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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솔 벨로에 대해 어떤 말로 시작해야 아, 그 작가구나 하고 금방 떠올릴까. 197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라는 것이 아마도 그의 생애 중 가장 큰 경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1915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열살이 되기 전 미국으로 이주해온 유대계 출신이다. 20대 대학생 시절 부터 작가로서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26세때 첫 단편을 발표하였고 그 이후로 단편, 장편 소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38세때 잘 알려진 그의 장편 소설 <오기 마치의 모험>을 출간하여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였고 (1953년) 41세때 이 소설 <오늘을 잡아라>를 출간하였다 (1956년). 197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오늘을 잡아라>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우리 시대 고전 중 하나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영어로 'Seize the day' 가 이 책의 원제이다. 

주인공 토미 윌헬름은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남자.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지만 직업을 잃고 아내로부터도 버림받아 호텔에 거주하고 있다. 젊었을 한때 배우가 되기 위해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할리우드 행을 하기도 했던 윌헬름은 그때 자기의 이름도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토미 윌헬름이라고 바꿔버린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는 배우로서 데뷰하지 못한다.


"자네에게는 조지 래프트나 윌리엄 파월 같은 타입한테 여자를 빼앗기는 역할이 딱 맞아. 너무 착실하고 성실해서 여자들한테 차이는 거지. 나이 든 여자들은 잘 알 걸세. 아줌마들이 다 자네 편이라고. 그들은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자기들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당장에 자네를 선택할 거야. 자네가 정이 많다는 건 젊은 여자들도 느낌으로 알 걸세. 자네는 좋은 가장이 될 타입이야. 하지만 여자들은 다른 타입을 더 좋아한단 말이지." (39쪽)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담당자가 그에게 해준 말이기도 하고, 윌헬름의 인상과 외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평가에 무척 실망한 윌헬름은 결국 배우의 꿈을 접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지만 대학으로 복학도 못했고, 다니던 직장에서마저 버림받아 경제력을 잃게 되었으며 아내로부터 쫓겨나 집도 없어지자 해결책을 찾기 까지 호텔에 머물게 된 것이다.

이 호텔에는 역시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주인공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가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버지하고도 갈등만 많을 뿐 사이가 좋지 못하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의 노후 영위를 제일 중요한 일로 여기는 사람이라서 경제적인 도움을 구하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윌헬름은 마지막 가진 돈을 털어 주식에 투자하게 되고 초조하게 주식이 오르기를 기대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주식 투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윌헬름을 그렇게 이끈 사람은 같은 호텔에 거주하며 의사라고 하지만 진짜 의사 맞는지 의심받을만한 탬킨 박사. 주식 뿐 아니라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윌헬름을 가르치려드는 현실교사 (reality instructor)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사실 이 작품 속에서 끝까지 제일 파악이 안되는 인물은 주인공 윌헬름보다도 이 탬킨 박사라는 사람이다. 그와 윌헬름과의 대화는 이 책에서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데 특히 책의100쪽을 넘어가서 4장 내내 이어지는 탬킨 박사의 헛소리 같기도 하고 진심을 담은 소리 같기도 한 말은 작품 속 윌헬름이 그랬듯이 책을 읽는 사람 역시 내가 왜 이런 헛소리를 계속 이해하려고 애쓰며 읽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결국은 윌헬름에게 빌린 투자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탬킨의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확고하지 못하고 현실을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윌헬름은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탬킨 박사가 그 대상이었고 아버지 역시 그런 대상이었다. 그는 실패와 위축의 감정과 평행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허영심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 허영심을 채워줄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현실의 자기는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운 짐일 뿐이다. 생존 경쟁에서 존재를 찾기 어려운 자아 그 자체가 그에게 인생의 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자아가 인생의 짐이 될때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아버지가 탬킨 박사를 조심하라고 계속 충고했고 주식 투자가 실패의 길로 치닫고 있음이 본인 눈으로도 확인이 되는 단계까지 이르러 그의 조바심은 극도에 달하여 탬킨 박사를 다그치는 내용이 나온다. 그 결과 과연 뭐가 달라지긴 할까 반신반의하며 읽어가는데, 어이없게도 윌헬름은 조바심으로 다그치는 것이 그가 한 일의 전부일뿐 끝까지 변명과 헛된 희망을 늘어놓는 탬킨 박사의 말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그는 바라는대로 믿고 싶어하는 안일함의 소유자인 것이다.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거대 도시, 그 도시가 돌아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이 곧 자기를 억압하는 상황. 이런 것들에 적응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가는데서 오는 실패감과 소외감. 작가 솔 벨로가 작품 속에서 그리는 주인공들은 주로 이런 인간형이라고 한다. 사회로부터의 소외감보다 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이었다. 작품 속에서 윌헬름은 아버지로부터, 아내로부터 소외당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그의 불행을 자초한 것은 자신의 허약함과 실패, 고통을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의지함으로써 잊어버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 해결되었다고 믿고 싶은 착각이고, 언젠가 다시 불거질 씨앗임에도 정면돌파하려는 용기와 주관을 포기하고 안일함을 택한 댓가이다. 이럴 때 탬킨 박사와 같은 존재가 주위에 얼마나 흔하게 존재하는가. 사깃군인지 조력자인지 끝까지 정체를 모르겠는 그런 존재 말이다.

이 작품 속에서만 해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보다, 주위에 맴돌고 있는 탬킨 박사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들의 말을 듣고 따라하는 것이 훨씬 쉽다.


"나는 사회적 영향들을 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멀리 떼어놓지. 특히 돈으로부터 말이야. 정신적 보상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114쪽)


위의 인용문은 현실 교사를 자처하고 탬킨이 윌헬름에게 하는 말이다. 현실 교사로서가 아니라 윌헬름에게 빌린 돈을 떼어먹으려고 하는 변명임을 윌헬름은 간파하지 못한다. 아니 간파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이유는, 그러면 그 다음 과정이 머리아파지기 때문이고 혼자 미래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변명임이 뻔함에도 저렇게 그럴듯한 문장으로 구사하는 탬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탬킨의 말대로 오늘을 잡는 방식일까. 오늘을 잃어버리고 헛되이 하는 방식 아니고?

모든 것이 끝난 뒤 윌헬름이 현실, 현재를 목도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장례식, 그것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관 속의 시신을 보고 난 후이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몰랐다. 그가 왜 그렇게 오열하는지.


작가 솔 벨로의 일대기를 보면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 즉 소외되고 고통받는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작가의 생애에서는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는다. 유태인이라는 것 정도? 물론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그의 전기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일단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 중 한명이고 발표한 작품의 수가 많고 장르가 다양한 이상 그에 대해 더 뭔가를 말할 수 있으려면 더 넓고 깊게 그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2005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까지 다섯번의 결혼을 했다는 경력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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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10-2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대인이 쓴 어떤 책을 읽어보니까 미국 문학계에서 솔 벨로우, 필립 로스, 노먼 메일러 등 유대인 작가들은 유대인 자본가, 출판사에 의하여 과대포장 되어 있으며 그건 유대인에 의한 문학권력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더라고요.
전 <오기 마치의 모험>이 왜 그다지 각광을 받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게 내용이 동양인에게 낯선 것인지 번역과정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오늘을 잡아라>와 다른 작품들은 상당히 좋게 읽었습니다만.
절판된 작품의 멋있는 리뷰를 읽게되어 길 가다 만원 주운 느낌입니다.

hnine 2019-10-25 06:56   좋아요 1 | URL
유태인의 연대의식이란 어느 분야에서나 한 역할 하나봅니다. 유태인들 자신도 부정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요.
한 가지를 알고 나면 열가지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긴다더니,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 작품을 읽고 나면 더 읽고 싶은 책이 몇 권씩 불어나요. 이번 경우엔<오기 마치의 모험>과 <허조그> 가 그렇습니다. 즐거운 비명이지요.
다른분도 아니고 Falstaff님의 댓글 받고 나니 저는 복권 담청된 기분인걸요.

뒷북소녀 2019-11-0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저는 이 책을 이미 소장하고 있는데도...
이 책 절판 소식 듣고 안타깝더라구요. 곧 다른 출판사에서 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요...

hnine 2019-11-05 21:31   좋아요 0 | URL
충분히 계속 출간될만한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절판되었다는게 좀 이해가 안되었어요.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이고 워낙 빨리 변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만은 안그래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어요.
말씀하신대로 아마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긴 나오리라 믿어야지요.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 힘껏 굴러가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
최필조 지음 / 알파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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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자꾸 자기를 한번 봐달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말할 수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진기를 누구나 손에 늘 들고 다니는 요즘 사진 찍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라기 보다 일상이 되었다. 사진이 기록을 대신 하여 사용되는 일이 대부분일지라도, 특별한 느낌과 감동, 깨우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사진 찍을 때가 여전히 있노라고 이 책 저자는 일깨워주는 듯하다.





내 또래덜은 어릴 적에는

병으로 그렇게 죽더니

스무 살 넘어서는 전쟁통에

또 반은 죽었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여

나부더 세 발 앞서간 놈은 죽고

난 살더라니까



그럼! 오래 살아야지

그놈들 몫까지



- 내가 아흔이네 -  (29쪽)



이것은 저자의 말은 아니고 사진 찍기 위해 취재한 아흔 노인의 지나가는 말이다. 아흔을 살아온 노인의 말은 일부러 꾸미고 지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이렇게 마음에 쑥 들어온다. 



아내는 나이가 들수록 강해진다.

그건 호르몬 때문이 아니다.

남편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 아, 어여와! - (25쪽)



남편이 약해질때 호르몬 때문이든 무엇때문이든 아내를 강해지게 만든 자연의 섭리가 무서울 뿐이다.

견디고 살아온 세월이 준 그 강함은 축복일까, 마지막 관문일까.


아쉬운 것은 사진보다 오히려 글이 더 감동적인 페이지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사진들은 의외로 평범했다.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담았을지언정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다른 작가들의 사진과는 다른 개성과 인성이 드러나는 독창적인 사진을 기대했나보다. 

뒷모습, 손, 밤골, 길 위에서, 이렇게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손을 찍은 사진에서 33, 34쪽의 손은 무엇을 하고 있는 손인지 잘 드러나지 않거나 어중간하게 잘려 있어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홍시를 들고 있는 사진에서는 홍시만 칼라로 처리한 것이 주제인 손의 이미지를 누르는 결과를 낳아 손이라는 애초의 의도를 모호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함께 실려 있는 글은 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빠진 이와 맛에 대한 것이라 더 그랬다.


평범하지도 못할 정도로 더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의 사진을 찍어온, 이제는 작고한 최민식 사진 작가의 사진들이 자꾸 떠올랐다. 사진을 보노라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새 눈물이 나게하는 사진들을 보며 그야말로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전달되는 감동으로 마음이 꽉 차오르던 사진들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면서도 사진 찍기를 그 무엇보다 즐기고 좋아하시는 최필조님의 사진집은 여기서 그칠 것 같지 않은데, 본인만이 담을 수 있는 사진들을 많이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면서 이전의 다른 사진 작가의 사진들을 떠올릴 틈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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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1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 최면 / 아내의 편지 / 라일락 / 데지레의 아기 / 바이유 너머 얼리퍼플오키드 1
케이트 쇼팽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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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연상시키는, 짧은 소설 모음집이다. 소설이라고 해야할지 꽁트라고 해야할지, 여섯 편의 글이 묶여 있는, 책도 아주 얇은 편이다.

케이트 쇼팽은 1850년 미국 태생으로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조모, 증조모, 유모 등 여성들의 손에 주로 자랐다고 한다. 18세까지 학교를 다녔고 바로 사업을 하는 남자와 결혼 하여 여섯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빚더미를 남긴 채 남편이 세상을 뜬 후 (그녀 나이 32세때) 직접 잡화점 경영과 농장 경영을 맡아 하기도 했다. 글쓰기는 케이트 쇼팽의 우울증을 치료하던 의사의 권유로 시작하였고 1892년 그녀 나이 42세부터 여러 장르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로 글쓰기는 그녀의 주 수입원이자 정신적 도피처가 되었다고 한다. 주로 단편소설에 집중하여 100여편의 단편과 두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는데 1899년에 발표한 장편 <각성 (The Awakening)>은 발표 당시 문제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대표작으로 알려져있다. 말년에 건강이 나빠졌고 1904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 자신이 직접 여성 운동에 가담했거나 페미니즘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것은 아님에도 그녀를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라고 하는 것은 그녀가 죽고 한참 지나 비평가들이 그녀의 작품을 재해석 하면서부터이다.

여기 실린 여섯 작품 중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책 제목이 되기도 한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짧은 분량에서 기대하지 않던 반전과 충격으로 흥미를 주는 작품이다. 자유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한다.

이어지는 <최면>은 비교적 평범한 내용으로 최면술마저 이기는 진정한 사랑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내의 편지>도 이야기의 소재는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숨겨논 남자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남편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난 여자. 그리고 이런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고나서 고민하는 남편.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뇌는 산 자의 몫이된다.

<라일락>은 다 읽고 나서도 확실하게 내용 파악이 안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 오묘한 기분이란.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던 작가의 섬세함을 다시 헤아려 보게 된다.

<데지레의 아기>는 관습이 가져오는 무지몽매함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희생이 되는 것은 여성뿐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결국 남성도 그 피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 그 남성을 보듬어 안는 것은 역시 여성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바이유 너머>의 바이유는 저자가 실제 살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바이유는 우리 스스로 쳐 놓은 정신적 울타리, 장벽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트라우마의 장벽을 부수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것이 핵심.

 

글쎄, 세간에 알려진대로 그녀를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봐야할지, 페미니즘에 국한시키기보다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사회성 소설을 썼다고 해야할지 아직 이 책만 읽어서는 모르겠다. 그녀의 대표작이며 발표 당시 문제작이라고 말이 많았다는 <각성>이라도 읽어봐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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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1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awakening 은 저는 국내 번역본으로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 으로 읽었어요. 그거 읽고 너무 좋아서 케이트 쇼팽 이란 이름을 기억해뒀죠. 지금도 아직 안읽었지만 최근에 나온 단편집 하나를 사두고 있어요.

저도 징구 읽고나서 이 책도 읽어봐야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인님 벌써 읽으셨군요!

나인님의 리뷰를 읽고나서야 케이트 쇼팽에 대해 알게 되는 게 생기네요. 단편을 100여편이나 썼다는 것,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이요.


딱히 페미니즘 작가다, 라든가 페미니즘 정신을 담았다, 라고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료 여성들의 마음속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꿈틀거리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는채로, 심지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는 여자들의 마음 속에도, ‘이건 이상하다, 부당하다, 차별이다‘라는 감각이 있는거죠. 그걸 깨닫고나서 나는 페미니스트다, 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페미니스트에 두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적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요. 차별을 인식하고 고정화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깨부수고자 하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적인것 같아요.


아, 저도 얼른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사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도요! 세상에 읽을 책이 많아서 좋으면서 싫으네요. 언제 다 읽죠? ㅜㅜ

hnine 2019-10-16 15:01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에 대한 말씀 저도 동의해요. 오히려 그 말에 대해 색안경 쓰고 선입견 갖고 벽부터 치고 나오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불편해요.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책 읽고서 혼란에 빠지면서도 여기 저기 퍼뜨리고 추천하고 다니던 때가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네요. 여대는 특히 입학하면 이쪽 분야 책을 많이 추천받기도 하니까 대학 입학하면서 부터 책으로나마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몸으로 부딪혀 겪는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푸른사상에서 나온 책을 말씀하신다면 이 책은 따로 구입 안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 여기 실린 여섯 편 중 세 편이 그 중에 포함되어 있거든요. 저도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네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에 훨씬 많은 작품이 실려 있기 때문에 저는 사서 볼까 생각중이랍니다.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이 더 읽어보고 싶지만요.
케이트 쇼팽의 이 책은 제가 징구를 읽고 올린 리뷰에 다락방님 댓글 보고 찾아 읽게 된것이랍니다. 제가 아는 작가 리스트에 한 사람 더 보태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9-10-1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푸른사상에서 나온 책 맞아요. 그거 가지고 있어요. 오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 책은 안사고 패쓰하겠습니다. 후훗.

유부만두 2021-01-10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의 다른 두 권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흠.... 이건 일단 보류해 두겠습니다.
 
구멍투성이 과학 - 지금 이 순간 과학자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진짜 과학 이야기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김아림 옮김 / 리얼부커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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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일까. 탐구하는 방법이다. 사실을 입증하여 보편타당성을 보이기 위한 방법이다.

저자인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은 컬럼비아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서 대중의 과학적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에 관련된 활동을 해오며 연구실에서 알아낸 실험적 결과뿐 아니라 과학의 본질에 대한 것, 과학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강연과 저술을 해오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번역한 분 역시 생물학을 전공하신 분. 읽기 전 부터 신뢰가 갔는데 과연. 유익한 내용이 술술 읽히기 까지 하니 더 바랄게 없는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리말 제목은 <구멍투성이 과학>이라고 되어 있지만 원제는  Failure. Why science is so successful. 우리 말 제목에 비해 다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제목이다. '구멍'이란 'failure', 즉 '실패'를 말하는 것으로 구멍투성이 과학이란 제목은 실패가 과학에서 갖는 특별한 의미를 뜻한다.

혹자는 과학적으로 얻어진 결과라면 실패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종교적인 믿음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실패나 오류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부터 놓아야한다. 물론 실패를 목적으로 하진 않지만 내가 지금 얻은 이 결과도 맞지 않을 상황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상황에 대한 연구와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어야 한다는 자세, 그런 자세가 과학적인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저자는 실패는 생각보다 폭넓고 심오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패는 성공의 일부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첫째, 실패는 더 큰 통찰을 이끌어 내고, 둘째, 거의 예측 불가능한 영감을 주고, 세째, 우리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실패 없이 곧바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우리가 들을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며 쓸 만한 조언도 갖고 있지 않다.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험을 통해 가설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면, 여러분은 측정을 한 데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설을 증명하는 데 실패하면 여러분은 뭔가 발견을 한 것이다."

과학분야에서는 실패를 해도 잘 삼키고 소화해야 할 뿐 아니라 실패 자체를 즐겁게 맛보는 일도 필요하다. (36쪽)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예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을 말하지 부주의나 경험 부족으로 생기는 '실수'와는 구별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특히 과학분야에서 실패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격려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내용이 책의 중반을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나온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163쪽)

과학에서 창의성은 실패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과학의 과정이란 그래야하는데 문제는 요즘의 연구는 실패할 만한 것을 피해서 접근하고 시도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고 그것은 현장에 있는 많은 과학자들도 느끼고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는 연구계획서를 내야하고 누구에게 연구비가 돌아가느냐 결정되는데는 경쟁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 계획서를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한 결과를 논문으로 내지는 않는다. 예상하던 결과가 예상하던 원리에 의해 얻어졌을 때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게 되고 연구 실적은 곧 논문 편수와 논문의 질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순수한 연구에 대한 열정은 식고, 경쟁력과 목적을 달성해야겠다는 의욕만 활활 타오르는 현장이 되어있다.

결과를 보는 자세도 중요하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는 늘 객관적인 해석이 따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게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원하는 결과만 수집하게 하기도 한다.

물리학자 파인만은 과학의 실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번째 원칙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187쪽)

과학자의 태도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일지 몰라도 '정직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직성의 대상은 다름 아닌 연구자 자신이라는 것도.

과학이라면 갖춰야 할 요건중에 fallibility 라는 것이 있다. 반증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과학을 신뢰한 만한 이유는 바로 과학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을 설정하려면 해당 가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기각할 수 있는 실험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가설을 확실하게 반증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만한 가설이 아닌 것이다. 가설이란 부정적인 시험 결과를 허용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설이 틀려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틀릴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을 과학이게 하는 "반증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실패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제는 틀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라마르크 유전학도 최근에 후성유전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귀환한 예를 들면서 저자는 실패가 영원히 실패일까 묻고 있다.

최근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과학자들이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특이한 아이디어를 감당할 여력이 없이 좁은 길만 계속 고수한다고 한다. 인류가 20세기와 그 이전에 이뤘던 위대한 과학의 진보는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있었고 이들에게 연구의 가치나 쓸모를 성급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과 매우 대조적인 환경이다. 그래서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이고 어쩌면 과도한 인력이 과학이란 분야에 매달려 있음에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과학적 방법론이 무엇인지 다시 강조하며 맺는다.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이란 의심과 불확실성, 무지, 실패를 폐기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끌어안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은 단순한 사실들의 집적이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며 명사가 아닌 동사로 여기는, 즉 계속 진행되어 가는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 복제가 거론되는 세상이면 뭐하나. 그것이 과학이 아니고 기술에 불과하다면. 근본이 망각된 첨예화된 기술에 불과하다면. 근본을 무시하고 오래, 멀리 가는 것이 있던가.

오랜만에 과학에 관한 후련한 에세이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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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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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인가 보다 작가 소개에 먼저 눈길이 간 책이었다.

델리아 오언스. 평생 동물행동학을 연구해온 학자였던 그녀가 2018년, 70대에 이르러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그리고 아마존, 뉴욕타임스 등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30주 이상 머무르며 인기 몰이를 하더니 2019년 3월엔 밀리언 셀러에 등극하였고 현재는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망라하면 250만부를 넘어섰다고 한다.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격찬이 인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직접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평소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이 소설을 번역한 김선형 번역가가 초대되어 이 책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듣던 날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놓기 힘들게 가독성이 있다는 것 (잔잔하고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문장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것, 시가 많이 인용되어 번역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것, 그러면서 대중의 마음에 꽂히게 하는 그 무엇, 독자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도움이 될만한, 베스트셀러들이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 그 요소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전 정보를 가지고서 구입하여 읽고난 소감은, 이런 정보들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습지 마을. 엄마, 아빠, 언니 둘, 오빠 둘과 살고 있는 어린 소녀 카야의 이야기의 시작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무차별적 폭력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엄마, 언니, 오빠 차례로 집을 떠나고, 다만 너무 어려 떠나지 못해 남은 카야는 아버지 눈을 피해다니며 스스로 먹고 사는 법을 배우며 버틴다. 그런 아버지 마저 집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되자 바닷가에서 홍합을 주워다 마을 상점에 갖다주고 먹을 거리를 얻어오고 습지와 조개, 새들을 친구 삼으며 혼자 사는데 길들여 간다. 말을 할 상대도 없고 말을 들어줄 상대도 없으니 점차 더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고 학교는 하루 나가고 말았을 뿐이다. 행색마저 이상한 카야가 동네에서 가끔 눈에 띨라치면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마시걸이라고 조롱하며 이상하게 볼 뿐이다. 사람대신에 카야에게는 지는 해, 바람, 비, 구름, 물결치는 바다, 새들의 움직임, 소리, 개구리, 반딧불이, 풀숲. 이런 자연 그 자체가 전부였고 그녀의 세상이었다.

다른 생물들도 그러하듯이 사람도 이렇게 계속 혼자 외로움 속에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혹시나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며 고립 생활이 일상이 된 카야 앞에 어느 날 테이트라는 소년이 나타난다. 길을 잃어 도움을 주게 된 것이 시작이 되어 서로 새의 깃털을 교환하고 테이트가 카야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며 친해지게 되는데, 테이트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이 소설은 외로운 한 소녀의 성장 소설, 러브 스토리인가보다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소설의 시작 부분은 엄연히 마을의 한 남자가 소방망루 아래 떨어진 채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이었으니 범죄 소설, 미스터리 소설일 수도 있다. 이 죽음에 대한 해답은 소설의 맨 마지막에 이를때까지도 알 수 없게 쓰여 있으니 가독성이 있을 수 밖에.

 

제목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대한 유래는 책 속 몇 군데에서 언급되고 있다. 다음은 테이트와 카야의 대화에서 언급된 대목이다.

"저기 어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누군지 몰라도 카야를 데리고 가서 키워야 하는 사람들 참 안됐다." 테이트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속 같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140쪽)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곳, 즉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이용되고 있는 자연이 아니라 그대로 존재하는 자연.

다 읽은 후 youtube에서 델리아 오언스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캐나다 국경에 가까운 아이다호 자연 속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녀는 제목에 대해 책 속에 언급한 것 처럼 실제로 그녀가 어릴때 엄마가 그녀를 숲속에 산책을 데리고 가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독려하기 위해 하던 말이라고 한다. "Listen to what those woods had to say." 너와 자연 밖엔 없는 그런 곳까지 스스로 멀리 가보면 가재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거라고.

첫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그녀가 끄적거려온 종이들로 꽉 차 있는 커다란 상자를 인터뷰 도중 보여주는 그녀는 좋은 문장이나 표현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해놓았다고 한다.

 

그녀는 영리하다. 그녀의 어린 시절, 자연과 생물에 대한 사랑, 그것에 쏟아부어온 동물생태학자로서의 일생을 이 소설 속에 하나로 이렇게 잘 버무려 놓을 수 있다니.

외로움과 고립은 견뎌야 할 상태일지 몰라도 자연스런 상태는 아니다. 누구든 언젠가는 헤어나오고 싶어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며 상태이다. 이 소설 속에서 카야가 어떻게 그것을 헤쳐나오는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벗어나오는 과정과 방법이 궁금하지 않을지.

 

나는 살아있는 동안 가재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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