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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빅 필립 K. 딕 걸작선 11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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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은 SF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그의 작품을 아직 한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귀에 익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이름이 아닐까 한다. 여전히 SF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한때 SF소설은 그저 상상으로 쓴,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꾸며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꼭 맞아야할 필요 없고 재미있으면 되는 덜 심각한 소설 쯤으로. 

이제 세상 변하는 속도 자체가 빨라지고, 소설 속에서 예측했던 것들이 눈 앞에서 실현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시대에 살다보니 SF 소설이 내가 예전에 오해하고 있던 그 SF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발견해 가고 있는 중이다.

필립 K. 딕의 이 소설 <유빅>. 제목의 유빅이 뭘까. 사람 이름? 나라? 행성? 새로운 생명체? 기계? 책의 중반까지 가도록 이 유빅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뭔지 몰라도 기존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어떤 것이라는 짐작뿐.

1992년 6월 5일, 오전 3시 30분 뉴욕 시에 있는 런시터 어소시에이츠의 본사 사무실에 걸린 추적 지도에서 태양계 최고의 텔레파스가 자취를 감췄다.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1992년이라면 2018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과거이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 1969년이니까 미래의 어느 시점인 것이다. 런시터 어소시에이츠는 반초능력자 파견회사 이름. 미래시대에는 각각 '텔레파스'와 '프리코그'라는 이름의 초능력자와 예지능력자들이 대거 출현하여 이들의 세력이 아무데나, 아무때나 발휘되는 시대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회의 질서가 교란되고 근본까지 흔들릴 위험스런 일도 잦아지자 이들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반 초능력자들의 조직 또는 회사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 회사가 일종의 보험사같은 역할로서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일을 수행하게 된다. 또하나 이 소설에서 특이하게 도입된 개념은 반생명체의 존재이다. 즉, 죽기 전 혹은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생명체의 모든 기가 빠져나가기 전에 특수 처리함으로써 살아있음과 죽음의 중간상태로 일정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생명 활동은 할 수 없고 마치 냉동인간처럼 보존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요청에 의해 불려 나와 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지금 살아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반생명상태에 있던 사람이 어떤 요청에 의해 보존 상태에서 풀려나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등장인물중 누가 살아 있는 사람이고 누가 반샹명상태에 있는 사람인지, 그들도 몰라서 상대에게 넌 이미 죽었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여기서 나아가 시간퇴행까지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독자의 궁금증은 페이지를 넘길 수록 더하게 된다.

필립 K. 딕이 이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당시 소련의 천체물리학자 니콜라이 코지레프는 딕을 소련으로 초청하기까지 했고 그가 초청에 응하지 않자 소련 대사관원들이 작가의 집으로 느닷없는 방문을 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1969년에 쓰여진 소설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작가는 과연 제정신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이런 스토리 구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까지.

유빅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책의 말미에 가면 유빅이 뭔지에 대해 정의가 나온다. 읽어도 바로 그 개념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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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7-24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K. 딕 책에서 단 한권 본 게 이건데, 좀 어렵기도 하더군요 나중에 다른 분이 쓴 글을 보니 이 사람이 약물중독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보면 그런 게 보이기도 하지요 여기 저기로 옮겨다니는 게... 과학소설이어도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지만 거기에는 깊이 생각할 만한 게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많이 못 읽어봤지만... 재미있는 것도 있고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있겠지요


희선

hnine 2018-08-07 18:39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이 작가의 유명도에 비해 저도 이 책이 처음 읽어본 작가의 책이었어요. 그래서 작가의 전작으로 인한 선입견도 없고, 작가 경력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돌진(!)해서 읽었는데, 너무나 놀라웠답니다. 작가는 도대체 제정신으로 이런 스토리 구상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쓴 것은 일종의 극찬이지요. 1969년에 어찌 이런 스토리를 상상해낼수 있었을지. 다른 작품 읽고 실망할까봐 오히려 더 읽기가 주저된답니다.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 박물관과 미술관 가기 전에 읽는 사고뭉치 9
윤철규 지음 / 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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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저자의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는 읽을 때 저자가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는 사람이라는 걸 눈치 챈바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책을 재미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럴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초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제목에 있는 '이것만 알면'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하는데, 경기 규칙을 어느 정도 알아야 운동 경기를 보는 재미가 있듯이 옛 그림도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이 있어야 재미를 느끼며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재미 반 공부 반 이라는 느낌으로 읽었긴 하지만 이 책은 절대 중고책으로 팔아 정리할 수 없는, 소장 도서로서 자격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책이라고 판단,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중, 서점에 갔다가 저자의 다른 책을 발견하고 또 구입한 것이 이 책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이다. 

 

 

 

먼저 읽은 책보다 훨씬 읽기 수월하다. 옛그림에 대한 설명을 앞세우기 전에 옛그림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보이는 것은 앞서 읽은 책에 이어 이 책에서도 두드러진다.

 

  • 옛 그림은 무엇을 그렸을까?
  • 옛 그림은 왜 그렸을까?
  • 옛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우선 이 세 항목을 첫 장에서 간단히라도 분명히 하고 넘어간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림을 본다는 말도 하지만 때로 그림을 읽는다고도 한다. 그것은 단지 그림 감상을 유식하게 표현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림에 감추어진 내용, 의미, 관련된 일화를 떠올리면서 즐기는 경우를 구별하여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옛 그림 중에 '고사관수도'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고사'란 한자로 古事, 즉 '옛 일'을 뜻하는 것으로 주로 중국에서 전해져내려오는 유명한 옛일을 말한다. 중국 고사라면 수없이 많을터이라 그렇다면 그걸 다 알아야 우리 옛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으려나 겁 먹을 수도 있겠으나 한국의 옛 그림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는 20-30여 가지 남짓이므로 그 정도만 알아도 된다고 안심시키기도 한다.

앞서서 더 자세한 내용의 책을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내용으로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간다.

 

  • <몽유도원도>는 왜 명작일까?
  •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조선에는 유난히 초상화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로 서양화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예수, 그다음이 성모 마리아이다.)
  • 자화상은 주로 어느 때 어떤 사람이 그리게 될까?
  • 신윤복은 알아도 신가권은 처음 듣는다고요?
  • 김홍도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는가?
  •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까지가 글씨인가?
  •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 곤충, 식물의 다양성-쇠똥구리, 매미, 메뚜기, 개구리, 두꺼비, 심지어 고슴도치까지
  • 화조도를 그리는데 필요한 것은 섬세한 솜씨 + '관찰력'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계속 읽게 된다.

 

 

다음 그림은 책 속에 인용되어 있는 조선 화가 이인상의 <송하관폭도>인데, 누가 그렸는지, 제목은 뭔지 읽기 전에 그림 속에서 폭포가 떨어지며 만드는 오른쪽 아래 동심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것도 다 그렸구나 하고.

 

 

 

 

 

 

 

책에는 따로 그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아서 내심 기분이 좀 좋기도 했다고 고백해야겠다. 발견하는 재미이다. 맞든 틀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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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16 05:03   좋아요 0 | URL
예전엔 눈길도 안주던 것들에 관심이 가기도 하니 참 알수 없지요. 예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것에 시들해지기도 하고요. 옛그림은 중학교 미술 시간에 사군자 그리는 법 잠깐 배우면서 관심이 생기긴 했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는데 근래에 다시 관심이 생겼어요. 아직 왕초보이긴 하지만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적격인 책이었답니다.

페크pek0501 2018-07-1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이란 맞고 틀리고가 없지요. 각각 느낀 대로가 정답인 셈이지요. 그 다양성이 예술의 매력.
그래도 알고 싶어서 내가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저도 한때 미술 관련 서적을 사 볼 때가 있었어요.
그중 화가들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책이 인상에 남습니다. 꽤 독특한 생각들이 있었거든요.
화가는 역시 남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화가가 글쓰기를 배운다면 개성이 넘치는 좋은 글을 쓸 것 같아요.
이미 글을 잘 쓰는 화가가 있지만요.

잘 보고 갑니다. ^^

hnine 2018-07-16 05:17   좋아요 0 | URL
화가로서 글 잘 쓰는 분들이 몇분 떠오르네요. 화가는 아니지만 조각가 안규철 같은 분은 기자 출신이기도 해서 글을 아주 잘 쓰셨어요. 황주리나 김점선 같은 화가들은 이미 이름난 에세이스트 이기도 하고요.
어제 이응노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그분은 정말 한사람이 아닌 것 처럼 다양한 세계의 그림들을 남기셨더라고요.
 
느림보 마음 - 문태준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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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 <가재미>. 문태준 하면 떠오르는 시이다. 1970년 김천 태생. 현재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의 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는 그가 낸 산문집 <느림보마음>은 2009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2013년 2쇄 출판을 거쳐 올해는 2판이 발행되었다.

산문은 저자의 성격을 어쩌면 시보다 더 직접적으로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므로 산문마다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다른 재미가 있다. 감성과 느낌으로 충만한 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살아있는 글, 생에 대한 통찰과 의지가 느껴지는 글 등, 사람의 성격이 다양한 것처럼.

문태준 시인의 산문도 짐작하듯이 그가 쓴 시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사랑, 인간살이에 대한 사랑이 기본 바탕이 되니 따뜻하다. 애통하지 않으면서 따뜻하다.

책의 첫 페이지 작가의 말에서 그는 느린 마음에 대해 말한다. 살아오면서 내가 사랑했던 시간은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들을 때였고 뒤로 물러설 때였다고. 작은 자연이 되어 자연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갈 때였다고. 너무나 신속하고 더욱 신속하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서 자연의 속도를 느끼고 딱 그 정도 속도로 걸어가고 싶은 저자의 마음에 금방 동화가 되는 걸 보니 우리는 신속해지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으면서도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도 살아있었나보다. 잘 드러내지 않고 살고 있을 뿐이지. 이렇게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 아닐까. 그 형식이 시이든 산문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어제, 땀 때문에 고생하지만 여름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쓴 그의 글이 유난히 더 눈에 들어왔다. 여름은 '자라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란다.

여름은 우리에게 일념에 대해 말한다. 한결같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용기백배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 계절이다. 전국의 선원에서 스님들이 하안거를 하는 모습 같다. 은산철벽을 무너뜨리며 여름은 나아간다. 여름은 헐후하게 하는 일이 없다. (339쪽)

 

하루 가운데 가장 아끼는 시간이 새벽이라고 하는데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 반갑기 그지 없다. 아직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 홀로 앉아 있는 시간. 도시에 살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놀라는 시간. 나와 세상이 맞대면 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 생각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이 비워지는 시간.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그가 본문에 인용한 정현종의 시 <아침>의 일부이다. 운명보다 새기운이 우세한 시간 아침. 아침을 놓치고 사는 일상이란  그래서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시인이라서 다른 사람의 시를 인용한 부분이 적지 않고, 불교 방송에 적을 두고 있어서인지 옛 스님들의 일화도 종종 나온다. 그러나 과하지 않다. 저자는 무엇이든 과하게 할 사람이 아닐 것 같다.

의식을 깨우고 날 세워 살아야 하는 일이 많은 요즘이지만,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게 따뜻하고 수용적이고 느리게 한숨 돌리게 하는 글이 그만큼 결핍되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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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11 11:43   좋아요 1 | URL
문태준 시인의 시는 너무 어렵게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얕은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들도 아니라서,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stella.K 2018-07-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이 아삼육겸 트로이카라는데
문태준을 못 읽어봤군요. 언제고 읽어봐야할 텐데...ㅠ

hnine 2018-07-11 21:19   좋아요 0 | URL
세 사람이 초등 동창, 고등 동창으로 엮여있더군요. 그런데 언뜻 보면 세사람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 않나요? ^^
글에서 풍기는 문태준 시인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 같아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으실때 한번 읽어보세요.

페크pek0501 2018-07-1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저자가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었고, 또 그런 분이 수필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시적인 문장이 좋아서 눈에 띌 때마다 밑줄을 긋는 재미도 있었어요. 시인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보고 싶은 책 10위 안에 듭니다. 현재는.

hnine 2018-07-16 05:11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느림보마음이라는 제목이 단지 형식적인 제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엔 9이면 10까지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거꾸로 9상태에서 멈춰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덜 악착같아지려고요.
 
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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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의 노래 제목 A winner takes it all 은 아마도 스포츠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지지 않나 싶다. 금메달과 은메달, 1등과 2등의 세계는 비슷하지도 않다. 결과의 잘한 순서가 아니라 승자와 패자로 부르는 세계. 스포츠의 기원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현대로 오면서 비즈니스와 연결되며 변질된 것인지 모르겠다. 스포츠에 대해 취미도, 관심도, 잘 하지도 못하는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데는 아마 우리 아이가 한때 아이스하키에 열중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가상의 마을 베어타운. 작가가 스웨덴 작가이기때문에 소설의 배경 역시 스웨덴이 아닐까 짐작할뿐 책 어디에도 특정 나라이름이 나오진 않는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차차 궁금하지 않게 되었던 것은 어느 나라 어떤 국민인지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어타운이라는 작은 마을. 있던 공장 마저 폐쇄 위기에 있을 만큼 쇠락해져가는 마을이다. 이 마을이 오로지 희망을 거는 것은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팀이 우승을 하여 마을 입지를 회복시켜주고 마을이 다시 활기를 찾아 일자리 걱정 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이 이기기만 하면 된다.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유망주 케빈에 거는 기대를 거는 것은 그래서 단지 팀 단장, 코치, 가족 뿐 만이 아니다. 온 마을의 문제이다. 케빈을 위해서가 아니고, 아이스하키를 위해서가 아니다. 마을 주민들의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시합을 코 앞에 두고 마을 청소년아이스하키팀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뚜렷하고 목격자도 있지만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교묘하게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뀔 상황까지 치닫는다. 이렇게 몰고 가는 주체는 누구일까. 단순히 처벌을 피하고 싶은 피해자와 그의 가족이 주체일까. 그렇다면 오히려 예측 가능하고 뚜렷하므로 당당히 비난할 대상에 올릴 수 있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나만 관련된것도 아니니 책임질 일도 없고, 하지만 큰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실을 암묵하는 것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지 않게 하려는 생존과 관련된 인간의 이기심이다.

작가는 숲 속에서 누군가에게 쏘는 총소리가 나는 것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시작함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끌고자 했다. 이야기의 플롯 자체는 아주 새로울게 없는데도 560쪽까지 끌고 간 능력이 대단하다. 동시에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더 간추려 썼더라면 오히려 긴박감과 흥미가 더 했을텐데. 등장 인물의 숫자도 지나친 감이 있는 것이, 모든 등장 인물들 충분히 그 역할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게 긴 전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는 결말도 시원치 않다. 민감한 반응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결말 역시 당연한 처벌을 벗어나 미화된 경우 아닌가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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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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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가 아무리 천재학자이고, 2년 반 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쓴 소설이라지만, 천재의 두뇌와 2년 반의 시간만으로 이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한 인간의 머리에서 이 방대한 배경 지식들이 이렇게 완벽에 가깝게 짜집기 되어 작품으로 만들어져 나오기까지, 그 과정 또한 이 소설 못지 않은 하나의 소설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원래 소설로 유명해지기 이전에 학자로서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내던 사람이다. 철학, 역사학, 미학에다가 가장 대표적 학문으로 기호학까지.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기호학에 그 정도 명성을 가지고 있는 그에겐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 모르겠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어떤 분야도 빠뜨리지 않고 다 넣고 싶었나 할 정도로 이 책엔 위에 말한 모든 분야가 다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생생한 지적 보고'라는 출판사 소갯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세 역사도 아퀴나스 신학도, 잘 아는 바 없던 나 같은 독자들은 이 책 처음의 서문과 프롤로그 읽으며 인상쓰다가 읽기를 포기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앞에 읽은 부분을 들춰 다시 읽어 보기를 몇 차례 해야하긴 했지만 그러면서 본격적인 이야기 장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도저히 손을 못놓게 되는 이 소설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1300년대 우럽에서 수도사는 성직자이기도 했지만 학자이기도 해서,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영국의 윌리엄 수도사도 옥스포드 출신으로서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처럼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여러 언어의 해독능력을 갖고 있다. 교황의 권한과 세력이 자꾸 확장되어가면서 교회가 세속화되어가자 이것에 반대하여 교회 원래의 본분을 강조하며 청빈을 주장하여 일어난 것이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이다. 교황 측에서는 이런 성 프란치스코회를 곱게 볼리 없었고 성 프란치스코회 중에서도 조금만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분파만 있으면 가차없이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는 일이 벌어졌다. 안그래도 교황 세력과 대립하고 있던 황제 측은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성 프란치스코 회와 같은 노선을 타게 되는데, 극심해져가는 황제와 교황의 대립 상황의 중재점을 찾기 위해 양쪽을 대표하는 수도사들이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모이기로 하고, 이중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측의 일원으로 윌리엄 수도사가 시중 수도사 아드소를 데리고 수도원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교황측 대표단을 기다리는 중에 수도원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수도사들의 연달은 죽음. 이들 죽음의 원인과 범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수도원장으로부터 받은 윌리엄 수도사는 그 열쇠가 교회의 비밀의 장소, 즉 장서각과 관련있음을 알게 된다. 장서각의 무엇이 수도사들을 연달아 죽음으로 몰고 가게 했으며 범인은 누구인가.

상하권 합쳐서 900쪽에 달하는 분량의 내용이 마지막 장에서 감히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은 결말로 마무리 된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남는 톱니도, 모자라는 톱니도 없다.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3천만부 이상 팔렸다는 이 책. 고전문학 입문서로서 만권의 책이 집약되어 있다고 소개되고 있는 이 책에서 빠진 것이 있다면, 너무 완벽한 구성, 배경, 마무리 때문에,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더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탄과 감동만 남길 뿐 독자가 더 생각하고 해결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 내 나름으로 마무리 해야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저자가 이미 책 속에서 다 해버렸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소감을 남기는 것도 조심스러울만큼 이 책은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 장 7일째 부분, 두 인물의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름은 적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모든 사건의 논리가 제시되는 몇십 페이지는 과연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 향연의 절정을 보는 듯 했다.

못 참고 한 대목만 옮겨 놓고 마쳐야겠다.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이런게 바로 악마야! (8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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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6-12 08:29   좋아요 0 | URL
저도 선뜻 읽기 주저하다가 이제서 읽었는데 처음 고비를 넘기니 재미있어서 계속 가게 되더라고요.
저자의 다른 책을 뭘 더 읽어볼까 둘러보고 있던 중이었는데 알려주신 책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