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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 김광현 교수의 건축 수업
김광현 지음 / 뜨인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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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을 전공으로 하지도 않았고 그 비슷한 언저리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오로지 관심만 있을 뿐.

7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내용은  나 같은 일반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저자 김광현 교수는 서울시립대와 서울대학에서 40년 넘게 건축을 가르쳐 왔고 올해 2월 정년퇴직을 했다. 이 책은 그러니까 그동안 가르쳐온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한권으로 정리하였다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한 우물을 오래 판 사람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 우물 오래 판 결과 어떤 깊이와 통찰력을 주었을지, 또 한편으로는 하나의 관점에 가두어 시야를 좁게 하지는 않았을지, 아직 그 경지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갖는 호기심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집을 왜 짓는가>라는 제목의 1장을 시작으로 건축의 역사, 건축과 사회, 건축과 도시, 건축과 제도, 정보화 시대에 따른 건축의 미래 등 10장에 걸쳐 광범위한 건축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려운 용어나 해설때문이 아니라 워낙 광범위한 내용때문에 한 페이지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건축은 그것을 목적으로 하든 하지 않든 그 결과물에서 미적인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예술, 즉 디자인의 한 분야로 보려는 경향도 있겠지만 건축은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목적이 우선해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건축이라는 것이 있기 이전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 피난 공간으로서 건축 행위를 해야했으며 그것이 건축의 근원이라는 것. 이후로 건축에는 사회는 물론이고 역사, 사상, 종교, 경제, 법률 등등 너무나 많은 요인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분야의 배경 지식이 인용될 수 밖에 없다. 즉, 건축은 혼자 있지 않다.

이 책에서도 다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여러 건축가가 거론되었다. 특히 저자가 자주 언급한 건축가는 루이스 칸이며,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고 보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에서는 건축의 근본이 추구해야 하는 점에 있어서 놓친 점이 무엇인지 지적하면서 건축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실제 그 건축을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을 강조하였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건축물들이 사실은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 만들어졌다. 전문가가 설계하지 않은 건축이라는 뜻이다. 마을이 그렇고 다양한 지역의 토착 건축들이 그렇다. 하지만 전문가가 설계하지 않았다고 해서 은근히 낮추어 보면 안되는 이유는, 유행에 걸리는 것도 없고 완전히 그 지역이나 집단의 목적에 맞기 때문에 더 지혜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급변하는 현대의 정보화 네트웤은 건축의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건물이나 건축의 필요성이 점차 정보화 수단으로 대체되어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이 필요 없어지고, 서점, 도서관, 학교, 모이는 장소 등이 예전만큼 필요 없게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건축의 필요성이 사라져가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단지 건축이 가야할 방향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뿐이다.

아무리 작은 건물일지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기술, 예술, 역사, 철학, 정치, 제도, 환경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은 그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라고 했다. 그리스 시대의 정치가, 영웅은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건축물은 남아서 뭔가를 말해주고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남아 인간의 행적을 말해주는 것이 건축이 아닐까.

마음이 착한 아이는 마을의 길에서 자란다는 서양 속담을 저자도 책에서 여러 번 인용했다. 건축은 모든 사람을 가르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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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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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를 읽고서 과학소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특히 우리 나라 과학소설은 그럼 어디까지 와 있을까 궁금해졌다. 올해 2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으로 2017년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골랐다.

한국과학문학상은 머니투데이 주최로 2016년 부터 공모를 시작하였다. 설명에 의하면 최종 수상작이 선정될 때까지 응모작에 대한 모든 정보를 비공개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도 보면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가작에도 선정되어 한 작가의 두 작품이 같은 책에 실려있다. 심사위원에 박상준, 김보영, 김창규, 배명훈, 이정모. 이중 네 사람의 이름은 내 눈에도 익숙하다.

중단편부문 대상작 <관내분실>. 제목을 보고 짐작되는 바로는 기관내에서 어떤 물건이 원인 모르게 없어졌다는 뜻일텐데, 여기서 기관은 사람이 죽은 후 그 사람의 마인드를 보관해두는 도서관이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3년 만에 이 도서관을 찾은 글중 화자가 보관되어 있어야 할 엄마의 마인드가 사라졌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죽어서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래의 추모공간으로서 그 사람 살아생전의 모든 데이터를 보관해두는 곳.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해서 죽은 사람의 반응을 가상하여 보여주는 곳. 그것이 실제와 다를지라도 사별한 사람과 마인드 접속기를 통해 재회를 해볼 수 있는 곳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에서는 과학의 다른 기술이 동원된다. 워프 항법을 이용하여 냉동 수면상태의 인간이 지구 외에 인류에게 유용한 다른 항성으로 보내지는데 빛보다 빠르게 다른 은하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냉동 수면 상태의 인간이 다시 녹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취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남는데, 그 와중에 우주 곳곳에 고차원의 웜홀들의 존재를 이용하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된다. 이런 과도기에 남편과 자식을 먼저 다른 항성으로 보내야 했던 안나라는 여인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다. 쓸모 없어진 우주정거장을 해체하고 처리해야하는 임무를 맡은 담당자는 그만 포기하라고 안나를 설득한다.

김혜진 작가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역시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얘기였다. 여기서 TRS란 Trusting a Robot Study의 약자로서, 로봇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실험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야기 중에는 간병 담당 로봇의 이름이다. 피해갈 수 없는 의료 윤리, 생명 윤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정연 작가의 <마지막 로그>는 읽으면서 특히 가슴이 아팠던 작품이다. 태어남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지만 생을 마치는 시기는 결정할 수 있다면 더 깔끔하고 의미있는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평균수명은 늘어났다지만 마지막 몇년은 병원에서 보내는 것이 의례적인 죽음의 과정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 여행지에 호텔 예약하듯이 알주일 예약 후 마지막 로그아웃을 하는 과정이 생겨난다면.

김선호의 <라디오 장례식>에 이어 이 책의 제일 마지막, 분량은 가장 긴 이루카 작가의 <독립의 오단계>를 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은 작품으로 꼽고 싶다. 인간의 입장이 아닌, 인공 지능의 입장에서 그들의 권리와 의무, 의의는 어디까지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다. 인간 신체의 65%가 기계로 대치되어 연명되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그 혹은 그녀는 인간이며, 감정과 감성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인간의 명령대로 만들어지고 폐기되어야 하는가. 실제 법정에서 재판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생각의 주제를 던져주었다. 인간의 일부가 아무리 인공지능으로 대치된다 할지라도, 또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 인간 못지 않은 감성까지 갖춘다고 할지라도 그 구분의 기준은 자궁을 통해 만들어지느냐, 조립을 통해 만들어지느냐에 있다는 말도 새삼 의미있게 다가왔다.

 

기대하던 것보다 가독성도 있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도 안들었다. 그만큼 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라는 뜻이겠다.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그리 친숙하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 책 말미에 심사위원 다섯명의 작품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다섯 편 작품 공통적으로 미래를 보는 눈이 어둡고 회의적이고 종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감이다. 하긴 미래를 장미빛으로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내가 작가라도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작품을 쓰자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 편견을 확 뒤집어 엎어줄 작품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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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정의 (특별판)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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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뷔작이라고해서 꼭 이야기의 무대가 소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아이 둘을 키워낸 50대 여성의 데뷔작이라고 해도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을 마침내 이루어내기에 여성의 50대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혼돈은 예상했다 할지라도 끝까지 다 읽도록 그 혼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비록 처음의 혼돈과 마지막까지 남은 혼돈이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읽어보라고 권해서 읽기 시작하여 나보다 더 빨리 읽어버린 내 친구는 처음 도입부는 복잡해보이지만 좀 넘어가면 수월하게 읽힌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영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남아있었달까. 완전히 녹지 않고 끝까지 아래에 침전물이 남아있는 혼탁한 액체처럼.

먼 미래 우주.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범우주적인 제국이 등장한다. 앤 레키가 탄생시킨 제국이다. 라드츠라는 이름의 이 제국의 목표는 전 우주 인류를 병합하는 것. 여기에 인공지능 함선 군단이 이용되는데 이 함선의 이름이 저스티스 토렌이다. 이 책 제목 <사소한 정의>에서 '정의'는 이 함선의 이름 저스티스를 상징했는지도 모른다. 제목의 <사소한>이라는 단어는 ancillary를 번역한 것인데, ancillary는 사소한이라기보다 <보조적인>이라는 뜻인데 번역하시는 분이 몰랐을리 없고 아마 제목으로 하기 좋게, 중의적으로 붙인 제목이 아닐까 짐작된다. 실제로 책 내용중엔 많은 <보조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 보조체가 부품으로 들어가 있는 함선 저스티스 토렌호가 제목 Ancillary Justice의 실제 의미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은 현실화 되어 있는 세상이고, 유전자 치환, 복제 기술을 이용한 클론도 SF소설에나 등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시작한지 오래인데, 앤 레키가 만든 라드츠 제국에서는 인공지능 속에 인간 유전자가 삽입해 들어가는,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기술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인간이 죽게 되면 사체를 보관해놓았다가 나중에 필요한 부분을 인공지능에 삽입하여 보조체로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보조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살아있는 시체'인 셈이다. 그럼 이렇게 보조체로 존재하기 전 살아있는 인간이었던 기억은 유지되는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기술을 뭉뚱그려 이야기화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예 상상속의 기술들이라면 모를까, 현재 가능화된 기술들을 망라한 복합체라면 좀 더 이해 가능하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게 썼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또한편으로는, 아무리 오래 고심한다 할지라도 작품 속에서 한 작가의 머리속으로 모두 깔끔하게 해결하여 완벽한 제국을 구사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작가가 그린 제국은 사소하지 않다.

인간의 부속품이 들어가있는 보조체, 인공지능이 그럼 인간일까? 아니다. 함선에 부속된 장비의 일부이다. 외형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특이하게 감정도 있고 명령에 불복할 수도 있게 이 책에서는 그려지고 있지만 엄연히 독립된 개체라기보다 큰 장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혼돈.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선이 흐려진다.

복제의 결과 여러 개체로 존재할 경우, 즉 이 책에서 라드츠 제국의 군주처럼 자기 복제를 계속하여 서로 연결된 수천 개 몸으로 구성된 인간으로 존재할 경우, 그 각자의 인간은 복제의 결과 유전자 조성이 같을 뿐 늘 똑같은 생각과 판단을 하리란 법은 없다 (쌍둥이가 항상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래서 생길 수 있는 일은, 하나의 나와 다른 내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고, 거기서 나아가 두개의 나가 대립하여 서로의 적이 되어 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발한 생각 아닌가? 복제 인간의 딜레마이다. 반면 이 책의 화자로 나오는 브렉은 수천개의 보조체, 즉 죽은 인간의 몸에서 유래한 구성품이 삽입되어 있는 단일한 하나의 인공지능이다. 복제인간과 인공지능중 누가 실제 인간에 더 가까운가.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이 책에서 라드츠 군주 같은 복제 인간은 인간으로 보는 반면 인공지능 브렉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그것은 정당한가?

시간차를 두고 생겨난 복제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은, 50살의 나와 5살의 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앤 레키는 이런 상황을 적시에 절묘하게 이용하였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 두개의 군주를 상대로 복수를 벌인 브렉앞에 결국 나타난 이 존재를 브렉은 상상이나 했을까.

먼 미래 우주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스타워즈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안된다. 이 책의 본질은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를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른단다.

저자의 다음 책을 주문하기에 앞서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담겨있던 한국SF소설집 한권부터 주문한 것은 앤 레키의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에서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SF소설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은 한 등급 올라갔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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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
신정현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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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란 근대 모더니즘 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한다.

Modernity 를 '근대성'이라고 번역한다면 postmodernity 는 '후기근대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쓰게된 원천이 된 생각에 대해 머리말과 본문 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나의 책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은 '현대 문명으로 창조되는 그 많은 행복감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거대한 현대문명으로 왜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려는 하나의 노력이다. (5쪽)

 

포스트모던시대를 정의하는 말은 아마 문화비평가의 수 만큼 다양할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서구 문화비평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삶에서 행복을 잃었던' 반세기를 포스트모던 시대 (the postmodern age)'라고 부르고 이 시애에 대한 이념적 태도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른다고 한다. 1,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그만큼 사람들의 관점과 철학, 세계관을 바꿔놓을 만큼 충격적이었다는 말이 되겠고, 행복을 잃었다고 내린 정의는 지금까지 어떤 주의나 사조로도 극복이 되지 않고 있다. 과학과 문명은 말도 안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불행하고 허무해가는 것은 왜일까. 이제는 그것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턱없이 광대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하여 저자는 서론과 결론 외 다섯개 장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의를 위하여

서론이면서 이 책 전반에 대한 요약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이다. 포스트모던 시대가 오게 된 역사, 문화적 전조들에 대한 설명으로서, 인본주의와 계몽주의 사상이 서구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신에 집중되었던 가치가 인간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신에 대한 믿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시대, 즉 근대에 대한 설명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다른 어떤 주의나 사상으로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였으나, 결국 그것은 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비극을 낳았고, 이제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그 지나친 이성 중심 사상에 회의를 갖게 되었고, 계몽주의의 역설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작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출구없는 절대허무를 보여주고 있는 배경이다.

제1장: 포스트모던 문명의 전조들

계몽주의와 이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계몽주의의 역설과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을 낳게 된 전조가 된 이 당시 인간들 마음 속에 들어있던 강박관념을 네가지로 분류해놓았다. 그것은 호기심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멈춤장치 없는 앎에의 욕망이 그 하나이고, 자기사랑 콤플렉스와 관련된 자기 파괴적 자기 사랑이 그 두번째. 세번째는 중심지향 콤플렉스인데 한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이 경우엔 도구적 이성)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춰 생각하고 삶을 획일화 규격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명 콤플렉스와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교감지수의 감소를 초래한 일을 들고 있다.

제2장: 포스트모던 문명 속의 디스토피아

근대문명이 가져다준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의 싹은 근대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근대에는 그래도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고 다시 유토피아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찾고자 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역설을 보았을 뿐 아니라 이것은 어떤 이즘이나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가 절대허무로 갈 수 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라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던 정신이라는 것이다. 기술문명 속에서 인간은 자유로와졌는가, 보이지 않는 더 큰 부자유로 옭아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소비주의가 다른 모든 가치관에 우세하는 사회, 이에 따라 주체적이 아니라 식민화되고 있는 자아를 초래하여 소비형 인간이라는 신종 인간을 탄생시켰다. 디스토피아적 현상들에 대한 일거이다.

제3장: 모더니즘 문학: 계몽의 역설에 대한 깨달음

중심지향 콤플렉스에 대해 1장에서 설명했듯이, 계몽주의에 대한 역설을 어렴풋이나마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 여명기의 모더니즘이다. 길잃은 세대들 (the lost generation) 이라는 말이 나왔고, 예이츠, 로런스, 스티븐스, 조이스, 엘리엇, 포크너 등의 많은 모더니즘 문학을 낳았다. 이 장에서는 주로 모더니즘 문학의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조가 된 모더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제4장: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들

개인적으로 제일 읽기 힘들었던 장. 앞의 장에서도 여러 철학가의 사상을 설명하긴 했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장에서는 리오타르, 데리다, 라캉, 푸코를 대표적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비평가로 들어 그들의 주의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들은 합리와 과학에 대한 광신적 믿음을 해체하고자 했고, 존재의 본질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 조리가 아니라 부조리, 선이라기 보다 악, 창조와 발전이 아니라 엔트로피,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임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제5장: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출구 없는 절대허무

포스트모더니즘 정신과 문학을 나타낸 말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용어가 아닌가 한다. 절대허무, 또는 행복의 레시피가 없는 세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문학으로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핀천의 <49호 품목의 경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로웰의 고백시, 보르헤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결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결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요약이다. 서구 계몽주의 역사의 가장 큰 태생적 결함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지녔던 인지적 결함에 비유하였다. 계몽주의 역사가 이성에 대한 믿음에의 오만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오이디푸스의 계몽적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20세기의 역사를 앞에 놓고 현대인들이 창조해낸 기술문명, 소비주의 문명, 세계화 문명 등 그 엄청난 문명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들은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한 물음은 문학과 철학과 역사에 있어서의 모더니스트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었다고 하면서, 서구 근대에 일어난 계몽의 역설로 인간이 불행하다면 그것을 되돌리거나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것 자체가 의미없음을 보여주었다. 차라리 인간의 삶에 원래부터 내재된 비이성과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절대이성의 탈을 쓰고 전체주의적 권력을 휘두르는 어느 하나의 비이성적 이성에 묶여 살지 않기를 바랐다.

 

이렇게 요약하고 넘어가기엔 이 책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고 예를 들어 설명한 문헌만 해도 방대하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저서이지만 이 책은 문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문화비평서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각 내용에 적절한, 적절하다못해 절묘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인용, 그리고 문학 뿐 아니라 많은 철학 서적이나 문헌들의 인용이 이루어진 것은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점이자, 나 처럼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쉽지 않은 분야지만 몰입하여 읽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주관성이 너무 드러나는 기술 방식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은 이것이 인문학 서적이기 때문인지, 수년간 자연과학을 공부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읽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근대 이전, 과거 과학 기술의 발달이 덜 이루어졌을 당시 인간의 삶은 그럼 행복했는가? 과학은 감정의 무절제함, 무방향성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철학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과학을 곧 기술, 문명이라고 보는 단순화도 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에 대한 맹신, 맹목적 환상을 품고 그 이면을 보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과학 자체에 대한 오류로 보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 가장 몰입하여 읽은 책이고,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보는 책이다.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잘 정제되고 다듬어진 문장들, 적절하고 절묘한 비유들이 많은 문장들은 읽는 동안의 기쁨을 배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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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4-09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책을 읽으시는군요.
저는 더 이상 이런 딱딱하고 어려운 책은 못 읽을 것 같아요.ㅠ
제가 오직 읽고 싶은 책은 소설이죠.
꽤 오랫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읽어도 새발의 피처럼 읽었죠.
안 읽은 책이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없고 맨날 한숨만 짓고 있습니다.ㅠㅠ

hnine 2018-04-09 19:38   좋아요 0 | URL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이 생겼는데 (!),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도 원래 소설 좋아하는데, 소설이 단지 스토리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의미를 알고 읽으려면 그 시대 정신을 알고 읽어야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많은 문학 작품들이 인용되어 있어서 (소설은 물론) 소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버렸습니다.
stella님도 충분히 읽으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만~ ^^

stella.K 2018-04-09 20:26   좋아요 0 | URL
암만~ㅎㅎ
근데 값이 장난이 아니네요. 왤케 비싸데요...?ㅠ

hnine 2018-04-09 22:13   좋아요 0 | URL
좀 비싸죠?

sonar119 2018-04-0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세요

hnine 2018-04-09 22:14   좋아요 0 | URL
어이쿠, 감사합니다.
 
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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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나 시험과 상관없이, 순수한 동기에서 꺼내 들어 읽는 우리 문학이 얼마나 좋았는지. 우리 나라 대표적인 작품들이니 내용은 대부분 알고 읽는데도, 시대가 좀 변해서 그런지 지금은 안쓰는 생소한 단어나 표현들이 군데 군데 섞여 나오는데도, 짜증이 아니라 오히려 구수하고 새로운 느낌이 드는 건 왜인가. 아마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겠지. 한국인 DNA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한국단편문학선1, 2 란 제목으로 두권이 포함되어 있다. 1권에는 김동인, 현진건, 이광수, 나도향, 최서해, 김유정, 채만식, 이상, 이효석, 이태준, 정비석, 염상섭의 단편이 1~2편씩 수록되어 있다.

순서 상관없이 제일 먼저 읽은 것은 이상의 <날개>였다. 1910년 서울생 이상은 건축과를 졸업하였고 건축으로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이 먼저였으나 건축 잡지에 시를 발표하고, 서양화를 선전에 출품하여 입선하기도 하였으니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나보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가 무절제하고 빈곤한 생활로 이어진 끝에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날개>의 첫문장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내가 읽으며 밑줄친 문장은 뒤에 나오는, 보다 평범한 문장이었다.

 

나는 목적을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아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목적을 잃어버려야만 버틸 수 있는 나날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아내라는 창을 통해 내다보는 세상. 자기와 완전히 격리되어 버린 세상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목적을 잃어버려야 하고, 날개가 없어 혼자 날수 없는 상태여야 했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득였다.

 

죽음과 다를 바 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보고 싶은 이유는,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특히,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행을 바꾸어 반복함으로써 간절함과 동시에 자기의 무능력에 대한 자책을 표현하기도 했다.

잃어버린 ego, 약한 자의 슬픔을 주제로 하는 작품은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다른 작가들에서도 거의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었는데 김동인의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의 경우, 새로운 문물과 사상에 밀려 전통의 가치가 무너짐을 겪었던 시기, 도덕과 양심보다 물질의 가치에 마음을 잃었던 시기에 개인의 삶의 참담한 결말과 허무함을 보여준다.

이광수의 <무명>은 한국문학에서 이광수의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또 하나의 예라고 본다. 환자들만 수감되어 있는 감옥 병동에서의 이야기인데, 한 공간에 수감되어 있는 각 인물들의 행동이나 성격 묘사도 매우 사실적이고, 그들의 행동과 말로 대변되는 그당시 사회상 표현도 뛰어나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그나마 희극적인 결말로 맺는데 특히 더 짧은 분량때문인가, 현진건의 <빈처><운수 좋은 날>, 최서해의 <홍염>에서처럼 비극적인 여성상이 아니어서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고, 덤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진 동백은 붉은 동백만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 속 동백은 노란 동백이라는 것.

수록된 단편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이효석의 <산>을 꼽을 것이다. 김영감 집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자 뛰쳐나와 산에서 홀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중실이라는 사내의 이야기이다. 중실의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엔 그래서 다른 등장 인물도 없다. 그런데도 자연의 묘사, 사람 마음 속내 묘사가 어찌나 섬세하고 사실적인지, 단어 선택의 풍부함, 문장의 감칠 맛 등, 읽다보면 중실의 마음 속으로 내가 들어가있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엔 아마도 사람들 모여사는 세상에 질리고 정 떨어진 주인공이 외롭지만 거짓없는 산 속으로 들어와 하나 되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 공감이 가서였는지도 모른다. 한번 읽고 지나가기 아쉬워 한줄 한줄 노트에 베껴써보기도 했다.

 

 

 

 

 

 

 

 

 

 

연달아 나오는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도 못지 않다. 중학교때 국어 시간. 국어 선생님께서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되 작품 속에 나오는 허생원과 동이가 어떤 관계인지를 독후감 속에 써오라고 하셨다. 책 안읽고 참고서 베껴서 독후감 쓰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내주신 문제같은데, 정작 이 순진한 중학교1학년생은 작품을 끝까지 다 읽고도 허생원과 동이가 과연 무슨 관계인지 확실히 모르겠는 것이다. 지금 다시 읽으니 그 당시 중학생 나로서는 읽고도 못찾을수 있었겠다 싶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내주신 국어 선생님의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이 작품 어디에도 허생원과 동이가 어떤 사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작품 속 허생원이 동이가 자기의 아들임을 발견하는 장면처럼 작가는 독자들도 읽다가 어느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쪽을 택했다. 이런 묘미를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직접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읽는 동안 주인공과 함께 가슴 아프고, 마음 졸이고, 허무해지고, 악 바치기도 하며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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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03-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2 여름방학때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비슷한(?) 독후감을 써 오라는 숙제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김동인의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등이 ‘숙제 범위‘였지요.
제 집에는 그런 책들이 없어서 제 짝궁이 사는 ‘주실마을‘(조지훈 시인의 고향)까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갈투성이 신작로를 하루 종일 걸어서 다녀 왔던 기억도 생생하고요. http://blog.aladin.co.kr/oren/8179370

나중에 고1에 진학해서 <한국 근대 단편문학 전집(전5권)>을 책장사한테 속아서 샀는데, 그 책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맨날 저녁밥 지어먹고 나면 그 책부터 펼쳐 읽던 기억이 아련하네요. 메밀꽃 흐드러지게 핀 무렵, 허생원과 동이가 달빛 아래에서 강을 건너갈 때의 풍경도 그림처럼 떠오르고요.

hnine 2018-03-24 07:38   좋아요 0 | URL
적어주신 예전 포스팅 찾아가서 잘 읽었습니다. 예전 일이지만 생생히 기억하시네요. 지금이야 읽을 거리가 여기 저기 넘쳐나서 잘 골라 읽어야 할 정도이지만 예전에만 해도 읽을 책을 찾아다녀야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당시 중학생들에게는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메밀꽃 필 무렵 (제가 이번에 읽은 민음사 책에는 제목이 모밀꽃 필 무렵으로 되어 있네요. 저도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이 더 익숙한데 말이죠) 같은 작품들에 담긴 뜻을 제대로 잘 파악하며 읽기란 좀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저한테는 그랬지요 ^^
실제로 메밀꽃은 화분에 핀 것만 봤지, 밭을 이룰 만큼 피어있는 풍경은 본 적이 없어서, 저는 실감있게 상상이 잘 안되어요 더구나 달빛 아래 메밀꽃밭을 걸어가는 풍경은 더 상상이 잘 안되어서 아쉽답니다. 달빛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메밀꽃 핀 봉평에 가보고 싶어요.

oren 2018-03-24 16:57   좋아요 0 | URL
hnine 님은 메밀밭을 여태 못 보셨군요. 저는 어릴 때부터 메밀밭, 메밀꽃, 메밀묵 등과는 아주 친숙했는데 말이지요.. 어른이 되어서 메밀과는 한참 동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메밀과 가까원진 건 봉평에 자주 드나들면서부터였습니나. 겨울철마다 스키 타러 보광피닉스파크를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봉평 읍내에 있는 단골 메밀국수집을 꼬박꼬박 찾았으니까요. 봉평뿐만 아니라 대화까지 가서도 메밀국수를 두어번 맛 본 듯한데, 그 동네를 다닐 때면 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함께 떠올리곤 했지요. 어릴 때 가끔씩 보았던 ‘눈이 내린 듯한 메밀밭 풍경‘과 함께 말이지요...

hnine 2018-03-25 10:10   좋아요 0 | URL
저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메밀꽃 축제가 가을에 있네요 (그것도 이제 알았습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책으로 읽으며 상상하던 것과 비교가 안되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요. oren님은 눈이 내린 듯하다고 하셨고, 이효석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다고 했고, 저는 뭐라고 할까요? ^^

세실 2018-03-24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생원과 동이의 관계.. 막연한 짐작으로...그쵸?ㅎㅎ
이효석의 <산> 궁금하네요.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니 절대 읽을 일 없겠다 생각했는데....국어 공부의 폐단이죠.

hnine 2018-03-25 10:13   좋아요 0 | URL
세실님도 막연한 짐작으로? ^^ 저는 중학생때는 막연한 짐작도 안가더라고요. 지금 읽으니 확연히 알겠던데 말이지요. 그래도 나이는 그냥 먹은게 아니었나봐요.
이효석의 <산>은 대단한 스토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문장이 너무 좋고, 산을 소재로 하면서 일인 주인공의 심경을 기가 막히게 이입하여 표현한데 감동받아서, 제가 친구에게 이 작품 읽어보라고 하면서 얘기하기를 ˝버릴 문장이 없어˝라고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