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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4 - 중세 문명과 미술 : 지상에 천국을 훔쳐오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4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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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4 중세문명과 미술

지상에 천국을 훔쳐오다

 

미술이야기 5 (르네상스)를 먼저 읽었고 다음으로 미술이야기 3 (그리스 로마 문화), 그리고 미술이야기 4 중세문명과 미술편을 읽었다.

역사를 모르고 미술을 이야기하기란 화학을 모르고 생명현상 설명하기, 수학을 모르고 물리 공식 이해하기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새삼스런 이야기가 되겠으나 이번 4권은 특히 더 그런 것이, 제목은 미술이야기라면서 책의 중반 정도에 이르기까지 그림보다 지도와 연표가 더 많이 등장하는 듯 싶었고 미술사가 아니라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중세에 해당하는 11세기에서 13세기, 서기 1000년 부터 1300년 까지의 미술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더 된 먼 먼 그 옛날. 그때의 사람들은 없지만 그때의 건축이 남아있고 조각이 남아있고 기록이 남아있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간다.

앞권에서 그리스 로마 문명이 자체적으로 발생되어서 오늘날 모든 문명의 시발점이 된 것은 아니라고 저자가 강조했던 바 있다. 그리스 문명 이전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문명이 있었고 분명 이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문명이 발생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유럽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문화 선진 지역은 아니었고 중세 시기에 십자군 원정길을 따라 들어온 비잔티움과 동방의 화려한 미술이 유럽 미술이 새롭게 도약하는데 큰 자극이 되었음을 서론부터 밝히고 들어간다. 양식으로 말하자면 중세는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시대인데, 순례 열풍을 타고 순례자들이 오고간 길을 따라 발달한 마을과 도시에 새롭게 교회가 세워졌고 이렇게 고대 로마 이후 잠잠했던 미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면, 동방의 화려한 시각세계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변신한 미술 양식을 고딕이라고 부른다.

 

1. 로마네스크 양식

 

 

이 시기에 순례 열풍이 불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순례는 일종의 속죄 여행으로서, 중세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가려면 죽기 전에 일생 동안 저지른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었고 성지 순례를 확실한 참회의 방법으로 삼았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형성된 것도 이 시대이다. 예수가 죽음을 당한 예루살렘까지의 길은 너무 멀고 험하니까 예수의 제자나 성물이 발견된 곳까지를 순례의 목적지로 하였고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묻힌 산티아고는 그런 순례길 중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길이 생기고, 길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어가면 그곳에 대규모 성당을 세웠다. 이렇게 새로운 건축 붐이 일면서 고대 로마의 양식을 따라했는데 이런 양식을 로마식, 로마풍이라는 의미로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부른다.

로마네스크 양식 = 고대 로마풍 양식 + 기독교 사상

당시 지어진 성당에는 순례객을 배려하는 원형 회랑과 소형 예배당 등이 마련되었고, 아치를 많이 활용한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두꺼운 벽, 아치형 기둥, 십자가형 건축 구조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당의 내부에는 많은 조각들로 채워져 있는데 중세 미술에서 조각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일화와 기독교 교리를 내용으로 하여 신앙심의 표현, 기독교 교리에 근거한 교훈적인 메시지의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2. 노르만 미술

 

유럽의 역사에 있어서 이 시기는 바이킹의 세력이 급부상한 시기이기도 하다. 바이킹은 원래 유럽의 최북단인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덴마크 지역에 퍼져 살던 민족인 노르만족을 말하는데, 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이래로 유럽 대륙을 차츰 정복해나가서 10세기가 되면 영국을 정복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정복지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흡수하고 받아들여 독특한 노르만 미술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즉 업그레이드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탁월한 군사력과 열정적 신앙심, 개방성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던 노르만 민족은 유럽 대륙내에서 여러 문화를 엮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였고 이로써 중세 유럽 문화의 선구자 역할을 한 셈이다. 예를 들어 피사 대성당 (1063-13세기, 피사)은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과 이탈리아 반도 고유의 미술 전통이 혼합된 건축물이며, 산 마르코 대성당 (1063-1094, 베네치아)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11-13세기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비잔티움 제국으로 대표되는 동방의 선진 문물이 서유럽으로 유입되는 계기가 된다. 십자군의 집결지였던 지역이 물자와 인구의 집중으로 인해 도시로 발전하여 고딕 양식이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피사와 베네치아는 그 대표적인 도시이며 피사 대성당은 훗날 르네상스 양식으로 발전하며,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3. 고딕 미술

 

고딕 양식의 생일이라고 말하는 1144년 6월 11일은 파리 인근에 위치한 도시 생드니의 수도원에서 새 성당의 완공을 축하하는 의식이 거행된 날이다. 높은 천장, 첨두 아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성스러운 음향효과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생드니 수도원의 건축 양식은 후에 노트르담 대성당, 생트 샤펠 등의 건축으로 이어지고 고딕 양식의 효시가 되었다.

사실 고딕은 단일 요인에 의해서라기 보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탄생한 양식이다.

사회적 요인     도시 발달, 시민 의식 형성

경제적 요인     부의 축적, 집약된 노동력

문화적 요인     신앙심, 지역에 대한 자부심

 

첨두 아치 (끝이 뾰족한 아치. cf.  끝이 둥근 아치는 로마네스크 양식), 늑골 궁륭 (갈비뼈 구조의 둥근 천장), 플라잉 버트레스 (공중 부벽)는 오늘날 고딕의 3요소로 불린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고딕 양식이 중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천년이 지난 지금 현대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현대 건축물들은 고딕 양식의 모티브와 건축 방식등을 차용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만 해도 일부 대학의 본관 건물, 명동 성당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하늘에 가까이, 더 가까이 뾰족하게 위엄을 세우고 싶었던 고딕 양식 건축물은 그래서인지 소실되거나 무너져 내린 곳도 많다.

앞으로 이런 곳들을 방문하게 되면 과연 지금 책에서 읽은 이 내용들이 십분의 일이라도 떠오를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볼 수 있을 만큼 알아가지고 가라는 뜻 아닌가.

이 책 제목 위에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이라는 말은 틀렸다. 한번 공부해서 될 내용들이 아니다. 한번 읽어도 이해가 잘 되도록 쓰여진 책이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5권까지 나온 책들중 지금까지 세권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앞으로 읽을 책은 물론, 읽은 세권도 구입해서 소장해야하나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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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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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소재, 주제로 한 책이 어디 한두권이냐 싶어 이 책의 인기를 보면서도 읽을까 말까 상태로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읽었다. <미술이야기> 같은 책을 줄 치고 메모해가며 읽고 난 후라서 더더욱, 휙휙 책장 넘겨가며 읽는 재미를 이 책이 충분히 안겨주었다. 그리고도 헛읽었다는 여운을 남기지 않으니, 읽기를 잘 한 것이다.

예상하던 내용도 있고 예상하지 않았던 발견도 있었다.

예상하던 내용은 걷기가 주는 덕에 대한 것이다. 내 일기장 한 구석에 적혀 있는 말, "걷는데 힌트가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예상했던 내용이란 내가 일기장에 적어놓은 그 힌트라는 것과 관련있을 것이다. 두 다리를 계속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그 반복 행위는 힘이 남을 때 하는게 아니라 힘이 들때 할 수도 있다는 것. 근래에는 마음이 힘들때는 물론이고 몸이 힘들때, 특히 몸 어딘가 무겁고 뭉쳐있는 느낌이 들때도 오히려 걸어줌으로써 뭉친곳을 풀어주고 무거움을 덜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저자는 2011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2연패 가능성을 두고 절대 일어날리 없다는 생각으로 국토대장정을 공약으로 걸었다가 결국 서울에서 해남까지 577km 국토대장정을 하게 되었다. 평소엔 평균 하루 3만보를 걷는다. 영화배우, 감독, 그림까지 그리는 그의 직업상 매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할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그는 루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집에 있는 러닝머신 위에 걸터앉아 잠을 깨고 걷기부터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영화사까지 자전거도 아니고 두발로 걸어서 오고 간다는 것, 외식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걸 좋아한다는 것, 아침 식사는 반드시 챙겨먹는 것 등.

나에겐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상황에서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자들에게 그게 무엇이든 루틴을 정해놓고 어떤 기분이 들든 무조건 지킬 것을 권한다. (165쪽)

 

육체 피로는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회복되는 수가 많지만 정신적 피로는 가만히 누워있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힘들땐 다음과 같이 되뇌인다고 한다.

'아, 힘들다…… 걸어야겠다.'

힘드니 걸어야겠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알리라. 힘들때 걷고 답이 안보일때 걷고 생각이 너무 동시다발로 많이 차 있을때 털어내기 위해 걷고.

이 책에는 물론 걷는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배우 생활, 감독 생활, 그림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생활 내용으로 지면을 채우기도 한다. 성장과정에 대한 얘기로 상당 분량 채울만도 한데 그건 아니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소꼽놀이나 인형놀이 같은 것을 할 때 보면 내가 봐도 지루하게 비슷한 옷, 비슷한 내용의 말, 의미없는 동작만 되풀이하며 노는 아이가 있고 밥상을 차리고 옷을 갈아 입히고 일을 만들어내면서 유난히 재미있게 노는 친구가 있다. 함께 놀면서도 그런 친구는 어쩌면 저렇게 재미있게 놀까, 유심히 보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하정우의 이 책을 읽으며 그때 생각이 났다. 자기 삶을, 자기 시간을 재미있게 만들어 채워나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고유 영역이자 특권이다. 대단한 일이 일어나서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줄 날을 기다리며 현재를 그저 기다리고 때우는 시간으로 넘겨버리는게 아니라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는 평범한 일이라도 내가 내 방식으로 꾸려나간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내 삶에 대해 자부심과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게 아닐까. 내 삶이 무료하고 시시하고 외롭고 우울하다는 생각이 스물거릴때 점검해볼 사항이다. 

나 역시 매일 걷는 걸 어쩌면 읽기보다 더 루틴으로 삼고 있는 사람 중 하나임에도 한번도 하정우처럼 그것에 대해 의미를 두어본 적이 없다. 분명 걷기의 효과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필요해서 걷기 시작했음에도 그게 이렇게 책을 낼 만한 일인가생각했을 뿐.

걷기가 아니면 어떠랴. 내 삶을 내 삶으로 꾸려나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루틴으로 하고 있는지, 푸념 말고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이 책이 가르쳐준다. 이건 예상하지 않았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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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1-2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조금 따뜻했지만, 그래도 저녁이 되니 공기가 차갑습니다.
hnine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기분 좋은 주말 보내세요.^^

hnine 2019-11-23 12:30   좋아요 1 | URL
네, 저녁 맛있게 먹었고, 아직까지는 기분 좋게 주말 보내고 있습니다 ^^
끄적거리면서 크리스마스 캐롤 듣고 있어요.
 
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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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작가에게 주는 상, 맨부커상은 작품에 주는 상이다. 2018년 맨부커상, 2019년엔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뛰어난 정치소설에 주는 오웰상을 받은 작품 밀크맨. 1962년생 북아일랜드 작가 애나 번스의 세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 이전엔 그리 인정을 못받다가 밀크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그야말로 일약 세계적 작가 대열에 오른 그녀의 첫 장편소설 <노 본스>가 그랬듯이 <밀크맨>도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North Ireland). 영국을 United KIngdom 이라고 할땐 포함되지만 Great Britain 이라고 할땐 포함되지 않는 땅이 북아일랜드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저항과 투쟁 운동이 있어온 곳이기도 하다. 이 소설도 그런 투쟁이 예외없던 1970년대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목의 '밀크맨'은 우유배달부라는 뜻도 있고 소설 제목으로 쓰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이 작품 속에서 밀크맨은 북아일랜드 무장 독립 투쟁 조직의 주요 인사의 이름이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쪽엔 '수호파 (친영국파)', 다른 한 쪽엔 '반대파 (북아일랜드 분리 독립파)' 두 세력이 대립하며 살고 있는, 수시로 유형 무형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마을이 배경이다. 1인칭 서술의 화자로 나오는 열 여덟살 소녀는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그날도 다름 없이 아이반호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가 옆에 서면서 태워주겠으니 타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다. 편하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의 차를 덥석 탈 정도로 분별력 없는 주인공이 아니다. 거부하고 집에 돌아와 그 얘기를 가족에게 한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차에 타라고 제안했던 그 남자가 종종 예기치 않은 장소와 시간에 주인공 앞에 불쑥 나타나는 일이 일어났고, 그리고 마흔 한 살 그 남자와 주인공 사이에 불륜의 가능성에 대한 스캔들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불륜은 커녕 제대로 한번 만난 적도 없다는 주인공의 말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족도, 그녀의 엄마 조차도, 그녀의 남자친구도. 소문은 이미 사람들의 추측과 각본대로 정해져 있었고 그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려는 사람들의 눈초리만 있을 뿐이다. 이것에 대해 예민하게 굴면 오히려 사람들의 각본대로 진행되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보고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무심한 척 하려는 열 여덟살 소녀는 그저 평범한 열 여덟 살 소녀가 아니었다. 예민하고, 분별력도 있고, 똑똑하고, 하지만 자기를 드러내면 안되는 사회에서 잘 버텨내야 하는 삶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정치적 갈등, 종교적 갈등에 더해서 젠더 갈등까지 헤쳐나가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열 여덟살 여자 아이가 겪어가는 모습은 이쪽 저쪽 길 하나를 두고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집단이 공존해 나가야 하는 지금의 모습이기도 하며, 미투 운동으로 그나마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젠더 갈등의 폭로이기도 하다.

스토리 라인에 더불어 이 작품의 독특함과 출중함은 작가의 문체에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나'로 소개될뿐 한번 거론된 적 없고, 남자 친구의 이름도 '어쩌면-남자친구', 주인공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의 이름은 '아무개 아들 아무개', 이런 식으로 익명으로 나타내는데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본명보다 더 인물들의 정체성과 주인공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게 살아가는데 더 유리할지 모르는 사회 속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작가의 유머 코드가 소설 여기 저기 살아있다는 것은 기대않던 즐거움이기도 했다. 형제많은 집안의 가운데 서열이었던 주인공에게 아직 어린 동생들은 책 읽어달라는 부탁을 자주 하는데, 읽어달라고 들고온 책의 제목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인 것을 보고 동화책이 아니라 당황하는 주인공. 하지만 곧 알아차린다. 책 내용이나 대화에 관심있어서가 아니라 전래동화 같은 제목에 흥미를 느껴서 골라온 책임을. 그래서 읽어주는 중간 중간에 책 제목을 적당히 섞어서 자주 되풀이해주며 동생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는 주인공의 재치에 웃음이 나온다. 끝까지 그냥 남자친구가 아니라 '어쩌면' 남자친구였던 남자친구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대목, 밀크맨과 주인공 사이에 소문이 일기 시작할때 엄마의 반응, 그리고 나중에 엄마가 보여주는 반전. 블랙코미디 같은 요소가 작품 전체에 깔려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엇보다 눈여겨 보게 된 것은, 드러내지 않고 감추며 살아야 하는 인간, 그들의 사회를 묘사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묘미이다. 이쪽 저쪽 세력 사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내재되어 있는 동안의 보이지 않는 긴장과 공포는 실제 터지는 폭력은 아니지만 제2의 폭력이었고, 그런 사회에서 나의 본심과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며 사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의 잠재 의식, 내 본심이 어떠하든 겉으로 표현되는 것은 그저 평범 이상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은 요즘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다. 필요 이상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TMI 일뿐.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기 본심과 진실을 어디에, 어떻게 발산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사회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과연 그 사람의 진심과 얼마나 일치할까.

북아일랜드 문제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애나 번스는 흔한 주제를 흔하지 않은 방식, 그녀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이렇게 대화가 적고 나레이션 위주로 거의 500쪽까지 끌고 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주의를 끄는 작품도 흔하지 않다. 한 신문사의 서평대로 '대단한 성취'다.

 

작가를 흉내내서 나도 '어쩌면'을 붙여서 불러본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앞에 붙여보다가 (어쩌면-친구, 어쩌면-애인), 추상명사 앞에도 붙여서 불러 본다. 어쩌면-행복, 어쩌면-슬픔, 어쩌면-진실, 어쩌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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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2 -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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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양정무 교수의 미술이야기 다섯 권 중 순서를 무시하고 르네상스 시기 미술을 담고 있는 5권을 읽고 났는데 거기서 그칠 수가 없었다. 르네상스 미술이 그리스 로마 미술을 계승했으니 바로 그 시기의 미술에 대한 내용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2권을 택했다.

 

<난처한 미술이야기 2>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셜리가 한 말이다. 여기서 그리스는 셜리가 살던 동시대 그리스가 아닌, 수천 년도 거슬러 올라간 기원전 그리스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 문화는 어떻게 수천년을 뛰어넘어서까지 법, 문학, 종교, 예술 등 유럽의 정신과 물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등 고대 문명이 시작된 곳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이었고 기원전 그리스 지역은 문명 세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변방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그리스 문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 곳이 문명의 시작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스가 유럽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여 동방의 문명을 받아들이기 쉬웠다는, 지정학적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되었다. 그 증거가 되는 여러 조각과 건축물을 제시하여 이것이 저자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동방의 문명이 미노아, 미케네 문명을 거쳐 그리스 문명으로 탄생한 것이 기원전 800년 무렵이다.

그리스는 어떤 식으로 서양 문명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미술에 대해 말해보자면 서양미술사는 그리스 미술을 재해석해 온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문명의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서양의 미술가들은 그리스 미술을 새롭게 해석해 나갔다. 예를 들어 15-16세기 유럽에는 르네상스라는 미술 흐름이 있었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부활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부활시킨다는 것인가. 바로 고전의 부활을 뜻하는데 그 '고전'이 바로 그리스 미술이다. (104쪽 요약)

 

고전을 되살리자는 주의는 이후에도 신고전주의로 나타나기도 했고 19세기, 20세기에도 고전주의는 늘 존재해왔다. 보통 서양 하면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오히려 미술을 보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보수가 확실해야 진보도 나오는 거라는 말은 새롭게 기억될 것 같다. 깰게 있어야 그걸 기준으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 미술은 시대구분상 기원전 776년 올림픽의 시작,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나온 때를 기하학적 문양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기점으로 삼으며,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문양의 고졸기를 거쳐 그리스 문명의 정점을 이루는 고전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는 시대인 헬레니즘기로 구분한다. 기원후로 넘어와 31년에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가 그리스를 패배시키고 393년 로마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리스 문명 시대의 끝으로 본다.

박물관에 가서 미라가 나오면 이집트 미술이라는 것을 알수 있듯이 그리스 전시실에 이르렀음을 알수 있게 해주는 조각으로 쿠로스가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쿠로스'라는 명칭이 낯설었다. 그리스 예술품 중 가장 오래된 남성 누드 입상 중 하나로 남자 또는 청년이라는 뜻에서 쿠로스라고 부른다고 하니 기억해놓아야겠다. 

번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리스와 이집트의 미술을 비교하며 그리스가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대해 저자는 아쉬움을 나타내며, 아마도 그 유명한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라는 저서에서 그리스의 우월성을 주장해놓은 것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1950년대 나온 책임에도 아직 그것을 능가하는 책이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책이다보니 곰브리치가 '위대한 각성'이라고 지칭한 그리스 미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용하는데, 그리스 미술이 위대한 각성이라면 그 이전 시기는 모두 '잠'에 해당하는 시기인가 해서 씁쓸하다고 했다.

그리스를 정복한 후 그리스 문화를 없애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계승, 전파하려고 노력했던 로마 덕분에 그리스라는 나라는 번성하지 못했어도 그리스 문화는 로마 제국 주의의 확산을 타고 더 멀리 보급되고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연결되어 지금까지 그리스·로마 문명이라 붙여 일컫고 있다.

18세기에도 유럽 고관 대작 자제들을 위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그랜드투어라는 이탈리아 여행이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랜드 투어를 떠났던 유럽 귀족 자제들은 로마를 다녀온 후에도 그리스 로마 문화에 매료되어 자기 나라의 건축, 미술 등에 반영시킨 것은 자연스런 일이겠다. 예를 들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건축은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독일 레겐스부르크에도, 미국의 링컨기념관, 우리 나라 덕수궁 석조전에서 까지 발견된다.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로마인들은 예술 작품도 실용적인 용도로 제작하기 좋아했으며 그중에서도 조각은 대부분 왕족, 귀족 가문의 위엄을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져서 로마 황제들의 카리스마를 위한 로마 황제 조각이 많이 만들어졌다. 로마의 건축, 도로, 하수도는 지금까지도 남아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공학적으로 우수하였고 비트루비우스는 건축 원리를 집대성하고 체계적으로 완성하여 <건축 10서>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을 복원할 때 이 책을 참조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꼼꼼하게 쓰여져있는지 짐작이 간다.

로마인들의 실용적인 성격은 현세적 가치관에 치우쳐져 내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리하여 사후 세계와 관련된 문화를 따로 발달시키지 못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로 나중에 기독교가 제시한 종교적인 답에 쉽게 굴복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조그마한 고장에서 탄생한 기독교가 로마에 유입된 이후 탄압 속에서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번져나가 마침내 로마제국의 국교로 지정되기에 이르니 말이다.

 

이렇게 저자는 다음 권으로 자연스럽게 내용을 연결시키며 2권을 맺는다.

다음 권의 내용은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더 이상 인간은 외롭지 않았다 이다.

안 읽어볼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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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11-1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스스로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조금 짧게 답글을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

앞으로 계속 읽고 올리실 내용 기대하겠습니다.

hnine 2019-11-13 04:41   좋아요 0 | URL
평소에 꼼꼼히 읽으시고 자세한 답글 쓰시느라 시간 많이 잡아먹죠? ^^
읽어주시고 안부 나눠 주시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저도 올리시는 글 기다리고 있을께요.
 
난처한 미술 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 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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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제목 아래 작게 써 있는 저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이미 도서관 서고에서 이 책을 꺼내고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양정무 교수가 1권부터 쓰고 있는 이 시리즈는 현재 5권까지 나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옆에 나란히 꽂혀있는1,2,3,4권 다 제치고 5권 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들어본 내용이 그나마 제일 많을 것 같아서였다.

5권의 내용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이다. 생소한 내용은 아니지만 워낙 방대하고, 역사, 문화, 문학, 미술, 건축 등의 분야에 걸쳐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웬만큼 알아서는 안다고 할 수 없는, 항상 자신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1347년 흑사병이라는 치명적인 대재앙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계기로 꼽고 있다. 인구의 반이 줄어들 정도의 재앙을 겪어내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전의 마인드로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흑사병에 걸린 어떤 사람은 모든 재산을 파리한테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주변에 남아 있는 존재가 파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런 식의 냉소주의도 흑사병과 함께 빠르게 번져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역사가 발전해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밝아오는 게 아니라 엄청난 대재앙이 벌어지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바로 르네상스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157쪽)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새로 태어나는 것들이 역사의 한 장을 이루었다. 극복이라는 말 속엔 얼마나 큰 잠재력이 숨어 있는 것인지.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는 부활, 재탄생을 뜻한다고 알고 있는데 무엇으로부터의 부활을 말하는 것인가.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미쉘리가 처음 사용했는데, 고대의 화려한 문명이 중세 때에 멈췄다가 근대가 시작되면서 부활한다고 생각해 이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르네상스는 고대 문명의 부활이다.

이탈리아가 지금처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은 19세기 들어서이고 (이탈리아 통일은 1871년) 그전엔 수십개의 도시국가의 모임이었다. 즉, 시에나, 베로나, 피사,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만토바 등이 모두 개개의 도시 국가들이었는데 이중에서 특히 르네상스의 본고장이 된 피렌체는 11세기부터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하여왔고 다른 도시국가들과 다르게 길드를 중심으로 공화정을 오래 유지하여왔다는 배경을 안고 있었다.  작은 도시국가들이 여럿 붙어있다보니 서로 경쟁적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피렌체가 새로 성당을 짓는다면 피렌체 출신 혹은 다른 나라에서 유명한 화가나 건축가를 스카웃해서라도 라이벌 국가인 시에나, 피사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짓게 하는 식이다. 이때 맹활약을 했던 화가로서 조토가 있다. 화가로서의 명성 뿐 아니라 건축, 토목 기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인재였다. 그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는 건축물이 있는데 바로 피렌체의 대표적 건축인 피렌체 대성당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 두오모 성당)을 상징하는 거대한 돔 지붕 옆의 높은 종탑, '조토의 종탑'이다. 이렇게 따로 이름을 갖고 있는데에는 처음 설계자인 아르놀프 디 캄비오가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나중에 합류한 조토가 상당 부분 다시 설계하여 본 건축물인 대성당보다 일찍 완공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능있으면서 성실하기 까지 한 사람을 어찌 따르랴.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을 1300년 (조토, 단테의 시대) 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고, 1400년으로 잡는 연구자도 있는데 저자를 비롯해서1400년대, 즉 15세기를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보는 데는 역사를 바꾼 큰 두 사건때문이라고 하였다. 첫번째 사건은 피렌체 대성당 위에 거대한 돔을 올린 것과 두번째 원근법의 등장이다. 이 두 사건 모두 1400년대, 피렌체에서,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로 브루넬레스키이다. 이 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건축 시공 쪽에 기초지식 없이도 이해가 될 수 있게 이 책에는 피렌체 대성당 돔을 건축하였다는 것이 왜 그렇게 큰 사건인지 친절하고 쉽게 잘 설명해놓았다. 직경만 45m된다는 돔을 내부 버팀목 없이 지을 수 있던 시크릿이다. 원근법은 그것으로 인하여 이전과 이후의 그림의 차원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놓았는데 원근법을 이용하여 그리면 실물과 가장 가까울 것 같지만 그건 입체감을 살리는데 최선의 방법이지 실물과 가장 근접한 기법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선 원근법에 이어 대기 원근법을 고안해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피렌체에 가면 어디서나 보이는 피렌체 대성당을 보는 방법으로서 저자가 적극 추천하는 두 코스, '비아 데이 세르비'와 '비아 데이 칼차이우올리'는 메모해놓았다가 꼭 걸어보고 싶다.

르네상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데 이 책도 르네상스 이전 12, 13세기 역사와 지리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되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것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책 속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개하는 방식을 보고 이 책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을 바로 언급하는 대신 조수와 스승이 함께 협업했다는 그림을 한 장 보여주면서 그림에 있는 한 천사는 조수가, 다른 한 천사는 스승이 그렸으니 독자에게 한번 잘 들여다보고 비교해보라고 한다. 두 천사를 그린 실력차가 여실하다. 여기서 물론 조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고 스승은 베로키오이다. 베로키오는 이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신이 조수를 결코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전무 후무한, 특별한 사람이게 했는가를 설명하면서 모나리자 그림의 생동감의 원천이 단순히 기술적인 뛰어남이 아니라 해부학에서 나옴을 보여주었다. 글로만 설명하는 대신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얼굴 해부도와 모나리자 그림을 직접 대조해가며 독자가 실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두툼한 이 책을 지루한지 모르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바로 이런 노력때문이 아닌가 한다.

피렌체에서 주로 활동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밀라노로 옮겨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후 말년은 왜 생뚱맞게 프랑스에서 보내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이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16세기가 되면 르네상스는 이제 이탈리아만의 이야기가 아닌 유럽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는 말로 5권의 끝이자 다음 권의 시작이 알리며 맺는다.

 

꼭 그러고 싶은 소망대로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를 방문하게 된다면 이 책을 반드시 다시 읽고 공부하고 가리라.

모르고 가서 보는 유명한 그림과 건축은 보면서 멋있다고 감탄이야 하겠지만 진짜 재미는 못 느낄 것 같아서이다. 이왕이면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도 소장하고 싶고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미술을 만나면 세상은 이야기가 된다. (4쪽)

 

 

 

 

 


 

 

▼ 가지고 있는 책 중 아래 두 권을 참조하면서 보았다. 

오래 전에 봐서 다 잊어 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책을 보다가 어디서 본 것 같아 들춰 보면 신기하게 예전에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1. 천년의 그림 여행 (스테파노 추피, 2005 예경)

2. 시대의 우울 (최영미, 창작과 비평사 1997)

 

 

 

         시대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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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11-0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1권 읽다가 포기한 책인데... 왠지 다시 꺼내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hnine 2019-11-05 21:3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럴까봐 일부러 5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무리없었어요. 일단 아는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요.
뒷북소녀님도 1권 좀 미루시고 다른 권부터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지금 저는 2권 읽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