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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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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제목에 재미 중국인 작가의 소설인가 했고 표지 인물 그림을 보고는 Xingu는 사람이름일거라고 짐작해버렸다. 실제로 이디스 워튼이 어떻게 선택한 이름인지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중국어를 잘 모르지만 중국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때 X로 시작하는 이름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중국어 발음을 영어로 표기할때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없어서 X 로 표기하고 있는 발음이 있는데  (Xu, Xiao 등) 실제 발음이 's'과 'z'의 중간쯤 된다고 한다.

이디스 워튼. 영화화된 소설 <순수의 시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작가이다. 그녀에게 여성 최초 퓰리처 수상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순수의 시대> 이전에 그녀를 본격적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으로 <기쁨의 집>도 국내에 번역되어 나와있다. 뉴욕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녀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불행한 결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신경쇠약과 우울증 처방 차원에서 의사가 글을 써볼 것을 권하여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고 미국 태생이지만 프랑스로 거주지를 옮겨 마지막 생애도 파리에서 마쳤다고 한다.

집에 <순수의 시대>와 <기쁨의 집>을 전집류 속에 가지고 있는지 오래되었는데도 책 두께에 겁먹어 읽지 못하고 있다가 정작 이 얇은 단편집으로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네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중 처음 두편 <징구>와 <로마의 열병>에 대해서만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머지 두편 <다른 두 사람>과 <에이프릴 샤워>는 앞의 두 작품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디스 워튼이 주로 소재로 삼아 왔다는 상류 사회 여성들. <징구>에도 그런 한 모임이 배경이 된다. 첫 페이지 문장만으로도 이 모임의 성격이 대번에 드러난다.

밸린저 부인은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워 문화 생활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기처럼 끊임없이 배움을 갈망하는 여성 몇 명을 모아 '런치클럽'을 만들었다. (7쪽)

'혼자 뭘 하는 게 두려워', '끊임없이 배움을 갈망하는', 모임 이름이 하필 '런치클럽'. 그렇게 시작된 런치클럽은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게되었고 급기야 한 유명작가를 그들의 모임에 초대하는 일을 앞두고 술렁인다. 주체인 밸린저 부인 외에 귀빈 초대에 더 수준 있는 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플린스 부인, 이에 비해 소극적 회원인 레버렛 부인, 초대하기로 한 작가의 작품을 모임에서 처음 추천했던 밴 블레이크 양, 모임에서 은근히 소외를 당하고 있는 로비 부인까지, 유명 작가를 초대한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하여 자기의 지적 욕구를 입증하고 앞으로 모임에서 자기의 입지를 더욱 다질수 있을지 내심 궁리한다. 드디어 작가 초대의 날, 로비 부인이 언급한 징구.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그 자리에서 묻지 않는다. 그것은 초대된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 이 모임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했을까. 이디스 워튼은 그 시대 상류 여성들의, 그들 자신도 몰랐을 허세와 교만과 거짓 교양을 성공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나는, 그리고 이 책을 읽었을 당신은,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려 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대응한 로비 부인 쪽인가, 아니면 다수의 다른 부인들 쪽인가.

<로마의 열병>이라는 제목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안가는 상태에서 다음 단편을 읽어내려가는데, 어느 새 마지막 줄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예리함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밀은 어느 순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마지막 보루인가. 그렇다면 작품 속 두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잘 사용한 셈이다. 숨기는 것과 드러내는 것의 절묘한 대조는 <징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신랄하고 성공적 비판 의식이다. 그 목표가 된 대상이 당시 상류층 여성이든, 그 사회이든, 아니면 시대를 막론한 인간 보편적 본성이든,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어도 작가의 의도는 혼란없이, 모호하지 않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아쉽게도 문학성 뛰어난 문장 표현으로 감탄을 한 대목은 딱히 없었던 것을 보면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인가? 이디스 워튼의 본격 장편 <순수의 시대>와 <기쁨의 집>을 읽으며 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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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23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의 이 단편집은 재미있지만 좀 가볍다는 느낌을 주죠. 확실히 <순수의 시대>와는 좀 다르고요. 저는 이 책에 실린 네 편중에 <징구>가 재미있었지만, <로마의 열병>이 참 좋았어요. <에이프릴 샤워>는 가장 별로였는데, ‘음 작가의 초기작인가‘ 싶을만큼 그저 소품의 느낌이었고요.

이디스 워튼 이라면, <순수의 시대>도 좋지만, <이선 프롬>으로 다시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제 경우엔 아직 <기쁨의 집>을 사두기만 하고 안읽었어요.

아, 사람들이 자꾸 징구를 읽어서 너무 좋아요. ㅎㅎ

hnine 2019-09-23 13:29   좋아요 0 | URL
지금 보니까 이 책 출판사도 독특하고 얼리퍼플오키드라는 기획도 색다르고 그렇네요. 이 책에 실린 네편의 단편은 누가, 어떻게 선별해서 한 책으로 엮었는지도 궁금해지고요.
<이선 프롬>도 읽어야겠어서 이 책과 관련된 다락방님의 페이퍼 다 읽고 왔어요. 읽은 책과 일상을 연결시켜 글 쓰시는데 탁월하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다락방 2019-09-23 13:10   좋아요 0 | URL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인님. 제가 좋아 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리퍼플오키드 기획의 다른 책은 케이트 쇼팽 이더라고요. 케이트 쇼팽이라면 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지라, 조만간 케이트 쇼팽의 단편집도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이선 프롬 참 좋아요, 나인님. 나인님께 말씀드리고 나니 저도 다시 읽고 싶네요.
아, 오늘 아침만 해도 알라딘 접을까, 떠날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나보디 역시 알라딘만한 데가 없구나 싶고 그러네요 ㅠㅠ

책읽는나무 2019-09-23 17: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왜 떠나실 생각을???
안돼요~~
다락방님으로 인해 알게 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부지런히 읽고, 알려주셔야죠^^

나인님 징구 얘기 읽으러 왔다가 다락방님 댓글에 대댓글 달고 가네요ㅋㅋ
이것도 알라딘이니 가능한??^^
<순수의 시대>,<기쁨의 집> 제목 기억해 두고 있었는데 제목 하나 더 얹고 가네요.<이선 프롬>까지...
저는 며칠 전 아룬다티 로이 책 읽었다고 기록하니 유부만두님이 슬며시 작가의 다른 작품 제목을 알려주시더라구요.
은근 기분 좋았습니다.
언제 읽을지 장담할순 없지만,누군가 책을 추천해 준다는 건 애정받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같이 느껴보고 싶을만큼 상대를 애정하는??
아..너무 앞서 나갔나요??ㅋㅋ
암튼 알라딘이니 가능한 것 같아요^^

hnine 2019-09-24 05: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떠나시다니요 ㅠㅠ 저보다도 더 알라딘에 정 많이 드셨을텐데.
책읽는나무님, 동감입니다. 저도 누가 책 권해주면 참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 좋더라고요. 알라딘에서나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맞고요. 제 친구 중에도 늘 제게 책을 권해달라고 하는 친구가 있는데 제가 알려주는건 거의 구입해서 읽더라고요. 좋은 책 있으면 그 친구부터 떠올려요. 알려줘야겠다 하고요.
덕분에 아룬다티 로이 책 검색해보았어요. ‘작은 것들의 신‘을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제가 알고 있는 책과 혼동했다가 다른 작품인 걸 알았답니다.

syo 2019-09-23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징구 페이퍼/리뷰 중 ‘하하하하하하‘가 등장하지 않는 첫 글인 것 같아요 ㅎㅎㅎㅎ

이디스 워튼으로 들어가는 현관문 같은 책인가봐요!!

hnine 2019-09-23 12:27   좋아요 0 | URL
저는 하하하 라기 보다 ˝소~름˝ 이랬어요. <로마의 열병> 읽으면서는 나도 여자이지만 여자들 참 무섭구나 생각이 들었고 <징구>는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얼굴 없는 허세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허세와 거리가 멀다고 믿으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소~름 !

Falstaff 2019-09-2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디스 워튼, 미국 부르주아 계급 특유의 보수적 속물성이(워튼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그이가 주제로 하는 부류가요)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순수의 시대>니 <기쁨의 집>이니 굉장히 싫어했었거든요. ˝나는 개인적으로 찰스 디킨스 씨와 마크 트웨인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 사람들의 책엔 신사가 등장하지 않거든요.˝ 아주 염병을 하잖아요.
근데 <이선 프롬>을 읽고나서 생각을 조금 바꿨습니다. 내용은 완전 19세기 이야기책 수준인데요,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 가서 휘까닥 돌아버리더군요. 그래 마음을 바꿔 워튼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생각 중인데 좋은 책 소개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hnine 2019-09-24 05:10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고백하자면 그래서 <순수의 시대>를 책도 아니고 영화로 조금 보다 말았어요. 나중에 구입한 전집류에 들어있는데도 두께도 그렇고 얼른 손이 안가게 되었고요.
에필로그 부분에서 휘까닥 돌아버리게 하는건 이디스 워튼의 비장의 무기일까요? 집에 있는 순수의 시대, 기쁨의 집보다 아무래도 <이선 프롬>을 먼저 읽게 될 것 같네요. 그리고 만약 Falstaff님께서 <징구>을 읽으신다면 <이선 프롬>만큼이나 Falstaff님의 그 예리하고 유쾌한 리뷰도 기대가 됩니다.
 
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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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보는 타인의 삶은 평범하고 순탄해보인다.

그러나 타인이 아닌 지인의 관계가 되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편하기만 한 삶은 없나보다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일상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래보였을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50쯤 되는 나이가 되면 사는 것이 타성에 붙을지언정 사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과 갈등은 없을 거라고. 해결되었든지 포기했든지,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안그랬다. 방향만 다를 뿐이지 사는 건 여전히 모르겠고 어렵고 확신이 없었다. 앞으로 남은 날이 더 줄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젊을 때보다 더 조급해지고 막막했다.

글쓴이는 산다는게 고통스러웠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워 과거를 들여다보고 내 발이 닿고 있지 않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고 갈망했다. 지금 여기와 다른 그 평화로운 곳은 어디이고, 그곳에 다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묻고 찾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찾은 곳이 어디일까. 이 책의 제목이 말해준다. 밥 하고 청소하고 빨래 하고 산책하는, 그 사소해보이는 일상 속에 평화가 있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나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온 '한 줌의 평화'앞에서 그것조차 누릴 수 없는 몸과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불안과 긴장에 길들여져 있다. 피해의식과 분노에 익숙하고 늘 초조하고 조급증에 시달린다. 자학과 갈등, 무기력에 오래 길들여져 있다. 삶이 전쟁터니 언제나 아드레날린 과잉 상태로 교감 신경만이 일방적으로 설쳐댄다.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일탈한다.

일탈의 자유, 잠시 오는 해방감의 단맛을 보기 위해 일상을 파괴한다.

평화는 낯선 무엇이다. 전쟁에 길든 몸과 마음은 평화를 지루함이나 권태, 우울로 인식한다.

나의 쓸쓸함과 우울은 평화를 살아보지 못한 자가 치러야 할 당연한 삶의 몫이었다. (73, 74쪽)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불쌍한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욕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거나, 욕망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상태에 이르면 권태로움에 못견뎌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그토록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평화에 이르면 그것을 지루함, 권태, 우울이라며 낯설어하고 벗어나고자 한다.

존재는 사유에 우선한다. 왜 사느냐는 물음 이전에 존재가 있었다. 그러니까 살아야 하는 것은 그 어느 사유의 결과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넌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는 욕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로부터 듣고 자라고, 엄마로부터 안정이 아닌 불안을 배우며 자란 어린 시절은 글쓴이에게 늘 자기 결핍의 원천이었다. 그 지독한 자기 결핍이 내 안의 아귀가 되어 내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것은 어떤 명상 프로그램이나 수행 과정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마음의 문제 뿐 아니라 몸에도 이상이 왔다. 그래서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내 몸을 위하고, 내 몸을 위해 밥을 짓고,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고 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상을 살기가 왜 그리 어려웠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단지 일상이 지루하고 단순 반복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몸의 감각을 잃은 것은 일상을 잃은 것이다.

밥하고 청소하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감각의 리듬, 삶의 느낌을 잃은 것이다.

나는 일상을 모르는 사람, 일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기쁨, 몸의 움직임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삶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일상의 즐거움과 든든함은 없고 일상의 부정적 측면만 있는 사람. 그런 기쁨 없이 고통과 무거움, 견뎌내야만 하는 그 무엇으로 삶을 사는 것이다.

늘 진지하기만 하고 재미없는 삶, 쓸데없이 처절한 삶,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무언지 모르는 삶. 몸을 통해 바라본 나의 삶이었다. (113, 114쪽)

 

저자는 몸의 힘을 보여주는 사람들로 일흔,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을 들었다. 이분들의 힘은 어떤 이론이나 관념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밥해 먹고 농사짓고 자식 기르는 그 일상이 전부인 사람들의 힘, 몸의 힘인 것이다.

일상의 힘. 슬프지만 매일매일 몸을 일으키고 밥을 챙겨먹는다.

 

좌절은 관념적 지식인들에게나 있는 거지 '밀양 할매들'같은 민초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다. 힘들지만 그냥 사는 거다. 밥해 먹다 나가 싸우고 또 밭 매고, 싸우다 울고, 울다가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해 나고, 비 오고, 바람이 불듯이 몸으로 사는 거다. '몸에 쌓인 힘'은 난세를 주파해가는 힘이 된다. (131쪽)

 

천지불인 (天地不仁). 자연은 내 감정이나 상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간이 어떠하든 자연은 제 갈 길을 간다. 자연이 나와 무관하게 변함없다는 사실은 든든하다.

내가 아무리 고통과 슬픔 속에 있어도 자연은 그토록 생기롭다는 사실이 절대적 위로가 된다. 내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 인간의 조건 안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209쪽)

 

세상 모든 것을 볼때 자기 결핍이라는 눈을 통해서 볼때 삶은 괴로움 자체였다. 지독한 자기결핍이 사라지자 아픔이나 분노를 투사해 세상을 보지 않게 되었다. 세상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을 보며 으로 사는 것. 저자는 그렇게 평화를 찾는다. 인간 관계에 갇혀 생각으로 사는 대신 말이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생명을 이어가려는 대전제를 쫓는다. 이어갈까 끝낼까 고민하지 않는다. 인간도 본성적으로 그렇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지리산에서 장마철이면 거대한 나무들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오곤 했다. 그 나무들이 계곡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 경이로웠다. 뿌리 뽑힌 나무가 잎을 틔우고, 다음해 봄에 꽃을 피웠다.

어떤 경우에라도 생명을 생명으로 피워내는 힘, 뿌리가 뽑히고 쓰러져 누웠어도 생명이 다할 때 까지 생명인 그것. 그것이 생명의 '근원적 명랑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노숙을 하며 빌어먹어도 한 끼의 밥을 먹게 하는 힘, 따뜻한 햇살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햇볕을 향해 저절로 몸을 돌리는 그 힘 말이다. (241쪽)

 

저자가 그토록 고민하고 수행하며 찾고자 했던 삶의 의미는 저 너머 밖에 있지 않았다. 밥 먹고 청소하고 빨래를 개는 평범한 일상 자체였다.

 

온갖 관념의 세계를 헤맨 끝에 만난 게 '아무것도 아닌' 세계라는 역설. 그 역설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직관. 그런 것이 글을 시작하게 했다. 그러니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관념에서 구체적인 일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이다. (313쪽)

 

저자의 후기이자 이 책의 요점이다.

 

삶의 의미를 모르겠거든,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거든, 멀리서 답을 구하지 말고 내 일상을 그대로 살아가기를 계속 할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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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8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9-19 05:03   좋아요 0 | URL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그런 소리를 퍼부어야 했던 그 엄마도 그 소리를 듣고 자란 저자의 삶 만큼이나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자의 자기 결핍은 보통 사람의 경우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수가 많을 것 같은데 저자의 경우는 거기서 자유로와질수 있어서 다행이어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댓가로 치르긴 했지만요.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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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재미있는 글일거라는건 짐작하고 읽었다. 김애란인데.

역시 재치있고 매끄러운 문장들.

대중적인 주제들을 대중적이지 않게, 작가의 예리한 어휘로 표현하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아니라, 누구도 한번쯤 생각해봤으나 뭐라고 콕 집어 말로 표현되지 못했거나 아주 평범한 단어로밖에 표현될 수 없던 것들을 딱 맞는 단어와 비유로 버무려 읽는 사람의 공감을 마구 불러 일으키기.

그동안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며 자연히 생겨났을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개인사를 털어놓는 것에 있어서 정도를 넘지 않는 것 쯤은 아는 작가, 영리하고 분별력 있는 작가이다.

한국 문학은 왜 그렇게 다 칙칙한가. 그건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김애란의 소설들이 다른 이들의 소설과 구별되는 점 중 하나라면 칙칙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데뷔 초, 저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너무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루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무거운 사람이 아니지'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고, 스스로 재치에 우쭐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152쪽)

지루한 사람, 무거운 사람이고 싶지 않은 작가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작가라고 해서 진지함이 지나쳐 늘 무겁고 심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구입한 헌책에 쓰여 있는 황진구라는 이름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이야기까지 지어내보다가 급기야는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바꿔달라고 한다. 누구냐는 물음에 고대 후배라고 둘러대기를 서슴치 않는 대목을 읽으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소설가이기 때문일까, 이래서 소설가가 된 것일까.

마치 좋아하는 작가의 일기장을, 죄책감없이 넘겨가며 읽는 느낌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것이 딱 일기장 정도였다는 것일텐데, 무거운 주제의 에세이를 기대하면 안된다. 작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무거운 사람이 아니라고.

또하나. 소설처럼 집중된 노력과 시간에 의해 탄생한 책이 아니라 그동안 여기 저기 부탁받고 써온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라는 것도 조금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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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9-09-14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작가 글은 거의 읽지 않는 게 어느덧 습관처럼 되었는데 그래도 김애란 작가 글은 모두 찾아서 읽는 편입니다. 오랜만에 에세이집이 나왔다고 해서 좋아해서 읽다가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좋아하며 읽다가 어느 순간 시들해져서 뒷부분에 실린 글은 거의 훑듯 읽었어요. 저도 조금 많이 아쉽더라구요.

보물선 2019-09-14 20:07   좋아요 1 | URL
나두 딱 중간까지!

hnine 2019-09-15 22:32   좋아요 1 | URL
그래서 소설가가 산문집을 낼때는 소설가 자신도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네요. 그런 것 보면 하루키 같은 사람은 소설과 에세이 모두 성공을 거둔 사람인 셈이고요.
문장력과 표현력이 좋다는 것에 더해 좋은 산문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통찰력과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니 어려운 일이지요. 우리가 김애란이라는 소설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도 되겠고요.
 
묵상 -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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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관련된 일을 해본 적도 없다. 

나는 또한 카톨릭 신자도,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어느 특정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건축에 관심이 많고 종교에도 관심이 있다. 종교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인간의 역사에 미친 영향, 현재와 미래를 움직이는 힘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가서 빌리러 갔던 다른 책보다 먼저 눈에 띠는 이 책부터 손에 넣었다. 검은 색의 두툼한 책.

건축가 승효상. 알고는 있지만 그가 쓴 책은 아직 한번도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언제: 2018년 6월 26일부터 7월 6일까지, 

누구와: 승효상의 인솔하에 동숭학당 조직원들 스물 여섯 명

어디를: 로마에서 파리까지 2,500여 km에 걸쳐 수도원 순례 루트를 따른다.

 

동숭학당은 2014년 승효상이 만든 강좌 형식의 모임이다. 건축, 미술, 문학, 영화, 음악, 공연, 사회, 역사, 과학 등 학문 전반에 걸쳐 주제를 정하고 적합한 강사를 선정해 1년 단위의 강좌로 운영된다. 주제에 맞는 해외 장소를 택해 열흘 가량 여름 기행도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2014년 주제는 거주, 2015년 주제는 장소, 2016년 주제는 풍경, 2017년 주제는 기억, 2018년 주제가 공간이었고 이에 맞는 여름 기행으로 수도원 기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임옥상, 공지영 등 이름을 보면 알만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다.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일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게 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23쪽)

 

여행스스로 추방당한 자의 순례라고 정의하는 그이다. 모든 걸 객관화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어야 그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진정한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라고 저자는 믿고 있지만 이렇게 그룹으로 가야 하는때가 불가피할 때도 있는 법이다.

여행가기 전에 그가 어떻게 여행을 준비하는지, 막연한 준비가 아니라 얼마나 세부적이고 꼼꼼하게 가는 곳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된 상태로 떠나는지 책의 초입에 나온다. 반성했다. 비행기 티켓 사고 숙소 예약하고 어디 갈지 행선 짜는 것이 준비가 아니었다.

수도원 기행인만큼 로마에서 시작하여 파리에 이르기 까지 들르는 곳은 거의 수도원이고 그 수도원을 숙박 시설로 이용하기도 한다. 유럽에는 이제 수도하는 이들의 숫자가 많지 않아 수도원을 숙박 시설로 전용해서 쓰거나 겸용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기도와 노동에 평생을을 바치는 곳 수도원. 광야의 동굴에서 시작되었다는 수도원은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되면서 공공 장소에서 교회 (모임으로서의 교회)가 필요하게 되자 그리스 건축 형식의 교회건축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8세기에 설립된 베네딕토파의 생 갈렌 수도원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도면에 근거하여 수도원의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해놓았다.

 

수도원에서 가장 핵심적인공간은 네 변을 가진 정원이다. 열주가 있는 회랑, 즉 갤러리가 정원을 둘러싼다. 이 갤러리에 각각 다른 기능의 건물이 접하는데, 한쪽 면에는 성당이 접하고, 성당의 제단과 이어지는 다른 변에는 으레 2층 건물이 붙어 아래층에는 수도원 사무를 보는 공간과 수도 규칙서를 매일 한 장씩 읽는 챕터 룸 (chapter room)이 있고 위층에는 수도사의 숙소가 있다. 숙소는 열린 공간으로 창문마다 개별 침상이 놓이고 그 사이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다. 이렇게 한 방에 여러 수도사가 같이 기거하는 형식의 수도원을 공주 (共住)수도원 이라고 칭한다. 성당의 반대쪽 면에는 식당 (refractory)이 있기 마련이며 나머지 한 변에는 수도원의 물품을 제작하고 공급하는 작업장이 붙는다.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이 네개의 시설이 어떤 수도원이든 가장 핵심적 골격이다. (107쪽)

 

여기 말한 공주 수도원을 '클로이스터 (cloister)' 라고 하는데 '모나스터리 (monastery)'도 수도원이라고 번역되지만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 비로소 이해가 된다. 수도원을 왜 영어로 클로이스터라고도 하고 때로 모나스터리라고도 하는지. 그리고 수도원 건물에 있는 chapter room 이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지.

 

서양 건축의 양식사가 곧 교회 건축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건축 기술의 핵심적 문제는 중력에 저항하는 방법이다. 건축의 기본적 목적이 내부 공간을 얻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붕이 있어야 한다. 중력의 힘 때문에 늘 땅으로 떨어지려 하는 이 지붕을 지지하는 방법에 따라 건축 양식이 바뀐다. 이 양식을 스타일 (style)이라고 부른다. 스타일은 모양이나 장식에 관한 내용이 아닌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이르기까지 1만년이 넘게 벽이 지붕을 지지하는 방식이 이용되었다면 고딕 시대에 이르면 이를 일거에 해결하는데 바로 건물의 외벽에 뼈대처럼 나와 있는 버트레스 (buttress)라는 시설물이 내부 기둥과 보 (flying girder)를 연결시켜주어 전체가 기둥의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123, 124쪽)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으로 이어진 건축 양식은 르네상스, 바로크 , 로코코, 모더니즘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수도원이 있지만 아마도 하이라이트는 프랑스 르 토로네 수도원롱샹 성당이 아닐까 한다. 롱샹 성당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 유명한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쿠튀리에 신부의 부탁으로 1950년 꼬르뷔지에가 롱샹 성당의 설계를 맡았고 한창 지어지고 있던 중 1953년 쿠튀리에 신부는 이어서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설계를 역시 꼬르뷔지에에게 맡기게 되는데 프로방스 소재 르 토로네 수도원을 참조하여 설계해달라고 한다.

쿠튀리에 신부는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설계를 부탁하며 '조용하며 많은 사람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말했고, 프로방스의 르 토로네 수도원을 가보고 그곳에 흐르는 정신을 참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343쪽)

이미 세계적 거장이었던 꼬르뷔지에는 르 토로네 수도원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건축을 가리켜 '진실의 건축'이라고 하며 롱샹 성당의 성취를 버리고 원칙과 질서를 다시 끄집어 내어 라 투레트 수도원의 계획안을 제출한다.

 

 

 

 

 

- 경사로에 세워진 라 투레트 수도원 -

 

 

 

저자인 승효상도 라 트레트 수도원의 건축적 가치와 미학에 대해 강조해 마지 않았지만 아마도 범인의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은 아래의 롱샹 성당일거라는걸 부인하지 않았다.

모더니즘의 창시자며 완성자라고 불렸던 꼬르뷔지에. 기계 미학에 심취하여 직각만이 유일하고 불변한다고 믿었던 그의 건축은 직각의 육면체여야 했었다. 그런 그가 기계 문명이 인간 살육에 지대한 조력자임을 목격하고 직각의 기계를 떠나 원시 동굴 혹은 지중해의 조개처럼 둥글고 휘어진 건물을 설계한 것이다.

 

모더니즘을 창시하기 전인 젊은 시절의 감성으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직관은 후천적으로 획득한 지식의 총합'이며 '감정은 기억된 후천적 지식의 발산물'이라는 그의 말처럼 모든 이성의 최종 목적지가 감성일까. 어떻든, 이 롱샹은 그를 교주처럼 따르던 모더니스트에게는 뼈아픈 배반이어서 그의 변절을 통절히 규탄하는 이들도 있었다. (449쪽)

 

 

 

 

 

 

 

 

 

 

 

 

 

- 롱샹 성당 -

 

 

 

 

 

 

 

 

- 롱샹 성당 내부의 기도실 -

 

 

 

그는 롱샹 성당의 기도실 (↑ 위의 사진) 문을 열고 들어가며 느낀다.

아, 완벽하게 다른 세계 ...도무지 현실이 아니다. (451쪽)

 

어느 새 500여 페이지의 끝장까지 와있었다. 11일 동안의 여정. 내가 실제로 가본 곳은 한 군데도 없는데도 꼬박 이틀 동안 내 손에 있던 이 책을 놓기가 아쉬웠다.

 

이제 이 기행을 끝내는 시간이다. 모두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여행을 마친 사람은 항상 그렇다. 일상의 삶을 살며 알게 모르게 축적된 환상은 거짓이기 쉬워 힘이 없다. 힘은 진실에서 비롯한다. 그 진실은 늘 현장에 있으니, 여행은 이를 마주하는 가장 유효한 기회며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 현실에 복귀할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505쪽)

 

 

건축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설계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수백년 그 자리에 남아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러 오게 만드는 건축물이란 무엇일까.

마지막에 저자는 진리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자기로서는 건축을 수단으로 진리를 찾으려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가 이 책에서 여러번 한 말을 되새긴다.

현장에 진실이 있다는 말.

앞으로 내 여행의 목적으로 삼기로. 내 여행의 이유로 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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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9-1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 쓰신 글.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소설이나 산문 그리고 시도 그렇고 결국 진리를 찾고 싶은 마음에 그런 기록들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 진리란 결국 자신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아닐까도 싶고요. 간단해보이지만, 그 수많은 인류가운데 답에 근접한 사람이 극소수인, 엄청나게 어려운 답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찾고 또 찾고 있는 것은 아닐지요.

hnine 2019-09-11 19:57   좋아요 0 | URL
Nussbaum님의 이 말씀도 생각거리가 되네요.
성경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다는데, 그 말의 의미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어요. 신이 정해놓은 진리의 바운더리 안에서 복종하며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진리가 무엇인지 방황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복종과 진리. 상상도 못해본 관계였어요.

서니데이 2019-09-1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추석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hnine 2019-09-11 19:57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도요~

stella.K 2019-09-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읽으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저자 인터뷰 보고
읽고 싶었는데...
저자가 말한 무슨 수도원 다큐멘터리 필름이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인데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직접 가 봤다고 하더군요.
저자는 원래 신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건축계의 구도자란 생각이 들어요.
추석 잘 보내시길...^^

hnine 2019-09-12 00:0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그 영화 얘기 이 책에도 나와요.
기독교 가정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더래요. 젊은 시절 방황을 많이 했더라고요.
외곬수 타입은 아닌 것 같은게 사회 여러 방면에 인맥 관계를 맺고 있고 그런 교류와 친분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카톨릭과 개신교에 대한 의견도 들어가 있고, 자신은 개신교이지만 불교 사상을 빼놓고 자기 건축을 말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종교간 장벽에 대해 개방적이기도 했어요.
stella님께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초딩 2019-09-1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

hnine 2019-09-12 22:56   좋아요 0 | URL
이제 책상에 앉았네요.
초딩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 서재에 자주 와주시는거 감사드려요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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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가 인류의 과거, <호모 데우스>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21세기와 맞춰서 제목을 정하느라 그랬는지 몰라도 21가지는 꽤 많은 항목이다.

<호모 데우스>에서 미래를 지배하는 두 가지 쌍둥이 개념으로 꼽았던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은 이 책에서도 항목 상관없이 공통적인 키워드로 언급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1. 환멸 : 역사의 끝은 연기되었다.

방향감 상실과 임박한 종말에 따른 불안감은 파괴적 기술 혁신의 가속으로 악화된다.

현존하는 이데올로기는 공통적으로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받게 될 것이다. 

 

2. 일 :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땐 일이 없을지도 몰라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고 믿고 있는 '직관' 조차도 사실은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는 패턴인식에 의한 것이고 보면, AI가 그동안 직관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온 업무에서도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에서 의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전통적인 일자리 다수가 AI로 대체되고 나면 새로운 인간 일자리의 창출로 상쇄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일자리는 모두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높고 비숙련 노동자의 실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거라는 점이다.

인간은 생산자, 소비자, 착취 대상 그 어느것도 아니라 무관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3. 자유 : 빅데이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개인의 느낌과 자유 선택에 대한 자유주의의 믿음은 알고리즘에 귀 기울이기로 대체될 것이다.

 

4. 평등 : 데이터를 가진 자가 미래를 차지한다

모든 부와 권력이  데이터를 가진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일 수 있다.

 

5. 공동체 :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더없이 잘 연결된 지구상에서 더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회적, 정치적 혼란은 이런 불안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 등의 온라인 거인들은 인간을 시청각 동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열 손가락과 화면, 신용카드와 연결된 한 쌍의 눈과 귀를 가진 존재로 본다는 말이다. 인류를 통합하기 위한 결정적인 걸음은 인간에게 몸이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것이다.

 

6. 문명 : 세계에는 하나의 문명이 있을 뿐이다

21세기에 인류가 직면할 큰 도전들은 본질적으로 전 지구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7. 민족주의 : 지구 차원의 문제에는 지구 차원의 해답이 필요하다

핵전쟁 외에도, 인류는 앞으로 수십 년 안에 1964년 정치 레이더망에는 거의 포착되지 않았던 새로운 실존적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바로 생태학적 붕괴다.

인류 공동의 적은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최선의 촉매제다. 인류는 이제 최소한 그런 적수 셋 - 핵전쟁, 기후변화, 기술적 파괴- 을 앞에 두고 있다.

 

8. 종교 : 이제 신이 국가를 섬긴다

종교가 아무리 고리타분해 보여도 약간의 상상력과 재해석을 거치면 최신의 기술 도구와 가장 정교한 근대 제도와도 거의 언제든지 결합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는 별도로 종교적 정체성과 의례에 관한 논쟁이 신기술의 사용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9. 이민 : 더 나은 문화를 찾아서

전통적인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이론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제는 인류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행동경제학자, 그리고 심지어는 뇌과학자들도 인류 문화들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지지하는 데이터를 풍부하게 축적해왔다. 그들의 DNA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일은 드물다. 문제는 이들의 문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10. 테러리즘 : 당황하지 말라

국가는 왜 테러범의 도발에 그토록 민감할까?

오늘날 정부는 국내 현안이나 성폭력에 대해서는 테러를 상대할 때보다 부드럽게 대응할 수 있다. 미투 같은 운동이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강간이 정부의 정당성을 약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11. 전쟁 : 인간의 어리석음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

정복자들이 활개치던 시대에만 해도 전쟁은 손실은 적고 수익은 큰 사업이었다. 그에 반해 핵무기와 사이버 전쟁은 피해는 막대한 반면 수익은 낮은 전쟁술에 해당한다.

오늘날 주요 경제 자산은 밀밭이나 금광, 심지어 유전도 아닌 기술적, 제도적 지식으로 이뤄져 있다. 전쟁으로 지식을 정복할 수는 없다.

 

12. 겸손 : 당신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모든 형태의 겸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신 앞에서의 겸손일 것이다. 사람들은 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춘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을 활용해 신도들 위에 군림한다.

 

13. 신 : 신의 이름을 헛되이 일컫지 말라

어떤 사원도 찾아가지 않고 어떤 신도 믿지 않는 것 역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다.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굳이 신의 이름을 불러들일 필요는 없다. 세속주의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가치를 얻을 수 있다.

 

14. 세속주의 : 당신의 그늘을 인정하라

여기서 그늘은 실수, 맹점을 뜻하고 세속주의는 다른 말로 현세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그늘이 있다. 어떤 신조를 따르든지 불가피한 그늘을 인정하고 "우리에게는 일어날 리 없다"라는 안일한 확신을 피해야 한다.

 

15. 무지 :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

우리는 우리가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는 게 미미한데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든 지식을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 사고에 의존한 덕분에 우리는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지식의 착각 덕분에 스스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불가능한 노력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16. 정의 : 우리의 정의감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극도로 복잡해졌다는 사실이다. 사실을 알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의도와 무관하게 잘못된 일에 연루될 수 있다.

 

17. 탈진실 : 어떤 가짜 뉴스는 영원히 남는다

과학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공적 토론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토론 내용이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 넘어왔을 때에는 주저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 유지를 편드는 것이다.

 

18. 공상과학 소설 : 미래는 영화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오늘날 과학 기술 혁명의 결과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진정한 개인과 진짜 현실이 알고리즘과 티브이 카메라에 의해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자체가 신화라는 것이다. 매트릭스를 탈출했을 때 발견하게 되는 것은 더 큰 매트릭스일 뿐이다.

자아를 규정하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생존 기술이 될 수도 있다.

 

19. 교육 :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변한다는 것만큼은 유일하게 확실한 미래의 진실이다.

 

20. 의미 :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시대가 되어 이런 개인의 신화 제조 과정을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완벽한 자아를 구축하고 장식하는 데 무수한 시간을 쏟는 가운데, 점점 자신의 창작물에 고착돼가고 자신의 실체와 그것을 착각하는 것을 보면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두렵다. 우리가 실제로 경허험는 것의 99퍼센트는 자아의 이야기에서 누락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은, 당신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21. 명상 : 오직 관찰하라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읽그면서 나 같은 범인은 더 나은 오늘이 가능하기는 할까 자꾸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꽤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했는데 나는 거기엔 해당하지 않는가보다. 이미 소수 엘리트 층에 지식과 결정권이 집중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 위의 내용들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당면한 문제들이니까.

 

부피는 꽤 되어 보이지만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 있지 않아서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읽어보길 권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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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9-10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셨군요!

그의 책 <사피엔스>가 잘 나가다 갑자기 마지막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좀 갸우뚱했는데 그의 인류 3부작 가운데 나머지를 읽으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세월탓인지, 나이탓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건지, 20대보다는 확실히 내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책의 내용은 디스토피아인데 책에서 말하는 어조는 꼭 디스토피아가 아닌, 뭔가 희망적인 느낌을 받게 되네요.
찬반이 많겠지만 저도 이 책은 좀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hnine 2019-09-11 04:37   좋아요 1 | URL
앞서 나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읽고 난 후여서 그런지 이 책은 생각보다 빨리 읽히기도 했고 두 책의 내용이 중복된 것 같기도 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역시 유발 하라리라고 감탄하며 읽었어요. 전 감히 천재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