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http://image.aladin.co.kr/product/785/99/cover150/893749034x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5548/98/cover150/8937431580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816/51/cover150/8937490366_1.jpg)
내가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 책으로 세권째 책 <녹턴>이다.
왜 제목을 녹턴이라고 했을까, 생각해본다. 녹턴이란 우리말로 야상곡, 세레나데라고 번역되는 음악의 한 갈래이다. 밤중에 연인의 창 아래서 부르거나 연주하도록 만들어졌다는 낭만적인 곡.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황혼"이라는 단어가 힌트를 준다.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구성이기도 하고, 녹턴-밤-낭만 (녹턴은 낭만파 시대 음악) 이라고 연결이 지어지기도 한다.
첫번째 이야기 <크루너>. 녹턴이 음악곡의 한 갈래인 것 처럼 크루너란 부드러운 콧소리가 가미된 나지막한 창법 ('크룬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를 말한다. 여기서 화자는 야네크란 이름의 폴란드 연주자이고, 토니 가드너라는 크루너 가수와 그의 부인 린디 가드너가 등장한다. 토니의 유명세에 힘입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토니와 린디 부부는 올해로 결혼 27년을 맞는다. 세월이 흘러 토니의 인기가 점차 떨어지자 다시 인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 이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27년전 신혼여행지를 찾아 여행을 와서 아내인 린디에게 토니는 노래를 선물하고자 야네크에게 노래 반주를 부탁한다는 설정. 몇달 후 야네크는 토니와 린디의 이혼 소식을 듣게 되고 예전의 그 날 일이 생각나 서글퍼진다.
결혼과 이혼이 성립하게 되는 이유도 아니러니지만, 아직도 아내를 위해 낭만적인 노래 헌사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토니가 아직도 린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인데 과연 크루너 가수로서의 인기, 명예와 사랑 중 토니와 린디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두번째 이야기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이 제목은 우리 말의 '비가 오나 눈이 오나'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오랜만에 뭉친 대학 동창 셋 레이먼드, 찰리, 에밀리. 레이먼드와 에밀리는 대학 시절 음악을 취미로 한다는 공통점때문에 친했던 사이인데 에밀리는 일찌기 찰리와 결혼을 하여 런던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이들 부부의 런던 집에 초대되어 간 레이먼드는 둘 사이에 벌어진 일에 관여하여 중재해주기를 부탁받는데, 에밀리 모르게 일을 꾸미고 수습하려는 찰리와 레이먼드를 읽고 있노라니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게 되면서, 작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부부 일에 레이먼드를 관여시키는 찰리의 진짜 본심을 무엇이었을지. 이것을 보는 에밀리의 생각은, 진심을 무엇일지. 일종의 오픈 엔딩이다.
사라본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역시 음악이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이다.
세번째 이야기 <말번힐스>. 말번힐스는 영국의 한 지명. 남편과 함께 카페를 경영하고 있는 화자의 누나 매기가 살고 있는 곳이다. 싱어송 라이터인 화자는 오디션에 계속 탈락하여 생계가 막막해지자 매기누나에게 전화하여 여름을 말번힐스에서 머물며 일을 도와주기로 한다.
여기에서 화자는 틸로, 소냐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두 사람이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보이나 이야기 해 볼 수록 세상을 보는 눈과 성공에 대한 가치관이 매우 다르고, 그것이 이들 사이에 갈등을 빚어내고 있으며 화자에게 각기 다른 조언을 해준다. 화자는 과연 자신의 앞으로의 진로를 잡아가는데 어떤 쪽을 택하게 될지.
이 이야기 역시 작가에 의해 결말이 제시되고보다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네번째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녹턴>. 원래는 임시직 테너 색소폰 연주자이지만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연주하는 생계형 뮤지션 스티브가 화자이다. <크루너>에 나왔던 린디 가드너가 여기에도 등장하는데, 스티브와 비슷한 시기에 얼굴 성형 수술을 받게 되어 회복기 동안 같은 호텔 옆방에 투숙하게 된 것. 성형 수술의 결과로, 또는 린디의 유명세에 힘입어 스티브의 지지부진한 행적에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린디가 칠면조 속에 감춘 트로피를 찾아 한밤중에 벌인 소동을 밤에 연주하는 음악 '녹턴'에 비유해서 붙인 제목일까? 그러면서 잠시 반짝 했던 스티브와 린디 사이의 낭만적인 감정선을 의미하고자 했던 것일까.
다섯번째 이야기는 <첼리스트>. 헝가리 출신 첼리스트 티보르와 미국여자 엘로이즈 맥코믹의 이야기이다. 배경은 이탈리아. 스스로 첼로연주의 대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엘로이즈의 관심을 받는 티보르는 그녀에게서 가르침을 받게 되지만 엘로이즈는 한번도 스스로 첼로를 연주해보이지 않는다. 잠시 의심이 가기도 하지만 티보르의 잠재력을 한껏 띄워주고 격려해주는 엘로이즈를 거역하고 싶지 않은 티보르의 마음은 그녀가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며 끝이 나고 티보르 역시 다른 도시로 떠난다. 이야기는 7년이 지난 후 이것을 회상하는 다른 길거리 뮤지션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읽는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서사가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오픈 엔딩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읽고나서도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직접 묘사하기 보다는 그들의 사소해보이는 행동, 배경 설명, 음악, 상황 등을 무심한 듯 세심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택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장편에 비해 오히려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묘미, 혹은 어려움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한때 음악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음악에 대한 한때 열정을 이렇게 한 톤 낮추어, 배경인듯 주제인듯 짜넣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인정해주고 싶다. 이 책을 쓰는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이 책의 화자들과 같은 한 사람이라고 봐도 될까.
지나간 로맨스. 그것은 단순히 남녀 사이의 로맨스뿐 아니라 지나간 꿈, 열정, 목표에 대해 품었던 연정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을 다시 살려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어쩌면 아주 젊은 세대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권째 읽었지만 그에 대한 흥미는 사그러들지 않으니, 다음엔 어떤 작품을 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