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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0 - 3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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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길다한들 토지하면 최참판댁 최서희를 먼저 떠올리고 어쨌거나 그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려니 했다.

이제 10권까지 읽고 보니 토지는 이제 더이상 최서희를 중심으로한 최참판댁 이야기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권 마다 뒤에 등장인물 소개가 나와 있는데 10권 뒤에 소개된 등장인물만 해도 42명이다. 민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책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꿈을 꾸고 어떻게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지, 아니 꿈에 앞서 어떻게 끈질기게 목숨줄 붙잡고 생존해나가는지. 그러면서 어떻게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타협을 하는지, 그러면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사그러가는 과정들. 토지가 스무권의 대하소설이 되기까지는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등장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것도 한 몫 하지 않나 생각한다.

1권부터 계속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한사람인 용이와 임이네. 이들 사이의 아들 홍이의 갈등하는 부분이 처음부터 상당량 차지한다. 사랑하는 장이를 두고 갈등하고, 더불어 자신의 앞날을 정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홍이의 모습이 이해가 안되는바 아니면서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깝게 한다. 나이들어도 변하지 않는, 아니, 나이들수록 더 탐욕스러워가는 생모 임이네와, 늙어 쇠잔해져가는 아비 용이를 두고 홍이는 한참 젊은 나이에 맘껏 자기 꿈을 펼칠 생각을 못하고 우유부단, 고민만 하다가 결국 맘에 품고 있던 장이 마저 다른데 시집가게 내버려둔채 자시은 주위에서 권하는대로 김훈장 손녀딸 허보연과 혼인해버린다.

한편 부인과 부모와 떨어져 떠돌면서 마음을 한군데 못부치는 이상현은 자기가 모르는새 기화 (봉순)가 자신의 딸을 낳아 군산에서 홀로 키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또한 10권에서는 새로이 교육을 받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내용에 본격적으로 포함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지, 교육의 기회를 평생 받지 못하고 살아온 아낙들과 어떻게 다르게 사고하고 행도알지 기대가 된다.

그래도 1권부터의 중심을 지키려는 듯 후반부에 오면 서희 이야기가 나오긴 한다. 길상 없이 혼자 키우고 있는 아들 환국과 함께이다. 평소엔 조용하고 사려깊은 환국인데 아버지 길상을 종의 자식이라고 놀리는 친구를 가차없이 때려서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긴다. 소식을 듣고 다친 아이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으로 달려간 서희는 맞은 아이로부터 환국과 싸움이 일어난 경위를 묻고 자초지종을 들은 후 그 아이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환국이 잘못 한 것은 없다고 조용하고 강인하게. 길상의 부재속에 아들을 바르고 강하게 키우고자 하는 어미로서의 서희를 작가는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희와 길상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면 어떤 성격의 인물로 자라고 있을까, 나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궁금하던 차일 것이다.

서희는 늘 외로와 보인다. 어린 서희는 어린 서희대로, 결혼을 해서도, 어미가 되어서도, 재산을 모두 빼앗겼을때도, 다시 되찾았을때에도, 강인해보이는 외모라지만 내 눈에는 그저 늘 외로와보인다. 그녀를 보살피고 받드는 사람들이 늘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는 느낌. 하기는 토지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용이는 외롭지 않은가? 그 악다구니 같은 임이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외롭고 소외감에 한이 맺혀 나오는 소리로 들리지 않던가?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다 죽은 월선은? 비밀도 너무 큰 비밀을 가슴에 품은 채 일생을 마쳐야했던 윤씨부인은? 그러고보면 외롭지 않은 인생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하는 인생. 토지의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준다.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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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가 말하는 홀가분한 죽음, 그리고 그 이후
정현채 지음 / 비아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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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한 것 두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시간과 죽음이다. 시간은 잘 못 느껴서 그렇지 계속 그 흐름 속에 살고 있지만 죽음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종교, 철학, 문학에서 다루는 큰 주제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한 개인의 저서이지만 의료 현장에서 평생을 바쳐온 의사가 저자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게 하였다. 정작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불안의 정도가 심해진 것은 저자의 부모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였고 아내의 권유로 관련 서적, 연구 결과, 체험 기록 등의 자료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를 학생들과 환자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생사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져가고 본인 스스로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가며 이 책의 원고를 쓰고 있던 중 안타깝게도 저자 본인이 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올해 2018년 초의 일이다. 이제 죽음을 더 가까이에서 느끼게 된 것이니 그동안 다져온 생사관이 단순히 머리 속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매일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옮겨야할 문제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두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고 예정보다 일찍 올해 8월에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정년 퇴직을 했다. 그렇게 마무리하여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 두달 전인 8월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이다.

그가 어떻게 죽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떻게 파헤쳐 보았는지, 어떤 근거들을 가지고 말 할 수 있는지, 과학적 의학적 근거, 현장에서 지켜본 증거, 체험 기록 근거 등 다양한 근거 제시 뿐 만이 아니다. 존엄사가 인정되는 몇 나라에서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반대 의견들이 있었고, 어떻게 수렴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죽음은 하나의 단절,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중 통과해가는 일종의 문으로 봐야되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옮겨감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존엄한 죽음은 준비된 죽음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생각이 명료할 때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머리와 마음으로 준비해두는 과정이 꼭 필요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말하는지도 조목조목 적어놓았다. 예를 들어 저자 자신은 연구실 비품이나 자료를 학교의 의학역사문화원에 기증하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장기기증서약서와 유언장, 자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기도삽관이나 연명의료를 하지 말라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였고, 자신의 장례식에 쓸 음악을 USB에 담아 두었으며, 삼베 수의 대신 무명옷을 입히고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 달라는 사전장례의향서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들을 가족들과 공유하면서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함께 할 기회를 주는 것은 마지막 배려가 될 것이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존엄사의 정의, 존엄사가 인정되는 국가에서도 개인의 의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허용 기준이 있는지, 안락사와는 어떻게 구별되는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어디서, 어떻게 작성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 다 해결되었다. 이제 실천만 하면 된다. 준비된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살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충분한 근거와 함께 제시해놓았다.

죽음은 준비할때 존엄한 것. 준비는 언제 시작하는가. 바로 오늘이다. 더 충실한 삶을 위하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정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 www.l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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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10-15 23:31   좋아요 1 | URL
Memento Mori 라는 말은 곧 삶을 충실하게 하라는 뜻도 될것 같아요. 의사라는 직업상 많은 죽음을 옆에서 봐왔을텐데도 막상 부모님의 죽음을 지켜보고서 불안,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그래서죽음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렇게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쓸 무렵 자신도 죽음에 대한 선고를 받은 기분이 어땠을까요. 리뷰에 제가 자세히 쓰진 않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닌 것 같다는 근거를 많이 들어놓았어요. 저자는 그것도 준비된 죽음이어야 한다는 또하나의 근거로 제시하지요.
 
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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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여행기야, 이야기책이야?"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이 책 겉장에 있는 작가의 말이다. 오래 전부터 여행기인지 이야기책인지 헷갈리는 책을 쓰고 싶었고, 런던을 그 첫 도시로 택하였다고. 이 책을 다 읽고서 보니 과연 그랬다. 저자의 전작들을 알고 있기에 아마도 여행기의 형식을 빌어 독자의 가슴에 찡하게 와닿는 문장들로 가득찬 에세이책 같을 거라는 처음의 예상을 무너뜨리고 이 책은 정보 전달에 충실한 여행기였다. 정보 중에서도 문학적 정보, 그러니까 그녀가 들른 곳과 관련된 문학 작품, 문학가에 관한 내용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채우고 있고, 여기에 역사 정보도 약간 들어가 있었다.

영국 중에서도 런던, 그 런던에서도 구석 구석 많은 곳에 대해 담은 것도 아니었다. 박물관, 광장, 공원, 사원, 성당 등 누구나 들를만한 곳 여덟군데를 뽑았다. 그녀가 꼭 여기만 갔을리는 없을 것이고, 아마도 이 책의 편집 방향을 정하고서 그에 적절한 장소만 선별하지 않았을까. 이 선정에서 빠진 곳들이 아쉬워 책 뒷편에 부록처럼 런던의 훨씬 많은 장소들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편에서 저자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대성당>얘기를 잔뜩 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 제목 대성당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Abbey가 아니라 Cathedral이다. Cathedral이 좀더 종교적인 기능을 하는 곳이라면 Abbey는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수행하는 장소라고 봐야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죽은 자들은 당연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니 작가의 얘기는 그들에 대한 것으로 집중한다. 그러다가 그가 태어나거나 살았던 영국의 다른 지역을 방문했다는 얘기도 슬쩍 끼워넣는다. 워즈워스를 따라 레익 디스트릭트에 간 것 처럼 말이다. 저자는 워즈워스에서 그치지 않고 바이런, 키츠 , 셸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어서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까지. 이러니, 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친 곳들은 여행 장소에 대한 곳보다는 그곳과 관련된 작품, 작가들에 대해 멋지게 인용한 부분일 수 밖에 없었다. 시작은 여행 장소로 시작해서, 사실은 문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인 것이다. 뭐, 나쁘지 않다.

세인트 폴 대성당 편에서는 그래도 역사적 배경에 대한 내용이 꽤 된다. 평범하지 않은 이 성당의 역사때문일 것이다. 1666년에 지어졌다고 해도 놀랄텐데 1666년에 대화재로 무너져내렸다니, 그럼 처음 만들어진건 언제란 말인지. 이건 내가 직접 찾아보아야했는데 자그마치 604년에서 1087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었다. 여기서 저자는 실낙원 얘기를, 니코스 카잔차키스 얘기를 한다. 이 책의 맨 뒷장에 가보면 아예 런던의 유명 장소 여덟 곳 아래, 저자가 그 장소 편에서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지 정리해놓고 있다. 대영박물관에서는 잉글리쉬 페이션트, 수메르 문명, 아가사 크리스티 등등. 여덟군데 중 맨 나중인 그리니치 천문대편은 앞에서보다 더 특이했던 것이, 시간에 관해 꽤 어려운 얘기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슈타인, 보르헤스, 자오선 얘기, 시간 측정에 대한 얘기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하는 얘기들을 다 이해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여행할때 가서 보는 곳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한 사람이 시간을 두고 같은 곳을 두번 간다 할지라도 느낌은 다르다. 그래서 여행은 간 곳에 대한 발견이면서 가는 사람 자신에 대한 발견이기도 하다.

정혜윤 같은 필력과 창의적 능력의 소유자라면 이 책은 완전히 다른 버젼으로 쓰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를테면 완전 소설처럼, 또는 시인처럼. 이 책은 그런 의욕을 잠시 누르고 모범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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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 - 3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9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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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아홉권째를 읽으며 내가 토지를 읽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이 길고 긴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동안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본다.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수십명의 인생을 본다.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맞고, 사람마다 똑같은 인생은 하나도 없다는 말도 맞다. 모순인것 같지만 맞는 말이다. 누구의 인생이 더 가치있고 누구의 인생은 덜 가치있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9권에서는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부터 시작한다. 간도에서 귀국해 진주로 터전을 잡은 서희는 석이와 공노인이 중간 역할로 도와줌으로써 일생의 목표로 삼던 평사리 잃어버린 논밭을 조준구로부터 되찾는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할 만큼 어릴 때 어머니를 잃어야했고, 아버지마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 후 오로지 할머니 보호 속에 자라던 서희가, 제 어머니를 앗아간 사람이 다름아닌 할머니의 또다른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대목이 바로 전권 (8권)에서 나온다. 조준구에 대한 복수까지 완결하고 난 후 비로소 서희에게 남은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일말의 허무감은 아니었을지. 허무감은 어쩌면 성취감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거울의 뒷면같은 것이라고 봐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희와 아들의 귀국길에 함께하지 않은 길상은 만주와 용정에 남아 독립운동에 합류하고, 독립운동과 더불어 동학의 명분을 되살려보려는 윤도집과 입장을 달리하는 김환은 독립운동군들 사이에서 갈등을 보이기도 한다.

김평산의 아들이자 한복의 형 김두수. 그는 동생 한복과 달리 일제 밀정 노릇을 하며 갖은 악역을 다 하고 있는데, 한때 사랑의 대상이었던 심금녀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것을 알고 집요하게까지 쫓아와서는 감금시켜놓고 고문까지 하며 자기 뜻에 따르도록 강요한다. 끝까지 굴하지 않던 금녀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월선이 죽고 나서 서희가 진주로 내려올때 따라 내려온 용이는 몸이 아파 거동도 제대로 못하지만 임이네는 여전히 제 욕심만 차릴뿐 용이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아들 홍이 역시 방황을 접지 못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서희는 되찾은 최참판가를 돌보아줄겸 용이를 최참판가에 머물게 한다.

 

'부끄러웠다. 고통스럽다는 것, 힘겨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런 의식의 자만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라며 저자는 토지3부 탈고후 소감의 글을 책 앞머리에 남겨놓았다. 3부를 쓰는 동안 몸이 많이 안좋았던 모양이다. 일부를 발췌해보려한다.

 

며칠 전에는 누룽지를 끓여서 혼자 창밖을 내다보며 먹는데 별안간 서러운 생각이 치미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겨울에는 연탄불을 안고 쥐포라는 것을 구워 팔고 여름에는 논고둥 같은 것을 삶아 파는 장거리, 전봇대 옆에 앉은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름 햇볕, 겨울 바람에, 만져보면 바스러질 것만 같았던 그 머리카락, 비굴하지 않고 오만하지도 않았던 그 삶의 모습이 떠올랐다. (4쪽)

 

별안간 서러운 생각이 치밀때가 있다 우리도. 작가는 그 순간 바스러질 것만 같았던 할머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장거리에서 쥐포나 논고둥을 팔던 그 모습에서 비굴하지 않고 오만하지도 않았던 삶을 보았던 작가의 마음을 감히 나도 전달받았다고 해도 될까. 꿋꿋하게 살거라고, 달보고 소원대신 다짐 같은 것을 했던 어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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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9-30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토지 9권째이시군요. 빠르네요. 뿌듯하시겠습니다. 이 책 20권짜리 아닙니까?
저는 엄두를 내지 못하겠어요. 두 권짜리만으로도 벅차하며 읽고 있어요. 파이팅 외쳐 드립니다!!!!!!!!

hnine 2018-09-30 06:01   좋아요 1 | URL
1권 읽어보고는 지금보다 더 빨리 읽을수 있겠다 했었어요. 내용이 그렇게 따라가기 힘들 정도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중간에 다른 책 외도를 좀 하느라고 속도가 느려지고 있네요.
여기까지 왔으니 20권까지 다 읽긴 읽을 것 같아요. pek님 파이팅에 힘입어~ ^^

카알벨루치 2018-09-30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토지 읽는 분들 너무 밉습니다 어떻게 읽어세요????? 전 도서관에 몇번이나 1권 빌렸다가 안되겠다 싶어 1-2권 샀는데~그 후로 아무런 소식이 ....

hnine 2018-09-30 06:04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 1권부터 가지런히 꽂혀있는 것을 보고 그냥 1권을 빼어들어 대출한 날이 토지 읽기 1일이 되었어요. 대출 반납 날짜 맞춰서 읽다보니 9권까지는 어떻게 왔네요. 카알벨루치님은 1-2권 소장까지 하셨으니 급할 것 없고 꽂아두셨다가 언젠가 손이 그리로 가는 날 읽으시죠 뭐. 다른 책들 워낙 많이 읽으시잖아요 ^^
 
토지 8 - 2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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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 권필응, 신태성이 모여 독립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러 사람의 모의 장면은 작가가 중간 중간 그 당시 나라 정세, 주변 상황을 독자들에게 정리하여 알려줄 필요가 있을 때 택하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이 자리에서 거의 듣고만 있는 길상에 비해 신태성은 제법 주변국들 정세를 꿰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누가 얼마나 알고 있든 논의는 어째 중국와 일본중 조선은 어디에 빌붙어야 더 유리한가가 논의의 목적이고 결론인 것 같아 읽으면서도 한숨 짓게 한다. 우리나라는 늘 이래야하나.

어느 새 길상과 서희 사이에 둘째 아들도 태어나고 아들 둘을 유모가 아닌 제 젖 먹여 키우면서도 서희의 오로지 목적은 평사리 땅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월선은 암으로 죽어가고 김두수는 회령에서 순사부장을 하고 있으며 김훈장은 하얼빈에서 눈을 감는다. 길상은 김훈장의 유품을 거둔다는 목적으로 하얼빈을 찾는데, 하얼빈은 길상이 서희의 구혼을 받기 전 마음을 품고 있던 옥이네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얼빈에서 길상은 송장환 등을 만나 독립운동을 위한 연락을 취하고 정보를 교환하는데,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면 일본은 사면초가로 몰릴거라고 보는 낙관론자, 전쟁에서 어쨌든 힘을 기른 일본이 만주를 먹어치우리라고 보는 비관론자로 견해가 나뉘는 가운데 길상 자신은 비관적인 편에 동의한다며 자신과 조선의 앞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앞날에 대해 갈등하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평사리 최참판가 땅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갈 목적으로 용정에서 대상으로 성공을 이루기까지 서희는 때로 친일이라는 평을 듣는 일도 불사하며 고군부투 하는 가운데 길상은 연해주를 발판으로 하는 독립운동을 돕는 일을 계속 해야한다는 명분으로 평사리로 돌아가는 대신 간도에 눌러 앉아 있어야 되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이다. 독립운동도 그렇지만 서희와 길상 사이의 무너지지 않는 벽 때문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떠나 용정을 찾은 김환은 공노인의 소개 아래 길상을 만나고 연달아 서희를 만난다. 김환이 별당아씨를 데리고 야밤도주를 한 것이 길상과 서희 아주 어려서 일이라서 둘은 김환의 얼굴조차 기억을 못할 만큼 세월이 지난 후이다. 김환이 누군지 제대로 구별을 못하는 상황에서도 길상은 대번 그에게서 거물의 기운을 느끼고 처음의 적대감을 점차 허물어가더니, 하얼빈에 사람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서희에겐 끝까지 돌아가신 할머니의 조카뻘이라고만 소개하는 김환. 하지만 영리한 서희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이미 알았으면서 자기에게 알려주지 않은 길상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하얼빈에 동행한 길상과 김환. 거기서 이들은 우연히 김두수를 발견하는데, 이 소설에서 조준구 외에 대표적인 악인으로 등장하는 김두수는 금녀가 하얼빈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것이다. 결국 금녀를 찾아 쫒아온 김두수를 금녀는 총을 쏘아 다리에 부상을 입힌다.

8권의 끝에 이르러 서희는 길상으로부터 김환의 신분과 정체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내고 7-8년간의 용정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여 두 아들을 데리고 평사리로 떠난다. 여기에 동행하지 않는 길상을 보는 서희의 마음은 착잡하다.

결국 집념을 관철시키는 서희의 귀향이 8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읽으면서 더 뭉클했던 부분은 월선이 눈을 감는 대목이다. 죽어가는 월선이 자기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눈을 못 감고 있다는 급전을 몇차례 전해받으면서도 최후 순간까지 월선에게로 발걸음을 향하지 못하고 버티는 용이의 모습, 월선을 보내는 그만의 방식이 눈물 겹다. 많은 아쉬움이 있었던 관계였음을 아는 주위 사람들의 위로를 받지만 용이는 그렇지 않다고, 여한이 없이 좋아했노라고 말하는 용이. 그의 받아들임의 방식을 보며 작가의 마음을, 작가의 면모를 읽었다.

 

다음 인용하는 대목은 김환이 길상을 만나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하여 미친 듯이 소리지르며 쏟아내는 말, 일종의 절망의 포효이다. 이를 본 길상은 김환에게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 소리라고 일침을 준다.

 

누군가 소를 죽여 주어야 소고기를 먹을테고, 누군가 호랑이를 죽여주어야 호환을 면할테고, 누군가 나쁜 놈을 죽여주어야 살인 강도, 역적이 없어질테고, 날이면 날마다 살생은 아니 끊이는데, 죄인은 날로날로 늘어만 가는데, 성현은 무엇을 했느냐! 살생 아니하고 간음 아니하고 도둑질 아니하고 허언 아니하고 모험 아니하고 그 아니하는 성현을 먹고 마시고 입고 잠들게 한것은 하나님 아닌 죄인들의 덕분이다.

소의 세상, 호랑이의 세상, 살인 강도의 세상에서 어찌 성인인들 연명하여 도를 닦았겠느냐? 살아생전에는 죄인들 덕분에 덕을 높일 수 있었고 죽어서는 또 극락 꽃밭에서 소요하는 신세, 그래 대성 (大聖)은 무엇이냐! 대오각성한 자가 대성이라, 무엇을 대오각성하였느냐.

극락 천당 같은 것 일없다! 시름에 젖은 듯 죄인을 만들어내고 지우고 하는 그따위 교활한 조물주의 총아가 되느니보다 지옥이야말로 내 고향이야! 영원한 업화가 꺼지지 않고 불붙은 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아암 고향이구말고. (367)

 

 

그러니까 예전에 내가 TV에서 드라마로 토지를 보았을때만해도 작가는 아직 토지의 집필을 완결하지 않았던 때였나보다. 완결편이 20권이니 서희가 평사리 땅을 되찾는 내용은 거의 끝에 가서 나올거라 예상했는데 8권에서 이미 나와버렸으니 앞으로 남은 내용들에 대해 더 궁금해진다.

토지를 읽고나서 유명세에 비해 그닥이더라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만, 이제 절반도 안읽고서 드는 내 생각은 어쨌든 모든 작가가 쓸 수 있는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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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8-09-1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를 읽으시는 분들, 대단해요. 저는 처음 쬐금만 읽다가 포기했거든요. 언젠가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요. ㅎ

hnine 2018-09-11 18:07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요. 대화체가 많고 내용을 전혀 모르는바 아니라서 마치 TV드라마 대본 읽는 느낌일 때가 많거든요. 저도 원래 대하소설 잘 못읽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읽고 있답니다. 언젠가 토지가 자목련님을 부를때가 있으면 그때 읽으셔도 되죠. 지금도 다른 책 너무나 많이 읽고 계시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