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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명의 집 - 북유럽 스타일 리빙 전문가들의 작은 집 인테리어 123명의 집
악투스 지음 / 나무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일본에 '악투스(Actus)'라는 이름의 가구 회사가 있나보다. 주로 북유럽 가구를 수입, 판매하는 회사라는데, 이 회사에서 사원들 123명의 집을 촬영하여 만든 책이다.

123명의 집과 함께 그 집에서 눈의 띄거나 특색있는 소품, 가구 등이 한 집당 20컷 이하의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한 집당 많은 지면이 할당되어 있지 않지만 100명이 넘다 보니 책은 꽤 두툼하다. 즉, 들고 다니며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처음엔 사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12개 질문에 대한 답을 읽는 것이 더 흥미로왔다. 12항목의 질문이란 다음과 같다.

1. 집의 타이틀을 정한다면?

2. 인테리어 테마는?

3. 이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4. 방을 잘 정돈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언 한마디

5. 집에 절대 두고 싶지 않은 것은?

6. 수집하는 것이 있는가?

7.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하는 결정적인 아이템이 있다면?

8. 인테리어 센스를 연마하려면?

9. 나에게 이상적인 집이란?

10. 좌우명은?

11. 좋은 가구란 어떤 가구인가?

12. 마지막으로 인테리어란?

의식주 중 그 사람의 철학이 제일 잘 드러나는 것이 그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가 평소 생각해왔다.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의 집도 똑같은 집은 없다. 규격화된 아파트라 할지라도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아마 위의 열두가지 질문 중에 좌우명을 묻는 질문이 들어가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평범한 질문에 비해 인상적인 답변이 많았다.

 

집에 절대 두고 싶지 않은 것은 이란 질문에 대해서는,

-긴장감

-만화책 (읽느라고 잠을 못자니까)

-좋아하지 않는 물건

-TV, 침대

-화려한 꽃

-어중간한 것

-팬시상품

-신발이 집안에 널려 있는 것

등등. 집 주인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가?

 

좌우명은 더하다.

-지속은 힘이다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 (Don't think, feel.)

-각본은 내가 쓴다

-어떻게든 되겠지!

-도전하지 않고서 후회하지 말라

-너무 애쓰지 않는 만큼만 애쓰자

-장난기를 발휘하자

-뭐든 좋지만 어찌 되든 좋은 건 아니다

 

집에는 그 사람의 사고 방식, 좋고 싫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니, 그래야하고 그것이 진정한 내 집, 내 공간일텐데 주위에 둘러보면 너무나 획일화된 공간에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집을 꾸미는 소품보다는 그 시대 필수적인 가전제품, 거실 소파 뒤의 커다란 가족 사진, TV 위치까지 집집마다 똑같다. 거실의 서재화, 무분별한 한옥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사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집,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지 않는 집이 대부분인 현실. 새것이 좋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한 것이 좋은게 아닌지.

 

옆에 두고 심심할때마다 들취보기 좋은 책, 잠 잘때 누워서 들취보다 잠들기 좋은 책이 한권 더 늘었다.

내 집을 한번 둘러본다. 인테리어에 앞서 청소부터 좀 해야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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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8-08-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청소 끝냈어요~ 인테리어는 자신 없어요 -.-

hnine 2018-08-05 22:50   좋아요 0 | URL
내 맘대로 하면 그게 인테리어인것 같아요. 남의 맘대로 하지 않고, 남이 한대로 따라하지 않고요. 그런데 그게 그리 만만치 않더군요. 내 맘대로 한다는 것에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없어하기때문에 그런가봐요.
청소만 끝내도 그게 어디예요. 저는 매일 미뤄요 ㅠㅠ

유부만두 2018-08-0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청소....;;;;;

hnine 2018-08-05 22:51   좋아요 0 | URL
청소가 모든 인테리어의 기본이자 출발이라잖아요. 저는 알면서, 보면서, 모르는척 못본척 한답니다.
 
토지 2 - 1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하면 사람들은 어떤 인물을 제일 먼저 떠올릴까. 아마 '서희'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주인공이 뚜렷해야하는  TV 드라마의 영향일것이다. 책에선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게, 2권에서 서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귀녀, 최치수, 그밖의 최참판댁 노비와 평사리 작인들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진다.

몰래 같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용이와 월선의 연정은 별당아씨와 구천, 길상과 서희 관계보다 더 절절하다.

노비라는 신분에서 탈피하여 다른 삶을 살아볼 욕망이었다고 표현하면 너무 고상한가. 최치수라고 하는 병적으로 고립된 인간의 상황을 이용하여  노비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배부른 삶을 꾀한 귀녀와 김평산,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우매한 인간 칠성이에 비하면 그저 귀녀와 연을 맺고 싶어했던 사십줄 총각 사냥꾼 강포수의 욕망은 차라리 순수했다.

최치수는 교살되고, 이 일로 인하여 누구는 자결하고 누구는 식솔을 데리고 몰래 동네를 뜬다.

구천과 김개주, 윤씨부인의 관계가 2권에서 모두 설명되는데, 이것이 최참판 집안 비극의 시초가 되는 것 같지만 사람일에 어디 분명한 시작점이 있을 것인. 끝이라면 혹시 있을지 몰라도.

구천과 함께 달아난 아내를 찾아 사냥길에 나선 최치수 앞에 지네 한마리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더니, 잃어버린 짝을 찾아내려고 또 한마리 지네가 곧 출현할 것이라고 옆에 있던 화전민 아낙이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말에, 최치수는 새파랗게 질린다. 작가는 이런 대목을 어찌 이렇게 절묘하게 인용하였는지. 여기서 배운 말로 하자면 소분지애씨* 이겠지만 말이다.

(* '약과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 )

악인, 의인, 노비, 양반 등 실로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작품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 중 어느 하나 애정을 갖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악인에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병적인 인간 최치수가 장암선생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스스로 설명한 부분을 들어보자.

산에 와도 사냥꾼이 못 되고 마을에 가도 사내가 못 되고 서원에 들어서도 학자가 못 되고 만석꾼 땅문서는 있되 장자가 못 되고 어머님이 계셔도 아들이 못되고 자식이 있어도 아비가 못 되고 계집이 있을 때도 지아비가 못 된 위인이 개화당이 되겠습니까, 수구파가 되겠습니까, 가동들을 거느린 의병대장이 되겠습니까. 신선이 못 되면 허깨비라도 되어야겠습니다만 무엇에 미쳐서 허깨비가 되오리까. 그럼에도 잡사를 잊지 못하니 신선인들, 이 적막한 산속에서 어찌 이다지도 저는 사람임을 잊지 못하고 영신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지요. (318쪽)

 

무거운 숙명적 삶을 살아야했던 어미 윤씨부인때문에 일찌기 어미 정을 못받고 자란 최치수란 인물은 위에 인용한것처럼 어디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고립된 삶을 살았고 결국 짧은 생을 살다 간다. 그의 자조적인 자기연민 대사에서, 작가는 그를 아예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았구나, 오히려 그 반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1973년 작가가 쓴 토지 1부를 마치고 남긴 서문 일부를 옮겨본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1973년 6월 3일 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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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토지는 읽기 아닌 보기로 시작되었다.

KBS 대하드라마 토지.1979년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원작이 완결되기도 전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어떻게 결말을 짓고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0년 쯤 후에 다시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배역도 바뀌고 처음 중학생때 나를 TV 앞으로 끌어당기던 마력과 같은 감동은 같거나 덜했지, 더하진 않았다. 

과연 완결이 될 것인가 그때도 말이 많았는데, 결국 박경리 작가는 완결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미 내용은 다 알고 있기도 하고 워낙 드라마 보면서 이미 감동을 받을대로 받았다는 생각에 굳이 열아홉권이나 되는 것을 책으로 읽어야 하나 확신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토지 1권을 서고에서 빼어든 것은 참 알수 없는 일이다. 

토지 원작은 1969년 9월에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으로 이후 <문학사상>, <주부생활>, <독서생활>, <한국문학>, <마당>, <정경문화>, <월간경향>, <문화일보> 등에 연재를 계속하여 1994년 지빌 26년만에 완간되었다. 이렇게 여러 지면을 전전한 이력에서도 짐작하듯이 출간과 휴간을 거듭해야했고, 작가 자신이 암선고를 받기도 하였다.

원래 내 버릇이기도 하거니와 토지는 특히 소설을 읽으며 작가 박경리를 읽고자 할 것 같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토지 1권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서 무색이란 색깔이 없는 것, 즉 흰색이나 검정색등 무채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알록달록 물감을 들인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왜냐하면 나 어릴 때 할머니께서도 알록달록한 옷을 보고 무색옷이란 말을 쓰셨던 기억이 나고 문맥상을 봐서도 그렇기 때문이다. 

추석날 마을 풍경 묘사로 시작되는 1권에서 이미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가닥이 거의 다 펼쳐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별당아씨와 구천이는 이미 도망을 갔고,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운 어린 서희는 엄마 언제 오냐고 칭얼거리면서도 앙증맞고 고집이 보통 아닌, 범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위엄 속에 가려진 아픔을 가진 윤씨 부인, 최치수의 일그러진 성격 뒤에 감춰진 가족 내력. 어디 최참판 가족 뿐인가. 어쩌면 이 소설을 더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이 마을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 누구도 그냥 넘어가지 않게 그 성격이 개성있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용이와 월선, 임이네과 귀녀. 드라마에서 연규진이 배역을 맡았던 조준구. 그리고 길상을 빼놓을 수 없다. 길상을 마음에 품고 있으나 서희 아가씨를 모시는 입장에서 드러낼 수 없어 숨기고 사는 봉순.

지역 특색어 때문에 뒤에 나온 낱말 풀이편을 종종 들춰가며 읽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 재미을 넘어서진 못한다.

1권이라서 그런가 금방 읽었다.

이제 2권으로.

 

 

 

 

 

여름밤은 짧다. 짧은 밤에, 가는 데 삼십 리 오는 데 삼십 리, 육십 리 길을 걸었으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방은 옥색 빛으로 걷혀져가고 있었으며 울타리에 핀 박꽃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07쪽, 베껴적어본 문장 중 하나이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몇시 몇분 이었다 이렇게 썼을 문장을 작가는 저렇게 썼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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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8-07-3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운 여름에 대하소설에 빠져 더위를 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전 작년엔가 ‘혼불‘을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무색‘이 여러가지로 쓰이는군요.
색깔이 없는 것도 무색이지만, 알록달록 물감을 들인 것도 무색이라니 말예요~^^

hnine 2018-07-30 23:15   좋아요 0 | URL
너무 더워서 솔직히 참을성 없는 저는 뭘 해도 끈덕지게 못하고 있어요 ㅠㅠ
혼불은 저희 집에 1권 한권만 있네요. 제가 대하소설을 원래 잘 못읽는데 한번 시작하면 시간이 걸려도 끝장을 봐야하는지라 섣불리 시작을 못하고 있답니다. 토지는 대화가 많아서 소리내어 읽으니 더 재미있더군요.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는지라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며 읽는 재미 대신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썼을까 혼자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를 느껴보려고요.

2018-07-30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30 23:17   좋아요 0 | URL
마음을 비우고, 큰 기대도 내려놓고, 빨리 읽으려는 욕심도 내지 말고, 그렇게 심심할때마다 읽으려고요. 19권 쓰신 작가도 계신데, 느긋하게 맘 먹고 찬찬히 읽어나가는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실수하는 인간
정소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여러 문예지에 발표되었던 작품 여덟편이 묶여져 있다.

처음 읽어보는 작가의 소설인데 기대했던 것 보다  다음 페이지로 주저없이 넘어가게 하는 재미가 있어서 술술 읽혔다.

 

1. 양장 제본서 전기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게 해준 작품이다.

도서관이 책을 빌려주고 보관하는 기능 뿐 아니라 개인의 기억을 추출해내 양장 제본서로 남기는 일을 해준다는 아이디어는 얼마전에 읽은, 마인드를 보관해주는 도서관을 소재로 한 김초엽의 <관내분실>을 떠올리게 한다. 의뢰자는 머물고자 하는 기억을 선택할 수 있고 도서관에서는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영원히 보관해준다. 김초엽의 <관내분실>은 2018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다.

 

2. 실수하는 인간

우발적이고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 같지만 그것이 회복불가능하고 운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때가 있다. 예측불허이다. 계획하여 일어나지 않을 일을 '실수'라고 정의한다면 주인공에게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맞겠지만 과연 계획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실수의 근원마저 없었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어쩌면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무의식, 양심, 상처의 결과를 우리는 그저 실수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수하는 인간, 즉 모든 인간 (everyman)이다.

 

3. 너를 닮은 사람

오싹하다. 어떤 형벌보다 무섭고 끈질긴 형벌은 자기 양심이라고 했던가.

문화원에서 독일어 강좌에 참여하게 된 계기로 처음 알게 된 이름이 같은 두 여자 클라인과 주인공. 더 어리고 작은 쪽을 클라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나이차가 있음에도 서로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어 친자매보다 가까워지지만 언제부터인가 피하고 지워버리고 싶은 관계가 되어 서로에게서 도망쳐 살게 된다.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주인공 여자 앞에 클라인을 닮은 사람으로 출현하는 사건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일련의 사건들의 시작이 될 것이다. 클라인의 실제 생사에 상관없이.

너는 실재가 아니라 내게서 분열되어 나온 병리학적 인격체일지도 몰랐다. (112쪽)

우리의 삶을 잘 쪼개보면 때로 작품 속의 클라인이 되었다가 주인공이 되었다가 하지 않겠는가? 감히 내 인생을 쪼개보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소설가는 이런 일을 기꺼이 자청하는 사람인 것 같다.

 

4. 폐쇄되는 도시

폐쇄되는 대상은 도시인 것으로 시작하지만 읽다보면 정작 폐쇄되는 것은 가족의 의미, 세대간 이해임을 알게 된다. 폐쇄의 주체는 계산된 관계와 물질적 성공에 눈먼 인간들,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

 

5. 돌아오다

읽다가 오싹하게 하는 것은 이제 각오해야겠다. 무의식은 때로 의식이 못해내는 일을 한다.

이 세상 떠남을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돌아가기만 해야하나.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일까.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작품을 쓰고 제목을 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용은 제목에 매우 충실했다.

울지 마. 모두 지나간 일이잖아. 스무 살의 그녀는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오래전 가고 싶었던 길로 훌훌 떠났다가 잠시 이곳으로 돌아온 또 다른 나를 만난 것 같았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그녀와 합체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과 미래를 맞지 않게 될 것 같았다. (168쪽)

 

6. 지나간 미래

작가는 유기시킨 인간과 유기된 인간을 끌어내어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을 마구 혼합시켜 놓았다. 모든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 미래를 보고 미래에서 묻혔던 과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주인공여자만의 특별한 능력은 아닐 것이다.

스토리는 재미있고 치밀한데, 이쯤 되면 정소현 작가 작품 속 인물들과 이야기의 패턴이 읽히려고 한다. 책 뒤 해설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바로 '유기된 인간'이 작품 속 인물들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패턴이 읽힌다는 것은 작가에겐 어쩌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있다. 매너리즘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경우 특이한 점이 있다면 과거, 현재, 미래를 시간대로서만 끌어들이지만 않고 인물마저도 과거, 현재, 미래의 인물을 동시에 이야기 속에 등장시킨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엔 주인공 여자에게 남편의 친한 친구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여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 남자가 주인공 여자의 미래의 아들이며, 남자의 어머니라는 치매노인이 곧 주인공 여자의 미래 모습인 것이다. 근거 없는 중복으로 읽히지 않고 각 인물간 치환과 대치에 개연성을 부여한 치밀한 플롯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인정한다.

 

7. 이곳에서 얼마나 먼

여기 실린 여덟 작품 중 가장 끔찍하다.

자매보다 더 친하게 지냈으나 연락이 끊긴 어릴 때 친구 제인을 찾아가는 시작은 평범하다. 자매도 아닌데 어떻게 한집에 살게 되었는지, 그러다 왜 관계가 끊겼는지, 제인의 존재가 어떻게 몇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지, 처절하고 음습한 내력이 밝혀진다.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거라는 주인공 여자의 예상과 달리 제인 역시 원망과 복수와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며 쓸쓸히 살아 버티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가독성 있으나 너무 나레이션 식인게 흠이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게 제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거지요. 제인은 아마도 내가 찾을 수 없는 먼 곳에서 조용히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내 주위에 나타나 자신을 찾고 있는 나를 바라볼 겁니다. 여전히 아름답고 불길한 기운을 품고서 날선 눈으로 나를 엿볼 테지요. 나는 그녀에게 속죄하기 위해 불행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혼자 있는 밤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마음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Y나 M같은 남자를 쉽게 사랑할 것이고 쉽게 버림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혼자 쓸쓸하게 늙어갈 것입니다. 그런다면 언젠가는 그녀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나는 그때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248쪽)

 

8. 빛나는 상처

나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식 날 실종되었다. (257쪽)

여기서도 주인공은 예전의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들을 찾아다닌다. 그 중 한 동네에서 우연히 시작된 한 남자와의 동거.

상처를 가진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가 상처라고 생각한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서 점차 정상궤도의 삶으로 돌아올 준비를 갖추어 가는 반면 여자는 모든 기억과 상처를 찾아다니면서도 정작 진심은 그러고 싶어하지 않고 더욱 불안해져간다.

그의 과거에 대해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와 가까워졌다고 착각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러면 내게 더 큰 것을 바라게 될 것이므로 골치가 아파질 게 분명했다. (272쪽)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에 대해 들을 때 주인공의 위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 없는지. 그럼에도 사람들은 남의 상처에 관심이 많고 까발리고 싶어한다.

 

2012년에 나온 이책이 그녀의 첫소설집이고 아직 후속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을 재미있게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독자로서 그녀의 방식이 너무 금방 파악된다는 것은 유감이다. 나레이티브가 매끈하니 독자는 읽는 재미가 있긴한데 매너리즘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그녀는 그 매너리즘을 넘어선 후속작을 낼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을 기대로 바꾸고 싶을 만한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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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노마 -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어!
팀, 라미 지음, 고상숙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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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죽음이든 흘려 들을 수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이 책의 저자는 팀과 라미라고 되어 있는데 이들은 부부이고 책 표지에 있는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이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힘든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기억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엄마 역시 자궁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엄마 마저 아버지처럼 세상과 작별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들 팀은 아내 라미와 함께 의논 끝에 그동안 거의 집안에서 조용한 삶을 살아온 엄마를 태우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로 한다. 조심스런 아들과 며느리의 제의에 엄마는 허락을 하고 그동안 살던 미시간의 집을 떠나 아들 며느리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그로부터 1년동안 미국 32개주 15개 국립공원을 여행한다. 아들과 며느리는 여행 중 찍은 사진과 이야기를 "드라이빙 미스 노마"라는 제목으로 페이스 북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지게 되면서 가는 곳마다 이들을 알아보는 사람들, 엄마를 만나보고 대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데 엄마에게는 이런 것들이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것, 열기구를 타보는 것, 마을의 축제에 참가해보는 것 이상으로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여행을 시작한지 1년을 막 넘긴 어느 날 여행지에서 엄마는 세상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데, 예상했던 암의 증세보다는 심부전 증상과 약에 대한 부작용, 부종, 호흡 곤란 등의 증세가 심각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고통을 겪는 중에도 엄마는 평소 생각해왔던대로 인공호흡이나 병원치료를 끝까지 거부한채 조용히 숨을 거두고 팀과 라미는 그런 엄마의 뜻을 존중하며 이별한다. 이때 엄마의 나이 아흔 한살, 아들 팀도 5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는데 알고 보니 이 아들은 엄마가 낳은 아들이 아니고 어릴 때 입양하여 키운 아들이었다. 여행하면서 팀과 라미는 그들만 페이스북에 여행 이야기를 올린 줄 알았는데 엄마 역시 써오고 있던 일기장이 있음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어떤 과장도, 감정의 폭발도, 깊은 우울이나 슬픔도 없었다. 단지 그날 있었던 좋은 일, 기쁜 일, 새로운 일의 기록일 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표현된 죽음이든, 그 어느 누구의 죽음이든, 나와 무관하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오늘은 더 그렇다. 뜻밖의 부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날이고,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기일이기도 하다. 제사도 못가고 산소도 못가고, 혼자 집에서 그저 더위만 피하며 보낸 하루다.

팀이 젊었을때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라 라고 말했다. 그말 마저 허망하게 들리는 날.

이 책은 재미있는 여행기도 아니고 삶을 되돌아보는 회고록도 아니다. 냉정하게 보면 그냥 1년 동안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데도 마지막 1년의 기록이라는 것 때문에 마음이 이리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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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7-24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디오 방송에서 읽어준 책이네요 늘 잘 듣든 건 아니지만, 이 책은 들었어요 나이가 많은 분이 암에 걸렸지만 치료 받지 않고 아들과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는 거... 그런 결정 쉽지 않겠지요 쉽지 않다 해도 그게 더 좋은 듯해요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 남은 삶을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보내는 거... 나이가 많은 분이어서 여기저기 다니는 건 힘들었겠지만 언제보다 즐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페이스북 글에 댓글 남겼다고도 하더군요


희선

hnine 2018-07-24 05:06   좋아요 0 | URL
방송에서 소개되기 딱 좋은 책이지요. 저는 여기 알라딘에서 보고 알았어요. 여행은 아들과 며느리가 먼저 제안하고 할머니가 응한 것이더군요.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겠다는 것은 할머니의 뜻이었고요. 아마 남편이 병원 침상에서 허망하게 가는 것을 보고, 또 딸을 먼저 보내는 아픈 경험을 하면서 굳어진 결심인 것 같아요. 파울로 코엘료로부터 댓글을 받은 얘기가 책에도 나와요.
아들과 며느리의 도움과 사랑 아니면 불가능했을 여행이지요. 아들과 며느리의 눈으로 본 것과 할머니 자신이 느낀 것이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잠깐 했답니다. 아무리 엄마라도 100% 엄마의 마음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