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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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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낯익다. 러시아 화가 이반 아이바조프스키의 동명의 그림에서 인용한 제목으로, 얼마 전에 읽은 박찬순의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에 같은 제목의 단편이 실린 것을 기억한다. 2018년 출간된 박찬순의 아홉번째 파도는 세월호 이야기였지만, 2017년 출간된 최은미의 아홉번 째 파도는 2012년 삼척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삼척은 '척주'라는 지명으로 대치되었는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문학동네에 연재될 당시 원래 제목은 아홉번째 파도가 아니라 <척주>였었다.

작가 최은미는 삼척은 아니지만 강원도 인제가 고향이다. 2008년에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이후로 2014년부터 젊은 작가상을 내리 수상하기도 했고 이 소설 아홉번 째 파도로 작년 2018년에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 도시의 발전에 한 기업의 산업 기반이 연결되고, 기업의 반 윤리적 이윤 창출은 그 도시의 발전이 아니라 소멸로 이끄는 독으로 작용한다. 반핵과 찬핵 의견의 대립은 정작 핵 자체보다는 눈 앞의 이윤의 계산 싸움이었고, 여기에 정치 세력, 개인의 입신양명, 빗나간 종교 집단, 생명 윤리 문제 등, 이 소설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 하지만 따로 돌지 않고 서로 연관된 문제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회성이 있지만 이야기의 흥미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책의 끝장까지 가게 하는 서사가 있으며, 여러 이슈들이 겉돌지 않게 하는 단단하고 치밀한 플롯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급조된 것 같지 않은, 능숙한 문장 표현력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소설을 위해 쏟아부었을 작가의 자료 조사 기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짐작은 이 소설에 대한 신뢰와 작가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높이게 한다.

다음 작품으로 <정선>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나와있는 것으로 안다. 역시 강원도 그 정선이 배경인가?

권여선 작가는 추천사에서 '아무리 <목련정전>의 최은미이지만' 이라는 말로 작가의 이전 작품을 언급했다. 목련정전은 또 어떤 내용이기에.

정선이 될지 목련정전이 될지 몰라도 작가의 다른 작품을 곧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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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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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그렇듯이 어떤 책과 만나는데에도 타이밍이 있다. 알라딘에 이 책 폭풍이 휩쓸고 지나갈 당시에도 안읽고 버텼던 것은 더 적절한 타이밍이 오기를 기다렸기 때문인지, 그때가 바로 적절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서 너무 빠져들까봐 피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1956년 생이고 이 책이 나온게 2008년이니 이 소설은 그녀가 50대 초반 즈음에 썼을텐데 그녀의 이력을 보니 어릴 때부터 무척이나 글을 쓰고 싶어했지만 그녀의 세번째 소설인 이 작품이 2009년 드디어 퓰리처상을 받기까지 인생 행로가 단순하지 않아보인다. 작가에게 단순하지 않은 인생행로는 훗날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지만 말이다.

단편소설로 시작한 이력 때문인지 이 책도 길이로 보면 장편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배경과 인물이 한 축으로 고정되어 있을 뿐 단편의 형식을 하고 있다. 배경은 모두 공통적으로 미국 메인주의 크로스비라는 마을이고, 등장인물은 올리브 키터리지와 헨리 키터리지 부부, 그리고 이들과 혈연, 지연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사람들이다.

 

<약국> 제목은 올리브 키터리지 이지만 첫 단편에서 주로 등장시키는 것은 남편 헨리 키터리지이다. 약사로서 마을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헨리 키터리지는 온건하고 책임감 있으며 도를 넘지 않는 성격이다. 그에 비해 올리브는 강하고 주관있으며 남편 헨리에 비해 인생을 덜 만족스럽게 사는 듯 하다. 이 부부 사이에 약국 점원 데니즈가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파문은 항상 작게 시작하여 커지는 법이다.

<밀물>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케빈이 옛날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회한까지는 아니고 회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케빈은 아직 그정도로 늙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리워하지 않을 만한 과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아노 연주자> 부모의 불안한 정서 밑에서 성장한 사람은 또 하나의 불안한 어른으로 자랄 수 밖에 없다. 마을의 바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는 앤절라의 불안한 피아노 연주 실력은 그녀의 멍들고 낫지 않은 상처에서 나오는, 절뚝이는 소리이다. 그녀가 연주하는 바에 키터리지 부부는 잠깐 관객으로 등장한다.

<작은 기쁨> 이 단편을 쓰다가 이 책 전체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인 크리스토퍼 키터리지의 결혼식에서의 올리브 키터리지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직접적 묘사 없이 심리를 나타내고 전달하는 기법이 최소한 이 단편에서는 앨리스 먼로급.

<굶주림> 요즘은 책이나 소설 제목에 굶주림이라고 되어있으면 가난으로 인한 굶주림보다는 심리적인 굶주림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도 그렇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아내 보니가 있음에도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하먼에게 동반자가 되어 주는 것은 아내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데니스였다. 하먼과 데니스는 소외, 외로움, 사랑의 실패로 먹기를 거부하는 소녀 니나를 함께 돌보지만 니나의 결말은 사랑없는 삶의 결과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자네, 어머니를 미워하나?" 올리브가 말했다.

"아뇨." 니나의 대답이었다. "뭐, 우리 엄마는 한심한 데가 있지만 미워하진 않아요."

"그럼 됐어," 올리브가 그 큰 덩치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럼 된 거야. 그게 시작이니까."

175쪽, 올리브가 니나를 도와주기 위해 질문을 하는 장면이다. 여기 함께 있던 하먼은 올리브의 말에 번개가 번쩍이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그 반대일 수 있는 것이다. 니나의 문제를 도와주려다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는 하먼이다.

<다른 길> 작가는 전반적으로 노년의 삶에 대해 우울하고 무겁게 그리고 있다. 이 단편 역시 그렇다. 치욕스럽고 당황한 순간,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헨리의 말 한마디에 강인해보이기만 한 올리브 가슴에 멍이 든다. 사람의 마음을 멍 들게 하는데는 꼭 긴 말과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야말로 '일격'으로 충분하다. 그 일격에는 오랜 세월의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겨울 음악회> 노부부 제인과 밥의 이야기이다. 제인은 올리브가 수학교사로 있던 학교의 양호 교사였다. 예외적으로 이들 부부 사이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애틋하고 서로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하며 읽을 무렵, 예외가 아니게 하는 사실이 밝혀진다.

<튤립> 글이 통째로 다 슬펐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모든 노년의 삶이 이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바라지 않아도 그 길에 들어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는게 늙는 일인 것 같다. 이제 올리브에게는 올해도 튤립을 심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 밖에 중요한 일이 없어보인다.

<여행바구니> 여행바구니를 채우며 노년을 함께 계획했던, 인생의 대부분을 공유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밝혀지는 비밀과 거짓들 앞에서 돌멩이를 던져 물수제비 짓을 할 여력도 남아있지 않는 늙은 말린을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신의 일인양 바라본다. 옛제자였던 말린을 위로하던 올리브는 누군가의 슬픔을 보면 자신의 슬픔이 덜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병속의 배> 예외적으로 제목에서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단편이다. 위니는 10대, 줄리는 20대, 애니타는 아마도 40~50대. 한 단편 속에 여러 세대가 동시에 등장하고, 각 세대다운 갈등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갈등을 각각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가려고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불안> 원제는 불안이 아니라 security 라고 역자가 밝히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가 평소에 흉보며 결코 닮고 싶지 않던 어떤 인물로 와있음을 발견하는 것, 자신의 전부이던 자식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 당신때문에 힘들었다는 폭로를 듣는 것. 이보다 더 깊은 상처가 있을까? 하지만 상처를 가지고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꿋꿋하게라고까지는 말 못해도. 상처보다 더 끈질긴 생존이다.

<범죄자> 여자의 어떤 행동에는 잠재의식, 과거, 성장과정, 꿈, 생존본능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행동 자체만 가지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행동중 범죄행위도 예외는 아니다.

<강> 이건 통째로 베껴쓰고 싶었다. 위의 <튤립>을 최고로 꼽으며 읽어내려왔는데 베껴쓰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었다. <튤립>이 헨리가 요양원에 있는 동안 혼자 남은 올리브의 이야기라면 <강>은 헨리가 죽고 진짜 혼자 남은 올리브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니 생존에 몸부림 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사라지고 아무 것도 그녀 옆에 없다. 이것을 딛고 극복하며 오늘도 내일도 버텨내야 하는 올리브의 삶은 과연 올리브만의 삶일까. 천만 다행이랄까, 이제 이 세상에 내 존재가 필요한 구석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게 매일의 삶이 되어 가던 올리브에게, 여기에 아직도 내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감정을 잠시 느끼게 하는 일이 일어난다.

 

본 리뷰의 제목은 <튤립>에서 빌려왔고, 나한테는 이 책 전체에서 제일 여운이 남는 문장이기도 하다.

"튤립은 터무니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삶은 이렇게 쓸쓸하고 허무하기만 한데."

('삶은 이렇게 쓸쓸하고 허무하기만 한데' 이 부분은 실제 책에는 없는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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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0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의 아무 데나 펼쳐보기를 여러번 했는데요, 나인님의 리뷰를 보니 또 그래야겠어요.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hnine 2019-06-05 16:12   좋아요 0 | URL
아무데나 펼쳐보기로 어느 단편을 제일 여러번 읽으셨을까요.
사람마다 다른 여운과 감회로 읽었을텐데 만약 20대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저와 비슷한 감회와 소감을 느꼈다면 반가와해야할까, 걱정을 해야할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 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했으면 더 좋겠고요. 하지만 제가 위에도 썼듯이 상처나 허무보다 더 강한게 인간의 생존력이니까요. 모든게 아직도 진행중. 내 인생은 진행중 ^^
요기까지 쓰고,
다락방님의 페이퍼들, 다시 읽고 왔습니다 ^^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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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러시아의 대표적 작곡가의 한사람인 쇼스타코비치의 생애와 음악을 소재로 하여 영국의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가 마음껏 예술론을 펼친 책이라고 보고 싶은, 소설로 소개되어 있지만 단순한 소설로 보고 싶지 않은 책이다. 소설로서의 재미를 기대했다면 기대와 빗나갈 것이고 예술론이라고 본다면 줄리언 반스와 쇼스타코비치 사이에서 혼돈을 겪을 것이다. 작가인 줄리언 반스의 생각인가 하고 읽다보면 문장에서 '그'라고 칭하는 사람은 분명 쇼스타코비치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어렵다. 쓱쓱 읽어넘어가기엔 매우 주관적이고, 그래서 곰곰 생각을 해야 이해가 될 문장들이 넘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재미가 기대만큼 안되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줄리언 반스를 두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 즉 너무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를 이 책을 쓰기 위해 엘리자베스 윌슨이 쓴 <쇼스타코비치: 기억되는 삶>을 주요 참고 자료로 했다고 하고, 그래도 이 책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쓴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엘리자베스 윌슨의 책을 읽어주기 바란다고 했다.

예술가의 창작의 자유가 제한 받고 검열받고 조정되어야 했던 시대. 예술은 인민의 것이라는 레닌의 말에 부응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인민의 취향에 맞고 인민의 삶에 바람직하다고 보여지는 대로 작품 활동을 할 것을 러시아 정부로부터 강요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자연히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문제를 안고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통해 정작 줄리언 반스가 논하고 싶었던 주제는 그것이 아니었을지. 이 주제에 대해 잘 요약이 되어 있는 대목 중 하나로 135쪽의 다음 부분을 골라보았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고,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잘 즐겨주는 이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다. 들을 수 있는 귀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하는 것이며, 예술의 거짓된 정의는 어느 한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애매모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든 시대의 것이면서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라는 말. 시대의 소음이 되는 것을 거부하지만 대신 역사의 속삭임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시대의 소음'과 '역사의 속삭임'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하는 구절이다.

예술가는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는다. 오로지 예술가 자신이 만족할때까지를 완성의 순간으로 삼고 그것이 최소한 누군가에게는 호응 받기를 원하지만 그건 예술가의 바람이고, 일단 결과물로 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의 음악은 누구의 호응을 받느냐 뿐 아니라 시대와 역사의 잣대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대목이 마침 이 책의 문장 수준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 같아서 옮겨 본다.

건물 공사 현장의 크레인 기사가 노래를 작곡해 그에게 보내온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답장을 했다. '당신은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꼭 필요한 집들을 짓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당신이 하는 쓸모 있는 일을 계속하시라는 겁니다.' 크레인 기사가 곡을 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 작곡가 지망생이 보여준 재능이 그가 크레인 운전실에 들어가 레버를 조작하도록 지시를 받는다면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옛날에 귀족이 그에게 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보냈다면 이렇게 답할 용기가 있기를 바랐다. "전하, 한 손에는 귀족의 품위를 유지할 책임을 지니고, 다른 손에는 전하의 영지에서 노동하는 자들의 안녕을 돌볼 책임을 지니셨으니 전하의 지위는 참으로 높고도 어렵습니다. 제가 전하께 드리고픈 조언은 전하가 하시는 쓸모 있는 일을 계속 하시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작곡 수준은 당신의 본분을 뒤로 하고 계속할 수준은 못되니 원래 하던 일에 정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뭐 이런 뜻 아닐까.

스탈린이 좋아했던 음악가였던 베토벤. 이 책에서는 '붉은 베토벤'이라고 특별히 칭함으로써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예술가 상을 나타내었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스탈린의 인정을 받았던 음악가였지만, 그래서 어쩌면 또 하나의 붉은 베토벤이 되기를 강요받았지만 그가 마음 속으로 추구한 음악은 시대의 소음과 맞서는 음악, 시대의 소음과 구별되는 음악, 작곡가의 순수한 의도로서의 음악이었다. 붉은 베토벤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우리 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181쪽)

앞서 나왔던 '시대의 소음'과 '역사의 속삭임'이 여기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윌슨의 책 외에 줄리언 반스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했다는 또다른 책 <증언: 쇼스타코비치 회상록>은 2001년에 우리 나라에 번역본으로 나왔다가 절판되었는데 며칠 전 복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쓴 회상록은 아니고 솔로몬 볼코프가 그의 구술을 받아 적고 다시 엮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듣고서 금방 좋아지기 어려웠다. 당시 러시아 정부가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라고 지적했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다듬어지지 않은 듯, 거칠고 도발적인 음악에 가깝다. 그 책을 읽어보면 그와 그의 음악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까?

 

아예 서방으로 망명하여 유럽에서 성공의 모든 장식을 누렸던 프로코피에프와 달리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에 끝까지 남아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으며 나중엔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한다. 분명 사회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시대의 소음과 역사적 속삭임 사이, 순응과 항거 사이에서 복잡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생애. 줄리언 반스는 왜 하필 이 사람을 택하여 소설로 쓰고 싶어졌을까. 읽는 내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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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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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번역본이 소개된 것이 2017년이니까 아주 신간은 아니라서 읽기 전부터 제목과 표지가 눈에 익다. 우연히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이 책이 소개되는 것을 듣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제목의 소설, 에세이가 적지 않은데 이 책은 미국 작가 켄트 하루프의 장편 소설이다. 1943년에 태어난 그는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된 다음해인 2014년, 지병인 폐질환으로 71세의 나이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니까 책 제목은 축복이라고 되어 있지만 죽음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내용의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목이 왜 축복일까.

 

미국 콜로라도 주 한 마을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대드 루이스. 77세 나이에 의사로부터 이제 살아있을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병원에서 치료받을 단계도 아니고 이제 집에서 쉬며 조용히 생을 정리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의사의 선고를 듣고 흥분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없다. 그가 우는 장면은 뒤에서 딱 한번 나오는데 177쪽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후이다. 어떤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다. 자기가 경영하는 철물점을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이었다. 손님이 물건을 구입하고 있었고 점원이 돈을 받고 영수증을 떼어주는 것을 본 것 뿐이었기에 옆에 타고 있던 아내는 남편이 우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지만 그는 대답을 못하고 울기만 한다.

나중에 집에 와서야 말한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아까 상점 앞에서 내가 울었던 것 말이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그런데 그게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던 거요. (182쪽)

사소한 일상,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순간이 바로 죽음을 앞두고 나를 울릴 시간들이라니.

대드 외에 여섯 명의 여자가 나온다. 대드의 아내 메리, 대드의 딸 로레인, 오랜 이웃 버타 메이와 버타 메이가 돌보는 손녀딸 앨리스, 그리고 윌라 존슨과 그녀의 딸 에일린이다. 버타 메이는 암으로 딸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은 노부인이고 자기 외에는 혼자 남은 어린 손녀딸을 맡아 돌볼 사람이 없다. 윌라 존슨은 오래전에 과부가 되어 혼자 살아 왔었고 지금은 사십년 교직에 있다 은퇴한 그녀의 딸 에일린과 함께 살고 있는데 에일린도 이미 육십이 넘은 나이.

대드가 죽음을 맞는 과정이 큰 줄기를 이루지만 큰 줄기와 더불어 외로운 아이 앨리스의 마음을 열어주고 가족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주려고 이웃들이 마음 쓰는 이야기, 마을의 젊은 목사와 주민들 사이의 대립, 수십년전 집을 나간 대드의 아들 프랭크,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혹시 프랭크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 등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진행된다.  이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게 엮여있는지.

사람의 심리를 풍경 묘사로 대신하는 것은 켄트 하루프의 강점 중 하나가 아닌가 할 정도로 책 여기 저기서 눈에 띄었다. 특히 300쪽부터 시작되는, 네 여자가 개울에서 함께 수영을 하는 장면은 무심한듯 객관적인 기술로 보이기도 하지만 나이 들어감에 따른 육체의 변화 묘사를 통해 불가항력적인 세월의 흐름, 수영이라고는 해본적이 없는 앨리스에게 처음 수영을 가르쳐주는 과정을 통해 나이든 세대가 이제 자라나는 세대에게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부분이다.

후반부에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배척받고 목회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목사 라일에게 대드의 가족은 대드를 위한 마지막 기도를 부탁한다. 바로 benediction, 축복의 기도이다.

저희의 마음이 이 자리에 계신 대드 루이스와 더불어 평온하기를 비옵니다. 이 방안에 평온함과 사랑과 조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 집 바깥의 저 모든 힘들고 충돌하는 세상도 똑같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이 더는 고통이나 후회나 불행이나 가책이나 스스로에 대한 회의나 걱정 없이 이 육신의 세계를 떠나실 수 있기를, 모든 시련과 곤경과 근심을 놓아두고 떠나실 수 있기를 빕니다. 오로지 당신이 평온하시기를 빕니다. 이 방안에 있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평온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저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모든 축복을 구하나이다. 아멘. (425) 

대드 루이스가 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다. 굳이 종교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더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순간을, 이렇게 축복을 구하며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죽기 전까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작가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어떤 이야기도 아니고 어찌 보면 지루하고 결말이 이미 다 밝혀져 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했을까. 대단한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한 노인의 죽음을 통해, 본인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의 의미를 채우려 했던 것일까.

 

 

 

 

 

* 영어의 "benediction"은 우리말로 "축복" 보다는 "축복의 말, 축사"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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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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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령 가난한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본다고 하자. 가난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면 듣고 본것에 의지해서, 상상을 가미해서 쓸 것이고 그 상상도 그리 새로울 것 없을, 십중팔구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그치지 않을까. 몸소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이라면 너무 사실적이고 고발적인 이야기로 빠지기 쉽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읽는 사람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킬까 머리를 쥐어짜며 말이다.

이 소설에서 가난한 40대 남자와 가난하고 병약한 20대 여자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그들이 가진 모든 걸 보여준다. 남이 쓴 글을 옮겨적는 일을 하는 하급 관리 마까르 제부쉬킨. 일 자체도 단순하고 보잘것 없는데다가 그나마 정기적으로 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돈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먹고 입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오로지 편지를 주고 받는 바르바라 외에는.

마까르 제부쉬킨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여자 바르바라는 나이로 보자면 제부쉬킨의 딸 격인 20대, 병약하고 가난한 여자이다. 이미 부모를 모두 여의었고 혼자 마음 속으로 좋아하던 첫사랑까지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일을 겪은, 마음에 상처가 많은 아가씨이다. 집도 없고 변변하게 수입이 될만한 일을 못하니 궁핍하게 살고 있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 여러 모로 제부쉬킨과는 달라보인다. 그녀는 끊임없이 제부쉬킨에게 이책 저책을 권하며 읽어보라고 하고 제부쉬킨은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가 더 관심있는 것은 소위 3류 소설이라고 하는 단순한 책들이다. 또한 바르바라가 책을 읽으며 정신적 빈곤을 벗어나려 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와 자기의 가난한 생활을 어떻게 보는가엔 비교적 신경쓰지 않는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반면 제부쉬킨은 자기가 그렇게 가난하여 제대로 행색을 못갖추고 능력없고 비루해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채고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 여기며 깔보는 것에 대해 무척 신경을 쓴다. 또한 자신도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이면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고 무리를 해서 그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바르바라도 포함된다. 바르바라는 이런 제부쉬킨의 행동에 대해 그러지 말것을 당부하기도 하지만 제부쉬킨은 자기가 좀 더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 뿐 멈추지 않는다. 옮긴이 석영중 교수는 해설에서 이런 것들이 둘 사이의 좁혀질 수 없는 차이를 만들고 있다면서 비극적 결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결말에서 바르바라가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대목은 이제까지의 어떤 가난한 상황보다 더 비극적이다. 그 선택의 배경에는 자신의 극도의 가난도 가난이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자기때문에 제부쉬킨의 파멸까지 초래할지 모른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 선택이 제부쉬킨을 파멸에서 구제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다.

가난을 묘사하는 도스트예프스키의 능력이랄까, 정말 탁월하다. 우연히 지나다 듣게 된 옆집 남자의 흐느낌, 상사 앞에 서 있는데 하필 입고 있던 낡은 옷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단추가 눈 앞에서 떨어져 버리는 장면, 그것에 대한 제부쉬킨의 심리 묘사등은 도스트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겨우 25세때 처녀작으로 발표하였음에도 일약 문단의 주목을 받게 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누구는 태어날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돈 자루로 실컷 먹고 마시고 즐겨라, 누구는 입맛이나 다시거라 너는 그거면 충분하느니라 알겠느냐 너는 그런 인간이란 말이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제부쉬킨의 말에서도 보이듯이 그당시 자본주의 사회로 급변해가는 과도기 러시아 사회를 고발하는 문장도 여기 저기서 엿볼 수 있다.

천재들이란 그 업적이 당대에서 빛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계속 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은 문학가나 철학자들은 계속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쏟아지는 신간에도 눈이 가지만 가끔 이렇게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볼 때가 있다. 세번까지 읽어본 책이 있는데 앙드레 지드의 <지성의 양식>이었고 도스트예프스키의 이 책은 이번이 두번째. 다락방님의 글을 읽고서이다.

 

영어에서처럼 러시아어에서도 가난이란 단어가 불쌍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트예프스키가 살았던 그 시대에만 있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어쩌면 더 극빈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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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18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의 후기를 읽는 것은 정말 즐거워요. 작품을 보는 방식이랄까 그 책 안에서 캐치하는 것, 그리고 볼 수 있는 게 다른 것 같거든요.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나인님.

hnine 2019-05-19 05:15   좋아요 0 | URL
처음 읽을땐 물론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는데 집중하게 되는데 두번째 읽을땐 일단 내용을 알고 읽으니까 작가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작가의 의도를 읽으려는 것에도 신경을 쓰면서 읽을 수 있게 되는것 같아요. 그러고보면 세번은 읽어야 그 작품에 대해 제대로 알수 있는게 아닐까 싶은데 세번씩 읽는 책이 일생에 몇권이나 될까요.
다락방님께 감사드려요. 알라딘 친구들끼리의 관계가 이런 것 아닐까요. 책으로 이어지고 책으로 깊어지는 ^^
여기서만 가능한 관계이지요.

2019-05-18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5-19 05:21   좋아요 1 | URL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이런 단호박같은 말씀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
가난은 안겪는게 최선이다보니 될수록 안겪기 위해서 무리해서 일을 진행시킬때가 있지 않나 되돌아보기도 해요. 누구나 다른 사람의 가난에 비해 나의 가난이 더 중요하고 심각하게 여겨지니까 가난하면 이기적이 되기도 쉬운 법인데 이 책에서 주인공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도무지 이기적인 구석이 없어요. 소설은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에서 안보이는 어떤 면을 보여주거나 일깨워줄때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dd 2019-05-2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러시아어로 ‘가난한‘이라는 뜻에도 불쌍한이란 뜻이 있어요 ^_ㅠ 잘 읽고 갑니다!

hnine 2019-05-26 15: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실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