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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에서 길을 찾다 - 부부가 함께한 유럽 문화 기행
권순긍 지음, 최선옥 그림.사진 / 청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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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기는 읽어도 읽어도 여전히 흥미가 생기는 것일까. 같은 나라를 다녀온 여행기라 할지라도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언제, 어떻게, 왜 갔느냐에 따라 내용은 다 다르고 읽는 재미도 다르다. 그들이 방문했다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아마도 책마다 다른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읽게 되니 재미가 더한 것 같다.

이 책은 일종의 부부여행기이다. 대학교수인 남편이 안식년 휴가를 맞아 헝가리의 한 대학교에 머물게 되었고 고등학교 미술교사인 아내가 동행하여 함께 지내는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다. 남편이 주로 글을 썼고 아내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책이 두툼하다. 헝가리에 체류기간이 넉넉하다보니 단기 여행과 다르게 유럽의 어떤 도시는 두번 이상 방문한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은 더 눈여겨 읽게 된다.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경우란 웬만큼 좋은 곳이 아니라면 없을테니까.

이 책에 실린 장소는 아테네, 두브로브니크,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파리, 아를, 세비야, 똘레도, 그라나다, 빈, 잘츠부르크, 부다페스트 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기로 결정하면 우리는 출발 전 준비로서 흔히 그곳의 날씨는 어떤가, 어디서 묵을까, 어떤 유명한 장소를 가볼까, 어디가 맛있는 곳인가, 교통편은 어떤가 등을 여행가이드 책이나 인터넷 자료를 통해 알아본다. 이것 외에도 필요한 준비 사항은 역사, 언어, 종교, 정치, 지리, 문화, 예술 등 그 나라와 그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어떤 곳을 방문하기 전, 그곳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공부를 제대로 하고 갔다는 것이 드러난다. 수박 겉핥기 식의 얕은 정보가 아니라 여행 방식, 나아가서는 성격, 성향까지 짐작케 하는 진지하고 폭넓은 조사를 곁들였다.

예를 들면, 파리 여행기를 다음과 같이 파리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파리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근대의 상징적인 도시라는 것이다. 로마는 분명 고대와 중세의 중심이었고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근대 문화의 중심이자 그것을 확대 재생산한 곳이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 19세기의 수도>,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파리, 근대성의 수도>라는 책을 써서 파리를 근대성, 즉 '모더니티'의 상징적인 도시로 부각시켰다. (180쪽)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파리가 근대성의 수도로 떠올랐을까 하는 것으로 내용이 이어지면서 파리라는 도시의 역사로 이어진다. 왜 막연히 파리 하면 로마나 피렌체에 비해 더 근대적인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한번도 역사적으로 캐물어 본 적이 없었는데 첫 시작부터 눈이 번쩍했다.

유럽에서 가장 '예쁜' 도시로서 빈을 선정했는데 빈에 있으면 마치 화려한 장식장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가 한참 이어진다. 역사 배경 지식이 보잘 것 없는 나로서 한번 읽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진 않았지만 이런 배경 지식 없이 여기 저기 명소만 돌아다닌다면 그것이 과연 내가 희망하는 여행일까, 그건 아닐거라 확신하게 해주었다.

빈이 화려한 장식장이라면 잘츠부르크는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룬 도시라고 했다. 그림과 같은 도시가 아니라 그림 그 자체라고.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 때문에 우리 국민에게는 너무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로만 떠올라 유감이라는 부다페스트 편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실었다. 헝가리에서 지낸 기간이 가장 오래이니 아마도 가장 친숙한 도시였을 것이다.

저자가 처음 헝가리에 간 것이 2008년이고 이 책이 나온 것이 2011년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이상 된 여행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도록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하게 쓰여져 있다. 마치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스페인 한 나라에서도 세비야, 똘레도, 그라나다 이 세 도시 각각에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여 꼼꼼하게 기록했다. 아직 경험이 없어 모르겠지만 한 도시만 해도 이러한데, 한번 여행가면 붙어있는 몇개국을 되도록 많이 방문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과연 가능할지, 소화해낼 수 있을지, 저자의 여행 기록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에피소드나 사진 중심으로 지면을 채운 책이 아니라서 어쩌면 요즘 쏟아져나오는 여행기와 좀 달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여행이었다. 그러니까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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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2-1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여행이 부담스러운 제가 읽으면 외국 여행에 끌릴지 모르겠네요.
가는 곳마다 꼼꼼한 기록한 필수겠고 거기에 유머와 버무리면 좋을 듯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교과서 느낌. 좋네요.
여행, 에는 확실히 셀렘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hnine 2020-02-13 12:38   좋아요 0 | URL
모범생같은 여행기록은 맞는데 유머가 두드러지진 않아요 ^^
그래도 내용 부실하면서 유머를 내세우는 책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외국 여행뿐 아니라 모든 여행을 일단 설렘보다는 부담으로 생각하는건 집순이인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런데 열에 열, 다녀오고 나면 괜히 갔다고 생각되는 여행은 없더라고요. 보람도 있고 뿌듯하기도 하고 생각에 새바람도 들어가고요.
 
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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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유명해진 책들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역시 빠르게 인기가 확산되는 것 같다. 알라딘 사이트를 자주 들락거리는 나에겐 책이 먼저였지만 알고 보니 동영상 사이트에서 저자의 강연은 구독자수가 100만명을 넘었고 누적 조회수가 7천 뷰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동영상 사이트에도 들어가보았다. 책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1번부터 12번까지 인생이 법칙 내용을 열강하고 있었다.

12가지 인생법칙이라고 하니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처럼 보이지만 읽어보면 심리학 교수 답게 심리학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고 12가지 인생법칙은 책 전체를 나눈 소제목 정도에 해당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심리학, 종교학, 철학 등의 학문적인 배경을 근거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노력, 그리고 비교적 긍정적이고 발전 지향적인 결론이 특징이다. 비록 인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않은 인간의 잔혹한 심성을 전제 조건으로 츨발하는 것은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혹한 사실일지라도 인정할것은 인정해서 내 인생을 더 낫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 그림책 작가 잭 켄트의 <용 같은 건 없어>라는 그림책을 인용하였고, 역시 그림책은 어린이들만 보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어느 날 방에서 용을 발견하고 아이는 엄마에게 가서 방에 용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건 없다면서 믿지 않는다. 용은 점점 커져가고 아이는 재차 엄마에게 방에 용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할 뿐이다. 처음엔 고양이 만하던 용이 점점 커져서 나중엔 집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커져서 아이와 엄마가 있는 집을 통째로 들고 그 자리를 뜨기에 이른다. 나중에 용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용은 다시 고양이만한 크기가 된다. 실로 대단한 상징이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편견때문에 가리워진 사실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 덩치를 키워서 나중에 우리의 어깨를 누르고 목을 죄이며 위협함으로써 그 존재를 더 이상 감추고 가리지 못하도록 한다.

이 내용이 인용된 부분은 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편이다.

삶이 정체되고 혼탁해지는데도 막연하고 모호한 태도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모호한 태도는 두려운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할 때 숨을 곳을 제공해준다.

당신이 용기를 내지 않고 과감히 맞서 싸우지 않아서 문젯거리가 거대한 용이 되어 찾아온다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정말 피하고 깊던 일이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힘을 확보했을 때 당신이 가장 약해진 틈을 타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럼 당신은 패할 수밖에 없다. (385쪽)

이 책에서 꼭 읽어야 할 부분을 고르자면 이 부분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의 핵심이자 필독.

 

법칙과 상관없이 이 책에서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을 정리해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 누군가를 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당신이 충분히 강하고 너그러우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옳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당신의 동정심과 선의를 과시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강직한 성품이 단순히 운 좋게 타고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일 수도 있고, 완전히 망가진 사람 곁에 있으면 도덕적으로 더 돋보일 수 있기에 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124, 125쪽)

독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생각해볼 말임을 인정한다.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함부로 행동하기가 어려워진다. 당신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하면 그들은 힘을 보태줄 것이고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일때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사소한 선택이라도 신중하게 결정하고 소임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목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행동한다. 담배를 힘들게 끊은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고 알코올 의존증에서 겨우 벗어난 사람에게 맥주를 권한다. 당신이 마침내 목표를 이루거나 어려운 일을 해내면 당신을 질투할 것이다. 당신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면 상대적으로 그들의 흠결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떻게든 물어뜯으려 할 확률이 높다. (130쪽)

이런 조언을 나도 들은 적이 있다. 만나서 불편하고 기분이 안좋은 사람을 굳이 계속 만나려하지 말라고. 내 말에 동의를 잘 해주고 안된 일에 위로를 잘 해주고 쉽게 공감을 해주는 사람 위주로 만나기보다 나를 지지해주고 내게서 더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불안증에 시달릴까? 왜 게으름을 피우게 될까? 왜 폭력을 쓸까? 이런 것들이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인 이유는 그것이 쉽기 때문이고 인간의 자연스런 속성이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고 게으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살면 될까. 그것을 인정하되 목표는 내 인생을 더 좋게 하려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냉혹한 현실, 회의적인 운명,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출발하되 궁극적인 목적지는,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가 되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 훈육 원칙의 재정리

-중요한 최소한의 규칙만 남겨라

-그 규칙을 적용할 때 최소한의 힘만 사용하라

-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부모는 자신들도 냉정하고 교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기만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부모에게는 자녀의 행복을 보장하고 창의력을 키워주며 자긍심을 북돋워야 할 책임이 있다. (213쪽)

 

경험상 나 개인적으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은 위의 세항목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편을 이 책의 핵심이라고 추천한 이유는 도스트예프스키에서 니체, 프로이드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을 잘 정리해서 그의 설명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스트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 그 유명한 대심문관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보여주었는데,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이 책,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다시 읽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대심문관이 그리스도를 찾아가 "당신은 이제 필요없는 존재"리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존재가 필요없음을 증명하려 했을때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를 대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자는 거기서 어떤 보물을 캐어올렸는지,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자유로운 정신을 기르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 (279쪽)

 

삶의 비극은 존재의 원죄다. 우리 모두 어떻게든 견뎌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331쪽)

사는 동안 누구나 한번쯤 고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고통의 의미와 가치가 전무하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대목이다.

 

너무 옮겨적기의 연속이라 뒤의 에필로그 부분은 넘어가려 하지만 거기서도 여러 군데 밑줄을 그어야했다.

저자는 데카르트를 비롯한 다른 철학자처럼 단하나 분명하고 확실한 삶의 명제를 찾기 위해 수년 동안의 시간과 노력을 소비했다고 했다. 그의 학문의 출발은 그것이었다고. 그렇게 결국 알아낸 것은 삶의 비극은 존재의 원죄라는 것이었고 그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할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원죄를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그는 생각만으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톨스토이도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역사상 그 누구보다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니체 역시 생각만으로는 이 의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엄청난 힘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을 대신하는 것들이 있다. (478쪽)

그가 말한 생각을 대신하는 것들이란 '깨달음'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다. 보편적인 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게 아니라 바로 그의 한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479쪽)

겨우 사랑이었어? 라면서 좀 뜻 밖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 깨달음이다. 개념치 않는다. 그것은 그의 깨달음이지 나에게 종용되는 깨달음이 아니고 저자도 그걸 의미한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종국에 사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긴 하다.

나는 나의 삶을 살며 찾을 일이다. 나에게 올 깨달음은 무엇일지. 오늘 이렇게 책을 읽고 쓰는 행위도 모두 그것을 알기 위함이 아닐지.

 

 

 

'모든 고통이 반드시 허무주의 (가치와 의미와 희망에 대한 완전한 거부)를 낳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고통이든 신체적 고통이든 지적인 고통이든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그런 고통은 항상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악을 경험한 사람은 악을 퍼뜨림으로써 악을 존속시키려는 경향이 있으나, 악을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선을 학습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한 아이는 자신이 당한 대로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지만, 자신이 받은 고통을 통해 그런 학대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 학대당한 사람은 그 경험을 통해 좋은 부모가 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225,226쪽)

 

이 모든게 내 잘못 때문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는 게 있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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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20-01-0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20-01-02 23:47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고맙습니다.
자주 못만나도 잘 계시리라 믿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20-01-0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로운 정신을 기르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
불행해 봐야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한 말이네요.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제가 구입해 놓은 책인 줄 알고 확인하기 위해 나의 계정에서 검색해 보니
구입하지 않은 걸로 나오네요. 아마 제가 눈여겨보며 장바구니에 담았던 모양입니다.
심리학서적은 언제나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 리뷰를 볼 때도 관심 갖고 봅니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늘 궁금한 건 인간이니까요.

hnine 님, 알차고 웃음 많은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hnine 2020-01-04 09:18   좋아요 0 | URL
저자가 이 책 속에서 드러내고 주장하진 않았지만 고통의 의미, 삶의 본질, 허무를 극복해야하는 이유 등, 인간의 어두운 심성에서 출발한 고민 끝에 저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사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그렇고 이 분이 종교심리학 저서를 출판한 적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자유로운 정신을 기르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경험해야 하듯이, 고통이 없는 상태의 가치를 알려면 고통을 경험해봐야 하는 것, 그것이 고통에서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의미랄까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예시로 들며 도스트예프스키가 니체보다 나았다고 보는 이유를 읽으면서, 다시 읽어야겠구나, 인정했지요.
이 책은 기대보다 훨씬 괜찮은 책이었답니다.
알차고 웃음 많은 해로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드려요.

Nussbaum 2020-01-0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튜브를 보니, 이 작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강연과 책에서 제가 단편적으로나마 느낀 것은 두 가진데

어떤 사회적인 흐름이, 사상이 양 극단의 불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화합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칫 전체주의나 극단적 개인주의 흐르는 현대 사회 흐름에 대한 비판.

그의 책 말미에 적힌 내용은 또 이렇게 보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생각이 드네요.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죄는 줄었을지 몰라도 훨씬 더 신뢰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아 그리고

hnin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hnine 2020-01-04 09:22   좋아요 0 | URL
잘 보셨어요. 불화가 아닌 화합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 이 저자의 큰 미덕이 아닌가 싶어요. 현대 사회 흐름에 대한 비판을 하되, 인간의 잔혹하고 어두운 심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을 하되, 결론은 극복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방향으로 맺고 있으니까요.
Nussbaum님도 새해 많은 활동 기대합니다~ ^^

카스피 2020-01-0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hnine 2020-01-09 22: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올해도 변함없이 알라딘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프시지 말고요.
 
어떤 날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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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촉망받던 건축가였으나 정작 기대만큼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무기력함을 느껴가는 아버지 엘슨. 결혼과 함께 육아과 살림으로 자기의 커리어를 맘껏 펼져보지 못하고 보낸 30년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제안한 엄마 케이던스. 시인으로서의 재질이 있음에도 한번도 자기의 능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노력을 해본적 없고 낮에는 커피샵에서 일하고, 밤에는 파티에 참석하는게 일상인 게이 아들 리차드. 집을 떠나 대학에 다니고 있다가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어쩌면 퇴학당할지도 모른다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딸 클로이. 이 네명으로 구성된 가정이 있다. 아버지는 와중에 젊은 여자를 만나 새로이 사귀고 있는 중이고, 엄마 역시 새로운 상대방을 만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이들 부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동성연애자임을 알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아버지를 절대 용서 할 수 없어 아들은 아버지와 남남 같은 사이가 되어 있고, 학교에서 정학당하게 된 그 사건 이후 남자 친구와 가출하여 행방을 알수 없는 딸의 문제를 두고 엘슨과 케이던스는 이혼을 했음에도 외면하고 지낼 수만 없는 상태로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힘을 모아 어떤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갈등만 깊어가는 답답한 상황이다. 이 가정의 미래는 어찌 될것인가.

가족 구성원 각각의 문제에 더해서 500여쪽이 되는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중심 사건은 역시 딸 끌로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족을 묶어주고 있는 유일한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끌로이는 정확히 어떤 사건에 어떻게 연루된 것일까. 학교에서, 혹은 법정에서 어떤 처분을 받게 될 것인가. 그녀는 과연 이민자 출신 남자친구와 어디까지 함께 할 것인가. 이에 따른 가족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궁금해하며 끝까지 읽어가게 된다.

장편 소설이지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작가 앤드류 포터의 작가로서의 능력 덕이고, 번역자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읽으면서 번역본을 읽고 있다는 것을 거의 의식 못하고 읽을 수 있었다.

독창성이라든가 작품 고유의 메시지가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난 후에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던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크게 두드러지다고 보여지지 않아서 별 세개로 마치려고 하다가, 내용의 흐름이 매끄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하는 재미를 포함하고 있으니 장편 소설로 출판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은 갖추었다고 보여, 또한 재미있게 읽어놓고 그러긴 미안하지 않은가 생각하여 별 네개로 올려놓았다. 의미없는 행동이지만 이런 가늠해보는 것도 리뷰 쓰며 갖는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옮겨 적어 놓고 싶은 페이지가 있는데 (538쪽), 결말 부분이라서 옮겨놓으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소설의 시작에서 모두 위기의 날들을 보내고 있던 가족들. 결말로 가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그 위기의 시기를 넘기도록 시간은 그들을 어딘가로 데려다 놓았다. 좋아보이지도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 시기를 '넘겼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언제 그런 위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days 와 days 사이, In between days. 이 소설의 원제이다.

쉽게 행복과 불행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고, 행복한 삶, 불행한 삶이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끝까지 가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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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12-2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써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닌 올리신 글처럼 작더라도 의미를 찾는, 혹은 의미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네요.

요즘은 영화, 책, 삶 모두 조금 멀리서 보고 있는데 마지막 문단처럼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기를 쓰니 어제의 일이 또 며칠 후 비슷하게 일어나고 오늘의 일이 몇 년 전 어떤 일과 연관이 있고.

뭐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과 나에게 일어나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방식을 잘 관찰해야겠다 생각을 해 보는 밤입니다.

hnine 2019-12-23 05:28   좋아요 0 | URL
in between days 라는 말의 뜻을 한참 생각했어요.
순탄한 삶 사이에 거치는 힘든 고비 같은 시기를 표현한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번역한 제목은 ˝어떤 날들˝이라는 평범한 제목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더 원제목이 의미한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서있는 곳만 보고 전체를 다 본 것 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고요.
단편 모음집 하나로 확! 뜬 작가인데, 뒤이서 장편을 냈어요. 다음 작품은 단편이 될까 장편이 될까 은근히 기다려지네요. 전작인 단편 모음집이 더 좋았다는 리뷰가 많던데, 장편도 잘 쓰는 것 같아서요.

서니데이 2019-12-2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hnine 2019-12-25 04: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중 죽음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침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제 밤 눈 감고 잠이 든 이후로 다시 살아있음을 깨닫는 첫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그렇다. 이 책의 저자가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근거는 죽음을 적어도 두가지 종류로 보기 때문이다.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고 했다. 육체적 죽음은 아직 맞지 않았을지라도 사회적으로 죽음을 맞은 상태, 즉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를 '사라지는 중'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저자는 죽음을 개인 차원에서만 본 것이 아니라 사회, 국가, 공동체, 제도, 사상 등에도 적용하였다. 개인의 육체는 살아있을지라도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적 죽음은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독특하고 예리한 관점은 계속된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23쪽)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잠깐 기분 좋음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을 새해 목표로, 인생 목표로 계획하고 바라게 되면 그 덧없음을 깨닫고 났을때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게 할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독특하나 공감 못할 바도 아니다. 아니, 내가 말로 표현 못하던 것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목적을 이렇게 달성시켜주고 있다.

<위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떠나게 된 계기가 된 일에 대해 썼는데, 처음으로 논문 심사를 받던 날, '해탈에 재차 실패한 부처 지망생들처럼' (이 표현을 보시라) 앉아 있던 심사를 맡은 교수들의 첫 질문이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자, 자네 논문을 한번 간략하게 요약해보게."

요약이 끝나자 몇 가지 질의응답이 오가기 시작했고, 난 곧 깨달았다. 이 선생님들께서 내 논문을 읽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선생이 논문을 채 다 읽지도 않고 심사를 하려 드는 것은 학생이 논문을 채 다 쓰지도 않고 심사를 받으려 드는 일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웃는 돌처럼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국권 피탈의 순간에도 시간은 유유히 흘렀던 것처럼. 나는 목례를 하고 걸어 나왔고 마침내 논문은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날의 일은 오랫동안 수치의 기억으로 남았다. (130쪽)

'아무튼 논문은 통과했으니' 라고 안심하기 보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수치스럽고 분노를 일으키는 기억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공간이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을 더는 삼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나라로 공부를 하러 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에 안주하면서 살고 있지 않나. 

이 책을 읽기 전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저자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한 글이 있었나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지난 해 인터넷과 SNS에서 유명해진 칼럼이라고 한다. 이 책에도 실려있어 읽어보니 이 책의 다른 글들에 비해 특별히 더 튀는 편도 아니다.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한 질문은 집어치워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 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 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 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61쪽)

저자의 글쓰는 공력이 벌써부터 평범한 에세이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은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경력으로도 짐작되거니와 실제로 이 책에 실려있는 그의 영화평론 글들을 읽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 깨달음은 깨달은 자를 한층 더 좌절케 하는 종류의 깨달음이다. 그는 햄릿처럼 자기자신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인식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보다 심오한 통찰에 근거하여 행동의 불가능성을 확인한 이에게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재량하여 성취해나가는 기획자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인생의 심오한 인식에 이른 자는 더 이상 행동할 수 없다. 성격의 우유부단함이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행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는 자는 행동하지 않고, 모르는 자는 돌진한다. 이것이 인생 아니던가? (296, 300쪽, 영화 '고스트독' 평론 중에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위의 인용문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일 오래 마음에 남을 문장 같다. 행복을  목표로 해서 사는 것의 모순,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면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는 모순. 죽음을 생각하여 살 힘을 얻는다는 모순. 모순이 진리가 되는, 이 또한 모순이라고 해야할까?

뭐니뭐니 해도 극점은 전도연과 짜라투스트라를 등장시켜 쓴 '책이 나오기까지'라는 후기 아닐까?

사회과학 교수로서 인문과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김민정 시인과의 인터뷰를 보면 <논어>를 새로 번역하고 있다고 하더니 얼마전 새로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전 중의 고전인데,  나와있는 여러 판본을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새로이 번역할 생각을 했다니, 누가 시켜서 할 일은 아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 양분된 의견 중 한쪽을 택하고,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에 안주하여 살던 중 이런 논객들의 튀는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즐거운데서 그쳐야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거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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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2-1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는~. 이런 책이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hnine 2019-12-19 15:08   좋아요 1 | URL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고 저는 늦게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
물질은 다양화되어가는데 인간의 사고방식은 왜 획일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심해져가고요. 이분의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참 자신있고 소신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다 읽을 무렵엔 자신있음이 곧 자유로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고를 바라보는 시선의 자유로움이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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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단편이라 시작부터 반가운 마음이었다. 저자 앤드루 포터는 데뷔부터 단편집으로 시작한 작가 아닌가. 1972년 미국 태생. 2008년 36세 되던 해 데뷔작으로 발표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그는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 출간된 책이 우리 나라에선 2011년에 번역본으로 나온바 있고 올해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번역본으로 재출간 되었다.

모두 열편이 단편을 모았는데 책의 제목이 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이중 한편이다.

 

구멍, 친구의 죽음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십이년전 일을 기억하며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친구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양심의 가책을 담아 매번 조금씩 다르게 각색된 악몽을 꾸며 괴로와하지만 막상 죽은 친구의 형으로부터 그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서 쓴 답장을 부치지 못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는 것은 법도, 신도 아니고 내 마음속 양심의 잣대이다. 극히 주관적이면서 솔직한.

코요테, 서로 사랑은 하지만 상대로부터 기대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해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는 부부. 그런 부모를 둔 주인공이 다 커서 관찰자 입장일 수 밖에 없었던 어렸을때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주인공은 그때는 부모 사이의 일을, 특히 집을 나가 살고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나중에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과 본심을 이해하게 된다. 어린 주인공이 해질 녂 지붕 위에 올라가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시간을 보낼때 들려오곤 하던 것이 코요테 소리이다.

아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폴과 캐런 부부는 중학생 아술을 교환학생으로 한집에 데리고 있다. 폴과 캐런 각자의 문제에 더하여, 동성연애를 비롯 일탈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아술을 어떻게 대하고 지도해야할지도 확신이 없어 갈등을 겪는다. 개인적인 문제와 아슬의 문제까지, 어쩌면 과도기를 사는 건 십대의 아술이나 사십대의 폴, 캐런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마침내 지나간 행동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결말은 앞의 두 작품과 공통적인 방식의 결말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방정식을 시험문제로 낸 물리학 교수 로버트와 그 시험을 치러야했던 학생중 하나인 헤더와의 개인적인 만남은 바로 그 시험에서 비롯되었다. 결국은 연애담인데, 섬세하고 격조있음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엔 로버트라는 교수의 성격과 심리에 집중하며 읽다가 읽어나갈수록 점차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일인칭 화자인 헤더의 무심하고 담담하여 가려져있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과연 로버트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겠다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역시 여자가 결혼 상대로 선택하는 것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 결혼후 예상되는 안정화 정도가 또 한 요소로 보태져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기서도 본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행복한가는 또 다른 얘기이다.

강가의 개, 제목이 중의적으로 쓰였다. 주인공이 어릴 때 목격한 형과 그 친구들의 비도덕적 행동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성폭력, 범죄의 씨앗이 되는 잘못된 음주문화 등, 개로 상징되는 이 모든 행위는 미래의 문제로도 지속되어 누군가의 양심을 건드리며 회상될 것인가.

외출, 외출의 뜻 속에 주류에서 벗어난 삶까지 확장시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머킨, 동성애, 양성애를 용어화해서 불러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나는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 대상이 동성일수도 있고 이성일수도 있는 것이지, 낮은 확률로 일어난다고 해서 아웃사이더로 소외시키고 심지어 죄악시해야하는가. '머킨 (merkin)', '비어드 (beard)'가 동성애자가 공공장소에 데리고 가는 이성 상대를 뜻하는 단어임을 이 작품을 읽기전엔 알지 못했고 들어본적도 없다. 화자인 '나'는 진정 몰랐을까? 린이 처음부터 좋아한 상대는 자기였음을.

폭풍, 밖에서 폭풍이 치는 것과 집안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풍을 병렬식으로 대비하여 서술하고 있다.

피부, 이 책에서 가장 짧고 간단한 작품이었음에도 연속해서 두번 읽어야 했던 이유는 제목이 왜 '피부'인지 처음 읽을때 놓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라던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떤 불행이 가능할수도 있었는지를 굳이 떠올린다. 하지만 떠올린다고 한들, 누워있는 배우자의 매혹적인 피부처럼 눈 앞에 보이고 당장 느낄 수 있는 것들 만한 영향력을 가지진 못한다.

코네티컷,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가 요양차 코네티컷 연안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을 시기에 '나'는 열세살이었고 그때 어머니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그때를 회상하고 비로소 그 일의 전말을 제대로 이해한다. 아버지가 요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후 모든 상황은 제자리로 돌아와 평화로운 상태로 보였지만 어른이 되어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겉으로 보여진 것과 매우 다른 이미지이다.

그 저녁, 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277쪽)

이 작품의 마지막이자, 작가의 섬세한 글쓰기 방식이 잘 드러나는 곳 중의 하나라서 인용해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앞날을 계획하는 시간 대비 옛날을 회상하는 시간의 비율이 증가한다. 과거의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고 어떻게 회상될지 당시엔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시간이 흘러 그 상황에서 이만치 떨어져나온 후, 한번 저 기억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떠오른 후이다. 그걸 이렇게 섬세한 통찰을 거쳐 소설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대한 선물이다. 어디에 비길바 없는.

아직도 외국작가의 단편소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앨리스 먼로. 그녀의 단편보다는 읽기가 수월하다. 독자에게 친절할 정도의 구체적인 서사가 있다는 뜻이겠고, 덜 함축적이고 더 흥미있게 썼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아직 많은 작품을 낸 작가가 아니라서 국내에 알려진 그의 다른 소설 <어떤 날들>을 바로 주문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망설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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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12-0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파리 리뷰 인터뷰 모음집인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다 남기신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저마다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라는 동일한 단어를 품고 있더군요. 소설이 어느 때부터 참 멀게 느껴졌는데 조금씩 다시 소설이 좋아지는 것은 그런 일상의 과정, 삶의 과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아차 싶은 실수 하나를 벌이고 저의 보편과 개성 사이에서 조금 고민을 했네요. 관련해서 일기도 한 장 썼는데 그 내용이 올리신 글의 마지막 문단과 어쩐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앤드루 포터도 읽은 책 본문에 나왔지 싶은데, 언제 서점에 들러 조금 읽다 와야겠습니다.

hnine 2019-12-10 05:26   좋아요 0 | URL
열심히와 꾸준히, 보편과 개성 사이. 모두 생각해볼 말들이네요. 저는 열심히보다는 꾸준히가 좋고 (열심히는 어딘지 자발적이지 않고 의무적으로 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있어서요 ^^), 보편과 개성은 둘다 좋아요. 지난 주 현대 미술에 관한 강의를 들었는데, 개성이 전부인 것 같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조차도 어떤 것은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어떤 것은 그저 개인의 취향에서 그치고 마는 기준이 되는 것은, 개성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보편성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라더군요.
앤드루 포터는 적정 수준을 잘 잡아서 작품을 쓴 것 같은데, 지금 배송중인 그의 <어떤 날들>을 읽어보면 더 잘 알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