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도둑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4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부터 혼란스럽기 시작하여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이 모든 내용은 문학으로서 쓰여진 것이다, 문학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 상기하며 읽어야했던 책이다.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실제 생활 (그렇다. '경험'이라는 단어보다 '생활'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경험이라고 하면 웬지 단기간, 끝이 정해져 있는, 단발성의 의미가 떠올려지기 때문이다)을 그린, 제목 처럼 '일기'인데 결코 평범한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 보이는 저 에곤 쉴레 그림 속 두 남자의 포즈로부터 짐작이 될까?

프랑스 파리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장 주네. 그는 태어난지 일곱달만에 어머니로부터 버려졌고 파리 빈민 구제국을 거쳐 다른 집에 위탁되어 성장한다 (그 후 어머니는 주네가 아홉살때 세상을 떠난다). 초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직업학교에 들어갔으나  절도, 무임승차 등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교도소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다. 탈영, 도둑, 남창 생활 하며 유럽 전지역을 방랑 생활. 다시 교도소에 수감되어 소설과 시를 집필했는데 그의 작품이 어떻게 싸르트르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장 콕토, 시몬 드 보봐르, 자코메티 같은 유명 작가와 예술가와의 친분으로 이어져서 장 주네의 창작 활동에 중요한 영향과 도움을 주게 된다.

이 책 <도둑일기>를 그의 나이 서른 여덟, 1949년에 발표하였다. 절도죄로 종신형 선고, 문인들의 탄원 덕분에 특별사면, 자살 시도, 전쟁 반대 시위 참여, 인권 운동 단체 투쟁 가담 등, 참으로 순탄치 못한 생활을 하였는데 그러던 중 후두암 증상이 나타났고 7년 후 1986년 파리 방문차 왔다가 파리의 허름한 호텔방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평소 유언에 따라 죽기 전까지 머물던 모로코의 산기슭에 묻혔다. 

작가이기 전에 도둑 생활부터 시작하였고, 그래서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교도소라는 제한되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밀폐된 장소 (작품속에서 그는 교도소를 성소(聖所)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고도 했다) 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감옥은 내게 최초의 위안을, 최초의 평화를, 최초의 친근감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불결한 세상 속이었다. 그처럼 고독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스스로를 벗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외부 세계. 그 무한성, 밤이면 한층 더 완벽해지는 혼란에 직면함으로써, 나는 그것을 신의 경지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그것은 신이 선택한 방법인 시련, 절망의 기슭에서 방황하는 괴롭고 기진맥진한 시련을 통한 것이기는 했지만, 특별히 고려하여 인도된 수많은 주의와 경계의 대상, 사랑받는 구실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수많은 일들의 유일한 목적이기도 했다. (121쪽)

그가 처음 교도소에서 쓴 시 제목이 <사형수>이다. 차라리 교도소에 계속 있었으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탈영과 절도를 반복하고 불법과 반도덕, 반윤리적인 생활을 일삼았다. 특히 그는 남창으로서 같은 남자들에게 인기있는 여자 역할을 한 사람이었고, 남자들끼리의 사랑, 질투, 성적 행위 등을 책 속에 숨김없이 묘사해놓았다. 이 책은 다름아닌 그러한 그의 생활의 기록이다.

그래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는가, 싸르트르나 장 콕토, 시몬느 드 보봐르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그렇게 결정적인가, 읽으며 이런 생각들을 안 할 수 없었다. 문학이니까. 논픽션으로 읽지 말고 문학으로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려니 그럼 문학이 무엇인데? 라는 물음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가 사용하는 비유나 표현들이 수월하게 읽히지도 않는다. 번역도 의심을 해본다. 자기 세계를 확인하면서도 바깥세계와의 단절을 힘들어하기도 한다. 더럽고 소외된 생활이라고 하면서도 그 생활에 만족하기도 한다. 도둑질을 하면서도 배반을 거부한다. 불법적 생활을 하면서도 신과 신성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혼란과 이해 안됨 속에서 가끔씩 가슴을 쿵 울리는 문장들이 나타난다. 자기의 감정, 행동,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의미를 붙이고 가치를 찾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의 흔적이 느껴지는 문장들이다.

신성성 (神聖性), 그것은 바로 고통을 유익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 5년 전부터 나는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나는 그 일을 즐겁게 해 왔지만 이제는 끝을 낼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내가 추구하고 있던 바를 얻었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내 삶을 이끌어 온 것은 나의 체험이 아니라 그 체험을 이야기하는 태도였다. 즉 다양한 일화들이 아니라 예술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삶이 아니라 그 삶의 해석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삶을 환기시키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표현하기 위해 언어가 내게 제공해 주는 것이다. (297)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해 말해주는 것 같다. 그의 글은 그의 체험으로서가 아니라 체험을 이야기하는 태도로서 읽어달라고. 다양한 일화들이 아니라 예술 작품들이었다고.

더불어, 엉뚱하지만 전혀 무관하지 않은 혼자만의 생각이 결론을 대신한다. 작가이든 아니든, 살아있는 동안 글을 쓴다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그것은 내 삶을 해석하고 환기시키는 행위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 1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형수라는 작가는 전자책으로 다운받아놓고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소설 <조드>라는 소설로 처음 알게 되었다.

몽골의 테무친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방대한 양의 방대한 공간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라거,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구입해서 읽어야겠다는 핑계로 밀어놓고있다가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삶이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제목이 진지하고 다소 무거워보이는데 비해 내용은 꼭 무겁지만은 않았다. 아마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도 독자에 포함시켜 이해하기 쉽게 하자는 의도가 있었던 듯 하다.

제목에서 부터 삶과 예술은 서로 다른 분야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렇게 평소에 알고 있기도 했는데, 제목을 더 들여다보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예술이 삶을 소재로 하고 있고, 삶과 분리된 예술은 상상하기 어렵다면 그럼 모든 삶이 예술로써 이야기 될 수 있는가?

어떤 삶을 예술 작품, 특히 문학으로 작품화할수 있으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가.

 

문학은 성격 창조를 통해서 인간 문제에 답한다. 성격 창조에 실패한 작품을 문학사적 지평 위에서 논할 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인간학적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살아있는 성격을 그리는게 문학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창작 활동에서 숱한 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어떤 작가가 창조하여 세상에 던진 인간형이 당대 사회의 곤혹과 딜레마를 관통 하는가 그렇지 못 하는가를 묻는 것만큼 중요한 질문은 없다. 다른 요소들의 뛰어남은 그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68쪽)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한 대목을 꼽으라면 위에 인용한 부분을 꼽겠다. 문학은 인간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구체적인 성격 창조 없이 어떻게 삶을 얘기하겠는가.

 

글을 쓴다는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미덕은 무엇일까.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놀라운 측면은 글 쓰는 행위 안에 세계를 인식하는 기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말로 설명할 때 그것의 맥락을 발견하게 되고, 글로 표현할 때 더 명료하게 아주 현장 검증을 하듯이 이해하게 된다. (74쪽)

글쓰기는 곧 '현장 검증'이라는 명쾌한 비유.

 

그렇다면 예술과 오락의 경계를 짓는 '형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형상화는 예술 언어의 필요조건이다. 형상화의 목적이 성격 창조에 맞춰지면 예술이고, 오락적인 기능만 하고 있으면 예술이 아닌 것이다. (114쪽)

여기서 '형상'이란 바깥으로 드러난 모양을 말하는 것인데, 형상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추상'이 아니라 '개념'이라고 앞에서 미리 설명해놓았다 (101쪽). 요즘 비어적인 표현으로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런 느낌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표현하여 드러내는 것을 '형상화'라고 한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형상화한다고 해서 모두 예술이 아니라, 그것의 목적이 성격 창조에 맞춰질때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이다.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음악은 소리를 사용하고, 문학은 문자를 이용한다. 문자를 이용해 세계의 형상을 그리고 인간형을 창조하는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한 예로서 저자는 송기원의 작품 <월행>을 들어 설명했다. 월행이란 달밤에 걷는 걸 뜻하는데 좌익활동을 하여 온 가족이 몰살당하게 한 사내가 나중에 몰래 성묘를 가는 풍경을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작가 송기원은 단 한 글자도 이데올로기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그것을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스토리텔링을 들 수 있는데, 스토리텔링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에 성격 창조, 인간형 창조가 들어가야 문학이다. 게임스토리가 문학이 될 수 없는 이유이고, 위에 인용한 오락적 기능만 하고 있는 형상화는 예술이 아니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외, 짤막하나마 절묘한 비유들이 여기 저기 많았는데, 정서불안이 생기는 것을 서정이라고 한다며, 조금 다듬어서 말하자면 객관 세계에 의하여 환기된 감정, 이것이 바로 서정이라고 한다고 했다. 또한, 서사적 방식이란 단일한 상황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끝없이 변화 발전하는 상황을 연결시켰을 때에만 통하는 전달 방식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래서 서사의 핵심은 '우여곡절'이라고. 그래서 세상사의 곡절들을 잘 읽고 그리는, 또 그것에 실감을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 서사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했다.

 

이 책과 짝으로 읽을만한 저자의 또다른 책으로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가 있다. 아마도 저자의 소설 <조드>를 마저 읽는게 더 먼저일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그 소설이 매우 여러번 떠올랐으므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8-02-2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감명깊게 읽었어요^^

hnine 2018-02-21 23:43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 이분 소설 <조드>도 혹시 읽어보셨나요? 전 그 책 읽다가 스케일하며 문체, 서사가 만만히 읽을 수준이 아니기에 읽다가 멈춘 상태라서 이 책도 읽기 전에 좀 망설였었어요. 읽기에 너무 무거운 내용일까봐요. 그런데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쓰셨더라고요. 비유도 잘 하시면서요. 소설도 혹시 안읽으셨다면 권해드려요. 저도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고양이라디오 2018-02-21 23:52   좋아요 0 | URL
전 반대로 이 책을 읽고 <조드>를 접했습니다. 조금 읽다가 다른 책들에 밀려서 보류해둔 상태입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큰 동기는 생기지 않아서 계속 보류상태입니다ㅎ

같이 다시 읽어볼까요ㅎㅎ?

hnine 2018-02-22 07:21   좋아요 1 | URL
예, 읽다가 말기엔 너무 아까운 소설입니다.
읽고 나면 몽골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것 같아요.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전에 읽은 그의 소설 <에브리맨>도 죽음으로 시작하더니 자전적 에세이라는 이 책도 역시 죽음에 관한 책이다. 우리 나라엔 2017년에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원래 1991년 나온 책이니 나온지 꽤 된 셈이다.

미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필립 로스가 1933년생이니까 올해로 여든 넷. 이 책에서 그의 아버지가 죽음을 선고 받은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이르렀다.

안면마비로 시작된 그의 아버지의 증세는 뇌종양, 그것도 악성 대형 종양으로 밝혀지고 어떤 치료 방법도 별로 낙관적이지 않다는 선고까지 듣게 된다. 살아나도 힘들게 버티는 날들만 남아있을 것이라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욱' 힘들어질 수 도 있으니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서라도 수술을 하겠는지 결정하라는, 의사의 절망적이고 솔직한 소견에도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빠져가는 몸 상태로 인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여만 하는 아버지를 찾아간 저자는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같이 산책을 하자고 제안하는데 아버지는 방의 커튼을 다 내린채 괜찮다며 혼자 있고 싶어하는 대목이 나온다.

줄여서 옮겨 본다.

"자, 스웨터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세요. 아름다운 날이라 이렇게 안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커튼까지 다 내리고 말이에요."

"나는 안에 있어도 괜찮아."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네 단어, 그전에는 평생 아버지에게 해본 적이 없는 네 단어를 내뱉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그것은, 그 네 단어는 먹혔다. 나는 쉰다섯이고 아버지는 여든일곱이 다 되었고, 때는 1988년이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그렇게 한다. 한 시대의 끝이고, 다른 시대의 새벽이다. (94쪽)

필립이 아버지에게 말한 네 단어란 아마도 Do as I say 정도이겠지. please 도 없는 그야말로 명령문.

자식이 부모에게 지시와 명령을 듣던 시기를 살다가 거꾸로 자식이 부모에게 지시를 하는 때, 해야만 하는 때가 온다. 부모가 자식에게 의존해야하는 시기가 왔다는 뜻이다.

혼자 걷기도 힘들어지고 백내장으로 잘 보이지도 않게 된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 집 화장실에 혼자 갔다가 온 화장실 바닥이며 벽, 변기, 수건에까지 똥으로 범벅이 되게 해놓은 것을 아들 필립이 뒤늦게 발견하고 그것을 치우며 필립은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유산이라고. 돈이 아니라, 어떤 특정 물건이 아니라, 똥이.

유산이란 부모가 남기고 가는 모든 것이다. 원해서 남겨주고 가는 것도 있지만, 원하지 않아도, 받고 싶지 않아도 남겨주고 가는 것, 물려 받게 되는 것들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후반부에 오면 역시 생명연장장치 이용에 대한 동의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죽음의 시간이 가까와오고 더이상 비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아버지의 얼굴은 움푹 파이고 망가진 가운데 저자는 아버지의 얼굴에 입술을 갖다 대고 간신히 마지막이 될 말을 속삭인다. "아버지, 보내드릴 수 밖에 없겠어요." 라고.

 

나는 진즉부터 이 책이 읽고 싶으면서도 아직도 수시로 밀고 들어오는 슬픔과 아픔 때문에 손에 책을 잡기까지 시간이 꽤 흘러야했는데, 정작 읽어보니 작가는 비교적 감정 표현에 지나치지 않았고 (절제를 잘 했고), 작가도,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바탕에 유머와 재치가 번뜩이는 사람들이어서 책 내용이 너무 어둡고 처지기만 하진 않았던 것 같다.

 

2012년에 이미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필립 로스.

작가로서, 그동안 써온 작품들로 만족을 하기란 얼마나 쉽지 않았을까. 새로운 걸 더 쓰기보다는 정리하고 회고하며 시간을 보내겠단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로 만족을 하기란 또 얼마나 쉽지 않을까. 어느 시점이 오면 욕심을 줄이고, 가진 것을 내려놓고, 삶을 단순화하며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2-1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가 쉽지는 않겠어요.
가끔 사람은 왜 자식을 낳고자 하는 걸까를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죽을 때 외롭지 말라고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자식의 입장에선 좀 버겁기도 하겠죠?
이런 책 읽으면 남의 얘기 같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저만치 밀어두고 싶기도 해요.

hnine 2018-02-13 19:29   좋아요 1 | URL
자식이 있으면 죽을때 덜 외로울까요? 오히려 더 생에 미련이 남을까요. 저도 아직 안겪어봐서 모르겠네요 ^^
저도 저만치 밀어두고 있었는데 눈에서 멀어져도 머리 속에선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결국 읽고 말았는데 생각만큼 그렇게 무겁진 않았어요 (stella님도 읽으셔도 좋을 듯). 오히려 작가의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입장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담담하고 절제도 잘 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서로 농담도 주고 받는 여유를 보이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필립 로스도 노벨상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작가이니만큼 이 사람 작품들도 읽어볼 가치는 있는 것 같아요. 섬세하다기 보다 뭐랄까, 더 폐부를 찌르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저도 이게 겨우 두권째 읽는 것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stella.K 2018-02-1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좋은 작가죠!

서니데이 2018-02-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석희 옮김 / 프레스21 / 199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남아있는 나날>, <우리가 고아였을 때>, <녹턴>, <나를 보내지마> 에 이어 다섯번째로 읽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다.

맨부커상을 받은 <남아있는 나날>이 발표된 것이 1989년이었고 이 작품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95년에 나왔는데 6년 만에 발표한 소설이 그 이전 작품과 이리 다를 수 있을까.

이야기는 가상의 국가, 가상의 도시 한 호텔에 라이더라는 피아니스트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상의 국가와 도시라고 했지만 읽다보면 어느 나라를 나타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긴 하다). 며칠 후에 있을 '목요일 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도 그냥 목요일 밤의 행사라고만 했을 뿐 어떤 목적의 행사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라이더 조차도 어떤 성격의 행사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아무튼 이 라이더라는 피아니스트가 할 일은 이 호텔에 투숙해있다가 행사에 참석하여 연주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뭔가 부탁을 하고 하소연을 하고, 자기들의 사정을 라이더가 해결해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래서 라이더의 일정과 계획은 계속 미뤄지고 잊혀지고 불확실해진다. 라이더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는 어릴 때 라이더를 연상시키는 소년도 있고, 예전에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아들에게 집요한 기대를 거는 부모와 그 아들도 있다. 이들이 모두 라이더의 과거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만나는 사람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과거에 가본 적 있는 장소, 건물, 사물에도 적용되는데, 그렇다면 라이더가 이 도시에 도착하여 겪는 일들은 모두 라이더의 과거와 어떻게해서든 관련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하기 시작한 것은 111쪽의 다음 내용을 읽고서였다.

호텔지배인의 아들인 슈테판이 부모님의 결혼 생확이 순탄치 않은 것을 회복시키는데 자기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과 불안에 싸여 있고, 그래서 여러 사람 앞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하는 모습을 부모님 앞에 보여주고자 하는 강박, 부담을 묘사한 부분이다. 마치 심리학적 분석이 들어가야 할 내용으로 읽히기도 했고, 작가가 이런 슈테판의 심리를 어떤 목적으로 이 소설 속에 넣었을지,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해 어떤 전조가 되는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라이더가 가졌던 과거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는 짐작을 처음 하게 만든 대목이다.

311쪽에는 보리스가 예전에 자기가 살던 집이라며 라이더를 데리고 간 곳의 구조가 라이더 자신이 예전에 살던 집과 같음을 발견하는 대목이 나온다. 라이더는 보리스에게 과거 어린 시절 자기의 모습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보리스가 자기의 아들이었다가, 과거의 어린 자신이었다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방식. 작가는 1, 2권, 거의 800쪽에 걸쳐 계속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현실을 넘어서는 (책 뒤의 김석희 번역가는 '초현실적'이고 '실험적'이라고 했다) 서사에 더하여 또 주목할 것은 이 작품에서 이용되고 있는 '상징'이다. 베를린 장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콘서트 홀 주위의 그 장벽은 콘서트 홀이 눈 앞에 있는데도 사람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구경하러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는 아이러니. 히틀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막스 자틀러는 공포의 대상이자 증오의 대상이면서 숭배와 찬양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멋모르고 기자들 요구에 의해 이 자틀러 기념관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히고 마는 라이더는 이 일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의 기대를 받는 신분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으로 급락하게 된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함이 극치에 이를 정도로 라이더는 우유부단함과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욕구에 휘둘려 자기의 원래 목적을 자꾸 잊는다. 이것은 2편중에 나오는 구스타프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박수와 기대때문에 멈춰야할 시점을 놓치고 능력을 넘어서는 범위까지 보여주려는 우를 범한다. 라이더의 경우엔 자기의 원래 목적이 방해받는 데에는 사람들의 사정을 들어주느라 시간적으로 자꾸 미뤄지는 것 외에도, 콘서트홀까지 가는 길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도 원인의 하나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불안해한다.

믿고 있던 가치가 흔들리고, 물리적인 벽과 정신적 경계가 무너지고, 급변하는 정세와 상황. 포스트 모던으로 상징되는 이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통과하되 길을 잃은 심정이 된 우리들이 바로 이 작품 속 라이더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모르는 제3자에게 자신의 불안을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걸고 하소연함으로써 오늘을, 또 내일을 버텨나가는 작품속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들인 것 같기도 하다.

 

 

 

 

= 내가 읽은 것은 구판이고, 현재는 민음사에서 새로운 표지로 나오고 있는데 (아래), 번역자를 비롯하여 내용은 동일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용이 과하다. 인디언과 아프리카 부족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우화, 다른 작가의 문장 등,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인용이긴 했지만 용량 초과 느낌은 이 책만의 개성이 흔들리게 한다. 특히 비슷한 구성의 책을 여러 권 쓴 저자의 겨우 이렇게 인용을 즐겨하다보면 동일한 인용이 여러 권에서 겹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왜 아니겠나. 이 책 한권에서만도 한번 인용되었던 내용이 뒤에서 중복 인용되기도 하는데 (예1. 인생의 부를 결정하는 기준에 대한 앙드레 지드 인용이 62쪽과 192쪽; 예2. 영적 교사 페마 초드론의 얘기가 179쪽과 204쪽).

트집부터 잡고 시작했으나 내용 자체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읽으면서 바로 수용되는 내용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말들이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 아니냐는 불만은 없다. 진리는 간단하고 당연하고 단순한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읽으며 밑줄 친 몇 부분을 옮겨 본 것인데 대부분 인용이다 (괄호안의 문장은 내가 덧붙인 것)

 

◆ 삶에 대한 해답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머릿말)

(책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삶의 경험을 완전 대체할 수 있다는 자만의 위험)

◆ 모든 과정과 순간순간이 목적지라는 말은 트레킹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진리이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35)

(일생을 다 마칠 무렵 도달하는 곳이 목적지가 아니라 매일, 매순간이 목적지. 오늘 이 순간이 목적지)

◆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당신이 해 온 것들은 들었지만, 당신이 겪어 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이다. 때로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최고의 것을 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니라. (40)

◆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경이나 환경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 대한 집중도 (71)

◆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는가는 그들의 카르마가 되지만, 그것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당신 자신의 카르마가 된다. (140)

◆ 만약 당신이 집을 갖기를 원하는데 누군가가 집을 사 준다면, 당신은 진정한 집을 얻응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얻기까지의 노력과 우여곡절과 경험이 생략된 집은 당신의 진정한 소유가 아니다. 그 집은 모래로 지은 집이나 다름없다. 당신은 곧 그 집을 잃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리를 발견하기 원하는데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리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진리가 아니라 모조품에 불과하다. 당신은 그 진리를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276)

 

모조품 인생을 살면 뭐하나. 울퉁불퉁 못생겨도 내가 이루어낸 인생 작품을 만들어야지. 오디세이아가 온갖 고생을 해가며,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자기 고향 이타카를 찾아가는 얘기를 하며 (역시 인용), 이타카는 그곳을 향해가는 바로 그 길위에 있다는 말로 책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책을 여러 권 낸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 다운데 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26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6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1-27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로 읽으면 강조된 부분이 표시되지 않아서, 이 글은 서재에서 읽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오늘도 무척 추운 아침입니다. 그래도 오후에는 어제보다는 기온이 많이 올라간다고 해요.
hnine님,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토요일 하루 보내세요.^^

hnine 2018-01-27 19:01   좋아요 1 | URL
추워서 며칠 산책 못시켰더니 저희 집 강아지는 지금 스트레스를 받는지 신경질쟁이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데리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갔다가 들어오면 새삼 따뜻한 집이 있다는게 고맙게 느껴져요. 그것만 해도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

서니데이 2018-02-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입춘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올해도 좋은 일들 많으시기를 기원합니다.
hnine님, 편안한 일요일 보내세요.^^

hnine 2018-02-06 14:54   좋아요 1 | URL
한참 추울때 입춘이라고 정하신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집니다.
오늘도 무척 춥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