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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문학 걸작선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태동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잘만 쓰여졌다면 추리소설만큼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쟝르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추리문학이라니까 금방 떠오르는 작품이 없기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책은 아니고 2002년에 출간된 책이니 거의 20년전이다. 

900여쪽의 두툼한 책 속에 한국 추리 작가 스물 여덟 명의 스물 여덟 작품이 들어있다. 스물 여덟 명 작가 이름을 훑어봐도 아는 이름은 김내성, 이상우, 김성종, 이렇게 겨우 세명. 다른 작가들의 이력을 보니 신춘문예 출신 작가도 있고, 시나리오 공모전으로 등단한 작가,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진 작가, 방송드라마를 쓰고 있는 작가등 다양하다. 

간단하게나마 작가 이름, 제목, 읽은 소감 정도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해서 몇줄씩 남겨본다.


김내성, 타원형 거울

-치정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으로 지목받는 사람이 화자가 되어 사건을 풀어나간다. 마지막 반전으로 인해 끝까지 독자는 누가 진짜 범인인지 혼란스럽다.

현재훈, 그밤에 있은 일

-역시 치정에 의한 살인. 수사보다는 유도심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도록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

이경재, 바꿔바꿔

-거짓말을 하는데 든 시간과 노력에 비해 푸는데는 단순한 추리력과 증거만 있으면 된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노원, 짧은 불륜, 긴 악몽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이렇게 헛점 많은 범인이 있을까. 전체적인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짰지만 캐릭터를 좀더 살렸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목이 너무 직접적인 것도 유감이다.

이상우, 두 사람이 가는 지옥

-분량만큼 간단한 이야기이다. 사건 발생 동기, 범인 추적 과정,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 등,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목의 '두사람이 가는 지옥'이란 불륜지옥. 역시 치정살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원두, 아내 지키기

-무난한 스토리 라인이지만 추리문학이라고 하기엔 추리할 기회가 별로 없이 이야기가 끝난다. 바람난 여자와 남자, 그를 의심하는 상대방. 여기까지 읽어오는 동안 모든 작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구성이다.

김성종, 어느 창녀의 죽음

-'여명의 눈동자' 작가이다. 그런 선입관을 가지고 읽어서인지,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사회소설의 성격도 있긴 하지만 두드러진 정도는 아니다.

김남, 바닷가의 두 남자

-은행 권총 강도가 썩은 방탄 조끼로 인해 범행 실패라니,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닌가.  이 작품에도 역시 추리는 없다. 수사도 없다. 그냥 에피소드일뿐.

정현웅, 어느 여공의 죽음*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중 사회성을 보여주는 확실한 경우이다. 여대생의 위장 취업, 중소기업 경영 비리, 갑질 문제, 언론사의 공정 수사 결과 은폐 등, 일개 기자의 소신은 감히 여기에 대적할 수 없었다.

강형원, 여름 추리 학교의 살인*

-실제 존재하는 추리 작가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특이한 구성이다. 추리학교에 참석한 추리작가들중 한명이 거기 모인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참신해보이는 구성에 비해 살해동기나 수사과정이 빈약하고 전형적인 것이 아쉽다.

권경희, 늪은 허우적거리는 자를 더 깊이 끌어들인다

-이게 왜 추리문학으로 분류되는지 모르겠다. 살인 사건이 나오면 다 추리 소설인지. 자살인줄 알았던 아내의 죽음에 목격자가 있었고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절대자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위증을 결심하는 대목이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김상헌, 작전완료*

-제목만 봐서는, 그리고 마지막 줄에 이르기 전에는 도무지 어떤 결말인지 예측이 안되는, 의외로 참신한 작품이다. 비행기 폭파범에 의한 테러 사건 처럼 전개되다가 반전 결말까지, 단편의 특징을 충분히 이용하며 진부하지 않았다.

유우제, 빛의 살인

-극장에서 영화 관람중이던 한 남자의 죽음의 원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지만 나중에 그날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는 그날을 되돌아보다가 그때 심장마비를 유발시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수광, M의 사냥

-이쯤에서 이책 읽기를 그만 두어야 할까 망설이게 한 졸작이다. 여자들만 골라 연쇄살인을 벌이는 사이코패스의 독백,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다.

장세연, 위험한 주말

-심드렁한 부부관계에 찾아온 아내의 옛 애인에 대한 질투심으로, 아내와 동승한 차에서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남편. 나중에 아내는 임신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냥 꽁트.

한대희, 수출살인

-역시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이다. 특이한 제목이지만 내용과 큰 관련 없어보인다. 스토리보다 그저 하나의 평범한 사건 기록 수준. 초반부 완전범죄에 대한 설명도 불필요해보인다.

백휴, 휠체어 여인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스토리이다. 다만 과거 여인과 헤어진 동기가 여인의 등의 흉터 보기가 싫증나서라는 설정이 현실성 떨어지고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여자가 투신하는 것으로 복수를 계획한다는 것도 현실성없고 억지스러운 건 마찬가지이다.

이승영, 숲속의 마녀

-화성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쇄살인의 공통점은 성교후 독극물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이다. 성적인 내용과 엽기적 방법의 살인을 접목시켜 흥미를 만들어내고 싶었나. 저속함과 불쾌함만 남긴다.

최종철, 빨간 스카프

-범행에 사용한 물건을 담당형사에게 보내는 선물 포장용으로 사용하는 어리숙한 범인도 있나? 플롯의 어리숙함이다.

김차애, 열대어를 사랑한 남자

-구성이나 이야기 흐름에 무리가 없다. 문장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읽힌다. 살인의 동기와 결과가 엽기적이긴 하지만 갑작스럽지 않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류성희, 사쿠라 이야기*

-추리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미스터리라고 하면 맞다. 이야기의 소재도 신선하고 역사의식도 담고 있어 여기 실린 수십편의 글중 좋은 작품으로 꼽고 싶다.

서미애,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그럴듯하다. 제목부터 독자를 끌어당긴다. 서른 가지 방법을 무색하게 만든 타인의 한가지 방법이 나온다.

이기원, 라스트 카니발

-연쇄성 폭행사건을 다루고 있다. 고단수 범인의 정체가 결말에 드러난다. 살인동기가 모호하다는 단점과 의외의 긴장감을 주는 구성이라는 장점을 보여준다.

정석화, 종족보존의 법칙

-환상에 기반한 이야기. 앞에 전개된 상황들이 다소 황당한 결말로 급마무리 된 느낌이다.

현정, 거울여자의 죽음

-상대에게서 자신의 퍼스나를 발견할때 그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지만 꼭 정상적인 사랑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황세연, 천생연분

-천생연분과 천생악연은 종이 한장 차이일수 있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이 세상에 천생연분이란 없다고 해야할까. 부부 사이 말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몇 작품 (* 로 표시) 을 제외하고는 실망스럽기만한 책이었다. 스물 여덟 명의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이 들어간 저서 한권을 더해주었다는 것 외에, 독자들에겐 어떤 의미를 주었을지 모르겠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은 이 책이 나온 2002년보다 한국추리문학에 뚜렷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져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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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생물학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5
이상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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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생물학은 발견의 학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머리말 첫 문장이다. 단순히 관찰하고 분류하고 이름 붙이고 기능을 밝히는 것이 주 내용이었던 생물학이 지금처럼 생명의 설계도를 바꾸는 분야까지 넓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두 가지 획기적인 발견이 큰 몫을 했다. 다윈의 진화론과 와트슨과 크릭의 DNA 구조 규명이 그것인데 이를 계기로 생물학은 과거 발견의 학문에서 오늘날 생명공학이라는 분야에 이르기까지 급 발전, 진보해왔다.

평범한 제목과 저자 소개만으로는 이 책이 기존의 생물학에 관한 책들과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다 읽고보니 현재 생물학의 경향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중요한 생물학의 역사도 포함시켰고, 다른 분야에 비해 이렇게 빠른 발전과 진보를 이루느라 미처 진지하게 다룰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생명 윤리 문제, 다른 생물 종과 인간의 관계 분열, 종의 절멸과 변이종의 출현 등 인간이 자초하여 당하고 있는 후폭풍 문제들을 빠뜨리지 않았다. 빠뜨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 설득력있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생물학은 자연과학에 속하면서도 다른 자연과학 분야들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하여, 생물학은 예외를 껴안는 학문이라고 표현한 것에 공감한다.

 

물리와 화학 현상에는 원래 예외가 없죠. 그러나 생물학의 현상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생물학에서 예외가 발생하는 이유는 우연이라는 요소 때문인데요.

생물학에 법칙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외를 인정할 뿐이죠. 어쩌면 예외가 낳은 다양성을 품기 위해 현재의 법칙마저 구부리는 것 그것이 생물학의 운명일지 모릅니다 (50~61쪽 발췌).

 

법칙은 있으나 예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법칙을 따르되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예외에 대해 구부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DNA→RNA→단백질이라고 하는 central dogma (중심 법칙) 도 레트로 바이러스에 의해 반박을 받았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레트로 바이러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레온 단백질도 여기 합세하였다.

유전 정보를 구성하고 있는 A, G, C, T 이 네 가지 염기에 몇가지를 더 해서 'XNA'라는 확장된 DNA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는 것은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인간에 의해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1980년대 개발되어 노벨화학상을 받기도 했던 PCR 기술이 이제 생물학 연구실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될 기술이 되어 요즘 처럼 매일 뉴스에까지 등장하는 시대가 올거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이 책에는 PCR 방법에 대해 기술적인 설명 뿐 아니라 어떤 괴짜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어떤 딜레마를 극복하고 개발되었는지도 재미있고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다윈이 진화론에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진보' 개념을 멋대로 해석하여 자기 주장에 이용하는 비(非)과학자들에 대한 일침, DNA를 생명의 일부가 아닌 정보의 조각으로 보는 경향때문에 인공 세포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2010년) 이것은 가상세포의 수준에서 그칠 뿐 진짜 세포로 행동하지 못하더라는 것, DNA 정보가 전부일줄 알았지? 놀리기라도 하듯이 후성유전학이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것등, 생물학 이야기는 누가 어떻게 써도 솔깃하고 재미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이라면

1. 인용과 참고 서적이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뒤에 한페이지에 걸쳐 책과 웹사이트가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본문 내용중에 인용 표시가 있어야한다고 생각된다.

2. 책 제본이 읽는 사람에게 매우 불편하게 되어 있다. 양손으로 책을 붙잡고 읽으라는 것인지. 출판사에서는 이점을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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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Lecture (Paperback)
랜디 포시 지음 / Hyperion Books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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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간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책. 언제부터 내집 책장에 꽂혀있었는지 모를 책을 이제서 꺼내 읽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말로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은 과연 빈손으로 가는것일까.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럴지 모르지만 정신적인 영향력, 가르침도 포함한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2006년 췌장암 진단과 함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통고받았을때 저자인 Randy는 아직 40대였고 어린 세 아이의 아빠였으며 카네기멜론 대학 컴퓨터학과의 촉망받는 교수였다. 남아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족들과 함께 하며 어린 자식들의 기억 공간을 채워주고 싶었지만 그 시간을 쪼개어 그는 자신의 아이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뭔가 더 구체적인 것을 남기고 가고 싶었다. 아내 Jay의 말에 의하면 그는 원래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자기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 기간이 Randy 에게는 힘든 항암의 화학치료 기간이기도 했지만, 돌아보건대 암치료를 위해 주어지는 그 어떤 약보다도 그가 쓴 이 책을 읽은 사람들로부터의 긍정적이고 애정어린 반응을 받았던 것이 그에게는 더 좋은 것이었다고 아내는 회상한다. 그는 마침내 불과 1년 전만해도 자기가 지금 이런 일에 시간을 쏟을거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을 히작한다. 길지 않은 생을 돌아보고 남겨질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남겨질 이야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연을 하였고, 책으로 출판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든, 그렇지 못했던 사람이든,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가늠하여 생의 성공여부를 말하곤 한다. 얼마나 남기고 갔느냐는 말의 '얼마나'에는 재산, 직위, 때로는 자식의 성공 여부까지 포함시켜서 말할 때가 많으면서 말이다.

자기가 태어나는 때를 스스로 정하지 못했듯이 생의 마감도 자기가 정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 뻔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그 순간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흔히 나이들으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남의 말을 듣는 대신 자꾸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꺼내어 한번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모르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에게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길게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거기에 남을 가르치는 듯한 말투까지 보탠다면 상황은 더 못견딜 상태로 치닫는다. 이런 일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 말 좀 들어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에 해당하는 내용을 아무나 붙잡고 말을 하는 대신 혼자 글로 써보면 어떨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도 되고 억지로 듣는 사람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30년을 살든, 70년을 살든,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면 누구나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것들을 자기의 경험을 기본으로 하고 경험을 통해 얻은 생각을 잘 정리하여 에피소드 형식의 지루하지 않은 얘기들을 "The Last Lecture"  라는 제목으로 남겨주었다. 학생들과 interaction이 활발하던 젊은 교수였기 때문인지 강의라기 보다는 한바탕 그의 수다를 들은 느낌일 정도로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며, 그러면서도 요약이 잘 되어 결론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이해하기 쉽고 전달력이 확실한, 강의라고 치면 명강의이다.

 

Experience is what you get when you didn't get what you expected. (148쪽)

경험이란 당신이 기대하던 걸 얻지 못했을때 얻은 그 무엇이다.

 

'The Eaten By Wolves Factor' (160쪽)

: 어떤 일을 하기 앞서 worst case scenario를 생각해보는 것. 더 잘 준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이다.

 

Once you get over them, it can be helpful to others to tell them how you did it. (174쪽)

당신이 일단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극복해야 나중에 그것이 어땠노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A lot of parents don't realize the power of their words. An offended comment from Mom or dad can feel like a shove from a bulldozer. (198쪽)

많은 부모들은 그들이 하는 말의 위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화 나서 던지는 한마디는 (자식들에게) 불도저가 와서 밀어붙이는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지 3년만인 2008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결코 빈손으로 떠났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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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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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하고 긴 검은 머리, 검은 테 안경, 장갑 낀 손으로 애견 '애니'를 옆에 끼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모습.

이 책을 다 읽고 궁금해서 찾아본 그녀의 모습은 25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릴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화로왔다.

▶ https://www.cambridgeindependent.co.uk/whats-on/writer-emma-mitchell-discusses-the-wild-remedy-how-nature-mends-us-9060590/

 

그녀의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심해지고 봄이 오면 나아지는 '계절성정서장애 (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와 많은 부분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숲에서 발견하게 된 사실은,

“I realised I could find signs of spring in the woods in the depths of winter. There are many signs visible right now. Back in 2012, when I first found out I had SAD, I started to use those walks in the woods to get through the winter."

(봄의 낌새를 한겨울 숲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봄의 징후가 바로 지금 여러 군데서 보인다. 지난 2012년 내가 계절성정서장애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나서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해 숲속길 걷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숲속 걷기를 하면서 발견한 것, 숲에서 주워 모은 것, 느낀 것들을 모아 글을 썼고, 꾸미는 작업을 하여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겨울나기>라는 책을 내었다. 그렇게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워오며 우울증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재 잡지, 방송, 신문 기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국의 박물관과 식물원에서 자연물을 이용한 창작 수업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삶이 빚어낸 두번째 책이다.

그녀는 실제 우울증의 압력에 못이겨 저항하다 못해 자살을 시도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떨어져 내릴 다리를 찾아 차를 몰고 나가 달리던 중 문득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는 조그만 묘목이 눈에 들어왔고,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에 의해 마음의 진동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고 한다. 마음의 폭주와 소란이 가라앉으며 점차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다음날 아침 저자는 의사를 찾아가 의학적인 치료를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늘 있어왔다. 이러는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우리 인간들이란 인간의 편리와 이익만 생각하며 살다가 지친 몸과 영혼을 끌고 자연을 찾는다. 거기서 위안을 받고 회복의 기회를 발견한다.

이런 자연의 치료 효과는 단지 심리적인 플라시보 같은 것만은 아님을 저자는 이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고 과학적인 근거 논문을 책 뒤에 참고문헌으로 제시해놓았다.

우울증 진단의 대책으로 자연 산책이라는 관념이 더욱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자연 속을 걷는 일이 특이하거나 괴짜 같은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인간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근본적 필요성이 일반적인 정신의학과 표준 심리치료법을 보충하는 효과적인 접근방식으로 간주되기를 바란다. (254쪽)

세로토닌이 아니더라도, 피톤 치드 효과에 대해 모르더라도, 도파민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꼭 숲이 아니더라도, 목적을 가지고 어디를 향하여 걷는게 아니라 무작정 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걷기가 주는 효과를. 걷는 곳이 자연 속이고 숲 속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교회에서 느꼈어야 마땅하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모든 감정이 자연 속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26쪽)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소설가 앨리스 워커 (소설 "컬러 퍼플"의 저자) 의 말이다.

이 책의 많은 지면이 여러 새들과 꽃들의 이름, 행태, 변화를 묘사한 내용이어서, 평소 이것들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언젠가 찾게 될 그날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근래 몇년 걷기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차지한 나로서는, 더구나 코로나 이후로 갇힌 공간이 아닌, 동네 뒷산을 거의 매일 산책하고 있는 나로서는 읽기도 전에 공감의 준비가 미리 되어 있던 책이었다.

오늘도 산책길에 딱다구리를 보았고, 꿩을 보았고, 매일 그 자리 할미꽃이 얼마나 더 피어있는지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동물학을 전공하였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까지 한 저자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기쁨과 행복은 조금은 일치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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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수도사 -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잃어버린 삶과 업적
로빈 헤니그 지음, 안인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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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번역본이다.

함께 구입하긴 했지만 번역본이 있으니 아무래도 번역본으로 먼저 눈이 가긴 했는데 읽다가 번역의 원뜻이 궁금할때 함께 참고하며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유전학사, 아니 생물학사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한 발견이라면 DNA보다 앞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꼽아야 할 것이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이 Nature에 발표된 것이 1953년이었고 멘델이 유전의 근본원리를 내용으로 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1865년이니 거의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로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 속도와 방향은 이전과 비교 될 바 아니었다.

그레고어 멘델. 182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스무살 무렵 브륀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이곳은 현재 체코의 브루노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금 그의 흔적을 보기위해선 오스트리아가 아닌 체코의 브루노를 찾아가야한다.

그는 결코 수월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수도사의 신분으로 빈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대학에서 딱히 생물학이라기 보다 물리, 화학, 수학, 동물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제반을 공부하였다.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는 수도 생활과 함께 완두의 잡종 교배 연구를 시작하였다. 왜 그는 완두 잡종 교배를 연구하게 되었을까. 수도사인 그에게 그 연구를 해야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워준 사람이 있었을리 없고 그런 자리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보다는 그의 과학자로서의 성향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물과 현상을 보는 과학자로서의 눈이 궁금증을 일으켰을 것이고 궁금증에서 발전하여 더 알고 싶고 캐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것이 요즘의 몇억 짜리 글로벌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완벽한 연구계획서를 만들어내고 추진하는 욕구와 같을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다른 수도사가 실제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유의 과정과 실험 과정을 거쳐 오늘날 멘델의 법칙이라 불리는 소위 3:1, 9:3:3:1 이라는 간단한 보편적 비율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도 그의 실험에 대해 반론이 끊이지 않게 한 여지를 남긴 것이다. 완두라는 식물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는지, 그토록 형질의 구분이 뚜렷하고 예외가 없는 식물을 골랐다는 것을 두고 그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완두가 첫 실험 대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식물로 시도했다가 그중 예외없이 딱 떨어지는 결과를 낸 식물인 완두를 나중에 골라서 논문을 쓴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의문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다. 딱 필요한 결과와 과정만 기록으로 남겼을뿐 모든 실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오직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정확하게 실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떤 질서를 따라, 어떤 계절에, 그리고 브륀에 있는 성 토마스 수도원의 널따란 안마당의 정확하게 어디에서 그런 실험이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모른다. 멘델이 한 번의 재배 기간 동안에 몇 세대나 식물을 키워 냈는지, 얼마나 자주 온실에서, 또 얼마나 자주 정원에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그가 사용한 완두 식물의 총 개체수를 알지 못하고, 그가 작업할때 누가 그를 도와주었는지 아닌지, 아니면 가장 집중적인 실험이 행해지던 시기의 어떤 특별한 날에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멘델은 실험 일지를 쓰지 않았던 것 같고, 만일 그가 그것을 썼다면 그것은 뒷날 사라졌다. (163쪽)

읽으면서 나조차도 믿기 어려웠다. 실험의 성공 여부를 떠나 실험 하는 사람에게 기록은 기본이고, 그것은 실험의 진실성 여부를 가늠하는 제일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실험자로서 상식이나 다름 없는데 실험 일지가 남아 있지 않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그의 실험 결과가 지금까지도 몇가지 예외를 남기고 잘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들까지도 멘델의 기본 법칙들을 넘어서 더 큰 법칙으로 볼만한 것들은 아직은 없다는 것과, 이후로 밝혀지고 있는 유전학의 제반 현상들이 멘델의 기본 법칙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설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1865년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소박한 제목의 논문으로 10여년에 걸친 거의 혼자만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때 그 누구도 제대로 주목한 사람이 없었다. 당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지 얼마 안되어 (1859년) 가히 진화론의 찬반이 크게 대립해있을 때였고 그것이 과학계에 던진 돌풍이 가라앉기 전이었다. 멘델은 자기의 논문을 다윈을 비롯해 몇몇 유명한 과학자들에게 보낸 것 같으나 주목은 고사하고 제대로 읽어준 사람도 없는 듯 하다. 멘델은 그후 수도원 원장 직을 맡게 되면서 수도원 행정과 경영 문제, 세금 문제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결과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우연히 그와 같은 연구를 하던 세명의 각기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이들 역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이해 관계가 엇갈렸고 갈등도 많았는데 본격적으로 유럽을 넘어서 미국에까지 멘델의 이론을 전파한 것은 영국의 과학자 베이트슨이었다. 이 사람 역시 과학계의 아주 주류에 있던 사람은 아닌 것이, 평생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에 매진했지만 끝내 교수가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를 수도사의 불도그 (The Monk's Bulldog)라고 부르며 책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베이트슨의 업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이트슨 역시 멘델이 살아있는 동안 멘델과 교류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멘델이 세상을 떠난 것은 1884년, 베이트슨이 영국 왕립원예학회에 돌연변이 이론에 대한 강연 준비차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서 각주에 인용된 멘델의 논문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1900년의 일이다. 1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 중에 베이트슨은 멘델의 논문을 읽고 그 탁월함과 명료함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강연 내용을 완전 수정하였고 이후 멘델을 영어권 세계에 소개하게 되었다는 추측이다.

책 후반부엔 멘델의 결과를 뒤늦게 발견한 드브리스를 비롯해 베이트슨과 다른 주장을 하는 학파와의 논쟁 과정을 자세하게 기술하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참고할 기록들이 멘델 자신의 연구에 비해 많다는 것이고 멘델이 얻은 결과가 얼마나 영향이 컸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토마스 모르건의 유명한 초파리 연구, 염색체라는 것이 어떻게 유전자가 위치한 장소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왜 이름이 염색체인지,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 책의 저자는 비교적 산만하지 않고 정확하게 잘 설명해놓았다.

 

멘델은 내게 늘 더 알고 싶은 과학자였다. 인간 멘델도 그렇고 그의 연구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가 평생 봉직하고 실험했던 수도원을 찾아가보기도 했었다. 유전이라는 것에 대해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실험이 아닌 이론으로 추론하고 단정하던 시대에, 밭이든 정원이든 손수 실험하여 나온 결과로 유전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한 멘델이 아닌가. 그로부터 100년후 DNA가 유전 물질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그후로 100년도 안 지난 지금은 그 DNA의 성질을 바탕으로 신종 코로나 진단을 하루에 수만건씩 하고 있지 않나.

멘델에 대한 관심은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고 그 본질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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