크리스토퍼만 고아로 나오는 것이 아니긴 하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토퍼의 친구였던 아키라도 부모가 안 계셨고, 그가 어른이 된후 런던에 와서 알게 된 여인 세라 헤밍스도 어릴 때 부모님이 안계셨다고 하며, 나중에 크리스토퍼가 부모를 잃은 제니퍼를 입양하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왜 이 사실들이 하나의 제목 '우리가 고아였을때'의 '우리'로서 함께 다가오지 않는것인지 모르겠다.

상하이에서 아편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그것을 은근히 반대하는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 크리스토퍼. 어느 날 아버지가 실종, 어머니도 따라서 실종되고 졸지에 고아가 된다. 하지만 부모가 안계시다고 곧바로 불우한 생활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런던의 이모 집으로 보내진 크리스토퍼는 제대로 잘 교육받고 키워진다. 명문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소망하던 사설탐정 일을 시작하면서 런던의 인맥도 쌓아간다. 

부모님과의 마지막이 실종때문이라는 것, 그것을 풀고 싶고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던 크리스토퍼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상하이로 떠나고,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가보면서 부모님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 아키라와의 해후, 아버지가 실종되었을 때 수사를 담당했던 쿵 경감을 만나 부모님이 아직까지도 억류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짐작되는 장소를 알아내는 등, 일생의 과업이라고 생각하던 문제를 조금씩 풀어나가던 중 예전에 런던에서 서로 관심을 두었던 사이인 세라 헤밍스를 다시 상하이에서 만나게 된다. 세라는 그당시 남편인 세실을 두고 크리스토퍼에게 함께 마카오로 밀항할 것을 제안하는데 과연 크리스토퍼에게 부모님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과 세라와의 결합중 어느 것이 더 우선순위였을까?

끈질긴 추적 끝에 부모님 실종 전말을 알게 되고, 놀랄만한 배후사실도 알게 된 크리스토퍼는 런던으로 돌아오고, 사고로 부모를 잃은 제니퍼를 후견하기를 계속하며 혼자 무심하고, 그러나 만족하면서 여생을 보낸다.

<남아 있는 나날>이 1989년에 발표되었고 <우리가 고아였을때>가 발표된 것이 2000년이니까 이 작품이 훨씬 나중에 나온 작품인데 내가 <남아 있는 나날>을 먼저 읽어서인가 <남아 있는 나날>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아마도 두 작품이 공통적인 색깔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에 훨씬 깊은 성찰과 집중된 서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아였을때>에는 부모님을 따라 타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이 많이 참조가 되었겠다 싶게 구체적이고 자연스런 묘사가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서사에서 어쩔 수 없이 보이는 헛점이랄까, 한줄로 엮이기에는 약간 산만한 구성,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들이어야 함에도 약간씩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 개연성의 부족, 우연하게 벌어지는 듯한 일들, 등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나 같은 독자의 눈에도 조금 거슬려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고아였을때의 '우리'에는 그가 절묘한 타이밍이 아니라면 함께 마카오행을 했을지도 모르는 여자 세라, 어린 시절 또다른 자기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친구 아키라, 부모 없는 크리스토퍼 자신 처럼 스스로 책임져주고자 한 고아 제니퍼가 포함된다. 역자가 해설에서 썼듯이 크리스토퍼가 서로 다른 이 세 인물들에게 끌린 이유, 의식한 이유는 어쩌면 같은 운명들끼리 서로 알아보는 잠재 의식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타국이 제2의 고향이 되어 살아가는 가즈오 이시구로에게는 그런 잠재 의식이 특별히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엔 <녹턴>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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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어 걷기 여행 -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한 번은 떠나야 한다
김종우 지음 / 북클라우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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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출판사의 짧은 소개글에서도, 내가 이 책에 대해 빠르게 받은 인상은 신체를 움직이는 걷는행위 보다는 걷기와 관련된 내면의 기록이었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때 한번은 떠나야 한다', '어디든 걸을 수 있는 용기와 어디서든 멈출 수 있는 여유', '심장병을 안고 히말라야를 오른 후 걷기 여행에 푹 빠진...' 등등의 문구가 그렇지 않은가? 더구나 한창 여행의 욕구가 넘치는 2,30대가 아닌 마흔 넘어, 호화 여행이 아닌 걷기 여행이라니, 마음을 훅 뺏겨 구입하여 읽게 되었는데, 이런, 이 책은 그런 구구절절 사연과 성찰이 담긴 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걷기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를 담은 책에 더 가까웠다.

첫장부터 내용이 걷기가 주는 '신체적 효용성'. 다음 장엔 올바른 걷기 자세, 배낭 꾸리는 법, 걷는 기술 등, 걷기에 대한 하드웨어적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그마저도 아주 새로운 내용들은 아니라서 좀 실망.

그 다음 일곱개 소제목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세계 트래킹 명소 일곱 군데가 소개되어 있다. 네팔의 히말라야, 스페인 산티아고 물론이고, 제주올레를 표방하여 만들었다는 일본 규슈 올레, 이탈리아 아말피와 돌로미티, 터키 리키안 웨이, 프랑스 파리, 그리고 대한민국 둘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서울 둘레길까지. 목차를 봐도 짐작이 되시리라. 각 트레킹 코스가 히말라야의 경우 높이가 3000m 이상, 산티아고가 120km 등, 만만치 않은 코스들인데 소제목 하나로 하나의 코스를 설명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누구와 언제 갔는지,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어느 기관에서 (아마도 모 신문사?) 단체로 손님을 모집하여 떠나는 걷기 여행에 저자가 어떤 자격으로 (이것도 분명하지 않다) 초대되어 동행하는 형식으로 다녀온 것이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 그런데 그 그룹 대부분이 연령대가 있는 분들이라서 코스를 전체 완주하기 보다는 짧고, 무리가 없게 조정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산티아고도 120km정도, 6일 정도 일정으로 압축). 그러다 보니 그곳을 가보지 않고 읽는 독자들에게는 너무 건너뛰기 식의 여행기록으로 보이기 십상이고 내용이 허술해보일 수 밖에 없다.

프랑스의 파리도 세계 일곱개 트레킹 코스에 포함시켜놓았다. 파리에 트레킹 코스가 따로 있어서 갔다기 보다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들과의 여행이 아닌 아내와의 여행으로 택한 곳인데, 어차피 여행을 하다보면 많이 걷게 되니까 이것도 트레킹이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씀. 틀린 말은 아닌데, 웬지 억지 같기도 하달까.

마지막 장 '우리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만들수 있을까'에서는 세계 여러 트레킹 코스를 둘러본 후 우리 나라의 제주 올레, 서울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비교하여 우리의 걷기 코스도 산티아고 처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 수는 없을까 되돌아본 내용인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의 둘레길이 꼭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교가 되어 보강되고 업그레이드 되고, 그래야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고사하고 우리 나라 제주 올레길에도 한번 올라보지 못한 나. 매일 트레드밀 위에서 제자리 걷기만 하며 땀도 안나는 운동이랍시고 하는 나로서는 오늘도 또 한숨만 쉴 뿐이다.

알찬 구성이라기 보다는 어딘지 이것 저것 막 끌어다 엮은 책의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저자가 그동안 이 많은 코스를 걸어오며 느끼고 얻은 생각들과 경험을 제대로 잘 담았다고 보기엔 아쉬움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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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12-18 14:43   좋아요 1 | URL
원래 700km 되는 코스인데 이 책에서는 간편 코스? 를 택했더라고요. 저는 좀 실망 ㅠㅠ
해파랑길이 저에게는 지금 더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그야말로 동해를 따라 아래에서 위로 쭈욱~~
꼭 가보고 싶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